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베드로후서

[스크랩] 베드로후서 (3 : 1~1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28
베드로후서 3장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ㅇ개역성경에는 '에데'('이미')가 생략되어 있다. 이 단어는 본절의 '둘째
편지'를 수식하는 것으로 본서가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후 얼마되지 않아서 기록되었음
을 나타낸다.
ㅇ사랑하는 자들아 - 본문은 베드로가 본서의 수신자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수신자에
대한 베드로의 깊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친근감을 시사한다. 한편 보문에 해당하는 헬
라어 '아가페토이'는 호격이다. 베드로가 수신자들을 호격을 사
용하여 부름으로(8,14,17절)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Green, Morris, Gibson).
ㅇ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 본서가 '둘째 편지'라고 한다면 '첫째 편지'는 어
떤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본서가 본래 앞부분과 본장이 분
리된 편지여서 '첫째 편지'는 본서 1,2장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rotius, McNamara).
(2) 혹자는 유다가 유다서와 본서를 썼으며,'첫째 편지'는 '유다서'를 가리킨다고 주
장한다(Robinson, Smith). (3) 혹자는 '첫째 편지'는 잃어버린 서신이라고 주장한다
(Spitta, Zahn, Green). (4) 혹자는 베드로전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igg, Blum,
Bauckham). 이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본서 서론 참조).
ㅇ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 본문의 '진실한 마음'의 헬라어 '에일
리크리네 디아노이안'은 문자적으로
'순전한 생각' 혹은 '순수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수신자들의 생각이 부도덕한
욕망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타락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Bauckham). 한편 '일깨워
생각하게'라는 말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
록 새롭게 일깨우는 것을 의미한다(유 1:5). 이것은 본서가 수신자들로 하여금 이단
사설에 빠지지 않고 과거의 진실한 마음을 갖도록 일깨워 순결하게 하기위해 기록되었
음을 시사한다.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ㅇ곧...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곧'은 시간적 의미를 나타내는 부사가 아니라 본절
이 1절의 연속임을 나타내주는 연결 부사로서 본절이 베드로가 수신자들을 일깨우고자
하는 내용임을 나타낸다.
ㅇ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 '거룩한'은 거짓 교사들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부
인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1:19-21) 선지자들이 전하여 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영
감으로 되었음을 시사한다(Cranfield, Green). 또한 '예언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
로에이레메논'은 완료 수동태 분사로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이 영구한 것임을 나타낸다. 수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단회적으로 주신 완료된 예언
의 말씀을 통해 지금도 말씀하신다는 사실을(Mayor) 상기해서 이를 부인하는 거짓 교
사의 가르침을 대적하고 순수한 마음을 통해 지켜야 한다.
ㅇ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 -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
의 사도들'의 헬라어 '톤 아포스톨론 휘몬 투 퀴리우카이 소테로스'
는 이중 소유격으로 '기
원', '알림'을 나타내는 독특한 표현법이다(Mayor, Gibson, Morris). 이것은 '명하신
것'이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었으나 주님에게서 나왔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롬 1:2;유
1:17)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기인한
것임을 시사한다(Cranfield, Green, Bauckham). 따라서 본절은 구원의 진리를 예언한
선지자들과, 그것을 실제로 성취하신 그리스도와, 또 그것을 효과있게 해석하고 전파
한 사도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Calvin). 한편 '너희 사도들'에 대한 해석은 세 가
지이다. (1)혹자는 당시 모든 사도들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속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 주장한다(Moffatt, Schelkle, Kelly, Schrage). (2)혹자는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하여 준 사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pitta, Zahn, Bauckham, Cranfield, Mayor,
Fornberg).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하나님의 말씀
을 전하여 준 사도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ㅇ먼저 이것을 알지니 - '알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스콘테스'
는 독립 분사 구문으로 베드로가 가르치고 전파할 때 흔히 사용한 문자의 형
식이다(1:20, Bigg). 베드로는 이와 같은 독립 분사 구문을 앞서 언급한 예언자와 사
도들의 말씀과 관련하여 경고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행 20:29-31;딤전 4:1,
Cranfield). 먼저 수신자들은 사도와 예언자들이 전하여 준 말씀을 알아야만 한다. 그
것은 '말세에'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이다(Blum).
