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사도행전

[스크랩] 사도행전 (27 : 1~44)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36
사도행전 27장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ㅇ우리 - 본서에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본문이 네 군데 있는데(16 :
10-17;20 : 5-15;21 : 1-18), 이곳이 마지막 네번째이다(27 : 1;28 : 16). 그러니까
본문의 '우리'는 21 : 1-18 이후 2년 만에 처음 나오는 셈이다. 이는 가이사랴에서의
2년간(24 : 27)은 바울이 구금되어 있는 상태였고 또한 기록의 초점도 바울의 선교 사
역에 집중되었으므로 '우리' 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엇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누가가 바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Bruce). 그런데 이제 바울이 기이샤라를 떠나 로마로 이송되는 시점에서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다시 합류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누가는 다시 '우리'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바울과 동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총독의 허락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ㅇ다른 죄수 - 본문에는 죄수들의 죄질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으나 일반적으로 학
자들은 이들이 사형 판결을 받은 자들로 로마 원형 극장에서 맹수들의 싸움 대상으로
보내어지는 것이었다고 본다(Lenski, Ramsay, Robertson),
ㅇ아구사도대 - 아구사도대(Augustan Cohort)는 당시 로마의 한 군대 조직인 듯하다
(서론 '로마의 행정 및 군사제도' 참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아그립바 왕의 친위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공동번역, 표준성경, NIV, Holtzmann)이
다. (2) 사마리아의 군대이다. 이는 아구사도대의 헬라어 '스페이레스 세바스테스'
의 '세바스테스'가 사마리아의 수도 '세바스토
스'와 유사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Alford). (3) 로마의 황제와 지방의 주둔군 사이의
연락 업무를 맡은 부대로서, '프르멘타리'(frummentarii)라 불리기도 했다(Ramsay,
Mommsen). 바울 시대에는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 군인들을 '스페쿨라토레스'
(speculatores)라고 일컬었던 것 같다(Longenecker, Lenski, Bruce). 대부분의 학자
들은 (1)과 (3)의 견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아구사도대'는 로마 황제의 직할 부대로
서 전방 부대를 지도, 통제, 연락하는 '친위대'라고 할 수 있다.
ㅇ백부장 율리오 - 이 사람은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이송하는 아구사도대의 인솔자로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여기서 '율리오' (율리오스)
는 가문명(家問名)일 뿐이다.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ㅇ아드라뭇데노 배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아드라뭇데노라는 항구 도시에서 온 배
인데, 아시아 지방에서 서방을 오가는 무역선인 것같다(Blaiklock). 아드라뭇테노는
소아시아 북서해안에 위치한 무시아의 항구 도시이며 레스보스(Lesbos) 섬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의 이름은 '아드라미티'(Adramiti) 혹은 '에드라미트
'(Edramit)이다(Whitelaw). 본장 강해에 있는 지도를 참조하라. 이들이 탄 배는 소
아시아 해안올 따라 운항하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배였므로 그것을 타고 지중해를 건
널 수는 없었을것이다. 따라서 중간 어디에선가 지중해를 횡단하는 큰 배로 바뀌탈
계획이었을 것이다. 가장좋은 방법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바로
로마로 향하는 큰 배를 타는 것이었으나 때 맞추어 그런 배틀 만나지 못한 듯하다.
ㅇ아리스다고 - 바울이 로마로 이송될 때 그와 동행한 자는 누가 말고도 아리스다
고라는 사람이 더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누가는 의사로,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시중
드는 자로 함께 승선(乘船)하였을 것이다'라고주장한다. 혹자는, 이 두 사람이 바울
의 노예로 자처하여 동행함으로써 백부장 율리오의 눈에 바울올 중요한 인물로 보이게
끔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Ramsay). 아무튼 아리키스다고는 몬 24 절과 골 4: 10에서
바울의 동역자요 함께 갇힌 자로 재등장하는데, 이 두 서신이 로마 감옥에서 씌어진것
이라고 볼 때 아리스다고가 바울의 로마 여행에 계속 동행했음은 분명하다.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ㅇ시돈에 대니 - 시리아 해안의 조류(潮流)는 북쪽으로 흐르는데,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이 조류를 따라 약 23시간 가량 걸려 시돈에 도착한 것이다(Breusing).
