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골로새서

[스크랩] 골로새서 (4 : 1~1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1:57
골로새서 4장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배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ㅇ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 본절은 앞장 끝에 계속하여 "상전들"이
노예들을 취급하는데 관한 도덕적 책임("의와 공평")을 진술한다. "의와 공평"은 도덕
적 총괄적 명사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악행의 실례를 들면, (1)그들에게 필수(必修)의
생활비를 적당히 주지 않는 잔인한 행위(약 5:4)나, (2) 그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
것 같은 비인도적(非人道的)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이런 죄는 그 때에 위에 있는 자가
아래 있는 자에게 대하여 흔히 범하는 것이었다.
ㅇ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 이 문구는 종의 주인들이 그 노비를
천대하지 말고 의와 공평으로 대우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주인들도 장차 그들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인즉, 어찌 그 노예 취급에 있어서 의와 공
평을 무시할 수 있으라? 눅 12:46-48; 고전 7:22 참조

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ㅇ기도를 항상 힘쓰고 - 눅 18:1;롬 12:12;헵6:18; 살전5:17;벧전 4:7참조. "항상"기
도하라 함은, (1)어떤 특정(特定)의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심령으로 부단히 기
구(祈求)하는 동시에, (2)일정한 기간을 내어 그 소원이 간절하기만 하면 이와 같이
힘쓰게 될 것이다. 기도의 주요 목적이 사고(事故)를 만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
구함이라면, 사고가 생긴 그 대에만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주요 목적은 그것
이 아니다. 기도는 영적 생명력을 섭취하는 방편(方便)의 하나로서 잠시라도 정지하면
안되는 것이니, 마치 우리 육신의 호흡을 일시라도 정지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성경 읽는 것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호흡에 비유할 수 있다.
ㅇ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이 문구는 위에 훈시된 항상 기도함에 관한 두
가지 긴요한 주의건(注意建)을 말한다.
(1)항상 기도을 힘쓰는 자는 간구에만 몰두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기 쉽다. 미래의
축복을 갈망하는 것만이 기도의 목적이 아니고, 과거에 받은 축복을 기억하여 가사하
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때에도 우리는 역시 감사
해야 된다. 아버지의 잠잠하심도 자식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2) 항상 기도함에 있어서의 또 한가지 주의건은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항상 기
도해도 응답이 없을 대에 신자들도 낙심하거나 피곤을 느끼는 시험에 빠질 우려가 있
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신자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기도자의 유익을
위하여 응답의 시기를 먼 장래의 어느 때로 정하신 까닭이겠고, 혹은 그런 기도의
응답은 그 기도자에게 무익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밖에 다른 선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오묘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혹시 기도 응답을 못받
는 때에도 실망이나 영적 피곤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도리어 전보다 더 하나님의 뜻
에 합당하게 기도하기를 시작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번 더 각성한 태도로 기
도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즉 이상의 논조(論調)로 보아서 항상 감사함으로 각성하는
자라야 기도를 계속 실행할 수 있다.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ㅇ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 사도 바울은 여러번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
고 신자들에게 부탁하였다(롬 15:30; 고후1:11;엡6:19;살전 5:25;살후3:1-2). 이러므
로 오늘날 신자들이 서로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사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ㅇ하나님의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 사도가 그 교회에 자기를 위해 기도하
라고 부탁하는 목적은, 자기의 이 세상 생활의 안락이나 형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
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은 복음 전파를 위
한 것이다. 여기 "전도할 문"이란 말은 헬라 원어에서 직역하면 한역의 각주와 같이
"말씀의 문"이다. 주석가들 중에서는 이것이 엡 6:19의 의미와 같이 말 할 수 있는
"입"을 가리킨다다고 하나, 전도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가리킨다는 학설이 더욱 유
력하다(고전 16:9;고후 2:12).
