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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여호수아

[스크랩] 여호수아 (8 : 1 ~35)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22
여호수아 8장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ㅇ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 모세 사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의
대업(大業)을 맡기시면서 같은 말을 하셨는데(1:6, 7, 9), 지금 아이 성 공략을 앞두
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이 말을 반복해 주시고 있다. 실로
아이 성 공략의 예상밖의 실패로 낙심하고 있을 여호수아에게 그 성을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Calvin, Keil, Goslinga).
ㅇ군사를 다 거느리고 - 1차 아이 성 공략 때 정탐꾼들의 자신만만한 보고(7:3)만을
믿고 3천명 정도의 병사들만을 파견함으로써 뼈저린 실패를 경험했던(7:4) 여호수아에
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충분한 숫자의 병력을 투입하도록 명하신다(Sizoo). 그러나 이
말이 이스라엘의 군대 병력 60만명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고루 선발된 군사들로서, 아이 성 거민을 정복하는데 충분한 수효
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ㅇ아이로 올라가라 -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는 성읍의 높
고 낮은 위치에 관계없이, 통칭 적군이 성읍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개시할 때 사용되
는 관용적인 표현이다(Campbell). 따라서  NTV는 이 말을 '아이를 공격하라'(attack
Ai)로 번역하였다.
ㅇ아이 - 7:2 주석 참조.
ㅇ네 손에 주었노니 - 이 말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그것을 내가 모세에게 말
한 바와 같이 너와 네 자손에게 주어서 영영히 너희들의 기업이 되게 하겠다'(1:3;
14:9; 신 1:36; 11:24)란 뜻이다. 한편 여기서 '주었다'에 사용된 완료 시제는 장차
되어질 일을 이미 성취된 것인 양 표현하는 소위 예언적 완료형(prophetic perfects)
으로, 이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관계될 때 종종 사용되는 시제이다
(Soggin, Hertzberg).
ㅇ아이 성 전투 - 야음(夜陰)을 틈 타 여호수아는 일단의 부대를 파견하여 아이(Ai)
성 서편에 매복 시켰다.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는 주력 부대를 이끌고 아이 성 동쪽에
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지난 번 전투(7:4, 5)로 득의만만해진 아이 성의 왕은 성문을
활짝 열고 나와 맹렬한 기세로 여호수아 군대를 반격했다. 그러자 여호수아 군대는 패
하는 체하고 거짓 후퇴 작전을 펼쳤다. 아이 성의 모든 군사가 더욱 의기 양양하여 여
호수아 군대를 뒤쫓아 추격하자 그 때를 노리고 있던 이스라엘의 매복 군대가 무방비
상태의 아이 성에 들어가 그 성을 불질렀고, 매복 군대와 함께 협공 작전을 펼쳤다.
물론 승리는 여호수아 군대에게로 돌아갔고 그날 아이 성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완전히
진멸당하였다.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찌니라