ㅇ친구들에게다...허락하더니 - 본절과 43절은 백부장 율리오의 특별한 친절을 보
여 준다. 아마 베스도는 바울을 율리오에게 넘겨주면서 다른 죄수들처럼 다루지 말고
관대하게 대우하도륵 특별히 지시을 하였을 것이고, 율리오도 바울의 언행과 그와 동
행하는 사람들(누가와 아리스다고)의 극진한 시중을 보고, 결코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을것이다. 아마 배는 짐을 내리거나 싣는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
다. 따라서 율리오는 이 시간 동안에 바울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여
기서 친구들은 스데반의 순교 후에 각지로 흩어진(8 : 1) 성도들 가운데 시돈에 자리
잡고 복음을 전파하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하르낙(Harnack)에
의하면 본문의 '친구'라는 명칭은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던 칭호였다고 한다(요
삼 15절). 황제 앞에서의 재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고,또한 항해를 하는 중
어떤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한 여정(旅程) 가운데서도 성도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커다란 위안과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ㅇ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출항하여 구브로의 남서 해안
을 지나 아드라뭇데노로 직항하고자 하였으나 동쪽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서풍을 만
나 더 이상 직진할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서풍을 막아줄 수 있는 구브
로 섬 동쪽 해협을 따라 우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ㅇ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 배는 구브로를 서쪽에 두고 북상하여 길리기아와 밤
빌리아의 해안을 지나 항해를 계속하였는데 이 항해는 그 해안을 따라 흐르는 해류와
밤에 대륙에서 바다를 향해 부는 대륙성 기류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을 이 항해는 그럭저럭 소아시아의 가장 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루기아의
항구 무라에 도착하였다. 이때 소요된 항해 기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서방 사본에 의하면 14일이 걸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무라 항은 애굽에서 오는 곡
물을 로마로 보내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무라 성읍은 항구로부터 내륙쪽으로 약 3.2 Km
거리에 있었다. 바울 일행을 태운 아드라뭇데노 배는 가이사랴에서 무라까지 항해하
였고, 무라에서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내려주고 계속해서 아드라뭇데노로 향했을 것이
다(지도 참조).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ㅇ이달리야로...알렉산드리아 배 - '이달리야' (이탈리아)
는 로마를 수도로 하는 이탈리아 반도를 가리킨다. 한편 본문의 알렉산드리아 배는
곡물 운반선이었을 것이다. 당시 애굽은 로마 제국의 주요 곡창지(穀創地)였고, 거
기서 생산되는 곡물들은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곡물선을 통해 로마로 운송되었다.
곡물선들은 알렉산드리아 항을 떠나, 그레데 남방을 거쳐 로마로 직접 항해하는 것이
빨랐지만, 대부분의 선박들은 풍향 사정 때문에 무라 항을거쳐가는 것이 상례였다.
바울 일행이 올라탄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까지 곡물을 운반하는 전형적인 곡물
운반선이었지만(38절), 여객선 역할도 하며 무려 276명이나 되는 사람을 태울수 있었
다. 당시에는 이런 배들이 많았는데, 개인기업의 소유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들은 로마 정부와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로마정부에 대해 의무와 권리를 가
지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바울 일행을 배에 태우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ㅇ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 무라를 출발한 배는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다
가 강한 북서풍을 만나 매우 어려운 항해 끝에 겨우 니도에 이르렀다. '간신히'의
헬라어 '몰리스'는 '수고', '고생'을 뜻하는 '몰로스'
에서 온 말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렵게 항해하여 니도에 다다랐음을 말해준다. 니
도는 소아시아 서남단의 도리스 반도 서남쪽 끝에 있는 도시로 무라에서 약 223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순풍을 등지고 항해할 경우 이틀 정도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였
다. 그 정도의 거리를 여러 날 걸려 힘겹게 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항해였는가를
짐작케 한다. 니도는 아시아 지역의 자유 도시였고 이탈리아 반도를 향하여 에게해
를 가로질러 가려는 배들이 서쪽으로 항해하던 중 마지막으로 기항(寄港)하는 항구였
다. 그런만큼 니도항의 규모는 제법 컸고 정박하는 배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ㅇ그레데 - 무라를 출발한 배는 니도를 경유하여 서쪽 으로 항해를 계속하려 했다.
그래서, 그레데 섬을 남쪽으로 바라보며 에게해를 통과하려 하였으나, 이러한 계획은
역풍을 받지 않고 순풍만을 의지할수 있을 때 가능한 항로였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
면, 니도에 이르렀을 때는 북서풍이 너무 강하여 더 이상 서쪽으로의 항해를 계속
할 수가없었다. 이제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양자 택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 니도에  머물면서 순풍이 불기틀 기다리던지 아니면 본문에서처럼 니도에서 남하
하여 살모네를 지나 그레데 섬을 바람막이로 하여 서쪽으로 항해를 하는 것이다. 그
레데 섬은 그리이스 본토에서 남쪽으로 100Km정도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큰 섬들 가운
데 대표적인 섬으로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섬의 동서 거리는 약 255Km 정도이
고 남북의 거리는 10Km에서 50Km에 이르는 좁고 길쭉한 섬이다. 좁고 길쭉한섬이다.
