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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하

[스크랩] 열왕기하 (24 : 1~2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8:42
열왕기하 24장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ㅇ바벧론 왕 느부갓네살 - '느부갓네살' 이란 이름은 바벧론의
신 '느보'(Nebo)의 이름과 결합된 것으로서 '느보여 나의 지계석(地界石)을 지켜주소
서'라는 뜻이다(A.van Selms). 한편 여기서 바벧론의 역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B.C. 609년경 바벧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은 서진(西進) 정책을
세우고 메소포타미아 북부 성읍 하란(Haran)을 공격하였는데 애굽의 바로느고가 이지
역을 막고 있어서 하란을 탈취하지 못하고 서쪽 영토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B.C. 605년 경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과 애굽의 느고가 유
브라데스의 갈그미스에서 전투를 했다. 이때 애굽의 느고(Neco)가 참패하여 물러나고
느부갓네살은 자기 부친 나보폴라살이 원했던 아람과 팔레스틴 전 지역을 차지하고 계
속해서 유다의 여호야김과 주변의 다른 왕들을 위협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
벧론으로 끌려간 것(단 1 : 1-7)도 바로 이때인데 이것이 곧 바벧론의 제1차 유다 침
입이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블레셋 땅 아스글론을 차지한 것(렘 47 : 5-7)은 그로부터
한해 뒤인 B.C. 604년경의 일이다(A. Malamat). 그리고 B.C. 602년경 느부갓네살은 애
굽 쪽으로 이동하여 그 경계 지역에서 느고와 다시 격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두나
라는 크게 손실을 보았고 느부갓네살은 바벧론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ㅇ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배반하였더니 - 바벧론 1차 침입(B.C. 602년경 느
부갓네살이 바벧론으로 돌아가자 여호야김은 주권 회복의 호기(好機)로 생각, 반바렐
론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연합군을 편성, 유다를 정치하였는데
곧 2절의 일이다(H. Aus-tel).

2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ㅇ본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야김이 처음 바벧론 배반했을 때 느부갓네
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부대를 유다에 보내어 반란을
평정 하려고 했다(렘 35 : 11).
ㅇ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탓에 갈대
아 연합군의 침입을 당한 것은 유다 멸망의 전조(前兆)였다. 그런데 유다가 결국 바벧
론에 의해 멸망당하리라는 사실은 이미 이사야, 미가, 하박국, 예레미야, 스바냐, 훌
다등과 같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바이다(20 : 16-18 ; 22 : 16, 17 ; 렘 21 : 8-10
; 미 4 : 9, 10 ; 합 1 : 5-11 ;습 1 : 1-18). 그래서 본서 기자는 그 같은 예언에 의
거, 당시의 정황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래(到來)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ㅇ갈대아의 부대와...암몬 자손의 부대 - 갈대아(Chaldea)는 본래 남부 바벧론에 있
는 한 지방의 이름이다. 그런데 후에 이는 신바벧론을 다스렸던 왕국을 통칭(通稱)하
게 되었다. 한편 여기서 '부대'레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두딤'은 조직
화된 군대가 아니라 기습했다가 달아나는 유격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아람이나
모압, 암몬은 유다보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유다와 정면 대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벧론의 느부갓네살도 당시까지는 큰 군대를 유다에 보낼 만한 여유가 없었다. 때문
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인들로 구성되 유격대를 파견, 유다를 괴롭
혔던 것이다. 한편 바벧론이 다시금 팔레스틴에 전면적인 공격을 시도한 것은 여호야
김이 죽은 지 1년이 지난 후인 B.C.597년 3월로서 그때는 여호야김의 18살 난 아들 여
호야긴(Jehoiachin)이 왕위에 있던 때이다(5-17절). 바로 이것이 바벧론의 제 2차 유
다 침입인데 마지막 제 3차 침입에서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사건은 다음 25장에 기록
되어 있다.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ㅇ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 여기서 '레하스르'는 '돌
아서다', '옮기다', '제거하다'라는 뜻의 동사 '수르'의 히필형(hiphil : 사
역형 능동) 부정사이다. 따라서 이단어에는 하나님께서 당신 뱃성을 버리시겠다는 강
한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17 : 23 ; 23 : 27).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결
정하신 이유는 바로 '므낫세의 지은 모든죄'때문이었다(21 : 1-15 ; 23 : 26, 27).

