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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에스라

[스크랩] 에스라 (3 : 1~1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9:19
에스라 3장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ㅇ칠월에 이르러...예 살렘에 모인지라 - `7월'은 유대력의 `디스리 월'을 말한다.
보통의 달력으로는 9월 혹은 10월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7월'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귀환한 그 해의 `칠월'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까닭은 모
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레 23:41) 초막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편, `모인지라'
(예아스푸)는 `모이다' 혹은 `모으다'의 의미를 갖는 `아사프'
의 수동형으로서, 특별한 일에의 참여를 위하여 한마음이 되어 모여드는 행위를 가리
킬 때 사용되는 단어어다(9:4; 삿 20:11; 대하 30:13). `일제히'는 문자적으로 `한
사람처럼'의 의미이다.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벧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새

3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ㅇ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 오히려 `비록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였지
만'으로 번역해야 본 문맥의 흐름과 잘 조화된다(NIV). `열국 백성' 은 문자적으로
`그 땅 백성들'의 의미이다. 즉, 그들은 그 당시 팔레스틴 땅과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여러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들 중 대표적인 민족은 사마리아인들이었을 것이다(4:2).
한편, `두려워하여' (베에이마)는 급속히 엄습하여 공포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 사용되는 단어 `에이마'와 `~안에서' 혹은 `~의'로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베'가 합쳐진 말이다(창 15:12; 출 15:16; 수 2:9 욥 20:25).
ㅇ단을 그 터에 세우고 - `그 터'는 원래 솔로몬 성전의 제단이 세워져 있던 곳을 가
리킨다(2:68).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레스틴에 귀환한 직후부터 제단 쌓기를
시작하여 칠월이 되어서야 그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1절).
ㅇ조석으로...번제를 드리며 - 본문의 `번제'는 매일 드려져야 하는 상번제를 가려킨
다(출 29:38, 39; 민 28:3, 4).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ㅇ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 `초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
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로서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출 23:14-16; 34가22가 산
16가13-17). 특히 이 `초막절'은 `장막절' 혹은 `수장절' 이라고도 불리우며, 땅에서
산출되는 모든 곡식, 술, 기름을 거둬들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
였다. 이 절기는 유대력으로 디스리월, 즉 7월(보통 달력으로는 10월) 15일에 시작하
여(민 29:12) 8일 동안 지켜졌으며,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聖會)가 있었다. 이
절기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수송아지, 수양 등을 제물로 바쳤으나, 곡식은
제물이 될 수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축만을 제물로 삼으신 까닭은, 가나안 족
속의 추수제와 초막절을 엄격히 구별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ㅇ정수대로 - 절기가 지켜지는 8일 동안 날마다 동일한 수효의 제물이 드려진 것이
아니었음을 가리킨다. 즉, 수송아지의 경우, 첫날에는 13마리가 둘째날에는 12마리가
바쳐졌다. 이렇게 해서 그 절기 동안 바쳐져야 했던 가축의 수는 모두 215 마리 였다
(민 29:13-38).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ㅇ그 후에는 - 귀환 후 최초로 지켜진 초막절 절기가 끝난 다음을 가리킨다.
ㅇ항상 드리는 번제 - 평상시에도 아침 저녁 하루 두 차례씩 드려지던 상번제를 가리
킨다(출 29:42; 민 28:3-6). 즉,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 절기를 계기로 모
든 희생 제사를 정상화 시켰음을 시사한다.
ㅇ초하루 - 이것은 월삭 현상이 일어나는 매월의 첫날에 베풀어지는 종교적 축제를
가리킨다(민 10:10; 28:11-15; 삼상 20:5; 느 10:33; 사 1:13).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도 지켰다.
ㅇ여호와의...절기의 번제 - `무교절'(레 23:5-8), `맥추절'(레 23:15-21),`나팔절'
(레 23:23-25), `초막절'(4절; 레 23:33-36), `속죄일'(레 23:27-32)등에 드려져야 할
번제를 가리킨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을 강조하는 칭호이다. 본서의 저
자는 이 문맥에서 바로 이와 갈은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이 절기가 지켜진 것이 언약
적 차원에서 였음을 강조하려고 한다. 절기를 지키는 것이 언약 백성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의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레 23장) 본서 저자의 이러한 의도는 분명히 이
해될 수 있을 것이다.
ㅇ즐거이 드리는 예물 - 이것은 특정한 절기와 상관없이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자
발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Fensham, 레 22:18,21; 대하 35:8).

