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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고린도전서

[스크랩] 고린도전서 (15 : 1~5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50

고린도전서 (15 : 1~58)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ㅇ여기 "복음"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전파하는 "좋은 소식"을 이름이다(롬 1:2-4).
ㅇ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또 그 사실 위에 확립한 사실을 지적한다. 그
들이 신앙을 가졌으면, 필연적(必然的)으로 일반 신자(一般信者)들의 부활도 믿어야
된다. 그 이유는, 신자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성립되기 때
문이다(요 14:19).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ㅇ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적 진리임.
ㅇ우리 본문에 "성경대로"란 말이 두번 나온다. 세상 역사상(歷史上)에는 성경에 기
록되지 않은 것이 발생하는 사실들도 많다. 그러므로 사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 성경
에 예언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음이 무슨 중요성(重要性)을
가지는가? 사실들이 많은 중에도, 특별히 예수님의 죽었다가 부활 하실 것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렇게 된 이유는, 인류(특별히 하나님의 백성)가 부활함이
우주 만물의 고대(苦待)하는 바 목표이기 때문이다(롬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ㅇ사 26:19엔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라 하였고, 단 12:2엔 "땅의 티끌 가운데
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라고 하였다. 또 이밖에 구약에
많은 장 절들이 부활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부활 문제로 예수님께
서 구약을 해석하신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이렇게 하셨
다. 곧,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
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
라"(눅 24:25-27). 부활 관계로 여기 있는 예수님의 구약 성경 취급을 보면, 구약 성
경에 부활 장 절이 많이 있다. 다만 우리가 무식하여 모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예수
님은 아셨다. 그가 마 22:31,32에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우리로서는 부활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장 절을 그는 부활 관계의 장 절로 생각하셨다. 그는 이
렇게 말씀하셨다. 곧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
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
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하셨다. 그는 여
기서 부활 장 절 같이 보이지 않는 장 절을 부활 장 절로 취급하셨다. 그러나 그는 성
경을 밝히 아시고 이렇게 취급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시기엔 구약이 전체적으로
(직접 혹은 간접으로)부활을 가르친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은, 바울의 말로 보아도 확실하다. 바울은 구약 성경의 목표가 부활을 가르치는데
있다는 의미로 말하였다(행 24:15-16, 26:22-23).
ㅇ이렇게 구원사(救援史)라고 할 수 있는 구약은, 주로 부활을 내다보고 예언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부활이 우주(宇宙)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성을 띤 것이 저
렇게 중점적(重點的)으로 예언되었으니, 우리는 믿기에 용이하다. 우리는 믿어야 된
다. 우리가 부활을 못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부활한다면, 그것
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부활케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부활을
믿기에 문제성(問題性)을 느끼지 않는다. 없는 데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없으랴?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세상에 늘 있는 이유는, 인간
된 저들의 죄악성(罪惡性) 때문이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믿는다. 그러므로 부활의 도리를 전할 때에, 믿는 자들이 생기는 반면에 믿지
않는 자들도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부활 이외의 다른 교리를 전할 때에도 마찬가지
로 생긴다.

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ㅇ그리스도의 부활은, 눈으로 친히 본 자들의 증거에 의하여 확증(確證)된 것임(고전
15-5-11).
ㅇ"게바". - 그는 다시 사신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었다고 하면서(행 10:41), 그가
얼마나 확실성(確實性)있게 주님의 부활한 사실을 안다고 증거하였는가?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그 먹는 동안에 잘 살필 수 있으며, 또한 그 사실로
인하여 주님의 몸이 음식을 잡수실 수 있는 구체적(具體的)인 몸이었다는 것이 알려진
다.
ㅇ"열두 제자" - 란 말은, 그들의 수효가 예수님의 부활하신 직후(直後)에도 열둘이
란 의미에서 여기 관설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다가 죽은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활 직후엔 열한 사도만 남았었다. 여기서 "열둘"을 관설한 목적
은, "열둘"이란 제자단(弟子團)의 명칭을 이름이다. 한 사람이 없어졌어도 그들의 단
체 이름은 그냥 "열둘"이었다. 이 단체는 신약 교회의 기초(基礎)로서 진리를 바로
분변할 수 있는 훈련을 3년동안 받았으며 부활 후의 예수를 잘 식별할 수 있었다. 그
들은 이런 일에 있어서 최고 권위 있는 단체였다. 하나님의 방침은 부활하신 주님을
누구에게나 보여주실 방침이 아니었다. 행 10:40,4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ㅇ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 "오백"이란 숫자(數字)는 대중(大衆)의 숫
자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소수(小數)에게만 아니고 대중에게도 나타나셨다. 이
는, 소수에게만 나타나시는 불완전한 사실이 아니고 대중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진리임
을 알게 한다.그러므로 행 1:3에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라고 하
였다.
