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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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야고보서

[스크랩] 야고보서 (5 : 1~2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21
야고보서 (5 : 1~20)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ㅇ들으라 - '들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게 뉜'은 내용의 중대성
을 나타내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야고보의 표현이다(4:13). 야고보는 수신자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불의한 부자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ㅇ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 '임할'의 헬라어 '에페
르코메나이스'는 현재 중간태 분사로 미래에 있을 고
난이 현재로 다가오는 예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Lenski, Mayor, Alford). 부한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현재까지의 삶이 평안하였던 것처럼 미래에도 계속 평안하리라고
여기나 사실 그 평안은 그치고 하나님의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Oesterly, Tasker).
그러기에 야고보는 부자들을 향해 울고 통곡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라우사테'는 귀에 들리도록 우는 것을 나타내며
'통곡'에 해당하는 헬라어 '올롤뤼존테스'는 심판의 선
언에 대해 울부짖는 회개의 모습을 가리킨다(사 13:6;14:31;15:3;욜 1:5,13). 이것은
불의한 부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며 동시에 부자들이 회개할 것을 시사
한다(Calvin, Burdick, Lenski, Blue).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ㅇ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 본문의 '재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플루토스'는 부자들이 마음을 쏟고 있는 포괄적인 세상의 부요
함을 뜻한다(Clark, Robertson). 또한 '옷'은 가지고 있는 재산 중의 일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러한 '부와 옷'은 썩었고 좀먹었다.
'썩었고'의 헬라어 '세세펜'과 '좀먹었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토브로타 게고넨'은 예언적 완료형으로 부
자들의 재물이 미래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이미 무가치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욥
13:38;마 6:19,Blue,Mayor,Martin,Lenski). 즉 그들이 평생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불의하게 추구했던 '부'는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기에 이미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ㅇ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 '녹이 슬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티오타이'는 '...에게 대적하여'의 헬라어
'카타'와 '녹'을 의미하는 '이오스'와의 합성어로 부자들의 부를
상징하는 금과 은이 무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 금과 은은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몇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혹자는 '카티오타이'가 '녹이
슬다'는 뜻 이외에 거울이 더러워지면 잘 볼 수 없듯이 희미하게 더러워진 상태를 묘
사한다고 주장한다(Mayor). (2) 혹자는 이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재산이 무가치하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pes, Clark, Blue). 두 가지 견해 중 문맥상 후자
가 타당하다. 즉 부자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어서 그것들이 오래 방치되었음을 나타
낸다(Burdick). 금과 은에 낀 녹은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거나 선한 일에 쓰지
않고 무익하게 재산을 축적한 불의를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ㅇ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좀 먹고
녹이 슬었으니'와 비교하여 불이 더 빨리 녹게 한다는 것에 유의한다. 따라서 본문은
파멸의 급격한 진전을 묘사한다고 주장한다(Mayor, Blue). (2) 혹자는 본문의 '불'이
최후의 형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불의한 재물에 대한 욕심은 '심판의 불을 모으는
것'과 같아서 본문은 분명한 형벌의 증거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왕하 9:36,Ropes,
Westcott,Hort,Burdick,Gibson,Tasker). 부자들의 결과적인 모습을 지적하는 본문의
내용을 고려할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ㅇ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말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카타이스 헤메라
이스'는 문자적으로 '끝날들' 즉 메시야의 심판의
때를 의미한다(사 2:2;호 3:5;욜 3:1;암 8:11;딤후 3:1). 부자들은 영적인 일에 관심
을 쏟아야 할 때에 물질에 우선적으로 마음을 빼앗겨서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추구
하였기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ㅇ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 '주지 아니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퓌스테레메노스'는 수동태에서
행위지를 나타내는 '아포'와 '기만하다'는 의미를 가진 '휘스테레오'
의 합성어로 여러 가지 핑계로 속여서 품꾼들에게 삯을 주지 아니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부자들이 삯꾼들을 압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품꾼의 삯을 당일로 지불해야 했던 당시의 규례를 어겼던
것이다(레 19:13;신 24:15;말 3:5). 한편 '삯이 소리 지르며'는 정의를 위해 외치며
소리질러 회개를 촉구하던 구약 예언자들의 사상을 반영하는 표현이다(창
18:20;19:13;출 3:7;신 24:15, Tasker, Manton). 이것은 부자들이 지불하지 않은 품꾼
의 삯이 하나님 앞에서 부자들의 죄를 드러내는 증거가 됨을 시사한다.