ㅇ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행하되 오직...스스로 취하라 - 이 구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했듯이 아이 성 또한 철저히 정복할 것이로되 단지 하나
의 차이점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즉 그것은, 여리고 성을 정복하였을 때는 거민은
물론 그 성읍의 모든 노략물과 가축까지 불태워 하나님께 바치도록 했지만(6:21, 24),
아이 성 정복에서는 노략물과 가축은 그들의 소유로 삼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리고 성은 가나안 땅의 첫번째 정복지였기 때문에 첫 열매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
지는 것이 마땅하였지만(출 23:19; 잠 3:9), 그러나 이제 계속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
행하기 위해서는 노략물의 재활용이 반드시 필요하였기 때문에 아이 성 정복에서는 그
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여리고'에 대해서는 7:2 주석을 참조하라.
ㅇ성뒤에 - 이스라엘의 진영 '길갈'(4:19)이 아이 성 동쪽 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므
로, 아이 성의 뒷편은 아마도 서쪽 편이었을 것이다(Lias).
ㅇ복병 할지니라 -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전쟁에서는 성(城) 주위를 돌므로써 승리
하게 하셨지만, 아이 성 전쟁에서는 매복, 유인  작전(6절)을 통해 승리하게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 정복 방법과 아이 성 정복 방법을 다르게 지
시하셨는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때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가장 최적의 방법들을 지시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본문 외에도 구약 성경에서
는 삿 20:29-41; 삼상 15:4-9; 삼하 5:23-25; 대하 13:14; 렘 51:12 등에 매복(埋伏)
전술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ㅇ용사 삼만 명 - 본절에 언급된 30,000명과 12절에 나타나는 5,000명과의 관계를 두
고 학자들 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다음 네가지 견해로 대별될 수 있다. 즉 (1)
여호수아는 아이 성 주위의 두 지점에 2개  부대를 매복조로 파견했다는 견해이다
(Patrick, Havernick). 즉 처음에는 30,000명을 서북쪽에, 다음으로 5,000명을 서남쪽
에 각각 파견하였다는  견해이다. 그리고 주력 부대는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1절의 '군사를 다거느리고'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주장
한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아이 성 주변에 30,000명을 매복시킬 장소가 마땅치 않을 뿐
더러, 그러한 많은 수효가 전해 들키지 않고 매복한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
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다. (2)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에 투입시킨 총
병력은 모두 30,000명으로서, 이 중 5,000명을 뽑아 아이 성 뒷편에 매복시켰다는 견
해이다(Masius, Hengstenberg). (3)3절의 30,000명은 주력 부대를 의미하는 말이고,
12절의 5,000명이 바로 매복에 파견된 수효라는 견해이다(Calvin). 즉 매복 전략을 펼
치기에는 그 정도의 수효가 적당할 뿐더러, 그래야만 적의 눈에 발각됨 없이 효과적으
로 매복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4)12절은 3절에 대한 보충 설명적으로, 12절의 내용
이 정확하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3절에  언급된 30,000명은 5,000명을 잘못 기록한 필
사자(筆寫煮)의 오기(誤記)라는 것이다(Keil, Goslinga). 즉 이러한 숫자상의 오기(誤
記)는 사본학상 역사서  부분에서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어느 견해가
옳고, 어느 견해가 틀린지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본 주석도 다음 두 가지 추
측을 할 뿐이다. (1)만약 당시 정황으로 보아 아이 성이 인근 벧엘 성과 연합한 상태
였다면(17절; 12:16), 두 속에 도합 35,000명의 매복 군사를 매복시켰다는 첫번째 견
해에도 일리가 있다. (2)그러나 아이 성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5,000명의 매복 수효로
도 충분히 기습 효과를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5,000명의 매복 군
사는 1차 공격(7:4) 때보다 훨씬 많은 수효이기 때문이다.

4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ㅇ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 아이성 정복에 대한 명령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Dake). (1)성읍 뒤로 가서 성읍 가까이 매복하고 예비하라(4절). (2)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7절). (3)성읍을 취하면 불사르고 하나님의 말씀
대로 행하라(8절).
ㅇ매복하되(아라브) - '숨어서 기다리다'라는 뜻으로, 구약 성경에 도합 40
회 나타나는  말이다. 그중에서 사사기(14회)와 여호수아서(7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데, 이 21회의 용례들 대부분은 전쟁의 한 방법으로서 곧 '잠복'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Campbell). 한편 본문에  나타난 매복 전략 등과 같은 일종의 위장 전략을 이용하는
것이 과연 여호와의 군대에게 합당한 것이냐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대해 칼빈(Calvin)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할 만하다. "모든 전쟁은 반드시
공격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사력 보다는 지략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장군이야말로 진정 최고의 지휘관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 전쟁이 조약이나 휴전 및 동
맹의 파기등과 같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라면, 전쟁시 전략.전술을 십분 활용
하는 행위는 결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Keil & Delitzsch, Vol. II. p. 85).

