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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고린도전서

[스크랩] 고린도전서 (3 : 1~2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47
고린도전서 3장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ㅇ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 할 수 없어서 -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이스'는 2:14, 15과는 달리 본절에서
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2:14, 15에서는 이 단어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
과 대조되어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하였지만, 본절에서는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네피오이스)와 대조되고 있다. 즉 본절에서 '신령한 자들'
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숙해 가는 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가
여전히 성숙되지 못하고 정체(停滯)되어 육적인 편견과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며 행동
하는 수준에 있다고 규정한다.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ㅇ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 '밥'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로
마'는 원래 '고기'(meat)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성인이 먹는 단단한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단단한 음식에 해당되는 형태로 복
음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어린 신자로 여겨, 그들이 수
용할 수 있는 형태로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바울의 이러한 화법은 헬라
세계에 퍼져있던 밀의 종교의 방식과는 다르다. 밀의 종교에서는 신도의 수준에 따라
일정수준에 이른 신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방식으로 복음의 진리를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가르쳤다고는 볼 수 없다.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의 상태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이기 때문이다(Calvin). 오히려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식을 달리하여 가르쳤다고 보는게 더욱 타당하다. 이렇듯
하나님의 개시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상태에 따라 깊고
넓게 가르쳐야 한다.
ㅇ지금도 못하리라 -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처음 방문하여 복음을 가르칠 때, 그들은
단순한 믿음의 도리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고린도 교인들
이 복의 초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여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
는 까닭에 다른형태로 복음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ㅇ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 '육신에 속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
키코이'는 1절에서 언급한 '사르키노이스'
보다 강한 표현으로 '사르키노이스'는 육신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사르키코이'는
육신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이 말이 신앙 생활을 적게 한 사람에게는 비난이 되지않
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한 사람에게 사용되면 비난하는 투가 된다(Morris).
ㅇ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육신에 속한 상태에 대해 구
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젤로스'는 근본적으
로 '뜨거움', '열심' 등을 의미하여 헬라의 전통 작가들의 문헌과 신약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덕목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질투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
어 그릇된 경쟁 의식에서 나온 감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대개 '젤로
스'를 육에 속한 사람이 갖고있는 정서로 본다(갈 5:20). 한편 '시기'가 외적으로 표
출되면 분쟁이 유발되는데, '분쟁'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리스'가 어떤
헬라어 사본들(P ,D,F,G,TR)에서는 '분열'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코스타시아이'
로 되어 있다. '분열'은 '분쟁'의 결과로서 필사자가 좀더 과
격하게 고린도 교회의 분열상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고린도 교인들
은 여러 파로 나누어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각기 독자적인 태도와 노선을 취하
였음을 시사한다.
ㅇ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 '사람을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안드로폰'
은 통상적인 죄인의 삶의 방식인 이기심, 교만, 시기 따위
의 정서를 정당하게 여기고 수용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육
체의 요구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버린 칭의인(稱義人)으로 살아가야
한다(갈 2:20;5:24).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서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고린도 교인들
의 오류를 스스로 시인할 수 밖에 없도록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고 있다.

4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ㅇ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아볼로에게라 하니 -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접속사 '가르'('왜냐하면')는 본절이 앞절의 진술에 대한 이유가 됨을 나타
낸다. 고린도 교인들이 '시기'와 '분쟁'에 가득한 어린 신자들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바울'파와 '아볼로'파 등으로 나뉘어 있는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다.바울은 고린도 교
인들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당파를 짓고 있는 분열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
하고 있다. 바울이 본절에서 제시하는 바울파, 아볼로파 외에도 몇몇 분파들이 더 있
었다(1:12). 그런데 바울이 본절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모인 바울파와 견주어 자신과
깊은 관계에 있던 '아볼로'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특별한 사역이나 어떤 특정한 인물에 속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 잘못돼었음을 설득력있게 가르치기 위함이다.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ㅇ사본(P ,C,D,TR)에서는 인칭형인 '티스'('누구냐')로 되어 있으나,
고대 사본들(A,B)에서는 중성형인 '티'('무엇이냐')라고 되어 있어 바울 자
신과 아볼로를 매우 경시하여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 절에서 언급하려는
하나님의 권위의 절대성과 그분의 사역의 완전성을 두각(頭角)시키고 인간 지도자의
권위의 상대성과 한계성을 대조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의도이다.
