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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상

[스크랩] 열왕기상 (14 : 1~3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14

열왕기상 14장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ㅇ그 때에 - '그 때에'는 13장 말미의 '여로보암의 범죄 행위'(13:33,34)와 본장의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든 것'을 서로 연관시키는 말이다(Hammaond). 특히 '때'
(에트)라는 단어는 퍽 광범위한 용법을 지니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어떤 특유한 시점을
각별히 지적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때에'는 여로보암이 범죄 행위를 계속하던 당시를
애써 지적하는 말이다. 즉 이 말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 보면 여로보암의 아들
이 병이 난 것은 여로보암의 소행 탓이라는 해석이 은연 중 역력하다.
ㅇ아비야 -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라' 이다. 일명 아비얌(Abijam)이라
고도 하는 유다왕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Abijah, 31절; 대하 11:22)와 혼돈되기 쉬
우나 실상은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성경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였다는
사실 외에(13절) 달리 알려진 행적이 없다.
ㅇ병든지라 - '병든지라'에 해당하는 '할라'는 '약해지다', '슬픔에 젖다'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병이 들면 육체적으로 약해질 뿐 아니라 심
정적으로도 슬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동사의 외연(外延)에는 병든 심신의 모든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본절에서 이 동사는 병자 아비야 자신 뿐 아니라 여로
보암 가문 전체의 근심과 쓸픔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 P. 650).

2 여로보암이 그 아내에게 이르되 청컨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으로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저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고한 사람이니라

ㅇ그 아내에게 이르되... - 이로 보아 아들의 병이 여로보암에게 큰 근심거리였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의 해결을 위해 여로보암과 아내가 직접 나서야 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에게 아들의 운명을 묻는 일을 정작 자
신이 수행하지 않고 대신 아내에게 떠맡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
은 사실들을 읽을 수 있다. (1) 일단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 능력을 신뢰하
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아히야가 자신의 왕 될 것을 예견했던 바
(11:29-40) 있기 때문이다(J.B Payne, Matthew Henry, Lange). (2)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이 직접 아히야와 대면하기를 꺼렸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이 아히야가 권고
한 순종의 길(11:37,38)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R.D. Patterson ,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3) 따라서 그러한 거리낌이 자신의 아내에게
도 여로보암의 아내라는 사실을 감추도록 요구하게 했다. (4) 때문에 결국 여로보암의
아내는 평범한 아낙네로 변장하여 아히야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4,5절).
ㅇ실로 - '실로'는 벤엘 북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에브라임 지파의 성
읍읍이다. 이곳은 여호수아 시대에서 사무엘 시대 동안 법궤와 성막이 머무른 바 있
는 종교 중심지이다(삼상 4:3,4). 그런데 이곳은 목초와 물은 많아도 적을 방어하기에
는 좋지 않은 지형이라고 한다(Reed). 여로보암이 실로를 제쳐 두고 벧엘을 종교 중심
지로 삼은 것은 이러한 군사적 측면도 계산 되었으리라고 본다(12:29 주석 참조). 한
편 17절은 당시 여로보암의 집이 '디르사'(Tirzah)에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그런데
디르사에서 실로까지는 48km 이상의 거리이다. 따라서 여로보암의 아내는 제법 먼 거
리를 여행해야 했던 셈이다.

3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저가 그대에게 이
아이의 어떻게 될 것을 알게 하리라

ㅇ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 -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적 일을 하는 사람에게 예물
을 주는 것이 상례(常例)였다(13:7; 창 18:4; 19:2; 43:24; 삼상 9:7,8). 그런데 본절
에서 여로보암이 지시한 예물의 양은 속임수를 쓰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Lange,
Hammond, Keil). 왜냐하면 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은 평민이 보통 선사할수 있는 정
도의 분량이기 때문이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내의 신분을 왕비가 아닌 보통 사
람으로 나타내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절과 본절은 여로보암의 용의 주도
한 면모를 보여 준다. 그러나 그의 치밀한 머리가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즉 그는 자신의 책략에만 눈이 어두워 하늘
에서 세상 모든 거민을 하감(下瞰)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동자(시 33:13,14)
를 미처 인식치 못했던 것이다(5,6절).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ㅇ눈이 어두워 - 여러 학자들은 이를 노령으로 인해 안구(眼球)가 고정되면서 생
기는 시력 장애로 풀이한다(Bahr, Keil 등). 왜냐하면 '눈이 어두워'
(카무 에이나요)의 문자적인 뜻은 '눈이 멈추다'이기 때문이다.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 아들이 병듦을 인하여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리이리 대답하라 저가 들어올때에 다른 사람인체 함이니라

ㅇ너는 이리이리 대답하라 - 여로보암의 계략(2,3절)은 눈먼 아히야를 충분히 속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여로보암의 기만책은 물론 여로보암
집안의 장래(6-16절), 그리고 대답의 방식까지도 일러주는 상세한 것이었다. 사실 건
강하고 용의 주도한 인물인 여로보암과 늙고 눈까지 먼 인물인 아히야가 벌인 게임의
승부는 뻔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약자의 편에 하나님께서 가세하시므로 얘기는 달라진
다. 즉 여로보암이 아히야의 어두워진 눈은 속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곧 우수한 인간적 재능이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은 사실이
지만, 그 자체만이 내세워질 때는 오히려 큰 올무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면에 비록 여
러 면에서 인간적 결점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려는
자는,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으 부끄럽게 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귀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고전 1:27).

