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4): 모압에서 일어난 사건들(1)(22:2-25장) |
<모압 평지에서 일어난 사건들(22-36장)> 참고지도 보기 ..................................................................................... 1. 발람의 예언(민22-24:) 1-1.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발락 왕이 발람을 고용함(22:2-40) 가. 발락이 발람을 초청함(2-6) 그리하여 모압 왕 발락('약탈자'란 뜻)은 이스라엘을 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미디안의 장로들을 불러서 조언을 구하였다. 미디안의 장로들은 고용된 마술사이거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상업을 하는 대상들이었으므로, 그들은 여러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지역을 다니다 알게된 유명한 술사 한 명을 알고 있었다. 그 이름은 발람이었다. 미디안 장로들은 발락 왕에게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할 것을 권하였다. 발락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발람을 데려오기 위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브돌로 예물과 함께 사자들을 보냈다. 당시에는 마법사들이 특수한 곳에 모여 사는 관습이 있었는데, 브돌은 당시 바벨론 마법사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발락은 발람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6) 발락의 말을 보면 아마도 발람은 축복과 저주를 하는 능력을 가진 자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락은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마도 발람은 이때에 여호와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 때의 10대 재앙 사건이나, 홍해 도하 사건 등은 여러 여행자들이나 대상들에 의해서 두루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가나안에 정탐꾼들이 들어갔을 때에, 라합은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떨고 있다고 고백하였다(수 2:9). 발람은 분명히 여호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를 알게 된 것은 참 선지자로서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기 위하여 이방 땅에 이러한 거짓 선지자를 두셨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마치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려던 사람과도 같으며(막 9:38-39, 눅 9:39),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과도 통하는 점이 있다(행 8:13). 발람은 그의 근본적인 탐욕과 인격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어 하였으나, 결국 하나님의 신은 그 반대를 말하게 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여호와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거짓 선지자의 특징인 이중 인격을 나타낸 전형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참 선지자를 말하는 '선지자(나비)나, '선견자'(호제)라는 말로 불리지 않고, 시종일관 '술사'(학코셈)라는 말로 불리우고 있다(수 13:22). 이 복술은 성경에서 엄격하게 금해지고 있으며, 여호와께 가증하게 취급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되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을 저주에 빠뜨릴 계책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성령으로 중생되지 못한 채로 하나님을 믿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이중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든지 진신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열납해 주신다. 이것은 고넬료의 사건이나(행 10장),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의 경우를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발람은 이러한 사람들과 같인 진정한 회심자는 아니었으며, 그는 단지 직업과 돈을 위해서 여호와 종교를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에게도 간섭하셔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축복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할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에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너와 함께 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이 누구인지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9). 발람은 그들이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보낸 자들이며, 그들은 지금 애굽에서 나와서 온 지면을 덮고 있는 한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대답했다(10-11). 하나님께서는 즉시 분명하게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고 지시해 주셨다(12). 발람은 서운한 마음으로 다음 날 아침에 장로들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였다. "너희는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13). 모압의 귀족들은 할 수 없이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그 말을 전하였다(14).
그러나 발람은 아무리 많은 은 금을 준다고 해도 자신은 어기거나 더하거나 덜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18). 발람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 물어보겠다고 그들에게 대답하였다(19).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 할지니라"(20).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그가 모압의 귀족들을 따라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말만 하라고 다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발락의 의도와는 달리 발람을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탐심에 기울어진 발람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만 하라고 미리 단속해 주셨다.
