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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야고보서

[스크랩] 야고보서 (3 : 1~1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20
야고보서 3장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ㅇ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한 '선생
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한다(Tasker, Burdick).여기에서 '심판'의 헬
라어 '크리마'는 '재판을 통하여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롬 13:2,D-
ibelius-Greeven, Robertson). 선생들이 받을 '더 큰 심판'은 단순히 '다른 그리스도
인들보다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책임'을 수
반한 '은사'로서의 '선생'의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그에 상응하는 심
판관의 대가가 치러져야 함을 시사한다(눅 12:48,Moo,Adamson).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서 선생으로서의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Moo).
ㅇ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 '되지 말라'(메 기네스데)
는 부정어 '메'와 '...이 되다'를 뜻하는 '기노마이'의 현
재 중간태 명령법인 '기네스데'가 결합된 것으로 선택적인 권고의 성격이 아니라 금지
를 요구하는 명령이다(Robertson, Burdick). 이러한 어휘들은 당시 대부분의 독자들이
지위 향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선생'이라는 직임의 권위와 명성에
매료되어 영성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감 없이 어떻게든 선생이 되려는 갈망이 공
동체 전반에 편만했음을 추측하게 한다(Burdick, Moo). 더욱이 바울이 교회 직임에 대
해 진술한 것을 살펴 볼 때(고전 12: 8; 엡 4:11) 당시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추
측하기에 충분하다(Tasker, Moo, Mayor).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ㅇ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 원문에 있는 '폴라'('많은,많은 것에')
라는 단어를 개역성경에서는 삽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명확한 의미를 파악 하기가
어렵다(Robertson, Martin, Moo, Dibelius-Greeven). '폴라'의 의미에 대해 혹자는 죄
의 '수량'(RSV)이나 죄의 '다양성'(NIV, 잠 10:19),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Martin).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의미상에 큰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본
문을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한다'혹은 '우리는 모두 많은 것에 실수를 범한다'라
고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한편 '실수하다'를 뜻하는 단어 '프타이오멘'
은 유대 문헌이나 신약성경에서 영적인 실패, 즉 모든 죄의 행동을 가리키
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2:10; 벧후 1:10, Moo, Burdick).한편 '프타이오멘'의
인칭 어미인 '-오멘'은 1인칭 복수 주격을 나타내는 것으로,야고보가 경고
받는 '선생들'의 부류에 자신을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실수하는 '우리' 가운데도 역시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음을 나타낸다(Robertson, Moo, Martin).
ㅇ만일 말에 실수가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 본문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은 '실수하다'라는 의미의 '프타이에이'와 '...아니다'를 의미
하는 '우'가 연결되어 말의 실수를 부정하고 있는 조건문으로서 어떤사람이든
말에 실수가 없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함을 암시한다(Martin).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중
에서 조차 때때로 죄를 범하게되는 죄의 보편성을 시사한다(Burdick). 1절에서의 선생
들에 대한 경고가 2절에서 '말'에 대한 주의로 연결되어,본절의 '말'은 후속절의 초점
이 되는 '혀'에 대한 이야기에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본문은
'만일 말로 범죄하지 않는 자면'을 의미한다(Burdick, Martin, Moo). 한편 '온전한 사
람'은 죄가없거나 결백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이 아니라 잘 갖추어지고 성숙한 '온전함'
을 나타낸다(1:4, Martin).야고보는 말로 행하는 범죄는 누구든지 쉽게 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잘 통제하여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성숙되고 온전한 사람임
을 강조하며 더불어 언어생활을 조심할 것을 권고한다.