ㅇ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 1:26해석 참조. 사도 바울은 오랫동
안 감취었던("비밀"의 뜻)그 진리 곧, 복음을 참으로 알았다. 몰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진리를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깨달은 그는(갈 1:15-16), 구원을 알지도 못하고 멸
망으로 달음질하는 뭇 영혼들을 불쌍히 여겼다. 이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어지
그 심령에 불타지 않았으랴? 더우기 그는 하나님에게서 모든 사람들을 구언해 내는 복
음 전도의 큰 사명감 밑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할 기회만 찾았다(롬 1:14;고전
9:16).그가 옥중에서도 바라는 것은 어서 석방되어 자유로운 생활을 좀 누려보자는 것
이 아니고, 오직 복음 전도의 기회만을 갈망하고(빌 2:24)있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행 28:30-31).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음이 달음질하듯이
속히 온 세계에 전파되기를 희망하는 때도 있었다(살후 3:1).
ㅇ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 바울이 로마옥에 갇힌 것은 복음을 위한
것이다.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ㅇ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 이것은 앞절에서 바울이
고로새교회에 부탁한 기도의 결과를 말해준다. 그의 부탁대로 골로새신자들이 그를 위
하여 기도해 준다면 그의 선교는 잘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마땅히 할 말"은 '복음'
이다. 복음은 바울이 마땅히 말해야만 될 것이다.그 이유는, (1) 하나님께서 바울을
붙잡아 그것을 전파하게 하신 까닭이다(고전 9:16), 마 28:19-20;행5:32참조. (2) 복
음은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말씀으로서 천상천하에 유일한 진리이므로 이것을 아는
인간은 누구나 그 진리를 전파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복음 이외에 구원의
길이 절대로 없는 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남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비밀"은 역시 복음을 가리킨다(1:26 해석 참조). 그런데 이
복음을 나타내는 방도는 사람의 지혜와 수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의 말과 같이
(고전 2:1-2,4-5)성령의 계시와 능력에 있는 것이다. 마11:25 참조. 그러므로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의뢰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의 기도 원조를 요
청한 것이다.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ㅇ사도는 교회의 할 바 책임으로서 기도를 권장하는 중, 특히 불신자들에게 사도의
전도할 기회가 있기를 기도하라 하고(2-4), 본절과 다음절에서는, 골로새교인들에게
불신자들 앞에서 지혜 있게 행하여 전도에 도움이 있기를 희망한다.
ㅇ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 여기 "외인"이란 말은 불신
잘들을 가리킨다(고전 5:12-13;살전4:12;딤전 3:7). 신자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고
전 5:12-13; 살전 4:12;딤전 3:7). 신자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전 5:12-13;살전
4:12;딤전 3:7). 신자가 불신자들 중에서 가질 행동 원리는 무엇보다 머저 "지혜"인
것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에, 성경을 연구하는 정당한 순서를 밟지 않고
먼저 신자들의 행동과 신분(身分)을 살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 행동과 처신에 있
어서 성경 진리(지혜)를 실현해야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그렇게 교훈하시
면서 순결의 덕을 부가하여 훈시하셨으니, 곧, "보라 내가 너희를 보맴이 이리 가운에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셨다. 칼빈은 이 점에 있어서 불신자들 중에서 지혜로 행해야 될 이유 세 가지를 제
시하였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신자가 불신자들 앞에서 여간 실수하면, 그것으
로 인하여 그들이 더욱 그리스도의 종교를 멀리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된
다. 그러므로 그런 실수는 작은 것 같으나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은 것"(레 19:14)과
마찬가지이다. (2) 그런 실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에 비방을 돌린다. (3) 또 한가
지 유의해야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신자가 불신자들 중애서 조시하지 아니하면 그만
그들과 융화되어 믿음에 손해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Calvin's Commentaries;
Colossians, 1974, Eerdmans, p. 358).