두 번째로 여호와의 사자는 좌우에 담이 있는 포도원 사이에 난 길에서 발람을 죽이려고 서 있었다. 이번에도 그 사자를 발견한 것은 나귀였다. 나귀는 그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비벼서 발람의 발을 상하게 했다. 그러자 발람은 나귀가 말을 안 듣는다고 채찍질하였다(24-25). 여호와의 사자는 좀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가 없는 좁은 길에 서 있었다. 나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자, 아예 발람의 밑에 엎드려 버렸다. 그러자 발람은 너무 화가 나서 나귀를 지팡이로 때렸다(26-27).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나귀의 입을 여셨으며, 나귀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그러자 발람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으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29). 나귀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이같이 행하는 풍습이 있더냐?" 발람은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열어 주셨으며,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람은 곧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의 행동에 대하여 책망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노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기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32-33). 이 말을 들은 발람은 두려워하면서 여호와의 사자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34).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그의 가는 길은 허락하되 하나님께서 시키는 말만 하라고 다짐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뇌물로 인해 어두워진 발람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람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행하여 발람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미리 경고시켜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다. 성도들은 때때로 재물과 명예로 인해서 양심을 어겨 가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길을 갈 때가 있다. 바로 그 때에 성령께서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경고를 해 주신다. 우리는 이 때에 조심해서 신속히 그 길에서 돌아서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발람은 후에 이 일로 인해서 발락 왕이 아무리 그를 달래고 위협해도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발람의 길에는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발람은 후에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있는 계책을 발락 왕에게 가르쳐 주고 만다. 그는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범죄로 치우쳐서 죄를 범하게 되고 이로 인해 심판을 받게된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거짓 선지자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발람은 번제를 드린 후에 발락 왕에게 점괘를 얻기 위해서 번제물 곁에 서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 사태가 난 산으로 올라갔다. '사태'란 말은 히브리어로 '솨파'인데, 이 말은 '문지르다', 또는 '벌거벗기다'란 뜻이다. 그러므로 '사태가 난 산'이란 말은 산꼭대기에 솟아오른 암벽이나, 벌거숭이가 된 산꼭대기를 말한다. 이러한 곳은 술사들이 점괘를 얻기 위해서 자주 찾는 곳이었다. 그는 여호와 종교를 이방 종교와 혼합한 형태를 튀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 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그 말을 발락 왕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셨다(4-5). 발람이 돌아왔을 때 발락왕과 모압의 귀족들은 번제물 곁에 서 있었다(6). 발람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7-8) 발람은 발락이 자신을 아람, 곧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산에서 데려와서, 모압 산에 세워놓고 애곱을 저주하라고 시켰다고 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자기도 저주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애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의 1/4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9-10) 발람은 자신이 바위 위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는 구별된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열 방 중에서 구별된 제사장 민족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땅의 티끌 같이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발람은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 수의 1/4도 셀 수 없다고 노래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 커녕 자신도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을 받고, 그들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고 노래하였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기다리던 발락 왕은 이 말을 듣고 심히 노하였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람을 먼 땅에서 데려왔으나.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였고, 자기도 그들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발람은 심히 노한 발락 왕을 향해서 자신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태도였다. 그가 정말 성실한 선지자였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이스라엘을 향해 자신의 의지로도 축복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일이 생명을 요구한다고 해도 담대하게 외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는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행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11-12).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18-20) 발람은 발락을 왕이라 하지 않고 십볼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왕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발락은 혹시 장소가 바뀌면 점괘가 변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락에게 하나님은 사람과 같이 한 번 한 말씀을 바꾸는 분이 아니시며, 한 번 말씀하시면 그것을 반드시 실행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이스라엘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발람도 역시 그들을 축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노래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21-2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야벤'(허물, 악, 무가치함)을 보지 않으시고, 그들의 '아말'(패역, 비참, 죄악)을 보지 않으실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허물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실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는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는 환호의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며 그 힘이 마치 들소와 같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인도한다는 말은 분사로서 이전에도 인도하셨고, 지금도 역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들소와 같이 그 힘이 강하다. 모세는 후에 요셉 지파가 들소와 같이 강성해서 이방 민족들을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한다(신 33:17). 발람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떠한 사술이나 복술로도 그들을 해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신 위대한 일에 대하여 노래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유다의 상징인 사자로 표현되었다(창 49:9). 이스라엘의 정복 모습은 마치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자들이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과 같았다. 그들은 마치 사자가 그 사냥감을 잡아서 그 고기와 피를 먹기 전에는 눕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을 정복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자 발락은 발람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그는 발람에게 화가 나서 저주도 하지 말고 축복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자 발람은 처음부터 자기가 한 말대로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밖에는 할 수 없다고 다시 대답하였다(25-26).
