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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나훔

[스크랩] 나훔 1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48

나훔 1장 주석

 

  나 1:1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 '중한  경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맛사'는 '목소리를 높이다'(사 3:7;42:11)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언자의 신탁을 소개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었다(합 1:1; 슥 9:1;12:1; 말 1:1). 여기

서는 나훔의 글이  하나님의  의뢰를  받아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미한다

(C.E.Armerding). 나훔 선지자는 본절에 나타난 대로 엘고스 사람이라는 사실 외에 알

려진 것이 없고, 다만 같은 이름이 눅 3:25에 한 번 나올 뿐이다. 아랍  전승에  의하

면, 엘고스는 오늘날 이라크의 모술(Mosul) 가까이에 있는 알 코스(Al  Qosh)골짜기를

지칭한다. 그러나 제롬(Jerome)이나 유세비우스(Eusebius)와 같은 고대의 학자들은 나

훔 선지자의 고향을 갈릴리의 어느 곳으로 추측했는데,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C.E.Armerding).


=======1: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 형용사 '투기하시며'에  해당하

는 히브리어 '칸노'는 수 23:16과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일반적으로는 '칸나'가  사

용되었다. 이 용어는 시내 산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이 처음으로 사용하셨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쓰인다(출 20:5;34:14). 이는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 관계를 전제하며,  이스

라엘에게 불신앙이나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로 하

나님의 질투의 속성이 나타난다(민 25:11; 히 10:27).

   여호와는 보복하시며...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 '보복'에  해당

하는 히브리어 '노켐'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그 단어는 법과 도덕을 범하면서도  회

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시행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어느 개인을 대상으로 원수를 갚는다는 뉘앙스를 갖지 않고, 대개의 경우 어느 집단이

나 백성을  향한  심판을  가리키며,  구약  성경의  용법은  언약을  배경으로  한다

(Mendenhall).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

성을 위해 니느웨를 멸망시킨다는 의미이다(13절;2:1).


========1: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이 구절은  이스라

엘의 신앙고백적 내용으로 시내 산 사건과 특별한 연관이 있다(출  34:6;  민  14:18; 

느 9:17; 시 86:15; 103:8; 145:8; 147:5). 또한 여기에서는 본서 전체에 나오는 니느

웨를 향한 선포예언의 기초가 된다(욜 2:13; 욘 4:2).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밭의 티끌이로다- 이 부분은 시의

형태상, 두번째 행으로 히브리어 알파벱 '베트'로 시작된다.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의 현현과 함께 대개 회리바람이나 광풍, 구름등이 동반되어(출 19:16; 욥  38:1;  시

18:10-15; 사 28:2; 29:6; 66:15; 렘 23:19; 슥 7:145; 9:14) 하나님의  엄위로우심과

영광을 나타낸다.



=======1:4,5,6


 본 단락에서는 여호와가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분이며,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영원한 통치를 베푸시는 분임을 신앙고백적으로 노래한다. 이에 근거하여

주고자하는 메시지는 모든 거민들은 여호와께 복종하게  되고야  말리라는  사실이다.

즉, 이방 나라인 앗수르도 종국에는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심판이 시행될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이에 대한 정당성을 피력한다.


======1:7


  앞 구절에서 진노의 하나님을 말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선하신  하나님을  묘사하여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는 심판으로  멸망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에게는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 아도나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1)부사로 해석되어 '야훼는...질...'(공동번역),  '주는  확실한...'

(NEB)등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2)'토브'가 '아도나이'와 함께 완전한 주술 구조를 갖

고 있는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을 지지하는 견해 이다. 이 가운데 후자의 견해가 바

람직한데, 그 이유는 본절의 내용이 앞뒤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속성을  노래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야훼는 선하시다'(Yahweh is good,  JB),

'주는 선하시다'(The Lord is good,RSV,NASB)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8


   다시 한번 앞 구절과 상반되는 여호와의 속성을 제시하여 극명하게 대조적인  속성

을 제시한다.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  '그

곳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코마'를 70인역에서는 '베카마이브', 즉 '대적하여  일

어나는 자들'로 번역하였고, 어떤 학자는 '반대자'의 의미로 본다(J.Barr.Driver). 이

런 견해를 따른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진멸한다는 일반적인 해석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메코마'를 지시대명사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비록 '그곳'이  어

디인지 문맥상으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아마도 '앗수르의 신전'이라든가 5절에 나오

는 '세계'를 가리킬 것으로 보인다. 혹은, 나훔 선지자가 선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니느웨나 그들이 섬기는 여신 이쉬타르(Ishtar)를 가리킬 수도 있다(J.D.W. Watts).


=======1:9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  본절에  들어서면서,

나훔은 갑자기 주제를 바꾸어 니느웨에 닥칠 심판을 예언한다. 하지만, 앞에서(8절)사

용했던 '진멸하시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라'를 본절에도 반복함으로써 앞 구절과

연계성을 유지하려 하였다. 또한 그 표현이 강조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재난이  결

코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앗수르에게 임할 심판이 확실할 것임을 말한다.


