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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엘서(2): 여호와의 날 (2:28-3:21)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27

요엘서(2): 여호와의 날 (2:28-3:21)


3.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2:28-32)-히브리 성경 3장-

  히브리 성경에서 (2:28-32)은 3장으로 독립되어 있다. (2:28-32)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 형태로 보아 독립된 장으로 분리해도 이견을 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3-1. 성령을 만민에게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28),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29)...."

  하나님은 "그 후에" "만민에게 내 신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후에"라는 말(아하레이-켄)은 문자적으로는 '이 후에'(after this)라는 말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이 말을 '말세에'라고 번역하여 종말론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행 2:17). '부어준다'는 말(에쉐포크)은 "풍성하게 준다"는 말의 강조적인 표현이다. 요엘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진노를 물붓듯이 부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호 5:10). 그러나 요엘은 에스겔과 함께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미래를 바라보았다(겔 36:16-38). 이러한 일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성취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실 때에 나타날 현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그 때에 하나님의 신을 받은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며, 노인은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는 방법이었으며, 주로 선지자들에게 주어졌다. 구약 시대에는 이러한 능력이 특정한 사람들, 즉 선지자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나 말세가 이르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을 받게될 것이다. 이로 인해 그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전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28). 만민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신다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을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신분이나 계층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실 것이다(29). 70인역(LXX)에는 "남종과 여종"을 "내 남종과 내 여종"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누가 역시 이 번역을 따르고 있다(행 2:18). 이러한 표현은 말세에 성령을 받는 사람들이 주의 종,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30).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31),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32)."

  그때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이적을 행하실 것이며, 그 이적은 피와 불과 연기 기둥으로 나타날 것이다(30). 성경에서 '피와 불'은 보통 심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사 9:5; 겔 21:32; 계 8:7 참조). 이러한 일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렸던 대재앙을 생각나게 한다(출 7:17; 9:24; 19:18). 하나님은 말세에 주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심판의 이적을 행하실 것이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선언이 된다. 요엘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31).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로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바벨론, 애굽, 에돔 등 모든 민족들과 나라에 적용되었다(사 13:6; 렘 46:10; 암 5:18-20; 욥 1:15). 요엘은 특히 마지막에 있을 여호와의 날은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종말에 나타날 심판의 날은 모든 심판의 절정을 이루는 대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요엘은 그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천체에는 심판을 예고하는 두려운 징조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또한 구원의 때이기도 했다. 그 때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요엘 당시에는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말세에는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메시아를 믿고 영접하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시 99:6; 145:18; 롬 10:13, 13:9). 말세 때에는 진실한 믿음만 있으면 어느 누구라도 구원을 받을 것이다(롬 10:13). 그때에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큰 재앙이 내려질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 재앙을 피해 구원을 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엄청난 공격을 인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 중에서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Calvin). "남은 자'(사리드)는 '탈출한다'는 뜻을 가진 동사 '사라드'에서 온 말로서, '피할 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마지막 때에는 엄청난 이스라엘에 대한 큰 박해와 공격이 있을 것이며, 그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 중에서 구별된 소수의 무리들을 재앙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실제로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예루살렘이 점령될 때에, 주님의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에서 도피한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았다. 이러한 일은 장차 임할 마지막 때에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4. 열방에 심판을 내리리라!(3장)-히브리 성경 4장-


4-1. 열방 심판(1-3)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1),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2),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3)."

