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2): 족보, 다윗 이야기(대상 1-29장) | ||||||||||||||||||||
1.1 족보의 기록 목적 역대기는 나라를 잃고 이방인의 포로가 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 그들은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 살면서 "아직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가?"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기 위해서 역대기를 기록했다. 그런데 역대기는 족보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 왜 역대기 기자는 그의 책을 족보로 시작하고 있을까? 역대기 기자는 인간 창조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이 이방에 포로가 되었다가 다시 회복될 때까지를 족보로 기록하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담 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들이 포로가 되었다가 회복된 지금도 여전히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족보는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대답하고 있는 셈이다. 1.2 족보의 서론(1:1-2:2) 역대기 기자는 족보의 서론부분에서 아담부터 시작해서 야곱까지 이르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는 거의 대부분 창세기에서 끌어온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족보의 특성을 성경 외의 자료와 비교해 보면 매우 특별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이 족보에는 서론이 없으며, 둘째로 나오는 두 단락에는 친족 관계를 드러내는 용어가 없이 이름만 나열되어 있다(1-4절의 13명의 이름과 24-27절의 10명의 이름) . 그러나 다른 단락에는 친족 관계를 드러내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셋째로 분할족보(여러 가계를 추적하는 족보)와 직선족보(한 가계만을 추적하는 족보)가 동시에 포한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와 동일한 구조를 앗시리아의 왕의 목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족보 역시 서론이 없다. 그리고 서기관이 서판에 줄을 그어 4칸으로 만든 다음, 두 칸에는 친족관계를 드러내는 용어 없이 이름만 나열하고, 나머지 두 칸에는 친족 용어가 나타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앗시리아의 왕의 족보에는 이러한 형식이 서로 교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족보에는 또한 분할족보와 직선족보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역대기 기자가 당시 고대 근동 아시아에 잘 알려진 문예 패턴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족보의 서론인 이 단락은 아담부터 야곱까지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을 통해서 인간을 어떻게 다루어오셨는지를 파노라마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역대기를 읽는 독자들이 이미 창세기에 나오는 기본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배제하고 있다. 또 역대기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사역을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료를 배열하고 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등과 같은 중요한 인물들은 전략적 위치에 배치시키고 있다. 아담부터 이스라엘에 이르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인물이 매 세대마다 가장 나중에 나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 가장 나중에 나와서 우리의 눈길을 끌게 하고 있다. 야벳(5-7)과 함(8-16)의 족보가 셈(17-23)의 족보보다 먼저 나오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첩의 아들인 이스마엘(29-31)과 그두라의 아들들(32-33)이 이삭(34)보다 먼저 나온다. 이것은 에서(1;35-37)가 야곱(2-장)보다 먼저 나오는 데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이와 같이 역대기의 족보에서는 매 세대마다 택한 자의 족보가 나중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름들을 묶어서 천을 만드는 숨겨진 줄은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람이었다.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을 통해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역대기 기자는 모든 열방을 언급함으로 열방이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열방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열방도 문화 명령이나 언약과 관계되어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역대기 기자 당시의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속국 신세를 면하지 못한 초라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이스르엘의 역사를 창조부터 포로후기까지 지소되는 연장선상에 놓고 있다. 다른 많은 계보들이 끊어진 데 반해 이스라엘의 족보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단지 포로 전 이스라엘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열방 전체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며, 결국 모든 열방은 아담이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열방에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하는 임무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과연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역대기 기자가 기록한 야곱의 후손들의 족보에서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야곱의 후손들의 족보를 다루고 있는 이 단락은 매우 복잡하다. 정확한 배열의 원칙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파 배열이 탁월성 순서인 것 같은 부분도 있고, 지형직인 순서로 보이는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전혀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더욱이 단과 스불론의 족보는 아예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납달리도 오직 한 줄만이 할애되어 있다(대상 7:13). 그러나 배열의 원리가 무엇이든지 최소한 유다와 베먀민 지파가 이 단락의 처음과 끝을 차지하고 있는 점과 레위 지파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도표를 참조하라.