ㅇ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 '만군의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우 사바오드'는 '백성을 돕는 하늘의 군대'
(삿 5:20;왕하 6:17)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위엄과 탁월한 권능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사 5:9;롬 9:29). 이것은 억울하게 착취를 당한 품꾼들의 탄식(歎息)이 전능한 심판
자이신 하나님께 아뢰어졌음을 시사한다(창 4:10;18:20;19:13, Clark, Martin,
Mayor).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ㅇ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 '사
치하고'의 헬라어 '에트뤼페사테'는 이기주의와 정욕을 위
한 방탕한 생활을 의미하며 '연락하여'는 특별히 도덕적인 방탕을 가리킨다(딤전
5:6). 이것은 일반적으로 물질이 풍부해지면 저지르게 되는 보편적인 죄악들을 시사한
다(Manton, Mayor, Moo). 한편 '도살의 날'은 '땅에서'와 연결되어 '심판의 날'을 의
미한다(사 34:6;겔 21:15,Tasker,Burdick,Moo). 부자들은 도살당할 날이 다가오고 있
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살지우는 소나 양들과 같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 가운데 육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였다(시 17:10).

6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ㅇ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 '옳은 자'
(톤 디카이온)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옳은 자'에 '톤'이란 관사가
사용된 것과 본절 후반절의 표현을 근거로 해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사 53:7;마 26:63,Feuillet). (2) 혹자는 '의로운 자'가 야고보의 명칭이었고, 또한
몇 년이 못되어 순교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야고보 자신으로 보기도 한다(Bengel,
Mayor, Dibelius). (3) 혹자는 관사 '톤'을 계층을 나타내는 단수의 총칭 용법으로 보
아 의로운 계층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Calvin, Ropes,
Burdick, Lenski).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이제까지의 경고 대상은
부자였으며 그 부자가 억압했던 옳은 자는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를 뜻한다. 그런데 그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자는 바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2:5-7).
ㅇ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안티탓세타
이 휘민'은 수사학적 의문문을 통해서
무죄한 사람들의 연약성과 온유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저항하지 않는 의로운 자의 태도
와 그들을 죽이는 불의한 자의 죄악성을 대조시켜 불의한 자들의 극악한 죄를 고발한
다(Burdick, Manton, Tasker, Martin).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ㅇ(4:13)는 명령조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이 어린 어투이다. 야고보는 다시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권면을 하려 한다(1:2,19;2:1,14;3:1,12;4:11).
ㅇ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 '주의 강림'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파루시
아스 투 퀴리우'는 그리스도께서 세
상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을 반영한 종말의 사상을 나타낸다(마 24:3,27,37,39;고전
15:23;살전 2:19;3:13;4:15;5:23;살후 2:1,8;벧후 1:16;3:4;요일 2:28). 한편 '길이
참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크로뒤메사테'는 '길다'
는 의미를 가진 '마크로스'와 '분노' 혹은 '성냄'을 의미하는 '뒤모
스'와의 합성어로 분냄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이 압제나 박해 아래서 자신을 포기하거나 성급한 보복을 삼가하고 고통을 참고 자제
하는 것을 시사한다(롬 2:4;벧전 3:20,Trench, Blue, Lightfoot, Martin, Manton).