ㅇ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앞 구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식을 취하여,'주'와 '사역자'를 대조함으로써 '주'의 우위성을
나타낸다. '사역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이'는 본래 식
탁에서 시중을 드는 봉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가 신약성경에서는 자주 하나
님을 섬기는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 '집사'(롬 16:1;빌 1:1)를 의미하기도 한다. 본
절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것은 그들의 직무가 낮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Morris). 모든 행위의 주체자는 '그리스도'이시고 사역자인 바울과 아볼로는 도구에
불과하다.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ㅇ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 바울은
앞절의 논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식물 재배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본절에 나타나는 동
사들 가운데 바울과 아볼로를 주체자로 삼는 '심었고'의 헬라어 '에퓌튜사
와 '물 주었으되'의 헬라어 '에포티센'은 부정과거인데
반해, 하나님을 주체자로 갖는 동사 '자라나게 하셨나니'의 헬라어 '육사넨'
은 미완료과거이다. 이는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은 시간적인 한계를 갖고 있
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영속적임을 보여준다. 본 구절은 고린도 교회에 처음으로 복음
을 전해 준 사람이 바울이라는 것과(행 18:1-18) 그의 동반자 아볼로가 고린도 교인들
에게 복음을 자세하게 해석하여 가르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다(행 18:24;19:1). 그러
나 그들의 사역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항상 있었고 절대적인 역할을 하셨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ㅇ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
이니라 - 본절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설명해 주는것으로, 앞절에 이어 5절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아무것도 아니로되'의 헬라어 '티 우테'는 심고
물주는 사역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오직...뿐이니라'의 헬라어 '알'
은 근본적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음을 보
여준다.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ㅇ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 본절에서는 심는 이와 물주는 이를 접속사 '카
이'('그리고','...도')로 연결시켜 바울이 언급하려는 것을 둘 다에게 동일
하게 적용시킨다. '일반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헨 에이신'은 '하
나이다'라는 의미로 둘 다 동일하다는 의미이다.즉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역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은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동일한 교회
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ㅇ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라는
표현은 사역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개별적인 책임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바울은 사역
자들이 자신이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가진 재능이나 은사조
차도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은사에 관계없이
수고에 대한 대가로 상급이 주어진다(Hodge).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ㅇ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 본절에는 '하나님'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우'
가 각 구절 맨 앞에 위치하여 강조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바울이
줄곧 하나님을 모든 행위의 주체자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역자들'의
헬라어 '쉰에르고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의 견해를 따르면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
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Meyer, Alford, Robertson).(2)혹자는 문
맥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함께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
한다(Bengel, Morris, Vincent).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가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본
절이 앞 구절에 대한 설명적인 표현이므로 문맥을 떠나 해석할 수 없기때문이다.
ㅇ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밭'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오르기
온'은 신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교회를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와 같은 사역자들을 경작자로 간주하고 고린도 교회를 밭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집'의 헬라어 '오이코도메' 역시 교회를 가
리키는데, 바울은 이런 표현을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했다(롬 15:20;엡 2:20-22;벧전
2:5). 바울은 교회를 '밭'으로 비유하다가 갑자기 '집'으로 비유의 소재를 전환하면서
자신의 논증을 다음 절에서도 계속 이끌어나간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ㅇ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 본절을 통해서도 바울이 고린도 교
회에 처음으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묘사한다. '지혜로운 건축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포스 아르키테크톤'
은 '숙련된 건축가'라는 뜻으로 헬라어의 관례에 따르
면 다른 일꾼들을 감독하는 사람을 말한다. 바울이 '집'(오이코도
메)이란 말은 곧잘 사용했지만, '건축자'라는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하였다. 바울은 교
회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엡 3:7-10)을 알고있는 숙련된 건축자로서 고린도 지
역에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교리적인 터를 닦아 놓았다(2:2;행 4:11;엡 2:20;벧전 2:6).
ㅇ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
'다른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로스'는 단수이지만, '각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카스토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교회의 모든 사역자를
개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 기초를 놓을 필요가 없이 이미
닦여진 그 터 위에 건물을 세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각자는 어떻게 그 위에 세울
지를 주의하여야 한다.

