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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요엘

[스크랩] 요엘의 외침 - 여호와의 날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27

요엘(Joel)의 외침


- 여호와의 날 -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큰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 욜 1:15(참조.욜1:14,15,2:1,11-14,28:32,3:14)"

요엘이 예언한 연대를 명백하게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요엘서 본문에 의하면 그는 가장 초기의 선지자이거나 아니면 가장 후기에 속한 선지자인 것 같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가 가장 초기에 속한 선지자인 것 같다. 그러므로 요엘서를 12소선지서 중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요엘의 메시지의 취지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 속에 나타나 있다. 이 말은 요엘서에서 다섯 번 나타나지만 세가지 양상으로 구분된다.


첫번째 양상은 요엘과 그 당시의 사람들이 곧 겪게 될 일들에 대한 그의 이상이다. 메뚜기의 재앙이 실제로 그땅을 엄습했으며 따라서 그의 메시지의 앞 부분이 보여준 대로 그 재앙으로 인하여 그 땅이 황무하게 되었다.

두번째 양상은,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었던 중대한 심판인 침략군의 습격에 관하여 그가 깨달은 일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메뚜기 재앙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한 설명에 이어 별개의 사실이 삽입되고 있다. 요엘은 그 가운데서 성령이 부어지는 날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세번째 양상은 장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인데, 이 때는 하나님의 주권이 완전히 확립되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메시지 안에서 여호와의 활동하심을 보았다.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결과들을 둘러보면서,또한 임박한 침략을 내다보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훗날에 있게 될 일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 가운데서 "여호와의 날"을 보았던 것이다.
예언이란, 수 세기에 걸쳐 여호와께서 행하시기 될 일을 투시로써 미리 내다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항상 현재적인 것임을 알았다.따라서 그 사실이 그의 예언의 요지를 이루었다. 요엘의 증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각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요엘은 여호와의 통치 원리들을 적용시키고 있다. 그는 이 원리들이 통치와 은혜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통치에 관해서 볼 때, 그는 시종일관 우리로 하여금 보좌에 앉으신 여호아에 대해 생각나게끔 한다. 각 시대의 표적이 어떠하든지,백성들이 어떻게 변절하든지, 그리고 그들에게 닥치는 위험이 무엇이든지간에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시사 그의 백성이 행하는 온갖 행위들을 참으면서 주재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온갖 세력, 즉 메뚜기와 같은 자연의 세력과 군대와 같은 인간의 세력을 동원하셔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도록 압력을 가하시며 마침내는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승리로써 자신의 권리를 나타내신다. 요엘은 어디를 보건 "여호와의 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내다본 최종적인 "여호와의 날"은 아직 뒤로 미루어져 있으나 그 날이 올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가 예언한 마지막의 일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아주 멀리까지 내다 보았다. 요엘은 그 당시에 일어날 일들 곧 그의 백성의 죄악과 메뚜기 재앙을 보았으며,임박한 일들 곧 다가오는 심판과 뒤이어 있게 될 회복을 보았다.또한 그는 먼훗날의 일들 곧 성령의 날과 그날에 뒤이어 최후에 있게 될 일들을 보았다.
은혜에 관해서 볼 때 요엘 선지자의 가르침 전반에 걸쳐,은혜가 통치의 기조라는 사실이 어디서나 나타난다.그는 은혜를,심판을 중단시키는 활동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 메뚜기 쟁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임박한 심판을 선포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옷을 찢기 보다는 마음을 찢으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는 여러가지 심판을 거친 후 있게 될 최후의 승리를 묘사함에 있어서, 파괴를 기뻐하는 자의 승리가 아닌 평화와 아름다움을 베푸시는 자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와같이 그 통치의 결과 역시 은혜스럽고 자애로우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통치와 은혜라고 하는 이 원리들은 먼저 메뚜기 재앙의 경우에서 예시되었다. 그러한 재앙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쓰라린 재난이라고 말하기 쉽다. 즉 그것을 예견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메뚜기가 그 나라를 휩쓸어 버리자, 요엘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듯이 그 땅에는 술군들이 마실 포도주도 성전에 바칠 제물도 없어졌으며, 심지어는 사람들이 먹을 양식조차 부족할 정도로 그 땅이 황무하게 되었다. 백성들에게 요엘이 전한 메시지는 이 예견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던 재앙이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세대는 하나님을 잊어 버린 세대였다. 따라서 요엘은 그 황폐한 가운데 서서 사람들이 자연 현상으로 보려고 하는 그 사건이 사실상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였다는 사실을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메뚜기 재앙은 "여호와의 날"이었다. 그는 늙은 자들과 취하는 자들, 그 땅의 소유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메뚜기 재앙이 또한 임박한 군대의 침공을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했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신다"라고 선포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그들에게 침략군이 하나님의 지배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마지막에 있을 일들에 살펴볼 때 분명히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도를 알리시기 위해서 심판 가운데 앞으로 행하시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예언하였다.이와 같이 요엘은 임박한 일을 보건, 먼 훗날의 일을 보건 그 일들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을 역설하였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을 말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명쾌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사실을 예시하였다. 메뚜기 재앙을 당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회개를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는 임박한 이방의 침략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2:12,13).