위의 도표에서 우리는 유다. 베냐민, 레위의 세 지파의 족보가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 구성에 따라 역대기 저자가 이 세 지파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유다와 베냐민은 처음과 끝에 나오면서 중요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남방 유다 왕국의 두 지파인 유다(시므온 포함)와 베냐민이 주전 587년의 포로됨을 넘어서까지 오랫 동안 가나안 땅에서 살아남은 지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두 지파는 가장 취약한 지역인 요단 동쪽에 살았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와 북방의 다른 지파들(잇사갈, 납달리, 므낫세 반, 에브라임, 아셀)을 감싸고 있으며, 이스라엘 지파 체제의 영원한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암시하고 있다(물론 페르시아의 속국 신세이기에 실제적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이념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레위 지파가 내용상 그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다. 역대기의 관점에서 보면 레위 지파의 역할은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 있었다. 역대기 기자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일은 레위인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레위인들은 성소의 제단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했으며(6:31-53),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흩어진 48개 레위인의 성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감당했다(6:54-81).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의무는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레위인들의 사역을 통해서 실행에 옮겨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체제가 드러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앙에 서 있으면서도, 온 땅에 흩어져 살아가는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뭉친 공동체의 모습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공동체는 좀더 궁극적인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의무를 잘 감당할 필요가 있었다. 레위인들은 이러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포로 후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의무를 잘 감당한 후에 조용히 그 회복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러한 점에서 족보는 포로 후 공동체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족보 단락을 보면 아론과 다윗의 두 족보만(2:10-17, 3:1-24, 6:1-15) 족장 시대부터 포로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이 두 가문과 그들의 사역이 이스라엘 미래 생존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이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 사역과 유다 지파가 건설한 성전의 속죄 기능은 포로 후기 공동체의 생존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족보의 목적은 창조와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을 거쳐서 이제 다윗과 레위 지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단조롭고 불필요해 보이는 족보 단락이 역대기의 서론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다윗 왕국(10-29장) 2.1 다윗 왕권으로 시작하는 이유 역대기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중심 단락인 역대상 10장-역대하 9장은 다윗과(대상 10-29장) 솔로몬의 통치(대하 1-9장)을 다루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아브라함의 언약, 출애굽, 가나안 정복, 사사시대를 생략하고 바로 다윗에게 왕권이 넘어간 지점부터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기 기자가 다윗 왕권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이스라엘은 영원해 보이는 제국들의 통치 아래에서 초라한 속국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역대기 기자는 다윗 왕권을 통해서 이스라엘 안에 진정한 왕권과 권위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역대상 10-12장에서는 어떻게 이스라엘에 왕국에 세워지게 되었는지를 살피면서, 포로 후기 공동체에 왕국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사울에서 다윗으로 왕권이 넘어가는 부분을 기록한 역대상 10장은 단순한 다윗 이야기의 서곡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역대기뿐 아니라, 전 성경 역사에 매우 중요한 기초가 놓여지는 연결고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조를 하사하겠다고 약속하신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언약이 성취되는 것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였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윗에게 돌린 사건(대상 10;14)은 남북 왕국의 분열(대하 10;15)이나, 바벨론 포로 사건보다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이것은 다윗 언약을 중심으로 해서 동심구조로 배치된 다윗의 통치 기사(대상 10-29장)를 볼 때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A 사울-다윗 왕위 계승(10장)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다윗의 통치 기사는 A단락(사울-다윗 왕위 계승)과 A'단락(다윗-솔로몬 왕위 계승)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윗의 통치 기사를 기록한 목적이 왕권이 어떻게 사울의 가문에서 다윗의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다윗이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는가? 다윗은 군사 쿠테타나 혁명을 통해서 왕이 된 것이 아니었다.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다윗이 누구의 지지를 받고 왕으로 통치하게 되었는지를 언급하는 단락이 B와 B'단락이다. 무엇보다 B단락인 대상 11-12장은 다윗의 군사력과지지 기반이 어떻게 증강되어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도 동심 구조가 사용되고 있다. a 헤브론에서 다윗의 즉위식(11:1-9) 우선 처음과 끝(a-a')은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그 중앙에는 다윗의 폭 넓은 지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지형학적으로 유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파들(므낫세, 갓)이 어떻게 다윗을 옹호했으며, 전에 사울에게 맹세했던 이들이 어떻게 다윗 편으로 돌아섰는지를 보여준다. 나레이터는 다윗이 초창기에 요새(d-d')에 있을 때부터 이미 군사력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시글락(c-c')을 거쳐 마침내 헤브론에서(b-b')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다윗의 성공의 비결의 전부는 아니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지하고 있다는 예언이 등장함으로써(12:18) 다윗의 강한 군사력의 원동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찌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대상 12:18)." 