6 칠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ㅇ칠 월 초하루부터 - 엄밀히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 제사를 회복한 것이 초
막절 절기 때부터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즉 초막절은 칠 월 보름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적어도 약 보름간은 상번제가 제단에서 드려졌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매년
칠 월 열흘에 드려졌던 속죄일은 안지켜졌다는 결론이 나온다(레 16장; 23:26-32; 민
29:7-11). 그러나 속죄일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백성들의 신앙적 열심의 부족과는 전
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성전이 아직 재건되지 못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대제사장
이 백성들의 사죄를 위해서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독특한 의식이 뒤따르는 속죄일
행사가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ㅇ여호와의 전 지대는...놓지 못한지라 - 이러한 언급을 통해 저자는, 성전 재건이
착수되는 현장으로 본서의 무대를 옮기려 시도한다.
ㅇ오히려 - 엄밀히 말해서 히브리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하게 하였더라

ㅇ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 `석수' 와 `목수'는 필경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선
발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석수'(호체빔)는 `돌을 뜨는 사람'(왕상 5:
15). 혹은 `벌목하는 사람'(대하 2:18)을 뜻하며 `목수'(하라쉼)는 `철
공'(사 44:12), `목공'(사 44:13), `벽돌공'(왕하 12:12), `장색'(사 40:19)등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ㅇ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기름 주고 -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계
획했던 상황과 유사하다(Kidner). 농토가 없음으로 해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
돈과 두로(행 12:20}에 먹을 것을 주는 대신 성전 건축에 필요했던 건축 재료들을 수
입해 왔을 것이다(왕상 5:8-11; 대하 2:10-15). 한편 `시돈'과 `두로'는 가나안 족속
으로서 B.C. 9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각기 독립된 도시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B.C. 9세기에 정복된 후에는 거의 계속적으로 강대국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이 매우 발달했던 나라들로서,
솔로몬 왕 시절만 해도 엄청난 국부(國富)를 자랑했었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기
에는 그들도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시돈'은 오늘날의 베이루트 남방 약 48Km
지점에 위치해 있고 `두로'는 시돈 남쪽 40Km 지점에 있다.
ㅇ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 고레스의 조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하는
것을 도우라는 명령 조항이, 구체적으로 두로와 시돈 사람을 겨냥하여 있었던 것 같지
는 않다. 그 `조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에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
록 허용하는 내용과 남아있는 백성들은 그들을 도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1:3, 4).
그러나 오늘날 건축을 하기 위해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듯이 그 당시에도 성전 건축
과 갈은 큰 공사를 위해서는 바사 정부의 허가가 요구되었을 것이며, 이 허가 속에는
많은 양의 건축 자재를 조달하는 사업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본다. 본 구절도 바
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Batten).
ㅇ백향목 - `굳건히 뿌리 박힌 강한 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학명(學名)은 `세
드루스 리바니'(Cedrus Libani)이다. 이 나무는 최고 36m까지 자라며, 나무의 둘레도
최고 12m까지 된다. 또한 이 나무는 크기(암 2:9) 뿐만 아니라 모양과 향기에 있어서
도 특출하다. 이 나무가 건축 재료로 적당한 까닭은, 나무 자체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다는 점 외에도 옹이가 없으며 아울러 내구력도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
이다.
ㅇ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 - `레바논'은 팔레스틴의 북서쪽에 위치한 험준한
레바논 산맥을 가리킬 것이다. 이 산맥은 폭이 약 1.6Km 이내인 해안 평야에 의해서
지중해 해안과 분리되어 있다. 한편 `욥바'는 `아름답다'는 의미를 갖는 항구도시(욘
1:3)로서 높이가 해발 약 43m인 바위로 이루어진 갑(岬)이 바다로 돌출해 있는 등의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부터는 서북 쪽으로 약 56Km 떨어져 있다.
한편 `수운'은 백향목 뗏목으로 엮어서 해안을 따라 옮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운
송 방식은 최초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에 의해서도 이용되었다(왕상 5:9)