6 저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뇨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로 네게
고하리니

ㅇ어찌히여 - '어찌하여'(라마 제)는 물론 몰라서 묻는 의문이 아니
다. 이는 어디까지나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가'할 때 '왜 이렇게'에 해당하는 냉
소적 어감을 지닌 말이다(사 1:11; 암 5:18). 그러므로 이 말은 마치 세상의 군왕들이
떠들썩하게 나서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정작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냉소와 비웃음을
흘리시는 광경을 연상케 해준다(시 2:1-4).
ㅇ다른 사람이 체 하느뇨 -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내를 변장시켜 아히야가 못알아 보
도록 의도하였다(2절). 그러면서도 여로보암은 앞일을 내다보는 아히야의 능력만은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곧 일종의 점술가를 대하는 태도에 해당한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을 감춤으로써 아히야와 인격적 관계 맺기를 거부하면서도 기복(祇福)
의 도구로 하나님의 사람인 아히야를 이용하려 든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210). 그런데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파악하지 않고 하나의 도구적 사물로 인식하는 왜곡된 형태이다. 그러기에
신약에 이르러는 심지어 돈으로 물건을 사듯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입하겠다는 어처구
니 없는 인물도 등장한다(행 8:9-24). 한편 이처럼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를 만나게
한 여로보암의 모습은 과거 스스로 변장한 채 신접한 여인을 만난 사울과 비교된다(삼
상 28:8-19). 더군다나 이들 모두 심판의 예언을 선고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
다.
ㅇ흉한 일 - '흉한'에 해당하는 '카쉐'는 '엄격하다', '가혹하다'에서 파생
된 말이다. 본문에서 이는 여로보암 가문의 멸절을 선언하는 심판의 가혹함을 묘사하
는 데 쓰였다(10,11절).
ㅇ고(告)하리니 - 여기서 '고하다'(솰루흐)라는 말은 본래 '보내다'(send)
는 뜻이다. 이는 곧 선지자들의 메시지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임을 일
깨워 준다(사 9:8; 슥 7:12). 한편 이제 아히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메시지를
다시금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전한다. 그러기에 이 메시지, 즉 심판의 예언은 훗날 반
드시 성취되고 말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代言者)로서 가
능하는 아히야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선지자의 고유한 권한과 향계를 볼 수 있다.

7 가서 여로보암에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ㅇ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 이러한 표현이 강조하고 있는 바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의 관계가 불가분리의 각별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본절의 행간에 감추어진
아히야의 심정은 여로보암이 '그러한 각별한 관계를 파기한'데 대한 상처와 분노이다.
한편 본문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조되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9절의 '다른 신'
이다.
ㅇ주권자가 되게 하고 - '되게 하고'는 원래 '위임하다'는 뜻의 '나탄'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전횡자(專橫者)가 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백성의 주권자는 어디까지나 우주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위
임받은 백성을 겸손히 다스려야 하는 제한된 봉사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저들을 우상 숭배 죄악으로 몰고 간 것이다(12:25-33).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ㅇ찢어 내어 - 여기서 이 말은 한 왕조에서 왕조의 일부를 분리해 냄을 의미하는 상
징적 표현이다(11:30; 삼상 15:28). 한편 성경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인 '옷을 찢는다'
함은 비통함과 회개의 표시이기도 하다(창 37:29; 민 14:6; 수 7:6; 호 13:8). 따라서
나라가 찢어졌다는 것은 비통한 현실이기도 하거니와 나라 전체에 회개를 촉구하는 표
시이기도 하다.
ㅇ다윗...같지 아니하고 - 본문은 마치 여로보암의 소행을 놓고 판결을 내리는 법정
의 장면과도 같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경쟁 왕조의 다윗인 점
이 흥미롭다. 즉 아히야는 이전의 예언에서 여로보암에게 다윗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이미 충고한 바 있거니와(11:38), 여기서는 다윗에 견주어 그를 책망하고있다. 하지만
여로보암에게 있어서 다윗은 적대(敵對) 가문의 전왕(前王)으로서 증오의 대상이었을
지언정 따라야 할 모본(模本)은 아니었다. 한편 본서에서 다윗은 여로보암 뿐만 아니
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들의 모본이 될만한 신앙인물로 제시되고 있는(15:3,11) 반
면,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의 대표적 인물로서 언급되고 있다(15:34; 16:26,30).