ㅇ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야고보는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서 상이해 보이는
듯한 1절과 3절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시키고있다(Dibelius-Greeven). '굴
레 씌우리라'의 헬라어 '칼리나고게사이'는 '재갈을 물
리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드물게 쓰이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가
1:26절에서 '혀'와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Robertson) 본문도 역시 다음
절부터 전개될 혀에 관한 진술과 관련 하여 권면을 전개하려 한 듯하다. 사실상 본문
은 1-12절까지의 내용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으로, 선생들에게서 시작된 경고를 전체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확대시키고 있다.즉 야고보의 이러한 진술은 지도자들에게 그 초
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Matin)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에 전반적인 적용을 의
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Moo).선생이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이든간에 혀를 제어(制御)
하여 말의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은 결국 온몸에 굴레를 씌워 죄짓는도구로 이용되지 못
하도륵 하는 것과 같다(Burdick, Tasker).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ㅇ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 헬라어 본문에
서 본절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에이 데'('만약','if', 'When')에 대
한 견해는 두 가지 이다. (1) 혹자는 '이데'('보라')라고 주장한다(C P, Ma-
yor, Ropes).(2) 혹자는 '에이 데'('만약')라고 주장한다(A, B, K, L,
RV, NIV, Martin, Moo, Dibelius-Greeven).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비록 '이두'('보라')가 4,5절에서 등장하여 '이데'가 조화를
이룬다 할지라도 '이데'는 본서에서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
의 재갈 예는 말(馬)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의 '입'에 물려진 재갈에 있
음을 나타낸다. 즉 재갈이 말의 '입'에 채워짐으로 말이 통제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Moo). 야고보는 이렇게 해서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예화들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뤄
간다.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ㅇ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
로 운전하나니 - 본절은 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이전에 그 예로 배와 키의 관계를
나타낸다(Moo,Tasker). 즉 야고보는 작은 부분을 통해 커다란 몸체를 조종할 수 있음
을 암시하면서(Moo, Dibelius-Greeven) 배와 키의 관계를 제시한다. 큰 몸체가 '광풍
에 밀려갈 때' 일지라도 사공은 자그마한 키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다. 야고보는 말과 재갈, 배와 키, 몸과 혀를 비교시켜서 혀가 작지만 혀를 제어하
지 않을 경우 엄청난 범죄가 발생하게 됨을 강조한다.

5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ㅇ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 '이와 같이'로 연결되는 것
은 앞의 두 예화가 본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뒷받침 해준다(Burdick, Mayor). 이
것은 본절이 3,4 절의 예화를 완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Martin). 재갈과 키가 그 자
체의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말의 온몸과 배의 진로를 좌우하듯이, 우리의 혀역시 비록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역할은 매우 크다(Moo, Tasker). 헬라어 본문에는 '큰 것을 자
랑하도다'의 헬라어가 '메갈라 아우케이'로 되어있으나 다
른 사본에는 '메갈라우케이'('자랑하다', '뽐내다')로 되어
있어(* ,P*20, k, L,) 의미 파악에 주의를 요한다(mayor, Tasker). '메갈라우케이'
로 보게 될 경우 '자랑하는 혀'의 의미가 강조 되는 반면에 '메갈라 우케이'로 이해할
경우 '큰 것을 자랑하다'라는 의미로 '작은 혀'와 '큰 역할'이 대조된다(boasts of g-
reat things, RVS, Tasker, Robertson). '메갈라우케이'와 '메갈라 아우케이' 두 경우
중 후자의 것이 타당하다.왜냐하면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예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
것'과 '큰 것'이 대조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비록 혀가 작을지라도 큰 역할을 하여 엄
청난 힘, 곧 잠재된 거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Moo, Martin, Burdick).