  요엘서 3장에는 매우 중요한 종말에 대한 계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 날, 즉 심판 날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집힌 자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1). 그때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열방을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점령한 줄로 알고 교만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멸시했다. 그러므로 심판의 날에 열방은 하나님의 대적으로 규정되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때에 열방을 모아서 그들을 여호수아 골짜기로 데려가실 것이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압, 암몬, 에돔의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였다(대하 20:26). 그러므로 이 골짜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하나님은 열방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가서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을 대적한 열방의 죄를 엄하게 추궁하실 것이다. 우리 말 성경에 '국문한다'고 번역된 말(웨니쉐파테티)은 '심판한다', '다스린다', '결정한다'는 뜻을 가진 '솨파트'에서 온 말로, '논쟁을 벌인다', '겨룬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 말이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을 가진 '여호사밧 골짜기'와 함께 사용된 것을 보면, 이 논쟁은 열방을 심판하기 위한 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열방을 국문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쳐서 열국 중에 흩어 놓고,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 땅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2). 열방은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취했고, 인신매매를 통해 번 돈으로 술과 여자를 사서 쾌락을 추구했다(3). 유대인은 열방들, 즉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의 침공을 받았으며, 열방은 유대인들을 팔아 넘겼다. 그들은 유대인들 중에서 크고 아름다운 사람을 승리를 기념하려고 남겨두고, 나머지는 애굽의 광산에 보내거나 노예로 팔아넘겼다(Josephus).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이러한 열방의 죄악을 친히 심판하실 것이다.


4-2. 하나님의 심판(4-8)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4),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5),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6).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7),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8)."

  하나님은 먼저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면에 있는 땅을 향해 말씀하신다. 두로, 시돈, 그리고 블레셋등은 베니게를 대표하는 곳으로 당시에 노예 상인이 많았던 곳이다. 모든 죄가 사악하지만, 특히 사람을 물건처럼 팔고 사는 일처럼 큰 죄는 없을 것이다. 열방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시하고 물건처럼 취급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때에 열방의 죄를 물으실 것이다. 그때에 열방은 하나님의 심판에 반발하면서 보복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열방의 보복을 즉시 그들의 머리로 돌아가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이다(4). 하나님은 그때에 박해받던 성도들을 신속하게 구원하시고, 대적들은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과 금을 취하고, 성전의 보물을 자기 궁전으로 가져갔기 때문이었다(5). 이는 여호람(B.C. 853-841년) 때에 블레셋인과 아라비아인들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약탈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왕상 14:26; 왕하 14:14, 호 2:8; 학 2:8). 또한 하나님께서 열방을 치시는 이유는 그들이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인에게 강제로 팔아넘겨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서 멀리 떠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6). 당시에 유대인을 노예로 팔던 사람들은 주로 두로인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솔로몬과 조약을 맺고, 상대국의 백성을 노예로 매매하지 않기로 약속했다(왕상 5:1-12). 그러나 그들은 이 약속을 어기고 이스라엘 백성을 헬라인에게 노예로 팔아 넘겼다(암 1:6).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팔아넘긴 유대인들을 다시 일으켜서 노예가 되었던 곳에서 나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열방에 의해 강제로 집을 떠났던 자기 백성을 동서남북과 원방 땅 끝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사 43:5-6; 4 9:12; 렘 23:8). 그때에 하나님은 열방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그대로 그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다(7). 하나님은 성전의 보물을 가져가고 자기 백성을 팔어넘긴 열방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심판하실 것이다. 후에 시돈 사람들은 B.C. 345년에 바벨론의 아닥사스다 3세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으며, 두로인들은 B.C.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때에 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 백성들의 자녀들이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게 만드실 것이다. 그리고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를 다시 먼 곳에 사는 스바 사람에게 팔아넘길 것이다. 하나님은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어 물건 취급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의 날에는 대적들을 주관하게 만드실 것이다. '스바'는 오늘날의 예멘 지역을 가리키며,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 위치한다. 스바 사람들은 무역을 주로 했다(겔 27:22).


4-3. 군대를 소집하라!(9-13)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찌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찌어다(9).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찌어다(10).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찌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11).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12).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찌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13)."