ㅇ세월을 아끼라 - 이 문구를
개역하면, "기회를 사서 가지라"란 말이다. 곧, 빨리 흘러가고 마는 기회를 나 자신이
선한 노력과 희생의 댓가를 냄으로 속구(贖救)하여 내 것을 만들라는 말이다. 신자들
은 불신자를 상대하는 시간을 의미 없이 흘러 보내지 말고 그 시간에 지혜롭게 행하
면, 무언 중에라도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매수(買收)해 둔 시
간은 내세에 이르러 영원한 행복을 가져온다(눅 14:13-14,16:9).엡 5:16해석 참조.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ㅇ본절은 신자가 불신자를 대할 때에 말을 선미(善美)하게 하기 위하여, 우선 교회
안에서부터 신자들끼리 언사를 선미하게 하는 습관을 배양해야 될 것을 말한다. 엡
4:29 참조.
ㅇ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 여기 "은혜 가운데
서"란 말은 "은혜롭게"라고 개역함이 가하니, 신자는 언사를
'친절하게' 혹은 '인자하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소금으로 고루게 함"은 무슨 뜻인
가? 이것은 부패하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로서(엡 4:29), 소금을
방부제(防腐劑)로 보는 해석이다(마 5:13; 막 9:49-50; 눅 14:34-35).
ㅇ그리하면 - 곧, 교회 안에서 신자들끼리 언사를 친절하게 하면, 대외적으로도 그렇
게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ㅇ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벧전 3:15을 보면, 기독교에 관한 불신
자의 질문에 대한 신자의 답변 태도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자
기가 하나님 앞에 증인으로서 중대한 위치에 섰다는 것을 의식하는 태도이다. 이런 신
중한 태도가 있는 자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다.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ㅇ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라니 - "두기고"는 소아시아 사람인데 사
도의 조사(助事)로서 많이 수고한 사람이다(행 20:4;엡 6:21;딛 3:12). 두기고가 골로
새에 가게 된것은, 그가 본 서신을 전달하는 동시에 사도 바울의 정황(情況)을 교회에
보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ㅇ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 여기 "신실한"이란 말은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란 명칭에까지 언급하는 것이다. 곧, 두기고는 "일군"의 자격으로도 신
실하고,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의 자격으로도 신실하다는 의미이다. 신실은 "하나님
의 비밀"곧, 복음을 맡은 사역자의 유일한 자격이다. 그러므로 고전 4:1-2은 말하기
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
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신실)이니라"고 하였다. 주님의 일군의 신실
은, (1) 복음에 신실함이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加減)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함이고(고후 2:17), (2)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고
(고후 1:18-20), (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다가 고통과 난관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진실이다(엡 6:24).
ㅇ그런데 여기 "일군"이란 말과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란 말의 분별은 무엇인가?
전자는 특히 교역자의 사역을 염두에 둔 명칭이고, 후자는 그 교역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언급하는 명칭이다. "일군"이란 말은 어원적(語源的)으로
보자면 티끌 가운데로 통과 하는 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음질하는 자를 의미하나
니(Trench), 그것은 노역(勞役)의 정황을 묘사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바울이 두기고를
가리켜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종된 자라고 한 것은, 두기고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고 절대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였음을 가리킨다.

8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ㅇ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로 보낸 것은 - 여기 "특별히"란 말이 헬라 원문에는 없
는데 한역에는 그것을 보역(補譯)했다.
ㅇ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 이 문구는 어떤 사본들의 사구(砂丘)대로
보아서는 "나로 너희 사정을 알게 하고"이니, 그것은 시
내산사본의 제 삼 교정본을 위시하여 기타 몇 사본들(C, K, L)의 사구(寫句)이
다. 그러나 그 보다 권위 있는 사본들(A,B)에 의거한 한역(韓譯)은 이 부분의 문맥에
적합하니, (1)두기고가 골로새에 가는 것이 바울의 사정을 골로새신자들에게 알려주려
는 것이었음은 7절 초두에 밝히 말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2) 9절 하반을 보더라
도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Lightfoot, Van Leeuwen).그리스도의 충
성된 종의 내정과 사생활은 다른 신자들에게 알려질 때에 유익을 끼친다. 그 이유는,
주님의 충성된 종의 이면(裡面)에는, 그 외부에 나타난 것 이상으로 모본할 만한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에 갇힌 생활의 이면은 모든 교회
에 큰 감동과 격려(激勵)를 줄 것이다.