발락 왕은 두 번째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도 다시 장소를 옮겼다. 그는 장소를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로 옮겨서 전과 같이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마다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씩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23:27-30). 이 브올산은 벧브올 성읍 근처에 있는 아바림 산맥의 한 봉우리였는데, 이스라엘은 바로 이 벧브올 성읍 맞은편에 진을 치고 있었다(신 3:29, 4:46). 그러므로 이들은 이스라엘 진에 더 가까이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벧브올 성읍은 후에 르우벤 자손의 기업이 되었다(수 13:20). 브올은 헤스본에서 로마 마일로 약 7마일 거리에 있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선히 여기시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않고 곧바로 그 얼굴을 광야로 향하였다. 발람이 이스라엘의 각 지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했다. 그는 두 번째 까지는 사술을 써서 무아경에서 계시를 받았으나, 세 번째 부터는 선지자들과 같이 이상 속에서 계시를 받았다. 그는 이때에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어 다시 노래를 불렀다(24:1-2). 브올의 아들 발람은 눈을 감고 계시를 받는 상태에 들어갔다. 정상적인 선지자들은 눈을 감지 않고도 하나님과 정상적으로 대화하며 또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발람은 비록 사술은 쓰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서 계시를 받으려고 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상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할 때에 두려워하여 엎드려서 눈을 뜨게 되었다(3-4). 그리고 이같이 노래하였다.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 위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벼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5-9) 발람은 이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가나안의 아름다움을 보고 이에 대하여 노래했다. 이스라엘은 시내가 흐르는 골짜기들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 땅은 강가에 있는 동산과 같이 풍요로울 것이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과 백향목 같을 것이다. '침향목들'(아할림)은 향기가 뛰어나서 매우 비싼 향 재료들로 사용되었으며, 백향목은 곧고 높게, 그리고 무성하게 자라서, 내구력이 매우 강한 값비싼 나무였다. 이러한 상징들은 가나안 땅이 아름답고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발람은 이스라엘이 사는 거처에서 주제를 바꾸어 이제 이스라엘 자체에 대하여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마치 물이 가득한 물통을 들고 가는 사람과 같으며, 그 후손들은 물이 많은 풍요로운 땅에 살게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아각보다 높아서 그 나라가 진흥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각은 아말렉의 왕을 일컫는 칭호로서 이것은 마치 애굽 왕을 바로라고 부르고 블레셋 왕을 아비멜렉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최초로 공격하여 이스라엘의 적이 된 나라로서 이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의 왕이 그 모든 대적들의 왕들보다 높아서 그 모든 대적을 정복하고 나라가 크게 부흥하게 될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10대 재앙을 통해서 애굽에서 구원해 낸 민족으로서 그들의 재적들을 삼키고, 그 뼈를 짓밟으며, 화살을 쏘아 그들을 꿰뚫는 들소와 같은 민족이다. 이스라엘은 사자와 같아서 그가 누우면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강력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노래는 야곱과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서 축복한 내용과도 일치한다(창 49:9, 신 33:17). 그리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마다 축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마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발락 왕은 대단히 노하여 손뼉을 치면서 발람에게 말하였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발람을 불렀는데, 그는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저주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더 이상 발람이 필요 없으니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는 자신이 발람을 존귀케 하려 하였으나, 여호와가 이를 막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발람은 처음부터 자기가 말한 대로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어길 수 없으며, 그가 주시는 말씀만을 전할 수 밖애 없다고 거듭하여 대답하였다(10-13).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15-17) 여기에서 발람은 앞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추가된 것은 자신이 전능하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라고 한 점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말한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모압을 이스라엘이 치게 될 것을 미리 보았다. 그러나 그 일은 가까운 일이 아니라 먼 장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발람은 먼 미래에 이스라엘에 위대한 통치자가 나타날 것을 보았다. 발람은 이 통치자를 별과 홀로서 나타내었다. 별은 위대한 인물이나 왕을 상징하며, 홀은 통치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별과 홀은 위대한 통치자를 상징한다(창 49:10). 그 왕은 모압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쳐서 파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소동하는 족속들'인 모압 족속들을 다 멸할 것이다. 이 예언은 다윗 왕 때에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 발람의 예언은 모압을 지나서 그 남부에 있는 에돔 족속에게로 이어진다.