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고린도전서

[스크랩] 고린도전서 (2 : 1~16)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47
고린도전서 2장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ㅇ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 이 문구는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갔을 때'(When
I came, NIV)라는 의미로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당시 약 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무르
면서 전도하였을 때를 가리킨다(행 18:1-17).
ㅇ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리온'
은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 근거한 것이다. 오래된 사본들(P,A,C)에는
'뮈스테리온'('비밀')으로 되어 있어서 '비밀'로 해석
하기도 하지만(Aland), 내용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석하든지 별차이가 없다. 즉 하나님
께서 주시고 하나님을 내용으로 삼는 증거 곧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
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역사였다.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곧 '십자가의 도'(1:8 주석
참조)를 전한다는 것이다.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ㅇ내가...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 헬라어 본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가르'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의 이유가 됨을 보여준다. 본절에서 바
울은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한다(행 10:37-43).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가고자 했던 유일한 목적이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에 못박히신 것' 곧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르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다(Hodge).
ㅇ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알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데나
이'는 경험을 통해 아는 일반적인 용어인 '기노스코'
와는 달리 직관적이며 전문적인 지식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인 '오이다'
의 부정사이다. 바울은 모든 것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만은 깊은 지식을 가졌고 또 가지기를 원했다. 바울이 이렇게 다짐한 것은 바울이 회
심 때에 겪은 체험과 철학적인 지혜를 동원하여 전도하려다가 실패한 아덴에서의 경험
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행 17:22-34).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지
식만이 참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가장 합당(合當)한 것임을
깨달았다.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ㅇ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 '거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노멘'
은 '갔다'라는 의미로 본문은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의 뜻이
다. 바울은 본절 초두에서 '카고'('내가 또한')라는 말로 시작하여 주제를
전환하고 있다.
ㅇ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약함'은 육체적인 허약
이 아니다. 그가 비록 이따금 자신의 육체적인 허약을 언급하지만(고후 10:10) 본절에
서는 전체 문맥상 육체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Hodge). 바울의 마음이
약하고 두려웠던 것은 그가 고린도에 이르기 직전 아덴에서의 전도에 실패한 것이 그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이교도들의 강한
세력들, 철학자들의 사변과 교만한 태도, 그리고 음탕한 도덕적인 타락상 등이 난무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때 느꼈던 인간적인 중압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바
울은 비록 강하고 담대한 대사도(고후 4:7-11;엡 6:19,20)이기도 했지만 자아의 나약
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겸비한 인격자였음을 보여준다.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ㅇ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 '권하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도이 로고이스'는 '유혹하는 말'(enticing
words, KJV), '그럴 듯한 말'(plausible words, RSV)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유혹하는 말, 곧 인간의 지혜가 상상해 낸 설득조의 말을
의미한다. 바울은 사람들을 믿음에 복종하도록 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논쟁이나 설득으
로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학문에는 그와 같은 논리와 설득력, 그리고 인간의 지혜에
서 나온 웅변술과 화려한 말들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지혜가 부각되면 십자가의
도는 헛되게 된다(1:17).
ㅇ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강한 영적
인 능력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1:18). 여기에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헬
라어 '아포데익세이 프뉴마토스 카이 뒤나메오스'
는 (1)'능력있는 성령의 나타남' 또는 (2)'성령
과 능력의 나타남'이라는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능력'의 헬라어 '뒤나미스'
가 종종 이적적인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전체적인 문
맥에 비추어 (1)의 번역이 더욱 타당하다. 즉 성령께서 능력 있게 나타나심에 근거하
여 바울이 복음을 전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성령의 나타나심에 의존하여 설교했으므
로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이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언
급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ㅇ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 본절에서는 바울이 왜 인간의 지혜로
된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이유를 설명한다. 바울이 '성령의 능력' 으로 말미암아
전도하고 가르친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헬라어 '피스티스'는 정관사 '헤'와 함께 사용 되어 믿
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기초한 믿음의 본질로 해석되어야 한
다. 따라서 '너희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Mare).
ㅇ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다만'의 헬라어 '알라'는
본절을 앞절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게 하는 접속사로 믿음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
을 강조한다. 바울은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의 근거가 이성에 호소하는 논증(論證)이
아니라 진리와 함께 그리고 진리로 말미암아 심령에 역사(役事)하는 하나님의 권능
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
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도록 가르친다.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ㅇ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 바울은 이미 지혜의 부당성
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혜를 언급한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지혜를'
(소피안)이 문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온전한 자'들이 깨닫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온전한 자'
(텔레이오이스)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어린아이(3:1)와 비교되어 영적
인 이해에 있어서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Morris).그러나 본문의 문맥상,구원받
지 못한자와 대조되는 구원받은 자들 즉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
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단정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 아이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생하지못한 자, 즉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1:20-23)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를 지혜로 간주하는 자들은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모든 믿는자를 가리킨다(Hodge, Mare). 바울은 본문을 통
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시사해준다.