좁고 길다란 이 섬을 방파제 삼아 서쪽으로 항해할 경우 북서풍이 상당히 많이 차단되
므로 항해는 계속될 수 있었다. 딛 1:5에 의하면 그레데 섬에도 교회가 있었고 디
도가 그곳에 파송되어 사역을 한 적도 있다. 한편 본문의 살모네는 그레데 섬의 동
쪽 끝의 돌출부에 위치해 있었다.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ㅇ미항...라새아 성 - '미항'(칼루스 리메나스)은
말 그대로'아름다운 항구'라는 뜻인데 이곳은 지금도 동일한 뜻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
다(리메오나스 칼로우스, Limeonas Kalous). 그런데, '아름다운'(fair) 이라는 말은
이 항구의 좋지 않은 특성 때문에(12절)  비꼬는 식으로 불리어진 것 같다(Whitelaw).
이 미항은 그레테 섬의 중간쯤에 위치한 남해안의  자그마한 만(灣)만으로 오래도록
머물 만한 곳은 못되나 잠시 바람을 피할 수는있었다. 그레데섬이 바람막이 역활을 해
주었지만 완벽하게 바람을 막아 준 것은 아니어서 항해는 결코 쉽지가 않았고 따라서
미항에서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본절에서도 항해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
해 '간신히'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7절). '라새아 성'은 이곳 '미항' 에서 동쪽으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ㅇ금식하는 절기 - 이는 디스리 (Tishri)월 (태양력으로 9-10월경) 10일에 지켜졌
던 속죄일을 의미한다(민 29: 7-11). 브루스(Bruce)에 의하면 로마 여행 당시인
A.D.59년의 속죄일은 태양력으로 10월 5일경이었다고 한다.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ㅇ내가 보니...손해가 있으리라 - 바울은 지금이 항해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러 차례의 여행 경험
이 있었고 또한 세 차례나 파선을 당하여 위험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고후 11
:25). 따라서 바울은 항해를 중단하고 겨울을 지낸 후에 다시 항해를 계속하는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할 수 있었다. 혹자는 본절에 언급된 이 바울의 말이 나중에 그대
로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하여(18, 19, 38, 41절), 하나의  예언으로 보기도 하나
(Haenchen), 이것이 그의 경험적 지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예언
이었다고 볼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무시하지않
고 그것을 통하여서도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ㅇ백부장이...더 믿더라 - 바울과 선주측 (선장은 포함) 사이에는 견해의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겨울을 이곳 미항에서 나느냐 아니면 다른 곳에서 나느냐 하는 문
제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전자를 주장했고(10절), 선장과 선주는 후자를 주장했
다(12절). 여기서 최종적인 결정권은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데, 이는 그 백부장이 이 배에서 가장 높은 로마의 장교였고, 그 배는 로마 정부와의
계약관계로 로마의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백부장의 입장으로는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이송되고 있는 바울의 말보다는 항해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
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믿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장면에
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21, 22절) 바울의 권면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제
안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이 배의 운명에 대해 불길한 예감을 갖게 될 것이다(10
절).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ㅇ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 공동 번역에는 '그 항구는 겨울을 날 만한 곳이 못
되어'로 되어 있다. 여기서 '과동'(過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케이마조'
는 '통과하다' 를 뜻하는 '파라'와 '겨울'을 뜻하는 '케이몬'
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는 '겨울을 통과하는 것' 즉 '겨울을 나는'
것을 뜻한다. 미항이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 하지 않은 이유로 숙소롸 구하기 힘들
다는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만이 적고 추워서 겨울철의 거센 폭풍을 견디기에 적
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Bruce, Lenski).
