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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느헤미야

[스크랩] 느혜미아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0:57

느혜미아 1   

▣ 성곽의 중건-느헤미야 1-3장-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성취되기를 원하실 때는 뜻이 있는 사람에게 손을 펴신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파괴되었고 돌아온 남은 자들은 적었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주전 536년에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50,000명의 유대인을 이끌고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였다(516년 경). 457년에는 에스라의 주도 아래 소규모의 부흥 운동이 있었으며, 445년에 하나님은 파괴된 성과 안정과 질서를 회복할 사람을 찾고 계셨다. 느헤미야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이 세 장에서 느헤미야가 펼치는 활동에 유의하자.


1. 일을 위해 기도하는 느헤미야(1장)


보고(1-3절)-왕의 술 관리자로서 느헤미야(유대인)는 궁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는 왕과 절친하였으며 그의 신념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의 백성을 잊지 않고 동료들에게 열심히 예루살렘 소식을 물었다(시 122:1-/시 137:5-6 참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하늘나라의 예루살렘에 이처럼 관심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식은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남은 자들은 괴로움과 수치를 당하고 있으며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문은 불타버렸다(시 79:1-4 참조). 찬양과 영광의 도시가 되기는 커녕 수치와 치욕의 성이 되었다.


반응(4절)-느헤미야는 이 성을 위하는 마음에 불타 올라서, 750마일(약 1,200Km)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그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왕의 궁정에서 사치스러움과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 성의 재앙은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그의 마음은 그 성을 구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는 넉달 동안(12월부터 4월까지, 1:1/2:1) 울며 기도했다(단 9장/ 스 9장 참조).


요청(5-11절)-이 책은 느헤미야가 기도의 사람인 것을 보여 준다 1:4-11/2:4/4:4/4:9/5:19/6:9/6:14/13:14/13:22/13:29/13:31). 이 책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다! 6절은 그가 그 성에 대한 부담을 안고 주야로 기도하였음을 말해 준다. 느헤미야가 자기 자신과 백성의 죄를 고백하는 것에 유의하자. 그는 또한 주님의 은혜스러운 약속을 상기시키고(8-9절), 예루살렘의 곤경에 대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종으로 드린다.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11절에서 우리는 그가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그를 도울 하나님의 종으로서 다른 유대인들을 보내달라고 간구하는 믿음을 볼 수있다."


느 2 

2. 일을 준비하는 느헤미야(2장)


느헤미야가 왕에게 나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4개월이 지났다. 이사야 28장 16절은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믿음과 인내는 동행한다(히 6:12 참조). 느헤미야는 그의 마음 속에 주께서 주신 한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적절한 시기가 되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알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참으로 비슷하지 않은가(6:5-6)!


느헤미야와 왕(1-8절)-왕 앞에서는 누구도 슬픔이나 나쁜 소식을 전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에 4:1-2). 그러나 느헤미야의 마음에 있는 부담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왕은 그가 슬픔을 지녔음을 알아차렸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으면 그 슬픔으로 인해 느헤미야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의 짐을 아닥사스다에게 가져가기 전에 그는 재빨리 기도로써 은혜의 보좌로 나아갔다. 그리고나서, 그는 그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왕에게 고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잠 21:1 참조). 느헤미야는 대단히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왕에게 시간 계획표와(6절), 이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물자의 목록을 왕에게 제출할 수가 있었다(7-8절). 하나님의 강하신 팔이, 그리고 선하신 손길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2:8)!


느헤미야와 폐허(9-16절)-그가 그 성에 도착하는 데는 3개월이 걸렸으며, 종으로서가 아니라 총독으로 임했다. 인내의 사람 느헤미야는 어떤 방법을 취하기 전에 3일을 기다렸다. 적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느헤미야는 지혜롭고 조심스러워야 했다. 후에 그는 유다의 귀족들 중에 그들의 적인 도비야와 결탁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6:17-19). 어두운 시기에 그는 상황을 깊이 헤아려 자기 자신의 뜻을 지켰다.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는 깨어 있었고, 남들이 안일하게 지내는 동안 그는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빛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보다도 더 많은 상황을 어두운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느헤미야와 유대인(17-20절)-느헤미야는 독자적으로 사역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성벽을 중건하는 일에 있어서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남은 자의 지도자들을 격려하였다. 동기는 “우리가 더이상 비난을 받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는 백성들의 유익 뿐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일의 필요성과 작업의 개괄적인 것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시켰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즉각적인 반대가 일어났으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와, 그 일을 지키실 것을 알고 있었다."



