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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상

[스크랩] 열왕기상 (16 : 1~34)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14

열왕기상 16장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

ㅇ하나니의 아들 예후.---- “예후”란 이름은 “그는 여호와이시다”란 뜻이다. 그런
데 본절의 예후(Jehu)는 오므리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북이스라엘의 10대 왕 예후와
는 同名異人)이다(왕하 9:2). 한편 예후의 아버지 하나니(Hanani) 는 유다 왕 아사
의 실책을 경고하다 옥에 갇힌 인물이다(대하 16:7-10). 그리고 그의 아들인 예후는
본장에서처럼 바아사를 책망했을 뿐 아니라 여호사밧 왕을 아합왕과 연합한 일로 책
망한 자이다(대하 19:2).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예후 부자(父子)가 모두 하나님의
신실되고도 용맹스러운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ㅇ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 유다의 선자자인 예후가 이처럼 이스라엘 왕 바아사
(Baasha, 15:28-34)를 책망한 것은 당시 정세(15:32)로 보건대 매우 이례적인 사건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당시 예후의 예언 속에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끝없는
관심과 배려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남북 왕국으로 분단되기는 했으나 남유다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또한 동일하게 하나님의 언약 속에 포함된 백성이었으므로 하
나님께서는 남왕국의 선지자 예후를 통해 북왕국에 대한 예언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만든 어떠한 인위적 방벽이 굳건하더라도 언제 어디
서든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렘 3:12).

2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

ㅇ내가 너를 진초에서 들어 ---되게 하였거늘 ---- “진토”는 “회색이 되다”/ “빻
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누자적으로는 “티끌”, “흙”의 뜻이겠으나 여기서는 사
회적으로 “비천한 신분”을 의미한다. 14:7의 여로보암에 대한 언급이 “백성 중에
서 들어 주권자가 되게하고”인 것과 비교하면 이는 훨씬 비하(卑下)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본절은 바아사의 출신 신분이 매우 비천하엿음과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상기시켜 준다. 즉
바아사는 왕통을 이은 자도 아니었으며 큰 지파 출신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
로보암의 집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14:14) 왕이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이 같은 손길(마 10:29-31)을 발견하였더라면 배
은 망덕한 여로보암의 전철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H. Austsl).
ㅇ주권자 ---- 이에 해당하는 “나기드”는 “어떤 것을 사람 앞에 눈에 띄도록 높이
두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즉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탁월한 인
물을 가리킨다. 한편 바아사가 비천한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이스라엘의 주권
자가 된 것은 물론 그의 용맹이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하나 그 용맹은 궁국적으로 하
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좇아 바아사에게 주신 것이다.
ㅇ격동하였은즉---- 15:30 주석 참조.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ㅇ쓸어 버려 --- 이에 해당하는 “바아르”는 본래 “불태우다”, “소멸하다”는 뜻
이다. 특히 이는 “불태워 완전히 연소시키는 것”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사악한 자를 징벌하는 하나님의 격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
다. 한편 이후에도 선지자들은 반역한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징벌을 묘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예가 있다(사 30:27 ; 렘 7 :20 등).
ㅇ여로보암의 집같이 되게 하리니 ---- 앞서 2절이 바아사의 죄를 우상 숭배 곧 하나
님께 대한 배은 망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 비해 본절은 이제 그에 상응 하는 하나
님의 징벌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바아사의 가문을 “여로보암의
집같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내용은 다음 4절에서 언급되
고 있으니 참조하라.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ㅇ죽은즉 개가 먹고.---- 이는 여로보암 가문을 향한 저주로 사용�던 말(14:11)
과 동일한 문구로써, 비참한 말로는 물론 사후에도 치욕을 면치 못할 바아사의 운명
에 대한 예언이다. 그런데 바아사가 여로보암이 지은 것과 같은 동일한 죄(14:9)에
빠진 이상(2절) 이처럼 여로보암이 받은 형벌과 똑같은 형벌을 받게 됨은 지극히 마
땅하다. 한편 이렇듯 엄정하고 단호한 공의의 심판은 오늘날 일시적 탐욕이나 영달
에 눈이 어두워 불의와 영합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게 될 것이다. 따라
서 성도들으 ㄴ잠시 오욕의 낙을 누리기 보다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영예로운 고난
을 택하는 것이 마땅하다(히 11:25).

