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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사기(6): 부록(1) 종교적 혼란(17-18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24

 사사기(6): 부록(1) 종교적 혼란(17-18장)


     
  3. 부록-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종교, 사회적 타락상(17-21장)

  사사들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이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그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사들의 이야기에서는 반역-심판-부르짖음-구원이 중심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오는 미가의 이야기(17-18장)와 레위인의 첩 이야기(19-21장)는 "그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공식이 등장한다(17:6, 1:1, 19:1, 21:25). 다음에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 공통점이 많다.

 1) 두 이야기는 모두 이스라엘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가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상을 보여주며, 레위인 첩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윤리적인 타락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미가 이야기는 단 지파가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고, 레위인 첩 사건은 베냐민 지파가 거의 몰살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2) 두 이야기가 모두 레위인과 관련이 있다. 미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레위인은 "유다 베들레헴"(17:7-8)과 연관이 있으며, 첩 이야기에 등장하는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19:1)와 연관이 있다. 전자는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자로서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을 했고, 후자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자로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했다.

 3) 두 이야기 모두 레위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미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레위인은 미가의 집에 있다가 단 지파를 따름으로 미가와 단 지파의 분쟁을 초래했으며, 첩 이야기에 나오는 레위인은 온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가 전쟁을 치르게 하는 중간 역할을 했다.

 4) 두 이야기 모두 실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미가 이야기는 실로에 있는 성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으며(18:31), 첩 이야기는 실로의 여인을 납치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21:19-23).


서론

사사들의 이야기(반역과 구원)

타락

실패

배도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
멜렉

돌라야일

입다

삼손

종교적
타락

도덕적
타락

1

2    3:6

3:7-11

3:12-31


  5:16

6  
     8

9

10:5

10:6
    12

13     16

17     18

19     21

실패원인

1

2

3

4

5

6

7

이스라엘 부패상

 


1. 종교적 혼란(17-18장)

1-1. 미가의 가정제단(17장)

 가. 신당을 세운 미가(17:1-6)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1100개를 잃으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1100개를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기 위해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려줄 것이라. 4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은 200개를 취하여 은 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18장에 나오는 우상 숭배 및 제사장 사건은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삼손 이후가 아닌 사사 시대 초기로 보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개 사사 옷니엘(3:9 -11) 당시인 것으로 본다(keil, Wycliffe, Pulpit). 에브라임 산지는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었던 팔레스틴 중부의 구릉 지대를 가리킨다. 이곳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실로 및 벧엘도 있었다(3:27). 미가라는 이름은 '미카예후'의 단축형으로 그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라는 말이다. 성경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삼하 9:12; 대상 5:5; 대하 34:20; 느 10:11; 미 1:1). 미가는 자기 모친의 돈을 훔쳤다가 모친의 저주를 듣고 돈을 다시 되돌려 주었다. '저주한다'는 말('알라')은 원래 신에게 '탄원한다', '간청한다'는 뜻이다. 미가는 어미가 돈을 잃고서 신께 탄원한 간구에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은 1100개는 삼손을 유혹하는 대가로 들릴라가 블레셋 방백들에게서 받기로 약속한 돈의 액수와 동일하다. 미가가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은 열을 주겠다고 약조한 것을 보면(10절), 은 1100개는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가는 어떤 용도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어미의 수중에서부터 거액의 돈을 훔치고서도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어미가 자기 돈을 훔친 도둑에게 저주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처럼 어미에게 돈을 돌려주며 자신이 도둑임을 자백했다. 고대 사회에서 저주는 하늘의 심판으로 여겨졌으며 단순히 입술을 통하여 난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 원하는 것을 그대로 성취시켜주는 대리자로 여겨졌다(J.V. Motyer). 그리고 모두 저주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저주의 덫에서 풀려지게 되는 줄로 믿었다. 본문에서 미가의 어미가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한 것도 그녀의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고대의 주술적인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분명 이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저주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저주의 덫에서 풀어내기 위해 가증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을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행위이며(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가증스러운  범죄였다(롬 1:23).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우상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양하다. 여기서 '한 신상을 새기며'에 해당되는 '페셀'은 돌이나 나무를 깎아 새긴 우상을 가리킨다(신 7;25). 그리고 '한 신상을 부어'에 해당되는 '마세카'는 아론의 송아지 우상처럼 주조하여 만든 우상을 가리킨다(출 32:4). 이로 볼 때 미가의 어미는 분명 두 개의 우상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Hervey). 그러나 이와 관련 4절에서 '그 신상'이라고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 있고, (18:20,30)에서도 '새긴 우상'이라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점에 의거하면 미가의 어미가 만든 우상은 하나 뿐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Cundall, Keil). 따라서 혹자는 이 양자의 견해를 절충, 미가의 어미가 먼저 은으로 주조한 뒤에 끌로 다듬고 조각하여 하나의 우상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 그 우상은 암송아지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론의 금송아지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훗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이러한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각각 하나씩 세운 적이 있다(왕상 12:28-30).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론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겨왔던 금송아지는 불 가시적인 여호와를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본다. 어쨌든 그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짓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이것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출 20:4, 23; 신 4:1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천지 만물을 조성(조성)하신 분이긴 하나 그분은 그 어떠한 형상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참된 신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같은 하나님을 지상의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나타낸 것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가 되지 못하였다.

