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디모데전서

[스크랩] 디모데전서 (6 : 1~2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2:07
디모데전서 6장

1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ㅇ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 '종들'의 헬라어 '둘로이'는
글자 그대로 '노예들'을 말한다. 당시 로마에는 많은 수의 노예들이 있었는데 학자에
따라서 삼분의 일 이상으로 보기도 하며 (Hendriksen) 절반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Earle). 로마는 전쟁을 통하여 패전국으로부터 노예를 확보하거나, 주위의 약소 국가
들로부터 노예를 사들이기도 하였다. 또는 로마의 자유민 중에 빚을 청산하지 못하거
나, 죄를 짓고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많은 경우 노예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노
예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노예들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었으며 그중에는 요리사, 이발
사, 주치의 등 전문적인 일을 하며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노예들도 있었다. 신약
성경에 노예에 관한 기사가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초대 교회 교인들 가운데에는 이
러한 노예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전 7:21-24 ; 12:13 ; 엡 6:5-8 ; 골
3:11, 12 ; 벧전 2:18).
ㅇ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 본 구절은 바울이 노예 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혹자에 의하면 바울은 외형적으로는 노예
제도를 인정하여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을 피하면서 그리스도
의 사랑으로 점진적인 노예 제도의 폐지를 목표로 삼았다고 본다(Hendriksen). 여기서
'상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스포타스'는 '퀴리오스'
('주')와 동의어로서 후자가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 반면 전자는
종의 상전으로서 권세를 강조한 말로(Trench) 하나님(눅 2:29 ; 행 4:24 ; 계 6:10)과
그리스도(유 1:4)께 본 단어가 적용되었다. 또한 영어의 'despot'(폭군, 전제 군주)가
본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ㅇ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이 노예 신자
들에게 상전을 공경(恭敬)하라고 권면한 주된 이유는 노예 제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성경의 가르침에 손상을 입히거나 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
다. 여기서 '훼방을 받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메타이'
는 '비방하다', '욕하다'의 의미이다. 또한 '교훈'의 헬라어 '디다스칼리
아'는 '복음의 가르침'을 뜻한다(Hendriksen).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ㅇ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 앞절이 일반적인 모든 노예들, 특히 불신자를 주인으로
둔 노예들에게 적용된 것이라면 본절은 믿는 상전을 둔 노예들에게 적용된 것이다
(Alford).
ㅇ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 믿는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이 동등한 신자
일 경우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여 주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혹자는 믿는 노예들 가운데 교회의 장로가 된 자들도 있었을 것으로 추
측한다(Robertson).
ㅇ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 '유익을 받는 자'는 '주
인'을 가리킬 수도 있고 '노예'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문맥
으로 보아 전자로 해석한다(Scott, Guthrie, Lenski). 이들은 믿는 신자인 동시에 '사
랑을 받는'(아가페토이) 자들이었다. 혹자는 이 단어가 상전
이 노예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는가 하면(Earle, Alford) 다른 학자는 하나
님과 다른 신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Hendriksen). 후
자의 견해가 문맥상 더 적합하다. 이처럼 믿는 노예들이 섬기는 상전들 역시 믿는 사
람들이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들일 경우 믿음을 가진 노예들은 그
상전을 더욱 잘 섬겨야 한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ㅇ다른 교훈을 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디다스칼레이'
가 1:3에서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가리키는 것에 반해
여기서는 '이단 사상'을 가리킨다. 당시 헬라 세계에는 '소피스트'(Sophist)라고 불리
는 궤변론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웅변과 변론술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다. 또한 영지
주의자들이 이단 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여 초대 교회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ㅇ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 - '바른 말'
(휘기아이누신로고이스), 곧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한 교훈이다(Guthrie). 그러므로 이 '바른 말'속에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사도들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ㅇ착념치 아니하면 - '착념치'의 헬라어 '프로세르케타이'
는 '...에게로 가다' 혹은 '접근하다'의 뜻으로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히 4:16 ; 7:25). 여기에서는 이 단어가 유일하게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동의하다'
혹은 '정신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다'를 의미한다(agree, NIV).

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과 변론고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ㅇ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맞는 이단 사상을 좇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교만하여'(테튀포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참된 진리인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전혀 무지한 자들이다.
