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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상

[스크랩] 열왕기상 (12 : 1~3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13

열왕기상 12장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ㅇ이는 '여로보암'(Jeroboam)의 이름의 뚱이 '백성들의 수가 많아지게 하소서'인 것
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때문에 이러한 두 이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이 이름들을 다
같이 백성의 권리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명칭으로 보는 시각도있다(Maclean). 한
편 르호보암(Rehoboam)은 암몬 여인 나아마(Naamah)의 소생으로 솔로몬의 독자였다
(14:21,31 ; 대하 12:13). 따라서 솔로몬 사후 당연히 아비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11:43).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그의 나이는 41세였는데 그때로부터 그
는 17년간 통치하였다(14:21).연대문제는 복잡 난점이 따르기는하나 대략 B.C.930-913
년 (솔로몬의 즉위를 B.C.970년으로 보고) 기간이 르호보암의 재위 기간이다.
ㅇ세겜 - '세겜'(쉐켐)은 '등성이', '비탈'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이 세겜
(Shechem)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5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곧 그리심 산과 에발산 사이의, 사방으로 통하는 교차 지점이다. 그래서 세겜은 예로
부터 이스라엘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다(Reed). 또 이곳은 에브라임에 속한 지역이기
도 하다(수 20:7;삿 9;1이하).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수 17:7 주석을 참조하라.
ㅇ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 여기서 '온 이스라엘'
(콜 이세라엘)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체가 아닌 북쪽의 열 지파를 말한다(Bahr,
Hammond). 이처럼 '이스라엘'이라는 호칭이 열 지파만을 일컫던 전례 없지않다.(삼하
2:9, 10, 17, 28). 한편 이스라엘 열 지파가 세겜에서 르호보암의 면담을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백성들의 승인이 이스라엘 왕의 즉위에 있어 필
수 요건이였기 때문이다(1:39;삼상 2:15 ;삼하 2:4; 5:3 ;대하 29:22). 2 그 동안 소
외되었던 북쪽 지파의 권리를 호소하려는 의도에서였다(4절).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ㅇ얼굴을 피하여 - '얼굴을 피하여'(바라흐 미프네)는 어떤 불쾌
한 이유로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피함을 말한다(시102:2 ; 겔39:23). 한편 이와 유사
한 표현이 성경에 간혹 나오는데 '반하여 얼굴을 드는 것'은 적대감의 표현이며(렘
21:10),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우호적인 영접의 의미(민 6:25)이다(Dentan).
ㅇ애굽에 있는 중에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10:2에는 '애굽에서 돌아오매'로 되
어있다. 문맥상으로 볼 때 대하의 번역이 더 타당한 둣하다. 아히야의 예언
(11:31,35,37,38)을 잊지 않았을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사망 소식(11:43)을 듣고 귀국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하다. 70인역(LXX) 및 수리아역(Peshitta) RSV, NIV, 그리
고 공동 번역 등은 본절을 '애굽에서 돌아와 있었는데'(returned from Egypt)로 번역
하고 있다.

3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ㅇ무리가...저를 불렀더라 - 본절로 보아 북쪽 지파들의 반란(16-20절)이 표면화되
기 이전부터 여로보암은 저들의 지도자격이었던 것같다. 이러한 사실은 여로보암이 북
쪽 지파 중 유력한 지파인 에브라임의 지도자 가문 출신인 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11:26, 28주석 참조. 물론 본시점에서 북쪽 지파들이 르호보암을 거부하기로 결정짓고
있었던 것은 아직 아니다(4절). 단지 유동적인 형편에서 여로보암은 북쪽 지파들의 대
변자(代辯者)가 되어 줄 것을 부탁받은 것일 뿐이다(Lange).
ㅇ본절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1절과 마찬가지로 북쪽 열 지파를 가리킨다. 한
편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모두 남쪽 지파에서만 배출되었다(사울은 베냐민, 다윗
과 솔로몬은 유다). 그런데 이들이 왕위에 오를 때에는 남쪽 지파는 물론 북쪽 지파
들의 승인을 얻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제 본절은 북쪽지파들이 르호보암에게도 마찬가
지 절차를 밟게 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에서 엿볼 수 있는점은 분열 왕국 이전
에도 북쪽지파와 남쪽지파 사이에는 일종의 구별 의식이 존재했으리라는 것이다.
ㅇ회중 - '회중'에 해당하는 '카할'은 신명기 기자가 온 이스라엘의 국민적
종교 집회를 지칭할 때 자주 사용한 단어이다(한글개역 성경은 대개 '총회'로 번역하
고 있음. 신 5:22;9:10;10:4;18:16등). 이에 관하여서는 민 16:2 주석에 상세히 설명
해 놓았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4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ㅇ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 이처럼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에 즉각 승락하지
아니하고 대답을 삼 일 뒤로 미룬 이유는 다음 두어 가지로 추정된다. 1 역대 왕들과
달리 선뜻 왕위 승인을 얻지 못하고 난관이 있자 이를 숙고할 기한을 가지려 하기 위
함이다. 2 예루살렘 (세겜에서 약 58Km 떨어진)에서 상의할 모사(謀士)들을 소집할
시간을 얻으려 하기 위함이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세겜까지는 그 거리로 보아 나귀를
탄다 해도 하루가 꼬박 걸렸을 것이다(Hammond).
ㅇ하매 백성이 가니라 - 르호보암의 요청에 순순히 말을 듣는 백성에게서 아직까지
그들에겐 반역의 의도가 없었음을 본다. 이 같은 사실은 앞서 그들의 요청(4절)이 진
지한 것이었음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들이 르호보암에 대한 반역을 예비
했다는 견해(Bahr emd)는 성립하기 어렵다.