ㅇ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사도의 실정을 알고
자 갈망하던 골로새교회가 두기고에게서 그의 모든 정황을 청취(聽取)할 때에, 큰 위
로(신앙을 격려하는 위로이고 단지 근심에서의 안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두기고를 통하여 그들을 위하는 바울의 관심이 얼마나
간절한 것을 알게 되는 까닭이다.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ㅇ본절을 두기고의 동반자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천거를 포함한다.
ㅇ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 7절 하반 해석 참조
ㅇ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 그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로마로 도피해 있던 중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고 주님께 돌아온 자이다.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 1:10)라고 하였으니, 그를 귀중히 여기
는 바울의 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오네시모"는 헬라어의 뜻으로
는 '유익한'이란 의미이다. 방울이 이 형제를 사랑하여 빌레몬에게 부탁하면서 그 이
름의 뜻을 음미해 말하기를,"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
므로"(몬1:11)라고 하였다. 몬 1:10-18 참조.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 곧, 골로새사람이란 말이다. "저희"는 위의 두 사
람,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가리킨다.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ㅇ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 바울과 "함께 갇힌 이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 거주
하던 유대인으로서 (행 20:4), 바울과 함께 에베소의 소요(騷擾)를 겪은 후(행
19:29), 같이 여행하고(행 20-14), 로마로 잡혀 가는 바울과 동행하는 자로 나타났다
(행27:2). 이것을 보면, 그가 바울이 받는 환난에 동참한 때가 적지 않게 있었던 것이
다. 평시의 동사(同事)도 막역(莫逆)의 친분을 의미하지만, 난시(亂視)의 동고(同苦)
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ㅇ바나바의 생질 마가 - "생질"이라는 말은 남동생의 아들, 혹은 여동새의 아들을 가
리키는데, 마가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친 자매였다.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하는데
경건한 모친 슬하에서 생장하였고(행 12:12), 바나바와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행에 수
종들다가(행 13:5), 중도에 돌아왔으나(행 13:13), 후년에 베드로의 조사로 근무하기
도 하고(벧전 5:13), 또한 바울의 조사로도 근무하였다(딤후 4:11). 사도행전 (행
13:13, 15:37-40)을 보면,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참된 교역자가 그 사역 초두에 혹시
실패할지라도 그것이 그에게 영원히 치료되지 못할 상처가 될 것은 아니다. 바울이 과
거에는 불만족하게 여기던 마가를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그를 추
천한다. 그 이유는, 재 출발한 마가의 신앙생활이 장족 진보하여 성역에 충성하기 때
문이다.
ㅇ(이 막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여기 "명"은 마
가를 특별히 존대하라는 사도 바울의 지령인데, 이 서신을 가지고 골로새로 가는 두기
고와 오네시모 편으로 그 지령이 전달된 듯하다.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ㅇ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 "유스도"는 로마의 이름으로서 '의인'
(義人)을 의미하는바, 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성경에 두 번 더 나타난다(행
1:23,18:7). "유스도 예수"는 히브리 이름 "예수"에다가 "유스도"라는 로마 이름을 덧
붙인 것이다.
ㅇ저희는 할례당이라 - 곧, 위의 세사람, "라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
수"는 모두 다 순 유대인(할례 받은 자)들이란 말이다.
ㅇ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나 - 할례를 자랑하는 유대인
중 대다수는 반기독자(反基督者)들이고,또 그들 중에 약간의 신자들이 있어도 그들은
유대주의 에 강하기 때문에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를 등한히 하였다. 로마의 큰 도성에
유대인들이 많았으나, 복음을 위하여 옥고(獄苦)를 당하는 바울을 동정하는 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위의 세 사람만이 바울을 도와 함께 역사한 것이다.
ㅇ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복음을 반대하고 또 몰이해(沒理解)하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위의 세 사람과 같은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희귀한 일
이었다. 이렇게 희귀한 일은 바울에게 특별한 위로를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막에서
진주를 줍는 것 같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ㅇ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 - "에바브라"는 그리스도 예수께 절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만을 기쁘게 함을 본무(本務)로 하는 (갈1:10) 충성된 종이다.