ㅇ이 세상의 지혜...없어질 관원의 지혜 - '이 세상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아이오
노스 투투'는 보다 정확히는 1:20과 같이 '이 세
대'를 뜻한다. 그리고 '관원'(아르콘톤)은 본절에서 '영향력을 행
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 '관원'이 사단이나 악귀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Origen, Marcion).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성이 희박하다. 비록 바울이 이 단어를
사단의 개념으로 자주 사용하지만(롬 8:38;골 2:15), 모두 단수형을 사용하였다. 더욱
이 행 3:17에서는 '관원들'이 무지(無知) 중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음을 언급
했고 본장 8절에서도 '이 세대의 관원'
(톤 아르콘톤투 아이오노스)이 무지로 인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음을 언급한다.
또한 앞절에서부터 계속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하여 사람의 지혜를 언급하므로 본
절에서 갑자기 사단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관원'이란 '이
방 세계나 유대 세계의 지도자 일반' 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은 본문
에서도 자신이 전파하는 지혜는 세상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다.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ㅇ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 '오직'에 해당하는 헬
라어 '알라'는 강한 반의어 접속사로 바울이 언급하는 지혜가 바로 하나님
의 지혜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우소피안'
에서 하나님(데우)은 강조되어 앞에 위치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다
는 점을 강조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뮈스테리오)이란 오
랫동안 감취어져 있다가 드러난 것으로(엠 3:3;골 1:26),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엡 5:32). 이 '비밀'은 인간이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연구해도 그 비밀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없다(Morris).
ㅇ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 본 구절은 헬라어 '헨'
('곧')을 사용하여 앞구절을 설명한다. '영광'(독사)은 백성들과 함께
하신 구약의 영광스런 하나님을 회상해 보는 것(출 24:17;40:34;민 14:10)과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나눌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계 21:10, 11, 22,23)을 의미한다
(Mare). 결국 이 말은 구원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익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께
서 마련하신 뛰어난 모든 것과 복스러운 모든 것까지도 포함한다(롬 5:2). 바울은 '우
리의 영광을 위하사'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결
국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라 할 수 있는 구속 계획(球贖計劃)은 인간의 상상
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만세전에 이미 구상되었고 복음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알려진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Hodge).
ㅇ만세전에(프로 톤 아이오논)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영원 전에'라는 의미로 시간이 발생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복음이 후대의 고안물(考案物)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한다.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ㅇ이 지혜는...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기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 '영광
의'(독세스)라는 형용사는 대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용되었고(행
7:2;엡 1:6)외경 에녹서에서도 '영광의 주'가 하나님을 지시하였다(Morris) 그리스도
의 신성을 보여주는 호칭인 '영광의 주'(퀴리온 테스
독세스)는 바울 서신에서는 본절에만 나타난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을 사용하여 십자가의 수치와 극명(克明)하게 대조를 보이고 있
다.바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언급한대로 그분의 영광이 '우
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
함이다(Grosheide).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ㅇ하나님이...함과 같으니라 - 본 구절의 인용 출처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오리겐
(Origen)과 그후 몇몇 주석가들은 지금은 분실된 '엘리야의 외경'이나 또는 '이사야의
승천'이라는 외경에서 인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만 '기
록된 바'라고 함으로 이견해는 타당하지 않다(Lightfoot, Hodge). 혹자는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주님의 말씀을 인용했다고 하며 사 52:15;65:17등에서 인용했다고 하기
도 한다(Chrysostom, Hodge).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사 64:4을 대략적으로 언급한듯
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는 말은 구약의 전체적인 사상을 일반적인
의미로 함축시킨 것같다. 한편 '예비하신'이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이
루어가고 계신다는 7절의 사상을 강조해 주고 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ㅇ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
가 어떤 사본에는(A,C,D), '데'('그러나')로 되어있고, 어떤 사본에는(P ,
B) '가르'('왜냐하면')로 되어있다(Aland). 개역성경은 '데'를 취하여 본절
을 앞 구절과 역접관계로 보았다. 그리고 헬라어 본문에는 '우리에게'(헤
민)가 문장의 초두에 나와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이 세상의 관원들이 깨닫지 못했던 하
나님의 깊은 지혜가 선지자와 사도들(엡3:5)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되었
다. 바울이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 줄곧 '우리'라는 대명사를 주로 사용한 것은 계시
가 바울뿐 아니라 모든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시사해준다.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ㅇ사람의 사정을...아우도 알지 못하느니라 - 본절은 인간의 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와 진리를 이해하려면 성령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본절에서 언급된 '영'(프뉴
마)은 하나님과 사람의영을 모두 지칭하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실재적인 인격'을 가
리킨다(Mare).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ㅇ우리가...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 '우리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
이스'가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장 초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알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대상이 다름아닌 그리스도인임
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본절에서의 '우리'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을 가리키
지만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은 자들까지도 포함한다.