말세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프 에스카톤 톤헤메론'
은 문자적으로 '마지막 날들에'라는 의미이며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벧전 1:5,20;유 1:18, Green, Blum). 이처럼 신약
시대를 '말세'라고 표현한 것은 오순절이후 세상의 심판 때 성취될 주의 재림을 기대
함을 암시한다.
ㅇ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 '기롱하는 자들'은
미래의 종말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며(2:2,3,10,13-18,Blum) '기롱한다'는
하나님을 경멸하고 모독하는 교만한 언사를 나타낸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악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조롱하는 자들이다
(Bauckham). 한편 '기롱하는 자들이...기롱하여'의 헬라어는 '엘류손타이...엠파이크
타이'로서 동사가 먼저 나오고 주어가
마지막에 놓여 있다. 본문의 이러한 구조는 기롱하는 자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을 시사
한다(Morris, Bigg). 말세에 거짓 교사의 등장은 성경 전체에서 교훈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전하여 준 말씀을 잘 숙지하여 거짓 가르침에 대
적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ㅇ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 본절은 기롱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기
롱은 '주의 강림' 즉,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주의 재림을 부
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림에 관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으며(마 24:34) 승천하
실 때 천사가 약속하였으며(행 1:11; 3:20)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굳게
믿고 전파하였다(살전 4:15;5:1-11;살후 2:1;벧전 4:7).따라서 주님은 약속이 어디 있
느냐는 기롱자들의 주장은 교회를 허물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 것이었다(Calvin).
이러한 주의 재림에 대한 기롱자들의 조소는 마지막 날에 혀로 조소한 그 사실로 인해
멸망당할 것이다(사 5:18,19;렘 17:15;마 24:38;눅 17:26-30).
ㅇ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있다 하니 - 본문은 기롱자들
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근거이다. '조상들'에 대해서 혹자는 최초의 그리스도
인 세대라고 주장하나(Kelly,Cranfield, Schelkle, Gilson) 구약의 조상들을 지칭한다
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히 1:1, Blum). 왜냐하면 이것은 신약성경 전반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요 6:31;행 3:13;롬 9:5, Green, Bigg).한편 '잔다'는 죽
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막 5:39;요 11:11)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주님
과 함께 평안이 쉬며 부활을 기다리는 축복의 상태임을 암시한다. '그냥 있다'에 해당
하는 헬라어 '디아메네이'는 '지속되다' 혹은 '계속되다'라는
의미로 갑작스런 이변이 일어나지 않고 과거나 현재처럼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타낸
다. 기롱자들은 창조 이래로 세상의 모습과 자연 법칙이 변하지 않고 규칙적인 것처럼
구약의 조상들도 수없이 잠들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계속적으로 반복될 뿐이기 때
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ㅇ이는...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 본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저희
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RSV, JB, NIV, Plumptre, Bigg, Mayor,
Moffatt, Spicq). (2) 저희가 자기 주장을 위해서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Spitta,W-
indisch, Schelkle, Reicke, Kelly, Schrag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베드로
는 본절에서 기롱자들이 주장한 것 즉 세상이 불변하다는 사실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ㅇ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 본문은 창 1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말
씀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창조사역이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창 1:3-25; 히
11:3).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자연 질서가 그 자체로 충분
하며 불변하다는 기롱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세상은 그 자체가 충분하여 불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좌우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본문은 세상의 창조 과
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다. '하늘의 옛적부터 있는 것'은 창조때에 땅보다 하늘이
먼저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창 1:1, Bauckham, Spitta). 물이 혼돈한 가운데서 윗 궁창과 아랫 궁창으로
구별되면서 땅이 드러났다(창 1:8-10). 본문에 나타난 이런 구체적인 창조 과정은 긍
극적으로 창조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진행된 것을 묘사할 뿐 창조 자체에
있어서 다른 어떤 생각 즉 세상이 불변하다는 기롱자의 사상이 개입될 수 없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ㅇ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 베드로는 본절에서 세상
이 불변하다는 기롱자들의 주장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홍수로 심판하신 사실