5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바아사의 ----권세. ---여기서 “권세”는 강력한 왕권(王權)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바아사가 용감하고 전투적인 인물임을 나타내는 단어로 이해하
기도 한다(Ewald). 그러나 앞서 유다 왕 아사에게도 같은 단어가 적용되었음을 볼
때 이는 본래대로 통치에 있어서 강력하고 힘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단어로 봄이 타
당하다(Keil & Delitzsch).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23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스라엘왕 역대 지략.--- 14:19주석 참조.

6 바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디르사. --- 세겜(Shechem, 12:25)에 이어 두 번째로 북이스라엘의 수도(首都)가 된
왕도(王都)이다. 세겜 북동쪽 11km지점에 위치 하였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
였다. 14:17 주석 참조.
ㅇ그 아들 엘라. -- “엘라”는 상수리나무 비슷한 어떤 나무의 명칭이면서(Guthrie,
Jr), 또한 과거 다윗과 골리앗이 싸운 계곡의 지명이기도 하다(삼상 17:2, 19). 이
곳은 깁브돈 부근의 인접 지역인데 깁브돈은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자신의 왕조를
창건한 곳이다(15:27,28). 이로 볼 때 아마도 바아사는 그 지역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엘라(Elah)로 지은 것 같다(Hammond).

7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하사 바아사와 그 집을
꾸짖으심은 저가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
손의 소위로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며 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

ㅇ본절은 1, 2절이 별 의미없이 반복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절은 2절에서
생길지도 모를 오해를 막으려고 추가된 해설적 성격의 절이다(Bahr, Hammond, Keil).
이때 오해란 바아사가 하나님깨ㅔ로부터 소명(召命)을 받아 여로보암의 집을 멸하엿
다고 생각하는 오해이다. 그러나 본절에 분명히 나타나듯 바아사는 단지 이기적 동기
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즉 본절은 바아사가 우상 숭배 죄악을 저질었을 뿐 아니라
여로보암 일족을 살해한 일도 고발하고 있다(“또 그 집을 �음이더라”). 다
시 말해 바아사가 여로보암 왕조를 전복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
의 야심과 정권욕(政權慾) 때문이엇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아사를 도구
로 삼아 패역한 여로보암 가문을 징계한 것일 뿐이다.(15:25-30).
ㅇ소위(所爲). ---- 이에 해당하는 “마아쉐”는 “행하다”, “만들다”에서 온 말이
다. 이는 물건을 만드는 것과 관련해서는 “기량”, “솜씨”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외에는 윤리적 행위를 지칭 하는데 대개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출 23:24 ;
스 9:13 등). 여기서도 바아사가 저지른 부당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8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륙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위에 있으니라

ㅇ유다 왕 아사 제 이십 륙 년에. --- 아사의 즉위를 B,C.910년경으로 볼 때 이때는
곧 B.C.886년경이다.
ㅇ엘라가 ---이년을 위에 있으니라. -- 엘라는 아사 제 27년째에 자신의 군대 장관
시므리에게 살해당하고 만다(9,10). 따라서 엘라는 만 2년도 채 통치하지 못하였음
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앞서 나답이 당한 것과 똑같은 재난이라 할 수 있다(15:28).

9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궁내 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복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장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ㅇ마시고 취할 때에. --- 15절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때는 북왕국의 군대가 깁브
돈에 출정하여 공략 중에 있었던 때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점에 왕이 대싱의 집에서
연회(宴會)를 열고 있었다는 것은 뭔가 방탕한 인상을 준다. 더구나 당시 신하의 향
응(響應)를 받았다는 품위에 어긋난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Rawlinson).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엘라의 인품상 어떤 결점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신복 시므리의 역심
(逆心)도 어느 정도 어린 면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 즉 그는 내심 엘라를 왕으로서는
모자라는 인물로 비웃었을 수 있다.
ㅇ신복---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 성경에서 시브리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이름도
출신 지파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 본절에 의하면 그는 오므리(Omri)와 함
께 군부 내의 실력자인 점을 알 수 있다. 즉 이제 시므리는 북왕국 병거대의 절반을
이끄는 군대 장관인 것이다. 그런데 본서 기자가 이러한 시므리를 언급함에 있어 굳
이 “심복”이란 단어를 덧붙이고 있는 의도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즉 솔로몬의
신복이던 여로보암이 반역해 세운 북이스라엘 왕국이 줄곧 신복의 하극상으로 인해
오욕(汚辱)의 역사를 되풀이하였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Hammond). 한편 시므리는 또
한 사람의 군대 장관인 오므리가 깁브돈 출정 중에 있을 때 왕궁 수비를 맡고 있었던
것 같다(15-17절). 그리고 그때 왕이 술에 취하자 정권 탈취라는 야심적 기회를 포착
하였을 것이다.