ㅇ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
리나니 -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농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앞서 언급한 인내
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당시의 기후를 반영한 것으로 '이른비'
는 10월에서 11월에 오는 비를 가리키며 '늦은 비'는 4월에서 5월간에 오는 추수 직전
의 비를 말한다. 농부가 생명과도 같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주시리라
는 약속을 굳게 믿어 기대하고 인내하는 것처럼(렘 5:24;욜 2:23;슥 10:1) 불의한 자
들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심판하실 그리
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빌 4:13).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ㅇ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 '굳게 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릭사
테'는 '받침','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70인역에서 출애
굽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쳐 주고 지지하던 것을
가리킨다(출 17:12). 따라서 본문은 확실한 신앙에 온전히 서서 핍박 가운데서도 인내
할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함을 시사한다(시 112:8;살후
3:13).
ㅇ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본문은 의로운 자들이 인내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
유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심되는 사상 중의 하나이
다(롬 13:11;고전 15:52;살전 4:15;요일 2:18 등).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는 그리스도
인들이 열매 즉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때이며(7절) 동시에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의 때
이다. 한편 '가까우니라'는 재림과 심판의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세상의 존속 기간이 영원과 비교할 때 짧은 시간임을 시사한다(시 90:4;벧후 3:8,
Mayor, Manton).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ㅇ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 '원망하지'의 헬라어
'스테나제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신음하다'(롬
8:23;고후 5:2,4) 또는 '탄식하다'는 의미이다. '스테나제테'는 금지를 나타내는 '메'
와 연결되어 '탄식'을 지속적으로 금지해야 함을 시사한다(Burdick,
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동기에서 일어나는 불평과 핍박자들을 향한 원한의
탄식을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온전히 기뻐하고(1:2) 그리스도를 소망해
야 한다. 한편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 크리데테'
는 단순과거 수동태 가정법으로 문자적으로는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마 7:1)는 의미이다. 이는 원망을 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
가 정죄를 받아 함께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강조 조건적 명령이다.
ㅇ보라 심판자가 문밖에서 서 계시니라 - 본문은 8절의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는
권면을 보충하는 경고이다.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 심판의 임박성을 강조하여 수
신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마 24:33;막 13:29;계 3:20, Manton, Burdick). 심판자이
신 그리스도는 이미 심판하실 모든 준비를 갖추시고 문밖에 서서 기다리신다.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ㅇ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 야고
보는 본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특별한 직무를 맡았던 선지자들의 고난을 예로
들어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 원래 '이름'은 그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말한'은 예언자들이 주를 대신하여 주의 권위로 예언했음을 의미한다
(Deissmann, Mayor). 이러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는 물론 역사적 상황
(狀況)을 해석하여 그 의미를 백성들에게 전달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박해를 받았다.
고난과 박해속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게 '고난'과 '인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이 된다(요 13:15;히 4:11). 그리스도인
들은 특수한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 인내한 예언자들을 바라봄으로 현재의 고난에서의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마 5:12;23:34;행 7:52;히 11:33, Moo, Martin) 그 위로 가
운데 인내해야만 한다.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ㅇ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 본문은 마 5:11의 산상 수훈을 반영한 것으
로 1:12의 반복이다. 야고보는 인내의 분명한 결과인 축복을 언급함으로 인내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한다(단 12:12;마 5:10).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판
단을 언급하려는 것으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내로 말미암는 축복을 일반화시킨다
(Manton, Tasker).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면서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 야고보는 이런 경우의 실례로 '욥'을 제시한다.