6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ㅇ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 본절에서 '노인'(자켄)은 단순
히 연로한 자를 지칭하기보다 국가 행정에 직 , 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던 장로들을 의
미한다. 출3:16 주석 참조. 이들은 솔로몬의 성공과 실패를 몸소 체험했던 바 통치의
묘(妙)와 백성의 섭리에 익숙한 노련함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중에는 솔로몬의 행
정 구역을 담당했던 원로대신들도 있었을 것이다(4:2-6).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이
스라엘 지역 사회의 문제를 근접한 데서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인물들이다
ㅇ교도(敎導)하여 - '교도하여'(이와아츠)는 '충고하다'는 뜻으로 특히 아
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겸손히 제시하는 의견을 말한다. 즉 여기서 이는 왕인 르호보암
에게 원로들이 진언(進言)하는 것을 가리킨다.

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ㅇ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 장로들의 이 직언(直言)은 여호와 신
앙에 입각한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도 이상적인 군주관이 반영된 말이다. 즉 왕은 백
성들에게 봉사할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은 실제에
있어 왕은 율법에 복종해야 하는 인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으로 표현된다(신 17:
14-20). 즉 왕의 권력은 무제한한 것이 아니고 율법에 담긴 민사법과 전통의 규정들에
의해 규제되었다(삼하 11:1 이하;16:4;24:14 등). 그런데 왕에게 이와같은 법의 정신
과 의무를 일깨워 주는 역할이 장로들에게 있었다(삼상 10:25;삼하 5:3;왕하11:17).
르호보암이 의논한 장로들 중에도 이와 같은 역할자가 있어 본절과 같이 충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왕들은 율법의 정신과 규정에 제한당하는 것을 싫
어하였다. 아무튼 본절은 과거 이스라엘의 왕들 뿐아니라 오늘날 교회나 사회의 지도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즉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
들은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무리들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아니되며, 도리어 섬기고 헌
신하는 자세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해야 마땅한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
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마
20:28).
ㅇ섬기고 - '섬기고'에 해당하는 '아바드'는 '봉사하다', '일하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자주(290회)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는 그만치 구약이 담고 있는 굵직한 정신
의 일맥(一脈)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아바드'는 사물과 사람 및 하나님
모두를 향해 사용된다. 즉 이 단어는 사람이 자연을 경작한다든지 종이 주인에게 봉사
한다든지 또는 성도가 하나님을 섬긴다든지 하는 모든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창
2:5;29:15;렘 22:13;신 15:19;삿 9:28;삼상 11:1등). 그 가운데서도 본절에서 이 단어
는 왕으로서의 백성에 대한 행동의 본질적 성격이 곧 '섬김'(serve)임을 강조해 주고
있다. 따라서 위에 있는 자는 섬기는 자라는 성경의 정신은 여기서도 발견된다(눅
22:25, 26).
ㅇ좋은 말 - '좋은말'(드바림 토림)은 본래 상대방으로 하
여금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말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승낙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장로들은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요구(4
절)를 들어주도록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8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ㅇ버리고 - '버리고'( , 아자브)는 주로 선한 것, 마땅한 것을 저버리는 경우
에 사용되는 말이다(신 28:20;31:16;삿 10:10;렘 1:16). 즉 본절에서 르호보암은 율법
의 정신으로 뒷받침된 장로들의 진언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 문맥에서 '아
자브'는 '무시하다'는 뜻이 강하다. 이것은 단순히 아둔함에서 비롯되는 불찰이기보다
는, 탐탁치 않은 감정과 나란히 가는 의도적인 배제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오만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 이렇게 볼때 르호보암은 부친 솔
로몬의 생애 중 후반부의 어두운 면을 물려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즉 당시 솔로몬은
부강함에 집착한 나머지 율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짓을 곧잘 벌였던 것이다(11:1-13)
ㅇ그 앞에 모셔 있는...소년들 - 이들은 현재 르호보암의 신하로서 6절의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즉 현재는 원로가 된 솔로몬의 신하들과 대비된다
이러한 본문이 전하는 사건의 한 측면에는 르호보암 내각 내부에 존재하던 신 . 구 세
력간의 대립이 은연(중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대립과 갈등은 곧 이어 완연히
드러나고 만다(10, 11절).
ㅇ자기와 함께 자라난 - '함께 자라남'이 시사하듯, 이들 소년들은 르호보암과 같은
경험을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해 같은 관점, 같은 경향을 갖게 된 부류라 하겠다. 즉
이들은 하나의 '파당성'(派黨性)을 가진 무리인 것이다.
ㅇ소년들 - '소년'에 해당하는 '옐레드'는 '낳다', '태어나다'는 뜻의 '얄라
드'에서 온 말로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한 청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연령에도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41세 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40대의 동년배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14:21). 왜냐하면 이들은 르호
보암과 함께 자랐다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 '소년'은 왕성한 활력
로서의 젊음을 내포한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대신 이는 6절의 '노인'과 날카롭게 대
비되어, 경험이 불충분하고 사려깊지 못한 부정적 면이 강조되는 젊음으로서 '소년'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르호보암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힘을 추종(追從)하되
책임의 면을 고려하지 않는 '힘 지향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용렬(庸劣)함은 상황을
도리어 악화시키는 강경책을 진언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10, 11절).