10 들어가서 저를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이라

ㅇ쳐죽이고. -- 이 단어가 연상시켜 주는 잔혹성은 3절의 심판 예언 중 “쓸어 버려”
가 주는 참담한 이미지에 상응한다. 즉 엘라가 당한 수치스럽고 비참한 죽음은 하나
님의 준엄한 심판 선고와 그림처럼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ㅇ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 년.--- 이때는 곧 엘라 즉위 이듬해인 B.C. 885년경이다.
8절 주석 참조. 그런데 이처럼 무력으로 왕위를 빼앗은 자의 아들이 통치 2년을 넘
기지 못하고 피살되는 사례는 엘라에 이어 북왕국 역사에서 두 번이나 더 발생된다
(왕하 15:13,14, 23-26).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그 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이되 남자는 그 족속
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ㅇ남자. --- 이에 해당하는 “솨탄”은 “벽을 향해 소변보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
실 서서 소변보는 것은 여자와 구별되는 남자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ㅇ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남기지 아니하고. --- 반역으로 차지한 왕권을 굳히기
위해서 시므리가 한 첫조치는 이처럼 앞서 바아사가 행한 것(15:29)보다 더 광범위한
학살이었다. 즉 시므리는 엘라의 일족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까지도 몰살시켜 버
린 것이다. 물론 본절에서 가리키는 “족속”은 엄밀히 (1) 유산 상 속의 권리 및
(2) 피의 복수 의무를 지닌 친족들을 가리킨다(Hammond, 레 25:26 ; 민 35:19 ; 룻
2:12,13 등), 따라서 이들은 언제든지 후환이 될 가능성이 짙은 대상이다. 그러나 시
므리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수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하려고 엘라의 친구들까
지도 학살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정당치 못한 권력 찬탈은 항상 그
에 따른 불안감을 갖게 되고 따라서 온갖 자구책(自救策)을 강구하게 마련이다. 그러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시므리는 누구보다도 단명한 7일 천하의 찰나를 누렸을
뿐이다. 따라서 이는 곧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가
(시 127:1)는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일례이다.

12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후로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말씀 같이 되었으니

ㅇ멸하였는데. --- 이에 해당하는 “솨마드”는 “파괴하다”, “진멸시키다”는 뜻이
다. 이는 곧 전쟁이나 대량 학살과 같은, 갑작스러운 큰 재난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재개 복수나 하나님의 심판을 내용으로 하는 문맥에서 사용된다. 본절에서도
시므리가 바아사 왕가를 멸절시킨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그대로 실현된 경우
이다. 즉 이는 불로 태워 재로 만들 듯이 바아사 일족에게 심판을 내리시갰다는 예언
이 성취된 것이자. 이처럼 하나님의 입에서 한 번 발하여진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고
야 만다(사 55:10,11).

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 아들 엘라의 죄를 인함이라 저희가 범죄하고 또 이스
라엘로 범죄케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ㅇ그 헛된 것. -- “헛된 것”에 해당하는 “하벨”은 “무가치한 것”을 뜻한다. 이
는 본래 “공연한 헛수고”나 “ㅂ무의미한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우상(偶像)을
가리키고자 사용 되었다(전 2:11 ; 6:7 ; 8:10 ; 사 49:4). 즉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섬길 수밖에 없는 “거짓 신”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실상 거
짓 신들을 섬기는 일이란 참된 신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채 미망(迷妄)을 헤매는 “헛
된 것”이 아닐 수 없다.
ㅇ격동하였더라. ---- 이는 이미 앞서 2절에서 언급된 단어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어
와 관련, 열왕기에서 “우상 숭배=하나님의 노를 격동케 하는 죄”라는 공식(公式)을
계속해서 찾아 볼 수 있다(15:30 ; 21:22 ; 22:53 ; 왕하 17:11 ; 23:26) 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30 주석을 참조하라.

14 엘라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


ㅇ남은 사적. -- “사적”에 해당하는 “다마르”는 일명 “행적”으로도 번역되는 단
어이다(14:19). 그런데 본서 기자가 엘라의 여타 행위들에 대하여서 일절 침묵하고
있음을 상대적으로 엘라의 죄악(13절)을 보다 두드러지게 고발해 주는 효과를 띤다.