ㅇ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 본문의 '어떻게 작은'과
'어떻게 많은'은 동일한 헬라어 단어 '헬리콘'으로 한 단어가 두상반
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일종의 균형과 대칭의 효과를
내고 있다(Moo, Martin). 한편 '나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휠렌'은 메마른
지중해 기후로 인한 불꽃에 의해서 쉽사리 재가 되어 버릴수 있는 팔레스틴 언덕의 산
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RSV, Moo, Martin). 야고보는 본절에서 산림이 작은
불씨에 의해 파괴되어 버림을 예로 들어 혀의 잠재적인 파괴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Burdick).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ㅇ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 본절에서는 5절에서 보여준 혀의 파괴적 성향이
곧 바로 언급된다. '혀는 곧 불이요'는 '혀 또한 불이다'(Adamson) 혹은 '이와같이 혀
는 불이다'(Martin)라고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세계'의 헬라어 '코스모스'
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꾸밈(벧전 3:3), (2)악의 총체(Vulgate), (3)
사악한 세상 조직의 타락하고 반역적인 형세(Tasker, Martin, Moo, Robertson). 이 세
가지 중 세번째 해석이 문맥상 가장 타당한 듯하다(1:27;4:4, Moo).혀는 불과 같이 모
든 것을 태워 버릴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악들과 연관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범
죄케 한다(Burdick).
ㅇ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바퀴'를 의미하는단어 '트로콘'은 '트레콘'
('달리다', '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의 문서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
사하기보다는 당시에 널리 대중화 되어있었던 종교적 또는 철학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Robertson, Moo, Martin, Dibelius-Greeven, Mayor). 이것은 인
생의 전영역 가운데 성쇠(盛衰)를 가리키는 듯하다(Moo,Burdick). 이렇게 혀는 온 몸
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불과 같아서 인생을 파괴시킬 수 있다. 한편 혀와 동일시되며
인생 전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불의 근원은 '지옥불'이다. '지옥'을 뜻하는 헬라어
'게엔네스'는 힌놈의 골짜기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게힌놈'
에서 유래한 표현이다(Burdick, Martin, Moo ). '게힌놈'은 예루살렘 정남
방의 쓰레기 소각장으로, 계속 타고 있는 쓰레기 불로 말미암아 마지막날의 심판의 장
소로 자주 비유되어 왔다.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만약 각자가 자신의 혀의 힘
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급기야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경
고하고 있다.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혀의 오용과 남용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Martin, Moo, Tasker, Mayor).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ㅇ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 본
절은 다음절의 내용을 유도하기 위한 대조적인 예이다. '길들므로'의 헬라어 '다마제
타이'는 현재 시상이며 '길들었거니와'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
다마스타이'는 완료 시상이다. 야고보는 현재시상과 완료
시상을 중복하여 사용함으로 인간이 여러세대에 걸쳐 짐승과 새,벌레와 해물(창9:2-7;
행 10:12; 11:6)등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정복한 상태의 연속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Robertson, Tasker, Burdick, Mayor, Adamson, Moo).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
리고 정복할 권한을 주셨으며(창 1:28;시 8:6-8) 실제로 인간들은 동물들을 다스려 길
들였고,동물들은 인간에게 지배되고 복종하였다.한편 '짐승'을 나타내는 '데리온'
은 원래 신약성경에서 길들지 않은 동물들 즉 야생 동물에만 사용되어 왔
다. 야생 동물이 길들여지는 것은 사 11:6-9처럼 메시야 시대의 상징으로 쓰여진다(A-
damson).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ㅇ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가득한 것이라 - 앞절에서 언급한 바대로 인
간은 모든 짐승을 다스리고 길들였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의 지체 중 하나에 불과 한
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야고보는 앞절에서 인간이 다스린 동물과 본절에서 인간
이 다스릴 수 없는 혀를 대조시켜서 혀의 악함과 파괴력을 강조하고있다. 하지만 비록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혀를 제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혀는 성령에 의
해서 지배되며,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제어될 수 있다(Burdick,
Moo, Mayor, Martin). 야고보는 본절에서 제어되지 않은 혀의 두 가지 속성을 제시한
다.
ㅇ쉬지아니하는 악 - '쉬지 아니하는'의 헬라어 '아카타스타톤'
은 1:8의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에서 '정함이 없는'이라는 의
미로 사용된다.이것은 '아카타스타톤'이 수식하는 악이 불안정함과 한 마음을 품지 않
는 데서 기원함을 시사한다(Moo). 이러한 악은 마치 복종될 수 없는 흉악한 짐승과도
같은 것으로 결코 제어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Burdick,Tasker).
