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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33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0

이사야 33장 주석

 

=====33:1

 화 있을진저...사람이 속이리라 - 앞에서 유다에게 내려진 '화'(*      ,호)가  본

장에서는 '유다를 학대하며 속이는 자', 곧 앗수르에게 선고된다. 이러한 변화는  '인

간(애굽)의 도움을 의뢰하는 자의 결국은 파멸이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결국은 구

원이다'는 선지자의 일관된 확신에서 기인한 것이다(Oswalt). 이것을 구체적인 역사의

배경 속에서 고찰하면 이해하기 쉽다. 히스가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공격하였다. 히스가야 왕은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받쳐 그 침입을 저지하

려 하였다, 산헤립을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언약을 깨고 재차 예

루살렘을 포위하였다(왕하 18:13-17). 이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히스가야 왕은  무

릎을 꿇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했으며 하나님은 그 종 이사야를 보내어  응답하셨다.

스미스(G. A. Smith)는 그것이 본장에 기록된 것이라 한다. 선지자는  언약을  파기한

앗수르에 대해 재앙을 선포하는데, 그 내용은 '악인은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는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33:2

  여호와여...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에 대한 깨달음은 기도

를 통해서 주어질수 있으므로 선지자는 문득 예언을 중단하고 기도를 삽입시킨다.  여

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의 기도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1)스스로에게

아무런 공적도 없음을 겸손히 시인하고,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참으로

무력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은혜를 베푸소서'). (2)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주를 앙망하오니').


=====33:3

 진동 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열방이 흩어졌나이다 - '진동시키는 소리'와 '주의

일어나심'은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현재의 위기 상황에 개입하셔서 그  원수

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청각적, 시각적으로 묘사한 말이다. '진동시키는 소

리'에 대하여는 30:30;삼상 2:10;7:10;욥 37:4,5;40:9;시  18:13;29:3-9;77:18;104:7;

단 10:6;계 1:10을 '주의 일어나심'에 대하여는 민 10:35;시 68:1을 참조하라. 본문은

아마도 산헤립의 군대가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서 하룻밤에 궤멸된 사건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37:36) 


=====33:4

 황충의 모임같이...뛰어 오르리라 - '황충'이라고 번역된 '하실'(*        )은 '잘

라 먹다', '탐식하다'는 뜻의 '하살'(*      )에서 파생된 명사로,  메뚜기의  일종을

의미한다(신 28:38;왕상 8:37;시 78:46;욜 1:4).이들은 떼로 몰려 다니면서 곡식을 남

김없이 갉아먹었다. 비유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 메뚜기떼가 들판을 휩쓸고 나면  아

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앗수르군의 노략을 또한 그처럼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유다

백성들에 의해 노획될 것이다. 


=====33:5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 승이의  결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아지실   것을   묘사한   말로   본장의   서론부(1-6절)는   일단락된다

(Delitzsch,Oswalt).  '지존하시다'로   번역된    '니스가브'(*        )는 '사가브'

(*      )  동사의 수동 분사형으로, 높아지신 상태만이 아니라 높임을  받으시게  된

변화를 또한 암시한다(Alexander). 지극히 '높은 데'에  거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스스로 높은자로 자처하실 뿐 아니라, 한편 그 백성에 대하여는 당신의 영광

을 밝히 드러내셔서 시온 곧 예루살렘에 의와 공평을 충만하게 하신다(Calvin).


=====33:6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 선지자는 계속

해서 히스가야 왕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은 '안정감'(*          ,에무나)을 잃지  않고

'구원과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향유하게 되리라고 말하는데, 이 모든 것은 '여호와

의 경외함이 너의 보배'라는 결론적인 말속에 담겨 있다. '여호와 경외'(*       

         ,이르아트 야훼)는 하나님을 무서워한다기보다는 그의 본성을 바르게 인식함

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기꺼이 복종하고 공경하려는 마음으로 그를 예배하고자 하는 내

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다른 곳에서 이것은 '지혜의 근본(실체)'이라  불리기도  한다

(시 111:10;잠 1:7;9:10). 이같이 영적으로 개화되는 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교

통이 끊이지 않을 뿐더러 금과 은 같은 보물 대신 하나님 경외함을 그 즐거운으로  삼

게 된다. 메시야 시대의 영적 속성들을 기록한 11:2과 비교하라. 