5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 올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ㅇ처음과 같이...쳐 올라 올 것이라 - 여기서 '처음과 같이'는 아이 성 군대가 3천명
의 이스라엘 군사를 맞아 그들 중 36명을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추격한
1차 전투 때의 사건(7:3-5)을 가리킨다.
ㅇ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 여기서의 '도망'은 아이 성 군사의 반격을 받아 싸
움을 포기한 1차 전투시의 도망(7:4)과는 달리 작전상 계획적인 후퇴이다. 이 사실도
모르고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6절)고 쾌재를 부르며 이스라엘을
뒤쫓아 올 아이(Ai) 성 군대는 지난번 승리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스스로 속을 수 밖
에 없을 것이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매복(埋伏) 작전과 아울러 유인
(誘引) 작전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ㅇ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 고대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성읍 거민이
만일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 작전만을  철저히 펼친 다면, 아무리 상대방의 병력이 우
세하다고 할지라도 그 성읍을 정복하기란 매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복한다고 할
지라도 많은 시간과 희생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성의 왕은 승
승장구 돌격해 오던 이스라엘 군대를 자신이 손쉽게  꺾었다는 교만과 자만심에 빠져
방어 작전을 펴는 대신 오히려  총반격 작전을 펼침으로써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고 말
았던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의 1차 패배(7:4)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내부의 부패를 완전 척결하여 성결한 공동체
가 되었을 뿐 아니라, 최소의 희생으로 아이 성을 간단히 정복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룬다'(롬 8:28).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ㅇ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 매복(埋伏)한 곳에서 일어나
성읍을 점령하는 시기에 관해서는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18절은 이 때가 후퇴
하던 여호수아가 뒤돌아서  단창(短槍)을 들고 아이 성을 가리키는 때임을 알게 해준
다. 한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하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데, 만일 복병이 너무 늦게 점령
하면 도망가는 이스라엘 군대가 잡힐 우려가 있고, 반대로 너무 빨리 공격하면 추격하
던 아이 군대가 재빨리 되돌아 와서 성을 지킬 우려가 있어, 자칫 실수하면 오히려 자
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가 빠질  판이었다. 그런데 18-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최적의 시간을 일러주셨고, 여호수아는 그 지시에 충실히 따름으로, 결국 가장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나안 인들의  눈으로 보기에 여호와는 최
고, 최상의 전쟁의 신(神)이었던 것이다.
ㅇ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 '내가 아이성을 네 손에 주었노라
'(1절)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는 말로, 여호수아는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승리
의 확신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3-7절에서 아이 성 정복 전략을 지시한 다음에 이 말
을 한 것은 이 전략대로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왜냐
하면 이번 아이 성 전투는 인간의 전술.전략을 초월하여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
해 주신(1절)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8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ㅇ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 즉 2절에 지시된 바 있는 명령을 뜻한다. 요약하면
(1)여리고 성 정복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거민과 성읍은 죽이고 불사를 것, (2)그러나
가축이나 물건 등은 전리품으로 취할 것 등이다.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ㅇ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 아이(Ai)는 벧엘(Bethel)에서 북서쪽
으로 약 3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12:9; 창 12:8). 또한 이 두 지역 
사이에 높은 돌산이 있었기 때문에 매복하기에는 적절한 곳이었다(Velde, Knobel). 한
편 벧엘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기록된 중요한 곳으로, 아브라함이 처음 이곳에 제단
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한 이래(창 12:8),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로 계
속 나타난다. 7:2 주석 참조.

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ㅇ백성을 점고하고 - '점고(鮎考)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
세다', '계산하다', '방문하다'등의 뜻을 지닌다. 그런데 전쟁과 관련하여 이 말은 진
영(陣營)에서 몰래 빠져 나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살펴볼 때 사용
되었다(삼상 14:17; 왕상 20:26, 왕하 3:6). 여기서도 전투 당일 여호수아가 특별히
백성을 점고한 이유는 혹시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을 배반하여 아이 성 뒤편에 복병한
사실을 저에게 알리러 간 자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지휘관으로서 여호수아의
주도 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
ㅇ장로 들로 더불어...아이로 올라가매 -  아이 성 군사들을 유인할 이스라엘 군사들
은 상대적으로 너무 많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장로들과 함께 아이 성의 군
사를 유인할 병력만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아이 성으로 올라간 것같다.
한편 여기서 '장로'는 혹자(Masius)의 생각처럼 '군사 고문관'(military tribune)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서 여호수아를 도와 보필했던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Keil).

11 그를 좇은 군사가 다 올라가서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편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ㅇ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 아이 성 주변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
어서, 이 골짜기를 건너서 직접 아이 성을 공격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7:4, 5). 그러므로 아이 왕의 자만심을 이용하여 유인 작전을 구사한 여호수아의 전
략은 참으로 적절한 전술이었다. 한편 이 골짜기는 오늘날 '와디 무티야'(Wady
Mutyah)라고 불리운다(F.R. Fay, Robinson).

12 그가 오천명 가량을 택하여 성읍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또 매복시키니

ㅇ오천 명 가량을...또 매복시키니 - 5천 명을 매복시켰다는 본절의 내용은 3만 명을
매복시켰다는 3절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
의 견해는 다양한데, 크게 3가지가 있다. 즉 (1)3만 명(로
쉼 엘레프 이쉬)이란 숫자는 필사자가 사본을 베껴 쓸때 5천명
(하메쉐트 알리핌 이쉬)이란 숫자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추론(Keil,
Bright, Goslinga). (2)밤에 3만 명이 매복했고(9절), 아침에 아이 성 가까이 이르러
5천 명을 더 매복시켰다는(12절) 견해(Velde, Lincoln), (3)모두 3만 5천 명이 동원되
어 3만 명이 적을 유인하고 5천명이 매복한 것이라는 견해(Calvin), 등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3절 주석을 참조하라.