8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이년 이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벧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시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ㅇ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로 귀환 사건을 가리킨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이 같은 방식으로 포로 귀환 사건을 묘사한 것은, 포로 귀환의
주목적이 성건 재건이었기 때문이다.
ㅇ이 년 이 월에 - 바벨론에서 귀환한 그 해의 이듬해(Williamson), 즉 B.C. 536년의
둘째 달인 `시브월'로서, 솔로몬도 이 때에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왕상 6:1). 그렇다
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의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지 육개월이 지나서야, 그
작업에 착수한 셈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굳이 이 시기를 택하여 성건 재
건 작업에 착수한 까닭은, 일반 달력으로 4, 5 월인 이때는 건조기가 시작되는 시기였
기 때문이다(Grosheide).
ㅇ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 이에 대해서는 본장 2절 주석을 참조 하라.
ㅇ요사닥의 아들 예수아 - 역시 2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다른 형제 제사장 - 2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사로잡혔다가...돌아온 자들 - 본장 2절의 `스룹바벨의 형제들' 즉, 일반적인 이스
라엘 사람들과 동일한 자들이다.
ㅇ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감독하게 - 원래 레위인이 성전 봉사에 참여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25세 이상이 되어야 했다(민 8:24). 그러나 후대에 들어
와서는 레위인의 인구가 감소함으로 하한 연령이 20세로 낮춰졌다(대상 23:24, 27; 대
하 31:17).

