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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하

[스크랩] 열왕기하 (3 : 1~27)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8:35
열왕기하 3장


1 유다 왕 여호사밧의 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ㅇ본절에서도 1:17에서와 같은 연대기상의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 17년이었으며 2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고 했다(왕상
22:51). 그러면 아하시야의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된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 19년이
어야 하는데 본절에서는 18년이라고 기록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2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ㅇ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 여호람은 이전의 이스라엘 다른 대부분의 왕들
(왕상 14:16; 15:25,34; 16:13,19,25,30; 22:52)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많은 왕들(8:2
7; 10:31; 13:2,11; 14:24; 15:9,18,24,28; 17:2)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 했
으며 여호와의 율법을 준수하지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
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또한 여호람과 같은 이런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생활 하듯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살전 1:3;3:9).
ㅇ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 여호람은 부친 아합이나 모친 이세벨처럼
우상을 섬기지 않고 바알상을 제거함으로써 어느 정도 새로운 신앙의 개혁 운동을 이
루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여호람은 부모에게서와 형인 아하시야에게서 생활과 신앙에
대한 교훈을 얻어 통치 초기에는 각성을 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일
관성 있게 개혁 운동을 주도해 나가지 못하고 단지 바알 신상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멈
추었기 때문에 개혁에는 별로 큰 성과가 없었다. 더욱이 그 자신도 통치 후기에는 아
합 왕가의 죄악을 답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9:24). 한편 여호람 왕이 이같이
완전하게 악에서 떠나지 못했던 것은 열렬한 바알의 숭배자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악녀로 손 꼽히는 이세벨이 딸 아달랴와 함께 그의 전 통치 기간 동안 살았
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9:30,Keil & Delitzsch, Vol. , p. 301).
ㅇ바알의 주상(柱像)을 제하였음리라 - 여호람이 비록 사마리아에서 바알의 주상들을
제하기는 했지만 그가 북이스라엘 전역에서 바알 숭배의 풍속을 금지시킨 것은 아니었
다. 왜냐하면 그 다음 왕인 예후가 바알의 목상 뿐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까지 철저히
제거했다는 사실이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10:19-28). 물론 여호람이 그 아비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함으로 아합과 이세벨의 길을 따르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엘리사 선지자의 책
망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14절).

3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ㅇ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1
대 왕인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은 후 어리석은 르호보암의 정책을 이용해 북방 열 지
파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른 자이다. 이제 그러한 그의 행정을 기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둘을 세움(왕상 12:29,30), (2)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
사람을 마음대로 제사장에 임명함(왕상 12:31), (3)제사의 절기를 바꾸어 버림(왕상
12:32,33), (4)백성의 종교심을 묶어 놓기 위해 우상 정책을 씀(왕상 12:25-33), 이중
에서도 여호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고수해 나간 범죄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이었다. 여호람이 이와 같이 금송아지 숭배를 고집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써 예루
살렘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유다로 넘어가는 백성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Matthew
Henry, Vol. , p. 719, Pulpit Commentary). 이와같이 자기의 정치적 유익을 위하는
이기심도 일종의 우상 숭배인 것이다(출 20:4,5). 좀더 구체적인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해서는 왕상 12:26-33; 13:33;왕하 10:29를 참조하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ㅇ모압 왕 메사 - '메사'(Mesha)라는 이름은 모압 비문(Moabite stone)의 기록에 나
타나 있는데 그는 B.C. 9C 중반 모압의 한 도시인 디본(Dibon)을 병합했다. 또한 그는
약 40년동안 예속 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해 항거해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Gibson,Syrian Semitic Inscriptions, 1:71-83). 또 디본에서 발견된 이 비문을 보면
모압은 그모스 신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로부터 큰 고난을 당했으나
메사 왕 시대에 와서야 다시 그모스 신이 영광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Smith). 이
는 북이스라엘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서 성공한 것을 자축적으로 언급한 듯하다.
ㅇ양을 치는 자 - 이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노케드'로서 암1:1에서는
복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표를 찍다'라는 뜻의 '나카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소
유주', '관리자'를 가리킨다. 또한 이 용어는 아마 양가죽에 주인의 표식을 찍던 목축
업자의 습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16:1을 보면 모압은 매년 정규적으로 이스
라엘의 치리자에게 양을 조공으로 바쳐온 것으로 보이는데(Keil & Delitzsch) 모압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쳐 온 것은 다윗 왕 때부터이다(삼하 8:2). 그리고
메사 왕도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양을 기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합 왕이
죽은 후 모압은 자체의 힘을 규합해서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이다(1:1).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ㅇ모압의 메사 왕이 이스라엘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시기는 아합 왕이 죽고 오므리 왕조
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던 때였다. 성경에서는 모압이 배반한 사실에 대해 단지 '아합
이 죽은 후에'(1:1)라고 일축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는 아합 왕이 죽고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기, 즉 약 B.C.850년 경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T. R. Hobbs).
또한 이 시기는 메사가 영토 확장에 힘을 쓰던 모압의 전승기였다. 한편 본문의 모압
반역 사건은 1868년 독일 선교사에 의해 아르논 강 근처에서 발견된 모압의 비석 위에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에서 모압의 메사는 오므리가 부과한 공세를 거절했다고 기록
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모압 왕 메사에 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ㅇ그 때에...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 여기서 '그 때'는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점고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카드'로서 '방문하
다', '보살피다', '헤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가 가리키는 의미
는 기존의 군대를 정비하는 것(Wycliffe)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
들을 모아 큰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Matthew Henry, Lange Commentary). 그래
서 여호람 왕은 정규 군대와 지방에 있는 군대까지 모두 소집하여 메사 왕에 대한 보
복을 꾀했던 것이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할 정도로 여호람의 보복 행위는 강
력했으며 또한 이것은 상대적으로 메사 왕의 위력이 상당했음을 암시해 준다.