13 이와 같이 성읍 북편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편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ㅇ여호수아가...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 패트릭(Patrick) 감독은 여기서 여호수
아가 아이 성 전투를 앞두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이처럼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자신의 행동이
적군에게 간파당할 것을십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지형상 낮고 불리한 골짜기로 군대
를 이끌고 들어감으로써, 아이 성 군대가 안심하고 반격해 오도록 유인한 듯하다. 여
호수아의 이러한 유인 전략은 14절에서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14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찌기 일어나서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고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ㅇ아이 왕이 보고...급히 나가 - 아이 왕은 지난 번의 전쟁 승리(7:5)로 이스라엘 군
사를 오합지졸로 간주하고 있응을 뿐  아니라, 득의양양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
라엘이 어떤 계략을 가지고 있는 줄도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그저 성급하게 군사 행동
을 취하고 있다. 즉 '성문을 열어 놓고'(17절) 이스라엘 군대를 쫓아가는 엄청난 과오
를 범한 것을 볼 때, 아이 왕이 얼마나 성급했는지를 잘 알수 있다(Sizoo). 그리고 여
기서 '일찌기 일어나서'란 말은 여호수아의 경우처럼(10절) 성실함과 신중함을 나타내
는 말이 아니라, 자만심과 성급함을 보여주는 말이며, '급히'란 말은 '서두르다'를 뜻
하는 '마하르'에서 유래한 말로서, 생각할 여유도 갖지 않고 섣불리 대응한
아이 성 왕의 미련함을 비꼬는 표현이다.
ㅇ아라바 - 종종 사해 남부 지방을 가리키기도 하였고(신 2:8), 요단 동편(신 4:49),
혹은 갈릴리 호수 아래 쪽의 요단 강 골짜기 전체 등을 가리키기도 하였다(삼하 4:7).
여기서는 요단 계곡 주변의 낮은 초원 지대 내지는 광야를 가리킨다.
ㅇ정한 때에  - 번역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말이다. 즉 Modern Language
Bible, NIV는 '정한 장소', KJV와 개역 성경은 '정한 때', 그리고 RSV와 공동 번역
은 '비탈'(the descent)로 번역하였다. 이는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에드'
가 '지정한 때와 장소'를 뜻하기 때문에 이와같은 번역들이 가능하며, 또
이전(1차 전투)에 정한 장소(7:5)라는 점에서 비탈로 의역될 수도 있다.

15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16 그 성 모든 백성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ㅇ거짓 패하여...도망하매 - 여호수아는 적군의 자만심을 십분 활용하여 유인 혹은
후퇴 작전을 썼다(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사용한 매복, 유인
등 일종의 위장 전략의 타당성 여부에 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주경학자
메튜 핸리(Matthew Henry)는 여호수아가 구사한 후퇴 작전을 다음과 같이 구속사적 의
미로 영해(靈解)하였다. 즉 "일시적 패배를 통하여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여호수아의
이 전략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패배하는 듯 보였으나, 부활로 인하여 마침내 영원
한 승리를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업을 상징하고 예표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ㅇ성을 멀리 떠나니  - 적의 자만심을 간파하고  유인(誘引) 작전을 펼친 여호수아의
전략이 그대로 적중하는 순간이다. 6절 주석 참조.