15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ㅇ칠 일 동안 왕이 되이라. --- 본문 후반을 참고하면, 시므리가 1주일 동안이라도 재
위(在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실 깁브돈 출정군이 디르사로 회군(回軍)하는 데 1주일
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군한 군대는 마침내 시므리의 왕 행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시므리의 7일 천하는 3일 천하로 끝난 과거 우리나라의 갑신 정면
(1884년)을 생각게 해주다. 그런데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처럼
단명(短命)한 것은 백성들이 그의 반란에 동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16-18절).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시므리가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아
마도 그 까닭은 시므리가 매우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11절).
ㅇ때에 백성들이.... 있더니. ---- 수도 디르사의 왕궁에서 왕관뺏기 게임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 이처럼 백성이 전쟁터에 있는 동안 향연
을 벌인 엘라의 모습이 무책임하고 경박한 왕권을 상징하듯(9절), 백성 부재의 현장
에서 벌어진 왕위 쟁탈전은 백성과 무관한, 백성을 소외시킨 정통ㅇ성 결여의 권력
다툼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ㅇ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 이스라엘은 일찍이 나답 왕 때에도 깁브돈
을 공격한 바 있는데 그때 나답은 바아사에 의해 살해 되었다(15:27). 그런데 그때
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또다시 깁브돈을 공략 중이며 이 기간 동안 시
므리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18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느끼게 된다. (1) 동일한 범죄에 대한 동일한 심판이 동일한 장소와 관련
하여 일어났다는 것(13절 ; 15:25-30)은 하나님의 심판의 오의(奧義)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2) 그리고 이스라엘의 내란은 불레셋에게 유익을 주었다는 점이다. 한편 솔
로몬 당시, 블레셋 지경(地境)은 이스라엘의 판도 내에 있었다(4:21). 그러나 솔로몬
사후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이탈하였다. 그러기에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실
지(失地)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블레셋 공략을 위한 전초 기지인 깁브돈을 주
요 공격 목표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16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
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매

ㅇ진중(陣中) 백성들. ---- 이는 본절 하반부와 다음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무리”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 진중 백성들이란 깁브돈 출정군을 가리키
니 “이스라엘 무리”라는 호칭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이들을 “이스라엘 무리”로 호칭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까닭
이 있을 것이다. (1) 오므리가 비교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범위한 추종을 얻은 인물
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실제로 이스라엘의 차기 주권자가 된 인물 역시 오
므리임(23절)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ontgomery).
ㅇ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시므리의 왕위 찬탈 소식에 접한 백성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엘라가 통치 기간 중 민심(民心)을 샀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시므리
및 그의 즉위 과정이 백성의 수긍을 받지 못하였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이는 시므리
의 왕위 찬탈 자체가 대역무도한 불법이었을 뿐 아니라 엘라 가문과 그친척, 친구들
에 대한 시므리의 난폭ㅏ고 잔혹한 살해 행위(11절) 또한 백성들의 혐오감
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ㅇ진에서... 왕을 삼으매. - --- 오므리(Omri)는 로마사에서 자주 보듯 전댕터에서 군
대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Mattew Henry). 따라서 그가 명실 공히 북왕국 전체
의 왕으로 군림하기까지는 좀더 많은 세월이 필요 하였다. 즉 오므리는 시므리를 제
거하고 난 뒤에도(17,18절) 디브니(Tibni)라는 경쟁자와 약 5년(B.C. 885-881년)간
의 내전을 치뤄야 했던 것이다(21-23절).

17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
워쌌더라

ㅇ이에...에워쌌더라. --- 16절과 본절에 의거할 때 우리는 시므리의 7일간 재위 기간
(15절) 동안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즉 (1) 시므리의 모반 소식이
깁브돈 출정군에게 전달됨, (2) 진중에서 백성들이 오므리로 왕을 삼은 후 디르사로
회군함. (3) 오므리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궁에서 농성하는 시므리군을 격파
함 등이다. 이상에서 보듯 오므리의 행동은 매우 민첩하고 신속했다. 그리하여 시므
리는 미처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들이닥친 오므리군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이로
보아 오므리는 군사적으로 유능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비록 열왕기 본문은 그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 나타나
있듯 실상 오므리는 재위 기간 중 모압을 정복하는 등 많은 군사적 성공을 거둔 것
이다(Maclean).