ㅇ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은 보복하지 않는 자제의 인내를 의미하는
'마크로뒤미아'와는(7-10절) 달리 '환경 가운데서 변치 않는
인내'(1:3;골 1:11)를 의미한다(Blue, Burdick). 욥은 순식간에 당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의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기대한 인내의 본이다(욥
1:21,22;2:10;12:2;13:4,5;16:2;19:25-27, Tasker, Adamson). 한편 '주께서 주신 결말
을 보았거니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인내의 가장 모범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그래서 '결말'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해석한다
(Augustine, Bede, Bassett). (2) 혹자는 주께서 욥을 통해 보여주신 결말, 곧 인내하
는 욥에게 시련 전에 주었던 것보다 두 배로 크게 축복하신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욥 42:5,6,12-17, Tasker, Burdick, Manton, Marti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
가 타당하다. 야고보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한 욥을 예로 제시한 후
인내의 결과인 욥의 결말 즉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언급함으로 수신자들로 하여
금 인내토록 권면한다.
ㅇ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 '가장 자비하시고'에 해당하는 헬
라어 '폴뤼스플랑크노스'는 '많다'는 의미를 가진
'폴뤼스'와 '가장 깊은 부분' 혹은 '감정의 자리'를 의미하는 '스프
랑크논'의 합성어로 '온 마음 전체'를 나타낸다(빌 2:1). 이것
은 타인의 고난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동정'을 뜻한다. 또한 '긍휼'에 해당하는 '오이
크티르몬'은 '자비'와 구별없이 사용되나 그보다 더 특수한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눅 6:33).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고난에서든지 인내하는 자를
온전히 이해하셔서 함께 하시는 것은 물론 예비된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시사
한다(Vincent, Lenski, Blue, Gibson, Martin).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ㅇ본절은 마 5:34-37에서 맹세를 금지한 산상수훈을 반영한 것으로 맹세 자체에 대한
금지보다는 무가치하게 맹세함으로 이웃을 속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범하는 결과를 초
래하지 말것을 강조한다.
ㅇ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 맹세하지 말고 -
야고보는 먼저 맹세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본문의 '맹세'는 사람의 생사
를 결정짓는 중대한 순간의 법정적인 맹세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무심코 남발하는 맹
세를 의미한다(마 5:34-37, Burdick, Tadker, Martin). 한편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는 바라새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신성모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
게 남발했던 저들의 가벼운 맹세를 암시한다(마 5:33-36). 실제로 유대인들은 맹세를
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맹세의 대상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경히 여겼다(마
23:16-18). 야고보는 이렇듯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소망하지 못하여 오는 조급함
속에서 '맹세'를 남발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강하게 권고한다.
ㅇ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
본문은 맹세에 대한 적극적 태도를 제시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긍
정과 부정을 분명히 밝힘으로 거짓 맹세를 이용한 모든 외식(外飾)을 피하라는 권면이
다(마 5:37, Manton, Tasker, Mayor). 즉 야고보는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
짓되이 일컫는 참람된 죄악뿐만 아니라, 단순한 언어 생활에서도 무분별하고 주저없이
서약하는 모순과 위선을 피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도무지 맹세하
지 말라'(마 5:33-36)는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으로 마음의 거짓을 맹세로 은폐하는 위
선을 조심하고 단지 진리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분명히 드러냄으로 모순과 위선의 죄
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의미한다(Ropes, Gibson, Moo).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ㅇ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 야고보는 본절에서 '고
난'과 '기도'를 연결시켜 설명함으로 앞절에서 교훈한 헛된 맹세를 하는 자가 참된 기
도를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함과 동시에 고난 가운데서는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함을 권면한다(빌 4:12,13). '기도할 것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스도'는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 기도할 것
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차
원의 행동원리를 가져야 함을 시사한다(Robertson, Burdick, Calvin, Martin).
