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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역대하

[스크랩] 역대하 (28 : 1~27)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9:11
역대하 28장


1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ㅇ아하스 - 아하스의 공식적인 통치 기간은 B.C. 735년에서부터 B.C. 716년까지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움켜잡다'란 뜻을 지닌 '아하즈'란 단어에서 파생되었으
며,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디글랏 빌레셀의 연대표에는 '야우
하지'(Yauhazi)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아하스'라는 히브리어 이름을 앗수르 식으
로 표현해서 그런 것 같다.
ㅇ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 이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를 의뢰하며 통치자가 행
할 마땅한 도리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도모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그는 이방신을 섬기며, 이방 나라인 앗수르
의 제국적인 힘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16절).

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만들고

ㅇ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 이는 아하스가 유다를 제사장의 나라요,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나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역사적인 역할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북이스라엘 왕들이 저질렀던 동일한 오류와 배도
(背道)의 길로 나아갔음을 보여 준다.
ㅇ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 이것은 왕하 16장에는 없는 기록이다. 아하스는 유
다 열왕들 가운데 최초로 우상을 부어 만드는 범죄를 저질렀다(P.C. Barker). 이러한
아하스의 우상 숭배에 관해서는 사 2:8-18,20을 참조하라.

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ㅇ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 왕하 16장에서는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
는다. 한편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하였으며 오늘날의 '에르 라
바비'(er-Rababi)로 추정된다(Curtis). 여기에서 인간 희생 제사가 시행되었었다(렘
7:31).
ㅇ그 자녀를 불사르고 - 아하스가 자기 자녀를 희생 제사로 드린 사실로 보아 이방의
종교 의식이 도입되었음이 분명하다(왕하 16:3 주석 참조). 커티스(Curtis)는 이러한
인간 제물의 유형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고자 했던 것(창 22장)과 입다의
맹세(삿 11:30,34ff.)에서 찾고자 하나, 결과적으로 두 사건 모두 실제로 인간 희생
제사가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아하스 이전에는 이러한 제사가 언급된 적이 전혀 없
고, 아하스 이후에 므낫세가 인간 제사를 시행하였다(33:6;왕하 21:6). 그리고 유다
말기에도 적잖이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Curtis). 그런데 이러한 인간 제사는 여호
와께 대하여 악한 행위로 규정되었다(왕하 17:17;21:6;23:10;시 106:37,38;렘
7:31;19:5;겔 16:20,21;미 6:7). 그리고 모세 율법으로는 사형에 해당되는 가증한 일
이었다(레 20:1-5).

4 또 산당과 작은 산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한지라

ㅇ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 이는 열왕기와 예레미야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신
12:2;왕상 14:23;왕하 16:4;17:10;렘 2:20;3:6,13). 그리고 '푸른 나무'라는 표현은
단순히 나무의 색이 푸르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상태나 크기에 있어서 멋지고
우람한 나무를 의미한다(Curtis). 따라서, 이는 자연 숭배를 말하는 것이고, 역대기
기자는 이것이 하나님께 정죄되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
가 이러한 자연 숭배의 제례를 시행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적극적인 거역 행위였다.

5 그러므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육하였으니

ㅇ아람 왕 - 왕하 16:6에는 '아람 왕 르신'으로 나타나 있다.
ㅇ저희가 쳐서...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 왕하 16:5에는 르신과 베가가 아하스를 이
기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사실들을 볼 때 유다가 크게
패하였음이 분명하다. 이 두 사실을 서로 조화시켜 볼 때,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왕
궁이 있는 예루살렘까지는 점령하지 못하였지만(사 7:1), 엘랏을 비롯한(왕하 16:6)
많은 성읍들을 점령하고, 유다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을 것이다.
ㅇ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 본절에서 아람 왕과 북이스라엘 왕의 공격은 각
각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나라가 동맹하여 함께 공격한 것이다. 그러
나 공격의 방법이나 시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하나의 지휘 체제로 연합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지형상으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서로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동맹 맺기가 쉬웠을 것이다.