18 시므리가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
서 죽었으니

ㅇ왕궁 위소. --- “위소”는 “높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이는 왕궁 내에
서도 특별히 높은 곳에 있는, 최후의 요새와 같은 처소일 것으로 보인다.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 수리아역(Peshitta)은 본절과 관련, 오므리군
이 공격차 왕궁 위소에 불을 놓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은 명백히
시므리의 자살을 말하는 것이다. 즉 디르사 성이 함락되자 시므리는 최후의 도피처
인 왕궁 위소로 도피했으나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오므리 군대를 목도하고서는 절망
끝에 그만 불을 놓아 자살하고 만 것이다. 사실 시므리는 자신이 잔혹한 유혈극을
벌였던 인물이었으니(9-11절) 왕권 쟁탈전에서의 자비란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자살로 최후를 마친 시므리에게서 우리는 철두철미
자의성(恣意性)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를 본다. 즉 그가 추구한 왕권은 스스로의 권
력욕에서 기인했을 뿐 하나님께로부터 봉사의 직분을 받았다는 자각의 흔적이 전혀
없다. 15절 주석 참조. 따라서 신정 정치의 이상을 품은 열왕기 사가(史家)가 그런
시므리에게 조금치의 정통성도 인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시므리와 오십
보 백 보의 인물들이 들락날락 했던 북왕국 왕권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19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
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였더라

ㅇ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 혹자는 본절을 시므리가 7일 천하(15절) 동안 우
상 숭배를 행했음을 비난하는 절이라 단정한다(Bahr). 그러나 “여로보암의 길”이
라는 범주에는 우상 숭배와 함께 주인을 배반한 되가 포함된다(12:19). 그러므로 본
절에서 시므리에게 적용된 “여로보암의 길”은 하극상(下剋上)의 범죄에 보다 강조
가 있다 하겠다. 훗날 이세벨도 요람 왕을 죽인 예후에게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
여 평안하냐”는 말을 하고 있다(왕ㅇ하 9:31). 이처럼 당시 시므리는 “주인을 죽
인 자”라는 고착된 이미지로 보통 명사화될 정도였다. 그러므로 본절 역시 시므리
의 그런 범죄를 지적한 경우로 보는 것이 옳다.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 모반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
였느냐

ㅇ시므리의 남은 행위......기록되지 아니 하였느냐. ----- 본절은 이스라엘 열왕의
결말 공식(5,6,14,27,28절 ; 14:19, 20 ; 15:31)에맞추어 시므리의 결국을 마무리하
려 애쓴 흔적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ㅔ는 “남은 사적” , “무
릇 행한 일”, “열조와 함께 자매” 등의 상투적 어구가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재
신에 “그 모반한 일”이란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이미 19절에서 언그하였듯
시므리의 행적이 모반자로 규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왕조 실
록은 이러한 시므리의 역모(逆謀)나 7일 천하의 행적에 대하여 본서보다 더 상세히
기록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
로 왕을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ㅇ기낫의 아들 디브니. --- 본문을 제외 하고는 디브니(Tibni)에 대한 성경상의 기록이
없다. 그런데 깁브돈 출정군을 이끌고 돌아와 시므리를 격파한 오므리(15-18절)와 경
쟁하는 일은 어는 정도 군사력에 자신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
개 디브니를 당시 엘라*8,9절)의 세 군대 장관(시므리, 오므리, 디브니) 중 한 명이
었을 것으로 추측한다(Ward). 한편 디브니의 경우 생략되어 있다(16,17,22,23절). 이
점에 착안하여 디브니는 이스라엘 명문가의 후손이나 오므리는 정통 이스라엘의 혈통
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는 자도 있다(Maclean).

22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
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ㅇ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본절이 강조하는 바는 이제 북왕국이 약
육강식의 무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즉 이제 누구든지 힘만 있으면 왕이 되는 판
국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정 정치의 이상으로써 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제사장적 승인, 국민의 동의(1:38,39) 등이 일절 무시 되고 대신에 무력에
의한 힘- 제일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과거 여로보암이 형식적이긴 해도 자신의
왕권을 여호와 종교와 접목시키려 한 것(12:25-33)에 비하면, 이러한 현상은 불법의
노골화로써 일종의 위헌(違憲)적 현상이다. 한편 깁브돈에서 선포한 오므리의 왕권
(16절)은 횃수로 5년(아사 27년-아사 31년)간의 내전을 거친 뒤에야 비로서 확정되
었다(23절).

