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역대하

[스크랩] 역대하 (26 : 1~2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9:10
역대하 26장


1 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세라

ㅇ유다 온 백성이...왕을 삼으니 - 본절에서 '유다 온 백성'이 왕위 계승 사건의 주
체로 등장한 것이 좀 어색하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유다 온 백성'은 아마샤에 대
하여 모반(謨叛)을 일으킨 무리들을 지칭하며(25:27), 역대기 기자는 웃시야의 즉위가
모든 백성의 환호를 받았음을 시사해 주기 위하여 이같이 기록하였을 것이다. 일반적
으로 왕위 계승 문제를 백성들이 결정짓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대기에는 직접적으로
(23장), 또는 간접적으로 백성들이 왕위 계승에 관여하였음이 기록되어 있고 백성들이
왕위 계승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태도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22:1;23:21;왕하
11:20).
ㅇ웃시야 - 열왕기에서는 주로 '아사랴'(왕하 14:21)로 쓰고 있다. 이처럼 두 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통상 웃시야는 공식적인
왕명으로, '아사랴'는 본명으로 쓰였다고 생각한다(Keil, Barker). 솔로몬의 경우에도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인 왕명이 었으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여디디야'라고
불리웠다(삼하 12:24,25).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하 14:21 주석을 참조하
라.

2 왕이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ㅇ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 '엘랏'(왕하 14:22)이라고도 불리우는 엘롯은
다윗 시대 이래로 유다에 복속된 에돔 땅이었다(8:17). 이는 여호람 때에 에돔의 반란
으로 잃었다가(21:8-10), 웃시야의 부친 아마샤에 의해 다시 찾은 땅이다(25:14). 그
리고 유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로 이 땅은 거의 방치 상태에 있다가 웃
시야에 의해 비로소 건축되고 유다 성읍의 일부가 된 것이다.

3 웃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륙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아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ㅇ예루살렘에서 오십 이 년을 치리하니라 - 웃시야가 통치한 기간은 B.C.791년부터
739년까지이다(Payne, Wood). 그의 부친 아마샤가 24년간 웃시야와 함께 통치했고, 웃
시야는 그의 아들과 함께 12년을 통치했다(Wood). 따라서, 웃시야가 단독으로 통치했
던 기간은 16년 정도가 된다.
ㅇ여골리아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콜르야'는 케레(Qere:읽히
는 것)로서, 많은 사본들과 왕하 15:2에서도 동일하다. 케티브(Ketib:쓰여지는 것)는
모음만 바꾸어서 '예킬르야'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개역 성경 왕하 15:2에서의 '여골
리야'와 다르게 '여골리야'로 표기된 것은 번역상의 오류인 것같다. 그리고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강하게 만드신다'이다.

4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ㅇ정직히 행하며 - 왕하 15:4에서는 그가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山堂)은 제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고 기록하
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웃시야의 실수들을 후반에 기록하여 둠으로써(16절),
웃시야가 전반적으로 선한 왕이었음을 강조하는 듯하다.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ㅇ하나님의 묵시(黙示)를 밝히 아는 스가랴 - 이 선지자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가 없으며, 단지 본절을 근거로 하여 그가 웃시야 왕의 조언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묵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르오트'가 어떤 자질이나 활
동만을 의미한다고 킴취(Kimchi)는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비르아트'
에 대한 철자법 실수로 보인다. 따라서, 70인역과 다른 고대 역본들은 본절을 해석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교훈을 주는자 스가랴'로 해석한다(Keil).