느 3 

3. 일을 성공시키는 느헤미야(3장)


작업방식-일은 영적 지도자들의 인도 하에 백성들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진행되어 갔다(1절). 하나님은 각 일군들을 주목하고 계셨으며 책에 그 이름들을 기록하셨다. 각 사람들에게는 책임맡은 특별한 부서들이 있었다.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나, 모든 사람이 얼마간의 일을 할 수는 있다. 물론 100퍼센트의 협력이란 결코 얻을 수 없다. 5절에서 귀족들 중의 더러는 개입하기를 거절했음을 볼 수 있다. 일군들은 42개 조로 나누어서 일했다.


작업자-일군들은 매우 다양하여, 제사장들(1절), 치리자들(12-19절), 여인들(12절), 기술자들(8, 32절), 그리고 다른 성에 사는 유대인들도 있었다(2, 5, 7절). 어떤 사람들은 여분의 일도 하기를 원하였음에 주목하자(11, 19, 21, 24, 27, 30절). 어떤 이들은 집에서 일을 했으며(10, 23, 28-30절), 그리고 어떤 일군들은 가족 중 혼자 나와서 일했으며(30절), 또 어떤 일꾼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열성적이었다(20절).  11절과 에스라 10장 31절을 비교해 보라. 또한 이전에 타락했던 사람들 중의 일부도 여기에 합세하였다.


작업 장소-각 성문마다 분명한 영적 교훈을 제시한다.

●양문(羊門, 1절)-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해 준다(요 10장 참조). 이 문이 가장 먼저 수리되었는데, 이는 희생이 없이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에는 자물쇠나 출입을 금지시키는 막대기 같은 것이 없었음에 유의하자. 구원의 문은 죄인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이 문은 성별된 유일한 문이며 특별한 문으로 제쳐져 있다.

●어문(魚門, 3절)-영혼을 구원하는 “사람 낚는 어부“를 상기시킨다(마 1:17 참조).

●구문(舊門, 6절)-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옛 길과 옛 진리를 말해 준다(렘 6:16/렘 18:15 참조). 세상적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행 17:21 참조), 실제적인 일에 있어서 근본적인 진리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

●골짜기문(13절)-여호와 앞에 겸손할 것을 말한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의 골짜기까지 내려오신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골짜기를 즐거워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려고 우리를 그 곳으로 옮겨 놓으신다.

●분문(糞門, 14절)-이 문을 통하여 성의 쓰레기와 폐물들이 버려졌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곳의 문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해 보라. 이 문은 우리의 삶의 정화에 대해 말해 준다(고후 7:1/사 1:16-17). 후에 유대인들 중 어떤 이들은 폐물에 대해 불평하였다(4:10 참조).

●샘문(15절)-성령의 사역을 예증한다(요 7:37-39 참조). 이 문들의 순서에 유의해 보라. 먼저 겸손(골짜기문)이 제시되고 정화(분문)가 따른 뒤에성령의 충만(샘문)이 온다.

●수문(水門, 26절)-신자들을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사한다(엡 5:26/시 119:9 참조). 이 문이 일곱번째에 언급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보이는 것인데,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 숫자이다. 특별히, 이 문이 수리될 필요가 없었음에 주목하라 !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굳게 섰사오며“(시 119:89).

●마문(馬門, 28절)-전쟁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전투가 따름은 분명하며, 우리는 싸움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딤후 2:1-4 참조).