을 예로 들어 반박한다. '이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 혼'에서 관계대명
사 '혼'이 받는 선행사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하늘과 땅'이라고 주
장한다(Reicke, Marin). (2)혹자는 '하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ames). (3)혹자는
5절의 '물에서 나와 물로'라고 주장한다(Spitta, Plumtre, Moffatt, Chaine,
Sidebottom). (4)혹자는 '물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Bigg, Kelly, Green).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시
고 물에서 땅이 드러나게 하신 것처럼(5절) 물을 통해서 세상을 심판하셨다. 홍수를
통한 심판은 세상이 불변하다는 기롱자의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
스리시며 섭리하심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심을 예표한
다(시 47:2,3,8).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ㅇ이제 - 이것은 전후 문맥을 연결하는 연결사 '데'로서 현재의 하늘과 땅과
재림후에 전개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13절). 미래에 있을 심판에
는 현재의 하늘과 땅이 불살라지고 새 하늘과 새땅이 약속된다.
ㅇ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 '그 동일한
말씀'은 5, 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명령을 가리킨다. 한때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물
로 심판을 행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미래에 현재의 하늘과 땅을 심판할 것이다
(Morris). 한편 심판의 방법은 과거에는 물이었던 반면에 미래에는 불사름이다. '불
사르기 위하여'는 '불에 의한' 세상의 심판을 의미한다(Robertson).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경건치 않은 자들만 심판하시고 하늘과 땅을 남겨두신 것은 미래
에 있을 불에 의한 심판을 위해서 간직하신 것이다. 이와같이 예정된 심판이 있을 미
래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로서 현재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이는 불심판
이 유보된 때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욕을 좇으며 기롱하는 불경건한 자
들이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잊으려 해도 끝내는 멸망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
25:31-46; 고전 3:13;살후 1:8). 한편 '불 심판'에 대해서 혹자는 범신론적인 스토아
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나(Origen, TDNT), 세상의 마지막 날에 있을 불 심판은
이미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예언 중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구약성경
에서 유래된 것이다(사 29:6;30:30;34:4;단 7:9,10;욜 2:30,31).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ㅇ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 베드로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한 후 사랑하는 수신자들을 위해 시 90:4을 인용
하여 재림 지연에 대한 미혹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천 년이 하루 같은'은
실제로 주의 재림이 연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의 때를 인간들의 시간 개념
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설정해 주신 제한된 인간의 시간 개념은 어
떤 법칙이나 제한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에 비추어 볼때 우리의 천 년
은 하나님의 하루에 불과한 것이다(시 90: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
림이 인간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
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거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거짓 교사의 미혹에 빠지
지 않도록 깨어 경계해야 한다(요 7:1-9 주제 강해 ''카이로스'에 관하여' 참조).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ㅇ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
하여 오래 참으사 - 본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앞절의 시간 개념보다 진보된 설
명이다. '어떤이'는 주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롱자들(3절) 뿐만 아니라 기롱자
들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Blum). 이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더디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
라 '참으시는 것'이다. '참으심'은 피조물을 향해 세워놓은 계획에 대해서 실행하시는
신실한 속성과 더불어 죄인들을 향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
이다. 주의 재림의 지연은 믿음 없는 자들이 보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태만이나 능력
의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래 참으시는 긍휼이다. 한편 '너희를 대
하여'의 헬라어 '에이스 휘마스'는 사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본
문과 같이 기록된 사본은 B,C,P이며, 어떤사본에는 '에이스 헤마스'
('우리를 대하여')로 되어 있으며(K,L) 어떤 사본에는 '디 휘마스'
(A) 이러한 사본상의 차이는 뒤이어 나오는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연관된
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대상에 대한 언급으로, 사본상의 차이에
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으심의 대상이 전인류를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Calvin,
Blum).