6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성과 야브네성과 아스돗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ㅇ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 웃시야는 여호람 때에 유다를 침공하며 예루살렘을 약탈하
였던(21:16,17)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 출전하였고, 이 전쟁에서
블레셋의 주요 성읍 가드, 야브네, 아스돗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아스돗 땅과 블레
셋 땅 여러 지역에 새롭게 성읍을 건축하였는데, 이는 웃시야가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
하였음을 보여준다(Keil).
ㅇ가드성 - 이 성은 본래 블레셋의 주요한 다섯 성읍들 가운데 하나로(삼상 6:17),
초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대상 7:21).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30여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기름진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르호보암 때에는 가드가 전략적으로
도 중요하게 취급되었다(11:8). 하지만, 이 성의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Payne).
ㅇ야브네 - 성경에서는 단지 이곳에서만 언급되어 있으며, 수 15:11의 얍느엘이 동일
지명인 것으로 추측된다(Crutis). 그리고 오늘날은 '예브나'(Yebna)로 알려져 있으며
욥바의 남쪽 19.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헬라어 지명은 '얌니아'(Jamnia)로 알려져
있는데 유대 역사상 마카비 시대 이후에 부각되어 나타난다(마카비상 4:15). 또한 예
루살렘 몰락후(A.D. 70년) 산헤드린이 이곳으로 옮겨옴으로써 유대인의 종교적 민족적
중심지가 되었다(Jewish Encyclopedia).
ㅇ아스돗성 - 이는 욥바와 가사 중간에 있는 유명한 블레셋 성읍으로 오늘날에는 '에
스돗'(Esdud)으로 알려져 있다. 해안에서 4.8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해안 도시로
(Curtis) 개역 성경의 행 8:40에는 '아소도'로 표기되어 있다.
ㅇ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 웃시야는 이 성읍들을 정복
한 후에 이 지역을 다스리고 또 더 나아가 이 지역에 성읍들을 건축하여 전초 기지로
삼았는데, 이는 블레셋의 다른 지역에서 애굽으로 통하는 길을 차단하고, 그 통로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Barker).

7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ㅇ구르바알 - 이곳의 위치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혹자는 이 문자의
판독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Curtis). 아람어 성경에는 이 지명이 '게
랄'(Gerar)로 번역되어 있고 70인역에는 에돔 족속의 수도인 '페트라'(Petra)로 번역
되어 있다. 그러나 '페트라'보다는 오히려 탈무드가 제시한 대로 '게랄'(그랄, 창
20:1)이라 할 수 있다(Keil, Zockler). 한편, '구르바알'의 뜻은 '바알의 거처'인데
이곳에 바알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인 것으로 추측된다(Barker).
ㅇ마온 사람 - 이는 사해의 남동쪽, 에돔의 동쪽 변방에 거주했던 사람들로서(대상
4:41), 세일 산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세일 산 사람과 동일시 되는 경우
도 많았다(20:1).

8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ㅇ암몬 사람이...조공(朝貢)을 바치매 - 본절과 7절의 문맥은 서로 연관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웃시야가 정복한 지역은 블레셋과 아라비아와 마온인데 조공을
바친 족속은 그와 반대편인 요단강 동편에 있는 암몬 족속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
다. 70인역에서는 암몬 대신 '마온'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것을 인정하는 학자들도 많
다(Benzinger, Zockler).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절이 그대로, '암몬'을 가리킨다는
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많은데(Keil, Kittel), 그들은 웃시야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암
몬 족속까지 정복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10절에 '평지'(mishor)가 나오는데 이곳은 본래 르우벤 지파의 땅으로서 이스라엘이
모압과 암몬에게 빼앗긴 것을 웃시야가 다시 정복했다는 것이다. 위의 두 견해 중 '암
몬'을 '마온'으로 보는 전자의 견해가 옳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1)문맥의 흐
름상 '마온'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2)암몬과의 싸움은 후에 요담에 의해서 치
러지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27:5).
ㅇ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 이것은 웃시야의 세력과 영향력이 얼마나 확대되
었는가를 나타내 보여 준다.

9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ㅇ본절은 웃시야가 나라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성채의 벽과 문들에 망대를 세
워 예루살렘을 더욱 요새화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ㅇ성 모퉁이 문 - 이는 성벽의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문이다(25:23).
ㅇ골짜기 문 - 이는 일반적으로 성의 서쪽 야파(Jaffa)문이라고 본다(Robinson,
Keil). 그러나 성의 남서쪽 모퉁이 문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느 2:13;3:13;Guthe,
Mitdell).
ㅇ성굽이 - 이것은 '모퉁이'(corner) 또는 '모서리들'(angles)을 가리키며 의미상 성
벽이 굽어져 있는 여러 곳을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Benzinger), 여기서는 특
정한 한 지역을 가리키는 듯하며, 동북쪽 모퉁이일 것으로 보인다(BDB). 이에 대한 보
다 자세한 내용은 느 3:19,20,25 주석을 참조하라.

