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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하

[스크랩] 열왕기하 (22 : 1~2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8:41
열왕기하 22장

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ㅇ요시야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 요시야(Josiah)의 부친 아몬은 24
세에 죽었다.(21 : 19, 23). 그러므로 결국 요시야가 태어난 때는 아몬의 16세였던 셈
이 된다. 한편 요시야는유다 최후의 선왕(善王)으로서 31년간 (B.C. 640-609)을 통치
하였다. 그는 다윗을본받아 여호와 신앙에 전념하였는바 죄악으로 더럽혀진 나라를정
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유다를 구원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그
자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성급히 애굽과의 싸움에 참전하여 전사(戰死)하였으니
(23 : 29, 30)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다.
ㅇ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 '여디다'는 솔로몬의 다른 이름인
'여디디야'(Je-didiah)의 여성형 이름이며 뜻은 '사랑하는 자'이다(삼하 12 : 24,
25). 그러나 정작 '여디다'(Jedidah)에 관해서 알 수 있는 바는 달리 없다.
ㅇ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 수 15 : 39에 따르면 보스갓(Bozkath)은 라기스와 에
글론 사이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그곳이 오늘날의 '텔 나길라'(Tell
Nagila)일 것으로 보고 있으나(Hobbs) 정확하지는 않다. 한편 '아다야'(Adaiah)라는
이름은 '장신구'라는 뜻으로서 포로 시대 이후에 자주 쓰인 이름이다(스 10 : 29, 39;
느 11: 4, 5).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ㅇ본절에서는 요시야의 통치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ㅇ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행하고 - 그의 경건에 대한 평가는 여호사밧(대하 17 :
3) 및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와 동등하다(18 : 3). 때문에 후대 사가 (史家)들은 여호
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이세 사람을 가리켜 유다의 3대 성군(聖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ㅇ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 이는 곧 요시야가 모든 인간 삶의 유일한 정도
(正道)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각하며 판단했다는 뜻이다(신 5 : 32;28 : 14). 히
스기야와 요시야는 이 점에 있어서도 서로 일치한다(18 : 6).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요시야의 선한 행위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돌이키지 못했다는 사실
(23 : 26, 27)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요시야왕 십 팔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가로되

ㅇ요시야 왕 십 팔 년에 -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의 초기 개혁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다. 즉, 대하 34 : 3-7에 따르면 요시야는 이미 그의 통치 12년에 한 차례 종교 개
혁을 단행하여 모든 우상들을 파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유다 역사상 가장
철저하고도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6세 되던 해인 바로 이 통치 18
년째의 일이다. 한편 요시야 왕 18년은 B.C. 621년경이다. 이때는 앗술바니팔 왕의 죽
음(B.C.626년)으로 인해 앗수르 제국이 이미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대외적인면에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대내적으로 오
로지 종교 개혁에 정신을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ㅇ서기관 사반 - '사반'이라는 이름의 뜻은'오소리' 이다. 당시 이러한 이
름(겔 8 : 11)은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Hobbs). 한편 렘 26 : 24에 보면
사반(Shaphan)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호하였다고 하며, 또 사반의 아
들 그마랴도 여호야김 왕 시대에 상당한 귀족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렘 36 :
12,25). 그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벧론으로 끌려간 포로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이었다(렘 40 : 5-41 : 10).그러므로 사반의 가문(家門)은 비교적
명문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당시 서기관은 여호와의 전에 바치는 세금들을
관리할 정도로 대단한 중책의 위치에 있었으니(4절 ; 12 : 10) 그 가세(家勢)를 짐작
할 수 있다. 한편 평행 구절인 대하 34 : 8에 따르면 당시 사반 이외에도 부윤마아세
야와 다른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가 함께 활동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4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ㅇ대제사장 힐기야 - 여기에 언급되 힐기야(Hilkiah)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양하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힐기야'란 이름이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 에스라의 족보에 나오는 살룸의 아들 힐기야(스 7 : 1, 2)를 들 수 있는
데 그는 대상 6 : 13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의 명단에도 동일하게 살룸의 아들로 나온다
(Rawlinson). 2 다음으로 베냐민 땅 아나돗(대상 6 : 60) 출신의 선지자 에레미야의
아버지 역시 힐기야이다(렘 1 : 1). 3 그밖에도 레위 족속 암시의 아들 힐기야(대상 6
: 45, 46), 스룹바벧과함께 바벧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 힐기야(느 12 : 1, 7)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본절에 등장하는 힐기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직접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렘 24장을 보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현하고있다. 따라
서 본절의 대제사장 힐기야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아버지 라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
다(Hobbs).대체적 으로 학자들은 본절의 힐기야가 살룸의 아들 힐기야인 것으로 추정
한다(Rawlinson).
ㅇ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하나님께 바치거나
아니면 율법의 규정(출 30 : 13, 14 ;레 27 : 2-8; 민 18 : 15, 16)에 따라 바쳤던 헌
금을 가리킨다. 한편 선왕(先王) 요아스는 이러한 헌금을 모아 성전을 수리하는 데에
사용하였다(12 : 4-16). 본장에서의 요시야의 행위(3-7절) 역시 앞서 요아스의 그 같
은 정책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ㅇ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 여기서 '계수하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템'
은 '마치다'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새로운 용도에 지불할 목적으로 돈을 정리한 것
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 477). 70인역 (LXX)에는 이
단어를 '스프라기손'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인봉하다'(seal) 라는 뜻이다.
탈굼역(The Targums)이나 New English Bible도 동일한 뜻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돈을 자루에 넣어 묶는다는 뜻이다(12 : 10).