9 이에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전 공장을 감독하니라

ㅇ예수아와 그 아들들 - 여기의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가 아닌 `호다위야 자손'
(2:40)의 한 대표인 레위인 예수아를 가리킨다.
ㅇ갓미엘과 그 아들들 - `갓미엘'도 역시 레위인으로서 `호다위야 자손'의 또다른 대
표였다(2:40).
ㅇ유다 자손(브네이 예후다) - 이것은 `브네이 호다웨야'
가 잘못 필사된 것이다(Keil and Delitzsch). 즉, 본서의 서자는
여기서 `예수아와 그 아들들' 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이 레위 사람 `호다위야' 의 자
손들임을 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다 자손' 은 `예수아와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동격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호다위야 자손'으로 고쳐져야함이 당연하다.
ㅇ헤나닷 자손 - 이들은 2장의 레위인 족보에 나타나지 않는다(2:40). 왜 이들이 그
명단에서 누락됐는 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전 재건 작업의 감독자가
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이들도 레위 사람의 일파라는 사실이다.
ㅇ그 형제 레위 사람들 - 레위인들인 `아삽 자손'등을 말한다(2:41, 42).
ㅇ일제히 일어나 - 이 말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으나 건축 감독자들의 적극적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 첨가되었다.
ㅇ하나님의 전 공장 - 여기의 `공장'(멜라카)은 `일' 혹은 `역사'(役
事), `사업' 등을 의미한다(출 35:24; 왕상 9:23; 대상 23:4). 따라서 `하나님의 전
공장'은 성전 재건을 위한 공사(工事)를 가리킨다.
ㅇ감독하니라(나차흐) - 이것은 원래 `인도하다', `보살피다' 등의 의미로
서(대상 15:21; 23:4; 대하 34:13),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자, 혹은 조정자
(調整者)의 역할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레위인들이 일반 백성들이나 고
용된 일꾼들에 대해서 강압적 및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ㅇ건축자가...지대를 놓을 때에 - `건축자'(보님)는 7절에 언급되고 있는
`목수' 중의 일부였음이 분명하다. `지대를 놓을'(야사드)은 원래 `한 더미
로 쌓다' 혹은 `위치를 정하다'(시 104:8)의 의미이지만, 본절과 같은 문맥에서는 `기
초 공사를 하다'의 뜻으로 쓰여진다(대하 31:7; 욥 38:4; 시 24:2; 사 54:11).
ㅇ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 문자적으로는 `옷이 입혀진 제사장들'이다. 그런데 `예
복을 입고'(라마쉬)라는 동사는 원래 `옷을 입다'라는 의미지만 항상 제사
장의 예복과 관련되어 사용된다는 점에서, 본절의 `예복을 입고' 는 어느 정도 적절한
번역이라 하겠다(레 6:10; 16:4).
ㅇ나팔을 들고 - 뒤에 나오는 `여호와를 찬송하되'에 걸린다. 즉, 제사장들이 여호
와를 찬양하는 데 나팔을 사용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나팔'(하초
츠라)은 `산산히 부수다'의 의미를 갖는 금속제 관악기였다. 따라서 이는 수양의 뿔
로 만들어진 나팔(`요벨'; 출 19:3)이나 야생 염소의 뿔로 된 나팔 (`쇼파르';대상 15
:28; 대하 15:14; 호 5:8) 과는 전혀 달랐으며 제사장들에 의해서 의식용(儀式用)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다른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ㅇ아삽 지선 레위 사람들 - 이에 대해서는 2:41 주석을 참조하라.
ㅇ제금을 들고 서서 - `제금'(메칠타임)은 본 단어의 쌍수형(雙數形)
을 통해서 엿볼수 있듯이, 두 개의 금속 원반으로 한 조가 되는 타악기였다. 마치 오
늘날의 심벌즈(Cymbals)같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서서'(아마드)는 단
순한 의미의 `기립'(起立) 행위를 의미 한다기 보다는 특별한 의식(儀式)의 집행을 위
하여 임명되고 그래서 정위치한 것까지를 말한다(민 11:24; 27:22; 대하 8:14; 11:15;
19:5; 20:21).
ㅇ이스리엘 왕 다윗 규례대로 -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라는 인물의 특출성을 강조하
기 위한 수식적 명칭이다. 물론 사울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에 선택된 최초의 왕이라는 점에서 (삼상 13:14; 행 13:22) 다
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큰 비중을 갖는 인물이었다. 한편, `다윗의 규례대로' 는 2절
의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에 상응하는 문구이다(Williamson). 즉, 모세는 성전
예배의 기초적 혹은 핵심적 요소인 희생 제사 제도를 확립한 반면(2절), 다윗은 부가
적 혹은 보완적 요소인 음악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다윗의 규례대로'
는 음악사용에 관한 다윗의 명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대상 15:16-24).
ㅇ여호와를 찬송하되 - `찬송하되'(할랄)는 구약 성경에서 `송축하다'(대
상 16:36), `찬양하다'(대상 25:3; 시113:1; 146:1), `칭찬하다'(창 12:15; 삼하 14:2
5) 등으로 번역 되었다. 바로 이 단어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인 `할렐루야'
가 파생되었다(시 113:9; 115:18; 116:19; 135:21).