9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하라 하였느니라

ㅇ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 장로들이 충고를 무시해 버린 르호보암의 오만으로 미루어
(6-8절) 백성들의 간청에 대해 그가 어떻게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권력 지향적인
르호보암에게 있어선 자신의 무제한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 백성들의 굴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에게 들이닥친 백성들의 요구(4절)는 그의 야심에 타격을 주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르호보암의
심사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나의 새끼 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 이 수사학적 표현을 분석하면 다
음과 같은 두 대비(對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1 굵기의 비교로서, 신체 중 가장
가는 부분인 새끼 손가락과 가장 굵은 부분인 허리가 대비된다. 2 내적 의미 연관의
비교로서, 새끼손가락이 표상하는 바 손끝의 간릉(幹能)한 재주 정도와 허리가 표상하
는 바 힘의 근원지(사 45:1;시 69:23)가 서로 대비된다. 결국 이말은 르호보암이 부
친 솔로몬보다 훨씬 능력이 많다는 의미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실상 이는
르호보암의 능력에 대해 과장된 찬사를 보내기 위한 비유적 표현이다. 원로들의 충정
어린 자문이 노련한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운 것이었음에 반해, 소인배들의 조언은 아
첨으 로 가득찼으며 젊은 왕의 혈기를 충동질하기에 적절하였다. 만일 왕이 원로들의
조언을 따랐다면,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반역의 구실을 잃게 되었을 것이고 르호보암
자신은 왕국 분열을 조장하는 범죄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 주
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유혹을 해온다. 르호보암은 왕직을 수행하기에 앞서 일종의
테스트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막 1:12,13) 사단의 유혹에 넘어감으로서 통일왕국이라
는 큰 그릇을 소유하기에 부적격자로 판명되었다.

11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 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ㅇ더욱 무겁게 할지라 - 원래 '무겁다'는 말(카베드)에는 '가혹하다' 외에도
'슬프다'는 뜻도 들어있다. 사실 가혹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슬픔을 안게 마련이다.
아무튼 본절은 백성들에게 이전보다 더 혹독하게 속박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처사가 백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ㅇ채찍 - 본절의 '채찍'에 해당하는 원어는 '쇼트'로, 죄를 징책하는 의미의
'채찍', 즉 '네가'와는 구별된다(삼하 7:14;시 89:32). 다시 말해 이는 단지
문자 그대로의 '채찍'을 가리키는바 여기서는 통치상의 가혹함과 잔인성을 표상해 주
는 말이다.
ㅇ징치(徵治)하였으나 - '징치하다'는 말(야사르)은 종종 '징계하다'로도 번
역되는 단어이다(신 8:5;시 38:1;잠29:17).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 이 '야사르'는
대개 인간의 변화 및 회개를 겨냥한 긍정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좀 혹독하
게 말해서 솔로몬의 '야사르'는 단지 자신의 이기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백성을 쥐어짠
것일 뿐이다. 4절 주석 참조.
ㅇ전갈 - 대개의 학자들은 본절의 '전갈'(아크랍)을 동물(전갈은 곤충이
아니라 절지 동물)로서의 전갈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채찍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
다. 즉 앞서의 채찍이 단순히 가죽으로 된 끈인데 본절의 '전갈'은 이 가죽끈에 쇠조
각을 박은 채찍이란 주장이다(H.Austel, Gates, Patterson, Montgomery). 한편 전갈
(scorpion)은 꼬리 끝에 독침이 있어 이에 쏘이면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는 동물이
다. 그러기에 계시록에서도 전갈은 극도의 고통에 비유되었다(계 9:5).