ㅇ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니, 그로서는 부활하신 예수께
서 자기의 본래 형이신 사실을 더 잘 식별(識別)할 수 있었겠다. 그는 이렇게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후에 기둥 같이 여김이 된 일군이 되었다(갈 1:19,2:9).
ㅇ모든 사도에게. - 여기서 "모든 사도"라고 한 것은,"열둘"이란 단체에 국한(局限)
된 말이 아니겠다. 이것은 "사도"란 명칭을 좀 넓은 뜻으로 써서 다른 사람들, 예컨대
바나나와 같은 사람들도 포함한 말인 듯하다.
ㅇ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부활하
신 예수님을 만나 보고 인격이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 증
거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원수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ㅇ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사실은 순 객관적 사실(純客觀的事實)인 것이
다. 그것은, 간추리면, 다음과 같은 원리에 비추어 알려진다.
(1)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사앨한 사람의 수효가 일정(一定)하지 않아서
어떤 때엔 한 사람을 상대하셨고, 어떤 때엔 십여명, 어떤 때엔 오백명 까지 상대하셨
다.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일정한 수효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졌다고 할 수 없다. 그 만
큼 그의 부활 사실을 본 자들의 증거는 일방적(一方的)이 아니고 완전하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주로 그의 제자들(그의 동생 야고보도 포함됨)에게만 나타났
으니, 이는, 그들만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전 예수님과 부활하신 후 예수님과의 동일성
(同一性)을 식별(識別)하겠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주님을 핍박하던 불신자 바울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 이
것도 주님의 부활의 객관적 사실(客觀的事實)됨을 확증한다. 주님의 원수도 주님의 부
활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4) 어쨋든, 주님의 부활이 무차별(無差別)의 대중 상대로 나타나 보이기를 기필
(期必)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주님의 부활 사실은 하나님이 택하신 일군
들을 통해서만 증거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며(행 10:41), 둘째로, 주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경륜하셨기 때문이며, 세째로, 주님의 부
활은 성령의 능력으로야 증거되며 또 믿어지는 까닭이다(행 5:32).
5-8절에 있는 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친히 본 자들을 들어서 그 부
활의 역사성(歷史性)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칼.바르트(k.Bart)는 이 귀절에 대하여 다
2 과 같이 말하였다. "소망이나 어두움이나 신앙도 무덤 앞에는 있을 수 있다"고(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ranslated by H.J.Stenning). 이 말은 그리스도의 비인
무덤이, 그의 부활을 증거함의 역사적 증거품으로서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하는 그릇
된 말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바울은 왜 이렇게 부활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신 기사를
가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부활의 역사적 증거를 들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ㅇ위의 바르트 말을 보면, 그는(바르트) 확실히 계시(啓示)의 역사적 성격을 부인하
고 잘못 말하였다.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ㅇ바울은, 이 부분에 있어서, 자기의 부족을 말하고 자기와 같이 악한 자도 그리스도
의 부활 사실을 보고 변화되고 은혜로 사도가 되어짐을 지적하였다. 즉, 큰 죄인이 변
화하여 신앙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가 본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진리이기 때문
이란 말이다.