●동문(東門, 29절)-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마 24:17). 에스겔 10장 16-22절에서 선지자는 동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후에 “동편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밉갓문-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준다. 히브리어로 “밉갓“은 “약속, 계산, 인구 조사, 점호“를 의미한다. 즉, 재검열을 받으려는 군대 또는 만남을 위한 약속 장소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은 어느 날 심판을 위해 모든 영혼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다.


이 문들과 순서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는 양문(구원)으로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상징들로 가득 찬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도 불구하고 결코 심판에 직면하지 않을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요 5:24/롬 8:1-2 참조)."



느 4:1-6     

▣ 적대 세력과의 대면-느헤미야 4-7장-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항상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믿음과 목적의식이 약한 사람은 그만두게 될 것이나, 결의와 신념을 지닌 사람은 반대를 극복하고 일을 마칠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사람이었다. 이 장들에서는 느헤미야가 직면했던 성의 내적, 외적인 반대들과 그가 이긴 승리들을 주목하자.


1. 조롱(4:1-6)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적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사마리아의 정부관리인 산발랏과 암몬사람 도비야, 그리고 가스무라 불리우는 아라비아사람 게셈이다(6:1/6:6). 이 사악한 세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 외부의 사람들이었으며, 사실상 암몬 사람들은 유대인의 분명한 적들이었다(신 23:3-4). 그들의 첫 번째 무기는 조롱이었다. 이들은 사마리아의 지도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미약한 유대인들“이라고 조롱하였다. 사단은 조소자이다(눅 22:63/눅  23:35-37). 조롱은 시기심으로 가득 찬 무지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속임수이다. 그들은 그 백성(“연약한 유대인“)과 그 계획(“하루에 필역하려는가“)과 그 재료들(“돌과 흙무더기“)을 조롱하였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모욕에 찬 조롱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 그의 관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으며 민족의 간증을 지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기도를 개인적인 보복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시 139:19-24). 백성들은 여전히 그들이 기도한 대로 일을 계속하였다. 이는 기도가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단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떠나게 될 것과, 산발랏의 논쟁에 개입되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사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조롱이 우리의 사역을 중단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하라. “이 일을 기도 중에 주님께 가져가라.“ 그리고 일하기를 계속하라."


느 4:7-9     

2. 무력(4:7-9)


사단은 속임수로 성취할 수 없을 때에는 힘으로 다시 공격한다. 7절에서는 인간들의 연합 전선이 펼쳐지는 것을 본다.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음모를 꾸몄다. 사단에게는 인력의 부족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놀라운 일이다. 2장10절에는 두 원수가 나오는데 2장 19절에는 셋이 나오고 4장 7절에는 전체 군중이 원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느헤미야는 이 새로운 공격을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 그는 기도하였고 파숫군을 세웠다. “깨어 기도하라!“ 신약에서는 이러한 권고가 계속해서 나온다(막 13:33- 세상/ 막 14:38- 육신/ 엡 6:18- 마귀). 느헤미야가 기도에만 의존한 것이 아님을 유의하자. 그는 또한 파숫군을 세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능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되, 불가능한 일은 주님께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느 4:10      

3. 실의(4:10)


이제 전쟁은 성의 외부에서 내부로 옮기워진다. 사단은 이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사도행전 5-6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 교회 내의 구제에 대해 불평하던 과부들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또한 사도들 가운데에 유다를 두어 사용했다. 폐허의 잔해들과 외부적인 위험으로 인해서 일군들은 얼마나 실의에 빠져 있었을까? 유다지파는 왜 불평하였는가? 아마도 은밀히 산발랏과 동맹을 맺고 있었는지도 모른다(6:17). 13장 15절에서 하나님의 법에 유다가 불순종하는 것을 유의하라. “우리는 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할 때 이들은 사실상 적에게 동의한 것이었다(4:2). 실의와 불평은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였다. 느헤미야가 불평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말은 없다. 그는 건축을 계속했고, 계속 파숫군을 세웠으며, 계속 기도했다."