=====33:7

 보라 그들의 용사가...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 선지자는 앞에서 간략한  형

태로 본장의 주체를 소개한 뒤에 다시 그것을 세부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술한

다. 그느 먼저 아무데서도 도움받을 길 없는 현재의 비참함을 슬퍼하는 용사의 애가로

시작한다(7-9절). 언급된 '용사'(*          ,에르엘람)는 평행하는 '평화의  사신들'

과 동의어로서, 평화 협상을 위해서 산헤립이 평화의 조건으로서 내세운 금과  은을가

지고 갔으나(왕하 18:14), 산헤립은 평화의 조건으로서 다시 예루살렘의 완전  항복을

요구하면서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33:8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 -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해 유린당하는 유다의 형편

을 묘사한다. 대로가 황폐하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자 끊기고 여행객도  보

이지 않으며 장사하는 이들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는 것(삿 5:6)은 전쟁 상황에서  쉽

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 어떤이는 '성읍들'(*         ,아림)을

'중인들'(*        ,아딤)로 수정해서 읽을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약을

파기했다'는 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Duhm, Oswalt, J. Watts). 그러나

'성읍들'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터에  굳이 맛소라 본문을  바꿀 필요는 없는 듯이

보인다.


=====33:9

 땅이 슬퍼하고...목엽(木葉)을 떨어치는도다 - 유다의 참상이 땅에 반영된다. 가장

비옥한 땅으로 일컬어지던 대표적인 네 곳들-레바논, 사론, 바산,  갈멜-이  하나같이

황폐해진다. 백향목과 전나무로 꽉차 있어서 언제나 울창한 이스라엘 북쪽의 레바논은

바짝 말라 볼품 없는 모양이 될 것이며(2:13), 감멜 산 남쪽 기슭에서 욥바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의 넓은 평원으로서 아름다운 들풀과 목초지를 자랑하던 사론(대상 27:29)

은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과 같이 될 것이며, 동과 서에 위치한 비옥하고  기름

진 땅들로서 과일 나무와 삼람으로 유명한 바산 (2:13;렘 50:19;미  7:14;슥  11:2)과

갈멜은 나뭇잎들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33:13

 너희 먼데 있는 자들이...가까이 있는 자들아 - '먼데 있는 자들'과 '가까이  있는

자들'은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모든 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Alexander). 앗

수르를 파멸시킨 하나님의 권능에 너무나 놀랍고 위대한 것이어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

을 끌기에 족하다는 말이다.  


=====33:14

 시오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함께하리요 하도다 - '시온의 죄인들'곧 '경건치 아

니한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하면서도 그 행위와 습성이 앗수르와 별로 다를바

없는 불법하고 불의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앗수르를 삼킨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그들 또한 삼킬 줄 모른다는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33:15

 앞절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선지자는 그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한 인간

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 시 15편; 24:3-6과 유사한 내용이다.

   토색한 재물을 가중히 여기는 자 - '토색한 재물'(*                    ,베차  마

아솨코트)은 다른 사람을 착취함으로 해서 얻어지는 부당한 소득을 가리키며, '가중히

여기다'(*       ,마아스)는 말은 '거절하다', '멸시하다'는 뜻이다. 의로운 자는  자

신의 이익을 위하여 연야한 자를 이용하거나 억누르지 않으며 더 나아가 재물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으므로 그의 손은 언제나 깨끗하다.


=====33:16

 그느 높은 곳에 거하리니...그 물은 끊이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경

건한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로부터  풍족한  사랑을

호흡하며 복된 삶을 영위해 나간다. 선지자는 그것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  (1)하나님

께서 그를 지켜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몸소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이

다. '높은 곳'(*            ,메로밈)은 적의 위협이나 어떠한 자연의 재해도 접근 불

가능한 난공 불락의 요새 곧 가장 안전한 장소를 가리킨다(25:12). (2)하나님께서  일

상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양식'(*      ,레헴)과 '물'(*      ,밈)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으로 구비해야 할 필수품들을  총칭하는  말이

다.이러한 축복은 오직 하나님으로 주인을 삼고 그 보시기에 의롭고 경건하게  살기를

힘쓰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럴진대, 성도가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 나라

와 그의 의'(마 6:33)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33:17

 너의 눈은...목도하겠고 - 선지잔는 계속해서 앞에서 말한 경건한  신자들을  향해

그들이 누릴 풍요한 미래의 모습을 말한다(17-24절).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여기  언급

된 '왕'(*      ,멜렉)이 히스가야 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히스가야 왕은  유다의

위기 상황에서 찢긴 의복과 삼베옷을 입은 수치스런 모습을 보였으나(37:1) 위기가 끝

나고 적들이 물러간 이후에는 다시 존귀의 위엄을 회복한 영광스런  모습으로  백성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Delitzsch, Alexander). 그러나 이것을 배타적으로 히스가야 왕에

게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다. 왜냐하면 (1)동일한 문맥 속에서 선지자는  하

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분명히 묘사하고 있으며(22절), (2) '왕' 앞에 관사가 붙

어 있지 않다는 사살은 선지자가 역사상의 특정한 왕뿐 아니라 이상적인 왕을  염두해

두고 있음을 시사하며, (3)히스가야 왕이 다스렸던 협소한 영토와 본문에 언급된  '광

활한 땅'과는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잘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히스

가야 왕은 메시야의 모형으로서 거론되었다는 견해를 취한다(Calvin).