4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ㅇ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 이에 대해서는 21 : 16 주석을 참조 하라. 여기서
므낫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는 것은 몰록(Moloch)에게 드린 희생 제사(21 : 6),
계속된 의로운 자에 대한 박해(21 :16), 선지자 이사야 살해등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ㅇ그 피로...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 성경은 피흘림에 대하여 매우 엄
하게 경고하고 있다. 창 4 : 10에서는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했
고, 창 9 : 5에서는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라고 했다.
이와같이 의로운 자의 신원(伸寃) 과 피흘림에 대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보수(報 )하신
다는 것이 곧 성경의 가르침이다(사 61 : 1,2; 렘 22 : 16 ; 계 6 : 10, 11 ; 18 :20
; 19 : 2).

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 - 대하 36 : 5-8에는 여호야김의 말년에 대
하여 보다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여호야김은 바벧론으로 잡혀가 그
곳에서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서(26 : 23 ; 36 : 20-23, 26)와 에스겔서(19 : 9)에 잘기록되가어 있다. 이
와 관련해서는 23 : 35, 37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6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 역대기 기자는 여호야김이 바벧론 왕 느부갓네
살에 의해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벧론으로 잡혀 갔다고 기록할 뿐(대하 36 : 5-8)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않다. 그리고 렘 22 : 19에서는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그 열조와 함께 자매'라는 말은 여호야김이 예루살렘에 있는 묘실에 장사되
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Ho-bbs). 더욱이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에는 여호
야김이 '웃사의 동산' 에 장사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렘 22 : 19 ; 36 : 30).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여호야김은 어떤 식을든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되끌려와 죽
임당한 후 예루살렘 묘실에 장사된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한편 렘 36 : 30에서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여
호야김의 시신이 영구히 그대로 버리워진 채로 방치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얼마 동안
그렇게 버리워져 있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ㅇ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렘 36 : 30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
호야김에 대하여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않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라고 예언하였다. 그
런데 본절에서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모순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즉위한지 3개월 만에 바벧론으로
끌려가고 대신 여호야김의 동생, 즉 그의 삼촌이 왕위에 올랐으니(15, 17절) 실상 여
호야긴은 왕위에 올랐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

ㅇ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 애굽 왕 느고는 두 번에 걸쳐
하란 남쪽에 위치한 갈그미스(Carchemish) 지역으로 원정을 했었다. 첫번째 원정시에
는 성공하여 팔레스틴을 장악할 수 있었으나(23 : 29-34)두번째 원정에서는 이미 강력
한 제국을 형성한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대파당하여(렘 46 : 2-12) 팔레스틴 지역
에 대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다. 따라서 애굽왕 느고는 느부갓
네살이 생존한 동안에는 더이상 팔레스틴 지역으로 원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ㅇ애굽 하수 - 이는 애굽을 상징하는 강인 나일 강(the river of Nile)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애굽 시내(the brook of
Egypt)를 가리킨다. 민 34 : 5 주석 참조.

8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ㅇ여호야긴...나이 십 팔세라 - '여호야긴'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
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일명 여고냐(Jeconiah,대상 3 : 16)또는 고니야(Coniah)로도
불리웠다(렘 22 : 24). 한편 병행 구절인 대하 36 : 9에서는 여호야긴이 위(位)에 나
아갈 때에 단지 8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 훼손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 8세밖에 안 된 여호야긴이 집권 3개월 만에 포로로 잡혀갔
을리는 만무하며 2 15절에서 그의 아내들이 언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렘 22 : 28에
서는그의 자손까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기의 기록은 '10'을 나타내는
알파벱 '요드'가 지워져 버림으로 인해 생긴 본문 훼손상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
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8-20절 강해, '병행 본문의 상이한 기록'을
참조하라.
ㅇ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 '느후스다'(Nehushta)라는 이름의 뜻은 '동'(銅)
이다.이와 관련하여 우리 18 : 4에서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자손의 구리뱀을 가리켜
'느후스단'(Nehushtan)이라 칭한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ㅇ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 '엘라단'(Elnathan)은 여호야김 통치때에 있던 예
루살렘 방백들 중의 한사람이다(렘 26 : 22 ; 36 : 12, 25). 한편 렘 22 : 26과 29 :
2에 따르면 여호야긴의 모친 느후스다도 11장의 아달랴와 같이 아들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9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ㅇ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 본서 기자는 아주 간략하게 여호야긴이 부친
여호야김과 같이(23 : 37)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행악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
데 예레미야는 그를 가리켜 '천한 파기(破器)'와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렘 22 :
28)이라고도 표현했다. 아마도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던 여호야긴의
무익성을 강조한 말인 듯하다.