12 삼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ㅇ모든 백성 - 1절의 '온 이스라엘'과 동일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1절 주석을 참
조하라.
ㅇ이는 왕이 명하...하였음이라 - 백성들이 아직까지 왕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재
차 특기(特記)하고 있는 구절이다. 5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때까지 백성들은 다윗
왕조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후에 벌어진
파국은 르호보암의 불찰에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13-20절). 그런데 르호보암의
잘못이 갖는 성격은 우둔한 강압책이라는 표면적인 것보다 율법 정신에 투철치 못한
데서 찾아야 한다(7절).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니 이스라엘 남북 분열과 대
립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임이 분명해진다(21-24절).

13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ㅇ포학(暴虐)한 말 - 원문에는 단지 '포학하게'(harshly)로 되어 있다. 그런데 '포
학하게'는 '난폭하다', '고집이 세다'는 뜻을 지닌 '카솨'에서 온 말이다. 이
'카솨'는 본래 무거운 멍에에 짓눌린 소를 참기 어려운 정도로 혹사하는 농경의 한
장면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그러므로 '카솨'는 그 행위의 주체에는 완고함이, 그 행
위의 객체에는 참기 어려움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과거 애굽의 노예생활시 바로가
히브리 노예에 대해 그러했다(출1:14;6:9; 신 26:6). 또한 훗날 이스라엘인들의 바벧
론 포로 생활 역시 '카솨'로 인해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사14:3). 결국 '카솨'란 단어
에서 발견되는 르호보암의 마음가짐은 애굽의 바로가 그랬드이 고집세고 강퍅한 바로
그것이다(출 7:3;13:15).
ㅇ노인의 교도 - 6,7절 주석을 참조하라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ㅇ내 부친은...징치히리라 - 본절은 르호보암이 앞서 소년들의 충고 내용을 그대로
읊고 있는 장면이다(11절). 본절은 그 수사학적 표현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
용상의 우둔함과 무자비성이 가리워지지 않는다. 대신 표현상의 뛰어난 기교는 도리어
르호보암의 악함을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르호보암의 강경한 대
답은 3일 동안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백성들(5절)의 마음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였
다.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ㅇ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것이라 - 인간 만사(萬事)를 주장하시는 분은 정녕
만유(萬有)의 주재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구절이다(시
103:19;단 4:34,35). 아무튼 본절이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바는 바로 백성들의 요청에
대한 르호보암의 거부 사실이다(12-14절). 다시 말해 본절은 남북 분열의 파국으로 가
는 전환점이 바로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빚어졌음을 지적해 준다. 한편
여기서 '이 일'에 해당하는 '십바'는 '사태.운명의 전환'(a turn about of
fate)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르호보암의 운명을 전환
시키셨음을 증거해 주는 셈이다(Montgo-mery).
ㅇ실로 사람 아히야 - 솔로몬 때부터 르호보암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활약했던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선지자이다. 11:29 주석 참조.
ㅇ응하게 - '응하게'에 해당하는 '쿰'은 어떤 결정이 유효한것으로 확정,확
립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이 말은 르호보암이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는 그 순간
(12-14절)이 곧 하나님의 심판 판결(11:35,36)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ㅇ온 이스라엘 - 1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북쪽 지파에 한해 사용
된 대표적 구절 중 하나이다(삼하2:9,17;3:10;19:41:20:1). 왜냐하면 '온 이스라엘'
(all Israel)이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는 17절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
손'과는 뚜렷하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한편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란 용어가 남왕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사 5:7;미 3:1).
ㅇ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 북쪽지파가 결정적으로 다윗 왕조와 결별을 결심하게
된것이 바로 이 순간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ㅇ대답하여 - 이에 해당하는 원문( ... ,야쉬부...다바르)은 '말을 보내
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아마도 북쪽 지파들은 자신들의 대표자를 왕에게 보내 자신
들의 결의 사항을 전달한 듯하다.
ㅇ다윗과...이새의 아들에게서 업(業)이 없도다 - 이 말은 반복을 피하기 위한 시적
인 대귀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그 의미상 같은 내용이 각기 다른 말로 표현되고 있
다. 그럼으로써 다윗 왕조에 대한 반감을 보다 효과적으로 증폭(增幅)시켜 준다. 다시
말해 본절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이 '이새의 아들'로, '관계'(할라
크-원래 '영지','영토'란 뚱이다)가 '업'(나할라 - 원래 '유산', '상속'이
란 뜻이다)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으로 1 반복
의 강조 효과를 내용상 거두면서도 2 반복이 가져 올 단조로움은 표현의 변주(變奏)
를 통해 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 다윗 왕조로부터 아무 혜택받을 게 없는데
무엇 때문에 충성을 하겠느냐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호는 다윗 가문에 대적한
반란 때마다 외쳐져 왔었던바(삼하 20:1) 이스라엘의 뿌리깊은 지파의식의 발로이다.
어쨌든 본절에는 모인 무리들의 타락한 신앙 상태가 잘 암시되어있다. 그들이 다윗과
의 관계를 끊는다는 말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다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시적 고충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파 감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
원한 언약마저 거스리는 모습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ㅇ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 '돌아가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 첨가어(添加語)이다.
그러나 단지 '너희의 장막으로'(To your tents!)라는 말만으로도 '집으로 돌아가라'
(Go home!)는 뜻이 된다(Montgomery). 한편 여기서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옥'
이란 말대신 '장막'(오헬)이 사용된 것은 옛 유목 생활에서 발생하여 굳어진
관습적 표현이다. :66 주석 참조.
ㅇ네 집이나 돌아보라 - '집'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족속'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수 17:17;삿 1:22;10:9;삼하 19:20등). 그러므로 본절은 다윗 가문은 자기의
속한 지파, 즉 유다 지파나 통치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달리 말해 다른 지파에
대해서는 왕노릇하여 참견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북쪽 지파들은
더 이상 다윗 왕조의 왕권을 인정치 않겠다는 전갈을 한 것이다.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ㅇ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 - 단순히 유다 지파라 하지 않고 좀더 포괄적으
로 '유다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기록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즉 이는 유다
지파가 아니면서도 르호보암에 동조하여 유다 지경(地境)에 머무른 사람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들이 누군가 하는 문제는 이들이 유다의 '성읍'(cities)에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기록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앞서 솔로몬이 벌인 활발한 국제
무역(10장)은 이스라엘 사회상에 많은 변모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도시 문화의 발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는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한
지파 의식을 약화시키고, 도시의 재력(財力)과 경제 활동을 중심으로 한 도시 주민들
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이 도시 주민 중에는 비록 북쪽 지파 출신이지만, 농경 중심의
북왕국이 갈라져 나가는데 동조하기 싫어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Morgenstern).