  이제 하나님은 열국을 향해서 전쟁을 준비하라고 선포하셨다. "준비하라"는 말은 원래 "거룩하게 하다"는 말로서, 적절한 종교 예식을 통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마지막 전쟁이 종교전이 될 것을 말해준다. 이 전쟁은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이며, 열국은 그 전쟁을 위해서 모든 용사와 무사들을 동원하게 될 것이다(9). 하나님은 열방에게 농사를 짓던 보습과 낫을 쳐서 전쟁을 위한 무기, 즉 칼과 창을 만들라고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향해서 "나는 강하다"고 말하라고 요구하셨다. 열방들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생업을 포기할 것이며, 약한 자도 전쟁을 위해서 용기를 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이스라엘을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10). 그 때에 얼마나 많은 열국이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기 위해서 모일 것인가? 그때에 수많은 열국들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거대한 동맹을 맺게될 것이다. 요엘은 여호와께 "주의 용사들로 그 곳으로 내려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11). '주의 용사들'(깁보레이카)은 여호와의 날에 등장하게 될 '거룩한 자', 혹은 '천군 천사'(시 68:17; 슥 14:5)였다. 주의 용사는 열국과 대적할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지만, 종말에에 사탄의 세력을 멸하기 위해 올 천군 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살후 1:7). 요엘서의 전체 주제가 (3:12)에 나타나고 있다. 열국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분노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여호사밧 골짜기"이다. 그들은 그 곳에서 열방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12). 이제 하나님은 심판을 대행할 사람들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추수와 포도추수라는 두 가지 상징을 통해서 묘사하셨다. 하나님은 곡식이 무르익었으므로 낫을 가지고 곡식을 거두라고 명령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도주 틀을 밟아서 포도주 틀과 독이 넘쳐흐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곡식이 익고, 포도주의 독이 넘치는 것은 열방의 악이 넘쳐 흘러서 그들을 심판할  때가 왔다는 것을 말한다(13). 이 심판은 (사 63:1)과 (계 14;14-20)에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의 용사들이 최후의 전쟁에서 열국과 싸울 때에 무시무시한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쟁의 결과는 분명하다. 열국의 피가 온 땅을 적시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의 악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4-4. 판결 골짜기에 모인 허다한 무리들(14-17)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14).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15).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16).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17)." "

  (3:14)은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요엘은 열국들이 수 없이 많은 무리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골짜기에 모이는 것을 보았다. "많음이여!"라는 말이 반복된 것은 그들의 수효가 매우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열방의 용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정렬해 있는 장면이었다. "판결 골짜기"는 앞에서 언급된 "여호사밧 골짜기"를 더욱 자세하게 정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4).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 곳에서 파도 소리와 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판결의 내용을 선언하실 것이다. 주님은 택한 백성에게는 이렇게 선언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의 축복 받은 자여! 오라!" 그러나 주님은 대적을 향해서는 이렇게 선언하실 것이다. "저주받은 자여, 나를 떠나가라!" 그때에 하늘과 땅이 주님의 위엄을 느끼고 진동하며,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일어나실 것이다(15). 그리고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메시아는 시온과 예루살렘으로에서 그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실 것이다. 그때에 피조물들은 자기 백성의 피난처와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떨며 반응할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시온에 거하실 것이며, 모든 곳이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이방인들은 더 이상 그 가운데로 지나다닐 수 없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약탈하거나 멸망시키거나 더럽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때에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시온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여호사밧 골짜기와 판결(심판) 골짜기에 대한 요엘의 선언은 요엘서의 주제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 때에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부르짖고 외치실 것이며, 이로 인해 하늘과 땅이 진동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부르짖음은 심판 받을 열방에게 위협이 되지만, 주의 백성에게는 은혜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장차 왕성될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의미한다(사 35:8-9; 60:21).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의 피난처와 산성이 되어주실 것이다(16). 여호와의 날은 심판받을 자에게는 경악할 징계의 날이 되지만, 주의 백성에게는 안식과 평강이 이루어지는 날이 될 것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거룩한 산 시온에 거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에 예루살렘은 여호와로 인해 거룩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부정한 이방 사람은 그 길을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17). 그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택받지 못한 부정한 자들은 이러한 축복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시는 거룩한 나라이며, 따라서 어떠한 부정이나 오염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4-5. 유다에 축복을 내리리라!(18-21).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18)."