그런데 그는 골로새에서 온 사람이다. 1:7 해석 참조.
ㅇ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 에바브라가 골로새교
회를 극히 사랑한 증거는 그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되 "항상"하였고, 또 "애써"한 것으
로 나타났다. 기도할 "항상"한다 함은, 그 기구하는 제목이 일향(一向)떠나지 않고 그
중심에 있어, (1)무언 중에도 기구가 계속될 뿐 아니라, (2) 일정한 규례를 따라 밀실
혹은 집회석에서 기구함을 의미한다.
ㅇ그리고 "애써 기도"한다.함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 기도에 노력함이다. 예수
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그 모범이다. 그의 겟세마네기도를 보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히 5:7),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도록 애써 간구하셨고(눅
22:44), 같은 기도를 중복하셨다(마 26:36-44).
ㅇ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계시하신 모든 교훈이다.
골로새신자들은 그것을 완전히 또는 확신 있게 알아야 견고하게 설 수 있다. "완전"이
란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성숙'(成熟)을 의미한다. 이 말은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해주신 모든 교훈들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양적으로 또는 질적
으로 성숙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아랫말 "확신"
은 성숙한 지식의 결과일 것이다. 진리 지식이 성숙한 신자는 필연적으로
그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서기를" 이란 말은 견
고히 선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진리를 아는 지식이 성숙한 자는 확신을 소유하게 되
고, 확신이 있는 자는 견고히 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확신 있는 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교훈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동요하지도 않는다. 골로새교회는 이단이
유행하는 위기(危機)에 있었으므로(2:4-23), 그 교회의 사역자인 에바브라(1:7)는 으
례 이런 기도를 주님께 드렸을 것이다.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ㅇ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 2:1 해석 참조,
ㅇ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은 수고하느 것. "히에라볼리"라는 도시는 골
로새의 동편에 있는 곳이다. "많이 수고함"은 에바브라가 그들을 위하요 가지는 영적
노력을 가리킨다.
내가 증거하노라 - 바울은 자기와 동역하는 자들을 높이 추천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었다(1:7;고후 8:16-23; 빌 2:20-22, 25-26).

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ㅇ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누가"는 사도 바울에
게 가장 귀한 조사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의 대부분을 동반(同伴)한 자로
서, 특히 옥중에서 바울의 임종시(臨終時)까지 시종한 사람이다. 딤후 4:11에는, "누
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씌어 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의 특별한 사라을 받는 제자
가 되었던 것과 같이, 누가는 바울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데마"는 누가와 같이 나중까지 바울과 동고(同苦)하지는 못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
여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다(딤후 4:10). 우리가 그를 가리켜 배교한 사람이라고까지
는 하기 어려우나, 그의 신앙이 후년에 이르러 약해졌다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다.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ㅇ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 -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 가까운 곳이니만큼, 두 교회
사이의 우교(友交)는 친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통하여 라오디
게아신자들에게 문안을 보낸다.
ㅇ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 어떤 사본들(A, C,)에 의하면,
"눔바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다. "눔바"라는 인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수 없다. "그들"은 눔바란 사람의 가족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웨스트코트와 홀트
두 사람은 한역이 취한 사본(B)의 사구(寫句)를 채택하였다. 그러면, 위의 "라오디게
아"에 있는 형제들"은 눔바의 집에 모이는 교회와는 다른 교회일 것인가? 이 난제에
관하여 두 학설이 있다. (1) 동일한 교회라는 학설, 양자(兩者)가 실질에 있어서 같은
라오디게아교회를 가리키나니, 전자(前者)는 라오디게아의 신자들을 개별적으로 상대
한 것이고, 후자(後者)는 그들을 하나의 회중으로 상대한 것이라고 한다. (2) 각기 다
른 교회라는 학설. 전자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키고, 후자는 라오디게아 혹은 그
부근에 있는 작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한다.