5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ㅇ본절에 언급된 성전 수축(修築)작업 과정은 앞서 요아스 당시의 작업 과정과 거의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이에 관해서는 12 : 11, 12 주석을 참조하라.
ㅇ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 12 : 6에 보면 "요아스 왕 이십 삼 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는 언급이 나온다. 이
는 그동안 유다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관심, 열정이 식었던 결과이다.
그러나 요아스에 이어 이제 요시야 때에 이르러 성전 수축이 재개된 이후로 얼마 동안
은 매년 성전 수리 작업이 시행되었을 것이다.

7 그러나 저희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ㅇ회개하지 아니하였으니 - 대하 34 : 12에 따르면 성전 일을 맡은 감독자들은 모두
레위인으로서 전적으로 신뢰받는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12 :
15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실되게 일하였음 터이니 요시야 로부터 전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ㅇ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 감독자들의 이 같은 진실됨에는 분명 요시
야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고(自古)로 공의를 행하는 통치자 밑에서 정
직한 신하가 배출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실상 다윗 왕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
여 공의를 행할 때(삼하 8 : 15) 정직하고 충성된 신하가 배출되었으며(삼하15 :
19-23) 백성들은 태평 성대를 누리었다(삼하7 : 1). 그러므로 가정이나 교회, 국가가
평강 가운데 번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 교회 지도자, 통치자들이 각각 하나님
을 경외하며 정직히 행하는 일에 솔선 수범해야 할 것이다.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ㅇ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 힐기야가 발견한 이율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양하다. 1 신명기서뿐이라는 견해
(Ewald). 이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문서 비평가 들이 많은데 이것을 근거로
하여 신명기 후기 저작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자기 신학적 틀을
정한뒤 그 틀 속에서 모든 결론을 유추해 내고 있으므로 신빙성이없다. 2 모세의 계명
과 규례집의 한 부분이라는 견해(Thenius). 3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라는 견해
(Bertheau). 4 그러나 본절에서 '율법 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페르 하토라'
는 대개 모세 오경 전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신 17 : 18;수 1 : 8;8 : 31;24
: 26; 느 8 : 1 등). 따라서 일반적으로 요세푸스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듯이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모세 오경 전부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Keil, De Wette). 한편 이
율법책은 신 31 : 26에서 보듯이 언약궤 옆에 비치해 두었던 성전용 율법서로서 제사
장들에 의해 수시로 읽혀지던 것이다(신 31 : 12, 26). 그런데 므낫세 당시의 극심한
배교(背敎) 현상(212 : 1-9)에 불안을 느낀 누군가가 이 율법서를 보존하기 위하여 성
전 모퉁이에 감추어 두었던 것 같다(Matthew Henry).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의 신복들이 전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ㅇ서기관 사반이...복명하여 가로되 - 본절은 당시 서기관 사반에게 성전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왕 사이에서 연락하는 매개자(煤介者)의 임무도
있었음을 보여 준다. 3절 주석 참조.
ㅇ왕에게 돌아가서 - 여기서 '돌아가서' 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야쉐브'는
히필형(Hiphil : 사역형 능동)으로서 사반이 중대한 일이나 불가피한 요인 또는 누군
가의 명령에 의해서 왕에게 보내졌음을 가리킨다.
ㅇ돈을 쏟아 - '쏟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티쿠'는 '쏟아붓다',
'녹이다'라는 뜻의 동사 '나타크'에서 파생된 것으로 자주 금속을 녹이는 것
과 연관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아마 '분배하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Hobbs).