ㅇ그러나 바르트는 여기에 대하여서도 말하기를 "진리는 보이는 역사적 모습을 취하
지 않을 때에 그것은 아무리 초조할지라도 유력하다. 진리는 그것이 인간의 이름을 취
하거나 일정한 슬로간에 의하여 학파(學派)나 운동으로 나타날 때는 죽었거나 혹은 치
명적(致命的)으로 병든 것이다" 라고 하였다(같은책 p.145-146). 바르트의 이 말은 복
음 진리에 대한 역사적 체계가 있을 수 없다는 그릇된 사상이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ㅇ이 두 귀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인즉, 일반 신자들도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은 벌써 된 일이니 앞으로도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곧,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성을 입으셨던 이로서 죽었다가 다시 살았은즉, 모든 다른 인간성의
소유자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 아래 있다.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ㅇ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고 가정(假定)하는 경우에 나올 불행한 일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 가상(假想)되는 불행한 일들은 (1) 사도들의 전도가 헛됨. 이것은
물론 천부당 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가상이다. 사도들의 전파하는 것이 참인 것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가 동반(同伴)된 것과 성령의 역사로 증거되었다(히 2:4). (2)믿
음도 헛것이 됨. 이것도 이론(理論)을 위하여 가상적으로 말한 것 뿐이고 사실과는 정
반대(正反對)이다. 믿음이 헛되어 질 리(理)는 만무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히 11:1-2). (3) 사
도들이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됨. 이것도 사실과 정반대 되는 가상이다. 사도들
은 거짓 증인들과 정반대되는 성질 있는 사역을 하였다(살전 2:3-6; 고후 2:17).
ㅇ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
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 여기에 같은 말씀이 중복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일반 신자들의 부활
이 서로 서로 일체(一體)되는 원리라는 것을 역설(力說)하려는 데 있다.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ㅇ이 귀절들은, 14,15절의 말씀과 유사(類似)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는 가정(假
定) 밑에 나올 불행한 결과들에 대하여 보충한다.
(1) 믿음도 헛됨. - 14,15절의 같은 말씀 해석을 참조하라.
(2)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 -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이방인들이 사
죄 받은 것은 확실하였다(행 10:43,11:1-18). 그들은 복음을 믿자마자 하나님에게서
사죄 받은 증표를 많이 받았다. 그러면, 신자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다는 말은 성
립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로 하여금 사죄 받게 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도 참되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 고함 .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
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은 확실하다(살전 4:14).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은 성령의
은혜로 되나니, 성령을 받은 자가 부활할 것은 확실하다(롬 8:11). 그러므로 "그리스
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는 가상(假想)은, 어디까지든지 성립될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의 부활이 참되지 않다고 할진대 이런 불가능(不可能)한 가상도 성립된
다고 하는 셈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이 참되지 않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4) "우리가 더욱 불쌍" - 함. 이것도 가상이다. 기독자인 바울은 얼마나 행복스러
웠나! (행 26:29;빌 3:7-9). 그러므로 이런 가상은 성립될 수 없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ㅇ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잠자는 자"란 말은 죽은 자들을 비유한다.
"첫 열매", 하나님께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면, 수입되는 곡식 전부를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의(意義)를 가진다(롬 11:16; 출 23:19, 34:26; 레 2:12, 23:10, 17,
20;민 15:20, 21).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의 백성의 부
활도 얻어진 것이다. 그는 머리요 그의 백성은 몸이니, 머리가 부활하였은즉 몸된 교
회도 부활하도록 되어있다(롬 6:5;골 1:18).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ㅇ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 이 말
씀은, 분명히 구주 예수님의 대속적 구원(代贖的救援)의 원칙을 보여준다. 특별히 롬
5:12이하의 말씀이 이 귀절 해석에 적합한 참고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자(代贖
者)이신 역사가 윗절에 있는 그의 "첫 열매"된 성질을 설명하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 초두에(헬라 원문대로) "왜 그런고 하면"이란 말이 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ㅇ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
도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 "첫 열매"란 말에 대하여 위에 제 20절에 있
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강림"이란 말은 왕의 내림(來臨)
을 의미할 때 상용되는 말인데 여기서 주님의 재림을 가리킨다. "그에게 붙은 자"란
말은, 그리스도의 백성을 가리킨 것이니, 곧, 기독신자 들이다. 고전 12:3, 1:30,
7:23 참조.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ㅇ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여기 "나중이니"란 말은, 헬라 원어로 토 텔로스
니 세상 끝이란 뜻이고, "마지막 부활"이란 뜻이 아니다.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침". 이것은, 그가 그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하여 모든
악한 권세들을 멸하느라고 잡았던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친다는 뜻이다. 그가 재
림하실 때엔 모든 악한 권세들을 멸하신다. 대상 29:11; 시 22:29, 145:13;욥 21장;
욜 3:8; 계 11:15, 20:10 참조.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ㅇ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는, 모든 원수(사망까지 포함됨)를 완전
히 멸절하시는 권세를 가지신다. 이것이 그의 왕권인데, 그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
시어 이를 행용(行用)하신다(시 110편). "그 발아래" 둠은 완전한 정복을 이름이다.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ㅇ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 이것은, "만물을 저의 발아
래 두셨다"는 시 8:6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이다. 이것은 메시야께서 구속 사업(救
贖事業)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를 가리킨다. 하나님 아버
지께서 그에게 이런 권세를 주셨으니, 아버지께서만은 메시야의 권세 아래 들지 않으
신 것이 명백하다. 그는 필경 만유의 주가 되신다(28 下半節)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ㅇ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어 그 왕권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바침에 따
라,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의 주로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재림하시어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복속)하신다 함은, (1) 그
의 신성(神性)이 아버지만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그의 역사면(役事面)
에 있어서 아버지에게 종속(從屬)하심을 가리킨다. 그리고 (2) 그것은, 그가 삼위 일
체 신(神) 안에서 영원한 왕이심을 부인하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고 또한 (3) 그것은,
그가 그의 구속하신 백성의 영원한 왕이심을 부인함도 아니다.
