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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스크랩] 마태복음- 제2과 권세있는 말씀(5-7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06

 

마태복음-2과

 

제2과
권세있는 말씀
(5-7장)
산상설교의 대상은 제자들을 포함한 무리이다. 그리고 산상말씀의 주제는 당시의 유대 랍비들이 백성들을 가르치던 일반적인 주제인 율법, 예배, 인애 등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즉 율법(5:17-48),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 중심의 삶(6:1-34), 인애의 대상인 사람 중심의 삶(7:1-12)을 본론의 주제로 하여 제자의 사람됨의 본질과 역할(5:3-16)을 서언으로 선택적 결단(7:13-27)을 결어로 구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시의 랍비들과 특별히 다른 주제를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씀의 내용은 철저한 제자로서의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자 무리들이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가르치심은 당시의 랍비인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자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가르침을 통하여 그가 권세 있는 자임을 나타내셨다. 인간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권세를 무리에게 보여줌으로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아임을 깨닫게 하셨다.
Ⅰ. 산상수훈의 대상과 서언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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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설교의 일차적인 대상은 무리이다. 산상설교를 마감하는 7:28, 29의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는 말씀도 그 대상이 무리임을 말해준다. 이렇게 일차적인 대상이 무리이지만 이 무리 중에는 제자들이 포함되어 있고 또 말씀의 내용은 제자에게 요구되는 삶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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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5:3-12)과 '소금과 빛'(5:13-16)은 산상설교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의 순서 상 서론이라기 보다는 제자로서의 본질적인 것, 즉 존재(being)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팔복이 자기 자신 스스로의 존재를 다룬다면 소금과 빛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존재의 의미(doing)를 다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 말씀을 듣는 대상은 누구인가? 5:1, 7:28
2.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각각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가? 3-12절
3.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세상의 소금이란 어떠한 역할을 의미하는가? 13-14절
4. 등불의 위치는 어디인가? 세상의 빛이란 어떠한 역할을 의미하는가? 15-16절
Ⅱ. 진정한 율법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5: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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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토라(Torah)를 번역한 것이다. 토라는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삶의 원리들이다. 지혜문학 등에서는 토라라는 말을 더 폭넓게 써서 장로들의 토라, 부모의 토라, 스승의 토라 등으로 쓰인다. 토라의 의미는 그것을 준 인격체의 살아 있는 마음, 정신 등이 담겨 있는 일종의 규범적인 교훈이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주로 언급되는 토라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의미한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토라는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어서 토라가 모세오경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마태복음 5:17 이하에서 나오는 토라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토라를 의미한다. 모세의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시내광야에 1년 동안 거할 때 받은 것으로 출애굽기 19장에서 민수기 10:10까지 해당되고, 이것을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제2세대에게 재천명한 신명기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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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는 형식주의와 외식을 가져오게 한다. 예수 당시에는 이러한 율법주의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예수는 이러한 율법주의와 그로 말미암는 인간적인 의를 공격하신 것이지 토라 그 자체인 율법을 공격하고 새 율법을 천명하신 것은 아니다. 단지 변질되고 왜곡된 해석을 바로 잡으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율법주의와 더불어 율법 폐기론적인 생각을 거부하신다.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케(5:17)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율법주의로부터의 의를 거부하셨다. 그것은 율법정신을 배제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인 것이다. 율법정신에 따라 구현되는 규범이 바로 온전한 의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1.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한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7-19절
2.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무엇이고 그것보다 더 나은 의는 무엇인가? 20절
3. "옛 사람에게 말한 바"에서 옛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21, 33절
4. "옛 사람에게 말한 바"의 6개의 주제는 무엇인가?
5.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는 뜻은 무엇인가? 48절
6. 시간이 허락하면 출애굽기 19:1에서 민수기 10:10까지 읽고 내용을 정리해 보라.
Ⅲ.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6: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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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8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앞에서 자기 의를 나타내려는 세 가지 종교적인 위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6:19-34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닌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삶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 인간 앞에서 의를 나타내는 종교적 행위로는 세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고 있는데 '구제'(2-4절), '기도'(5-15절), '금식'(16-18절)이다. 유대인의 종교적인 행위 중에 이 세 가지는 중요하게 간주된 것으로, 1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항목에서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4, 6, 18절)고 말씀하여 이 세 가지 행위는 사람 앞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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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이다. 첫째는 죄성을 가진 인간의 본능적인 물욕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물욕에서 오는 물질의 노예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났다고 본다. 그러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물질의 노예가 되는 더 심각하면서도 잘 인지하기 못하고 있는 염려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1. 자기 의를 사람에게 보이려는 태도는 어떤 것인가? 은밀하게 하는 것은 결국 누구 앞에서 행하는 것인가?
2. 진정한 구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4절
3. 외식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 5절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 7절
하나님 앞에서 하는 진정한 기도는 어떤 것인가? 6절
4. 금식은 왜 하는 것인가? 금식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17절
5.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은 무엇인가? 19-20절
6. 하나님과 재물은 왜 겸하여 섬기지 못하는가? 21-24절
7. 사람들은 왜 염려하게 되는가? 30절
8.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25-34절