 2) 여호와를 송아지 형상으로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의 아피스(Apis)신과 같은 여타 신들 중의 하나로 본 것이니 이는 일종의 불경죄 해당된다.

  미가는 훔친 돈 은 1100개를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레 6:5)에 의하면 도적이 훔친 것을 주인에게 돌려줄 때는 훔친 것에 1/5을 더해 돌려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은 200 세겔은 미가가 은1100개에 더해 준 속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Bertheau).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은 200세겔은 미가가 어미에게 되돌려 준 은 1100개 가운데서 떼어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Cassel). 그들은 (레 5:24)의 율법은 한 가족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Keill). 전후 문맥상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은 장색이란 말('차라프')은 '제련하는 자', '세공 하는 자'란 뜻으로, 은으로 여러 가지 장신구나 물건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미가의 신당은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실로(수 18:1; 삼상 4:3,4)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다(1)조. 이것은 그 당시에 실로가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미가가 하나님의 성소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파행적으로 개인적인 신당을 소지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던가를 보여준다.

  '에봇'(ephod)은 금실,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로 짜 어깨에 걸치는 의복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이다(출 28:6-8). 그런데 이 에봇이 우상처럼 숭배된 것은 기드온 때이다(삿 8:27).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서 전리품으로 취한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념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기드온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음란히 섬겼던  것이다(삿 8:27). 본문에서 미가가 다시 에봇을 만들어 우상 숭배에 사용한 것도 아마 그같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라빔'(teraphim)은 가정의 수호신 상으로서 고대로부터 근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숭배되던 우상이었다(창 31:19; 삼상 19:13,16; 왕하 23:24; 호 3:4,5). 에스겔은 바벨론 왕이 점을 칠 때 이 드라빔을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으며(겔 21:21), 스가랴는 이 드라빔에서 거짓 예언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슥 10:2). 이로 볼 때 드라빔은 미가가 세운 제사장이 점을 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다(Mattew Henry).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으로서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이 그 직분을 세습토록 되어있다(출 28:1). 그러므로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이처럼 독단적으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월권(越權) 행위를 저지른 것일 뿐 아니라, 죽어 마땅한 대역죄를 저지른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의 타락한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는데(18:1; 19:1; 21:25) 여기에는 왕정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1) 부정적 측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전 민족을 통솔하는 정치 지도자가 없었으나, 통치 법은 있었다. 그 통치 법은 바로 율법이었고 입법자는 하나님 자신이셨다. 이는,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응당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그 통치에 순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 때 전 백성의 결속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늘 함께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진 않고 단지 이방 나라들의 세속적 왕정제도를 통해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2) 긍정적 측면: 시일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늘어가고 그로 인해 여러 부차적 문제들이 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구체적으로 대행할 지도자가 실제적으로는 강력히 요청되었다. 왜냐하면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더 잘 아셨기 때문이다(히 4:15). 요컨데 이러한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락하였으나, 당신의 우려하신 바대로 이스라엘의 왕정사는 수많은 오점들로 얼룩지게 되었다.

                     * 내용 요약 : 말씀 중심이 아닌 자의적 신앙 *

1. 신상을 만들지 말고, 아론의 자손을 제사장으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

2.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였으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

3. 어머니의 돈 은 1000세겔을 훔쳤다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 돌려 드림.(물질 관계 타락)(3-).

4. 그 은을 여호와께 드리고, 은 200으로는 두 개의 신상을 만들었다(제 2계명 어김)(4-).

5. 자기 신상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움(개인 종교 발생)(5-)

6.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섬기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6).