7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모압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 저가 가로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ㅇ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 여호람은 모압 원정을 위해 전 이
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도 전갈을 보내어 원조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아합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장자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는 관계였기 때문이다(8:18;대
하 18:1).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고 유다의 병거
와 말을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다(대하 19:2). 한편 여호람이 여호사밧과의
협조 관계를 추구했다는 것은 모압을 격파하기 위해 유대 땅을 지나야 할 필요가 있었
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시 유다의 속국이던 에돔의 긍정적 영향을 원했던 것으로 이
해 된다(Wycliffe Bible Commentary, p. 343).
ㅇ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 여호람의 요청에 여호사밧이 이렇듯 쉽게 응
락한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에 기인하
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에 의해 침공을 당해 큰위기
를 겪은 경험 때문인 것(대하 20:1-37)으로 추측된다(Matthew Henry).

8 여호람이 가로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저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ㅇ에돔 광야 길 -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모압을 침공할 수 있는 길은 둘이었다. 하나
는 사해 동북쪽을 통해 요단 강을 지나 모압 북쪽으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
해 남단을 돌아서 에돔 북쪽을 지나 모압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중 후자의 길은
아주 멀 뿐만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여호사밧은 이 길로 갈 것을 권했다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여호사밧이 모압의 남쪽 노선을
권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전자의 북쪽 노선으로 가게 되면 길르앗 라못 부근에
있는 아람을 건드릴까 하는 염려에서이며 2)모압이 남방의 불가침성을 굳게 믿고 있어
서 남쪽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이고 3) 당시까지도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과 합세할
수 있으므로 더욱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Keil, Lange). 그러나 이러
한 철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10절) 이것은 사
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심을 깨닫
지 못했기 때문이다(잠 16:9). 다음 지도는 연합군이 모압을 침공한 경로를 나타낸 것
이다.

9 이스라엘 왕이 유다왕과 에돔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ㅇ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 모압의 메사(Mesha)를 치러가는 연
합군의 행렬을 기술한 것으로 이스라엘 왕이 원정의 지휘자로서 역할을 했고 그 중요
성 정도에 따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기술된 듯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왕상
22:47에서는 에돔에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왕이 명기된
것은 에돔의 일시적인 배반(대하 20:22)때 세운 듯하다.
ㅇ길을 둘러 행한지 칠 일에 - 본절에서는 세 나라의 동맹군이 광야를 칠 일 동안이
나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본절에서 '둘러 행하다'(surroun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바브'인데 이 단어는 '어떤 장소를 배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 나라가 동맹한 연합군이 지나치게 숫적으로 과다하여 예상 외로 긴
거리를 우회하게 된 것이다(Word Biblical Commentary). 그런데 이 단어는 삿 11:18에
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 되었다. 한편 이러한 방황은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결과였다(T. R. Hobbs). 그래서 카일(Keil)도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시사하고 있다. 즉, 연합군이
7일 동안 방황하며 지나간 곳은 에돔과 모압의 경계가 되는 '아시'(Ashi)의 바위 골짜
기였다. 이 골짜기에는 로빈슨(Robinson)에 의하면 사시 사철 계속 물이 흐르는 강이
있었고 그 강에 이르기만 하면 병사나 육축을 위한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곳에 도착했을 때는 가뭄이 한창이어서 이 강이 말라 있었는데 예기
치 않은 이러한 상황, 즉 물의 고갈은 바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Keil &
Delitzsch).
ㅇ먹일 물이 없는지라 - 연합군은 광야의 길로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었다. 그런데 광야에 있는 시내는 비가 올 때만 흐르는 건천(wady)이기 때문
에 건기, 즉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는 물을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ㅇ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 본절은 환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인식하
는 여호람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모압 원정을 준비할 때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
이 독단적인 생각에 의해 무력으로 일을 꾀하던 그가 이제 환난에 닥친 뒤에야 비로소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닫고 후회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
지 않은 사람은 곤경에 직면할 때만이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십
상이고 남에게 그 원망을 돌리기 일수이다. 한편 이러한 태도는 믿음없는 자의 전형적
인 모습이다(출 14:10-13; 15:24; 16:2; 17:2;민 11:1; 14:1-3; 21:5등).