느 4:11-13  

4. 두려움(4:11-13)


두려움과 믿음은 결코 같은 마음에 거할 수 없다. 11절에서 “적들이 갑자기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다“는 소문이 적에 의해 퍼뜨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성 밖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 소문을 느헤미야에게 열 번이나 알렸다. 사단의 일은 얼마나 끈질긴가! 마침내 느헤미야는 성에 파숫군을 세우고 두려워 말라고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13절과 15절 사이에서 일이 멈춘 것에 유의하자. 바로 적이 원하던 일이었다. 느헤미야는 이 계획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군들에게 다시 일하게 했으며,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일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나팔을 든 특별한 파숫군을 세웠다(19-20절). 그러나 그는 일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자들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놀라운 본보기이다. 이들은 일할 마음이 있었고(4:6) 기도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며(4:9) 지켜볼 눈(4:9)과 들을 귀가 있었다(4:20)."



느 5 

5. 이기심(5장)


본 장은 슬픈 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이기적으로 서로 삼키려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본 장에는 건축에 대한 내용은 없다. 유대인들은 큰 경제적인 부담이 있었는데, 이는 흉년으로 인한 것 뿐아니라(학 1:7-11) 세금과 조공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유대인들은 그들 가운데 성행하던 저당과, 종으로 팔림으로써 착취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에 임하여 느헤미야는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그는 화를 내었다. 이는 그의 백성들이 서로 탈취할 만큼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를 경제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문제로 보았다. 그가 깊이 숙고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것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그는 백성을 책망하며(7-11절)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상기시켰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거늘, 이제 너희가 다시 형제를 서로 종으로 팔고자 하느냐?“라고 말하며, 그는 그릇되게 얻은 이익을 되돌려 주라고 명령함에 있어 구약 율법에 호소하였다(출 22:25). 유대인들이 서로 탈취하는 것을 보며 원수들은 얼마나 즐거워했겠는가!(9절) 느헤미야는 또한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훌륭한 모범을 설명하였다(10절).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하기로 맹세하였으며, 그대로 실천하였다."


느 6:1-4     

6. 간사함(6:1-4)


백성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왔고, 적들도 역시 그러했다. 이제 산발랏과 그의 부하들은 지도자인 느헤미야를 공격하는 데에 목표를 두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매일 직면하는 특별한 유혹과 시험들을 결코 의식하지 못한다. 영적 지도력이란 값진 것이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오노(Ono)평지에서 만나자고 초청하였으나, 그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O, no!“). 하나님의 구별된 종들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시 1:1). 적의 미소를 조심하라. 사단이 친구로서 나타날 때가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네 번이나 초청이 왔으나(4절) 그는 매 번 거절하였다. “내가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사단이 우리의 일을 중단시키려 하여 초청할 때에도 일을 계속 하라 !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느 6:5-9     

7. 모함(6:5-9)


사자가 다섯번째로 왔을 때, 그는 느헤미야와 그의 백성들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가득 찬 봉해지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은 마귀의 주요 무기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말하던데“ 또는 “내가 듣기로는...“과 같은 말들은 소문이나 거짓말을 알릴 때에 대개 쓰이는 말이다. 누가 그렇게 말하는가? “사람들이...“란 대체 누구인가? 느헤미야는 그들의 계략을 눈치채고, 즉시 이른바 “공개서한“에 수록된 거짓말들을 폭로하였다. 그의 삶과 성품은 모든 거짓말을 반박하였다. 1-4절에서 적들은 유대인의 일에 동참하겠다고 제의했었으나, 이제 5-9절에서는 느헤미야의 명예를 훼손시키려 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다시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종은 그에 대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거나 막지는 못하지만, 그가 지닌 성품과 간증은 알릴 수있다. 만약 느헤미야가 그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일을 중단했다면 성전은 결코 재건되지 못했을 것이다.



# 느 6:10-14, 404


8. 위협(6:10-14)


스마야는 적을 두려워하여 집에 들어 앉은 채 두문불출하였지만 사실상 그는 적과 한 패가 되어 일하고 있었다. 왜 그는 성곽을 재건하는 데에 유대인들을 돕지 않고 있는가?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충고만 하는 그리스도인들 주위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바울은 거짓 형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고후 11:26).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거짓말을 하여 그를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그가 안전을 위해 적에게로 나아가게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계책을 알아채고 그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논박하였다. 또다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기도하고, 곧바로 일하러 갔다.