9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ㅇ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 여거시 '이전 사람들'이란 말이 지시하는
범위 및 이해 방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가능하다. (1) 이전의 왕들, 즉 사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선왕(先王)들을 지칭하는 걸로 볼 수있다(Living Bible). 그러나 이 경
우 비교 대상의 범위가 작으므로 여로보암의 악을 강조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다. (2) 이전의 사사(士師)들까지 포함해서 지칭하는 걸로 볼 수 있다(Hammond).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3) 다만 여로보암의 극악 무도함을 표현하는
수사적 관용 어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의 세 견해 중 어느 쪽을 선택하
든, 이는 우상 숭배에 빠진 바 있는 선대(先代)의 인물이 결코 여로보암보다는 악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시사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과거 솔로몬 같은 성군(聖君)도
한때 혼미하여 우상 숭배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여로보암처럼 체계적이고 정책적으로
우상 숭배를 전국에 확산시키지는 않았었다(11:1-8).
ㅇ너를 위하여 - 비록 여로보암이 자신의 종교 정책을 전통적 신앙으로의 복귀로 홍
보했을지라도 본심은 참된 신앙적 동기에 있지 않았다(12:25-33). 즉 여로보암은 단지
유다와의 체제 경쟁의 맥락에서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해 종교 정책을 펼쳤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문에서 그러한 여로보암의 불순함을 간단한 한 마디, '너
를 위하여'로 통렬히 지적해 내신다. 사실 겉치레와 간판이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하
여' 참동기가 결여된 제사는 불법이다. 그리고 그런 제사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즉 우상을 향한 제사이기 십상이다.
ㅇ네 등 뒤에 버렸도다 - 이 표현(겔 23:35)은 하나님을 최대한으로 경멸하고 무시했
음을 나타내는 말이다(Bahr, Keil, Pulpit Commentary).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성실
히 섬기는 태도를 가리켜 종종 '눈을 하나님을 향하여 두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 25:15; 119:37; 123:2; 141:8). 그런데 여로보암의 행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돌렸을 뿐 아니라, 아예 등을 돌려 버린 것으로 묘사되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등 뒤
에'(아하레 가예카)라는 표현이 갖는 모욕과 경멸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여기에 '버리다'(솰라크)라는 말이 추가됨으로서 모욕의
정도는 최대한 중폭된다. 왜냐하면 이 '버리다'는 말은 어떤 것을 무가치한 것처럼 유
기(遺棄)해버리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즉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쓰레기만
큼도 안여겼다는 말이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 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ㅇ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 - 원문의 문자적 표현은 '여로보암에게 속한, 벽에다 오줌
누는 자들'이다. 이는 곧 여로보암 가문의 모든 남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ㅇ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 '매인 자나 놓인 자'( ,
웨아주브 아추르)는 관용법적 표현으로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21:21; 신 32:36;
왕하 9:8). 따라서 이 말은 앞서 '여로보암에 속한 사내'와 동격임이 분명하다. 그런
데 매인 자와 놓인 자의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견해가 서로
다르다. 즉 이는 곧 (1) 기혼자와 미혼자(Keil), (2) 종과 자유인(Thenius,
Gesenius), (3) 연소자와 연장자(Lange)를 가리킨다는 등 각각의 설명이 구구하다.
그런데 원문이 주는 뜻에 일차적으로 근접한 풀이는 역시 '종과 자유인'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원문의 '아주브'는 '종에서 풀려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
므로 공동 번역도 본절을 '자유인이든 종이든'으로 옮기고 있다.
ㅇ거름을 쓸어 버림같이 - 여기서 '거름'(갈랄)은 길에 굴러다니는 똥을 말
한다. 원어에 비해 한글의 '거름'은 좀 점잖은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거름'은 더럽
긴 해도 쓸모있는 무엇이란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갈랄'은 원래 '구르
다'는 뜻의 동사이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길에 굴러다니는 것', 즉 '똥'(겔)이
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은 여로보암 일족의 멸망이 마치 길에 굴
러 다니는 똥을 치우듯 혐오를 갖고, 조금치의 미련도 없이 수행될 것임을 시사해 준
다(15:28-30).
ㅇ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 본래 원문에는 '말갛게'에 해당하는 부사가 나와 있지 않
다. 그러나 '쓸어 버리다'는 뜻의 동사 '바아르'가 '없애되 완진히 없애는'
강렬함을 지닌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강렬함을 전하기 위해 '말갛게'가 첨가되어 번
역된 것이다. 하기는 누구든 똥을 치우면서 조금이라도 남길 리 만무하다(Matthew
Henry).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셨나니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새가 먹으리니 -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강렬한 노
여움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표현이다. 시체가 무덤에 안장(安葬)되지 못하고 아무렇
게나 버려지는 것은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큰 수치였다(13:30 주석 참조). 더구나 시신
이 야수(野獸)의 밥으로 먹히우는 것은 사자(死者)에 대한 최대의 오욕과 불명예라
할 수 있었다(삼상 17:46; 시 79:2; 렘 7:33; 16:4; 34:20; 겔 29:5). 한편 본절에서
야수 대신 개가 언급된 것은 당시 거리에는 주인도 없이 돌아다니며 짐승들의 시체를
뜯는 들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시 59:6,14).
ㅇ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 이처럼 '여호와께서 말씀하심'은 마치 어떤 공
문서로 하여금 비로소 권위와 효력을 갖게 하는 서명 날인과 같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서 식언(食言)함이 없기 때문이다(삼상 15:29).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ㅇ너는 일어나...가라 - 본문에서 여로보암의 아내의 역할은 일종의 사자(使者,
messenger)이다. 즉 그녀는 처음에 올 때에는 여로보암의 사자였으나(1-4절) 이제 갈
때에는 아히야의 사자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전환에서 의미 변화(意味變化)가 발생한
다. 즉 여로보암의 아내는 처음에 아이의 생사 여부를 물으러 왔다. 그러나 이제 돌아
갈 때 그녀는 여로보암 가문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6-11절)과 그 증거로서 자신의 아
이가 죽게 될 것(12,13절)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여로보암에게 알
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즉 말씀의 전언(傳言)과 징조의 해석이 그녀에게 임무로 부
과된 셈이다. 결국 여로보암이 아내를 이용하며 아히야를 속이려던 것이 이제는 거
꾸로 아히야가 그녀를 통하여 여로보암을 꾸짖게 된 셈이다.
ㅇ네 발이...죽을지라 -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1절)은 결국 죽을 운명임이 드러났
다. 여로보암이 애초에 아히야에게 묻고자 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3절). 그러나 이
제 그 아이의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표적으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있
다. 그리고 그 점이 우연과 구별되는 근거로는 '발이 성에 들어갈때'라는 특정한 시점
과 아이의 죽음의 순간이 일치한다는 데 있다. 17절을 보면, '발이 성에 들어갈 때'는
'집 문지방에 이를 때'로 보다 상세하게 언급된다. 이러한 요소가 아이의 죽음과 아
히야의 예언이 갖는 일치를 오비 이락(烏飛梨落), 즉 우연의 일치로 돌릴 수 없게한
다(Keil & Delitzsch).