ㅇ이는...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
나'는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본절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목적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는 것임을 설명한다. '은혜로
주신 것들'의 헬라어 '카리스덴타'는 부정 과거로서 그리스도
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사람에게 단번에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
(Edwards).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의 깊음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사람
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 성령께서 추구하시는 궁극적인 목표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고,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그 계시를 깨닫게
하신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인간 이성의 취약성
(脆弱性)과 제한성 때문이다.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ㅇ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 '말하거니와'에 해당하는 헬라어 '랄루멘'
은 '소리 낸다'는 의미를 가진 '랄레오'의 1인칭 복수 현재
동사이다. 바울은 현재형을 사용하여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반복적으로 강조하
고자 하고 있다.
ㅇ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이 구절은 해석상 난제를 갖고 있다.
'신령한 것으로'(프뉴마티코이스)란 단어의 성(性)에
관한 문제이다.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중성으로 보고 번역했지만 남성형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남성형이 맞다면 '신령한 사람들에게'라고 번역해야 하고 '분별하느니라'의
헬라어 '슁크리논테스'도 다른 해석을 적용해야 어울린
다. '슁크리논테스'는 원래 '결합시키다', '조화롭게 하다'등의 의미로 쓰였는데 나
중에는 '비교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며(고후 10:12) '가져오다', '주다', '설
명하다', '해석하다'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므로 본 구절의 번역은 다음 네 가지
로 생각해볼수 있다. (1) '신령한 진리에 신령한 형식을 부여한다.' (2) '신령한 진리
를 신령한 진리로 비교한다.' (3) '신령한 사람들에게 신령한 것을 해석해 준다.'(4)
'신령한 말로 신령한 진리를 설명하거나 표현한다.' 비록 이 네 가지 해석이 모두 타
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네번째 해석이 문맥에 가장 적절하다. 바울은 영적인 말 즉 '성
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ㅇ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 '육에 속한 사람'의 헬
라어 '프쉬키코스 안드로포스'는 '하나님의 영으
로부터 빛과 진리를 받지 못하여 구원얻지 못한 자연인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들은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저급한 수준에 있어서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정신을 가지고 단조로
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 용어가 신약성경과 교부 문헌에서는 성령과 초자연적인
세계와는 대조적인 자연 세계의 생명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었다. 흠정역(KJV)
에서는 이를 '자연인'(the natural man,KJV)으로 번역했는데, 자연인은 거듭나지 않은
생태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성령의 일을 미련하게 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
지 못한다(1:23). 그들은 아무리 지혜롭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 지혜가 걸림돌이 된다.
ㅇ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 헬라어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있어서 본구절에 앞 구절의 이유가 됨을 나타낸다. '미련하게'
의 헬라어 '모리아'는 고대 헬라에서 신체적으로 둔하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우둔함을 의미한다. 거듭나지 않는 자연
인은 모든 가치를 육체적 물질적 기준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익하고 무가치하다고 인식된다.
ㅇ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영적으로라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스'
는 '영'(프뉴마)의 부사형으로서 '복음을 이
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분변함이니라'의 헬라어 '아나크
리네타이'는 13절의 '분별하느니라'의 헬라어 '슁크리논테스'
와는 달리 법정 용어로서 진술을 듣기 전에 심문받는 것
을 말한다. 이 단어가 원래 '검사한다', '시험한다'는 의미를 가졌으며 나중에는 '판
단하다', '평가하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육체에 속한 사람은 영적이 아
님을 전제하고 성령의 일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이를 분별할 가치 기준도 가지지 못
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ㅇ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
'육에 속한 사람'과 대조적으로 '신령한 자'는 분명한 가치 기준이 있어서 판단의 주체
체자가 될수 있다. '신령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스'
는 '육에 속한 사람'의 헬라어 '프쉬키코스'와 반대되는 개념
으로 '영에 속한 사람', '영적인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다. '프뉴마티코스'는 성령께
서 내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Hodge).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사람
들은 모든 가치 기준이 영적이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啓示)에 의존하여 판단한
다. 그러므로 그의 판단은 정확하며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지 않는다.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ㅇ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 헬라어 본문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
속사 '가르'('왜냐하면')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의 내용을 확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 구절은 70인역(LXX)의 사 40:13을 인용한 것으로서 긍정적인 질문 형식
을 취하여 부정적인 답을 유도하는 수사법을 사용하였다. 즉, 주의 마음을 전혀 헤아
릴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의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눈 퀴리우'
는 70인역을 따른 것으로 히브리어 본문에서 '여호와의 신'에 해당하는 히브리
어 '루아흐 야웨'의 번역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롬 11:34 주
석을 보라.
ㅇ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 바울은 앞 부분에서 인용한 구약의
표현 가운데 '주의마음'과 관련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용어를 도입한
다. 본절은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
어 영적인 진리와 영적인 지혜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Mare).그렇다고 해서 그
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모든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
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깨닫게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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