6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명을 죽였으며

ㅇ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 명을 죽였으며 - 역대기만이 이렇게 자세하게 살륙당한
자의 수를 밝히고 있는데, 혹자는 이것이 '미드라쉬'(Midrash)의 특징이라고 본다
(Curtis). 그러나 역대기 저자가 '하루 동안'이라는 기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것
이 여호와의 징벌로 인한 살륙임을 극명하게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한편 혹자는
120,000명을 120 '엘레프'(천)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 '엘레프'란 단어는
'특별히 훈련된 용사들', 즉 '모든 용감한 사람들'(all valiant men, NASB)이라고 해
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Payne). 따라서, 십 이만 명의 용사가 죽었다는 사실은 매우
타격적으로 중요한 전투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 주며, 패배를 예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ㅇ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 - 여기서 특별하게 '시그리'라는 용사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그 당시 대단한 위세를 떨쳤던 영웅으로서, 특별히 유다와의 전쟁에
서 큰 공훈을 세운 이스라엘의 장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ㅇ왕의 아들 마아세야 - 이는 아하스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
이다. 왜냐하면 20세에 왕위에 오른 아하스가 그의 즉위 1년에 발생한 이 전쟁에서 무
기를 들 만한 큰 아들을 두었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왕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왕이나 궁전에 속한 어떤 특별한
직책을 가리킨다는(18:25) 것이다(P.C.Barker). (2)아하스의 삼촌이나 형제라고 추측
하여 왕족에 해당된다고 본다(Keil, Curtis). 어쨌든 '왕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왕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거나, 왕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ㅇ궁내 대신 - 이에 대해서는 왕상 4:6;왕하 18:18을 참조하라.
ㅇ총리 대신 -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미쉬네 함멜렉'을 직역
하면 '왕의 바로 다음 사람'이다. 이 직책에 대하여 분명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어떤
중요한 일에 왕을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고관인 듯하다. 이처럼 궁궐의 중
요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것은 그당시 아하스 왕의 신변에 매우 위급한 상
황이 닥쳤음을 보여 준다.

8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중에서 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만명을 사로잡고 그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ㅇ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 만명을 사로잡고 - 페인(Payne)은 "이백 명의 알루프
(alluphs)와 그 아내와 자녀를 사로잡고"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한다(6절 주
석 참조). 이처럼 유다가 매우 중요한 전투력을 빼앗긴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공격
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예화 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다는 거의 황폐한 지
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선지자 오뎃의 표현 가운데(9절), "노기(怒氣)가
충천하여 살륙하고"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 군대의 잔인성을 알 수 있
다. 이스라엘이 유다에 대해서 이렇게 노를 품고 잔인하게 행한 이유는 짐작컨대 당시
르신과 베가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유다를 동맹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아하스가 이
를 거부하고 오히려 앗수르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카
일(Keil)은 이러한 북이스라엘 군대의 만행을 에브라임 사람들의 잔인성(왕하 15:16)
으로 설명하고 있다.

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저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를
진노하신고로 너희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고

ㅇ그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 이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서 여호
와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ㅇ오뎃 - 이 선지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15:1,8에 동일한 이름을 가
진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는 이 선지자 보다 약 130년 전의 인물로서 동일 인물은 아
니다.
ㅇ유다를 진노하신 고로 너희 손에 붙이셨거늘 -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징벌하
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가리킨다. 비록 이스라엘이 유다에 승리는 했
지만 선지자의 경고를 받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28:10,13).
ㅇ너희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 이는 북이스라엘 군대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온갖 잔인함으로 무자비하게 살륙을 행하였음을
지적하는 구절이다. 한편 극한 범죄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창 18:20,21과 스 9:6을
참조하라. 결국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무절제한 살륙을 자행함으로 인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다. 그리고 그
러한 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가 임박하였다는 것이다(11절).

10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를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ㅇ노예를 삼고자 - 유다 백성이 동족(同族)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으려는
북이스라엘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선지자 오뎃은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처럼 이스라엘이 오뎃에게 비난받는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신 것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너
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고 선지자가 반문했을 때, 그 말의 의미
는 죄인이 죄인을 징벌할 수 있는 심판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고자 했던 무리들에게 던진 예수님의 말씀과 흡사하다(요 8:1-11). (2)
동족을 노예로 삼으려 한 것은 엄연히 율법에 어긋난 행위였다는 사실이다. 즉, 이스
라엘에서는 동족을 학대하거나 노예로 삼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다(레 25:39,46;신
28:68). 물론 이방인의 습성으로 인해 여호와의 율법을 소홀히 여기는 그들에게 있어
서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는 것은 당연지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본다면, 역대기 저자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유다의 동족이며 형제
로 표현한 것은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일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 백성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엿볼 수 있다.

11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가 형제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ㅇ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 여기서 '임박하였느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론'은 '빨갛게 되다'는 뜻을 가진 동사 '하라'에서 온
말로서 부글부글 끓어서 넘칠 것 같은 급박함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하
나님께서는 진노받아 멸망하기에 마땅한 자들도 성급히 징계치 않으시는데, 그만큼 하
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극렬함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로 참으신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의 인내가 한
계에 도달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는 경계의 선포이다.