ㅇ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 '언쟁'의 헬라어 '로고마키아스'
는 '로고스'('말')와 '마코마이'
('싸우다')의 합성어로 '설전'(舌戰)을 의미한다. 영어의 'logomachy'(말다툼)가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좋아하는'의 헬라어 '노손'은 '병들
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혹자는 본 구절을 '논쟁을 병적으로 갈망하는'
(having a morbid craving for argument)으로 해석하였다(Easton).
ㅇ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 이와 같은 것들은 '변론과 언쟁'의 결과
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투기'(프도노스)는 '시기'를 뜻한다. 논
쟁에서 패배한 자는 승자에 대해 질투의 악감정을 갖게 된다. '분쟁'
에리스)은 '투기'에서 비롯된다. '훼방'의 헬라어 '블라스페미아이'
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신성 모독'(blasphemy)을 뜻하나 여기에서는
사람에게 적용되어 '욕'이나 '비방'을 의미한다. '악한 생각'에서 '생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노이아이'는 '의심하다' '추측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휘포노에오'에서 파생된 말로 '의심'을 뜻한다
(행 13:25 ; 25:18 ; 27:27). 따라서 '악한 생각'은 '악한 의심'(evil suspicions,
NIV)으로 번역될 수 있다. 불필요한 변론에 치우치는 것은 사람들을 의심하게 할 뿐만
아니라(Hendriksen)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ㅇ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4절에서는 '변론과
언쟁을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악한 열매 네 가지가 열거되었다. 본절에서는 마지막 다
섯번째 결과로 '다툼'이 언급된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파라트리바이'
는 '디아'('통하여')와 '파라트리바이'
('화나게 함')의 합성어로서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
을 뜻한다. 이러한 '다툼'은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에게서 난
다. 여기서 '부패하여지고'의 헬라어 '디에프다르메논'
은 완료 수동 분사로 '철저히 부패된 상태'를 나타낸다(Earle). 또한 '잃어버려'
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스테레메논'은 '자신의
권리를 상실하게 됨'을 뜻한다(White). 일단 그들은 진리를 소유한 경험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박탈(剝奪)당했다(Lenski).
ㅇ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 '이익의 재료'로 번역된 헬라어 '포리스몬'
은 '얻다', '획득하다'를 뜻하는 동사 '포리조'
에서 파생된 말로 '경제적인 이익'을 뜻한다(financial gain, NIV). 진리를 떠
나 다른 교훈을 좇는 자들은 '경건'(유세베이안) 즉 '종교'
라는 이름으로(Scott) '그들의 거짓된 교훈'을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물질적인 사례를
요구하였다(Lenski, Hendriksen).

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ㅇ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 스토아 학파의 철학
자들은 '현자란 지상의 행복과 불행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사람'
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금욕주의적인 경건에 도움을 줄지언
정 참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또한 이단 사상을 전파하는 자들이 추구하였던 만족은
그 원천(源泉)을 마음속에 두고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과 대조적으로 오직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얻어지는 '지
족'(아우타르케이아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족의
마음을 소유한 자는 세상적인 유혹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
만 소망을 둠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빌
4:11-13). 그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의 많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
계에 있기 때문이다.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ㅇ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
니 - 구약 지혜 문학에 나오는 내용의 인용으로 보이는(욥 1:21 ; 전 5:14, 15). 본절
은 두개의 문장이 접속사 '호티'('왜냐하면')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다. 이것은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다는 것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긍
극적으로 세상의 물질적인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White).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ㅇ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먹을 것'의 헬라어 '디아트
로파스'는 복수로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음식을 포함한다
(Hendriksen). 또한 '입을 것'의 헬라어 '스케파스마타'
는 '덮다'를 뜻하는 동사 '스케파조'에서 파생된 복수 명사로
서 '의복'이나 '덮개' 혹은 '은신처' 등을 의미한다(Earle). 바울의 이러한 권면을 문
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정당한 부의 축적마저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
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느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즉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것만을 취하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나라
와 그의 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는 권면이다(마 6:33).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ㅇ부하려 하는 자들은 - '부하려 하는'에서 '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불로메노이'
는 '의도하다', '갈망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갖는
다. 따라서 본문은 부자가 되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ㅇ시험과 올무 -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몬'은 '유혹'
(temptation, KJV, NIV)을 의미하며 '올무'의 헬라어 '파기다'는
'덫', '함정'을 뜻한다. 부자가 되려는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필경 유혹을 받
아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딤후 2:26).