18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ㅇ역군(役軍)의 감독 아도니람 - 개역성경 및 영어 성경에 아도니람(Adoniram) 또는
하도람(Hadoram, eogk 10:18)으로 번역되어 있는 이 '역군의 감독'아름은 실상 원문에
'아도람'으로 나와있다. 그리고 이 아도니람은 본래 선왕(先王) 솔로몬의
주요 관원 중 한 명이다(4:6). 그런데 그가 다윗 시대의 '아도람'과 동일 인물인지
는 분명치 않다(삼하29:24). 어쨌든 본절의 아도니람은 강제 노동의 감독관으로 상당
히 이골이 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
닐 수 없었다. 한편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동 때문에 10지파가 이탈하겠노라고 선언
한 판국에(16절) 르호보암이 아도니람을 그들에게 파견한 것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강압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표시였다. 따라서 10지파는 아도니람을 돌로 쳐죽일 뿐
아니라 르호보암의 신변마저 위협할 정도로 분노하고 말았다.
ㅇ급히 - '급히'에 해당하는 '아메츠'는 '힘있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르호보암이 달아나는 일에 힘을 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ㅇ오늘날까지 - 이 말은 남북 왕국의 대치 상태를 전제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열왕기
의 최종 기록 연대는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고 난 뒤의 시기(B.C. 561~537년)이다.
본서 서론, '기록 연대' 참조. 아마도 이러한 사태는 본서 저자가 왕국시대 당시의 어
떤 사본 내용을 그대로 차용(借用)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본
은 유다 왕국의 실록과 같은 문서일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본절의 기록 내용이
상당히 다윗 왕조에 우호적인 성격(북왕국의 행동을 '배반'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띠
고 있기 때문이다.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ㅇ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 이는 세겜에서 르호보암과 북쪽
지파가 대면하는 데 줄곧 여로보암이 동행했다는 앞서의 기록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
다(3, 12절). 그러나 본절의 '온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의 온 백성으로 이해하고,
앞서 세겜에 갔던 '온 이스라엘'은 북쪽 지파의 대표자들만을 지칭했던 걸로 이해하면
별로 무리가 없다(Bahr,Hammond).
ㅇ공회(公會) - '공회'(에다)는 '지정하다'에서 온 말이다. 이는 대개 약속
된 모임과 무리(congregation)를 동시에 지칭한다. 한편 본절에서 여로보암은 북이스
라엘 10지파가 자발적으로 구성한 '공회'에 초빙되어 왕으로 추대되고 있다.
ㅇ왕을 삼았으니 -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즉위하는 장면이다. 르호
보암의 어리석음(12-19절)은 이처럼 북쪽 10지파로 하여금 다윗 가문으로부터 분리해
나가는 당위성을 제공해 주고 말았다. 그런데 망명자 여로보암의 초빙(2, 3절)과 그에
따른 왕위 등극은 북쪽 지파의 민의에 따라 공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다윗-솔로몬 치
하시 자신들의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하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선민 이스
라엘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맺어진 계약 관계를 생각할 때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 즉
자신의 이익과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이기주의적 산물이라 하겠다. 한편 본서 저자는
이후 열왕의 즉위를 기록함에 있어 남과 북에 차이를 둔다. 즉 남왕국 왕들의 즉위시
에는 르호보암의 예에서 보듯, 1 즉위시의 연령, 2 통치기간, 3 모친의 이름 등이 공
식처럼 언급된다(14:21;15:1, 2, 9, 10;22:41, 42). 그러나 북왕국의 왕들의 경우에는
즉위 연령, 모친의 이름이 생략된다(15:25, 33;16:8). 아마도 이러한 구성의 특징은
본서 기자가 여러자료를 참조하는 가운데 자기 격식에 맞춰 본서를 기록했던 데서 생
긴 특징일 것이다( Szikszai).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 팔만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ㅇ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 - 베냐민 지파가 르호보암의 편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일견 이상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배출했던 베냐민
지파는 이후 줄곧 다윗 왕조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삼하 2:15;3:7 이하;16:5 이하
;20:1,2). 혹자는 이 문제를 수도(首都) 예루살렘이 유다와 베냐민 경계선 위에 있었
던 사실(수 18:28)에서 해결한다(Hammond). 즉 유다와 분리될 경우에 생길 예루살렘의
상실을 베냐민 지파가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공동의 이해 관계가 옛
불화에도 불구하고 두 지파의 연합을 이루게 한 셈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상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 전체가 일치된 행동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왜
냐하면 벧엘, 길갈 등과 같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은 북왕국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29절).
ㅇ싸워...돌리려 하더니 - 이처럼 무력과 강경 일변도인 르호보암의 모습에서 '힘-지
향적' 특성을 읽을수 있다(14, 18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ㅇ스마야 - '스마야'란 이름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그런
데 성경에서 스마야(Shemaiah) 선지자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다음 세가지 뿐이다. 1
본장에서 르호보암의 군사 행동을 중지시킨 일(23,24절). 2 애굽 왕 시삭(Shishak)의
예루살렘 침입 때 유다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한 일(대하 12:5). 3 역대기 저자가 르호
보암의 기사를 종결하면서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을 인용한 사실(대
하 12:15). 이로 미루어, 스마야는 르호보암 당시 남왕국 유다에서 활약한 선지자로
서,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하 12:5-8).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ㅇ유다 왕 - 본절에서 처음으로 '유다 왕'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비록 본절의
시점이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재통일을 위해 북진을 준비하였을 때(21절)이지만 이미
왕국 분열은 기정 사실이었다(11:29-39). 따라서 반쪽만의 왕이기를 자존심 상해하는
르호보암에게 본서 저자는 냉정히 '유다 왕'으로 호칭하는 직절(直節)함을 보이고 있
다. 이로 보아 본서 저자는 왕국 분열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24절).
ㅇ그 남은 백성 - 여기서는 북쪽 지파 사람들이면서 유다 성읍에 거주하는 자들을 가
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절 주석을 참조하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좇아 돌아갔더라