  하나님은 열방을 심판하신 후에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실 것이다. 요엘은 그 동안 열방에게 짓밟혀 왔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소망의 말로 예언을 맺고 있다. 그때에 산과 작은 산들은 풍성하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산들에는 단 포도주가 흐르고, 작은 산들에는 젖이 흐르는 비옥한 곳이 될 것이다. 그 때에 땅이 온전히 회복되어 모든 곡식을 풍성히 맺을 것이며, 땅은 풍요로운 동산이 될 것이다. 또한 그 때에 유다의 모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로 흘러내릴 것이다(18). 그 날에 하나님 나라는 끊임 없이 생명이 흘러나오는 영생의 나라가 될 것이다(사 30:25-26; 겔 34:13-14; 47:1,2; 슥 14:8; 계 22:1,2). 여기에 언급된 '싯딤 골짜기'가 어디인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그 동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싯딤'에서 음행과 영적 타락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일이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본문에 언급된 싯딤골짜기가 바로 그 곳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민 25장; 수 3:1, Patterson).

 2) 일부 학자는 '싯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쉬팀'은 아카시아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싯딤 골짜기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척박한 땅"을 가리킨다고 말한다(Keil, Henderson). 또한 일부 사람들은 아카시아 나무가 성막 건축에 사용된 점을 보고, 싯딤 골짜기를 성막과 관련된 지명이라고 보고 있다(Patterson). 이 견해를 따라 NIV, JB는 싯딤골짜기를 '아카시아 골짜기'(the valley of acacias)라고 번역했다.

 3) 어떤 사람들은 싯딤 골짜기가 갈릴리 호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사해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통과하는 기드론 시내 계곡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세 가지 견해 중에서 2) 번의 주장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나님은 그때에 아카시아 나무만 자라던 메마른 땅을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장차 다가 올 그 날에 자기 백성에게 풍요로운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19).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20).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21)."

  그러나 그 날에 애굽은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폐된 들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기 때문이었다(19). 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계속해서 고난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애굽은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된 애굽과 에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방해 세력, 즉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주실 때에 그들을 괴롭히던 모든 세력을 진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유다는 영원히 남고, 예루살렘도 자손 대대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20). 여기에 언급된 유다와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로 인해 오게 될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게될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고하게 흘린 피를 갚아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벨 백성을 회개하고 연단하기 위해서 이방인들을 손에 붙이셨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러나 심판 날이 이르면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공의롭게 보장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기 때문이다(21). 여기에서 "거한다"는 말(쇼켄)은 현재로 번역할 수도 있고, 미래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말이 현재와 미래로 번역이 가능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임재는 현재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미래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만, 장차 완성될 나라에서는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요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한 약속으로 끝을 맺고 있다(사 7:14 참조).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임재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이루어졌다(마 1:23; 요 1:14). 그리고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모든 원수들을 진멸하시고, 모든 나라를 여호와께 드리실 것이다(옵 1:21; 계 21:24-27). 그리고 이러한 모든 예언들은 영원한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 계 21:2)에서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4-6. 여호와의 날은 언제 임하는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되어 있는 이 놀라운 계시의 말씀을 묵상할 때에 우리는 이 여호와의 날이 언제 임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는 그 날과 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날이 임할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5. 결론: 교훈 및 적용

1. 자연에 나타난 심판과 회복이 교훈해 주는 것은- 요엘-'여호와는 창조주 하나님'

2. 역사에 나타난 심판과 회복이 교훈해 주는 것은- 요엘-'여호와는 창조주 하나님'

3. 지금은 만민이 성령받는 시대이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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