13 온 이스라엘이 저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 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ㅇ본절은 아이의 죽음을 역설적으로 차라리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물론,
이후 여로보암 가문에 밀어 닥칠 심판(10,11,14-16절)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본절의 구조는 전반부가 아이의 죽음이 갖는 상대적 행복의 요소를, 후반
부가 이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먼저 전반부에서 아이의 죽음
은 (1) 온 백성의 애도를 받을 수 있음과 (2) 묘실에 매장될 수 있음이 지적된다. 따
라서 아무데나 버려져 짐승의 먹이가 될 다른 가족의 주검에 비하면(11절) 이는 거의
축복에 가까은 죽음이다. 다음으로 본절 후반부는 아이의 이 같은 죽음의 이유를 '저
가 하나님을 향해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아무튼 본장에서 우리는
아이의 병, 혹은 죽음을 놓고 서로 엇갈린 시각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아이
의 병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여로보암에게는 불행과 슬픔으로 비쳤다(1,2 주
석 참조). 그러나 선지자 아히야가 보기에는 그것은 차라리 행복이었던 것이다(잠
20:24; 사 55:8,9; 롬 11:33).
ㅇ저가...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 11절 예언의 예외로서 오직 아비야만이 온 백
성의 애도를 받으며 묘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한 구절이다. 즉 여기서
'선한'(토브)은 어떤 사람의 욕망이나 의지의 방향을 나타내준다. 다시 말
해 여로보암의 아들이 가진 의지는 '하나님을 향해' 선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유대
교 랍비 전승에 의하면, 이 아들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백성들을 저지하
라는 부친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길에 세은 장예물을 치워 주었다고 한다(Bahr,
Pulpit Commentary). 아무튼 여로보암의 모든 권속들에게 닥쳤던 참화(15:29)를 겪지
않고 평안히 죽음을 맞이한 아비야의 경우는 '의인은 화액(禍厄)전에 취하여 감을 입
는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사 57:1).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저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어느때냐 곧 이제라

ㅇ그 날에 - '그 날에'(제하욤)는 문자적으로는 '이 날'(this day)
이다. 그런데 이 말은 평면선상의 어느 시간으로서 이 날 혹은 저 날을 일컫는게 아니
다. 오히려 이는 희랍어의 '카이로스'처럼 '결정적인 순간'(decisive
moment)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자연 발생적이 아닌, 돌발적 박진감으로 들이
닥치는 결정적인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는 '마침내 때가 이르면 바로
날에'와 같은 어감을 지닌 말이다.
ㅇ어느 때냐 곧 이제라 - 본절에서 이 부분이 주는 당혹감은 다음과 같은 데서 연유
한다. 문맥상 '그 날에'가 하나님께서 한 왕을 일으키시는 날과 일치함은 분명하다.
임박하는 날은 좌우간 미래의 어느 때 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심판의 때가 '바로
지금'(even now!)이라고 말하고 있다. 얼핏 이것은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말은
거의 종말론적 언어이다. 즉 너무나 확실한 결정이여서 이미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되고있는 중 혹은 되어질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에 해당하
는 '앗타'는 '막', '방금'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이제부터'(Modern
Language, from now on; RSV, henceforth)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시 113:2; 사
48:6). 그러므로 본절은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말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Hammond).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ㅇ이스라엘을 쳐서 - 이제 여로보암 가문의 파멸 예언(14절)은 슬그머니 그 대상을
북왕국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전이(轉移)의 예는 9:5-9에서도 찾아볼 수 있
다. 그런데 이처럼 왕과 백성이 함께 심판 받음은 저들의 공동 운명적 유대 관계를
암시한다. 즉 백성들도 여로보암의 정책을 묵묵히 따르므로서(12:30) 결국 그에게 동
조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백성들이 동조한 우상 숭배는 여로보암 사후에도
계속되어 북왕국 역사 전체을 질곡(桎梏)에 빠뜨리게 된다. 그러고 보면 북왕국의 우
상 숭배는 왕과 백성의 상호작용에 힘입어 만연하게 된 셈이다.
ㅇ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 '갈대'에 해당하는 '카네흐'는 '가지', '줄기' 등
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는 이차적으로 파생되어 나온 뜻이다(창 41:5; 출 25:34;
겔 42:16). 본래 '갈대'의 일차적인 뜻은 기본적으로 '연약함'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수 없는 '상한 갈대'로 비유되기
도 한다(왕하 18:21; 사 42:3; 겔 29:6,7 등). 이상을 참고할 때, '물에 흔들리는 갈
대'는 강대국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처지릍 빗대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ㅇ뽑아 - 이에 해당하는 '나타쉬'는 뿌리채 뽑는 것, 즉 근절(根絶)을 의미
한다. 그런데 미 5:14 에 의하면 '뽑혀야할 것'은 아세라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작 아세라상을 뿌리 뽑지 않았다. 그래서 거꾸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뿌리 뽑히게 된 것이다(신 11:16,17).
ㅇ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 하수는 큰 강 유프라테스를 말하는 바(창 31:21; 삼하
10:16), 본절의 예언은 이스라엘 멸망 후 앗시리아로 끌려갈 사건을 말해주는 것이
다. 실제로 이 사건은 왕하 17:16; 18:11에 기록 되었듯이 B.C. 722년에 성취되고 말
았다.
ㅇ흩으시리니 - 이에 해당하는 '자라'는 본래 '키질하다', '까부르다'는 뜻
이다. 즉 이는 곡식을 키실하여 찌꺼기를 바람에 날림으로써 깨끗케 하는 동작을 가리
킨다. 따라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응징, 정화(淨化)의 의미로 쓰인다(레
26:34; 렘 15:7; 49:32; 슥 1:19). 즉 이 말은 파궈적 응징로만 그치지 않고 정화라는
긍정적 측면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동사이다.
ㅇ아세라 - 아세라(Asherah)는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이다. 그런데 이
여신에 관한 난제는 아스다롯 및 바알과의 관계 문제이다. 비교적 초기에는 많은 학
자들이 아세라와 아스다롯(Ashtaroth)을 동일시해 왔다. 그러나 후대의 연구 결과 및
발굴과 함께 아세라는 아스다롯과 구별되는 또 다른 여신임이 드러났다(Reed). 어쨌든
아세라는 분열 왕국 시대에 여호와 신앙의 주요적으로 등장한다. 엘리야가 활동할 무
렵, 이세벧의 식탁에서 먹는 아세라의 선지자는 무려 400명이 었다(18:19). 또 아세라
숭배는 남왕국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아세라 숭배를 근절시키는
게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왕하 23:4-14).