ㅇ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영혼의 눈을 어
둡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영적 죽음이요 완전한 파멸이다.
ㅇ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혹자는 '침륜'
(올레드론)이 현세(現世)에서의 파멸을 의미하며 '멸망'
(아폴레이안)은 사후(死後)의 파멸을 뜻한다고 본다(Scott). 하지만 그보다는 유사
한 의미를 갖는 단어를 중복시킴으로 물질의 지나친 추구가 멸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빠지게 하는'의 헬라어 '뷔디주신'
은 '배가 바다깊이 침몰하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눅 5:7). 바울
은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았다. 혹자가 지적한 대로 바울은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Hendriksen). 그러나 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물질의
획득에 지나친 관심을 두어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삶의 형태이다.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ㅇ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본 구절은 비온(Bion)과 데모크리투스
(Democritus)가 한 말 곧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척도이다'
(텐필라르귀리안 에이나이 메트로폴린 판톤 톤 카콘)와 유사하므로 학자들은 바
울이 이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추정한다(Guthrie, Robertson). 그러나 이에 반해 렌스
키(Lenski)는 본 구절이 바울의 독자적인 말임을 주장한다. 한편 '사랑함'의 헬라어
'필라르귀리아'는 '탐욕'(covetousness)을 의미한다.
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으나 그것에 탐욕을 품게 될 때 악이 발생한다. 여기서 바울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유일한 근원임을 말한
다기보다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
이다(Guthrie).
ㅇ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 '사모하는'의 헬라어 '오레
고메노이'는 '잡으려고 손을 뻗치다', '갈망하다'의 뜻
을 갖는 동사 '오래고'의 현재 분사로 '항상' 돈을 갈망하고 있음
을 나타낸다. 이러한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여기서 '떠나'에 해
당하는 헬라어 '아페플라네데산'은 별이 자신의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여 유성처럼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Lenski).
ㅇ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근심'의 헬라어 '오뒤나이스'
는 '깊은 슬픔'을 의미한다. 또한 '찔렀도다'의 헬라어 '페리에페이란'
은 '꿰뚫어 관통하였다'는 뜻으로(pierced, KJV) 주로
고기를 쇠갈고리로 꿸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결국 돈에 지나친 탐욕을 품은 자들은
신앙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신앙을 잃고 방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ㅇ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하나님의 사람'
(안드로페 데우)이라는 호칭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
아야 마땅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이 말은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나 특별한 인물
들에게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모세(신 33:1 ; 시 90:1), 다윗(대하 8:14), 선지자들
(삼상 2:27 ; 9:6), 엘리야(왕하 1:9), 하나님의 사자들(왕상 12:22) 등에 적용되었
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호칭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일반
신자들(딤후 3:17)이나 디모데와 같은 복음 사역자들에게 사용되었다.
ㅇ이것들을 피하고...좇으며 - '이것들'이란 4-10절에서 언급된 멸망의 요인들을 가
리킨다. '좇으며'의 헬라어 '디오케'는 '추구하다'(follow after,
KJV)의 뜻으로 '피하고'(퓨게)의 반의어이다. 여기서 바울은 딤후
2:22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특유의 대조법을 사용하여 권면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
게 제시하고 있다.
ㅇ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가 추구
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열거한다. '의'(디카이오
쉬넨)는 법률 용어로 '공의'(公義)를 뜻한다(Lenski). '경건'
(유세베이안)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하나
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벧후 1:3). '믿음'(피
스틴)에 대하여 혹자는 '이것은 주관적인 믿음으로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Hendriksen). 그런데 렌스키(Lenski)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
다. 즉 기독교에 있어서 '믿음'은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처음에 열거되지 아니하고 세
번째 나온 것으로 보아 이것은 신앙적인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믿고
신뢰하는 하나의 미덕(美德)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가 타
당하다. 본절에서 바울은 일반적인 미덕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덕목을 언급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아가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핵심 요소이다(요일
4:10). '인내'(휘포모넨)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
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살전 1:3 ; 5:14). '온유'
(프라위파디안)는 신약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온순'(meekness, KJV)으
로 번역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가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서 늘 여유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마
11:29 ; 고후 10:1).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ㅇ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 '싸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니주'
는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에서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 애쓰
다'의 뜻을 갖는다. 이것과 동족어인 명사 '싸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곤'
은 원래 운동 경기를 위한 '집회'를 의미하였는데 이것이 점차 경기 자체를 의
미하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선한 경기에서
경쟁하라." 혹은 "선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라." 결국 이말은 믿음이라는 경기
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Simpson).