10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ㅇ내게 책을 주더이다 - 본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무엇보다 '책'
(세페르)이라는 단어가 문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성전 수리 일보다
힐기야가 준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라 하겠다.
왕의 앞에서 읽으매 - 이처럼 서기관 사반이 율법책을 '읽었다'는 말은 이미 8절
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이때 사반이 읽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왕에게 충격을 주는중요한 부분 몇 군데를 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자신의 옷을 찢으며 통회하였기 때문이
다(11절). 또 23 : 2과 비교해 볼 때도 이때 만큼은 사반이 책 전체를 읽은 것 같지는
않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ㅇ왕이...그 옷을 찢으니라 - 사반이 읽어 준 율법책의 내용은 아마도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이나 교훈보다도 요시야의 마음에 더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13
절에 비추어 볼 때 사반이 읽은 내용 중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멀리 할 경우 하나
님의 징계를 당하리라는 말씀(신 28 : 15-68)도 있었던 것같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두
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계하였음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금 돌이켜 마음을 찢고 회개함을 나타내는 상
징적 행동이기 때문이다.19 : 1주석 참조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이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ㅇ사반의 아들 아히감 - 아히감(Ahi-kam)이란 이름의 뜻은 '내 형제가 일어났다'이
다. 그는 여호야김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호해 준 사람이며(렘 26 : 24), 예루살
렘 멸망후 포로로 끌려간 그다랴의 부친이다(렘 39 : 14;40 : 7). 3절 주석 참조.
ㅇ미가야의 아들 악볼 - '악볼'(Achbor)이란 이름의 뜻은 '들쥐'이다. 앞서 '사반
'이란 이름 또한 '오소리'란 뜻이었는바 이처럼 이름의 뜻이 동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선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3절 주석 참조. 한편 악볼이 왕의 전
권대사(全權大使)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토록 세움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나 그
의 아비미가야(Micaiah)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대신 악볼의 아들 엘라단이
여호야김 왕에 의해 애굽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기록이있다(렘 26 : 22). 한편 병행 구
절인 대하 34 : 20에는 악볼이 '미가의 아들 압돈' 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마 잘
못된 기록일 것이다(Rawlinson Bahr).
ㅇ왕의 시신 이사야 - '아사야'(Asaiah)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셨다'이
다. 그시신 (侍臣), 곧 왕의 수발을 받드는 신하였다(Bahr).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ㅇ나와 백성과 온유다를 위하여 -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그말씀을 먼저
자기에게 적용하였다. 11절에서 옷을 찢은 그의 행위가 이것을 잘 보여 준다.실상 신
28 : 15-68과 레 26 : 16-19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백
성들에게 미친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무릎 끊은 것
은 일국(一國)의 최고 통치자로서 마땅한 자세가 아닐수 없다. 한편 여기에서 '온 유
다'는 나라와 국민, 땅을 다 포함하는 말로서 '백성'이라는 말과는 약간 의미상 차이
가 있다.
ㅇ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 혹자는 본절의 의미를 발견한
책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또는 진정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지 물어보라는 의미인
것으로 이해한다(Dunker). 그러나 훌다의 예언 내용에 의거할 때 이러한 질문이아나었
음이 분명하다(16-20절). 대신 본절은 책의 내용, 즉 책에 기록된 심판이 내려질 것인
지 물어보라는 의미이다(Keil & Delitzsch, Rawlinson, Von Ger-lach).다시 말해 이는
레 26 : 16-19 ; 신 28 : 15-68에 기록된 것과 같은 저주가 우리에게 임할것인지에 대
하여 물어보라는 의미이다.
ㅇ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 여기서 '발하신'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체
타'는 '노를 발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차트'의 과거 완료형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문법에서 예언이나 본절과 같은 경우에 과거 완료형이 임박한 미래의
일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있다. 따라서 본절은 그 이전 과거에 내린 심판에 대한 언
급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임박한 심판에 대한 언급임이 분명하다. 한편 요시야 왕은
출 20 : 5에 나오는 계명의 말씀처럼 자신의 부친이나 조상들의 죄가 자기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았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자손에게로
연기된 것(20:19)과 므낫세때에 내린 유다 멸앙의 예언(21 : 10-15)에 대해 인식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다 왕들의 반복된 배교 행위로 인하여 축적된 죄의 결과, 이제 멸
망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으므로 그 같은 심판에 대한 요시야의 두려움은 더욱더
심각하였을 것이다.