"집에 있는 교회"는 어떤 신실한 신자의 집을 예배 장소로 정하고 그곳에 모이는
신자들의 단체이다. 행 12:12; 롬 16:5; 고전 1:19; 몬 1:2 참조. 이런 교회들 사이에
는 경쟁이 없었을 것이며, 신자들은 외부적 시설보다 신앙의 장성을 위주하였을 것이
다.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ㅇ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
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 바울은 본절에서 자기의 서신들을 각 교회가
윤독(輪讀)할 것을 권한다. 이것을 보면, 사도 서신들이 개교회에 국한된 사서(私書)
가 아니고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위하여 정경적 문서(政經的文書)인 것이 분명하
다. "이 편지"란 것은 물론 골로새서를 가리킨다.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 이문구에 대하여는 해석이 여러가지 있다. (1) 라오
디게아교회가 바울에게 보냈던 편지라는 학설, 다시 말하면, 바울에게 보낸 라오디게
아교회의 서신을 두기고와 오네시모편으로 골로새교회에 전송(傳送)하면서 부탁한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설인 것 같다. (2) 바울이 라오기게아를 심방하고 거기
서 골로새에 발신(發信)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골 2:1 참조.
(3) 방울이 옥중에서 라오디엑아교회에 발송한 서신이라는 학설. 그렇다면, 현존의 신
약성경에 "라오디게아서"란 서신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4)에베소서가 바로 라오디게
아서라는 학설. 이추측도 할 만하다. 그 이유는, 첫째, 에베소서는 실로 에베소교회만
상대로 해서 발송된 것이 아니고,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들을 상대로 한 까닭이다. 엡
1:1의 "에베소에 있는"이란 말은 주요한 고대 사본들(B)에는 없기 때문에, 그 서
신은 어떤 개교회에 지정됨이 없는 윤독 서신(輪讀書信)으로 볼 수 있다. 이 윤독 서
신은 조만간 소아시아 교회들 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교회를 경유해서 골로새교회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윤독 서신을 염두에 두고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한 것 같다. 둘째, 이 윤독 선신(에베소서)이 골로새서
와 동일한 시기에 저작되어 동일한 인편에 송달(送達)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겠
다. 세째, 말시온(Marcion)은 2세기 중엽에 에베소서의 제호(題號)를 "라오디게아서"
라고 했으니(Tertullian, Against Marcion 5:11,17), 그의 말도 어떤 신임할 만한 고
대의 유전에 의종(依從)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ㅇ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 "아킵보"는 골
로새교회에서 주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몬 1:2 참조. 바울은 여기서 골로
새교회에 아킵보를 결려하라고 부탁한다. 사도가 직접 아킵보를 격려함보다 교회를 통
하여 간접으로 권고하는 것을 보면, 사역자는 교회의 권위 아래 지배를 받는 자이고
교회를 지배하는 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은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감독하시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으로서, '거룩한 직분'이란 뜻이다. 그것을 맡은 자는 자행 자지(自行自止)
할 수 없고 "삼가 이루"어야 한다. 교직자는 그 직무가 인간을 상대한 것이 아니고 하
나님을 상대한 것이니만큼, 성실히 그것을 수행해야 된다. "이루라"는 말은 그 맡은
책임들 중 하나라도 빼놓지 말고 원만하게 실행하라는 말이다(김후 4:5).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ㅇ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 사도는 앞절까지 대서자(代書者)를 통하여 본서를
쓰다가 끝에 와서는 자필(自筆)로써 기록한다(살후 3:17).
ㅇ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 사도는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중에 수금된 사실
이 골로새신들에게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그가 골로새신자들에게 자기 개인에
대한 도움을 구하는 사욕이 아니다. 그들이 복음을 위하여 갇힌 바울의 고난을 기억함
으로 모든 이단자들을 막을 마음이 강해질 것이다. 복음을 인하여 수난(受難)하는 자
를 기억하는 신자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더욱 충성할 동기를 얻게 된다.
ㅇ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이렇게 짧은 축도는 딤전6:21;딤후 4:22; 딛3:15에
도 있고, 길게 구비한 축도는 고흐 13:13에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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