ㅇ죽이는 독 - '죽이는'을 뜻하는 헬라어 '다나테포루'
는 '다나토스'('죽음')와 '페로'('가져오다')의 합성어
로 '죽음을 가져오는'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Robertson).'죽이는 독이 가득 하다'는
구약성경의 교훈들을 반영하는 것으로(시 140:3; 잠 10:8; 11: 9, Moo) 독사에게 물린
즉시 온 몸에 독이 퍼지고 급기야는 죽음을 초래하는 것처럼(Burdick,Robertson, Moo)
혀는 이웃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범죄케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ㅇ야고보는 혀의 양면성 즉 '찬송'과 '저주'를 대비시켜서 그 불합리성을 제시한다.
ㅇ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 '주 아버지'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톤
퀴리온 카이 파테라'는 '주와 아버지'가
아니라 '주이신 아버지'라는 의미로 '주'와 '아버지' 모두가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
(Robertson). '주 아버지'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고백으로(RV, Tasker) 혀의 가장 고귀
한 기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임을 시사한다(Martin, Moo).
ㅇ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 '저주'는 구약성경
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창 9:25; 49:7; 잠 11:26; 24:24; 26:2). 이러한 저주는
고대 세계에서 큰 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어지고 영원한 심판을 겪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그러나 구약성경에 비
해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저주하는 것을 금했다(롬 12:14).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저주를
금하고 오히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하셨다(눅 6:28, Moo, Martin). 한편 '형상'
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신'은 '닮게 만들다'는 뜻을 가진 '호모이
오오'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의 외관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의
미한다(made after the likeness of God, RV). 또한 '지음을 받은'을 의미하는 헬라어
'게고노타스'는 완료시제이다. 이 두 가지 즉 '호모이오신'과
'게고노타스'는 인간이 범죄로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
주는 흔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Tasker, Burdick). 이에 야고보는 사람이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또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높이고 저주하는
것과 마찬 가지임을 강조하여 그 불합리성을 나타낸다(Burdick). 그 이유는 사람이 하
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ㅇ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리라 - 야
고보는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경고한다(Mayor). '마땅치
아니하니라'의 헬라어 '우 크레'는 선악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기준
이라기보다는 이중적인 면 즉 찬송과 저주의 공존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 정함을 시
사한다(Tasker). 이와같이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양태는
죄악이며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범죄이다. 이러한 말의 폐해(弊害)에 대해 예수
께서도 엄중히 경고하셨기에(마 15:11,18,19)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배와 인도하심
을 따라 우리의 입을 일관성 있게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
는 것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Burdick).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ㅇ본절의 샘의 비유는 매우 인상적이고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건조한 팔레스틴 기후
에서 샘의 중요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많은 마을과 촌락들이 이 샘과 시내를 의
존하여 형성되었다(Moo, Martin).
ㅇ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본문 처음에 등장하는 '메티'
('어찌...하지 않겠느뇨')는 야고보가 즐겨쓰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부정
적인 대답을 예상하면서 묻는 수사학적인 질문이다(Moo, Martin,Robertson). 야고보는
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한 샘이 두 가지 맛을 낼 수 없음을 예로들어 한 입에서
경배와 저주가 나오는 것이 부당함을 예증한다. 한편 '구멍'을 나타내는 헬라어 '오페
스'는 땅의 갈라진 틈 또는 바위 표면에 갈라진 한틈을 의미한다(Roberts-
on, Tasker, Adamson). 이러한 틈새에서 솟아나는 두 종류의 물 즉 '단 물'과 '쓴 물'
은 '신선한 물'(fresh water)과 '짠 물'(salt water)을 가리킨다(NIV, RSV). 한 샘에
서 신선한 물을 내놓다가 다시 짠 물을 내놓는 일은 있을수 없으며(Moo, Martin, Ada-
mson),만약에 신선한 물에 쓰거나 짠 물이 첨가된다면 그 물은 이미 신선함을 잃어 효
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물을 마시는 자에게 피해를 준다. 이와 마찬
가지로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혀가 사악하게 활용
되었을 때 그 말은 바로 이 쓴 물과 같아져서(Moo) 비극을 초래하며 전체를 그릇되게
한다(Martin).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ㅇ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
본문 역시 부정어 '메'('아니')로 시작되어 부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수사학
적인 질문이다(Martin). 본문에서 열거되는 무화과나무, 감람열매, 포도나무, 무화과
등의 식물을 사용하는 비유는 고대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Martin). 신약성
경에도 복음서를 중심으로 여러 번 사용되고 있다(마 7:16-20; 12:32,33; 눅 6:43-45,
Martin, Adamson). 이 비유가 신약성경에서 사용될 때의 의미는 '선한 마음에서 선한
것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는 악한 것이 나옴이 마땅하다'는 것이다(Moo, Martin). 따
라서 야고보는 본 비유를 통하여 모든 나무가 자신의 특성에 맞게 열매를 맺음을 강조
하고 있다.