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ㅇ여로보암의 죄로...범죄케 하였음이니라 - 본절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전반부에는
일견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이 등장한다. 즉 여로보암 일개인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버림받은 것처럼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이스라엘은 공시적(共時
的)-통시적(通時的) 개념이다. 즉 이는 여로보암 당대의 북왕국만을 지칭하는게 아니
라 이후의 북왕국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런데 후반부는 전반부의 불합리한,
혹은 비약적인 전후 관계에 비교적 합리적인 설명을 보태고 있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
이 타락하면서 결국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오염시킨 인자(因子)가 되었다는 것이다
(13:33). 이는 곧 여로보암을 기점으로 해서 왕국의 전체를 통시적으로 꿰뚫는 본서
기자의 거시적(巨視的) 안목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17 여로보암의 처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이가
죽은지라

ㅇ디르사 - 이로 보아 여로보암은 그의 치세 초기에 수도를 세겜(12:25)에서 디르사
로 천도(遷都)한 것 같다. 한편 디르사(Tirzah)는 세겜 북동쪽 11km 지점에 위치한 오
늘날의 텔루사(Telluzah) 또는 텔 엘파라(Tell el-Farah)라고도 불리우는 곳이다. 이
지역은 수리아등의 북방 지역에 대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니 아마도 여로보암은 군사적
이유로 인해 이곳으로 천도 했으리라고 추측된다(Reed).
ㅇ집 문지방에 이를때에 - 여기서 '집'(하바이트, the house)이라는 표현
은 12절의 '성'(하이라, the city)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정밀하게 정확한 순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이는 '성내에서도 왕의
집 곧 궁전의 문지방'하는 식으로 보다 자세한 표현인 것이다.

18 온 이스라엘이 저를 장사하고 저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ㅇ온 이스라엘이...슬퍼하니 - 이처럼 온 백성이 이 왕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장례
를 치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관찰할 수 있다. (1) 국장(國葬)이
취루어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왕자는 다음번 왕위에 오를 후계자였던 것 같다
(Bahr, 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2) 여기서 '슬퍼하다'(사파드)라
는 말은 '가슴을 치다', '통곡하다'는 뜻으로 특히 사람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 가슴을
치고 크게 소리내어 우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왕자는 지금까지 백
성의 촉망을 받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백성의 이러한 기대는 그가 경건
한 인물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13절). 왜냐하면 왕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곧 백성에 대해서도 무도(無道)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2:7).