바르트는 이 부분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왕국은 본질에 있어서는 언제나
오는 중에만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같은책 P.17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이루신 역사적 가치(歷史的價値)를 무시한 말이 아
닌가? 그리스도의 왕국은 물론 과도적(過渡的)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천국
의 현실이 아닌가? 천국의 종말적(終末的)인 완성은 미래에 속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
의 초림과 함께 벌써 와 있는 현실이다.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ㅇ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 여기 이른 바 "죽은 자들
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몇가지 해석을 가진다. (1)
어떤 주석가들은 말하기를, 이것이, 산 사람으로서 별세(別世)한 사람을 위하여 대신
세례를 받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대리적(代理的) 세례는 이단에 속하는
것이니, 바울이 그것을 인정하는듯이 여기 관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이것은, 거의
죽어가는 자가 그의 불신(不信)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더러 예수를 믿고 세례 받으라
고 한 부탁대로, 그 부탁받은 자들이 순종하여 세례 받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3) 이
것은, 죽은 자들 위해서(=무덤 위에서) 세례 받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위하여"란 말
이, 이 해석에 있어선, "위에서"(above)라고 생각되었다. (4) 그리고 또
한가지 해석은, 이러하니, 곧, 여기 "죽은 자들을 위하여"란 말씀이 "죽은 자들(세례
받는 자신도 포함시킴)의 부활할 것을 염두에 두고"란 뜻이라고 한다. 이 해석은 "부
활할 것"이란 말을 보충(補充)하는 것이나 자연스럽지 않다.
ㅇ이 밖에도 학자들이 거의 30내지 40여개의 다른 해석을 이 말씀에 붙인다고 한다.
어쨌든, 세례 받는 자들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받는다는 것이 바울의 염두에 있은 것
은 사실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이 세례받을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ㅇ신자들이 의(義)를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는 것은 장래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그
같은 모험적 신앙(冒險的信仰)을 가짐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
나님께서 부활신앙(復活信仰)을 기뻐하시어 그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된다. 하나
님이 부활신앙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ㅇ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
"범인처럼"이란 말은, "부활 소망 없는 사람처럼"이란 뜻이다. 그런 소망 없는 사람으
로서야 무슨 유익을 보자고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랴? 바울이 "맹수로 더불어 싸웠다"
는 것은, 하나의 은유(隱喩)니, 곧, 악인들의 박해를 받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ㅇ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 사
22:13 참조. 여기에 "먹고 마시자"란 말이 인용되었는데, 이것은 에피큐리오 철학
(Epicurean philosophy), 곧 쾌락주의철학의 표어(標語)이다.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ㅇ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더러, 회의주의(懷疑主義)로 흐르는 악도(惡徒)들에
게 속지말라고 다짐한다. 회의주의자들은 행실이 부패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시
14:1). 진정한 의미에서 의를 행하는 사람일 수록 진리 신앙에 가까워진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ㅇ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 이것
은, 신자들의 부활할 몸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물음에 대하여 대답한다.