ㅇ이와같이 짠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야고보는 본문에서 11절의 질문으로
돌아가 11,12절의 수사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앞서 언급한 이중성의 부당함 즉
한 샘에서 두 종류의 물이 나올 수 없고 한 나무가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음
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결국 짠 물은 짠 물일 뿐이라는 일관된 부정적 견해
즉, 혀의 악함을 드러내어 강조하고 있다(Tasker, Moo, Martin). 짠 물이 단 물을 내
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근원에 있어 나무와 열매의 비유처럼,짠 물이 단 물의 근원일 수
없기 때문이다(Burdick). 그러므로 선한 사람의 입에서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사람의
입에서는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ㅇ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본절은 '티스'('누구')로 시작하면서 새로
운 문단을 소개한다(13-18절, Adamson). '지혜'애 해당하는 헬라어 '소포스'
는 유대인들이 교사, 서기관, 랍비를 가리킬 때 사용한 전문용어였으며 '총명'의
헬라어 '에피스테몬'도 특별한 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전문인을
가리킨다(Moo, Tasker, Burdick, Robertson). 이러한 '지혜와 총명'은 1절에서 언급한
'선생이 되려하는 자들'을 암시한다. 한편 '지혜의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프
라위테티 소피아스'는 문자적으로 '지혜로부
터 나오는 온유함으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지혜'는 헬라적 지혜 개념이 아니라 하
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하는 실제적인 히브리적 개념의 지혜 곧 하
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Adamson). 또한 '온유함'은 약함이나 체념에서 비롯된 것
이 아닌 포괄적인 포용성으로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성취될 수 있는 부드러움을 가리
킨다(갈 5:22,23, Burdick). 야고보는 본절에서 선행과 온유의 근원을 믿음과 동일하
게 취급되는 지혜로 보면서(Tasker, Burdick)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선생을 영예와
지위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삼지말고 참된 선생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행해야 함을 권면한다.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ㅇ그러나 너희 미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 '젤론'('시기')은 신약성경에서 긍정적으로도(요2:17),
부정적으로도 사용된다(행 5:17, Robertson, Moo). 본절에 사용된 '젤론'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이기적인 열정을 의미한다(Mayor). 또한 '다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리데이안'은 '이기적인 야망'의 의미로 자기나 자기편의 특권
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Moo, Burdick).이것으로 인해서 '당파심',
'불화'가 일어나기에 바울은 '당파심'이나 '불화'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고전
3:3; 고후 12:20; 갈 5:20, Martin, Moo, Dibelius-Greeven, Robertson). 당시 본서의
수신자들중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열정 그리고 야망에 빠져서 자신의 이익을 위
해 편을 만들고 당(黨)을 지어 홀란스럽게 만들며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
는 자들이 있었다(Burdick).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자들을 향해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
에 빠지지 말고 진리를 거스려 교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ㅇ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인 이
기적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지혜'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
온 것'이 아니다(Burdick). 즉 그것은 참된 지혜의 근본이신(잠 2:6)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가 아니다(Martin, Moo).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지혜는 세가지 특성을 지
닌다.