23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
며 디르사에서 육년동안 치리하니라

ㅇ본절의 연대 문제는 얼핏 매우 흔란스럽다. 자체내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
이다. 즉 본절은 오므리의 즉위 연대를 아사 31년(B.C. 880년경)으로 말하면서도 재
위 기간은 12년(아사 27년0아사 38년)으로 말한다. 이것은 오므리의 공식 즉위 연대
를 그가 디브니를 격파한 시점부터 잡은 반면(22절) 재위 기간은 깁브돈에서의 옹립
시점(16절)부터 잡은 탓이다. 여하튼 깁브돈을 기점으로 오므리 왕조가 출범하였는
데 오므리에서 여호람에 이르기까지 오므리 왕조의 총 통치 기간은 44년간(B.c.
885-841)이다.

24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
더라

ㅇ은 두 달란트로......사마리아 산을 사고. ----- 1 딸란트(Talent)를 대략 34kg으로
봄으로 은 두 달란트는 68kg 정도이다. 그런데 당시 은의 주가가 아무리 높았다 하
더라도 금보다는 낮았을 터이니 오므리가 사마리아 산을 구입함에 있어 비싼 가격을
치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점은 오므리가 이 산을 매입한
것이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였다는 점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토지는 하
나님께 속한 것인 동시에 각 백성즐이 영원한 기업으로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정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은 토지를 영구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였다(레
25:23-28). 물론 다윗이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을 산 경우가 있기는 하나(삼하 24:21),
오므리의 rluddn와는 그 성경이 달랐다. 즉 아리우나는 이방 족속인 여부스 
람이었으며, 그의 타작 마당을 다윗이 구입한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종교
적 목적에서 그리하였다. 한편 오므리의 불법적 토지 매입은 드의 아들 아합에게도
영향을 준듯하다. 아합은 기업으로 물려 받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취하였다
(21:1-16).
ㅇ사마리아. ---- 사마리아(Samaria)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67km. 지중해 동쪽으로
약 40km 가량 떨어진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의 한 언덕에 위치한 성읍이다(Beek). 이
곳은 북왕국의 전(前) 수도였던 세겜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ㅇ그 산위에 성을 건축하고. --- 당시는 오므리가 디브니를 물리치고 공식적으로 왕위
에 오른지 2년 째 되던 해엿다. 그때에는 정국(政局)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으므로 오
므리는 새로운 왕궁 건축과 수도 정비 사럽에 온 신경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
서 사마리아성 건축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1) 여로보암에 의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은 시므리에 의해 불타 버렸고(18절), 수도 디르사
또한 그 동안의 극렬한 전투로 말미암아 형편없이 파괴되었을 것이기 때눈(17,22),
(2) 새로운 왕조에 걸맞는 새 도읍을 정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3) 사마리아의 지형
학적 우수성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대에 북왕국을 공격한 여러 나라의 군대가
끝내 사마리아는 점령하지 못했고, 강대국 앗수르조차도 장기적인 포위 공격 끝에야
함락시킬 수 있었던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20:1-30 ; 왕하 6:24 ; 18:9,10).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


ㅇ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 26절로 미루어 보아 오므리의 죄악은 무엇
보다도 여로보암의 경우와 같이 우상 숭배의 죄악인듯하다(12:28-30). 그런데 본절
에서 보듯 오므리는 이전 누구보다 더욱 악하게 행했다고 고발당한다. 하지만 그 구
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걸명이 없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합이 시돈의 공주 이세벨
과 결혼하고 우상 숭배에 열을 올린 것(29-33)을 보면, 이미 오므리 시대에 이방과의
교류 및 우상 숭배의 정책적 장력가 있었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다.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ㅇ헛된 것. --- 13절 주석 참조.
ㅇ격발케 하였더라. --- 또는 “격동시키다”로도 번역되는 원어 “카아스”는 특히 자
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 분노와 흥분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30 주석을 참조하라.

27 오므리의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오므리의....그 베푼 권세. ----- 비록 열왕기는 오므리를 종교적 관점에서 악한 왕
으로 간단히 치부하지만(25,26절) 으므리는 실로 강력하고 유능한 통치자였다. 즉
(1) 오므리가 모압을 정복했다고 기록된 모압 비문(Moabite stone)의 발굴, (2) 앗
수르 왕 살만에셀 2세(Sharmaneser Ⅱ)의 기록에 이스라엘을 언제나 오므리의 집으
로 칭한 사실, (3) 이 시기에 유다와의 효과적인 외교로 내전이 없었다는 점 등에서
오므리의 진면목은 충분히 발견된다(Maclean 등). 그런 까닭에 그에 대한 상세한 내
용은 생략되어도 “오므리의 ...베푼 군세”라는 어구가 첨가되고 있는 것이다.