ㅇ형제 - 본절에서 '형제'(아흐)는 공동 조상에게서 나온 광범위한 후손을 모
두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북왕국 이스라엘도 남왕국 유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점에서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며 형제이다. 이와 같이 민족 공동체의 단일성을 나타
내는 경우 '형제'란 말은 보통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말과 병행되어 등장한다(레
25:46-48;신 3:18;24:7 등).
ㅇ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 이스라엘 남북 분열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의 결과로 받아들임에 있어서 북부의 선지자 아히야나 남부의 선지자 스마야가 모두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11:31-33). 15절주석 참조.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ㅇ세겜을 건축하고 - 새로이 수립된 북왕국의 체제 정비에 있어 여로보암이 첫번째
로 한 일은 수도를 정하는 것이었다(Dentan).그리하여 그 수도는 북쪽 지파들의 정치.
종교적 중심지인 세겜(Shechem)으로 결정되었다(1절). 본절은 이제 이와 관련 여로보
암이 수도 세겜의 방비를 강화하는 등의 건설 작업을 수행하였음을 보여준다. 1절 주
석 참조.
ㅇ부느엘 - 한글 개역 성경에 '브누엘'(Penuel, 삿 8:8)로도 번역되어 있는 '부느엘'
은 '브니엘'(Peniel)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곳은 세겜 맞은 편, 그리고 요
단 강 동편 얍복 강가에 위치하였는데 야곱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하여 붙
여진 지명이다(창 32:30). 아마도 여로보암은 수도인 셰겜의 동쪽 방어를 위해 이곳에
요새를 세웠을 것이다.