성벽은 52일 만에 완공되었는데, 작업 기간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였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원수들은 부끄러움을 당했다(16절). 그러나 타협적인 유대인들은 느헤미야가 도비야를 용납하도록 여전히 일을 꾸미고 있었다. 경건하고 용기있는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이 “유대의 귀족들“은 얼마나 짐스러웠겠는가! 일은 완성되었다. 하나님께 이 영광을 !"



느 8-10     

▣ 말씀의 회복-느헤미야 8-13장-


성벽은 여섯째 달의 25일에 완공되었다(6:15). 이 책의 후반부는 일곱째 달의 첫날부터 시작되었는데(8:2), 성의 주민과,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물질적인 건축은 끝났으나, 이제 백성들의 영적인 건축을 시작해야 했다.


1. 말씀의 선포(8-10장)


예루살렘으로 온 에스라는 성벽을 헌납하고 백성을 성별하는 일에 있어서 느헤미야를 도왔다. 이 부분을 에스라 3장과 혼동하지 말라. 수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므로, 백성들이 수문 앞에 모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3:26). 백성들은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에스라에게 말씀을 가져다가 설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7월의 첫날은 나팔절이었고, 10일은 속죄일이었으며, 15-22일은 장막절이었다(레 23:23-44 참조). 에스라는 말씀을 읽었으며 여러 시간 동안 설교하였다. 레위인들이 조력하였음은 물론이다. 8절은 교회에서의 집회를 완전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이 듣기 위해 모였고 말씀은 높이 선포되었다. 설교자는 회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읽고 설명하였고 백성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울었다. 그들이 자기의 죄를 애통해 한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그 날은 기쁨의 날이 되었다. 그들은 속죄의 날에 울었다! 에스라는 잔치를 벌이고 즐거워할 것을 명했다(전 3:4 참조).

다음 날, 지도자들은 에스라를 만났으며 장막절의 축제에 대한 율법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온 나라에 이 율법을 선포하였으며, 백성들이 순종함에 따라 “큰기쁨“이 있었다(17절). 말씀을 듣는 데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할 때에는 더욱 큰 기쁨이 있다. 이 “사경회“(査經會)로 모인 결과(일주일 간 매일 열렸음, 18절), 죄를 깨달은 백성들의 큰 소집이 그 달 24일에 있었다.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세 시간 동안 말씀을 가르쳤고 세 시간 동안 고백과 기도로 백성들을 인도해 갔다. 따라서 그 날 하루 전체가 소요되었다. 9장에 나오는 기도는 유대인들의 구약 역사를 요약해 놓은 것으로서, 창조(6절),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소명(7-8절), 출애굽(9-14절), 광야 생활과 죄(15-23절), 땅을 정복함(30-31절)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란 말은 우리를 에스라의 시대, 이 민족이 회개하고 죄를 고백해야 할 필요성으로 이끌어간다. 유대인들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구원의 예언들“이 그들이 유배지에서 돌아온 것에 적용되지 않음을 시인하고 있다는 데에 유의하자. 그 예언들은 장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팔레스틴에 다시 모을 때에 적용된다. 예언들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 왔을 때 성취되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교회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다.

10장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들어간 용기있고 경건한 사람들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28-39절에서 우리는 그들이 말씀을 일상생활에 적용시키는 것을 본다. 기도하고 언약에 서명하는 것이 하나라면 악에서 분리되는 것, 우리의 가정을 굳게 하는 것(28-30절), 안식일을 존중하는 것(31절), 하나님의 전에 헌납하는 것(32-33절), 그리고 십일조와 헌금으로(34-39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또 다른 하나이다. 너무도 많은 “사경회“들이 각성되고 축복된 사람들로 끝이 나지만, 그러나 그들은 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느 11-12    

2. 성벽의 헌납(11-12장)