ㅇ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 '뵈닉스' (Phoenix)는 감람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레데 섬의 서남쪽 끝에 있으며 미항으로 부터는 약 65Km 정도 거리에 있
는 항구이다. 오늘날에는 '루트로'(Lutro)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미항에 비해 겨울
을나기에는 적합하다고 하는데 이는 모든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
형적 조건올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Smith). 본절에 의하면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자고 하는 의견과 미항에 머물면서 겨울을 나자는 의견으로 갈린 듯하며 뵈넉스를
지지하는 자가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ㅇ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 이에 해당하는 혤라어 '카타  리바카이 카타
코론' 은 문자적으로 '남서를 향하
여 '그리고 북서를 향하여'라는 의미이다(Bruce, Meyer). 따라서 개역성경의 '동북,
동남을 향하여'란 번역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뵈닉스 항구의 양쪽 입구가 각각 북
서쪽과 남서쪽에 있고 서쪽면에는 큰 만이 있어서 마치 이 항구가 서쪽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ㅇ남풍이 순하게 불매 - 때마침 불어준 남풍은 뵈닉스로 옮기기로 한 결정이 현명
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안심하여 닻을 감아 올리고 그레데 해변
에 바짝 붙어 서쪽으로의 항해를 계속했다.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ㅇ유라굴로라는 광풍 - 순풍에 의지하여 순항을 하던 배가 마다라곶을 돌아서 멧세라
만에 들어서자 갑작스런 태풍에 휘말리게 되었다. 여기서 '광풍'
(아네모스 뒤포니코스)은 '태풍'을 가리킨다. '유라굴로'
(유라퀼론)는 '동풍'을 뜻하는 헬라어 '유로스'와
'북풍'을 가리키는 라틴어 '아낄로'(aquilo)의 합성어로 '동북풍 '을 가리킨다. 이바
람은 지형의 영향으로 생기는 바람인데 남풍이 그레데섬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2
100 Km 높이의 이다(Ida)산맥으로부터 생기는 두 반대기류의 충돌로 생긴 태풍에 휩싸
이면서 강력한 북동풍이 되는 것이다. 일단 이 바람을 만나면 배는 방향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속수 무책으로 아프리카 방면으로 밀리다가 모래톱이나 암초에 부딪
히면 파선하게 되는 것이다.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ㅇ배가 밀려 - 유라굴로에 걸려든 배는 바람이 불어가는 대로 밀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선장 이하 선원들이 배를 조종 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한채 바람과 파도
에 모든 것을 내맡겼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한 최선의 노력을 하다
고 있지만 배는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ㅇ가우다라는 작은 섬 - 본문의 표현 대로 작은 섬이며, 뵈닉스에서 남서쪽으로
35Km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러니까 배는 상당한 거리를 떠밀려 온 것이다. 그
러나 이 배가 가우다섬 아래로 밀려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이 섬이 조
금은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선원들은 배고물에 매달려 위태
했던 거룻배를 갑판 위로 끌어 올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대체로 거룻배는 배고물에
매달아 끌고 다니지만 거친 폭풍을 만나면 배에 부덫혀 파선될 위험이 있으므로 갑판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상례였다. 이 거룻배는 큰 배가 암초에 걸려 파선하게 될 경우
타 항구 시설이 없는곳에 비상 상륙을 해야 될 경우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ㅇ끌어 올리고... 선체를 둘러 감고 - 거룻배  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폭풍은
여전히 몰아쳤으므로 그것을 끌어 올리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누가는 7절에서와 같이 '간신히'라는 표현을 쓰고있다(16절). 줄을 가
지고 선체(船體)를 둘러 감은 것은 배를 조금이라도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함이다. 당
시에는 배가 그다지 견고하지 못했므로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라도 배의 견
고성을 강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ㅇ스르디스 - 이는 바다에 있는 모래톱, 모래 수렁, 또는 유사 (流砂)를 가리킨다.
그레데 서남방으로는 이 스르디스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큰 것으로(Syrtis Major)
구레네 서쪽의 아프리카 해안에 있고, 다른 하나는작은 것으로(Syrtis Minor) 카르다
스(Carthase) 부근에 있다. 본문의 스르디스는 큰것(Syrtis Major)을 가리킨다고
본다(2Bruce, Lenski).
ㅇ연장을 내리고 - 스르디스에 걸리면 배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
다. 그리하여 선장은 아직 스르디스와는 먼 거리에 있지만 미리연장을 내려 대비시
키고 있다. 이처럼 미리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태풍이 불어오면 며칠이고 계속 불어대
므로 (20절), 언제 그곳 까지 밀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연
장'(스큐오스)이 무엇을 가르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배에서 사용되는
것들, 그러니까 돛, 돛대, 닻, 밧줄, 등을 가르키는 것으로 본다(Zahn, Robertson,
Bruce). 결국 배의 선원들은 배가 서남쪽으로 떠밀려 가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
하여 돛을 내리고 닻을 내리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ㅇ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 본문은 폭풍이 조금도 약화 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음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항해하던 배가 폭풍을 만나 배를 가볍게 하
기 위해서 짐을 버리는 장면은 욘 1 : 5에서도 볼 수 있다. 혹자는 점점 차는 바닷물
로 인해 무거워진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비교적 무거운 곡물을 버렸다고 보기도 하
나(Breusing), 38절에서 곡물을 최종적으로 버리는점을 고려할 때 본문에서는 갑판 위
에 있던 수하물(手荷物)을 버린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Renie)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
다.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ㅇ배의 기구를...버리니라 - 많은 짐을 버렸음 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 지지 않
았다. 다음날은 배의 기구를 버려야 했다. 여기서 '기구'
(텐스큐엔)가 뜻하는 것에 대해서는, 배의 커다란 돛과 무거운 돛대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와(Breusing, Preuschen, Jacquier) 침구, 테이블, 의자 등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Lenski, Meyer, Vincent). 그런데 지금의 상황이 배의 무게를 많
이 줄여야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전자를 버리는것이 후자를 버리는 것보다 배를 가볍게 하는데는 효과적이므로 전
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할수 있다. 한편 본절의 '저희 손으로'라는 표현은 뱃사람에
게 생명처럼 소중한 기구들을 버려야만하는 비참한 상황을 강조적으로 묘사하는 효과
를 가지는데, 그것은 바울의 권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강행한 불신의 결과였다(10절).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ㅇ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 바다의 풍랑은 잠잠 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늘
에 끼인 짙은 구름은 낮의 해와 밤의 별빛을 완전히 차단 하였으므로 배는 방향 감각
을 상실한채 절망적인 표류를 하고 있었다. 항로를 이탈한 배에게 있어서 방향을 제
시해 주는 해와 별마저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 어디서 암초를 만나거나 모래톱에 걸려
파선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에 자신을 그대로 내맡기는 무방비 상태와 마찬
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살아 돌아갈 희망을 상실하게 되었다. 선장과 선
주이하 선원들은 전문가로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으나(18, 19절) 어떻
게 할 수 없는 악천후(惡天候) 속에서는 절망뿐이었다.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ㅇ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 배에 탄 사람들은 갑작 스럽게 불어 닥친 태풍 때문에 음
식을먹을 겨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높은 파도와바람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 속에서
지독한 멀미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음식을 먹지 못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
었다.