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ㅇ나라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 비록 세겜을 정치적 구심점으로 삼았지만
여로보암의 마음을 불안케하는 것이 하나있었다. 그것은 다윗 이래로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기능 때문이었다(27절;삼하 6장). 신 12:4-14 강해. '예
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 참조. 그러므로 여로보암에게는 남왕국과의 철저한 분리를
위해서도 어떤 종교적 구심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 우상 숭
배(28-33절)의 발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정책은 경건한 신앙인
들에게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왔으니 그들 중 상당수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대탈출을 시도하였다(대하 11:13-16).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ㅇ올라가면 - 북이스라엘 지역에서 볼때 예루살렘이 실지로는 아랫쪽 남방임에도 불
구하고 '올라가다'(알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변두리가 중심 지역
에 대해 갖는 관계성 때문일 것이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의 예루살렘
의 지위와 중요성을 암시해 준다. 다시 말해 솔로몬의 성전건축 이후 예루살렘은 북쪽
지파들에게도 명실상부한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6-8장).
ㅇ그 주 르호보암 - 문자대로라면, 여로보암도 르호보암이 정통성을 지닌 왕임을내
심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Wordsworth). 왜냐하면 르호보암의 앞에 '주'
(아돈)라는 호칭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를 옹호하는 본서 저자가
여로보암의 행동 동기를 설명하는 가운데 사용한 호칭임을 잊지말아야 한다(Hammond).
따라서 본절의 표현 그대로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을 정통 왕으로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
다.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ㅇ이에 계획하고 - 여기서 '이에'는 26, 27절의 음습(陰濕)한 동기를 가리킨다. 그러
로 26, 27절은 28-33절의 원인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개획하고'(이와아츠)
는 '의논하다'는 뜻이다. 즉 여로보암은 그가 염려하는 문제를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의
논한 것이다.
ㅇ금송아지를 만들고 - 이처럼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의도는 물론 북왕국 백성
들을 차단하여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단순히
본절의 금송아지를 이방의 우상 숭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사실 성전 순례를 원하는
백성들은 그야말로 여호와 신앙에 투철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만일 여
로보암이 우상 숭배를 강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멸의 길이다. 이렇게 볼때 금송아
지는 적어도 시초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과 관련된 그 무엇이었던 것같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는 여호와의 발등상으로서의 상징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Gray).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이러한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1 소의 형상은 여
호와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전통적 상징이었다는 점(Dentan). 2 비록 중심적인 지위
는 갖지 못했어도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소의 형상은 발견된다는 점(7:25). 3 예후, 엘
리야 등이 바알제의를 공격할 때에도 금송아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
(Cobern).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 형상은 과거 모세 당시처럼 우상으로
사용될 위험성을 충분히 안고 있다(출20:4-6). 그러기에 이스라엘 역사상 금송아지 형
상은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우상화된 적이 종종 있다(호8:5이하;12:11;13:2). 본절에
서의 여로보암의 행위 역시 결과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어지럽히는 이방 종교
와의 혼합을 낳았다. 더구나 본문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참된 제사의 동기를 갖지않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15:30,34;16:2,19,26).
ㅇ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 이는 출 32:4에서 언급된
말로서,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언약 자체를 거부케 하려는 의도가 은연 중에 표현되어
있다. 즉 과거 시내 산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
자로서의 모세를 인정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나타내신 여호와의 언약
도 거부하였다(출32!1-6). 그런데도 본절에서 여로보암은 모세 당시의 패역했던 상황
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도록 종용하
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솔로몬 말기의 부패상과 르호보암의 폭정 등을 경험하였던 백성
들 중 대다수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라 주장한 여로보암의 궤
사(詭詐)한 말이 그럴듯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전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마저
팔아버리는 행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마 26:14-16;27:3-10).
-8).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ㅇ벧엘에 두고...단에 둔지라 - 이처럼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예배 중심지로서 특별히
벧엘(Beth-el)과 단(Dan)을 택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이 두 장소는
전통적으로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즉 벧엘은 과거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은곳이며(창 12:8;13:3, 4;28:11-19;31:13;35:1) 사사 시대에는 언약궤가 오랫
동안 이곳에 있었다(삿 20:26). 그리고 단은 그 자체의 신당과 제사장을 소유했던 곳
으로서 그 제사장직이 모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었다(삿 18:30, 31). 2 벧엘
은 북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지역에(수 18:13), 단은 북방 경계지역에 위치하였는바(수
19:47) 북이스라엘의 전백성들에게 거리상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
은 실로(sHILOH)대신 단이 선정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즉 실로는 여러 면에서 단보다
더 예배 중심지로 적합하였으나(수 18:1;삿 21:19;삼상 1:11) 벧엘과 마찬가지로 남방
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피택되지 않은 것이다.
ㅇ벧엘 -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창 12:8). 이곳은 예루살
렘에서 북쪽으로 20km 가량 떨어진, 현재의 베이틴(Beitin)이다. 본래 지명은 루스
(Luz)로서(창 28:19)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선상이면서 동시에 남북 왕국의 경
계선상이기도 한 능선에 위치하였다. 이곳에는 좋은 샘이 많이있어 일찍부터(B.C 3500
년경?) 성읍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오랜 예배 중심지이기도 하다
(Jamieson).
ㅇ단 - '단'은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팔레스틴 최북단의 도시로서 두로와 다
메섹을 잇는 무역로를 굽어 보며 서있다. 이러한 단이 벧엘과 더불어 제2의 성소로 선
정된 이유는 북왕국에서도 북쪽에 거주하는 백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Hammond).
그런데 바알 숭배의 본산지인 두로와 잦은 교류를 하는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 형상은
아무래도 위험했다(White).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ㅇ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 '이 일'이 지칭하는 바는 여로로암이 금송아지 형상을 벧
엘과 단에 둔 일이다(29절). 그런데 이 일이 죄로 판단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이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이다(출 20:4). 2 이는 하나님이 선택
하신 성소(예루살렘)를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신 12:5). 3 그 결과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ㅇ이는 백성들이...숭배함이더라 - 본절의 해석에 대하여선 학자들마다 제각기 의견
이 분분하다. 그러나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1 "백성들
이 '하나같이' 숭배했다"로 보는 입장(Ewald). 2 "백성들이 '한 무리는 벧엘로 한 무
리는 단으로' 숭배하러 갔다"로 보는 입장(Rawlinson 등). 한편 이와 유사한 설명으로
"백성들이 두 곳으로 갔는데, 그 먼 단에까지 숭배하러 갔다"는 해석도 있다(Bahr). 3
초기에는 백성들이 단으로만 숭배하러 갔다고 보는 입장(Hammond). 이상의 세 견해 중
비교적 타당한 것은 두번째 견해인데 이와 관련하여 카일(Keil)은 "단에까지 이르는
전백성이 숭배하였다"는 신축성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31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ㅇ신당을 짓고 -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훼방하기 위해 여로보
암이 취한 조처 중 하나이다. 즉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주로 산당에서 예배하였는바(3:2;삼상 9:12) 이제 여로보암은 다시금 백성들로 하여
금 그같은 산당에서 예배하도록 회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당들은 성전과 달
리 언약의 법궤도 임재의 보증도 없는 곳이다(Keil). 이러한 산당에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 의식과 결합할 가능성 및 유혹이 늘상 있어 왔다. 이에 관하여선 삼상 9:12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ㅇ보통 백성 - 우리말에서 '보통'이 갖는 순한 어감(語感)과 달리 원문의 '미크초
트'는 '황폐하다'는 뜻으로 좀 냉소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통'이란
말은 '아무나 마구 되는 대로' 정도의 비웃음 띤 표현이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레
위인들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출 28:1-4). 그런데도 여로보암이
레위 사람들 대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은 결과 레위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
키기 위하여 대거 남왕국으로 남하하고 말았다 (대하 11:13-17). 이러한 사실이 암시
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율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의 고
유 사명이 여로보암에 의해 훼손된 점이다(Hanke). 민 35:1-8 주석 참조. 따라서 이는
여로보암의 불법성을 두드러지게 증거해 준다.