ㅇ영생을 취하라 - '취하라'의 헬라어 '에필라부'는 '꼭 붙
잡다'라는 뜻이다(take hold of, NIV). 바울은 '영생을 시합에서 이긴자가 얻는 상급
에 비유하여 그것을 꼭 붙잡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한편 본절의 '영생'에 관하여 몇가
지 해석이 있다. (1) 모든 싸움이 끝나고 죽음 이후에 최종적으로 하늘 나라에서 얻게
되는 영광이다(Lenski). (2) 이것은 믿는 신자가 이미 소유한 것으로서 죽음 이후에
완성된다(Scott). (3) 여기서의 '영생'은 '끝없는 생명'이란 양적 의미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과 사랑, 평안, 기쁨 등에 함께 참여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을 말한다(Hendriksen). 이상의 세 견해는 근본적으로 서로 배치되지 않으며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ㅇ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
디모데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클레
데스)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증거하였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기안'
은 세례받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
다'의 뜻이다(Robertson, Earle). 바울은 이러한 신앙 고백 앞에 '선한'
(칼렌) 곧 '아름다운', '명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당시에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고 있었던 때이므로 그와 같은 신앙 고백은 더욱 가치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ㅇ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 본 구절은 민 16:22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
님'과 같은 표현으로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 능력을
나타낸다. 이처럼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자주 채택하였다(롬 1:9 ;
고후 1:23 ; 빌 1:8 ; 살전 2:5). 바울이 하나님을 '만물을 살게 하신' 분으로 언급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디모데로 하여금 생명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믿음을 부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Hendriksen).
ㅇ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 바울은 디
모데가 해야 할 증거와 역사적으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를 비교하여 디모데에게 엄숙히 권면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선한 증거'란
'고백'을 의미한다는 것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Lenski). 이 고백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메시야(Messiah)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요
18:36, 37). 그러나 고백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사형을 언도(言渡)할 수 있는 빌라도 앞에서도
꿋꿋하셨던 그리스도의 담대함이었다(Scott).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ㅇ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 '나타나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파
네이아스'는 중요한 인물의 '출현'을 나타내는 데 사용
되었다. 예컨대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Caligula)의 비문에서 그의 출현과 관련해 사용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절에서는 이 말이 '그리스도의 현현'(the Epiphany),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파루시아'와 같은 의미로 사
용되고 있다.
ㅇ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 '명령'
(엔톨렌)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1) 마 28:20에서 예수께서 '내가 네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라'고 말한 것과 그외 다른 복음서(요 14:15, 21 ; 15:10)에서도 같은
말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명령'은 '예수의 말씀'을 가리킨다(Lenski). (2)
디모데가 세례받을 때 서약한 의무일 것이다(Guthrie, Wordsworth). (3) 목회자인 디
모데에게 부과된 모든 의무를 말한다(Hendriksen, Scott). (4)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명령을 가리킨다. (2) 와 (3) 의 견해는 일면 타당성을 지니나 전후 문맥상 마지막 견
해가 가장 타당하다.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주시요

ㅇ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 '기약'의 헬라어 '이디오이
스'는 복수로서 '시간들'(times, KJV)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것
은 단수로 취급할 수 있는 관용적 용법으로 '때'라고 표현할 수 있다(눅 20:10 ;
23:7). 여기서의 이 '때'는 그분 자신의 때로 아무도 알 수가 없다(행 1:7).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한편 '그의 나타나심'은 그리
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ㅇ하나님은 복 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 여기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
의 '영광송'(doxology)이다. 이 영광송에 관해 몇가지 견해가 있다. (1) 이것은 아마
도 유대인의 회당 의식에서 모방한 초대 그리스도인의 찬송이었을 것이다(Scott). (2)
이것은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 예배에서 하는 신앙 고백을 회상하여 한 말이다(Lock).