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저가 어떻게 싸운 것과 어떻게 다스린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ㅇ남은 행적(行蹟) - 여기서 '행적'(디베르)은 '말하다'에서 유래된 명사이
다. 이 단어는 보고(report) 혹은 기록되어진 행동을 의미한다(대상 29:29). 따라서
이는 여로보암 재위시의 활동이 기록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
다. 그러나 열왕기 기록자에게 있어서는 여로보암의 여타 업적과 활동은 마치 눈에
보이지도 일는 것처럼 모조리 무시되었다. 즉 본서에서 여로보암은 단지 북왕국 우
상 숭배의 원인자로서만 고발되었을 따름이다(16절).
ㅇ역대 지략 - 이 책은 왕실의 여러 가지 기록을 참고해서 편찬한 국정일지(國政日
誌)이다. 이는 구약 성경 중 한 권인 역대기(歷代記)와는 엄연히 구분된다. 한편 이
일지를 계속 기록해 나가는 것은 왕실 서기관들의 주된 임무 중 하나였다(Kraft). 아
무튼 '역대 지략'에 해당하는 '데베레 하야밈'은 '매일의 말
(기록)들'이란 뜻으로 이 일지의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Pulpit Commentary). 본서 기
자는 북왕국 왕들에 관해 기록할 때 이 일지를 참고하였다(15:31; 16:5,14,20,27;
22:39; 왕하 1:18; 10:34; 13:8,12; 14:15,28; 15:11,15,21,26,31). 그런데 남왕국에
도 이와 비슷한 역대 지략이 있었다(14:29; 15:7 등).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서론, '7. 열왕기서의 자료'를 참조하라.

20 여로보암이 왕이 된지 이십이년이라 저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B.C. 930년경으로 본다. 그렇다면 본절이 가리키는 때는 B.C. 910년경인 셈이다.
본서 서론, '12. 열왕기서의 참조 도표' 참조.
ㅇ그 열조와 함께 자매 - 아히야의 불길한 예언(10,11,14-16절)에 비하면 열왕기의
간략한 기록은 마치 여로보암이 평온한 임종을 맞은 듯이 보이게 한다. 그러나 역대기
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유다 왕 아비야에게 벧엘마저 빼앗기는 패전의 수모를 겪은 후
죽었다. 그리고 역대기는 그 사실을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
다(대하 13:13-20). 그래서 여러 주석가들은 여로보암이 패전의 여파로 얻은 지병 때
문에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Bahr, Matthew Henry).

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사십일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빼신 성
예루살렘에서 십 칠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

ㅇ나이 사십 일 세라 - 르호보암 역시 여로보암과 마찬가지로 세겜 회담의 결렬 이후
왕위에 을랐으니 B.C. 930년이 그의 원념(元年)이다(12:17). 그런데 12장에선 르호보
암의 동년배들을 가리켜 '소년'으로 부르고 있다(12:8). 때문에 41세의 장년을 소년이
라 부른 모순을 해소하려고 혹자는 본절에 나오는 르호보암의 나이를 '21세'로 수정하
려 든다(Bahr). 그러나 12장에서의 '소년'이란 말은 문맥상 '노인'들에게 대조되는 자
들의 경박함을 강조하려는 냉소적 의미의 단어이다. 12:8 주석 참조. 더구나 르호보암
이 21세에 즉위해 17년간 통치하고 죽었다면 37세의 한창 나이에 요절한 셈이다. 그러
나 성경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21세로 수정하느니보다 41세
로 나두는 편이 자연스럽다.
ㅇ여호와께서...빼신 성 예루살렘 -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앙 성소로 택정
(擇定)된 사실에 대해서는 8:16 주석과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
의'를 참조하라. 그런데 본절에서 예루살렘이 이처럼 장황하게 소개되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신앙의 중심지가 우상 숭배가 만연한 장소로 변질되었다(22:28절)을 은연중 부
각 시키고자 함이다(Keil 등).
ㅇ십 칠 년을 치리(治理)하니라 - 이에 따르면 르호보암의 재위 기간은 B.C. 930-913
년이 된다.
ㅇ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 - 유다 왕들의 경우에만 모친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열왕기의 특징이다(15:2,10; 22:42). 이는 왕들에게 주는 모친의 영향
력이 지대함을 알게 해준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 영향력이 혹자의 말처럼
언제나 존경받을 만한 건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Bahr). 본절 역시 오히려 불길한
영향력을 느끼게 해준다. 즉 르호보암의 모친 나아마(Naamah)는 솔로몬이 가까이 했던
이방 여인 중 하나로 밀곰(혹은 몰록)을 숭배하던 암몬의 여인이다(11:1-8). 그러므로
르호보암의 우상 숭배 경향은 그 모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Mauchline).

22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으니

ㅇ유다가 - 이처럼 본서 기자가 '르호보암이'라 하지 않고 '유다가'로 기록한 점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그런데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12:1을 보면, 르호보암이 율법
울 버리자 백성들이 이를 본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본절의 '유다'는 16절에서
의 여로보암과 북왕국 백성 간의 관계와 같은 상호 작용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그
런데 대하 12:1은 르호보암이 율법을 저버린 이유를 국가의 강성함으로 인한 교만에
둔다.
ㅇ노를 격발(激發)하였으니 - '격발 하였으니'는 '질투하다'(카나)에서 온
말이다. 즉 이는 '질투를 야기시키다'는 뜻이다(RSV, they provoked him to
jealousy). 따라서 본절에는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들 간의 특별한 관계가 암시되어 있
다 하겠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신부 대하듯 하시기 때문에(계 19:8; 겔
16:8-14) 때로는 그들로 기뻐하시는가 하면 질투하시기도하는 것이다(출 20:5; 사
62:5). 이는 한갖 피조물에 불과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고 계시
는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신약에 더욱 밝히 계시되어 있
는 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 혹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
되는 것이다(마 25:1 이하; 엡 5:25-33; 계 21:2).