12 에브라임 자손의 두목 몇사람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를
막으며

ㅇ에브라임 자손의 두목 몇 사람 - 사건의 서술상 선지자 오뎃의 선포 후에(11절) 즉
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본절에 기록된 네 사람은 선지자 오뎃
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일어나...막기'까지 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북왕조가 이미 타락해 있다는 것
을 암시하고 있다(Williamson). 한편 역대기 저자는 분열 왕국 시대 이후 하나님의 계
시 역사에서 잠정적으로 사라졌던 북이스라엘 10지파를 부각시키고 있다. 즉, 에브라
임의 두목들의 행동을 인상적으로 기술하여 북이스라엘도 회개함으로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을 보여 준다. 따라서 중요한 전환기에 그들의 이름을 열거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사실로 보여진다.

13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 들이지 못하리라 너희의 경영하는
일이 우리로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ㅇ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트'
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 '발을 헛디디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율법을
오해하거나, 그릇되이 해석하여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쉐마트'는 어떤 인격체를 분노케 하여 발생
하는 감정상의 죄책 뿐만 아니라, 범죄가 드러나 유죄라고 판결받은 상태도 가리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유죄로 정
죄되기에 충분한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포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유다 백성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4 이에 병기를 가진 사람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

ㅇ이에 병기를 가진 사람이...온 회중 앞에 둔지라 - 포로들을 사마리아까지 호송해
온 이스라엘 병사들은 에브라임 자손의 두목들의 설득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베가의
군대가 설득을 받아들이고 포로와 노략물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형제애(8절) 때문
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Payne), '에브라임의 두목'(12절)이라는 권위가 크게 작용
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포로를 돌보고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15절)이라고 재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군사들은 포로들을
돌려 보내는 것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협조적이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러한 관용을 받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직 떠나지 않았음을 경험했을 것
이다.

15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중에서 옷을
취하여 벗은 자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우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는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 형제에게 돌린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 갔더라

ㅇ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쉐르 닉크부 브쉐모
트'는 '앞 구절에서 언급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일반적으로 '유명하거나, 특별히 어떤 일을 위해 지명되어 있던 자들'을 가리킨
다(31:19;대상 12:31;16:41). 따라서 여기에는 12절에서 이름이 열거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한 자들도 포함된다(Keil, Lange, Williamson). 한편 이들은 포로들
에게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먹이고 마시우며, 기름을 발라주고, 약한 자는 나귀
에 태워 여리고로 돌려 보냈다. 이와같이 원수에게 조차 사랑을 보이라는 율법(출
23:4;잠 24:17;25:21;마 5:44)은 깨어 있는 지도자들에 의해서 지켜졌던 것이다
(Payne).
ㅇ종려나무 성 - 이는 여리고를 지칭하는 별명(別名)으로(신 34:3;삿 1:16;3:13), 베
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었다(수 18:21).
ㅇ여리고에 이르러 그 형제에게 돌린 후에 - 당시 여리고는 북왕국의 영토이긴 했으
나, 남유다와 매우 인접해 있던 곳으로 보인다(Curtis). 그래서 여리고 성에서 포로들
을 유다 백성에게 돌려보내기가 손쉬웠을 것이다.

16 그 때에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ㅇ아하스 왕이...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 아하스는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의 침략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이미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블레
셋과 에돔까지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도움을 구하였다. 뿐만 아
니라, 아하스는 앗수르의 '왕들'(NIV 난하주)에게 굴복하였다. 이러한 아하스의 태도
를 선지자 이사야는 사악한 일이며 믿음 없는 태도라고 규정하고, 유다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사 7:4-7). 그러나 아하스는 이 말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
하는 대신 앗수르의 힘을 의뢰하려 하였다.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신실한 왕을 도
우신다고 기록하고 있다(14:11;18:31;25:8;26:7,15;32:8;대상 5:20). 그런데 본문에서
는 아하스가 신앙이 결핍되어 있음을 21절과 23절에서 보여주고 있다(Williamson). 한
편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합리적으로 이해하
고 있었던 결과로 여겨진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의 지휘아래 팽창 정책을 재
개(再開)하여 수리아와 팔레스틴의 군소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대제국을 이루었
고, 그 세력이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국제 정세로 볼 때, 아하스는
앗수르와 동맹을 맺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하스
의 이러한 판단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즉, 그는 제국을 형성
하고 있는 앗수르가 당연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것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이
다. 결국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판단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앗수르 군
대가 왔으나, 앗수르 왕은 도리어 유다를 협박하여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다(20,21
절).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인 북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였고(왕하 17:6), 유다 역시
산헤립의 군대에게 황폐케 되는 결과(왕하 18:13)을 초래했다(Payne).