본 장은 에스라 지도 하의 영적인 일에 대한 것을 중단하고 성벽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7장 5절부터 10장 35절까지는 삽입 부분으로서, 느헤미야서의 사건은 정확한 순서로 되어 있지는 않다. 유대인들을 성읍에서 살도록 하는 것은 성의 유익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수적인 일이었다. 지도자들은 성 안에서 살고 있었지만 이제 주민들이 그들과 합세하기를 원하였다. 곧 그들은 그 제비를 뽑아 10%를 성 내로 이동시켰다. 2절에는 지원자들도 얼마간 있었음을 시사한다. 3-19절에 나오는 수는 모두 합해서 3,044명이었다. 이것이 남자 인구의 10%라고 하면 우리는 그 땅에 남은 자들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있다. 노래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에 유의하자(22-23절). 유대인들은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나(시편 137편) 이제는 그들의 힘인 여호와의 기쁨을 얻었다.


성벽에 대한 실제적인 헌납은 12장 27-47절에 묘사되어 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크게 2개 조로 나누어서, 하나는 에스라가 인도하고 다른 하나는 느헤미야가 맡았다(31, 36, 38절). 이들은 아마도 골짜기문에서 시작한 것같다. 에스라는 도시의 동쪽 편을 따라서 일행을 인도해 갔으며 거기서 성전 지역을 향해 북쪽으로 갔다. 느헤미야와 그의 일행은 북쪽으로 직진하여 성전에서 다른 일행과 만났다. 아마도 이것은 여리고 성을 돌며 행진하여 큰 승리를 얻었을 때를 상기하는 일인 듯하다. 이 일이 완성된 것을 백성들이 목격함으로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였을 것이다. 43절은 성의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음을 시사한다. 이 날은 참으로 놀라운 헌납의 날이었다. 헌신한 백성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기 위하여 연합할 때 이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다.



느 13 

3. 사악한 자들에 대한 정죄(13장)


13장 6절과 7장 2절에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성을 치리하는 일을 그의 형제의 손에 맡기고 몇 년 동안 바벨론으로 돌아간 것을 보게 된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백성들이 그들의 옛 길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1-3절은 헌신의 날에 발생했던 정화운동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때 이들은 가족 중에서 이방인 아내들과 분리되었다(신 23:1-5 참조). 수 년 전, 에스라도 이 문제에 부딪혔었다(스 10장). 죄는 그 자체가 반복의 요인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유대인들이 이 죄를 다시 반복하였음을 발견했다(23-31절). 사실상, 제사장들조차도 이 죄를 범하였다. 이 용기있는 성도는 그 죄에 직면하여 심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시작하여 대제사장이 유대인의 대적인 도비야와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맹“이란 말은 “친척 관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6:18/13:28 참조).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원수들과 타협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제사장은 도비야에게 성전에 있는 방을 주었고 성전 창고에서 재물을 주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제사장들과 레위인에게 속한 재물이었다. 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과 거룩하지 못한 일들을 지원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느헤미야는 도비야와 그의 물건들을 지체 없이 던져 버리고 성전 방을 용도에 맞게 성결케 하였다.

또다른 죄는 백성들이 영적인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 말라기는 이 일에 대하여 언급하였다(말 3장 참조).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제사장들이 따라야 할 믿음직한 제도를 설정하였다. 그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에 유의하자(14절).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이 또다른 문제였다. 일군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였으며(15절) 상인들도 안식일에 물건을 팔았다(16절). 우리는 주일이 유대인의 안식일과는 같지 않다고 믿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주일을 따로 분리하여 그를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의 경제 체계는 사람들이 일요일에도 일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주님의 날을 존중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사람과 민족을 위하여 훨씬 좋은 일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을 쇼핑하거나 미루어 둔 일을 처리하는 데에 소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데에 대하여 유대인들을 책망하고, 안식일에 장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문을 닫았다(18절/ 렘 17:21-24 참조).


이 책은 세 가지 기도로 끝을 맺는다(22, 29, 31절). 느헤미야가 일을 이루었으나, 하나님만이 그 일을 축복하고 지속시킬 수 있으시다. 느헤미야는 어느 날 죽을 것이고 백성은 그를 잊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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