28 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사마리아에 장사되고. ---- 왕들이 수도(首都)에 자기 묘실이 있어 죽고난 후 그곳
에 매장되는 것은 관례이다(Hammond). 그러나 앞서 유혈 쿠테타와 내전 등르로 인해
빈번히 정권이 교체된 북왕국의 험난한 역사를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평안한 죽음이
다. 한편 여기서 “장사되고”는 “묻다”, “매장하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오
므리의 매장은 굴이 아닌, 땅에 묻는 형태로 이루어진 듯하다.

29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ㅇ아사 제 삼십 팔 년에. ---- 이때는 곧 B.C. 874년경이다.
ㅇ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 “아합”이란 이름은 “아버지의 형”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Maclean). 그런데 혹자는 이 이름의 뜻을 “아버지의 형제”로 풀
어 아합은 부친 오므리와 마찬가지로 불경한 인물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Hammond). 만일 이 이름이 부친에 대한 존경 때문에 부친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라면, 오므리가 거둔 성공적 업적을 본받고자 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실제로 아합도 부친 못지않게 군사, 외교면에서 유능한 통치자였던점
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열왕기의 종교적 관점으
로 볼 때 아합은 부친 오므리보다 더 심각한 반신앙적 인물이었을 따름이다(30절).
ㅇ이십 이 년을....다스리니라. --- 아합의 재위 기간은 B.C 874-853경이다. 이 무렵
북왕국 주면 정세는 오므리 당시의 기본 구도와 큰 차이가 없다. 즉 아람(Aram)의
위협에 대해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시돈(베니게)과 동맹하여 대립하는 한편, 유브
라데 동편의 앗수르의 증가하는 압력에 대해서는 일단 대립을 지양하고 관망하는 양
상을 띤다. 따라서 이러한 일시적 안정 정세의 추이(推移)는 북왕국의 종교에도 영
향을 끼쳤는데 곧 아합 이하 모든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쉽게 우상 숭배 죄
에 물들고 만 것이다(31-33절 ; 18:21).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ㅇ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을 더욱 행하여. ---- 이처럼 아합은 이전의 열왕보다
더한 극도의 혹평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이전의 왕들이 우상 숭배를 사사로이 행했
을지라도 아합처럼 공식 제사에 이방 종교를 끌어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데 아합이 타락하게 된 데에는 시돈 왕녀 이세벨과의 결혼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
다(31-33절).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
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벧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ㅇ가볍게 여기며. -- 원문 “와예히 하나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시시하게 보며”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합 왕은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정도는 죄
로 생가지ㅣ도 않을 정도로 완악한 심령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온갖 극악ㅎ산 범행을 저지르고서도 하들 죄책을 느끼지 않는 화인
(火印) 맞은 양심의 소유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한 나름대로 설정해 놓은 몇몇 윤리
적 계율을 어기지만 않으면 하등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인 양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인류를 뒤덮고 있는 죄악의 실체와 그 치명적 심각성에 대해 밝
히 지적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해방되게끔 하는 유일한 해결책 또한 명확히 제시하
고 있다(롬 3:9-18 ; 6:18 ; 엡 2:1 ; 골 1:14).
ㅇ시돈 사람의 왕. ----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Phoenicia)의 두 도시 국가였으나,
시돈이 더 오랜 항도(港都)였기 때문에 페니키아 전체의 대명사로도 불리운다. 즉
두로 왕이 시돈까지 지배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를 “시돈 왕”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기에 두로 왕 히람 2세도 “시돈 왕”이라 불리운 적이 있다. 한편, 오므리는
아합을 페니키아 왕의 딸 이세벨(Jezebel)과 결혼시켰다. 이스라엘과 페니키아 사이
에 맺어진 이러한 관계는 비록 정치적으로는 편리했지만 결국 그것은 이스라엘 속에
바알 숭배를 들여 놓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영적으로 치명적인 것
이었다. 두로 또는 페리키아 신은 바알 멜가트(Ball Mrlgart)라 불리우는데 이 신은
가나안의 더 오래된 신인 바알과도 일치한다.
ㅇ엣 바알. --- “엣 바알”은 “바알이 그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엣바알(Ethball)
은 원래 아스롯 신전의 제사장이었는데 펠레스(Phe;es) 왕 (히람의 후손)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다(Come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Ⅲ, p.228).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32년간 통치 하다가 68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이세벨의 극성스럽고 잔인한 성품(19:2)은 이러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
된다.
ㅇ이세벨. -- 이 이름의 정확한 뜻은 모르나 우가릿 본문(Ugarit text)을 참조할 때
바알을 가리키는 “즈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엣바알의 딸 이세
벨은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 임물이다. 즉 전제 궂주적 권력욕이 대간함과 동시에
바알 숭배에 극성스러우리만치 충성했다는 점이다(Harver).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유다 왕 여호람과 혼인하여 훗날 남왕국의 여왕이 된 이세벨의 딸 아달랴(Athaliah)
에게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왕하 8:18).
ㅇ아내를 삼고,---- 이는 곧 시돈과 이스라엘의 동맹 관계를 위한 정략적 결혼이다.
그런데 이 동맹은 정통적 우호 관계나 상업적 이익 외에도 당시 벤하닷(Benhadad)이
이끄는 아람 세력(20장)에 공동 대처키 위한 것이다(Maclean). 29절 주석 참조. 한
편 이세벨은 마치 열정적 선교사처럼 이스라엘의 신을 바알로 대치하려 한 듯하다.
아합이 사마이아에 바알 신당을 세우게 된 것도 이러한 이세벨의 극성 탓인 것으로
여겨진다.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ㅇ사마리아에..쌓으며.------ 이로써 이제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가 바알 숭배의 중
심지가 된 셈이다(Gates). 이 점을 여호와의 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과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한편 “사마리아에 건축된 바알의 산당”은 아직
까지 그 흔적조차 발굴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산당은 아합의 궁전의 일부에 속
한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발굴자의 보고에 따르면 아합 궁전은 팔레스틴에서 발굴된
어느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고 한다.