 나. 미가가 레위인을 가정 제사장으로 세움(7-13)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8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11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17:7-13)에는 미가가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5절)을 폐기하고 대신 한 레위인 소년을 제사장으로 삼은 경위에 대하여 기록하고있다. 모세의 율법을 따르면 레위인들에게는 여섯  개의 도피성과 40여 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주도록 되어 있었다(민 35:6 ; 수 21:1). 그러나 사사기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무질서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래서 본래 유다 지파의 땅에 살고 있던 레위인 소년도 자신이 거할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방랑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지 못하고 생계의 방도를 찾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타락하거나 곤욕을 당하게 되기 쉽다.한때 베들레헴에 거하던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하던 중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베들레헴은 원래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성읍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레위인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살게 된 것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땅이 당시 블레셋의 치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Goslinga). 그러나 혹자는 이를 근거로 하여 그가 레위인이 아니었으며 다만 레위인과 같은 역할을 베들레헴에서 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Cundall). 그러면서 이에 대한 실증적인 예를 들기를 사무엘은 에브라임 태생이지만(삼상 1:1) 실로의 성전에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아 레위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분명 레위 지파 중 고핫 가문의 사람이니 그 아들 사무엘도 당연히 레위인이 되기 때문이다(대상 6:16-34).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 나오는 소년도 레위인임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만일 이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교육을 받아 레위인 행세를 했다면 굳이 그가 베들레헴을 떠났을 이유가 없다. 또한 그가 단지 레위인으로서의 역할만 행했던 비 레위인이었다면 미가가 자기 아들을 폐위하고 대신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가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지극히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바로 율법에 정한 그 레위인이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11-13절).

  여기서 '아비'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남을 지도하며 권고하는 위치에 있는 자를 높여 칭하는 말이다(Hrvey, Gosilinga). (창 45:8)에서는 요셉에게, (왕하 6:21)에서는 엘리사에게, 그리고 (사 22:21)에서는 엘리아김에게 '아비'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었다. 반면 이에 상대적인 용어는 '아들'인데, 이것은 피교육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왕하 8:9; 잠 4:10,20). 한편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마 23:9)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높이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한편 본문에서 '아비'와 '제사장'이란 말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코헨,)이라는 말속에는 시민의 지도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삼하 8:18; 20:26; 왕상 4:5; 대상 18:17; 욥 12:19), 같은 의미가 '아비'라는 말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처 없이 생계에 곤란을 느꼈던 이 소년에게 해마다 일정한 봉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돈으로 성직자를 고용하거나 고용되는 일은 물질 만능 적인 타락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시대를 막론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성직자들은 보수보다 일 자체에 관심과 기쁨과 보람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비록 보수가 적더라도 그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해야한다. 여기 레위 소년은 그러한 사명감과는 상관없이 보수에만 관심을 둔 타락한 성직자였으니 이에서  역으로 경성(경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의복 '한 벌'이란 말('에레크')은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것을 가리키며, (출 40:23)에서는 이 말이 '진설병'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에레크'를 옷의 단위로 보고 옷 열두 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말한다(Pulpit). 그러나 이는 곧 상의와 하의 한 벌을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레위 소년은 미가의 아들처럼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 그의 집에서 편히 살게 되었다.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했다는 말은 직역하면 '미가가 레위인의 손을 채웠다'라는 뜻이 된다. 이로 보아 아마 미가는 (출 29:24)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제사장의 임명에 따른 성별 의식을 이 레위 소년에게 행한 것으로 생각된다(Lange). 그러나 제사장의 성결 의식만을 흉내 낸 이러한 임명식은 완전히 율법에서 어긋난 것이다(5).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율법에 무지했던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한 후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미가의 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하나님을 가나안의 우상과 동일 선상에서 미신적인 대상으로 섬겼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미가는 파행적인 방법으로 세운 레위인을 합법적인 제사장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12절과 같이 행한 제사장 임명식을 정당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규례가 있다해도(출 28:1; 민  17장) 미가는 레위인이면 모두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레위인을 통하여 미가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저주(2절)가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가정을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즉 미가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드라빔과 같은 일개 가정의 수호신에 불과하였다(Goslinga).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우상 숭배로 인한 혼합주의에 의하여 크게 왜곡되어 있었다.

                                  * 요약 및 적용 *

1. 상업주의적 신앙(7-12)
 - 유다 땅에서 온 소년 레위인이 봉사할 곳을 찾아다님(7-9)
 - 은 10세겔의 연봉과, 옷 한 벌, 식량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레위인을 가정 제사장으로 삼    음(10-)-생계를 위한 종교
 - 미가는 제사장을 모셨으므로 자기에게 복이 올 줄로 생각을 했다-미신적 신앙-(13)

2. 미신적 신앙(13)
 - 미가는 자신이 제사장을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을 줄 생각함.