ㅇ바울이 가운데서서 - 절망과 허기 속에 있던 무리들 가운데 바울은 지난날 자기
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나서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통한 구원의 길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바울이 절망과
낙담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과거 잘못을 들추어 내는 까닭은 결코 그들을 책망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자신의 옳은 판단을 다시한번 확인시키기
위함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부터 자기가 하나님을 힘입어 판단하고 지시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믿고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ㅇ안심하라...배 뿐이리라 - 드디어 바울은 희망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배에 타고 있는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풍랑이나 허기짐보다 오히려 삶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먼저 그들의 불안을 제
거시키기 위해 배는 잃게 되더라도 생명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바울
은 이 사실을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계시해 주었기
때문이다(23, 24절). 그러나 배에 탄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들은 그 즉시는 안심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징후들이 보인 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27- 36).절

23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ㅇ하나님의 사자 - 바울은 자기의 이야기가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자기가 섬기는 하나
님께서 보내신 사자가 계시해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사자'의 헬라어 '앙겔
로스' 는 '천사' 로 번역할 수도 있다(공동번역). 배에 탄 대부
분의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닌 이교도들이었을 것이므로 이들도 알아들을 수있는 '천
사'의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바울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계시를 해주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18:9, 10;22 : 17-21 ; 23:11). 그러나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난 천사가 이방인들도 알고 있는 동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섬기고 있는'하나님'의 천사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은연중 사람들에게 선교을 하고
있다.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ㅇ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 본래부터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 하도록 예정되
어 있었다(23 : 11). 본절은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끝까지 관철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가 바울에게 '죽지 않고
살리라'고 하지 않고 '가이사 앞에서 서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의 삶이 사역과 밀접
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즉 바울의 삶은 오직 복음 선포로 인하여 의미가 있
는 것이다.
ㅇ너와 함께... 주셨다 - 이는 바울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와 함
께 한이백 칠십 오 명의 생명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주셨다'
(케카리스타이)는 '선물',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에서 온 동사
'카리조마이'의 완료 중간태이다. 말하자면 바울과 함께 배
에 탄 사람들을 바울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뜻이 된다. 아마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
이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ㅇ안심하라...하나님을 믿노라 -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에 거해서 사람들
을 안심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바울의 말을 믿고 안심하였는지
는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바울의 믿음은 매우 확고한 것으로 보여지
는데 바울의 이런 확실한 신앙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절망적인 모습
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신앙
의 독특함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
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재판을 받으러 끌려가는 죄인 이상의 어떤
고상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을 것이다.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ㅇ한 섬에 걸리리라 - 바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데 그치
지 않고 구체적인 장래 사건을 예언하고 있다. '배가 어느 한 섬에 걸릴 것이고 그러
면 배는 잃게 될 것이나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일어날 결과는 바울의 믿음과 하나님의 신실성을 사실로 드러낼 것이다.

27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

ㅇ열 나흘째 되는 날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미항 에서 멜리데 섬까지 약800Km
이르는 거리를 14일간 유라굴로라는 태풍에 떠밀려 온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지역에서
는 수일간 계속되는 태풍 때문에 11-3월 사이에는 항해가 중단된다.
ㅇ아드리아 바다 - 오늘날 에는 이탈리아와 유고 슬라비아 사이의 바다를 이렇게
부르는데 당시에는 이탈리아, 아프리카, 그레비 섬, 헬라사이의 바다를 가리켰다. 역
사가 요세푸스는 자신이 탄 배가 팔레스틴에서 로마로 항해하다가 아드리아해 한 가운
데서 난파당했던 일을 기록에 남겨놓았다(Jos. Vita 15).