ㅇ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 본문의 '찬송할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살레토'는 '줄을 잡아 퉁긴다'는 의미를 가진 '프살로'
에서 유래한 말로 구약성경에서는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한다'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는 단순히 '마음으로 찬미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5:9;고전
14:15;엡 5:19). 일반적으로 고난당할 때에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즐거워할 때에
는 방종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야고보는 즐거워하는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
로 찬송을 드려야 함을 권면한다.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ㅇ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 '병든 자'의 해
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연약한 자 곧 연약한 믿음이나
양심을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롬 6:19;14:1;고전 8:9-12, Robertson,
Blue, Manton). (2) 혹자는 신체적으로 질병에 걸린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Davids, Martin, Burdick, Adamson).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
하면 신체적으로 질병에 걸린 자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의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의 '장로들'은 '감독'이나
'목사'와 동일한 명칭으로(행 15:6,22;20:17;21:18;빌 1:1;딛 1:5,7;벧전 5:1-4) 교회
의 대표를 의미한다(Calvin, Burdick, Mayor, Robertson). 병든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
들을 청해서 같이 기도해야 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병든 자를 방문하여 위로하며 믿음
의 기도를 해야 한다(살전 5:14).
ㅇ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 '기름을 바르며'에 해
당하는 헬라어 '알레이프산테스'는 분사로서 문자적으로 '기
름으로 문지르다'를 의미한다(Blue, Roertson, Burdick, Trench). 이렇게 병자에게 기
름을 바르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사회에서의 공통적인 풍습으로서 의식적인 수단이라
기 보다는 의술적인 수단에 가깝다(사 1:6;눅 10:34, Mayor, Ropes, Hayden, Manton,
Tasker, Burdick). 한편 '기도할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쿠사스도산'
은 헬라어 본문에서 주동사에 해당되는 것으로 본문의
강조점이 '알레이프산테스'(기름을 바르다)보다는 '프로슈크사스도산'에 있음을 시사
한다(Burdick). 교회의 지도자들은 병자를 방문하여 치유의 방편으로 의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병자의 나음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Manton, Tasker).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ㅇ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 본절의 '기도'에
는 '믿음의'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는데 이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신유의 기적이 '믿
음'을 요구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비록 '기름'을 바르는 의학적인 치유 행위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여기에는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기도는 믿음으로 하여야 한다
(1:6;마 9:22;막 9:29). 한편 '구원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세이'
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신체적인 질병에서의 구원, 곧 질병의 치
유를 가리킨다고 본다(Ropes, Oesterley, Manton, Burdick, Tasker). (2) 혹자는 죄로
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본다(VonZoden). (3) 혹자는 위의 두 견해를 모두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Clarke).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마 9:21;
막 6:56). 왜냐하면 '주께서 일으키리라'는 진술은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ㅇ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에 해
당하는 헬라어 '칸 하마르티아스'는 조건문으로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지는 않다 할지라도 일부는 죄가 병의 원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신
28:22,27;막 2:5;요 5:14;9:2,Burdick). 또한 이러한 사실은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으
로 병을 주신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고전 11:30). 설사 병든자의 질병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기도는 죄사함의 은혜를 유발하여 질병을 치유
할 수 있다(막 2:5).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죄(謝罪)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
식하고 병든 자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행하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의뢰해야 한다.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ㅇ이러므로 -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연결 접속사 '운'은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의 결론을 유도한다.
ㅇ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 본절에서 야고보가 강조
하는 바는 '죄를 서로 고하며','서로 기도하는 것'이다. '서로'는 상호간의 관계를 나
타내는 것으로 '죄의 고백'이나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상호간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져
야 하는 헬라어 '엑소몰로게이스데'는 '밖으로'라는
의미를 지닌 '에크'와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뜻하는 '호몰로
게오'의 합성어로 상호간의 죄의 고백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
발적인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해성사의 근거라기
보다는 도리어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설의 근거가 된다(Robertson, Manton, Taylor).