10 또 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를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더라

ㅇ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 여기서 '거친 땅'은 사해 서편에 있는 유다 광야를 가
리키며, 망대가 세워진 곳은 목초지가 있는 곳으로 추측된다. 웃시야 왕은 국가의 주
요 소득원이 되는 가축을 주위 유목민들의 강탈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망대들을 이곳에
세웠는데, 이 망대는 전시(戰時)에 피난처로도 용이하게 사용되었다.
ㅇ물 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 '물 웅덩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로트'
는 '샘'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사람과 동물들을 위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물저장 탱크
를 가리키는 듯하다(Curtis).
ㅇ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 여기서 평야(Shephelah)는 지중해 근방에
있는 저지대를 가리키며(1:15;9:27;대상 27:28) 평지(mishor)는 아르논과 요단 동편의
헤스논 사이에 있는 평평한 지역을 가리킨다(신 3:10;4:43;수 13:9;렘 48:8,21). 그런
데 이 평지는 8절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암몬 족속의 정복을 통해서 얻은 것이라고 단
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웃시야가 암몬 족속이 차지한 이 땅의 많은 부분을 빼앗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본절의 '평지'가 요단 동편 땅 만을 지칭하는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Curtis).
ㅇ여러 산과 좋은 밭 - 여기서 '좋은 밭'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카르멜'은
고유 명사로 '갈멜 산'을 가리키기도 하고(수 12:22;암 1:2), 보통 명사로 '비옥한
땅'을 뜻하기도 하는데(사 29:17;32:15), 여기서는 '비옥한 땅'을 뜻한다(Zockler).
웃시야 왕은 산과 밭에 농사 짓기를 크게 장려하였는데, 이같이 강력한 중농 정책(重
農政策)을 실시한 왕을 다윗 가계의 왕들 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1 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ㅇ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 이 군사를 뽑는 일은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임무였으나, 이 군대의 지휘는 하나냐에게 맡겨졌다.

12 족장의 총수가 이천 육백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ㅇ족장 - 유다나 이스라엘의 군대 편성은 가계별로 이루어졌으며, 한 가계의 지휘는
족장의 손에 맡겨졌다(대상 9:33).
ㅇ모두 큰 용사요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기보레 하일'
은 '용감한 용사', '영웅'을 뜻하기도 하지만 재산이 많아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
키기도 한다. 그런데 족장이 단순히 용감한 용사를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여
기서는 한 가계(家系) 내(內)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Davidson, Curtis).

13 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 오백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

ㅇ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 오백명이라 - 족장의 수는 2600명이고 군대 수는
307,500명이었다. 이것은 아마샤의 군대보다 7,500명이 더 많은 수이다(25:5).

14 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예비하고

ㅇ방패와 창 - 14:8;17:17;대상 5:18을 참조하라.
ㅇ투구 - 겔 27:10;38:5 등에서 창, 방패와 함께 언급되어진다(삼상 17:5;사 59:17;
렘 46:4).
ㅇ갑옷 - 18:33과 삼상 17:5,38;왕상 22:34;느 4:16등을 참조하라.
ㅇ활과 물매 돌 - 주로 베냐민 사람들이 사용하던 무기였으며 이들은 간편한 차림으
로 전쟁에 참여했다(14:8;삿 20:16;대상 12:2).

15 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ㅇ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創作)하여 - 이는 분명히 새로운 형태의 무기가 기술
자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가리킨다. 본절의 설명에 의하면, 이 무기는 망대나 성곽 위
에 세워진 일종의 투석기(投石機)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이전에 이러
한 무기가 사용된 적이 없으며 성경에도 그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당시 애굽이나 앗
수르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비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혹자는 이 무기가
유다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무기를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이 보여주는 대로, 분명히 유다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무기였을 것이다. 벤징거
(Benzinger)는 이 무기들이 주로 방어용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한다.
ㅇ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 이렇게 웃시야가 군대를 강하게 하고 군
사 시설을 잘 정비함으로 인하여 이후 유다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예로서
(1)히스기야가 블레셋을 크게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웃시야의 강력한 군사 정책의 결
과였다. (2)앗수르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을 때, 히스기야가 잘 막아낼 수 있었던것
은 웃시야에 의해 만들어진 강력한 방어 시설 덕택이었다. (3)이사야의 예언들을 살펴
보면, 아하스 당시에 유다가 상당히 번영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 또한 웃시야
의 영향이다(Curtis). 한편, 역대기 기자는 웃시야가 이루어 놓은 이러한 업적의 결과
들이 여호와의 '기이한 도우심'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을 전제로 덧붙이고 있다.