17 이는 에돔 사람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ㅇ에돔 사람이 다시 와서 - 여기서 '다시 와서'라는 표현은 에돔의 이전 공격
(21:8ff.)을 암시하거나, '또 다른', '그 위에'의 뜻으로,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에 더하여 에돔 사람이 쳐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Curtis). 에돔은 유다를 침
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Keil, Payne) 보충적인 자료는
왕하 16: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에돔'
(BHS Apparatus, LXX, Vulgata;왕하 16:6 주석 참조)에 돌리고"라는 구절은 아람
왕 르신과 동맹한 에돔이 독자적으로 엘랏을 공격하였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왜냐하면
아람 왕 르신이 있던 다메섹은 엘랏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돔은 처음에는 약간의 아람 군대의 도움을 입어 그들의 영
토였던 엘랏을 회복하였고, 또다시 르신이 이끄는 아람 정규군과 합류하여 전면적인
공격을 하였다가 앗수르의 군대를 만나 아람 왕 르신이 죽게 되었을 것이다.

18 블레셋 사람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와 그 동네와 딤나와 그 동네와 김소와 그 동네를 취하고 거기
거하였으니

ㅇ벧세메스 - 대상 6:59 주석 참조.
ㅇ아얄론 - 대상 6:69 주석 참조.
ㅇ그데롯 - 이는 오늘날의 '카트라'(Katra)에 해당되며, '얍네'(Jobneh)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수 15:41과 비교해 보라.
ㅇ소고 - 11:7 주석 참조.
ㅇ딤나 - 이는 오늘날의 '티브네'(Tibne)이며, 벧세메스 근방에 위치해 있다(수
15:10).
ㅇ김소 - 오늘날의 '짐수'(Jimzu)이며, 릿다(Lydda)의 남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
한다. 한편, 유다가 에돔과 블레셋에게 이처럼 많은 영토를 빼앗기게 되었다는 명확한
기록은 역대기에서만 발견된다.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ㅇ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 역대기 저자는 특별한 경우에
유다 왕을 가리켜 이스라엘 왕이라 칭하기도 했다(11:3;12:6;19:8;21:2,4). 그러나 여
기서는 아하스의 행실을 비꼬기 위하여 우상으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의
미로 표현한 듯하다(Zockler, Keil). 또한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였다'는 진술은 유
다 왕으로서는 그처럼 여호와께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을 것이
라는 풍자적 표현이다.
ㅇ유다를 낮추심이라 - 여기서 '낮추심이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히케니아'
는 '굴복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카나'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따라서
이 구절에는 유다가 그들의 속국이었던 에돔에게 굴복하게 된 것은 매우 큰 수치이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20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하였더라

ㅇ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하였더라 - '군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라르'
는 적대적인 감정으로 억압하는 것을 뜻한다. 아하스 왕의 요청에 의하여 유다
에 온 디글랏 빌레셀은 구원자나 조력자라기 보다는 제국의 힘을 배경으로 약소국의
소유물과 재물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국주의적 습성을 가지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따라서 돕기 위해 불려온 앗수르 군대는 압제자로 변하여, 유다 나라의 중
요한 재물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열왕기 저자는 앗수르의 협박에 의한 탈취에 대
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사 7:17ff.) 유다가 앗수르
에 의하여 적잖이 고통을 받은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1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유익이 없었더라

ㅇ아하스가...취하여 - 여기서 '취하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할라크'는
'약탈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Vulgata, Lange). 따라서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뇌
물을 주기 위하여 성전과 왕궁의 재물을 탈취하다시피 모았을 뿐만 아니라, 왕궁에 거
처하는 고관들의 재물까지도 빼앗아 앗수르 왕에게 건네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
하여 그는 권세의 상징인 앗수르 왕에게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ㅇ유익이 없었더라 - 이것은 디글랏 빌레셀의 압력이 계속되었음을 뜻한다(Curtis).
그런데 왕하 16:9에 따르면, 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요청을 받고 다메섹을 파괴하였을
뿐만 아니라, 르신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유다는 아람의 공격으로부터 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제적으로 앗수르의 큰 도움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
대기 저자는 아무런 유익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이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을 공격한 것은 비록 아하스의 요
청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하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앗수르 제국의 세
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하스의 요청은 앗
수르가 아람을 공략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 준 것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나서
앗수르는 유다를 침입하고 있는 에돔과 블레셋의 공격 같은 국지전(局地戰)에 대해서
는 소홀히 하면서, 오히려 유다에 대해서 계속 협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한 것이다. 이
처럼 앗수르가 아하스를 협박했다는 역사적 증거로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1)디
글랏 빌레셀의 비문에 보면, 앗수르 왕은 유다 왕 아하스에게서 뿐만 아니라 블레셋과
에돔에게서도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Zockler). 이 사실은 아하스가 앗수르에
게 도움을 구한 결과, 유다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국가들이 제국주의적 착취에 시달리
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2)왕하 16:18에는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인하여 낭실을 여호
와의 전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낭실은 아하스가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에 사용했던 통로이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자 이 통로가 전략적으로 아하스 왕 자신을 잡는 데 사용될까 두려워 낭
실을 성전 안으로 옮기게 되었다(왕하 16:18 주석 참조).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디글랏 빌레셀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루살렘을 차지하고자 했으며, 아하스는 앗수
르의 무력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Keil).