ㅇ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 본문의 '의인'은 절대적으로 죄가 없는
의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가 많이 있어도 참되게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받은
자를 나타낸다(롬 3:10, Manton, Mayor, Burdick). 한편 '역사하는'에 해당하는 헬라
어 '에네르구메네'는 두 가지 경우 즉 수동태나 중간태로
해석될 수 있다. 수동태일 경우 기도에 역사하는 주체가 성령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며
(갈 5:6;살후 2:7, Theophylact, Abbott, Oecumenius), 중간태일 경우는 기도 그 자체
가 역사하는 주체임을 나타낸다(Alford, Robertson, Mayor, Lenski). 수동태일 경우
기도하는 행위자가 전적으로 배제되어 전후 문맥과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중간태로
해석함이 더 타당한 듯하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ㅇ본문은 엘리야의 수많은 역사가운데서 비를 멈췄다가 오게 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
다.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가 자연의 현상까지 변동시킨 사실을 드러내어 기도가 역
사하는 힘이 많다는 사실을 예증한다(왕상 17,18장).
ㅇ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 '성정이 같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모이오파데스'는 '유사한'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스'
와 '고난'을 뜻하는 '파도스'의 합성어로 엘리야도 다른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나타낸다(왕상 17:11;19:3;
행 10:26, Vincent, Blue). 이는 엘리야가 위대한 선지자로서 초능력적인 자질을 소유
하여 비를 그치고 내리게 하는 역사를 행한 것이 아님을 시사함과 동시에 평범한 사람
과 동일하게 괴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적 존재인 것을 부각시켜 죄를 회개하여 용
서함을 받은 의인은 엘리야와 같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Burdick,
Mayor, Moo).
ㅇ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
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가 기
도 응답을 받은 역사를 나타낸다. '간절히 기도한즉'에 해당하는 헬라어 구문 '프로슈
케 프로세윅사토'는 문자적으로 '기도로
기도했다'는 전형적 히브리식 표현법으로 강조 구문이다(창 2:17;눅 22:15;요 3:29;행
4:17,Gibson, Tasker, Manton). 실제로 구약성경에는 엘리야가 기도할때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고 묘사되어 있다(왕상 17:1;18:42). 이러한 엘리야의 간절
한 기도는 응답을 받아 비를 그치게도 하고 내리게도 하였다. 한편 본문에서는 한발
(旱魃)의 기간에 대해 '삼 년 육 개월'이라 하나 왕상 18:1에는 '제 삼 년'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3년 6개월이 가뭄의 전체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왕상 17
장에 기록된 사건들의 전체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해결된다(눅 4:25).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야고보가 왕상의 내용을 직접, 간접으로 인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Lenski, Manton, Macknight).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ㅇ내 형제들아 - 이는 야고보가 자주 사용하는 호칭으로 수신자들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낸다(1:2;2:1,5). 야고보는 본절에서 친근한 호칭으로 마지막 권면을 행하고 있
다.
ㅇ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 '미혹하여'에 해당하
는 헬라어 '플라네데'는 '헤매다'라는(마 18:12) 의미의 '플라나
오'에서 유래한 말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적 형태와 당시의 정황
을 잘 묘사해 준다. 당시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도 유대교나, 이방의 신비 종
교 혹은 이교철학으로 되돌아가는 자가 많았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처럼 구원의 길에
서 떠나 방황하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으로 서로 권면하여 다시 돌아와 복음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면한다(요일 2:26).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ㅇ너희가 알 것은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스케토'
는 '알라'는 의미를 가진 '기노스코'의 능동태 명령형으로 본절이
앞절의 조건절에 대한 귀결절로 강한 명령임을 나타낸다.
ㅇ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 '그 영
혼'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미혹된 자를 돌아서게 하는 권고자의 영
혼으로 해석한다(Erasmus, Hammond, Hoffmann). (2) 혹자는 미혹된 자의 영혼으로 해
석한다(Calvin, Zahn, Mayor, Ropes, Manton). (3) 혹자는 잠 24:24,25을 근거로 하여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내포한다고 해석한다(Luther). 세 가지 견해 중 두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는 것은 타인을 미혹된 것에서 돌아
오게 하는 인간적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혹되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는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는 자였으나 하나님께 돌아옴
으로 영적 죽음에서 구원을 얻어 영적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계 20:6, Manton,
Burdick).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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