23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ㅇ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 푸른 나무 아래
에 우상 및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다(렘 2:20; 3:6; 겔 6:13; 왕하 16:4;
17:10; 대하 28:4). 따라서 르호보암이 '산 위에와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각종 우
상을 세웠다는 것은 곧 그가 가나안 족속들의 이교(異敎)에 영향받았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신 12:2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ㅇ우상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마체바'는 본래 '기둥'(pillar)이란 뜻이
다. 그런데 아마도 여기서는 남신(男神) 바알에게 봉헌된 석상(石像)을 가리키는 듯
하다(Hammond).
ㅇ아세라 목상 - 이는 남신 바알과 함께 한 장소에 나란히 세워진 여신상(女神像) 아
세라를 가리킨다. 한편 '아세라'에 대해서는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ㅇ남색(男色)하는 자 - '남색하는 자'(카데쉬)는 단순한 동성 연애자를 의미
하는게 아니라 이방 신전의 남창(男娼)을 말한다. 이들은 아세라 여신을 섬기는 신전
에 소속된 남창들로서 의식(儀式) 중의 매음 행위에 동원되었다(Bahr, Jacobsen). 그
런데 이러한 자들이 남왕국 내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상 숭배의 만연도 뜻하지만, 아
울러 여호와 신앙으로 결집된 이스라엘 공동체 의식이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는 증거이
다. 왜냐하면 이들의 짐승 같은 성행위는 사악한 이교 제의(異敎祭儀)에 속한 것이고,
그러한 제의가 성행했음은 곧 신정(神政)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출 20:1-17)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남북을 막론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정
국가 건립 목표를 잊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ㅇ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 - 곧 가나안 원주민을 가리킨다. 이들의 종교
의식이나 생활풍속은 음란하기 이를 데 없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레
18:3-25). 하나님께서 이들을 멸절시켜 버리도록 명하신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우상 숭배 및 종교 의식을 파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신 7:2). 그러나 여호수아 정
복 후에도 일부 가나안 거민들은 여전히 잔존 세력으로 남아 있었으며(수 11:13;
15:63; 16:10), 결국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ㅇ가증한 일 - 이에 해당하는 '토에바'는 '몹시 싫어하다', '지독하게
미워하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가나안인들의 우상 숭배나 사악한
습속(習俗)을 얼마나 혐오하셨는지 잘 나타내준다.

25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애굽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ㅇ르호보암 왕 제 오 년에 - 즉 B.C. 926년경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무렵 근동에는
심각한 정세 변화가 있었다. 즉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할 만한 강대국의
등장이 없던 시대이다(14:20-25). 그러나 르호보암이 즉위했을 때 남쪽 애굽에는 이미
보다 호전적이고 패권주의적인 22대 왕조가 들어서 있었다. 한편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12:2에는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란 구절이 삽입되어 유다의 타락과
시삭의 침공 사건 간의 인과(因果) 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ㅇ시삭 - 애굽 22대 왕조를 창시한 리비아 부족의 족장 쉐숑크(Sheshonk)를 가리킨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I. p.215). 11:40 주석 참조. 그는 강력한 무력
을 배경으로 애굽의 중앙 정부를 위협하다가 마침내 애굽 전역의 통치자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통치 기간(B.C. 940-915) 중 강력한 애굽 부흥의 기치를 들고 주
변국가들에 대해 패권주의적 정책을 수행해 나간다(Wilson). 팔레스틴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도 아마 이러한 정책의 맥락에서 결정되었을 것이다. 한편 혹자는 시삭
의 침공이 여로보암의 선동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Bahr)을 하기도 하는데 근거가 없
다. 그 이유는 (1) 여로보암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본서 기자가 본문에서 그
일을 빠뜨렸을리 없고, (2) 시삭의 정복 범위는 북왕국 이스라엘도 포함고 있기 때문
이다. 26절 주석 참조.

26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의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ㅇ다 빼앗은지라 - 열왕기의 '기록은 마치 시삭(Shishak)이 예루살렘만을 집중 강
타하여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탈취하는 데 주력한 듯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실상 시
삭의 침공은 팔레스틴 전역을 휩쓴 것이었다. 그 결과 남북왕국의 성읍이 약 150여개
나 정복 당하였다(Wilson). 그렇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핵(核)이므로, 이
곳이 약탈당했다는 것은 전체 이스라엘이 유린된 거나 다름없다. 즉 성전, 왕궁의
보물, 솔로몬의 금방패 등은 이스라엘 황금기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였다. 그러로로 이
자랑거리가 약탈당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번영기가 완전히 끝났음을 시사해 준
다.

27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장관의
손에 맡기매

ㅇ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 이 놋방패는 물론 금방패의 대용(代用)이다. 그런
데 어쩌면 시시콜콜해 보이는 이 변화가 곧 한 시대에서 다른 한 시대의 전환을 상
징적으로 보여 준다. 즉 금방패로 대표되는 황금기의 종식과 놋방패로 대표되는 쇠퇴
기의 시작이 넌지시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Dentan,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 p.655).

28 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

ㅇ본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관찰된다. (1) 시삭의 침공 후에도 어쨌든 르호보
암은 계속 왕노룻 할 수 있었다. (2) 성전의 제사도 계속되었다. (3) 쇠락한 느낌을
지을 수 없지만 왕의 행차에 위엄을 갖추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나. 이상의 요소들이
강조하는 바는 '다 멸절되지 않고 남은 것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곧장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주셨던 약속을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곧 다윗
과 예루살렘을 위해 다윗 왕조를 존속시켜 주겠다는 은총의 약속이다(11:13,32,36).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12,13 주석을 참조하라.