10 그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ㅇ그때에 - 즉 여호야긴이 유다의 왕이되었을 때를 가리킨다. 대하 36 : 10에는 '세
초(歲初)에'로 되어 있는데 곧 B.C. 597년 3월이다. 이때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
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제2차 유다 침입을 시도하였다.
ㅇ그 성을 에워싸니라 - 처음에 예루살렘을 에워싼 것은 느부갓네살의 신복(臣僕)들
이었고 느부갓네살 왕은 한참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11절). 한편 처음에 여호야긴
은 애굽의 지원을 기대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애굽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없
고 느부갓네살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도착하자 곧 항복하기로 한것같다(12절).

11 그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ㅇ본절은 느부갓네살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신복들을 뒤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했음을
보여준다
ㅇ에워쌀 때에 - 과거 앗수르 왕 산 헤립도 이와같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했다
(18 : 17-37). 그런데 어떤 성이 이렇게 포위 공격을 당할 때는 제일 먼저 식량과 식
수 문제로 인해 곤욕을 치루기 마련이다(6 : 24-30). 여호야긴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느부갓네살에게 이내 항복한 이유 중의 하나도 아마 이와 같은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
다.

12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팔년이라

ㅇ여호야긴이 그 모친과...바벧론 왕에게 나아가매 - 여호야긴이 이렇게 빨리 항복
하기로 결정한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 때문
이었을 것이다(렘 22 : 24-30). 아무튼 여호야긴은 바벧론 왕의 선처(善處)를 바라면
서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을 모두 데리고 항복하러 나아갔다. 그러나 느부갓
네살 왕은 그의 부친 여호야김에게 했던 대로(대하 36 : 5-8) 여호야긴에게도 어떠한
혜택도 베풀지 않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들 모두를 포로로 잡아가고 말았다(렘 22
: 24-30).
ㅇ때는 바벧론 왕 팔 년이라 - 여기 제시된 연대는 바벧론 역대기의 통치 연대와 거
의 일치한다. 이로 보아 본서 기자는 느부갓네살의 즉위 연대와 바벧론 통치 연대를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Hobbs). 한편 느부갓네살은 B.C. 605년에 즉위했기 때문에
그의 8년은 B.C. 597년이된다.그런데 렘52 : 28에는 느부갓네살이 처음으로 유다 백성
들을 포로로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 그의 통치 7년부터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도 그것은 바벧론 왕의 즉위 연대를 잘못 계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Hobbs).