ㅇ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 - 배가 육지에 가까와 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배 밑에 있는 방류묘가 밑바닥에
부딪히는 것으로 알았다(Breusing). (2) 배가 동쪽에서 성(聖) 바울(St. Paul)만으로
들어갈 경우 반드시 쿠라 곶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을 지날때 쿠라 곶에 부딪히는 파
도 소리를 듣고 알았을것이다(Smith, Beg, Lenski). 두 견해가 다 정당한 근거를 가지
고 있으나 전자의 견해는 방류묘의 길이가 36M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므로
(28절 주석 참조, Haenchen), 후자의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만약 쿠라 곶에 부딪히
는파도 소리를 배에 탄사람들이 들었다면 사람들은그것을 삶에의 희망을 보여주는 기
쁨의 소리로 들었을 것이고 그를 통해 바울의 예언이 사실로 다가옴을 서서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2절).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ㅇ이십 길...열 다섯 길 - 여기서의 '길' (오르귀이아)은 '뻗
치다' 를 뜻하는 '오레고'에서 온 말로 양 팔을 벌려서 쭉 폈을 때 한
손의 중지 끝에서부터 다른 손의 중지 끝까지의 길이를 나타낸다. 이 길이는 대략
1.8m로 본다. 그러니까 본문의 '이십 길'은 수심이 36m였다는 뜻이고 다음에 잰 '열
다섯 길' 은 수심이 27m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수심이 빠른 속도로 얕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암초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짐을 나타낸다.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ㅇ고물로 닻 넷을 주고 - 닻은 배를 한 곳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밧줄이나
쇠줄에 매어 물에 던지는, 쇠나 나무 따위로 만든 무거운 물건이다. 고물은 배의 뒷
꼬리 부분을 가리킨다. 닻을 배의 뒷부분 즉 고물에서 내리는 것은 보통의 일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본래 닻은 이물 즉 배의 앞머리 부분에서 내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닻을 고물에서 내린 것은, 배가 해변 가까이 접근해 있고 폭풍이 몹시 불
어대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만약 이물에서 닻을 내려 배의 앞부분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람과 파도가 배를 해변쪽으로 밀어 붙이면 배의 뒷부분이
180도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고 그 과정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히는 일이 발생할 수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닻을 고물에서 내린 것은 현명한 조처였다
고 할 수있다. 닻을 네 개나 내린 것은 가능한 한 배를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
었다.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ㅇ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 닻을 내려 배의 전진을 억제시킨 지금의 상황에서
밤만 무사히 지낸다면 날이 샌 후에 육지에 상륙 할 수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리고 바울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었었다(22-15절).
그러나 선원들이 밤사이에 있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염려와 바울의 말을 믿지 못하여
자기들끼리 도망가려고 했다. 이들은 이물에서 닻을 내리려는 체하며 거룻배를 내려
타고 가려고 했다.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ㅇ바울이 백부장과...얻지 못하리라 - 이물 에서 닻을 내리지 않아야 하는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닻을 내리려는 선원들의 행동은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었으며 바울
은 그들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그들의 도망을 저
지시키도록 충고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원들이 없어져 버린다면 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또 다음날 상륙할 때
에도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선원들은 꼭 필요한 존재들 이었다.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ㅇ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 바울은 사공들의 도주를 저지 시키라고만 했을 뿐
거룻배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군사들이 거룻배의 줄을 끊어버림으로써
거룻배는 바다에 버려졌다. 이것이 백부장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면, 충분히 심사
숙고하지 못한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룻배는 다음날 육지에 상륙할
때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들은 다음날 배를 해안에 갖다대는 모험
을 감행해야 했고 그것은 실패로 돌아간다(39 -41절).

33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ㅇ음식 먹으라 권하여 - 날이 새려고 할 무렵 바울은 우선 배에 있는 사람들이 음
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
법이기도 했겠지만 곧 날이 새면 상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비상 사태에
(43, 44절) 대비한다는 의미에서도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바울은 그들이 열나흘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주렸음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먹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열 나흘을 주렸다는 것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기간을 지내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문자 그대로 아
무것도 먹지 않고 14일을 폭풍에 시달려 왔다면 상당수의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이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겨우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만
큼의 음식만 섭취하였다는 의미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Bruce, Haenchen,
Robertson, Lenski).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ㅇ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 - 이제 먹는 것은 단지 주림을 해소하거나 기운을 차리
게 하는 차원을 넘어 생명의 보존과 관계된다. 여기서 '구원'(소
테리아)은 육체적인 구원을 뜻하는 것으로 쓰였는데 히 11:7 에도 같은용법이 발견된
다. 바울이 날이 밝은 후 상륙을 시도할 때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했는지는 분명
치 않지만 결과론적으로 지금 음식을 먹는 것은 다음날 육신의 생명을 구하는 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43, 44절).