역대상 11-12장에서는 다윗과 백성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과 다윗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이 통일성을 드러낸 것은 포로 후기 이스라엘에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시 큰 구조로 돌아가보자. 백성들과 군대의 지지는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BB')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를 원했다.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사건은 C단락(대상 13-16장)을 형성한다. 다윗은 "법궤 앞에서 여호와께 물으면서" 통치하기 위해서 법궤를 가져오길 원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대상 13:3)...." 이스라엘의 왕에게 있어서 "법궤 앞에서 여호와께 묻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중요한 특징이었다. 역대기 기자는 여기에서 다윗의 통치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인간이기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었고, 그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물을 수도 없게 되었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하는 죄를 범하고 나서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묻지 못했다(대상 21:30). 따라서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로 다윗을 용서하지 않으시면, 다윗은 회복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쌓으라고 지시하셨다. 다윗은 그 명령대로 속히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번재와 화목제사를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은 즉시 하늘에서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서 응답하시고, 징계의 칼을 거두게 하셨다. 이러한 이유로 기브온 산당이 아닌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전이 되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는 중심 장소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에 기도처인 동시에 제사를 드리는 장소인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전을 지을 준비를 하는 C'단락(21-26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되고 있다. 속죄의 장소로 성전을 허락하시는 것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큰 은혜의 선물이었다. 이와 같이 C(대상 13-16장)와 C'(21-26장)단락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은혜를 배풀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장소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 죄를 용서하는 성전을 그 곳에 건축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D(대상 17장)와 D'(18-20장)단락에 담겨있다. 물론 다윗이 먼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먼저 다윗의 집을 견고하게 하시고, 그 후에 성전을 짓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먼저 다윗의 집을 견고하게 하실 것을 약속해주셨다(D). 그리고 실제로 다윗의 나라는 정복활동을 통해 견고하게 되었다(D'; 대상 18-20장). 이렇게 보면 다윗의 통치 기사는 다윗의 언약과 다윗 왕국의 견고함이라는 두 단락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다윗의 언약을 담고 있는 D단락(대상 17장)은 다윗 통치 단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대상 17:3-15)은 (대하 7:11-22)과 함께 역대기 전체의 중심 축을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하나님 말씀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집"에 관해 약속을 하신다. 여기에서 언급된 "집"은 왕조와 성전이라는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그의 집, 즉 그의 왕조를 세우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집, 즉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대상 17장)은 본질적으로 (삼하 7장)과 유사하다. (대상 17장)은 (삼하 7장)에 있는 작은 어구들을 생략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의 목적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은 생략했기 때문이다.
첫째, 징계가 언급되어 있는 (삼하 7장)과는 달리 (대상 17장)은 징계 구절이 생략되어 무조건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윗의언약은 사무엘-열왕기보다 역대기에서 훨씬 현저하게 중요성을 띠고 나타난다. 이것은 (대상 22:6-10, 28:2-10, 대하 6:4-11, 15-17, 7:17-18, 13:5,8, 21:7, 23:3) 등에 사무엘-열왕기의 병행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 다윗 언약의 요소들이 확장되어 나타나고 있는 점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특히 (대상 17장)에는 "영원히"라는 말이 8번이나 증장하면서 다윗 언약의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왕조의 영원성도 선언되고 있다(대하 13:5, 21:7, 23:3). 둘째, "아들들"이라고 복수로 바꿈으로써 다윗의 계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비록 포로가 되는 시련을 거쳤고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진행 중이었으며,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다윗의 후손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도 여전히 유효했다. 셋째, 나단은 (삼하 7장)에서 다윗 언약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리라(삼하 7:16)."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이를 "내가 영영히 그를 네 집과 네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대상 17:14)." 역대기 기자는 "네 집과 네 나라"를 "내 집과 내 나라"로 바꾸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대명사 접미(한글로는 대명사)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다윗 언약을 하나님 나라와 명시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odn 의미심장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참조 대상 28:5, 29:23, 대하 13;8). 물론 구약에서는 종종 여호와를 왕으로 지칭하지만 이때는 주로 여호와의 왕국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이 다윗의 왕국 안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하는 성경은 역대기뿐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난다는 복음서의 이해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역대기의 다윗통치 단락은 이렇게 다윗 언약과 성전 준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공동체의 희망이 세스바살이나 스룹바벨 같은 다윗 계열의 후손 보다는 다윗 언약과 성전에 놓여 있다는 역대기 기자의 메시지에 근거한다. 왕정은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 성전을 주시고 그 안에 거하시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여기에 바로 역대기 기자가 제시하는 이스라엘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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