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더불어 말하매

ㅇ본절에 기록된 정보 이외에 여선지훌다(Huldah)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선지자들이 어떤 활동을 했다는 기록도 거의 없는 상태이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의 여선지로는 미리암(출 15 : 20; 민 26 : 59), 드보라(삿
4 : 5), 이사야의 아내(사 8 : 3 KJV를 참고), 노아댜(느 6 : 14) 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훌다가 예언적 은사를 소유했던 자로서 당시 상당한 명성을 지녔던 것만은 분
명하다.한편 요시야의 당시에는 훌다 외에도 예레미야와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을 했었
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출신이므로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을 가능성
이 많다(Keil, Bahr). 또 그들은 궁전 선지자가 아니어서 요시야의 개혁에 직접 관여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Hobbs). 반면에 훌다는 왕궁에서 예복을 주관하느 공직자
인 살룸(Shallum)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 왕의 측근에 있는 선지자였던 것 같다. 그래
서 왕의 사자(使者)들은 예레미야나 스바냐를 채지 않고 훌다를 채아갔을 것이다
(Matthew Henry).
ㅇ예루살렘 둘째 구역 - 예루살렘 둘째 구역(미쉬네)이란 왕조 시대에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이 확장될 때 포함된 지역을 가리킨다. 훗날 '미쉬네'는 이곳의
지역명으로 고착된 것 같다(Hobbs). 한편 이 '미쉬네'는 일명 '낮은 지역' 이라고도
불리윙는데 그 까닭은 그지역의 위치가 계곡이었기 때문이다(G. A. Smith).

15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ㅇ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 여기서 '너희를 내게 보낸사람' 이
란 다름아닌 요시야 왕을 가리킨다(12, 13절). 그런데도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 여
선지 훌다의 어투는 1장에서 선지자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사자(使者)들에게 했던 어투
와 유사하다(1 : 6). 이와같이 훌다가 구약의 전통적인 선지자들의 어투로 말하는 것
을 볼 때 그녀는 선지자 엘리사처럼(13 : 14) 왕의 자문을 담당하는 궁전 선지자였던
것 같다(Wilson). 한편 많은 학자들은 본절 이후에 기록된 훌다의 말을 15-17절과
18-20절 두 부분으로 나눈다. 그리하여 첫째 부분은 들어야 할 모든 사람에게 한 말이
고 둘째 부분은 특별히 왕에게 한 말이라고한다(Keil & Delitzsch, Bahr).그러나 전후
문맥 관계에서 볼 때 두 부분은 다 신명기적 심판과 축복에 대한 언급으로서 모두 왕
에게 한말이 라고 보아야 타당하다(Hobbs).

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ㅇ내가...재앙을 내리되 - 이러한 본절의 말씀은 21 : 12에서 므낫세 시대에 주어진
심판의 말씀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러니 그 구절 및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곳과 그 거민에게 - 여기서 '이곳'이란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그 거민'은 예루
살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둘은 궁극적으로 '온 유다'를 의미한다. 한편 예
루살렘에 관한 이러한 저주의 말씀은 19 : 31에서 히스기야 시대에 주어진 예루살렘에
관한 축복의 말씀과 서로 상반된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약속
과 긍휼을 무시한 므낫세 왕과 유다 백성들의 패역(悖逆) 때문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조변 석개(朝變夕改)하시는 때문은 아니다(21 : 8-15). 이와 관련해서는 해당 부분의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ㅇ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 이미 언급한 대로 요시야가 이때 읽은
성경 중에는 신명기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11절 주석 참조 실상 신 27,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 순종 여하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언약이 언급되어 있다.