ㅇ머리터럭 하나라도 - 이 문구는 구약 시대 부터 전해져 왔던 격언 형식의 문구로
(삼상 14:45;왕상 1: 52),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
에 의해 인용되기도 했는데(눅 12 : 7), 본서에서 바울이 다시 인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자신있는 안전 보장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불안을 제거하는데 결정
적인 작용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ㅇ떡을 가져다가... 축사하고 - 바울이 떡을 가져다가 축사 하고 떼어 먹은 이 식
사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다. (1) 기독교인의 성만찬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Belser, Olshausen, Ewald). (2) 유대인의 가정에서 식사할 때 가장이 축사하
는 것에 따른 것이다(Meyer, Hackett). (3)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없이 누구
나 알고 있었던 식사 때의 감사기도였다(Haenchen, Wendt1). 이상의 세 견해 가운데
첫번째 견해는, 본문의 표현이 예수께서 하셨던 축사와 유사한 점은 있으나(눅 24  :
30)그것이 성만찬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과 지금 바울과 함께 있는 절대 다수가
이교도들이라는 점에서 타당성이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둘째 견해는 지금 바
울이 유대교인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점
에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유대교 뿐만 아니라, 모든 헬라 세계에 일반적으로 식사에 대한 기도가 있었다.
다만, 여기서 바울이 축사를 하였을 때는, 명백하게 바울의 방식대로 축사의 내용이
말하여졌을 것이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ㅇ저희도 다...먹으니 - 바울의 식사하는 모습이 너무도 담대 하고 평안해 보였으
므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식사를 시작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바울의 말
을 신뢰하기 시작 하였고 절망에서 벗어나 안심하기 시작한 것이다(22, 25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

ㅇ이백 칠십 육 인 - 음식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자연 스럽게 알게 된 것인지 아니
면 음식을 먹은 후에 상륙할 것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인원 점검이 필요했기 때문에 세
어본 것인지 분명치 않다. B사본에는 76명이 배에 타고 있었던것으로 되어 있고 당
시 선박의 취약성으로 인해 숫자가 적다는 점에서 이 B사본을 지지하는 학자도 있으나
(Weiss) 숫자가 적은 것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요세푸스가
타고 가다가 난파 당했던 배에는 600명 가량이 타고 있었다는 기록을 볼 때(Jos.,
Vita 15) 276명은 결코 많은 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ㅇ배부르게 먹고...버려 - 모두가 배부르게 먹어 기운을 차린 뒤에는 밀을바다에 던
져버려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였다. 이때 버린 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 들이
있다. (1) 전에 짐을 버릴 때 (18절) 일반 화물과 함께 곡물 대부분을 버리고 식
량으로 조금 남겨놓은 것 중 지금 먹고 남은 것을 버렸다(Bruce, Meyer, Weiss).
(2) 이전에 버린 것은 곡물을 제외한 일반 화물이었다고 보아 지금 버린 것이 바로 운
송하던 곡물 전부였다(Holtzmann, Haenchen, Knowing). 처음에 버린 것이 곡물이
었다고 보기 어렵고(18절 주석 참조), 먹다 남은 식량을 버리는것이 배의 무게를 가볍
게 하는데 사실상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
다.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곡물까지도 버려야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해변가
까이에 접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는 거룻배도 버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헤
엄을 치거나 물에 뜨는 물체에 의지해서 상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바울의 예
언이 점점 실현되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22절).
ㅇ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 - 처형되는 죄수의 죄목을 밝히는 내용의 패(주
로나무 위에 석고를 바르고 그 위에 붉은 글씨내지는 검은 글씨를 새겨 넣음)를 목에
걸거나 가슴에 매달고 형장에까지 가서 십자가를 세우고 그 죄패를 머리 위에 매다는
것이 로마 처형법상 한 관례였다. 한편 예수의 죄패는 빌라도가 쓴 것으로(요 19:19,
23) 각 복음서간에 약간의 차이를 이룬다(막 15:26; 눈 23:38; 요 19:19 조). 그중
요한복음의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이 가장 완전한 형태인 것으로 추
정된다. 여하튼 빌라도는 이 죄명(罪名)을 통하여 자신의 반(反)유대적 입장을 분명
히 밝히고 있다. 즉 그는 로마의 지배 아래있는 유대인들의  처지와 그들 서로간의 
반목(反目)상태를 조롱했던 것이다. 한편 이 죄패는 각 지방에서 오는 순례자를 위해
히브리어(아람어), 헬라어(당시의 보편적 언어), 라틴어(로마의 공용어)로 각각 기록
되었다(요 19:20). 그런데 이 세가지 언어의 패에 대해 흑자(Westcott)는 그리스도를
위한 종교(히브리어), 문화(헬라어), 사회(라틴어)적 예비 활동의 총체적 표현으로 간
주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학자는(Robertson)유대인을 위한 선언(히브리어), 법적 선언
(라틴어), 만인을 위한 공표(헬라어)등으로 세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저
들은 예수를 단죄하고 나아가 유대 민족을 조롱하려고 그런 죄패를 붙여 놓았지만 그
것은 역설적으로 전리를 고백하는 것이 되었다. 실로 복음서 초두에 동방 박사들은
예수를 '유대인의왕'으로 예배했었고(2:2) 그에게 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었
다.  이제 그분의 생애의 마지막에 로마의 군인들은 그의 옷을 뻬앗고, 옷을 벗기은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그의 십자가 아래 달아있으면서 처음에 붙여진 그 칭호를 마지막으
로 달아 주고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묘하게도 예수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붙
여 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들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약 백성, 선택받은
백성인유대 민족들은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께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를 부여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라고 요구한다(요 19:21).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ㅇ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 28 : 11에 의하면 이 섬은 결코 선원들에게 낯선 곳이
아니었다. 여기서 혹자는 선원들이 멜리데 섬을 분간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보아
이곳이 멀리데섬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Haenchen). 그러나 이 배가 상륙한 곳이
멜리데 섬의 주항(主港)인 발레타(Valetta)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알
아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Smith, Bruce). 후에 이 배가
들어간 이곳을 '성 바울 만'(St. Paul's Bay)이라고 불렀다.