33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ㅇ아세라 목상. --- 아세라(Asherah)는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숭배된 풍요의 여
신이다. 초기에는 아세라와 아스다롯(Ashtaroth)이 동일한 신으로 오해되었으나 후
대의 연구 결과 서로 다른 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4:15
주석을 참조하라.
ㅇ심히...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 ---- 여기서 “심히”에 해당하는 원어
는 “야사프”라는 동사이다. 이는 “더하다”, “증가시키다”는 뜻이다. 즉 아합
의 행위는 이전 왕들이 하나님을 분노케 한 것보다 더욱 분노를 증가시키는 행위였
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처럼 여호와 앞에 범죄하여 그분의 노를 격발시킨 결과 아합
과 이세벨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22:25). 즉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대로
(21:23,24) 아함의 피는 개들의 먹이가 되었으며(22:38), 이세벨은 예후의 창에 찔
려 머리와 손, 발을 제외하고 전부 개들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왕하 9:33-37). 이
렇듯 이들의 참혹한 죽음은 자업 자득(自業自得)이었음과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의 결과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마지막 심판의 날에 패역하
고 완고한 무리들에게 임하게 될 영원한 형벌은 이보다 더욱 비참할 것이다(막 9:
48,49).

34 그 시대에 벧엘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
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ㅇ그시대에. ---- 이에 해당하는 “베아마유”는 “그의 날들에”(in his days)란 뜻
이다. 그런데 이는 문맥상 “그의 시대에”로 번역됨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KJV와
RSV(“그의 시대에”), NIV(“아합의 때에”), Living Bible(“그의 통치 동안”),
공동 번역(“아합의 다스리는 동안”) 등의 번역도 비교적 적절함을 알 수 있다.
히엘....스굽을 잃었으니. --- 여리고(Jericho)는 본래 베냐민 지파에 배당되었던
땅이다(수 18:21). 그런데 10지파의 반란(12:16-20)으로 이스라엘 왕국에 속하게 되
었으며 이후 북왕국의 국경 성읍이 되었다. 아마도 아합(Ahab)은 이 여리고 성읍을
재건함으로 요단강을 가로지르는 길목을 장악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히엘(Hiel)
은 이 건축 사역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엘은 여리고를 재건하는
도중 두 아들을 잃고 만다. 이는 곧 일찍이 여호수아가 발(發)한 경고(수 6:26)를
무시한 탓인데 당시의 예언이 약 5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문자 그대로 성취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겨기서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 일획도 어김없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사싱(삼상 15:29 ; 마 5:18)을 재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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