13 저가 여호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 기명을 다 훼파 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ㅇ예루살렘 성을 몰락시킨 후 바벧론은 맨 먼저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탈취
해 갔다. 이방 나라의 침략에는 항상 이와 같은 노략 사건이 뒤따르기 마련이나 여기
서는 20 : 16-19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서 특이성이 있다
ㅇ솔로몬이 만든 것 곧...금기명 - 이들 기명에 대해서는 왕상 7 : 48-51을 보라.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면서도 성전 기구들과 금기명(金器皿)들을 제작하였
다. 한편 몽고메리(Montgomery)와 그레이(Gray)는 본절이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한
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르호보암 당시 이미 애굽 왕 시삭(Shishak)이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아간 사건을
든다(왕상 14 : 25, 26)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에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
은 솔로몬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 시대에 이웃 나라의 사절단이 가져온
것들이다(20 : 12 ; 대하 32 : 23). 그리고 본절에서 '솔로몬이 만든 것'이란 여호와
의 전의 '금기명'들을 가리킨다.그런데 왕상 24 : 26에는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는 탈
취당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금기명에 대한 언급은 없다.
ㅇ다 훼파하였으니 - 여기서 '훼파하였으니'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카차츠'
는 16 : 17에서 '떼어내라', 18 : 16에서 '벗기다' 로 번역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이단어는 금을 탈취하기 위하여 각종 기명들에 두텁게 입혀져 있는 금들을
벗겨낸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했다고 했지만 25
: 15이나 렘 27 : 19-22에 따르면 놋 기명들과 약간의 금물(金物)들이 시드기야 때까
지 남아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바벧론이 여호야긴 대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정치적, 경제적 명맥을 당분간이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17절)으로 보아도 그러
한 기명들을 약간이나마 남겨 두었음이 분명하다(Hobbs).

14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ㅇ본절의 내용과 병행하는 바벧론 왕들의 역대기를 보면 이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
렘으로부터 방대한 공물(貢物)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공물들 가운데는 본절
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ㅇ모든 방백과 - 여기서 '방백'이 '용사 합 일만명'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귀인(貴人)들이나 상류층 남자들이기보다 군대의 두령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Hobbs).
ㅇ모든 용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보레 하하일'의 문
자적인 의미는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다. 혹자는 이것을 '부유한 자들'로도 해석하나
(Bahr,Gray) 이것은 '모든 훈련받은 무리'(Hobbs,Ewald)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서 '합일만명'이라는 수치는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 그리고 모든 용사를 합친 수
치인 것 같다. 따라서 이는 16절의 용사를 칠천이라는 수치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
다. 그런데 렘52 : 28에 따르면 B.C. 597년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의 숫자는 3,023명
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본절의 기록과 모순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와같이 양자간
의 수치가 다른 것은 포로들을 구분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온 것이아닌가 추측된다
(Hobbs).
ㅇ모든공장과 대장장이 - 여기서 '공장'(하라쉬)은 '돌이나 금속 또는 나무
들을 자유 자재로 다루는 모든 기술자들'을 뜻한다(출 28 : 11 ; 왕상 7 : 14 ; 사 44
: 12). 그리고 '대장장이'(함미쓰게로)는 '가두는 사람', '잠그는 사람'
이라는뜻으로서(Hebrew and Engli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각종 무기를 마드
는 기술자들을 가리킨다(Bahr).
ㅇ빈천한 자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 여기서 '빈천한 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달란트'는 보다 광의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민들을 가리킨다. 즉 이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을 가리키기 버다는
힘이없는 천민들도 포함한다. 한편 렘 38 : 4, 7, 25, 27 ; 40 : 7 ; 52 : 7을 참조해
볼때, 시드기야 치하의 예루살렘에는 방백들과 군대 장관들 그리고 많지 않은 군사들
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본절의 내용과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 그것은 수사
법상의 차이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즉 본절은 바벧론의 2차 침공으로 유다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한 상황을 표현한 반면, 예레미야서는 유다의 행정을 유지하기 위해 남
겨진 최소한의 인원을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약간의 과장
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 상황의 암울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사실 당시 남겨진 백
성들은 대다수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로서 더이상 바벧론에 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적
은 수효였다.

15 저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ㅇ저가 여호야긴을...바벧론으로 사로 잡아 가고 - 본절은 이처럼 여호야긴 및 그의
측근들과 왕궁에서 그를 받들던 요직(要職)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음을
보여준다. 한편 혹자는 본절과 16절이 14절을 다시 한번 자세하게 풀어 설명한 것이라
고 한다(Mo-ntgomery). 그러나 본절과 16절과 14절은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본절과 16절은 보다 광범위하게 포로들을 분류해서 설명한 것이나 14절은 특
별히 군대와 관련있는 사람들에 관해 설명한 것이다. 한편 이 포로들은 모두 바벧론으
로 잡혀갔는데 여기서 바벧론'은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바벧론
의 수도였던 바벧론 성읍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정복 왕들은 포로
를 자기 수도로 이끌고 가서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이다
(Pulpit Commen-tary).