17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ㅇ아이와 벧엘...이스라엘을 따랐더라 - '아이'(Ai) 전쟁과 관련하여 갑작스럽게 '벧
엘'(Bethel)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70인역(LXX)은 '벧엘'을 생략해 버렸고,
노쓰(Noth)같은 학자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고 이를 생략해 버렸다. 그리고 조긴
(Soggin)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였다.
실제 가나안 정복 전쟁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때 '벧엘'의 정복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해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러나 12:16을 보면 '벧엘'이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여러 성들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언급된 점으로 보아, 위의 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벧엘' 역시 이스라엘 군의 추적에 '아이'와 더불어 연합 전선을 폈던 것으로 추
정된다(L. Wood). 즉 '아이'에서 도보로 불과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였던 '벧엘'
은 승승장구하는 이스라엘에 간담이 녹을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이 기
회에  이스라라엘을 완전히 섬멸하고자 '아이' 전쟁에 적극 동참하였을 것이다
(Woudstra). 또는 자력으로는 자기 성읍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소도시 '벧엘'이 '아
이'의 속국으로서 군사를 모두 제공했는지도 모른다(Calvin).
ㅇ성문을 열어 놓고 - 고대 전쟁에서 한 성읍의 성문(城門)은 그 성읍의 존망과 밀접
히 연관되어 있다. 즉 성문을 지키느냐 아니면 성문이 뚫리느냐에 따라 성읍의 운명이
좌우됐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성읍이라도 성문의 빗장을 굳게 잠그고 철저히
방어 작전을 펼친 다면, 상대방 군대는 그 성문을 뚫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
다. 그런데 아이 성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뛰쳐 나왔으니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
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이 그처럼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즉 애
굽의 손아귀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요단 동평의 아모리 족속을 정복하고, 요단 강
을 건너 여리고 성까지 간단히 무너뜨린 이스라엘 군대를 자기들이 손쉽게 꺾었다는
자만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 성 2차 전투는 "교만은 아니라"(잠 16:18)는 교
훈을 남긴 채 아이의 철저한 패망으로 그 막을 내렸다.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ㅇ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 여기서 '단창'(키돈)은  '긴 창
'(Kimchi, Jahn)이나 또는 '방패'(Grotius, Masius)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적에게
세게 던질 수 있는 비교적 짧고 조그만 창(욥 41:30)을 가리키는 말이다(F.R. Fay).
그러므로 단창 자체는 멀리 있는 복병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창을 들어 햇빛에 평
평한 부분을 반시시킴으로써 복병들로 하여금 아이 성을 점령케하는 공격 신호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Fay). 그러므로  단창 자체는 멀리 있는  복병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창을 들어 햇빛에 평평한 부분을 반사시킴으로써 복병들로 하여금 아이 성을 점령케
하는 공격 신호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Fay). 그리고 복병들은 사전에 약속된 그 싸인
(sign)을 보다 확실히 간파하기 위하여 첨병들을 보다 앞, 또는 높은 곳에 배치하였을
것이다(Keil). 한편 여호수아 이 단창을 든 또 하나의 목적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표
현하는 데 있었다. 이미 첫번째 공격에서 실패를 경험하여 불안감을 갖고 있을 이스라
엘 군대에게 그들의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직접 단창을 드는 것은 그들의 불안을 제거
할 뿐  아니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히 효과 있었을 것이다
(Calvin). 이 사실은 전쟁이 끝나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는 기록(26절)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19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ㅇ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 이 불은 도망가던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작전대로 맞아
떨어졌으므로 즉시 반격하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동시에,추격하던 아이 군대에게는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게 하여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
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한편 여기서의 불은 28절에 기록된 성읍을 불태운 불이 아닌,
이스라엘이 성을 장악했다는 신호용 불이었다(Woudstra, Calvin)

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 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21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22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편에서
혹은 저편에서 쳐 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ㅇ여호수아의 군대가 아이 성을 격파한 기본 전술 전략은 매복 -> 유인 -> 협공 등 3
단계 전략이었다. 그 중 본문은 마지막 협공(挾攻) 작전을 펼치는 부분이다. 즉 한번
의 승리(7:4, 5)로 인해 자만심에 들뜬 적군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일단 성에서 유인해
낸 뒤, 복병으로 하여금 성을  점령케 하고, 이후 앞뒤 양쪽에서 협공함으로써 방심한
적의 허(虛)를 찌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이다. 특히 여기에는 애초의 전략
이 마치 자로  잰 듯 꼭 맞아 떨어지는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결국 전쟁은 복병들의
신호용 불을 기점으로, 성을 장악한  복병들의 신호용 불을 기점으로, 성을 장악한 복
병들의 후방 공격과 도망하던 이스라엘  주력 부대의 세찬 반격으로 인해 사면초가(四
面楚歌)가 되어 마치 독 안에 갇힌 쥐 모양 어쩔줄 모르고 당황하는 아이와 벧엘의 연
합 군대를 철저히 격파한 여호수아 군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이처럼 실로 전쟁의
신(삼상 17:47) 여호와가 군대  총사령관이 되시고, 게다가 주도면밀한 지도자의 전략
이 함께 한 전쟁에서 그 결과는 필경 대승리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23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 왔더라

ㅇ아이 왕을 사로잡아...끌어 왔더라 - 필경 한번의 승리(7:4, 5)로 인해 자만심에
들떠 이스라엘을 능멸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신(神) 여호와까지 모독했을 아이 왕은
결국 사로잡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29절).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욥 20:5). 한편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호수아
가 쳐서 멸한 가나안 왕들의 목록 중에 벧엘 왕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12:16),
이 당시 아이 왕과 더불어 벧엘 왕도 죽임을 당한 것 같다(Leon Wood).

