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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고린도전서

[스크랩] 고린도전서 (8 : 1~1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49

고린도전서 (8 : 1~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ㅇ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 '...에 대하여'(페리)라는 표현은 7장의 결
혼 문제와 마찬가지로(7 : 1) 고린도 교인들이 서신이나 구전을 통하여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를 바울에게 제기했음을 시사한다(Morris). 당시의 고대 도시들에서는 종교
적 제의(祭衣)에 사용된 음식물들을 사제들이 처분하였으나 다 처분하지 못하고 남은
제물들은 시장에서 판매하였다. 제의에 사용되지 아니한 고기도 있었으므로 교인 들이
거리낌없이 시장에서 음식을 사먹을 수 있었는데 사실 제물과 순수한 음식을 구별하기
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음식은 제의에 올랐던 제물들로서 분명하게
논의될 수 있는 성격을 지녔다. 고린도 교회에서 우상의 제물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서로 상반된 견해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숭배로 인하여 오염된 음식을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또 다른 무리들은 영지 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
유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도살이나 우상 제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
다(Barrett). 바울은 이들 두 주장에 의하여 발생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먼저 그들의 지식이 편견이나 교만에 빠져 분쟁을 유발시키는 한계에 부딪혔다
는 것을 지적하고 성숙한 인격과 사랑을 강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결국 그
들의 문제는 사랑이 없는 지식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었다(9-13).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ㅇ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 바울은 사랑과 지식을 비교하면서 먼저 지식의 불완
전함을 증명한다. 본절에서의 '지식'(그노시스)이 '하나님에 관하여 아
는 것'을 시사 하지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과 직결되기도 한다
(요일 2:4).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호 6:3). 그러나 고린도의 지식있는 자들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짐으로 인하
여 오혀려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우(愚)를 범하였다. 그들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
었으나, 그 지식을 당면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마땅한 지식' 곧 덕을 세워주는 사
랑을 소유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ㅇ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 '사랑하면'
(에이 아가파)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조건문으
로 해석할 수는 없다(Barrett).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그
의 백성을 아신다는 사실이다(딤후 2:19).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정하실 때에 그
백성의 삶에는 사랑이 나타날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하나님은 증거될 것이다. 하나님
을 아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학습의 과정을 통해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구체적인 전인격적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모
든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그것이 고상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
다(Calvin).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

ㅇ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 바울은 여기서 앞절에 비하여 상당한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우상의 실체를 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
격적 실체가 아니므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것이며 실제적으로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는 것이다. 바울은 10:20에서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것' 이라고 규정
하여 우상의 배후(背後)에는 정신적인 것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바울이 본
절에서 우상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상 그 자체는 허상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orris). 따라서 바울은 여기서 (1)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2) 참된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사 41:24;렘 10:14).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ㅇ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 바울은 계속해서 우상의
허구성에 대해 언급한다. 본절에서 '신이라 칭함을 받는 자'가 있음을 인정했는데 이
때의 '신'은 당시의 그리이스 신화에 나타나는 이방 신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신앙하
는 대상을 일컫는다. 그런데 여기서의 '주'(퀴리오스)는 당시의 여러
종교들이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사용하던 일반적인 용어이다(Morris). 따라서 '많은
신'(데오이 폴로이)과 '많은 주'(퀴리오이 폴
로이)사이에는 의미상의 차이가 없으며 많은 우상들이 이방인들의 경배의 대상이 된
것을 풍자적으로 비유한 것에 불과하다. 본 구절은 이러한 풍자(諷刺)를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신들이 비실재적인 존재임을 지적하고 있다.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ㅇ한 하나님...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그로 말미암았느니라 -
본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며 우리의 기원은 그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Calvin).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자로서의 속성과 유일하심이 강조되는 것은 하나
님이 앞에 언급되어 있는 이방의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하나님께 대하여 '아버지'란 표현을 쓴 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권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 간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더욱이 본 구절에서 중요하게 제시되는 전치사 '에크'('...
로부터'), '에이스'('...안으로'), '디아'('...을 통하여')는 롬 11 :
36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모든 것'
(타 판타)의 기원과 존재 목적과 최종적인 귀결과 중보적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을 명백히 하는 표현으로 피조물인 이방의 우상과는 전혀 다
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규정한다.