11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ㅇ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감사하여 가로되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찬송하면서
그리고 감사하면서 노래했다'는 의미이며 한 무리는 하나님을 `찬송' 했고 또 한 무리
는 `감사'했다는 점에서 우리말 번역처럼 `화답', 즉 서로 주고 받는 식의 찬송이었음
이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찬송'과 `감사'는 거의 동의적(同意的)이다.
ㅇ주는 지선(至善) 하시므로 - 여기의 `주'(主)는 말할 나위없이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러나 히브리 본문에 `주'란 말은 없다. 다만 `그분은' 으로 번역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뿐이다. 한편, `지선하시므로'(키 토옵)는 문자적으로 `진실로
선하시므로'의 뜻이다.
ㅇ그 인자하심이...영원하시도다 - 여기의 `인자'(헤세드)는 계약적 관계
로 인하여 베풀어지는 불변의 사랑을 가리킨다(Fensham). 다시 말하여 백성들의 엄청
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치 않으시고 길이 참으심을 뜻한다(애 3
:22, 23). 그리고 `영원하시도다'(레올람)는 `세상 끝날까지 계속있을
것이다'의 의미이다.
ㅇ이스라엘 - 언약 공동체로서의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1:3).
ㅇ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것이나 노래하는 것은 승리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삼상 4:5).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재건되어 하나님께 대한 희생
제사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마귀 세력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이자 그 백성의 승리였다.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 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ㅇ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의 느부사라단에 의해
서 파괴된 것(왕하 25:13; 대하 36:19)은 B.C. 586 년이었다. 따라서 지대가 눠여진
그해(B.C. 536년)로부터 50년 전이었다. 그러므로 귀환자들중에 연로한 사람들은 예
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을 본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ㅇ이 전 지대 - 이스룹바벨 성전의 기초는 거기에 사용된 재료의 질(質)이나(왕상 5:
17; 7:10, 11) 그 규모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보잘것 없었던
것 같다(학 2:3). 뿐만 아니라 그 공사를 담당했던 석공(石工)의 기술 수준에 있어서
도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왕상 5:6).
ㅇ대성 통곡하며 - 문자적인 의미가 `큰 소리로 울면서'라는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
역은 꽤 적절하다. 그런데 여기서 노인들이 `대성 통곡'을 한 까닭은 (1) 성전의 규
모가 과거의 솔로몬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으리 만큼 작았으며, (2) 범죄로 인하여 이
방 민족에게 철저히 멸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에 의해서 그들의 땅에 포
로로 끌려 갔었던 슬픈 과거가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ㅇ여러 사람 - 솔로몬 성전을 못봤던 대부분의 백성들을 뜻한다.
ㅇ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 젊은 사람들은 (1) 자신들의 슬픈 역사에 대해서 체험적
이지 못했으며, (2) 제 2 성전의 규모가 작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낙천
적 태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부르니'(루아)는 `소리치다'의
의미로서, 일이 잘 진행됨을 인하여 기쁨 중에 함성을 지르는 행동을 가리킨다(수 6:5
; 삼상 4:5; 대하 13:15; 시 95:1).

13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ㅇ본절은 노인들의 통곡하는 소리와 기뻐 외치는 소리가 함께 어올려져서 큰 소음으
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노인들의 숫자는 분명히 작았을 것이 틀림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슬픔에 겨운 탄식 소리가 기뻐 외치는 소리보다 훨씬 컸던
때문이었다(Rawlinson).
ㅇ백성... 멀리 들리므로 - 개역 성경 본문에 따라 이해하면 이 문구는 마치 이 다음
의 문구에 언급된 내용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본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백성'은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사람인 양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본
문구는 오히려 본절의 끝부분으로 옮겨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즉, 백성들의 탄식
과 기쁨의 함성이 섞여져서 멀리까지 들릴 만큼 그 소리가 매우 컸음을 시사하는 데에
본절의 주된 의도가 있는 것이다.
ㅇ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 여기의 `백성'은 본절의 초두에 나오는 `백성'
(하암)과 동일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아닌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회중들을 가리킨다.
즉, 탄식 소리와 기쁨의 함성 소리가 혼합된 나머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
어떤 것이 탄식 소리이며, 또 어떤 것이 기쁨의 함성인지를 분별치 못했다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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