ㅇ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본문은 하나님을 기롱
하고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미혹되어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해답이다. 그것은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는 대상에 대하여 혹자는 이미 선택받은 자들중에서
아직 회개치 않은 자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Clark) 타락한 모든 인류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Calvin, Blum).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
의 성품과 많은 차이점이 생기기 때문이다(겔 18:23,32;33:11;롬 11:32;딤전 2:4;딤후
2:25). 하나님께서 전인류가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 구원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를 향해 똑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성품을 시사한
다.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이 공허한 하나님의 약속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불신자들에게 알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성화된 삶
을 영위해야 한다.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ㅇ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 '그러나...오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헥세
이데'는 '헥세이'를 문두에 두고 반의(反意)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
와 함께 연결하여 기술됨으로 기롱자들과 미혹된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께서 오시
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실 것임을 강조한다. 한편 '주의 날'은 일반적으로 심
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재림을 나타낸다(사 2:12;겔 13:5;욜 1:15;말 3:2;행 2:20;고
전 5:5;살전 5:2;살후 2:2, Gibson, Charles). 본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
이 아무런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예기치 않게 임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갑작
스러운 재림은 이미 예수 자신이 말씀하셨고(마 24:43;눅 12:39), 바울과(살전 5:2)
요한이(계 3:3;16:15) 강조한 것으로 베드로는 이런 표현을 재삼 강조하여 수신자들이
기롱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깨어 준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ㅇ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 본문의 '큰 소리로'의 헬라어 '로이제돈'
은 강풍이나, 강한 물살 혹은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
현으로 세상이 파멸되거나 진멸될 때 나타나는 소리를 암시한다(Gibson). 이는 곧 주
의 재림에 나타나게 될 심판의 무서운 상태를 암시한다(계 6:14;20:11).
ㅇ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 '체질'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토이케이아'
는 '스토이코스'('열')에서 유래된 단어로 세상을 구성
하는 원물질 곧 흙, 공기, 불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리
킨다(갈 4:3;골2:8;히 5:12, TDNT, Robertson, Blum). 이것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은 주의 재림 때에 온 세상이 불에 타 해체됨을 시사한
다.
ㅇ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드러나리로다'의 헬라어 '휴레데세
타이'는 사본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본절 역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태워 버리다'(A.L). 이 경우는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살라 지는 것을 나타난다. (2)'발견하다'(B,K,P). 이 경우는 인간
의 모든 것이 심판 때 분명히 알려질 것임을 나타난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중 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불로 태워질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NIV, Blum).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ㅇ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 이제 베드로는 확실한 재림을 앞둔 그리스
도인들이 마땅히 취하여야 할 자세에 대해 권면한다. '어떠한 사람이'의 헬라어 '포타
푸스'는 헬라어 어법상 의문문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감탄사로 사
용된 것으로 하나님이 택한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의 시민인 동시에 하늘나라의 시민권
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Gibson, Charles). 한편 '되어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
파르케인'은 '에이미'('이다', 'be')의 강조형으로 그리스
도인의 지속적으로 영위해야 하는 종말론적 삶을 시사한다.