11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ㅇ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 본절은 앞절에서 경고
했던 이유를 제시한다. 모든 건축에 있어서 그 건물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
하고 우선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도 교회의 터가 가장 중요하
고 우선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터로 삼지 않고서는 세워질 수 없다. 이 터는 바울
이 닦았으나 실상은 그가 닦은 것이 아니다. 바울에게 사도적 권위를 부여하신 그리스
도께서 바울을 통해 그 터를 닦으신 것이다(Meyer).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주인이며 교회의 진
정한 터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터로 삼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교회라 할 수 없
다. 엡 2:20 에서는 사도들을 '터'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이라 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이심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떠한
인물이나 사상 체계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다.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ㅇ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바울은 건축에 사용되는 두 종류의 자재를 예로들고 있다. 그 하나는 '금, 은, 보석'
등 값비싸고 견고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 풀, 짚' 등 값싸고 허술한 것이다.
바울은 순수하며 변치않는 영원한 것과 이에 비해 무미건조하고 일시적인 것을 비교
대조함으로써 거짓된 가르침은 쉽게 소멸될 것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후자(後者)는
'천한 초등 학문'이며 '철학과 헛된 속임수'이다(갈 4:9;골 2:8).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ㅇ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 '그
날'은 재난이나 환난의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주의 날'
(롬 13:12;살전 5:2-9;히 10:25)이다. '밝히리니'의 헬라어 '델로세이'
는 성격의 본질을 드러내어 그것의 실상을 밝힘을 의미한다. 그 날에는 각 사람
의 공력에 따른 결과와 성격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드러나는 방식이 '불'에
의해 결정되어지는데,이는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불'은 크게 두 가지 작
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정화시키는 작용(마 3:11;막 9:49)과 소멸(燒滅)시키
는 작용(마 3:12;살후 1:7, 8;히 12:29)이 그것이다. 바울은 '불'이라는 말을 사용하
여 각 사람의 공력이 정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적절히 표
현하고 있다. '나타내고'의 헬라어 '아포칼립데타이'는
'아포칼립토'('드러내다')의 현재 수동태형으로 공력의 드러
나는 정도가 완벽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ㅇ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바울은 본절에서
완벽한 불의 시험을 거친 후에 그 결과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을 설명한다(마
25:14-30;눅 19:11-27). 이렇듯 바울은 마지막 심판 때 있을 보상과 형벌(形罰)은 그
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보았다(고후 5:10). 그때 주어질 '상'이 실지로 무엇을 의
미하는지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이 '상'은 개인적 구원이나 영원한 생명은 아닌 듯하
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모든 신자에게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상급
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것'(9:18) 자체가 될 수도 있다(Grosheide).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ㅇ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
은것 같으리라 - 공력이 무익하여 없어져 버리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을 갖고있지 못하므로 단지 구원만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구원도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아서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이 표현은 화염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사
적으로 도망치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Morris).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적지않은
해가 있게 된다. 카톨릭에서는 본절을 연옥사상(煉獄思想)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가 타당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본절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는 교회의 사역자들과 교리와 연관지어서 언급하는 것이지 일반 성도들과 관련된 언급
이 아니다. (2) 본절에서 '불'은 심판을 위해 연단받는 상태가 아니라 심판 그 자체를
가리킨다. (3) 이 '불'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가운데 나타나실 불이다. 바울은 구원얻
는 것이 불로 정화되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불 가운데서'처럼 어렵게 구원
얻는다고 한다(Hodge). 그러므로 카톨릭이 불을 통해 구원얻는다고 하는 주장은 타당
하지 않다.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ㅇ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오스'는
'성전 지역'(temple area)을 가리키는 '히에론'과는 달리 문자적으로
'거룩한 장소' 즉 '성소'(sanctuary)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부른 것처럼(요 2:19-21),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6:19)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은 개
인적으로나 집합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리어질 수 있다(Mare). 바울은 9절의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에이미('be') 동사
의 복수형 '에스테'('너희는...이다')를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성전'
(나오스 데우)은 단수형을 사용하여 기독교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로 보았다.