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ㅇ이 말씀은, (1) 현세(現世)의 몸은 죽고야 내세의 부활체(復活體)가 생겨난다는 비
유이며 (2) 장래에 부활할 몸이 현세의 썩을 몸과 같지 않다는 비유이다. 뿌리워 썩는
씨가, 그것에서 자라난 줄거리에서 피는 꽃과 같을 수 없다. 부활한 몸도 영 뿐이 아
니고 물질적(物質的)이면서도 현세의 인체(人體)와 같지는 않다(charles Hodge).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ㅇ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
여기 "저"란 말은 "그것"(종자를 의미함)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면
심기운 종자에서 그 종자의 모양과는 다른 형체의 줄기와 잎이 나온다. 그것은 또한
씨앗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하는 때(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나타나는 신자의 몸이 그 본래 무덤에 들어가던 몸과는 다른 것이다.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ㅇ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
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창조(創造0하시는 사
역에 있어서, 그 몸들의 구조와 모양이 각각 다르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가, 인간들
을 부활시키는 사역에 있어선, 땅에있던 그들의 육체의 모습과 같이 하셔야만 되는 제
한을 받을 것인가? 그럴리는 없다.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ㅇ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 여기 "하늘에 속한 형체"란 것은, 다음
귀절이 명시(明示)한 바와 같이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의미하고, "땅에 속한 형체"는
땅에서 사는 것들의 몸들을 가리킨다. 양자(兩者)의 모습이 서로 다른 사실에 근거하
여, 바울은 또다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다양성(多樣性)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그
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다시 살아날 몸을 현세(現世) 사람의 몸과 다르게 할 수 있
음을 지적한다.
ㅇ바울은 여기서 "창조질서 상(創造秩序上)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그의 구속
능력(球束能力)에 대한 비유와 전주곡(前奏曲)으로 생각하였다. 구속의 능력은 결코
창조의 능력보다 작은 것이 아니다"(H.D. Wendland, Dies Schopfungswirklcdkeit ist
Gleichnis und Vorspiel der Erlosungswirklichkeit. Diese Macht des Gottes der
Erlosung ist nicht geringer als die Macht des Gottes der Schopfung. Die Briefe
an die Korinther p.134).

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ㅇ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함을 암시한다.창조질서(創造秩序)에 있어
서도 그 다양성(多樣性)을 성립시키는 그의 능력이(38-41) 오묘하다. 이 능력이 부활
시키는 사역에 있어서 역시 오묘하게 나타난다.
ㅇ바울은 여기서, 현세의 인체(人體)와 내세의 부활체(復活體)와의 대조(對照)를 보
여주며, 양자(兩者)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립되며 존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 둘
사이에 대조는, -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 "약한 것과 강한 것", "육의 몸과 신
령한 몸" - 의 대조이다. 이것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이 저것도 존재케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여기 말한 각기 대조 중에 한 편만 존재케 할 수 있을가? 하나님은 권능에
제한 받은 신(神)이 신가? 결단코 그렇지 않다.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ㅇ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
이 되었나니. - 여기 "기록"이란 것은 창 2:7에 대하여 관설한다. "첫 사람"이란 말
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초등 인간(初等人間)을 의미한다. 그에겐, 완성시켜 주시는
(살려주시는)사람, 곧, 마지막 아담이 무언중(無言中)에도 요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산 영"이란 것은, 하나님이 아담의 몸을 지으시고 거기 생기
를 불어 넣은 뒤에 된 것이다(창 2:7). 그리하여 그 몸은 영혼이 담기운 그릇과 같이
된 셈이다(Meyer). 그것은 위에 44절에 이른바 "영혼의 몸"
이다(한역에서 "육의 몸"이란 것은 誤譯임).
이런 몸은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자체로서는 영생할 번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남을
살리는 영은 못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한 이유는, 그가 말세에 나타나서 인생들을 구원하여 완성시키기 때문이다(히 9:25-28
上半節). "마지막"이란 것은 말세란 말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초림(初臨) 때부터는,
성경의 가르친 대로, 말세이다(히 1:1,2).