22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ㅇ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 여기서 '곤고할 때'란 아하스가 디글랏 빌
레셀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를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에 있었던 모든 외세의 침
공시를 가리킨다.

23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ㅇ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 왕하 16:10에 따르면, 아하스는 당시 다메
섹을 장악하고 있던 디글랏 빌레셀을 접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갔다(왕하 16:10 주
석 참조). 그리고 거기에서 디글랏 빌레셀이 숭배하던 우상을 본따서 제사장 우리야가
단을 쌓았고,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유다로 돌아와 이 우상에 제사하였다. 한편 본문에
서는 '다메섹의 신들'을 '아람 열왕의 신들'과 동일시하는 반면에 바네스(Barnes,
Cambridge Bible)는 이를 '앗수르 열왕의 신들'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B.C. 732년에 앗수르에 의해 다메섹이 멸망했기 때문에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를 점령했던(5절) 기간은 매우 짧다. 따라서 '앗수르의 열왕'이라는 표현이 더 적
합하다고 할 수 있다(Curtis).

24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ㅇ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 왕하 16:17에 따르면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
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여호와의 전 앞에 있던 놋단도 옮기고, 다메섹 단의
형식을 따라 만든 큰 단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왕하 16:14,15). 이러한 그의 이방
신 숭배는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종교적으로 보완하려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다른 신의 어
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전면적으로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
하였고, 이러한 종교 정책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냄으로써 호
감을 얻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ㅇ여호와의 전(殿) 문들을 닫고 - 아하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성전으로 통하는 낭실
(왕하 16:18)을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21절 주석 참조), 우상 숭배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는 더 이상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가 시행되지 않았다. 한편 여기서의
'여호와의 전'은 성전 건물 전체를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주요한 장소,
즉 성소와 지성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성소와 지성소에서의 여호와 경배는 중단되었지
만, 성전 안에 있는 제단에서는 이방신에 대한 제사가 계속 치러 졌음을 알 수 있다
(Keil). 이처럼 닫혀진 문은 히스기야 때에 다시 열린다(29:7 참조).

25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ㅇ산당을 세워 - 우상 숭배하는 왕들에 의하여 산당은 종종 혼합주의의 본산지가 되
었다. 본문에서도 아하스는 다른 신에게 분향하기 위해 거국적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
켰는데 이로써 우리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26 아하스의 이 외의 시종 사적과 모든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ㅇ유다와 이스라엘의 열왕기 - 이와 병행 구절인 왕하 16:19에는 '유다 왕 역대지략'
이라고 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추가되는 것은 역대기 기자의 일반적인 경향이다(역
대기 서론 참조).

27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열왕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성에 장사하였더라 그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그 열조와 함께 자매 - 이사야 선지자가 '블레셋을 치던 막대기'라고 표현한(사
14:28,29)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죽은 해에 아하스도 죽었다(Payne). 한편 그 열조와
'함께' 잤다는 표현은 아하스가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과 대조되고 있
다(Payne).
ㅇ열왕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 자신의 사악함 때문에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
한 왕들 중에는 여호람(21:10), 요아스(24:25) 등이 있다. 그리고 웃시야도 자신의 죄
로 인하여 발병한 문둥병 때문에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했다(26:23). 므낫세의 죽음
도 참조하라(33:20). 한편, 역대기 저자는 아하스 역시 그의 배교(背敎) 때문에 열왕
의 묘실에 들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는 듯하다(Williamson). 이와같이 역대기 저자는
왕들의 선악(善惡)간의 판단을 그의 마지막 죽음에 관한 묘사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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