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의 가는 길을 방해하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의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이스라엘이 에돔을 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에돔을 치지 못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이다. 에돔은 스스로 약해 질 것이다. 그러나 에돔이 약해질수록 이스라엘은 더욱 더 용감히 행동할 것이다. 이 예언도 다윗 때에 성취되었다(삼하 8:14, 왕상 11;15, 대상 18:12-13). 그러나 이 일이 완전히 성취된 때는 그리스도 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윗 이후에도 에돔은 소수이지만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반대하여 일어났고, 후일에는 에돔 족속인 헤롯왕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통치권을 빼앗기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에돔 족속은 로마가 그들에게서 통치권을 빼앗으면서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온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셨다(18-19). 에돔 족속에 대한 예언에 뒤이어서 아말렉에 대한 예언이 나타난다. 여가에서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최초로 공격하였고, 후에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로써 열국 중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데 앞장 섰기 때문에 열국 중에서 으뜸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해서 아말렉을 친 때부터 시작해서 히스기야 왕 때에 이르러서 성취되었다(20). 발람은 아말렉에 이어서 앗수르의 미래에 대해서도 예언하였다. 앗수르는 장차 동망에서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대적할 세계 최대의 강국이 될 나라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앗수르는 앗수르만이 아니라, 후에 그 나라를 이어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대적할 모든 강대국도 포함한다. 발람은 가인의 족속이 바위 위에 있는 견고한 요새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가인 족속은 약해져서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여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친 앗수르도 심판하실 것인데, 그 심판은 너무 커서 살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을 칠 사람은 깃딤 해변에서 배를 타고 올 것이다. 깃딤은 구브로의 수도인데, 이 깃딤은 헬라와 베니게 사이에 있었다. 깃딤은 베니게 해상 무역의 주요 기항지였으므로 동방으로 가는 배들은 반드시 중간에서 구브로를 경유해야만 했다(사 23:1). 앗수르르 치기 위해서 올 민족은 깃딤 저 편에서 배를 타고 올 것인데, 그 민족이 누구인가에 대하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이 민족이 와서 앗수르와 에벨을 칠 것이다. 이들은 에벨에서 벨렉으로 이어지는 혈통에서 난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또 에벨에서 욕단으로 이어지는 혈통에서 난 사람들을 말한다(창 10:21). 그러므로 앗수르는 가장 동편에 있는 셈 족속을 대표하는 나라이며, 에벨은 서편에 고하는 셈 족속, 곧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에게서 난 자손들을 대표한다(창 10:21). 그러나 이들을 치러 사족에서 오는 나라도 역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강대국들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발람은 이 예언을 통해서 역사상에 모압과 같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지만, 결국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발람은 결국 한 별과 홀리신 메시야가 오셔서 이 모든 대적들을 멸하실 것이라고 하였다(21-24). 신약에서 마태는 이 별에 대한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켰다(마 2:1-11). 먼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은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난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들은 그 곳에 살던 발람의 예언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예언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하였으며, 성령께서 그들에게 그 왕이 탄생하였다는 것을 별을 통해서 알게 해주셨다. 동방 박사들은 발람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알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야곱은 유다 지파에서 나실 '실로'(평화를 주는 자)가 모든 왕들의 위에 서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창 49:10). 이 별은 이스라엘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다주고, 이스라엘과 온 민족들에게 평화를 주실 평화의 왕이 되실 것이다. 이 말은 한 후에 발람은 일어나서 자기의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의 곳으로 돌아갔다(25). 그러나 (민 31:16)을 보면 발람은 그 길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미디안 사람들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로 이끌 계책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뽁을 할 때까지도 그들과 함께 있다가 미디안의 다섯 왕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민 31:8, 수 13:22). 발람은 비록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그의 본심은 발락 왕이 주기로 한 재물과 명예를 탐내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던 것이다. 발람은 하나님의 신이 떠난 후에 다시 자기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계책을 꾸몄던 것이다. <적용과 교훈> 1.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축복하신 백성은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 2. 바알브올 사건(25:1-18) 2-1.