29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무릇 그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르호보암의 남은 사적 - '사적'(디베르)은 19절의 '행적'과 같은 말이다.
한편 역대기는 르호보암이 행했던 건축 사업이라든지 각처에서 남하해 온 제사장들을
받아들인 일 등 따위를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있다(대하 11:5-23; 12:1-8). 그러나
열왕기는 르호보암에 대한 본질적 해석의 줄기만 남긴 채 가지치기를 하였다. 즉 르
호보암 역시 남왕국 우상 숭배에 대해 책임이 있는 부정적인 왕으로 발췌, 서술한 것
이다(21-24절).
ㅇ유다왕 역대 지략 - 이 책은 북왕국의 역대 지략(19절)과 마찬가지로 왕실 서기관
이 편찬한 남왕국의 국정 일지이다. 열왕기 기록자는 남북 왕조의 왕실 일지를 모두
참조 자료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19절 주석 참조.

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ㅇ르호보암과...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 왕국 분열 초기의 남북 전쟁 위험은 스마
야 선지자의 제지로 일보 직전에 가라앉았다(12:21-23). 그러나 본절은 그 후 남북간
의 분쟁이 항상 있어왔다고 서술한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남북간에 적대감이 있었
다'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려 들기도 한다(Keil). 그러나 '전쟁'에 해당하는 원어
'밀하마'는 언제나 구체적 전투를 의미할 뿐, 심리적 적대감을 가리킨 용
례(用例)는 없다(창 14:2; 민 31:21; 대상 19:14 등). 그러므로 본절 표현대로 지속적
인 국지적(局地的) 전투가 남북간에 있어왔던 걸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적어도 본
절에서 남북간의 분쟁은 양 국가간의 대립이라기보다 한 국가 안에 존재했던 두 세력
간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성격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무난할 것 같다. 왜냐하면 원래
다윗 왕조의 창립은 느슨한 지파 동맹의 비효율성을 지양하여 탄생한 일종의 부족 연
맹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 당시에는 비교적 우세한 부족이 타부족들을 통합
하여 다스렸다. 그런데 그 후 솔로몬의 통치는 그러한 부족 연맹 국가에서 보다 공고
한 중앙 집권적 왕정 국가에로의 발돋음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기에 솥로몬의 제도
정비는 각 지파의 자체 결집력을 효과적으로 해체하고 왕권 중심으로 흡수하려는 노력
의 흔적을 보였다(4:1-19). 그러나 솔로몬 통치 말기는 솔로몬 체제가 내적 갈등을 흡
수하는 데 실패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르호보암 왕권에 반발한 여로보암과 북부 열
지파는 바로 이 체제에서 이탈한 세력일 뿐이다(12장). 그러므로 남북간의 분쟁은 서
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두 체제간의 경쟁 맥락을 띨 뿐 전혀 이질적인 두 국체(國體)간
의 대립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여하튼 하나의 신앙에 바탕한 하나님의 백성이
이처럼 둘로 나뉘어 강대국의 유린을 당하는 시점에서도 늘상 서로 다투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31 르호보암이 그 열조와 함께 자니 그 열조와 함께 다윗성에 장사 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 그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다윗 성 -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아 왕궁으로 삼았던 시온 성(삼하 5:7)을
가리킨다. 2:10 주석 참조.
ㅇ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 - 르호보암의 모친의 이름이 그 출생
지와 더불어 재차 언급되었다(21절). 이처럼 언급이 반복된 이유로서 다음 세가지가
추측된다. (1) 르호보암이 우상 숭배자로 타락함에 있어서 이 암몬 여인의 영향이 컸
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그녀는 유다 땅에 암몬의 가증한 우상 '몰록'을 성행
시킨 장본인이었을 것이다(23절; 11:7). (2) 솔로몬의 실책이 그 아들에게 미친 악영
향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다(신 28:28). (3) 전 백성들에게 여인의 어그러진 처신에
대해 경계시키기 위함이다. 현숙한 아내와 자애로운 어머니로서의 여인의 역할에 대해
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 한 여인이 남편과 자
녀는 물론 나아가서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 또한 엄청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
님께서는 특히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금하셨다(신 7:3).
ㅇ아비얌 - 이 이름의 철자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아비야' 또는 '아비야후'). 1
절 주석 참조.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이시다'는 뜻의 '아비
야'란 이름(대하 12:16; 13:1,21)을 기초로 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들을
피력한다. (1) 아비야는 즉위명이고 아비얌은 본명이라는 견해, (2) 아비얌은 아비야
끝에 암(am)을 덧붙인 애칭이라는 견해, (3) 철자의 혼동(즉 , 와 사이의 )으로
인해 생겨난 이름들이라는 견해, (4) 아비얌은 아비야에 '얌'이라는 가나안의
바다신 명칭을 첨가한 것이라는 견해(MacLean)등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상의 제 견해들 중에서 철자의 혼돈이 정확한 설명일것으로 본다(Hammond 등). 한편
르호보암은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이 있었지만 그중 마아가(Maacah)를 가장 총애하
였다. 그래서 마아가의 소생 아비얌을 일찌감치 왕위 계승자로 지목해 놓았다(대하 11
:21,22).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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