(3) 바울 자신의 독자적인 말이다(Guthrie). (4)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Hendriksen, Earle). 특히 헨드릭슨(Hendriksen)은 여기서의 영광송과 유사한 구약성
경의 구절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하나님을 '복되시고'(마카리오스)로 표현한 것은 오직 본절
과 1:11에서만 나타난다. '능하신 자'(뒤나스테스)는 '통치
자'(ruler, NIV)를 뜻하는 말로서 행 8:27에도 등장하는데 하나님께 적용된 경우는 이
곳 뿐이다. 그러나 외경 마카비하의 3:24 ; 12:15 ; 15:27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편 '능하신' 앞에 '홀로'(모노스)가 첨가되어 있는 것은 우상이나
황제 등 지상의 어떠한 권세보다 하나님의 권세가 우월함을 나타낸다(Guthrie,
Scott).
ㅇ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 이와 유사한 구절이 계 17:14과 19:16에서 그리
스도께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하나의 신(神)으로 숭배하였기
에 이러한 표현은 로마의 황제에 대하여 사용하던 문구였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께
적용시킨 것은 황제 숭배에 대한 강한 반발과 직결된다(Hanson). 한편 하나님을 표현
하는 이 칭호는 이방 종교에서 온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신 10:17 ; 겔 26:7 ; 단
2:37에서 빌어온 것이다(Hendriksen).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ㅇ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 15절에서는 하나님이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
는 진정한 통치자임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본절에서는 모든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찬미한다. '죽지 아니함'의 헬라어 '아다나시안'
은 부정 접두어 '아'와 '죽음'을 뜻하는 '다나토스'
의 합성어로 '불멸'(不滅) 혹은 '불사'(不死)를 뜻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밝힌 말이다(Guthrie). 또한 '오직'
(모노스)이라는 말의 첨가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불멸이 있음을 강조한다. 혹자
는 이러한 사상을 히브리적인 사고 방식이라 한다. 헬라인들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
은 본질적으로 영원하여 죽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죽음 이후의 생
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Hanson).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불멸'에 정확히 상응하는 말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히브리적 사고 방식을 헬라 말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ㅇ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 이것은 시 104:2의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와 에스겔 선지자가 빛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겔 1:4)과 비교될 수
있다.
ㅇ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 이것은 출 33:20-23과 요 1:18
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
느니라"와 요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 한편 헬
라 철학에서도 이러한 신(神)의 불가시적(不可視的)개념을 찾아 볼 수 있으나
(Hanson), 신약에 언급된 하나님의 불가시적 개념의 연원은 구약 히브리 사상에 있다.
ㅇ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 대부분의 송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
로써 결론을 맺지만 여기서는 '존귀와 능력'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이것은
15절의 '능하신'이라는 말과 잘 조화를 이룬다. '아멘'은 영광송의 종결을 나타낸다
(1:17).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ㅇ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 8-10절에서 언급된 교훈은 '부하려는 자들에
게' 준 교훈인 반면, 본절에서 19절까지는 당시 '이미 부자인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다. 그 당시 에베소는 부유한 도시로서 부자 교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ㅇ마음을 높이지 말고 - '마음을 높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휩셀로프로네인'
은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자랑하다',
'교만하다'는 뜻이다. 바울은 부자들을 향해 재물로 인해 교만하게 행하지 말것을 제
일의 교훈으로 권면하고 있다.
ㅇ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 '정함이 없는'의 헬라어 '아델로테티'
는 '불확실성'의 뜻을 갖는 말로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
온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으므로 믿을 것이 못 된다
(눅 12:13-21). 잠 23:5에도 "정녕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
가리라"고 기록 되어 있다. 한편 '소망을 두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피케나이'
는 '엘피조'('바라다')의 완료 능동 부
정사로서 '신뢰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불확실한 재물을 신뢰하지 말고'
라는 뜻이다.
ㅇ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하나님은 후
(厚)하신 분으로 그의 자녀에게 영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히 채워 주시는 분이
시다(시 37:25 ; 행 14:17 ; 약 1:17).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풍족히 주실 뿐만 아
니라 그것을 '누리게'하셨다. '누리게'의 헬라어 '아폴라우신'
은 '즐기다'(enjoyment, NIV)의 의미를 갖는다. 혹자는 바울이 그의 마음속에
영지주의자들(Gnostics)을 의식하고 이 말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Hanson). 즉 그들
은 금욕주의적인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쳤으나(4:3) 바울은 금욕주의를 반대했다(4:4).
결국 본절에서 바울이 경계한 것은 과도한 재물욕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악한 요소들
이었다.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ㅇ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 17절이 하나님께 대한 부자들의 태도에 역
점을 두었다면 본절은 타인들에 대해 그들이 지녀야할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자
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닫고 자신의 재물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선한 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도에르게인'
은 본절과 행 14:17에만 등장한다.