Ⅳ. 사람 중심의 삶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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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의 세 번째 주제는 '사람 중심의 삶'(7:1-12)이다. 여기서는 비판과 충고의 문제 그리고 구하는 것과 대접의 문제를 다루어 인간의 정신적인 것과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6절의 말씀의 해석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말로 또는 세례 받지 않은 자에게 성만찬을 베풀지 말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1-5절에 이어져서 해석되어야 함이 타당하다면 이것은 비판과 충고의 문제에 있어서 세 번째 단계로 충고하는 자가 철저한 자기성찰로 준비되고 올바른 충고를 할 준비가 되어 있더라도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충고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며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그러한 충고를 하는 자에게 상처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충고를 받을 자에 대하여 그 준비를 시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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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함과 대접의 문제인 7-12절에 대한 해석은 난해한 면이 있다. 특히 7-11절과 12절의 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7-11절만 따로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히 구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12절과 연결선상에서 볼 때 물질적인 구함에 있어서 그 전제가 되는 것을 가르치는 데에 핵심이 있다고 해석된다. 왜냐하면 12절의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과연 앞의 본문의 문장 중 어느 부분부터 받고 들어가는가 하는 점을 고찰해 볼 때 결국 7절부터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잘 알려져 있던 12절의 경구를 구함의 교훈 뒤에 사용한 것은 구함의 전제로 대접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결국 7-12절의 교훈의 핵심은 12절에 있는 것이다.
1. 너희가 비판(헤아림)으로 비판(헤아림)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2절
2.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빼기 위하여 선결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5절
3. 거룩한 것을 개에게,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6절
4.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가? 7-11절
5. 남을 대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12절
Ⅴ. 결어와 반응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7: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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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단(7:13-27)을 촉구한다. 즉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결단을 촉구한다. 그런데 이렇게 제시되는 네 가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점층적으로 결단을 구체화시킨다. 좁은 문과 넓은 문 또는 좁은 길과 넓은 길에 대한 선택적 결단,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에 대한 선택적 결단, '주여 주여 하는 자'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에 대한 선택적 결단,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대한 선택적 결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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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은 그 가르치심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자와 같았다. 권세라는 말은 헬라어 eksousia로 능력과 권위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이다.
1. 좁은 문, 좁은 길은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가? 어떤 선택이 그런 것인가? 13-14절
2. 거짓과 참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15-20절
3.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21-23절
4.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24-25절
5. 가르침이 권세 있는 자와 같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29절
Ⅵ. 우리 생활에 적용시켜야 할 교훈을 다음 질문에 따라 생각해 보라.
1. 팔복에 있는 성품 중 자신에게 있는 것과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2. 당신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3. 당신에게 있어서 율법주의적인 태도와 율법 폐기론적인 태도가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
4. 당신의 기도생활에서 외식적인 요소와 무책임한 요소가 없는지 생각해 보라.
5. 당신의 물질관에서 고쳐야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당신의 삶 가운데서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생 각해 보라.
7.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야 할 점 두 가지를 말해 보라.
8.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로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Ⅶ. 이과를 공부한 후 새롭게 적용하기로 결심한 점을 정리해 보라.

 

마태복음-2과해답

 