ㅇ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 본 구절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
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적성전이라는 근거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있다(엡 2:22;벧전 2:5).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막이나 성전
의 지성소에 '쉐키나'(Shechinah, '여호와의 가시적인 임재')가 나타
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였지만, 이제는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이 성도들 개인과
교회 공동체 안에 항상 임재하신다(Hodge).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ㅇ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 본절은 '더
럽히면'(프데이레이)이라는 조건문의 동사와 '멸하시리라'
(프데레이)는 귀결문의 동사가 동일하게 쓰여 전체적으로 매우 과격하게 표현
되어 있다. '프데레이'는 '보다 나쁜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
고 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70인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망치게 하다'라는 뜻으로도 사
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은 '만약 누구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시킨다면 하나님이 그
를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Hodge). 바울은 이러한 보응(報應)의 원칙
을 제시하여 하나님의 처분이 불공평하고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공의로운
처사임을 보여준다.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실제로 분쟁을 일으키는 고린도 교인
들의 태도가 중대한 죄의 행위였음을 전제하고 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성전을 더럽
히면 사형을 당하거나(레 15:31)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의 축출되었다(민 19:20). 그
런데 하나님은 나무와 돌로 지어진 상징적이고 외적인 성전 건물보다는 영적인 성전인
사람과 교회 공동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교리를 그릇되게
전하면 사람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교회 공동체를 훼손시키는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므로 하나님은 그에 대해 보응하실 것이다.
ㅇ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거룩하니'의 헬라어 '하기오스'
는 '성별된',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등을 의미한다. '거룩'이란 말은 원
래 하나님의 속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본래가 거룩하다. 그
러므로 하나님의 성전(聖殿)은 더욱 거룩하고 구별되어 있다(사 28:10;계 3:12). 바울
은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성을 예시하여,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을 위
해 구별된 존재임을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너희도 그러하니라'의 헬라어 '호이티네
스 에스테 휘메이스'는 문자적으로 '그게 너희들
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호이티네스'가 단수인 '하기오스'를 가리킨
다기보다는 집합명사인 '성전'(나오스)을 가리키는 것로 이해하는 편이 낫
다(Grosheide).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뜻으로,결국 독자들로 하여
금 '그러므로 너희가 거룩하다'는 의미로 논리적 결론을 내리게 한다(Edwards). 바울
이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성을 들어 고린도 교회에 곧바로 적용한 것은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의 분쟁을 그치게 하고 교회의 각 구성원의 책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지적하려
는 것이다.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ㅇ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 바울은 갑자기 주제를 전환하여 앞에서(1:17-2:16)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하면서 줄곧 다루었던 세상 지혜의 어리석음에 대해 다시 언급한
다. 따라서 이 말은 바로 앞 구절의 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는 주제보다
는 뒤따르는 말 '지혜자가 되기 위해 미련한 자가 되라'는 주제와 연결짓는 것이 타당
하다(Alford, Findlay). '속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파타토'
는 현재 명령형으로서 고린도 교회 내에 자기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그릇된 행위를
하고있는 사람이 현재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를 세
상적인 관점으로 그릇되게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불경건한 태도
를 갖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엄증하게 경고하고 있다.