그리스도가 "살려 주는 영이 되"신 것은 어느 때부터 된 것인가? 여기 "되었"다는
말이 역사상(歷史上)에 이루어진 사건(事件)을 가리키는 것인 만큼, 그것은 그의 부활
승천하신 때부터 된 것이다.그의 부활 전(復活前) 몸은 아직 "영혼의 몸"(soulbody),
곧, 영혼만이 지닌 몸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사신 몸은, 남들에게 생명을
교통하여 줄 수 있는 몸이다. 이와 같이 생명을 교통하여 주시는 일은, 그가 하심에
있어서, 물론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하신다.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ㅇ여기 이 말씀은, - "신령한 자와 육 있는자"(헬라 원문엔 이니 "영
혼의 사람")의 존재에 대한 시간 순(時間順)을 지적하려는 것보다, 미성품(未成品)과
같은, "육 있는 자"(헬라 원어의 직역대로 "영혼 있는자" 이니 성령으
로 다시 살게 함이 된 사람이 아님)를 완성케 하기 위하여 마지막 아담 곧, 신령한 자
가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귀절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원에까지 이르도록 완
전케 하시는 사역의 단계를 표시하는 말씀이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ㅇ이 귀절들은 첫 사람 아담의 근원과 둘째사람 그리스도의 근원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는 흙에서 유래(由來)하였고 다른 한 분은 하늘에서 오셨으니, 양자(兩者)는 천양
(天壤)의 차이로 서로 다른 면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성품을 취하셨으
니만큼, 그를 믿는 자들이 그의 형상을 입을 소망이 있다. 다음 귀절(49절)이 그것을
지적 한다.
바르트(Barth)는, 이 부분에 있는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하는 문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즉, "이 진정한 영은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서는 주어지
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 이적(絶對的異蹟)이다"라고 하였다(Barth,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ranslated by Stenning. p. 201). 그는 또 말하기를 "우
리는 구원사(救援史)와 관련하고 서있다. 그것은 진정한 역사니, 옛것은 망해 가고 새
것이 되어 가는 역사이다. 그것은 시간계에서 연출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영항(永
恒)의 사이에서 되어지는 것이다"락 하였다(같은책 p.201-202).
위에 소개한 바르트의 구원사관(救援史觀)은 초월주의(超越主義)가 이니라 초절주
의(超絶主義)이다. 구원사 관계에 있어서 성경은, 초월주의를 가르치고 있으나 초절주
의를 말하지는 않는다. 초월주의는, 하나님께서 시간 세계에 내재(內在)하시면서 동시
에 초월하여 영원계(永遠界)에 계심을 말한다. 이 사실은 고린도 전서 15장 27, 28절
이 밝혀준다.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ㅇ여기 이른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몸의 부활
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혈육 그대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뿐이다.
ㅇ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이 말씀도 역시 "썩은
것" 그대로는 "썩지 아니한 것"(천국)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썩은 것은 하나님
의 권능으로 변화를 받아 부활체(復活體)가 되어서만 천국에 참여한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ㅇ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 "비밀"이란 말은, 전에 감취었다가 지금은 계시(啓
示)된 진리를 이름이다. 이것은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진리를 염두에 둔 말이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곧, 우리 신자들이 주님의 재림 때 전에 모두 다
별세하고 없을 것이 아니고, 그 때에 살아 남아 있을 자들도 있겠다는 뜻이다.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은 그 때에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몸이 변화된다. "마지막 나팔"은
비유니, 주께서 재림하시어 성도들을 모으심을 가리킨다(마 24:31). 사 27:13; 살전
4:16 참조.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ㅇ우리도 변화 하리라. - "우리"란 말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살아 남아 있을 자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사도가 자기 당대에 주께서 재림하실 줄 알았던가? 그가 재림이 자
기 생전에 될지도 모른다는 신앙은 가졌을 것이다(고전 7:26의 해석 참조). 그 이유
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재림의 날과 때를 모른다고 하셨으며 또한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25:13; 눅 12:40). 그러므로 바울이 자기 당대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지도 모른다는 사상을 가진 경우에도,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ㅇ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
로다. - 이 말씀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이 변화하게
될 원인(原因)을 보여준다. 곧, 이 말씀에 "불가불"이란 말이 중요하니, 그것
이 원인이다. 그것은, 어떤 추상적(抽象的)인 절대성(絶對性)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
님의 필연성(必然性), 곧, 하나님께서 되도록 하셨기 때문에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가
리킨다. 이것은 구원론적 필연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Lenski).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ㅇ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용하리라. - 호 13:14 참조. 사망
이 이김에게 삼킨 바 된 사실에 대하여는 55-57의 말씀이 잘 보여주었다. 곧, 사망은
죄를 이르며 죄는 율법을 기회로 삼아 성립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
여 율법을 완수하여 주셨으니만큼 사망은 패배(敗北)를 당하였으며 폐지(廢止)를 당하
였다는 것이다.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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