이와 같이 인간이 마음을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심판에서 돌이키시리라고 선포된 이 메시지에서 알 수있듯이 통치의 근본적인 의도는 은혜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사히며 진노하기를 망설이시는 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마지막에 있게 될 일 앞에 설 때조차도 은혜는 명백하게 나타날 것이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2:29).

이것은 바로 크고 두려운 최종적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이다. 그러나 그때조차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2:32).

다시 요엘의 증거를 유의하여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한 계획에 관한 계시를 접하게 된다. 앞을 내다봄에 있어서 그는 당시의 시대 상황 뿐 아니라 곧이어 있게 될 일들까지 초월한, 최종적인 심판의 날에 있게 될 일을 내다보았다. 즉 그는 시기를 정할 수는 없으나 은혜롭고도 놀라운 축복으로 가득찬 한 시대를 내다 보았다. 인간이 처하게 될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길이 약속되어졌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 시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28)

물론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 강림일에 베드로 사도가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참조,행2:16)라고 선포한 것을 통해서 이 주목할 만한 말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요엘은 대강 보았기에 완전하게 묘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정확하게 그 일을 묘사하였다. "그후에"라는 말은 곧 그가 그 일이 일어날 때가 역사 속의 어느 시점이 될지를 몰랐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우리는 그 일이 적어도 그가 예언한 때로 부터 5세기가 지난 이후에야 일어났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예언은 일개 히브리 선지자의 예언으로서는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성령의 부어짐이 계급에 구애됨이 없이,즉 왕, 제사장,치리자,방백 등 특권층 뿐만 아니라 노예 계층에도 있게 될 것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시대를 지나서 하나님의 통치의 또 다른 활동들을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시대가 끝나고 마지막에 있게 될 일이 시작됨을 보여 주었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2:30,31).

이것은 성령의 시대에 대한 표적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그 시대가 가까왔으며 최종적인 심판의 날이 곧 도래하게 됨을 보여 주는 표적일 뿐이다. 이와같이 현재의 일과 임박한 일, 그리고 먼 훗날의 일을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상과 목적이 최종적인 성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드러나게 되었다.

요엘의 추론에 따를 때, 우리의 시대에도 그 메시지를 성립시켜 주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첫째는 '여호와의 날'이 항상 현재적이며 항상 가까와오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여호와의 날" 항상 있을 것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는 반면 지금이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미래의 '여호와의 날'만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속에서 활동하신다. 지금은 인간의 날이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놀랄만한 진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발명이 끊임없이 증대되었으며 인간의 문화는 결코 전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 결과 그 모든 것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양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이 널러 신격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결과는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귀한 모든 부면에 불행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요엘의 증거는 지금 이 시대가 외관적으로 볼 때 인간의 날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역시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활동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지배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사33:14)

모든 인간의 일들은 그 불과 그 타는 것 가운데서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다. 누가 그 안에 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타나고 있다.

오직 의롭고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사33:15).

인간의 어떤 활동도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많은 논제 가운데서 오직 의에 관한 것들만이 영원하다. 모든 시대는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이 뜻하시는 목적들을 여실히 나타내시게 될 마지막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보았듯이,일어나는 모든 사건 가운데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가 들여 있다.

각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들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성령이 부어진 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철저히 자각토록 하는 메시지가 된다. 우리의 직임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도록 그래서 그의 징벌하시는 심판에서 구원을 얻도록 항상 촉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엘의 에언의 전 메시지는 다른 모든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실제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대가 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킹슬리(Kingsley)의 다음 시를 상고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이 시는 진리의 능력 안에서 살 것을 교훈하고 있다.

 주의 날이 가까왔도다.가까왔도다!
 그로 인하여 하늘엔 폭풍이 감도는 도다.
 열방은 금더미에 앉아 주려 잠들며
 모든 꿈꾸는 자들을 탄식하고 있도다.
 새벽이 오기 전에 밤은 더욱 캄캄한 법이니.
 고통이 극심하게 되면 해산하게 되듯이
 주의 날이 가까왔도다.
 모이라 모이라, 자유와 자비와 진리여
 그 하나님의 사자들이여.
 오라, 이 땅이 노쇠하고 두려움에 잠겼음이라.
 와서 이 땅을 다시 새롭게 하라.
 지혜, 자기 희생,용기, 사랑이
 다급히 전장으로 내달아
 주의 날이 가까왔도다.
 모이라, 모이라, 기근,재앙,전쟁,
 게으름, 편협, 악정이여,
 그 지옥의 개들이여,
 와서 함정에 떨어지라.
 배금주의자,패역한 우상숭배자,악한은
 전장으로, 무덤으로 기어가니
 이제 주의 날이 가까왔도다.
 모든 시대를 주장하시는 주께서 여기 계시매
 금을 좇다 망한 시대를 위하여
 앉아서 탄식할 이 누구겠는가.
 온갖 고난을 이긴 진실한 자들은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고
 모든 금을 좇던 세대는 놋의 세대가 되었네.
 온유한 성도들은 철저한 심판을 보게 되리니
 이제 주의 날이 가까왔도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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