ㅇ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메타도투스'
는 '대가 없이 주다' 혹은 '인색(吝嗇)하지 않게 주다'는 뜻을 갖는
말로 본절에서만 언급되는 단어이다.
ㅇ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 '동정하는'의 헬라어 '코이노니쿠스'
는 '함께 나누다', '공감하다', '교제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이
말은 그리스도인인 부자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까지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교제해야 함을 의도한다(행 2:42-44 ;
4:34-37).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ㅇ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 본 구절에 대하여 구구한 해석이
있다. (1) 이것은 토비트 4:9, 곧 "궁핍한 날을 대비하여 자신을 위해 좋은 보화를 쌓
아 두라"의 인용이다(Hanson). 토비트서는 기원전 2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외경 마카
비서와 함께 유대문학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책이다. (2) 본구절의 '터'는 눅 6:48,
49의 반석 위에 지은 집과 흙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통해 그 의미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터'(데멜리온)는 이중적인 의미, 즉 '기초'
와 '자본'의 두 가지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말일 수 있다(Scott). (3) '터'란 단순
히 '보화'를 의미한다(Alford). (4) NIV에서는 본 구절을 "이렇게 하여 그들은 장래에
자신들을 위한 하나의 견고한 기초로서 보화를 쌓게 될 것이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
것은 마 6:19-21의 말씀, 곧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오직 너희
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와 의미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본 구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Earle). 한편 여기서 (2) 를 제외한 나머지 세 견해는 '터'를 '보화'
로 해석하는 일치를 보이고 있다.

20 디모데야 네가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ㅇ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 '부탁한 것'의 헬라어 '파라데켄'
은 '기탁물'(deposit)로 번역된다. 이것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
다. (1) 디모데에게 위탁(委託)된 건전한 교리, 혹은 교훈을 말한다(Lenski, Earle).
(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뜻한다(Simpson). (3) 복음을 포함한 성경 전체를 포괄
한 말이다(Hendriksen). (4) 이것은 넓은 의미를 갖는 말로서, 그리스도부터 시작하여
사도를 거쳐 디모데에게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전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Scott).
이상의 견해들은 상호 대립되지 않으나 전후 문맥상 (1) 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
런데 디모데에게 맡겨진 건전한 교훈은 본서 전체에 걸쳐 언급된 것이다.
ㅇ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 이는 당시 영지주의자들(Gnostics)의 가르침이나 유대주의
의 가르침을 가리킨다(Earle).
ㅇ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 '망령되고'(베벨루
스)는 '신성을 더럽히는'의 의미이며(레 10:10 ; 딤후 2:16), '허한'
(케노포니아스)은 '공허한'을 뜻한다(1:6). 또한 '변론'의 헬라어 '안
티데세이스'는 '반대', '대조'(antithesis)를 뜻한다.
이러한 뜻의 '변론'은 영지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한 논법으로 혹자는 '변론'이 이단자
마르시온(Marcion)이 저술한 유명한 영지주의적 책 '안티데세스'(Antitheses)를 염두
에 둔 것으로 보아 마르시온의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Scott).

21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ㅇ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 본절은 20절에서 바울이 권면
한 것을 유념해야 할 이유를 말한 것으로 디모데가 그의 교인들을 향하여 해야할 경고
이다(Lenski). '좇는'에 해당하는 원어 '에팡겔로메노이'
는 '단언하다', '주장하다', '고백하다'(profess, NIV)의 뜻을 갖는다.
또한 '이것'은 20절의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좇는 사람
들'이란 영지주의나 유대주의의 가르침을 주장하며 그들의 신앙으로 그것을 고백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교회와의 관계가 단절(斷絶)된 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
으면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로서 1:6의 '헛된 말에 빠진 자들'이었다(Hendriksen).
ㅇ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 본구절은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짧은 축도문
이다. 바울은 본 서신 서문에서도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말하였다(1:2). 여기서의
'은혜'(카리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가운데 가장 귀한 것으로
바울은 마지막 축도를 이 '은혜'로 마치고 있다. 한편 KJV는 '너희'
(휘몬)를 '너'(you)로 번역하고 있으나 원문에는 복수 '너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편지가 디모데에게만 국한(局限)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을 향해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Guthrie).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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