1-2. 단 지파의 집단적 우상 숭배(18장)

 가. 영토를 찾아 다니는 단 지파(18:1-7)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용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17:6)에 이어 본서 기자는 여기서 또다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간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17:6)은 개개인의 종교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말했으나 본문에서는 자기 기업을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밀려나는 약한 지파를 왕정제도에 의해 강대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온전케 보존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본래 단 지파는 여호수아 생존시에 기업을 분배받았었다(수 19:40-46). 그러나 가나안 정착 초기에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모리 족속에 의해 쫓겨난 타 지파의 땅에 분산 거주하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1:34). (1:34)에서 본서 기자는 단이 분배받은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요셉 족속이나 유다 지파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했기 때문임을 암시했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왕이 없는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 따라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단순히 본서 기자의 주석이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견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손의 고향이자(13:2-5, 24) 단 지파의 기업이던 소라와 에스다올(수 19:41)은 유다 지파와 단 지파의 경계 지역이다. 소라는 예루살렘 동쪽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며, 에스다올은 소라의 동북쪽 약 2.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원래 소라와 에스다올은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는데(수 15:33), 훗날 기업을 재조정하면서 단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이곳에 안주(安住)치 못하고 많은 수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주하였는데(11절), 미리 말한 바와 같이 아모리족의 침입 때문이었다(1:34). 단 지파는 그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땅을 찾기 위해 그들의 씨족 가운데서 용맹한 다섯 사람을 미리 정탐꾼으로 파견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아마도 단 지파는 이러한 준비를 하면서 마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재현하는 듯한 꿈에 젖었는지도 모른다(수 2:1). 하지만 약속의 유업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자들이 신 개척지를 얻는다 하여 거기서 신실한 언약 백성의 모습을 존속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의구심 그대로 그들의 불순하고 패역한 자태는 본 장에 확연히 기록되고 있다(5,30절). 한편 단 지파의 북쪽 이주에 대한 기사를 요약한 (수 19:47)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단 지파의 지경이 확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탐꾼들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북쪽으로 가던 도중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신당(17:1, 5)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레위 소년의 음성을 듣고 발을 멈추게 되었다. 이들이 어떻게 레위 소년의 음성을 금방 알아들었는 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음 두 가지 경우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 이 레위 소년이 베들레헴을 떠날 때(17:8) 소라와 에스다올 지역을 지나쳐 왔기 때문에 정탐꾼들과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Wycliffe, Matthew Henry). (2) 에브라임의 방언은 특색이 있는데(12:6) 이 소년은 에브라임 방언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겨졌을 가능성도 있다(A.C. Hervey). 한편 이 밖에도 혹자는 단 사람들이 밤에 미가의 집에서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종소리(출 28:35)를 듣고 레위 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한다(Cassel). 그러나 본절은 분명히 단 사람들이 미가 집을 발견하고선 그곳에 유숙하러 가다가 레위 소년을 만났음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그 같은 추측은 개연성(蓋然性)이 없다. 단 사람들은 레위 소년이 생계 수단을 구하기 위해 떠돌아 다녔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정탐꾼들이 레위 소년을 금방 알아본 이유가 이전에 이미 안면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을 한층 짙게 해준다. 레위인은 단 지파의 대표들에게 그는 자기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게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고용했다"는 말('사카르)은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레위 소년은 자신이 삯을 받고서 제사장으로 고용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종교인들이 얼마나 부패했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우심을 받는 성직임에도 불구하고 레위 소년은 천박한 직업 의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성스러운 일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마 28:19;벧전 2:9). 그러나 이 사명을 망각하고 물질의 노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교회의 성직을 밭은 사람들은 천박한 직업 의식에 빠져 거룩한 복음 사역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로 봉사하기를 힘써야 한다(요 10:11, 12). 그리고 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들은 교직자로 하여금 복음 사역에 전무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행 6:4).