=====33:18,19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  구원

받은 백성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그들이 겪었던 두려웠던  순간들을  회고하게

될 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희열과  감격 속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터트리게  될

것이다 :'지난날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던 자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어디있느냐?'

(고전 1:20;15:55 참조).  한때  공물과 전리품들을 계산하고 장부에 기입하던 서기들

(*      ,소페르)과 그 공물을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재던 관리들(*       ,쇼켈)과  탑

(망대)을  세워  도성을 습격하려던  계획을 세우던  앗수르 관리들(*              -            

          , 소페르 에트-하미그달림)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더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지껄이며 길길이 날뛰던 '강포한 백성'(*             ,암  노

아즈) 곧 앗수르인들 또한 꿈과 같이 사라질 것이다.


=====33:20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그 줄이 하나도 끊이지 아니할 것이며 - 결코

정복되지 않는 도성 예루살렘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백성의 만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축제(절기)의 성읍'(*                   ,키르아트 모아테누)이라 불

린다.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란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루살

렘에 성소가 고정되기 전, 즉 광야를 떠들며 대적과 싸우던 불안정한 시절에는 하나님

과 백성의 관계가  '장막'(성막)이라는  협소하고  유동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장막은  본래  하나님의  거주하심을  상징하는  처소로  세워졌다(출   25:8;

29:44,45).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거주하심'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다.  '거주한다'는 말은 성경적 의미에서  '친밀하

게 연합함을  뜻한다(창 30:20; 시 5:4).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는

자력으로는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놓여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제사드리는 행위를

통하여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과  백성의 참교제는 그런  연후에라야

허락되었다. 이 경우 성막은 동물의 피를 뿌려 백성의 만남이 실현되는 '친교의 공간'

(*               ,오헬 모예드)으로 기능하였다(출 40:2). 성막은  언제나  12지파의

한 가운데 위치하였으며 그들과 더불어 진퇴(進退)를 같이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며(임마누엘의 원리), 와으로서 그들을 다스리심(신정의 이상)을 상징

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막은 하나님의 통치(하나님의 나라)의 모형론

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새것이 옛것을 대신하고 실재가 그림자를  대신하는

그때에는 응당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히 11:9,10).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적들로부터

구원하시는 미래의 그날에는 '임마누엘의 원리'(21절)와 '신정의 이상'(22절)은  더욱

완전한 형태로 구현될 것이다(G. Vos,Biblical Theology).       


=====33:21

 여호와께서는...넓은 하수(河水)나 강이 둘림 같을 거싱니라 - 참으로 '권능  있는

자'는 예루살렌을 위협하는 앗수르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함께하시며 그 도성을 지키시

는 여호와이시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면 그 도성은 큰 강이 빙 둘러서  아

무라도 접근할 수 없게 하는 천혜의 요새들처럼 그 영구한 안전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시 46:4-5;겔 47:1-12;슥 14:8). 선지자는 아마도 유브라데 강에 둘러싸인  바벧론이

나 나일 강에 둘렀인 애굽의 테베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33:22

 대저 여호와께서는 우리 재판장이시요...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 예루살렘과

함께하시며 그 권능으로써 도성을 방비하시는 여호와가 본문에서는 거의 동일한  뜻을

가진 세 가지 칭호로 불려진다. (1)그는 우리의 재판장이시다(*          ,쇼푸테누).

그는 공의에 입각하여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준열하게  판단하신다(11:3,4).  (2)그는

우리의 율법 수여자이시다(*             ,메호케케누).  그는  하나님으로서  마땅히 

따라야만 되는 삶의 규범을 제정해 주신다(신 33:21). (3)그는 우리의 왕이시다(*  

          ,말루케누). 그는 이스라엘을 통치하신다(삼상 12:12). 그에게 현대적 의미

의 입법권, 사법권, 행전권이 모두 속해 있다. 이는 그분만이 인생과는 질적으로 다른

완전한 분이시며, 우리의 참된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유일 무이한 구원자이심을  고백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33:23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 옛주석가들은 물론

현대의 많은 주석들까지도 21절의 '배'(앗수르를 가리킴)의 표상이 본문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데는 큰 난점이 따르니, 다른 데서 앗수르가 항

상 남성형으로 취급되는 반면, 본문의 '하발라이크'(*           ,너의 돛대줄)의  어

미는 여성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앗수르가 아니라 유다가 언급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낫겠다(Delitzsch, Oswalt). 앞에서 승리자로  묘사되었던  유다가,

여기서는 정비조차 제대로 안 된 낙후한 배로 묘사된다. 그러나 '때가 되면'(*      ,

아즈) 모든 것이 뒤바뀐다. 유다의 결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앗수르에게 대승을 거두

게 된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간명하다 : 승리는 외적인 조건에 달려  있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달려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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