24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ㅇ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 '엎드러지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
팔'은 '떨어지다', '죽이다'를 뜻하는 동사로 본절과 렘 19:7; 겔 6:4, 7 등
에서는 '죽이다'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여기서 칼로 죽인 것은 우상을 섬기는 모
든 자들에 대해서는 칼날로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13:15)에 따른 것이다. 여리고
성 거민 역시 이 명령대로 칼날로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13:15)에 따른 것이다.
여리고 성 거민 역시 이 명령대로 칼날로 죽임을 당했다(6:21).
ㅇ아이로 돌아와서...죽이매 - 즉 이는  먼저 광야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뒤쫓던 모든
군사들을 진멸한 후, 성읍으로 다시 돌아가 그 성읍의 모든 거민들을 죽였다는 의미이
다. 이는 일찍이 일반 다른 족속들과는 달리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내린 "호흡있는 자
는 하나도 살리지 말라"(신 20:16)는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
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그분의 사랑과  긍휼의 속성에 맞지 않는 잔인한 명령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명령은 분명 공의의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하는
민족에 대해 친히 내리신 심판 행위로서, 죄악과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해 가지는 구분
의 불타는 듯한 공의의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뿐마나 아니라 역설적으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보존코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사
랑을 나타낸다.

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ㅇ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 "호흡 있는 모든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라
"(신 20:16)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군대는 전투 당일 아이 성 거민 모두를
진멸했다. 그 수호는 도합 12,000명이었는데, 혹자는 그들 가운데는 벧엘 성읍의 거민
들도 일부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Calvin).

26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ㅇ단창을...거두지 아니하였고 - 이는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지팡
이 잡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졌던 사실을 연상시킨다(출 17:8-16;
Bright). 당시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군대 지휘관으로 위임 받아 아말렉을 진멸하는
데 앞장섰으며(출 17:1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전투의 승리 사건을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다(출 17:14). 따라서 지금 아이 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완
전한 승리의 순간까지 단창을 계속 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미 아말렉 전
투에서 모세의 승리 방법을 보았던 그로서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때와 마찬 가지
로 지금도 하나님의 변치 않는 도우심을 바라며 그처럼 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
편, 혹자들(Matthew Henry, Calvin)은 여기 아이 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계속 단창을
들고 서있었다는 사실에서 여호수아의 '자아 부정'(自我否定, self-denial)의 모습을
찾는다. 즉 일찍이 아말렉 전투에서 거둔 승리(출 17:9-13)라든가, 가나안에 파견될
정탐꾼에 뽑힌 사실(민 13:8) 등으로  미루어 보건데, 여호수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전
투(戰鬪)에의 의지가 충만한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당한 패배(7:4, 5)로 인해
이번 아이 성 전투에 직접 칼을 들고 출전하여 싸우고픈 심정이 더욱 간절했을 것이
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모든 인간적인 충동을 억누르고 자신의 칼을 빼어 묵묵히 하
늘을 향해 들고 서 있음으로써 모든 승리에의 영광과 찬양을 위에 계시는 여호와께 돌
릴 것이다. 즉 모든 백성에게 전쟁의 승리가 오직 위로부터 도우시는여호와께로서 말
미암았음을 분명히 현시하고, 아울러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병기 든자'(삼상
31:4-6)에 불과함을 보임으로써, 위풍당당하게 호령하는 지휘관으로서의 자신의 모습
은 감추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진정 여호와의 군대를 이끌고 성전(聖戰)으
로 취득하였다. 이는 2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내린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
을 것이다. 즉 '여리고'(Jericho)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거둔 첫열매된 성읍으
로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했지만, 그 이외의 성읍에서는 거민은 죽이되
전리품은 취득하여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재활용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ㅇ아이를 불살라 - 성서 고고학자 가스탕(Garstang)과 올브라이트(Albright)는 이 지
역에서 발굴된 토기 조각들과 1928년에 실시된 발굴 조사를 토대로 하여 아이 성이 여
리고 성의 멸망과 동시대인 B.C. 1400년경에 멸망되었으리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ㅇ영원한 무더기 - '무더기'(heap)란 말이 공동 번역에는 '페허'로 나와 있다. 고고
학 자료와 성경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아이(Ai)는 여호수아에 의해 함락된 이
후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ㅇ본절에는 생포된(23절) 아이(Ai) 왕의 처리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한마디
로 처참한 처형인데, 이토록 가혹하게 다룬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그 이유는
단순히 백성들의 불타는 적개심을 만족시켜 주고자함 때문이 결코 아니라, 우상 숭배
의 소굴인 가나안 땅의 수괴(首魁)에 대한 공의로운 여호와의 심판 때문이었다
(Calvin).
ㅇ저녁 때가지 나무에 달았다가 - 죽은 자의 시체를 다시금 나무에 매다는 행위는 죽
은 자로 하여금 죽은 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하도록 하게 함이었다(민 25:4;
신 21:22; 삼하 21:8, 9; 에 7:10). 아울러 그것을 보는 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여 같은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ㅇ해질 때에...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 신명기 율법(신 21:23)에 따르면, 시체를
나무에 매단 채 밤새도록 두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 이유는 성결법상 시체는 그 자체
가 부정한 것으로서(민 6:11), 모든 시체는 거룩하고 정결한 땅 가나안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린 채 계속 방치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악인의 시체는 바로 당
일에 땅 속에 묻어 그 부정함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깨끗히 제거 하여야 했다.
ㅇ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 혹자들은 추측하기를, 틀림없이 아이 왕은 성문 어귀 곧
심판과 통치의 왕좌에 앉아 온갖 이방의 불경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리라 생각한다
(Matthew Henry, Calvin). 따라서 평소 거만하고도 위풍 당당하게 자신의 권세를 자랑
했을 바로 그 자리에서 신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결국 시체로 던지움 당했다고 보는
것이다(욥 24:24).
ㅇ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 아이(Ai) 성 전투의 두악인, 아간과 아이 왕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같은 신세가 되어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게 치욕과 경
고거리가 되고 말았다(7:26).