  단 지파 대표들은 레위인에게 그들이 행하는 일이 형통할 것이지 하나님께 물어달라고 요청했다. 레위인은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단 지파 사람들이 레위 소년에게 신탁을 구한 것은 그가 에봇과 드라빔(17:5)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단 사람들이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호칭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레위인이 섬기는 신을 이스라엘이 섬기는 유일신 여호와가 아니라 일반적인 신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Goslinga). 그러나 단 지파와는 달리 레위 소년은 '여호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간접적이나마 단 사람들에게 자신이 여호와께 신탁을 구할 자격이 있는 합법적인 제사장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그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그 길을 주장하고 계시니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는 뜻이다(Matthew Henry). 이 말을 들은 다섯 사람은 그를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했다. 그들이 보니 그 곳 백성들은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게 아무 염려 없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서로 괴롭히지 않았고, 시돈 사람과 거리가 멀어서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라이스 또는 레센(수 19:47)은 오늘날의 '텔 엘 카디'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팔레스타인 최북단에 있으며 헬몬 산에 가려있어서 아람과 단절되어 있고, 레바논 지역에 대해서도 페니키아와도 단절되어 있어서 외침을 받을 염려가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요단 강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하여 물이 충분했기 때문에 힘이 약한 단 지파의 정착지로서는 안성마춤이었다. 더욱이 원주민들은 이러한 천연적인 조건에 타성이 젖어 외침에 대해 무방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빈약했으므로 단 지파가 정복하기에는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한가하다'는 말('쉐케트')은 '풍족한 가운데 여유를 즐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공동 번역은 이를 '아쉬운 것  없이'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로 시돈인들은 동서 교역의 중개지로서 또한 상아 제품 제조 산업 따위로 많은 부(富)를 벌어 들여 풍족한 경제 생활을 구가하였다. 따라서 라이스 거민들이 이러한 시돈 사람 같은 경제 생활을 누렸다함은 그들이 상당히 여유 있는 생활을 즐겼음을 의미한다(Pulpit). 라이스 사람이 한가하고 평안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권세 잡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왕들은 대체로 세습에 의한 독재자들이었고 이들은 외침을 막고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세금을 징수하고 사람들을 징용에 끌어넣었다. 그러나 라이스는 천연적인 요새였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다. 라이스는 시돈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시돈은 레바논 산맥의 장애로 인해 라이스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세를 누렸으므로 굳이 라이스에까지 간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따라서 라이스는 천연 방벽을 의지하여 사실상 독립된 생활을 누리고는 있었으나, 자체적인 방어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단 자손의  침입을 막을 수가 없었다(28절).


 나. 단 지파가 라이스 정복을 위해 출발함(8-12)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9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11 단 지파 가족 중 600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2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이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파견된 대표들은 라이스 조사를 마치고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왔다. 단 지파 사람들은 그들이 땅을 정탐한 결과에 대해서 질문했다. 정탐꾼들은 그 땅이 보기에 심히 좋으니 즉시 올라가서 그 땅을 얻으라고 권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가나안 정벌은 신앙적 동기(민 14:6-9)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외형적으로 보기에 좋기 때문에 그 땅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단 지파의 결정은 신앙보다는 안목의 정욕을 따른 것이었다. 정탐꾼들은 그 곳에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며, 그 땅은 넓고 하나도 부족한 곳에 없다고 말했다. 정탐꾼들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단 지파에게 붙이셨다고 말했다. "평안한 백성"이란 말('암보테하')은 '방심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는 라이스 거민들이 물질적 풍요와 천연적 방어 벽을 과신하고 안일한 상태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룩한 전쟁을 할 때의 구호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명칭으로 '여호와'를 사용한다. 그러나 단 사람들은 '여호와'(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가 아니라 '엘로힘'(일반적인 신)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 기록된 거룩한 전쟁의 구호는 단순히 형식만 따랐을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본래의 성전 구호와 비길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 지파의 전쟁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욕을 쫓아 행하는 전쟁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기업으로 받은 당을 저버리고(11절) 심지어 우상 숭배에 깊이 젖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30,31절)  마치 하나님의 성전(聖戰)을 수행하고 있는 양 행동하였던 것이다. 한편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표어는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히 적용되어야 마땅하다(고전 10:31). 그러나 현실의 복잡 다양한 제반 상황들에 적응하다 보면 그러한 표어가 한낱 공허한 추상적 원리로 머물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와 전혀 상반되는 일을 하면서도 그 표어대로 살고 있는 양 착각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늘 스스로를 돌아보아 그러한 표어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함께 하사 모든 대적들을 성도의 손에 붙이게 될 것이다(고후 10:4).

  이 말을 듣고 단 지파 사람들 중에서 600명이 무기를 들고 라이스로 가기 위해서 소라와 에스다올을 출발했다. 그들은 즉시 올라가서 유다 지파의 땅인 기럇여아림에 진을 쳤는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이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라 불리었다. 이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었다. 여기서 '지파'와 '가족'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 지파에는 오직 한 가족, 즉 '수함 가족'(민 26:42)만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600명은 병기를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장정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로서 이들 앞에 가도록 되어 있었다(21절). 따라서 현재 라이스 정복 길에 나선 단 지파의 총 인원은 어림잡아 이, 삼천 명 정도였던 것 같다(Hervey). 이와 같이 단 지파의 인구가 과거 장정만 6만 명 가량(민 1:39;26:43)에서 이토록 현저히 줄어든 것은 아마 그 동안 아모리 족속과 블레셋 족속들의 압박에 의해 인원이 크게 축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는 아직 소라나 에스다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수는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구가 급격히 즐어 들었다 해도 차이가 심한 것으로 보아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보다 더 타당성 있는 견해라 하겠다(Matthew Henry). 단 지파가 라이스를 향하여 북쪽으로 길을 떠난 뒤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머문 곳은 예루살렘에서 몇 시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기럇여아림'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도로상에서 약 14.4km 떨어진 곳이다. 기럇여아림은 여호수아와 동맹을 맺어 멸망을 피했던 기브온족의 네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수 9:17). 이 곳은 단 지파에 의해 '마하네단', 즉 '단의 장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곳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유다 지경 내에 있었으며, 삼손이 처음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던 곳이었다(13:25).