32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 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ㅇ팔 울 곧 그 달 십 오 일로 절기를 정하여 - 솔로몬 성전의 절기는 7월15일(유대
력)이었다(8:2). 창세기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이 절기는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로서 한 해의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의 절기이다
(8:2, 65;9:25).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참조. 그런데 여로보암이 이 절
기의 날짜를 8월 15일로잡은 것은 자의(恣意)대로 한 것이 아니고 북쪽전통의 복원(復
元)이다. 즉 북쪽은 원래 남쪽에 비해 수확이 한달 가량 늦어졌던 것이다(Bahr,
Keil). 그러나 여로보암의 진정한 목적은 절기의 자연성을 회복하려는 게 아니다. 다
만 이는 백성들이 7월의 장막절에 예루살렘을 방문치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여로
보암은 이로써 체제경쟁에 있어 나름의 종교적 정통성을 구색(具色) 갖추려 했던 것이
다. 그러나 그것은 절기를 7월로 통일되게 지키도록 한 율법과 상반되는 것이다(레
23:34). 따라서 이 역시 죄악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와같은 절기의 분열은
곧 통일 왕국의 정치적 분열에 이어 종교적 분열도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ㅇ그와 같이 행하여 - 이는 곧 남왕국 유다에서 행하는 것과 비슷하게 제사 의식을
흉내냈음을 말한다.즉 절기 때의 제의(祭儀)는 단지 한 장소(벧엘)에서, 왕이 친히
집전(執典)한 것이다(Hammond, 8:62-66;9:25).

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ㅇ자기 마음대로 정한 - 원문은 "그의마음(레브)에서 궁리해 낸(바
다)"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바다'는 나쁜 의미에서 무엇을 궁리한다는 부정적 어감이
실린 단어이다.
ㅇ분향(焚香)하였더라 - 원래 '분향하다'에 해당하는 '카타르'는 분향 뿐 아
니라 모든 번제를 지칭할 수 있는 전문적 용어이다. 그러나 그 문맥상 부정적인 이교
제사와 연결되는 경우에는 대개 '분향하다'로 번역되고 있다(대하 25:14;28:4;렘
1:16;18:15;44:17;호 2:13등). 그대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주로 '불사르다'로 번역
된다(출 29:18;레 1:15;3:16;4:19등). 그런데 본절에서 여로보암의 제사는 그 부정적
의미가 채택되어 '분향하다'로 번역되었다. 여로보암에 대한 열왕기의 부정적 시각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15:30, 34;16:2등).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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