30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ㅇ때에 - 여러 학자들(Knobel, De Wette, Meyer, Rosenmuller 등)은 그리심 산과 에
발산에서 본 축복과 저주의 의식이 시행된 때를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사회가 안정된 때라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본문(30-35절)을 시간적 순서를 뛰어 넘은
삽입 구문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견지에서 70인역(LXX, Septuagint)도 여기서 이
부분을 생략하고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들이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가나안 정복 전
쟁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갑작스럽게 등장한 본문 (30-35절)이 전후 상황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로부터 20마일 이상 떨어진 세겜 땅 에발 산에서 당시 이러한 의식을
순조롭게 진행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란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假
定)은 '성전'(聖戰)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여리고 전
투에서 뿐 아니라, 특히 아이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무엇보다 백성의 성결 및 하나님의
규례 준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정복한 후 그곳으로부터 이틀 거리 정도에 있는 에발 산까지 곧장 진격하여 그곳
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준수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리란 추측을 하는 것은 별로
무리가 되지 않는다(Matthew  Henry, Keil).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남아
있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보다 수월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여호수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ㅇ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 여기서는 여호와를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지
칭한 점이 주목된다. 아마도 이는 이후부터 안약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외에는 다른 어떠한 이방의 우상들도 섬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지적으로 시사하
는 말일 것이다(Keil).
ㅇ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 이와같이 한 것 역시 에발 산(Mt. Ebal)에 율법을
새긴 돌을 세우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라느 신 27:1-8의 규례에 따른 것이다. 협
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중에 에발 산은 저주를 위
해, 그리심 산은 축복을 위해 이미 선택되었다(신 11:29). 그런데 희생의 제단이 축복
의 산인 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중시할 필요
가 있는데, 곧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은 완전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저
주를 면케 해 주는 희생의 제단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일깨
워 주기 위해서였다(Schaeffer). 신 27:4 주석 참조. 한편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대해서는 신 11:29 주석을 참조하라.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ㅇ모세가...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 즉 철연장의 도움 없이 다듬
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은 것은 신 27:5-7에 나타난 모세의 지시와 출 20:24, 25에 기
록된 모세의 율법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같이 제단에 사용되는 돌을 '정'으로 다듬지
않고 채석장에서 나온 자연 그대로의 돌로 사용한 것은, 기교적이로 외형적인 미(美)
를 중시하기 보다는 천연적이고 내면적인 진실된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Matthew Henry).
ㅇ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 신 27::5, 6; 출 20:25 주석 참조.
ㅇ번제와 화목제를...드렸으며 -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 헌신을 목적으로 드려
지는 제사이며(레 1:13-17), '화목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평화와 친교를 목적으
로 드려지는 제사(레 3:1-16)로서, 이와같이 제사가 드려진 것은 신 27:6, 7의 규례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이 번제와 화목제는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처음으로 주어질 때 시내
산에서 드려진 제사로서(출 20:24), 지금  에발 산에서 다시 드려진 것은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시 기역하는 데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Woudstra).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ㅇ모세의 기록한  율법을...그 돌에 기록하매 - 여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은 신
27:3에 따르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가리키지만, 그러나 율법 전체가 그 돌에 모두
기록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율법의 요약을 가리키는
말로(Matthew Henry), 곧 율법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규정 명령들로 간주할 수 있다
(Calvin). 그리고 이 구절에서 '그 돌'은 히브리어 원문상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어
떤 물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정관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따라서 여기서 '그 돌
'은 징으로 쪼지 아니한 거칠거칠한 제단의 돌이 아니라, 신  27:2, 4의 규례를 따라
석회로 매끄럽게 칠한 돌을 말한다(Lias, Fay). 한편, 이와같이 돌 위에 석회칠을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새겨진 율법을 분명히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Woudstra). 신 27:2 주석 참조.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대로 함이라