ㅇ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거룩한'은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헌신된 것을
가리키며 '경건한'은 하나님을 닮아가며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Blum).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확실히 파멸될 것이기 때문에 악을 떠나 하나님의 뜻
대로 살아가야 한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ㅇ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하나님의 날'은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날'과 같은 의미로 10절에서는 '주의 날'로 나타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계 16:14, Green). 한편 '바라보고'의 헬라어 '프로스도콘타스'
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구약에서 발전된 그리스도의 재림
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Robertson, Calvin, Bauckham). 또한 '간절히 사모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퓨돈타스'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면서 오래 참으시는 성품과 관련된 것으로(9절) 문자적으로 '서두
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 60:22의 반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회개를 간절히 원
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회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을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
한다(사 10:23, LXX;행 3:19,20, Eliezer, Bauckham, Blum).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주의 재림에 관한 소망을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통해서만 거짓 교사들의 미혹으로부
터 자신을 지키며 종말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ㅇ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그 날에'
(디 헨)는 문자적으로 '날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 날 곧 '하나님의 날이
오기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 날 곧 '하나님의 날이 오기 때문에' 또는 '그 날의 임재
때문에'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온 세상은 불을 통한 심판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10절).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ㅇ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베드로는
본절에서 하나님의 날에 경건한 자들에게 약속된 것에 대해 구약성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의에 근거한 약속으로(사 11:4,5;45:8;렘 23:5-7;
33:16;단 9:24) 노아 시대에 대 홍수로 불경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죄악된 세상을 새롭
게 하셨듯이 주께서 재림하는 하나님의 날에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과 더불어 하나
님의 의가 영원한 집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킬 약속을 말한다(사 65:17;66:22;
계 21:1).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은 구약성경(사 65:17;66:22)과 유대 묵시문학에 나
타나며(위경 에녹1서 45:4,5;72:1;91:16;바룩 2묵시록 32:6;44:12;57:2;에스라 4서 7:
:75) 신약성경에서도 받아들여져 나타난다(마 19:28;롬 8:21;계 21:1). 이것은 하늘과
땅이 새롭게 창조되어(시 102:26;사 51:6;히 1:11;계 20:11) 새로와지고 완전해짐을
시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날'이 죄악된 세상과 피조물에 대해서는 멸망과 재앙의
의 날이 될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악과 세상의 고난을 도말하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임을 기억하고 기대하며 사모해야 한다(벧전 1:7).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ㅇ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으로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경건한 삶을 실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한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는 거짓 교사들이나 기롱자들의 미혹
되고 방종하는 삶과 대조되는 삶으로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이 살아야 하는 삶이다. 이
런 삶은 그 기준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의에 근거해서 하나
님과 만날 수 있는 온전하고 거룩한 삶을 가리킨다(민 19:2;빌 2:15;벧전 1:19). 한편
'평강 가운데서'는 소망과 인내에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근거한 상태를 의
미한다(1:2).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될
구원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ㅇ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 베드로는 9절에 이어 그리스
도의 재림이 연기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부가적으로 설명한
다. 기롱자들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며, 하나님의 인내이다. 따라서 재림의 지연을 재림을 부정하거나 핑계의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ㅇ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 '형제'라는
호칭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 사역하는 동역자를 부를 때 즐겨 사용한 것이었으며(고후
2:13;빌 2:25;살전 3:2) 당시 로마 교회 지도자들에게 흔히 사용된 호칭이었다(엡
6:21;골 4:7,9;벧전 5:12). 초대 교회 때에 베드로와 바울이 서로 좋지 않은 긴장 관
계에 있었음을 전제하면서(갈 2:11-14) 튀빙겐 학파(Tubingen Schule)는 본절이 본서
가 위작(僞作)임을 나타내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형제간의 사랑
과 용서를 강조했던 사도들의 사상에 어긋난다(엡 6:21;골 4:7,9;몬 1:16, Green,
Bauckham). 사도 베드로는 본절에서 같은 사도로서 바울에게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언
급하고 있으며(Bigg) 자신이 언급한 재림에 관한 교리도 바울의 사상과 일맥 상통함을
암시한다(롬 2:4).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ㅇ또 그 모든 편지에도 - 혹자는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파사이스 에피스톨라이
스'에 정관사가 없으므로 '모든 편지'는 바
울의 서신에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접할 수 있었던 여러 서신들을 지칭한다
고 주장한다(Morris). 그러나 '모든 편지'는 전후 문맥상 바울이 쓴 모든 서신들을 가
리킨다(Gibson, Bigg).