ㅇ해안 - 이의 헬라어 '아이기알로스' 는 '평평한 모래밭'으
로 보는것이 타당하다(Bruce, Haenchen). 그러니까 바울이 탄 배는 정식으로 된 항구
에 배를 댄 것이 아니라 평평한 모래밭에 비상 상륙을 시도한 것이다.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ㅇ닻을 끊어 - 평평한 모래밭에 배를 들이대고 상륙을 시도 하겠다고 결정한 이
상 이제 거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일만 남았다. 일단 배를 고정시켰던 닻을 끊
어 버렸다. 닻을 들어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끊어버린 것은 아마 조금이라도 배를 가
볍게 하여 해안 가까이에 상륙시키려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닻을버린 것은
더이상의 항해를 포기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미 앞에서는 수하물(18절), 배의 기구
들(19절), 곡물(38절)을 버렸고 마침내 여기에서는 닻을 버림으로써 사람을 제외한 배
의 모든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22절).
ㅇ킷줄을...해안을 향하여 - 닻을 끊어 버린 후에는 고정시켜 두었던 키의 밧줄을
풀어 느슨하게 했는데 이는 배가 진행할 때 방향을 조절하기 위한 조처였다. 다음에
는 돛을 달고 바람을 이용하여 해안으로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이미 앞에서 큰 돛을
버렸으므로(19절 주석 참조). 여기서 사용한 돛은 작은 앞 돛이었을 것이다(Bauer).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ㅇ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 - 이는 육지로부터 흘러 내리는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모래나 진흙과 같은 점토가
마치 사주(砂洲)와 같은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ㅇ이물은...깨어져가니 - 본문의 묘사는 배의 앞 부분이 바로 이 점토층에 처박
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뒷부분은 부딪힐 때의 충격과 뒤에서 때려대는 파도에 의해
깨어져가기 시작했음 말해준다.

42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ㅇ군사들은...죽이는 것이 좋다. - 보통 죄수들은 쇠사슬로 묶어두는 것이 상례였
고 그럴경우 헤엄쳐 도망갈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죄수들은 자유릅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아마 곡물을 나를 때 쇠사슬을 풀어주었을 것이다. 어쨌든 군
인들은 죄수들을 안전하게 이송해야할 책임이 있었고(Bruce, Haenchen). 만일 죄수
를 놓치거나 잃을 경우 죄수가 받을 형벌을 대신받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므
로 12 : 18,19; 16 : 25-18), 죄수들이 도망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차라리 죽이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ㅇ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 만약 백부장이 부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죄수들을 죽
이라고 명령했다면 바울 역시 죄인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울에게 호의적이었던(3절)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 부하들의 뜻을 막았다. 만
약 바울이 없었다면 나머지 죄수들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상황이었으
므로, 바울로 인해 다른 죄수들도 죽음을 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사실상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바울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게 된 것이다(24절). 백부
장이 바울을 살리려 한 것은,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뛰어난 용기와 그가 믿고 있는 신
앙의 능력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ㅇ헤엄칠줄...뛰어내려 - 배가 좌초(坐礁)한 곳은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므
로 백부장은 헤엄을 칠 줄아는 사람을 먼저 뛰어내리게 하여 육지에 헤엄쳐가도록 했
다.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ㅇ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 나머지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물에 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뭍으로 올라오게 하였다. 그 결과 바울의 말대로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구원을 받았고 그밖의 모든 것은 바
다에 버려졌다(22절).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