16 또 용사 칠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 곧 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ㅇ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 - 느부갓네살은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칠천 명
의 용사와 성을 부수고 또 성을 세울 때에 필요한 기술자들인 공장과 대장장이 천 명
을 바벧으로 잡아갔다. 따라서 느부갓네살은 실상 강장(强壯)하고 싸움에 능한 자들을
다 잡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 그렇게 함으로써 바벧론은 유다로 하여금 더이상 어
떠한 군사적인 모반이라도 꾀하지 못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ㅇ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 요시야(Josiah)의 아들은 모두 네 명으로서 요
하난, 여호야김(엘리야김), 맛다니야(시드기야), 여호아하스(살롬)이다(대상3: 15).
이중에 맛다니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서 여호야긴에게는 '아자비', 즉 삼촌(uncle)
이 된다. 한편 느부갓네살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맛다니야(Mattaniah)는 자신의 마음
에 꼭 맞았다고 한다(Hobbs). 그런데 아이러니(irony)하게도 '맛다니야'
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선물'이다. 그리고 고친 이름인 '시드기야'
의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이다. 이와 관련 혹자는 맛다니야가 예레미야 선지자
의 예언 (렘 23 : 5, 6)을 염두에 두고 '시드기야'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고 본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여호와가 의로써 유다를 통치 하시기를 바라는 의로운 자들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awlinson).

18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ㅇ시드기야가...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 시드기야의 통치 11년은 B.C. 597년 까지
이다. 그는 유다 왕조의 최후 통치자로서 예루살렘 함락을 목도한 비극의 인물이다.
ㅇ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 시드기야는 여호아하스의 동복(同腹) 형제이다(대
상 3 : 15). 따라서 그 어미가 같을 수 밖에 없다. 한편 하무달(Hamutal)이란 이름의
뜻은 '안개의 사촌'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3 : 31 주석 참조하라.

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ㅇ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 요시야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 그중에서도 시드기야의 악행에 대해서는 대하 36 : 12-16, 렘 27-39장에 상
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하라. 그 기록들에 따르면 시드기야는 매우 허약하고, 우유부단
하며, 환경에 잘 휩쓸리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슛아 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ㅇ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 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 이는 곧 때가 차면
홀연히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듯(슥 14장) 이제 패역한 유다 백성을 징계할 바벧론의
마지막3차 침입이 있으리라는 말이다.
ㅇ시드기야가 바벧론 왕을 배반하니라 - 본절을 다시 말하면, 시드기야가 바벧론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그 앞에서 쫓아내시기 위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레미야의 예언들 속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렘
21 : 1-10 ; 34 : 1-3 ; 37 : 6-10 ; 38 : 17-23)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바벧
론을 배반함으로 인해 온 유다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계속해
서 충고했다. 한편 이와 관련 시드기야가 바벧론을 배반하게 된 외적인 동기를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당시 유다의 반바벧론 정책을 주장하던 무리들은 시드기야에게 적극
적으로 친애굽 정책을 주장했다. 심지어 이 무리들은 우유 부단한 시드기야를 설득시
켜 바벧론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애굽의 지원을 요청했다(렘 27 : 1-22). 이
때 거짓 선지자들도 이 정책을 지지하느 거짓 예언을 했다(렘 28 : 2-4). 그러나 예레
미야는 유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를 의지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의 예언을 했다(렘
37 : 6-8). 이처럼 들을 귀가 없고 볼 눈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바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므로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
일례로 참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버리고 거짓 선지자를 좇아 아람 왕과 싸우다가 전
사한 아합 왕을 들수 있다(대하 18 : 33, 34). 아무튼 이상의 결과 시드기야는 유다의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왕이 되었다(25 : 4-7).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벧론에
복종했으면 유다가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자신도 비참한 상황에 처해지지 않았
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사는 자들은 신명기적 축복과 저주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신 28 : 1-68). 우리는 이러한 원칙이 신약 시
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됨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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