 다. 제사장과 신상을 훔친 단 지파(13-20)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 다섯 사람이 그 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16 단 자손 600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600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단 지파는 기럇여아림을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기럇여아림에서 미가의 집이 있는 에브라임까지는 약 20km 정도의 거리이다. 이는 곧 걸어서 5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때에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단 지파 사람들에게 미가의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다고 말한 후에 그것을 빼앗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집에"라고 번역된 말('바바팀')은 "이 집들에"란 말이다. 이것은 미가의 집이 여러 건물로 된 큰집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다섯 사람은 레위 소년이 있는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이때에 단 지파 사람 600명은 무기를 들고 문 입구에 서있었다. 그리고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은 그 집에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왔다. 제사장은 무장한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문 입구에 서 잇다가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고 항의를 했다. 미가의 집 중에서도 레위 소년이 머물고 있던 집은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 같으며 그 곳은 아마 미가의 신당이었을 것이다(17:5).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들은 이전에 레위 소년을 만났었기 때문에(3-6절) 그의 건강을 묻는 등 우호적인 인사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군사들로 인해 레위 소년이 놀라지 않게 안심시켰을 것이다. 문 입구에 선 무장한 600명의 단 사람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그들의 동료들이 일을 마치고 미가의 집을 나올 때까지 파수하고 있었다. 한편 이로 볼 때 미가는 어느 정도 군사력이 있는 소 부족의 부족장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사람의 정탐꾼들은 레위 소년을 잘 설득하여 동료들이 있는 문 밖으로 내보내어 함께 있게 하고 신당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1절). 한편 여기서 '들어갔다'는 말('알라')은 '올라갔다'는 뜻이다. (왕하 23:12, 렘 19:13)을 보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제단이 있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미가의 신당도 다락방이나 2층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Keil, Hervey). 여기서 '서 있었다'는 말('나차브')은 '배치했다'는 뜻도 지닌다. 이로 보아 단 자손들은 미가의 우상을 강탈하기 위해 600명의 군사로 경계를 폈음이 분명하다. 단 사람이 신당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아무 반응이 없던 레위 소년이 자기 주인의 우상들을 다 집어내는 것을 보고서야 놀라서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아마 이전까지는 단 사람들이 미가의 신을 경배하려고 신당에 들어간 줄로 그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대해 이 레위 소년은 돈으로 고용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미가의 신상에 함부로 손 댄 것을 불경하게 여기지 않고 단지 도의적으로 주인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탓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Cassel).

  레위 소년의 항위를 받은 단 지파 사람들은 그에게 잃게 말했다.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그러나 레위 소년은 기뻐하며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들고 단 지파를 따라 가고 말았다. 본서 기자는 단 사람들의 이러한 제안을 적기 이전에 벌써 17절과 18절에서 레위 소년을 '제사장'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단 사람들이 레위 소년을 문안할 때부터(15절) 이미 그를 '제사장'으로 깍듯이 예우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여기서 레위 제사장의 타락한 본성을 또다시 보게  된다. 처음에 그는 생계를 잇기조차 궁색한 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던 미가의 제안에 감격하여 한 개인의 제사장으로도 크게 만족했었다. 그리고 이 레위 소년은 미가에게서 아들과 같은 사랑도 받았었다(17:10, 11). 그러나, 단 사람들의 새로운 제안은 단순히 경제적인 충족뿐만 아니라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명예까지 부여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제안을 기쁘게 수락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번 물질에 혹했던 사람은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한 자기 욕구를 채워 줄 대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이전의 은인까지도 배반하는 법이다. 이처럼 보다 나은 조건에 미혹된 제사장은 본래 주인과의 의리와 계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가 앞장서서 우상과 종교 기물들을 훔쳐냈다. 그리고 단 지파와 동행한다. 이렇게 하여 미가의 가정을 타락시켰던 이 제사장은 이제 한 지파 전체를 잘못된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30-31).