========1:10


  다가올 재앙 상태에 대해 세 가지 모습으로 비유한다.

   가시덤불같이...마른 지푸라기같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구문론적으로 자음

들을 반복하는 두운법(頭韻法)을 현저하게 사용한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키

아드시림 세부킴, 우케사브암 세부임'으로 많은 유사음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듯하다

(전 7:5,6). 이처럼 시적인 효과를 살려 앗수르인들은 무가치하고 종국에는  진멸되고

야 말리라는 운명을 예고한다. 또한, 그들을 가시덤불, 마른 지푸라기로  비유하여(사

33:11,12) 여호와의 절대적인 주권성과 아울러 필연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즉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이 가시덤불처럼 깊숙히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얽혀져 있고  지

푸라기처럼 쓸모없게 되어 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1: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 3:18에 의하면, '앗수르의 왕'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역사적으로 라기스(Lachish)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사 36,37장)으로 추정된다(D.Guthrie).

   사특한 것을 권하노라 - '사특한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벧리야알'은 '무가치한

존재'라는 의미로 도덕적인 기질과 원리를 완전히 상실한  것을  말한다(신  13:13;삿

19:22). 어떤 학자들은 이 용어가 '사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여진 것으로  여긴

다(R.L.Smith,E.B.Pusey). 본절에서는 앗수르의 통치자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현시된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는 듯하다.


=======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아도나이'하나님으로부

터 직접 계시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그가 없어지리라 - 이는 유다를 위해 베풀어진 포고령으로

앗수르에게는 심판의 선고이며, 14절의 심판과 연결된다. 앗수르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 사라지고야 말 거라는 말이다.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서

는 그에 따르는 징계가 있어왔다. 그렇지만, 유다에게 '다시는 괴롭게 하지 않겠다'는

소망적인 말씀이  주어진다. '다시는...하지  아니할  것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오드'는 사 51:22-52:1에서 특징적으로 묘사되는 상황의  반전과  압박으로부터

자유케 되리라는 약속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사야서의 앞부분에  여

러 차례 나타나는(사 5:25; 9:12,17,21) '여전히'(오드)라는 위협조의 반복어를  통해

잘 나타난다.



========1:13 


  이제...결박을 끊으리라 - 유다는 많고도 강한 원수들로부터  억압을  받아왔지만,

여호와는 앗수르의 억압을 끝장내고 유다의 멍에를 풀어주리라고 확신시키신다.  앗수

르의 억압을 받던 유다는 비록 자체적으로 왕과 성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다. 유다는 100년이 넘도록 앗수르의 정치적 간섭

을 받으며, 그들의 신을 섬겨야 했다. 유다가 독립을 주장하긴 했지만, 그들의 침략을

받고 항복하고 말았다. 니느웨는 포로들을 마치 사자가 그 먹이를 다루듯 하였고,  피

의 성읍으로 묘사될 정도로 참혹하게 대했다(2:12;3:8).


======1: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 본절은 니느웨와 유다에게 베풀어진 심판과

구원에 대한 여호와의 포고가 정식 선포령의 형태를 띠고 다시 소개된다.  9-11절에서

는 2인칭 여성복수형을 사용하여 앗수르에게, 12,13절에서는 2인칭 여성 단수형을  사

용하여 유다에게 전하였으나, 여기서 다시 남성형 어미 '카'를 사용하여 앗수르  왕에

게 전하는 형태를 취한다. 또한,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언급하는  구절로(사

34:16;렘 47:7;겔37:10) 권위와 확신이 가득하다.

   이름이 다시는...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

앗수르인들은 앗술, 나부, 말둑, 벧, 이쉬탈 등의 신을 잡다하게 섬겼으며 그  신전을

중심으로 모든 삶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앗수르의 신들이 무능력하고 가치없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호와께

서 니느웨 왕의 묘소를 선택하신다는 것은 니느웨 왕이 자신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는

달리, 실제적으로는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두각시킨다(R.L.Smith). '비

루함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르타'는 '가볍다', '작다'라는 의미의 동사  '칼

랄'의 단순완료 2인칭 남성 단수형으로 '타락한'(RSV), '변덕스러운'(NEB)등으로 번역

할 수 있다.



=======1:15


 히브리어 원문에는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2:1로 되어 있다. 본절은  메시

지의 문학적 형태를 바꾸어(R.L.Smith) 원수가 멸망했다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는

사자(使者)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볼지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네'는 구원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사 40:9).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바세르'는 '좋은 소식을  전

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삼하 18:31;왕상 1:42;사 40:9), 간혹 나쁜 소식을  가지

고 있는 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삼상 4:17) 여기서는 약탈자를 전멸시키겠다는  유다

를 위한 좋은 소식의 사자를 가리킨다.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 '화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롬'은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을 담고 있는 말로, 이사야서와  맺고  있는  연관성(사  9:6,7;

32:17; 53:5; 54:10,13; 55:12; 57:19)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용어이다. 본절은  유다가

자유롭게 절기를 지킬 수 있고, 고난받을 동안에 서원한 것을 지킬 수 있게  되리라는

소망과 기쁨을 주는 내용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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