ㅇ온 이스라엘과...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의 대표자나 또는 백성의 남자로서의 회중 뿐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 및 그들 가운데
있었던 이방인'을 포함한(35절)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뜻한다(Keil). 한편 여기서 이
스라엘 사회에 거주하는 '이방인'(게르)들까지 이스라엘 본토인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축복과 저주의 선언에 첨여했다는 사실은 당시 이방인들이 율법의 공의(公義)
하에서 이스라엘 본토인들과 동등한 취급을 받았음을 보여 주며, 또한 훗날에 이방인
들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란 사실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Matthew Henry).
ㅇ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 -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종교), 행정, 사법의 지도자
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지칭한다. 이들 역시 율법 하에서는 모든 백성들과 동일했다.
ㅇ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 이들은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
궤'(3:3)를 멘 채 양편으로 나뉘어진 백성들의 중앙에 서서 큰 소리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언해야 했다(신 27:9, 14). 이러한 의식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 (1)여호와의
언약궤, 즉 말씀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2)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하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임한다.
ㅇ절반은 그리심 산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 신 27:12, 13의 규례에 따른
것으로,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간 후 여섯 지파(시므온, 레
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는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서고, 또 다른 여섯 지
파(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는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서도록 명령하였
었다. 또한 이때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가운데 선 후 율법을 선포하면 백성들은 '아멘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다. 다만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오른 사람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고,
저주의 산인 에발산에 이른 사람은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
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축복과 저주는 오직 율법의 순종 여부(8:34; 신 28:1-68)에
달린 것이다(Schaeffer).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27:11-15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ㅇ여호수아가...낭독하였으니 - 아마도 이 말은 여호수아가 먼저 낭독하면, 그것을
받아 제사장들이 다시 큰 소리로 낭독한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신 27:14).
ㅇ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 - 여기서 낭독한 율법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
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마다  여러 의견들을 제시한다. 즉 (1)모든 율법은 그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하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이 지켜야 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는 견해, (2)율법의 주목적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질책하는 것이란 점에서 저주만을 가리킨다는 견해로 즉 신 27:15-26에 나오는 12조항
의 저주의 율법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3)신 27:15-26과 28:15-68에 언급된 저
주와, 신 28:1-14에 언급된 축복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 등이다. 아무튼 여기서 어느
견해를 채택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 정신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35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ㅇ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객들 앞에 - 이스라엘 성년 남자는 물론이려니와 평소
인구 조사시 계수함 받지 못하는 여인과 아이를 포함하여, 심지어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들까지도 본 축복과 저주의 의식(儀式)에 참여 했음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님
의 말씀을 지켜, 복 받고 길이 장수하는 데에는 남녀 노소 및 혈통의 차별이 전혀 있
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도 역시
그 누구도 저주의 심판을 면할 길 없음을 또한 시사한다. 따라서 결국 본절은 후일 사
도 바울이 명쾌히 설파한 바, 복음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베푸시는
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갈 3:28) 그리스
도 안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된다는 진리를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골 3:11; 롬 3:29;
10:12; 고전 1:24; 12:13).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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