 라. 미가의 추격(21-26)

  "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22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24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단 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과 신상을 훔쳐낸 후에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전진했다. 그들이 미가의 집에서 멀리 떠난 후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도둑 맞은 소식을 듣고 모두 모여서 단 자손을 추격했다. 그들은 단 자손에게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단 자손을 불렀다. 단 지파는 다시 라이스 땅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였는데 그것은 아마 미가와 그의 이웃들이 뒤에서 따라와 공격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조치였을 것이다(22절). 여기서 '어린아이들'('하타프')은 실족할 수 있는 '연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여자와 노인들, 그리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그리고 '물품'('케부다')은 '값진 것' 또는 '영화로운 것'을 의미한다(시 45:13). KJV은 이 말을 '탈 것'(carriage)이라고 번역햇으며, RSV는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물품'(goods)이라고 번역하였다. 일부 학자는 '케부다'라는 말이 '무거운', '힘든'이라는 뜻의 '카베드'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이 말은 "귀중한 물건"이 아니라 "무거운 짐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러한 물품들은 수레 같은 운반 수단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을 것이다. 미가는 제사장과 자기 신상이 없어진 것을 한참 후에 알고 곧장 추격대를 조직하여 단 자손을 따라갔다. 배경은 다르지만 이 장면은 마치 라반이 야곱을 추적하는 장면(창 31장)과 유사하다. 특히 둘 다 가정의 수호신을 훔쳐갔다는 점(창 31:19)어서 그러하다. 미가는 추적 길에 나선 지 얼마 안되어 단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과 물품들로 인해(21절) 빨리 진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지파 사람들은 미가가 따라오며 소리 치는 것을 보고 뒤 돌아서서 미가에게 "네가 무슨 일로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왔느냐?"고 물었다. 미가는 그들이 자기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훔쳐 갔기 때문에 자기에게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미가는 자기가 그들을 뒤쫓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고 항의했다. '모아 가지고 오다'는 말은 원래 '도움을 호소한다'는 뜻인 '자아크'의 수동태로서 '함께 부름을 받다' 또는 '함께 모이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는 말은 '우리가 너희를 부르지도 않았고 너희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왜 모여왔느냐?'는 뜻이다(Pulpit). 이것은 미가가 자신들의 뒤를 추격해 온 이유를 잘 알면서도 단 사람들이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기 위한 처사 였다. 미가는 은으로 만든 신상과 에봇, 가정의 수호인이 드라빔(17:4, 5)들을 가리켜 스스럼없이 '나의 신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치 못한 영적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단 자손은 미가에게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은 미가가 게속해서 그들에게 항의하면 단 지파 사람들이 노하여 마기를 쳐서 그의 생명과 가족의 생명까지 잃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말을 하고 단 지파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갔다. 그러나 미가는 단 지파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엇기 때문에 그들을 더 이상 쫓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서 '노한 자들'이란 말은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금방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삼하 17:8). 단 지파 사람들은 힘의 우위를 내세워 자신들이 미가의 소유물뿐 아니라 미가와 추격대 전원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고 위협하였다. 본래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이 단지 자기 손으로 만든 신상을 소유하는 것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미가(17:13)였기 때문에, 그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대적하면서까지 신상을 되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실 현세적인 복에 몰두했던 미가로서는 자신의 목숨에 대해 남다른 애착심을 가졌을 것이다.


 마. 라이스를 정령한 단 지파(27-31)