16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ㅇ저가 강성하여지매 - 본절을 유도하는 접속사 '우'는 전(前)절과 역접 관계로
'그러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KJV, NIV, RSV, NEB, JB). 이것은 지금까지의 웃시야의
선정과는 반대로 이제부터 교만하여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삶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낸
다. 그리고 그러한 교만한 삶은 군사적, 경제적 권력을 얻게 되면서 시작된다. 따라
서, 그는 그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종교까지 자신의 권력에 통합시키려 했던 것 같다.
ㅇ향단(香壇)에 분향하려 한지라 - 이러한 종교적 예배 행위는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
졌었고, 아론의 자손들, 즉 제사장들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출 30:1-10;민
16:40;18: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시야가 향단에 분향하려 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왕직과 제사장직을 겸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당시 애굽이나 근
동의 왕들은 왕직과 대제사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웃시야가 보기에는 그것이 중앙집권
을 강화하고 나라를 확고하게 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웃시야
는 두 직분을 겸함으로써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를 이방의 나라와 같이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2)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대왕이 되려는 야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는 이 두 왕들처럼 대제사장 직분까지도 행함으로써 스스로 위대한 왕이 되고자 했
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옳다면 그는 다윗과 솔로몬의 대제사장직 사역을 잘못 이해하
였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다윗과 솔로몬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특별한 사역에 따라
성전 봉헌 때의 봉헌 기도, 제사장의 반차 제정, 희생제 등과 같은 일들을 행하였을
뿐 분향이나 지성소의 출입과 같은 제사장들의 고유한 업무를 침해한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이러한 오해도 역시 그의 교만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ㅇ제사장 아사랴 - 아사랴에 관해서는 본문 이외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한편 그
가 제사장이었는지 대제사장이었는지는 분명히 단정지을 수 없으나, 20절에 '대제사
장'이란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호야다의 경우와 같이(24:6 주석 참조) 그의 역할
상 '대제사장'이라는 존칭이 주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Zockler). 한편 카일(Keil)은
그가 대상 6:36에 언급된 아사랴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나, 그는 다윗 시대의 제사
장 헤만(대상 6:33)의 조상이므로 결코 동일 인물이 될 수 없다.
ㅇ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 - 제사장 아사랴가 이끌고 온 제사장 80인은
모두 용맹한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용맹한'(하일)의 의미는 제사장 가운데
'신실한 자', '세력있는자', '유지'(有志)를 가리킨다. 따라서 아사랴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대표자들을 대동하여 웃시야 왕의 월권(越權) 행위를 막고자 했음이 분명
하다.

18 웃시야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ㅇ웃시야 왕을 막아 - 여기서 '막아'에 해당하는 히브리 본문의 원뜻은 '웃시야의 얼
굴을 대면하고 섰다'이다. 즉, 이것은 단순한 경고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저지하였음을 가리킨다.
ㅇ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 이는 단순히 웃시야의 명예와 영광이 더 이상
하나님에 의해 증대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Zockler)가 아니라, 웃시야의 모든 행위
가 여호와에게서 옳다 인정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ㅇ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문둥병이 발한지라 - 제사장들이 율법의 규례를 상기
시키면서 죄악을 지적하였으나, 웃시야는 도리어 분노하면서 분향하는 일을 계속하려
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문둥병에 결리고 말았다. 이처럼 제사장의 권위에 도
전하고 또한 성전을 모독하다가 비침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로는 나답과 아비후(출
6:23;레 10:1,2), 고라 자손들(민 16:1-3,28-35), 웃사(삼하 6:6,7)등이 있다.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ㅇ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 문둥병은 웃시야를 전에서 몰아낼 가장 확실한 구실이 되
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는 항상 성 밖으로 격리 수용시켜서,
성전이 든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든지 일체 접근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레
13:46).

21 웃시야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ㅇ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 문둥병자가 된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왕의 직분을 행
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따로 특별히 마련된 별궁에 격리 수용되어 있었다. 여기
서 '별궁'(베트 하하프쉬트)에 해당하는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병행 구절인 왕하 15:5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가 이처럼 별궁에 격리 수용된 것은 더
이상 여호와의 전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2 이 외에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ㅇ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 - 선지자 이사야(사 1:1;6:1)는 주로 히스기야 왕 시
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웃시야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주로 전승이나 자료를 통해 썼
을 것이다(Barker). 혹자는 이 기록이 이사야의 독립적인 한 작품이 아니라 '이스라엘
과 유다 열왕기'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Bertheau, Zockler).

23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저는 문둥이라 하여...장사하니라 - 병행 구절인 왕하 15:7에는 단순히 그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본절에서
는 보다 상세하게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그가 문둥병자였기 때문에 왕의 가족 묘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따로 그 묘실 곁에 만든 묘실에 장사되었음을 가리킬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장사는
이전의 여호람(21:20)이나 요아스(24:25)의 경우처럼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문둥이였기 때문에 다른 열왕들과는 달리 '그곁에' 묻히게 되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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