ㅇ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 바울은 세상에 대한 미련
함이 진정한 지혜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 모두
가 갈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미련함을 인식해야한
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지혜'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헬라인들에게 그리스도
인들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나(2:14)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
냐하면 바울이 1:18-25에서 언급한 대로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나 이것
이야말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ㅇ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 앞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지
혜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이라고 강력
하게 선언한다(Mare). 이처럼 지혜에 대한 의의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이 세상의 것과
하나님 나라의 것이 서로다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의 인간적 지혜를 의
존하여 서로 분열과 분쟁을 일으킴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ㅇ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 바
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절과 다음절에서 구약성경의 두 부분을 인용한
다. 본 구절은 첫번째 부분으로 욥 5:12,13을 약간 자유스럽게 인용했다. 이 구절은
70인역의 번역을 옮기지 않고 바울이 직접 히브리어 본문에서 번역한 듯하다. '궤휼'
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누르기아'는 본래 '어떤 일을 민첩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지만 주로 나쁜 뜻
으로 사용되어(Morris), '못된 일이라면 어떻게라도 해낼 태세를 갖춘 상태'를 말한다
(Robertson). 한편 '빠지게 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랏소메노스'
는 70인역에서의 '카탈람바노'('취하다')보
다 강력하고 생생한 표현이다. 이 단어는 '벌린 손'을 의미하는 헬라어 '드락스'
와 같은 어군으로 '탈취하다', '붙잡다'등을 의미한다. 바울은 본구절을 통하
여 사람들의 궤휼(詭譎)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상을
뚜렷하게 표현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들의 구원 계획을 세우나 오히려
그 궤휼이 그들을 얽어매도록 하여 인간의 지혜가 전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다.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ㅇ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 본 구절은 구약
에서 인용한 두번째 부분으로서 시 94:11의 인용이다. '생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
알로기스무스'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논리 과정
까지 포함하고(마 16:7;눅 12:17), 주로 악한 뜻을 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눅 5:22;6:8;롬 1:21;약 2:4).본절에서는 소위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의 모든 생각이
란 주께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의 지혜가 주 앞에서는 헛것에 지나지않
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헛것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타이오이
는 '쓸모없는', '열매없는','공허한', '무익한'이란 뜻으로 본문에서는 인간 스스로의
계획은 허탄(虛誕)한 것에서 나온 것이므로 아무런 결과도 기대할수 없다는 것을 가르
친다. 그들이 아무리 악한 계획을 세운다해도 영구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없고 비록 그
생각이 일시적으로 선한 것이 있다고 해도 결국 무익한 것으로 돌아가고야 만다는 것
이다.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ㅇ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 '그런즉'의 헬라어 '호스테'
는 앞 부분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한 결론을 맺을 때 사용되곤 한다(3:7;4:5;11:33;14:
39;15:58). 본절에서는 명령형 동사 '자랑하지 말라' 와 함께 쓰여 바울이 18-20절의
내용을 권고하며 동시에 요약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 교인들은 지혜를 사
모하는 것 때문에 교만해졌고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들의 이름을 힘입어 헛된 자랑에
빠졌으나 이제 그러한 현상에 쇄기를 박고 분열을 방지하라는 명령이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 헬라어 본문에 접속사 '가르'를 사용한 것은
앞 구절의 권면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제 바울은 독자로 하여금
시야를 만물에 돌리게 한다. '만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타'는 하나님
의 피조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도자인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등도 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에 지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우주의 대권자까지 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롬 8:17,32;딤전 6:17). 그러므로 어떤
특정인이나 사상을 중심으로 모이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무익하다.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ㅇ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 바울은 앞절에서 언급한 '만물'에 대해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교회의 사역자와 공간과 시간에 속하는 모든 것을 나열한다. 바울과 아볼로나 베드
로와 같이 사도적 권위를 갖고 있는 교회의 사역자들도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 세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나 업적을 크게 보고 섬기거나 그런 것들에게 영광을 돌
려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구속받은 교회에 속한 것이지 교회가 사역자에
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가시적인 세계인 '코스모스'('우
주')나 사람에게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생명이나 사망도 그리고 역사를 종
속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의 흐름도 구원받은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주의 백성들을 위해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결
국 본질상 우리에게 속한 것이 된다(Mare).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ㅇ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 그리스도인에게 우주의 모든 것이 속하여졌음을 앞서
언급한 후에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에게 종속된 관계라고 말함으로써 긍극
적인 통치권자가 그리스도이심을 밝힌다. 인간이 최고 통치권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서 인간에게 통치권자로서의 가치를 부여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 그 가치를 최상으로 발휘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종속되는 근거는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과 의지에 순종하여 그 보상으로 영광의 자리에 앉게되었
다는 사실과 관련된다(Grosheide).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
로받게 하고(약 2:5) 구원얻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셨다(요 10:36;17:18).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로서 완전한 순종을 이루시
고 모든 통치권을 이양(移讓)받으셨다(마 28:18).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으로
서 성부 하나님의 의지와 일치되게 통치권을 행사하시므로 교회가 한 분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는 것은 곧 하나님께 속하여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만 완전한
하나됨과 정상적인 질서가 이루어 진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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