  "27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29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단 자손은 미가의 지은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서 무사히 라이스에 도착하게 되었다. 본서 기자는 라이스 거주민들을 평안한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본서 기자가 그러한 라이스 거민들을 습격한 단 지파의 잔인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만났다'는 말('보 알')은 어떤 사람을 갑자기 덮치는 것을 말한다(창 34:25). 칼날로 치며 불로 성읍을 사른 일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수 6:4; 8:19; 11:11). 단 지파는 처음 라이스를 향해 출발할 때부터 이 전쟁을 '성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10절), 라이스를 정복할 때도 이렇게 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수 19:47)에서는 '영토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본서 기자는 여기서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적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라이스 당은 본래 단 지파의 영토가 아니므로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정복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자신의 본래 기업을 차지하지도 못한 채 약한 민족을 공격하는 침략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당시 단 지파의 타락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본서 기자는 다시 라이스의 지형적 여건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라이스에 대한 단의 뜻 아니한 침략이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베드 르홉'은  '르홉의 집'이란 뜻을 가진 말이다. (민 13:21, 삼하 10:6)에 따르면 이 지명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아비 르홉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곳은 아셀 지파의 지경인 훌레 평지 위쪽에 있는 곳으로 이 골짜기를 통하여 흐르는 물은 요단 강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상종한다'는 말('다바르')은 '친밀하게 교제한다'는 뜻과 '사업상 교류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로 보아 라이스 거민들은 외부와 격리되어 있어 국가간의 외교적 친선 도모나 경제적 교류 따위를 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단 자손은 그 성읍을 빼앗은 후에 그 곳에 성읍을 건설하고 그 곳에 살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 이름을 단이라고 불렀다. 그 성읍의 원래 이름은 라이스였다. 이곳 라이스는 가나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단이라고 칭한 후부터는 이스라엘의 전 영토의 경계를 말할 때에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란 말을 쓰게 되었다(20:1). 여기서 '브엘세바'는 팔레스틴 최남단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기업이다(수 15:28). 한편 이때부터  실제로 단 지파는 단 지역의 사람과 소라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로 분리되게 된 듯하다. 이후로 성경에선 이들 지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든데 역대기에도 단 지파에 속한 인물에 대해서는 한 명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Cassel).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도 열 두 지파 가운데 단 지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7장). 결국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고 이분되었던 단 지파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족보에서조차 사라진 셈이다. 대개의 학자들은 그 원인을  단 지파의 거족적인 우상 숭배 탓으로 이해하고 있다. 단 자손이 그 곳에 자기를 위해 그 새긴 신상을 세웠다. 그리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들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그들과 함께 있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새긴 신상은 단 자손에게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요나단'은 본래 미가의 집 제사장이었으나 후에 단 지파의 제의를 받고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14-20절)이라는 데에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없다(Wycliffe, Keil & Delitzsch). 그런데 그 외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므낫세'로 읽도록 모세라는 히브리어 문자 사이에 작은 문자 '눈'을 삽입하여 므나쉐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KJV에서는 본절을 '므낫세의 손자'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탈무드나 70인역(LXX), 수리아역 등을 볼 때 이것은 분명히 '모세의 아들'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Keil). 히브리어 성경 필사 자들이 이렇게 '모세'를 '므낫세'로 읽도록 '눈'을 삽입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1) 모세의 이름을 신성시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표시하여 불경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Wycliffe). 2) 단 지파를 우상 숭배 죄로 몰고 간 요나단을 모세와 같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포로로 잡혀갈 때란 말은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이 바벨론 포로 유수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한 앗수르 포로 유수로 생각한다(왕하 15:29;17:6;25:8). 그러나 유대인 학자 데이빗 킴치(David Kimchi)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엘리 시대 때 블레셋이 법궤를 탈취해 갈 때(삼상 4:17)로 생각한다(Keil, Hervey, Lange). 그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일리가 있다. 1) 31절에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라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로의 회막은 여호수아 때에 세워진 것으로(수 18:1) 사무엘 때까지 그곳에 있었고(삼상 1, 3장;4:3) 사울 때에는 놉에(삼상 21장), 그리고 다윗 때에는 기브온에 있었다(대상 16:39;21:29). 2) 미가의 새긴 우상이 앗수르의 침략 때까지 계속 해서 그곳에 있었다면 분열 왕국 시대에 여로보암이 그곳에 다시 금송아지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이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어디까지나 미가의 전통을 따라 행한 것이다(Keil). 3) 이스라엘의 기강이 바로 잡힌 사무엘, 다윗, 솔로몬 시대에까지 한 지파 전체가 그러한 우상 숭배를 계속하도록 용납되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사로잡힌 날'이란 블레셋의 침략으로 인해 법궤가 빼앗기고 이스라엘이  내외적으로 연약해졌을 때를 가리칸다고 볼 수 있다. 본문의 기록은 본서가 사무엘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해 준다(Goslinga). 왜냐하면 회막이 엘리 시대까지는 실로에 있었으나 블레셋에 의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이후부터(삼상 4:21, 22) 실로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무엘에 의해 실로의 회막이 라마로 옮겨졌을 것이라 보고 있으나(삼상 7:17) 확실치는 않다(Hervey).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는 성막이 보관되어 있던 실로였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정한 절기 때에나 기타 개인적으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에 실로에 모였다(삼상 3:21). 이러한 관습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한 것으로서,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동일한 언약 공동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솔로몬 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 실로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심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단에 신상을 세우고 섬긴 것은 언약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매우  가증한  죄악이었다(수 22:16).

                                  * 요약 및 교훈 *

1. 사사 시대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다.

2. 단 지파는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3. 이때의 이스라엘 종교는 여호와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가나안 종교와 혼합된 종교였다.

4. 이때에 각 지차는 레위인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살길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 때의 용교인의 모습은 돈과 명예를 따라 움직이는 삯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5. 최초로 신상을 만든 미가는 어머니의 것을 훔친 도둑이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놓으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6. 단 지파가 미가로부터 훔친 신상은 단에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단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게 되었다(왕상 12:29-여로보암).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는 12 지파 중에 단 지파가 사라지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적 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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