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이스라엘(1-5)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발람의 저주로부터 신실하게 지켜 주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다. 그들은 발람의 계책에 말려서 이교와 성적 타락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은 모압 평지의 싯딤에 있는 동안에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압인들의 초청을 받아들여 모압 신들을 섬기는 제사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고, 그 신들에게 절하였으며, 바알브올의 음란한 제사의식에 참여하였다. 발락 왕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데 실패하였으나, 이와 같은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받게 만드는 일에 성공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신실하게 대해 주셨으나, 이스라엘은 너무도 쉽게 그 언약을 버렸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서 바알에게 소속된 자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따라 선악과를 먹었다가 사단에게 속하게 된 것과도 같았다(1-3(상)).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으며, 이 일에 관계된 두령들을 찾아서 태양을 향하여 나무에 매달라고 지시하셨다. 나무에 매다는 것을 그 당시 사형 제도 중의 하나였다. 앗수르와 파사에서는 사형수들의 몸에 막대기를 꽂아서 죽이거나, 기둥이나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죽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하셨다. 모세는 이 명령을 사사들에게 전했다. 아마도 모세는 이들이 모압의 제사의식에 초대된 일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모압인들은 모세가 알면 그들의 일을 성사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은 은밀하게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3(상)-5)
바로 그때에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이 광경을 보고 마음에 거룩한 분노를 느꼈다. 그는 즉시 일어나서 손에 창을 들고 그 남자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 남자는 자기 장막에서 태연하게 미디안 여인과 음행을 하고 있었다. 비느하스는 손에 잡은 창으로 그 남자와 여인을 죽여버렸다. 이로 인해 여호와의 분노가 그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에 내렸던 염병이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날에 염병으로 죽은 자는 24,000명이나 되었다. 바울은 (고전 10:8)에서 염병에 죽은 자의 수가 23,000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아마도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1,000명이었고, 병으로 죽은 자가 23,000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3. 평화의 언약(9-13)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족장을 죽인 일이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이것은 마치 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린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비느하스의 의로운 분노로 인해 가라앉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백성들이 죄에 빠져 갈 때에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분노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는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하는 놀라운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 후에 비느하스와 그 후손들이 대대로 백성들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평화의 언약"이라고 부르셨다. 이 약속에 따라 비느하스의 자손은 엘리 제사장 때를 제외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자. 그들은 그 자리를 만민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메시야께 돌려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일으킨 미디안을 박해하고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셨다. 이 일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고의로 저주에 빠뜨리기 위해서 음모를 짜서 그 일을 실행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 일은 신실하게 지켜졌다.
1.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시지만, 그 백성들은 쉽게 하나님을 버리고 죄에 빠진다. 3-1. 인구 조사(1-51) 하나님께서는 바알브올 사건 이후에 모세와 엘르아살에게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군대에 나갈만한 모든 자를 계수 하라고 지시하셨다(1-2). 이 조사는 가나안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들이 군대 조직을 재정비하고, 땅을 분배받기 위한 것이었다. 모세와 엘르아살은 이 명령을 각 족장들에게 전달하였으며, 각 족장들은 자기 지파의 가족을 따라서 그 수를 계수 하였다(3-4). 민 1장의 조사는 족장 중심이었다면, 이번 조사는 가족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비교적 가족에 대한 명단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조사의 내용을 민 1장의 인구 조사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가. 르우벤 지파(5-11)-43,730 명 나. 시므온 지파(12-14)-22,200명 다. 갓 지파(15-18)-40,400명 라. 유다 지파(19-22)-76,500명 마. 잇사갈 지파(23-25)-64,300명 바. 스불론 지파(26-27)-60,500명 사. 므낫세 지파(28-34)-52,700명 아. 에브라임 지파(35-37)-32,500명 자. 베냐민 지파(38-41)-45,600명 차. 단 지파(42-43)-64,400명 카. 아셀 지파(44-47)-53,400명 타. 스불론 지파(48-50)-45,400명 파. 합계(51)(601,730명) 3-2. 땅 분배 방법(52-56)
<적용 및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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