제2과
권세있는 말씀
(5-7장)
Ⅰ. 산상수훈의 대상과 서언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1. 말씀을 듣는 대상은 제자를 포함한 무리들이다.
2.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자는 소유한 것이 없는 자로 힘쓰고 애써야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심령, 즉 내적인 가난을 말한다. 우리의 영적인 것을 치유하고 풍성한 삶을 위한 진리의 자원이 스스로에게는 결여되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자각하는 상태로 하나님께서 빈 심령의 그릇을 채워 주시기를 고대하는 마음이다.
애통하는 자: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영적으 로 자신이 벌거벗은 존재이고 또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는 슬픔 을 말한다.
온유한 자: 온유하다는 것은 단순히 성격적으로 유순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기꺼이 굽히는 사람이 온유한 자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배고프고 목마른 것은 고통으로 그 상태를 벗어나려는 가장 큰 본능적인 욕구를 갖게 된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가지고 의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의는 먼저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를 말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도덕적인 의와 또 사회 적인 정의를 포함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 우리 자신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목마르고 굶주린 상태에서 채움을 받았다면 그 다음에는 마땅히 딴 사람의 그러한 상태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약속된 복으로 채움 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채움을 받은 사람은 성화되어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성결해져 가는 것의 관문은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깨끗해져 가야 한 다. 더러운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지도 않게 되어 가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 분쟁과 싸움의 원인은 두 마음을 품은 음모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에 마음의 청결로부터 오 는 진실성은 화평의 씨앗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평을 위한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화평을 위하여 애쓰지만 그것이 세상에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게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3. 당시에는 산에서 캐낸 돌소금이 많았다. 그 돌소금에서 염분이 사라져 돌만 남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버림을 받았다. 소금의 역할은 부패하는 것을 막고 또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이다. 만약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본질을 잃어 버려 세상에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맛을 잃은 소금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
4. 빛은 감추어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두움을 밝히는데 쓰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등불은 모든 곳을 비출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야 한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비쳐 사람들에게 갈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 빛은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로 나타난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역사하고 계 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Ⅱ. 진정한 율법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1. 구약의 말씀(율법, 선지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완성된 것을 말한다. 즉 구약의 말씀이 폐 해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구약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완성되었다는 말이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율법을 외적으로 지킴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 의를 과시하는 율법주의적 인 것이다. 그것 보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 을 말한다.
3. 옛 사람은 예수님 이전에 모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4. 살인과 미움, 간음과 음욕, 결혼과 이혼, 맹세와 진실성, 보복과 무저항, 미움과 사랑 등이다.
5. 율법주의적인 온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온전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 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으로 이루는 온전함을 말한다.
6. 출 19:1-민 10:10은 이스라엘이 제 일년 3월에 시내광야에 도착하여 제 이년 이월 이십일까지 머물면서 하나 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공동체를 조직하는 기간이다. 각자가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기 바랍니다.
Ⅲ.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1. 바로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위선에 빠지는 것이다. 은밀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을 말한다.
2. 구제의 대상은 물론 사람들이지만 구제의 정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구제를 자랑하거 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은밀하게 행해져야 한다.
3.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사람들 앞에 과시하기 위하여 하는 종교적인 위선 이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아니라 주술을 외우는 것과 같은 것이며 무책임한 것 이다. 하나님 앞에 하는 진정한 기도는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성찰하며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4. 금식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경성하고 성찰하기 위하여 하는 퇴수의 수단이다. 그러기에 다른 사 람이 모르게 은밀한 중에 이루어져야 한다.
5.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물질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구제 등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6. 사람들이 섬겨야 할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이시다. 물질은 섬기는 자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7. 염려는 연약한 인간이 맞아야 할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오는 것이다.
8.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의 큰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途꼈?우리를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는데 있다.

Ⅳ. 사람 중심의 삶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1. 남이 잘못 행한 것을 보고 비판을 하였는데 후에 자기도 그 사람과 똑같은 일을 행함으로 결국 자기의 비판이 자기를 향한 것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이 길을 무단 횡단하는 것을 보고 비판을 하였는데 후에 자기가 똑같이 무단횡단을 함으로 그 비판이 자기를 향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2.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빼기 전에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 어야 남에게 진정한 충고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 귀한 것(예를 들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나 진정한 충고를 하는 것)을 주지 말라 는 말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자는 귀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더 나아가 귀한 것과 귀한 것을 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4.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5. 남을 대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다. 즉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병든 자를 돌보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함으로 감싸주는 것 등이다.
Ⅴ. 결어와 반응에 대하여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라.
1. 좁은 문, 좁은 길이 인도하는 곳은 생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바로 그것 이다.
2. 거짓과 참은 그들이 맺는 열매로 구별할 수 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 기 때문이다.
3. 종교적인 행위나 자기 의가 아닌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4.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5. 율법주의적인 당시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으로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이 함께 있음을 말한다. 바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진리이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권세 있는 자이시다.
Ⅵ. 우리 생활에 적용시켜야 할 교훈을 다음 질문에 따라 생각해 보라.
산상수훈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8개의 질문에 대하여 각자가 정리해 보십시오.
Ⅶ. 이과를 공부한 후 새롭게 적용하기로 결심한 점을 정리해 보라.
각자가 적용하기로 결심한 것들을 정리해 보십시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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