17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 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ㅇ본절에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한 원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언급되어 있다. 1 하나님을 버림 : 이처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했다는 뜻이다. 이는 곧 모든 죄악의
첫발걸음이자 죄악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서는 어떠한 의도 기대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함께 나올 수 없는 이치와
같다(약 3 : 11). 그래서 율법서의 상당 부분(신 12 : 19;29 : 25-28)과 예가서의 많
은 부분(삿 10 : 13; 삼상 8 : 8; 렘 1 : 16 등)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에 관해서 경
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우상 숭배에 빠짐 : 즉, 유다 백성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것"(롬 1 : 23)
이다.한편 하나님께서 떠난 자는 이처럼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니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 안에서 살든지 하나님을 떠나 다른 무엇을 섬기
든지 무엇을 꼭의존해 야만 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그래서 예수께서는 한 사람
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6 : 24;눅 16 : 13). 3 적극적인
범죄 : 유다 백성처럼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없고 다른 것으로 채워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 마련이다(창 4 : 7, 8; 삼상 18 : 10등).
왜냐하면 악인은 항상 독을 머금고 있으면서 (잠 10 : 6,11) 악을 더듬어 찾음으로 더
욱더 사악한 길로 스스로를 재촉하기 때문이다(잠 11 : 27).
ㅇ이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 유다에 대한 심판이 연기되기 시
작한 것은 8 : 19에서부터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판을 연기 하신 것은 당신 백성
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오래 참으심 에서였다(겔
33 : 11;벧후 3 : 9).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요나에 의해 니느웨에 경고와 회개의 메
시지가 선포된 사건에서 볼 수 있다(욘 3 : 1-10). 그러나 그 같은 하나님의 오래 참
으심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계속 죄악 가운데서 행하였으니(21 : 1-9) 이제 하
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지경에 까지 이르렀고 어떠한 회개에 의해서라도 만회
(挽回)할 수 없게 된 것이다(대하 36 : 16).

18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ㅇ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 지금까지의 문맥에서만 본다면 여기서 '네가 들은 말'
이란 사반이 율법책을 읽을 때 요시야가 들은 말 (11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부분을 19절 서두에 연결시켜 이해한다. 즉, 그들은 '네가 들은 말' 을
19절에 언급된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에 대한 저주(16, 17절)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
나 그러한 저주 역시 이미 모세 오경에도 나와 있는 바이니(신 28 : 15-68) 어떤 견해
를 취하든 별 무리가 없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요시야에게 따로 말씀 하
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의 태도가 겸비하였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통곡하였기 때문이다(11, 19절).

19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ㅇ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저주가 되리라 - 이는 곧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
무하며 놀램과 저주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렘 44 : 22)라고 한것과 같은
말이다. 또한 이러한 말은 선지자들이 자주 사용하던 말로서 레 26장과 신 28장에서
인용한 것인 듯하다(렘 4 : 7;18 :16).
ㅇ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 하나님은 앞서 히스기야에게도 똑같이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19 : 20)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요시야의 간절한 회개의 기도
(11절)가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하나님께 상달되었음을 가리킨다. 그 결과 히스기야 때
에 그의 경건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연기되었던 것(20 : 19)처럼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결정적 심판은 요시야 사후(死後)에 있을 것임이 약속되었다(20절). 이처럼
하나님의 앞에 겸비한 의인이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와
완전히 대조가 된다(창 18 : 22-32; 19 : 23-28).

20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ㅇ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너
희 열조에게로 모으고'가된다. 이러한말은 창 25 : 8에서 보는 바와 같이 침상에서 평
안히 죽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죽음에 대한 전형적인 표현이다(Keil, Hobbs). 그
런데 이것은 실제로 요시야가 바르느고와의 전투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한 사실과 일견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23 : 29).더욱이 본절 바로 뒤에는 '평안히'
(베솰롬)라는 부사어가 첨언(添言)되어 있어서 더욱더 모순되어 보인다. 때문에 혹자는
여기서 '평안히'라는 부사어가 왕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도 한다(Nicholson). 그러나
애굽과의 전쟁에서 그백성들이 '평안히' 있었다는 말은 맞지 않느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즉, 1 바벧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
하고는 고난의 때가 요시야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2 렘 22 : 19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시야는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왕조의
묘실에 평안히 잠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실제로 유다의 멸망은
요시야가 죽은 후 3년 뒤인 여호야김 때에 이루어졌으며(24 : 1) 전쟁터에서 죽은 요
시야는 신복들에 의해 예루살렘 묘실에 장사(葬事)되었다(23 : 29, 30).
ㅇ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 창 21 : 16이나 44 : 34에서 보듯이 어떠한 참혹한
상황을 눈으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참으로 크신 하나님의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히스기야와 마찬가지로(20 : 9-11) 요시야 왕도 그 같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이제
자기 백성들의 참람한 상황을 보지 않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ㅇ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 즉, 이말은 힐기야, 아히감, 악볼, 사반, 아사야와
같은 왕의 사자(使者)들(14절)이 훌다의 예언을 요시야 왕에게 전했다는 뜻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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