ㅇ세상적이요 - 이것은 하늘과 비교하여 부정적인 의미의 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Moo, Martin, 고전 15:40; 고후 5:1)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세상
의 제한된 사고와 견해로 평가하는 지혜를 나타낸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의 인침을 받
은 일련의 모든 활동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전 1:20;
2:5,6, Adamson, Martin).
ㅇ정욕적이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키케'는 '영적'인 것과
비교되는 '육신적'인 것을 의미한다(Moo,Martin, Adamson, 고전 2:14; 15:44,46).이것
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 즉 중생하지 못한 자
들의 특성 이다(Burdick).
ㅇ마귀적이니 - 이것은 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하지만(잠 2:6) 이기적인 욕
망과 야망에 사로잡혀 중생하지 못한자들이 소유하는 지혜는 마귀에 의해서 그 행동과
생각을 지배받고 선동됨을 나타낸다(Martin, Moo, Adamson).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ㅇ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이기
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거짓된 지혜의 특성을 정의한 것(15절)에 대한 근거임을
시사한다.
ㅇ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요란'을 뜻하는
헬라어 '아카타스타시아'는 '무질서함'(고전 14:33)을 나
타내며 일반적으로 무정부 상태와 정치적인 소동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Robertson,Bu-
rdick). 또한 '악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울론'은 요 5:39의 '아가
다'('선함')와 반대 개념으로 하나님과는 전혀가까워질 수 없는 악한
행위를 나타낸다. '시기'와 '다툼' 즉 이기적인 욕망과 열정 그리고 야망은 아무런 유
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인 생명과 사업을 파괴시키는 무질서와 악한 행위만 생
산할 뿐이다(Burdick). 그러기에 그러한 것을 유발시키는 거짓된 지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다(15절).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ㅇ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 본절은 앞서 언급된 거짓 지혜와 대조되는 참된 지혜
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특성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지혜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천적인 것이다.
ㅇ성결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네'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기본적 특성으로 성적인 순결의 의미보다는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하며 '거짓된 지혜'의 이기적인 동기와 대조를 이룬다(Robertson,Burdick).
ㅇ화평하고(에이레니케) - 이는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한다(히 12:11). 이것 역시 독한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모든 이에게 화평을 가져다준다(Tasker).
ㅇ관용하고 - 이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에이케스'는 주로 왕
으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죄인에 대해 단호하게 징벌하실
수 있음에도 블구하고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는 온유와 자비를 나타낸다.
ㅇ양순하며 - 이의 헬라어 '유페이데스'는 '유'('잘',
'좋게')와 '페이도마이('순종하다')의 합성어로 '잘 순종 하는'
이나 '유순한'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14절) 대조되는 것
으로 위로 난 지혜는 하나님께 잘 순응하는 성품을 소유케 한다.
ㅇ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 '긍휼'과 '선한 열매'는 상관 관계를 갖는다. '긍
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 주는 마음 자새로 긍휼을 베풀지 아
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는 자이다(2:13). 이러
한 긍휼을 드러낼 때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된다(마 7:17,18, Martin, Burdick).
ㅇ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 거짓된 지혜의 당을 만들고 구별하며 자기편의 이익을 추
구하는 것과는 달리 위로 난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하
다.

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ㅇ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본문은 '위로 난 지
혜'에 대한 결론이다. '의의 열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포스 디카이오쉬네스'
는 '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뜻한다(Laws, Ropes).
'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Moo) '화평'과 긴밀한 상관
관계를 지닌다(시 85:10;사 32:17, Tasker).이러한 의는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서 비
롯된 무질서와 악한 행위에서는 생겨날 수 없으며 오직 화평 가운데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화평을 소유
하고 닮은 자녀이기에 화평을 이루어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마 5:9).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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