ㅇ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 바울도 자신의 서신에서 여호와의 날, 즉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장한 바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지역은 물론 그 외 많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회람되고 있었던 바울 서
신에도 진술되어 있음을 언급함으로 자신이 언급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히 성취될
것임을 증거한다.
ㅇ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 본문은 바울이 쓴 서신들 가운데 이해하
기 힘든 주제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바울에게 교리적 문제가 있
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신을 받는 독자들이 바울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로,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
는 구원의 교리를 말할 때(롬 3:20-24,28)그것을 성화의 삶을 소홀히 여기는 듯한 주
장으로 이해하거나,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주장을(롬 7:4;8:1,2;갈 3:10) 도덕폐
기론으로 이해하는 것 등이다(롬 6:1-7;고전 6:13-20). 바울이 쓴 주제들이 난해한 것
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ㅇ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 '무식한 자들'의 헬라어 '아마데이스'
는 부정 접두어 '아'와 '배우다'라는 '만다노'의
합성어로 성령으로부터 배우지 못했거나(요 6:45) 사도들로부터 영적 진리들을 배우지
못한 자들(행 2:42)을 가리킨다. 또한 '굳세지 못한 자들'은 믿음의 뿌리가 내리지 않
은 기초가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2:14;눅 22:32).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다른 성경'
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 서신과 성경을 구별하여 '또 다른 종류의 성경'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사도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것을 믿기 때문에(1:20;딤후
3:16,17) '다른 성경'이라 함은 베드로가 바울 서신을 구약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
진 성경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obertson, Green, Blum). 한편 '억지로 풀다
가'에 해당되는 헬라어 '스트레블루신'은 '왜곡하다', '비
틀다'라는 의미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바울 서신과 다른 성경을 자신들
의 뜻에 맞게 아전 인수격으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무지한 생각과 논리로
성경의 교훈들을 왜곡시키고 복잡하게 만들어 고집함으로 멸망당함을 의미한다. 베드
로의 이 같은 단호한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이 난해한 말씀을 접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
는것이 아니다. 단지 성령의 도우심과 조명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바르게 해석할
것을 권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ㅇ베드로는 본절에서 본서 전체에 대한 요약과 함께 마지막 두 가지 권면을 하고 있
다.
ㅇ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 '무법한 자들'은
이제까지 언급된 거짓 교사들, 기롱하는 자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자들로서 영적으로 실족시키려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들의 거짓된
생각과 논리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실족케 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떠나게
한다. 한편 '삼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퓔랏세스데'는 '퓔
랏소'('경계하다')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
로 자신을 위해서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대처하고 깨어 경계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
스도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대처하는 방법은 (1)그들의 활동을 미리 알며 (2)그
들의 부도덕한 삶을 경고하며(2장) (3)사도들의 메시지를 일깨우고(1:16-18) (4)예언
자들의 말씀을 통해 선포하며(2절;1:19) (5)그런 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에 대해 경고
하는 것이다(Blum).
ㅇ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 본문 두번째 권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카리티 카이
그노세이...예수 크리스투'
에서 '은혜와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소유격에 의해서 수식받고 있
다. 이는 '은혜와 지식'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시사한다. 한편 '자라가라'의 헬
라어 '아욱사네테'는 '아욱사노'('자라다')의 미
완료로 계속적으로 자라가야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것에만 만족하여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에 대
한 지식 안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굳세게 서서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ㅇ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 베드로는 마지막 인사말에서 주
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한다. '영광'의 헬라어 '헤 독사'는 문
자적으로 '그 영광'이란 의미로 오직 주님에게만 영광이 있을 것을 나타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암시한다(Calvin). 한편 '영원한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헤메란 아니오노스'는 문자적으로 '그 시대의
날까지'라는 의미로 '여호와의 날' 곧 주의 날인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7,10,12
절,Blum).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주님이 종말에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나타날
'여호와의 날'을 강조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인하여 미혹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교훈에 미혹되지 않고 영광 가운데서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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