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ㅇ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지식은 우상이나 거짓
신들의 존재와 위치에 관해 인식(認識)할 수 있는 지식을 가리킨다. 이 지식은 1절에
따르면 우리가 다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으로
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른 사람들에게만 국한된다(Morris). 따라서 이러한 지식은 교
회 내에서조차도 보편적인 지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을
숭배하며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중에는 고기를 하
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음식으로 생각지 않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로만 인식하는 자들
이 있었다.
ㅇ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 '습관'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데이아'
는 시내산 사본에 근거한 것이다. 어떤 사본에는 '쉬네이데세이'
('양심')라고 되어 있고 흠정역(KJV)이 이를 따르고 있지만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우상이나 우상 제물이 마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
는 거짓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샤머니즘적인 신
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구복(求福)신앙에 매여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도는 복음의 기본 도리와 그 복음의 능력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롬 1:16;갈
1:10-12;엡 3:1-6).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ㅇ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 본절은 식물(食物)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행위가 그
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한 필수적 요소라고 하는 영지주의적 고린도 교인들의 주장이 근
거없는 것임을 드러내 준다(Hodge). 한편 '세우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스테세이'
는 '가까이 나아가다'(행 27:24), '드리다'(롬 6:13)라고 번역하
는 것이 자연스럽다(Morris). 어떤 사본들(D, )에서는 이를 미래 시제로 하였
다. 이는 장차 있게 될 최후 심판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이다.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ㅇ거치는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콤마'의 문자적 의미
는 '길에 떨어져 있는 돌'로서 '장애물'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프로스콤마'는 믿음이
약한 형제의 양심에 상처를 준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우상과 타협함으로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행위가 나쁘게 생각되지 않더라도 이것이 초신자들의 양
심(良心)에 반대된다면 그들을 실족케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을 나쁜 상태로 이
끌 수도 있다(D. Thomas).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ㅇ지식 있는 네가...먹게 되지 않겠느냐 - 믿음이 성숙한 신자는 장소와 음식의 출처
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며 정확한 이해 가운데서 자유롭게 행한다. 하지만 믿
음이 약한 자는 우상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그 우상과 교제하며 경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Calvin). 결국 믿음이 강한 자들의 자유로운 행동은 믿음이 약한 신자
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냐하면 강한 신자들을 좇아 우상의 제물을 먹을 경
우 강한 신자들과는 달리 양심에 거리낌을 느낄 거리낌 때문이다.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ㅇ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 바울은 본 구절에서 자유가 남용되
는 경우를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모든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의
증표가 되지만 그것이 남용(濫用)될 때 형제들을 실족케 하는 빌미가 됨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본절의 '멸망 하였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뤼타이'
는 미래 시제로 볼 수도 있으나 내용상 현재 시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약한 자들은
장차 실족하게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에 실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Morris).
그리고 이 단어가 문장의 앞 부분에 위치하여 강조되고 있으며, 롬 14:15에서도 본절
과 동일한 내용을 언급한다.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ㅇ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 약한 형제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그리스
도께 죄를 짓는 행위로 규정된다(행 9:4). 혹자는 이러한 범죄를 그리스도에 대한 모
욕이며 그리스도의 피를 무효화시키려 하는 행위라고까지 본다(Calvin). 모든 하나님
의 백성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
로 형제에 대한 사랑의 결핍은 그것이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리스도께 대한 행위로 귀
결된다(Hendriksen). 주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
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5:40).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ㅇ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 본절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가 바울 자신의 의
지 표명(表明)을 통하여 나타난다. 바울의 이러한 결심은 그의 뜨거운 사랑이 단적으
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이것은 (1) 인간적으로 보잘것없는 형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는 그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그를 통해 당신의 사역과 섭리를 이루어 나가신다
는 점과 (2) 그리스도인의 영속적인 생활 원칙을 밝히 제시해 주고 있다(마 25:40,
45). 한편 '실족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칸달리제이'는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Morris). 이 단어는 '스칸달론'에서 온 것으
로 원래 '올가미의 덫을 잠그는 나무'를 가리키며 온갖 고난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십자가가 '스칸달론'이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1:18), 십자가의 '거치는 것'을 '스칸달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갈 5:11). 본절에
서는 형제로 하여금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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