11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있나이다

ㅇ여호사밧이 가로되...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 왕상 22:5-7에서 나타난 바
와 같이 여호사밧은 거짓 선지자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참선지자의 말을 듣기 원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의견을 배척함과 동시에(Wycliffe) 신앙과 소망을
갖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은 것이다. 또한 본절은 한 사람의 신실된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가를 실증해 주고 있다. 즉, 유다 왕 여호사밧의 믿음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의 모든 병사들까지도 기적적으로 승리할수 있었기 때문
이다(24-26절;사 62:11;롬 10:13).
ㅇ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 엘리야 선지자의 종으로서 엘리야와 함께 생활했으며,
그의 능력을 이어받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Keil &
Delitxsch), 혹은 엘리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던 자(Thenius)라는 의미로써 엘리야의
뜻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섬겼기 때문에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전가받은 자라
는 뜻이다. 한편 '물을 붓던'이란 표현은 '수종드는 것'을 말하는데 손을 씻으려 할
때에 그 옆에서 물을 부어주며 심부름하는 제자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ㅇ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 엘리사가 모압 원정군을 따라 여기 모압의 경계 지역인
'아사' 골짜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그
러나 본절을 근거로 해서 엘리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믿음의 사람 유다 왕 여호사밧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즉 여
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 맺은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지만(대하 19:2) 하나님
은 그의 신앙을 익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셨던 것이다. (2) 여호람에
게 이스라엘의 참 보호자는 여호와 한 분 뿐이심을 보이시기 위해 엘리사를 성령의 감
동으로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이다(Keil). (3)유다왕 여호사밧에 대한 엘리사의 염려에
기인한 것이다(14절에 의거). 한편 본절의 의미로 볼때 여호람은 엘리사의 존재를 전
혀 알지 못한 것 같다(Wycliffe).

12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ㅇ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 문자적으로 이것은 '그는 참 선지자이므로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알려줄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Pulipit Commentary). 여호
사밧이 엘리사의 명성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엘리사를 참 선지자
요, 하나님의 진정한 사역자로 인정하고 그 권위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에 대한 명성이 북이스라엘을 넘어 유다까지 알려졌음이 이 표현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Lange).
ㅇ이에 이스라엘 왕이...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 여기서 엘리사에게로 내려가
는 세 왕 중에 이스라엘 왕이 맨 선두에 있음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
이 (1)동맹군의 대표였고 (2)자국의 선지자였고 (3)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자각 때문에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이다. 그러나 14절에 있는 엘리사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회개
하는 마음으로 혹은 큰 믿음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 흔히 선지자들
이왕 앞에 불리어 갔던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세 왕이 직접 엘리사에게로 간 것은 다
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며
(G.Rawlinson) (2)이러한 곤경으로 인해 세 왕이 겸손해졌기 때문이다(Keil,Wycliffe,
Pulpit Commentary).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ㅇ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당신은 왜 그러한 것을 내게 묻습니까?' 혹
은 '당신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버렸기 때문에 선지자와는 상관을 안하지 않습니까?'라
는 뜻을 반영한 말이다(Lange). 본절에서 엘리사가 자기를 찾아 온 여호람 왕에게 이
와 같이 꾸짖은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비록 여호람이 바알 신상을 제거하
기는 했으나 당시 바알의 제사장들이 여전히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0:19). 이에 대한 근거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린 장본인인 그
의 어머니 이세벨이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9:30, Pulpit Commentnary). (2)개혁
운동을 전개시킴에 있어서 너무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여호람에게 자신의 이
기적인 사욕을 버리고 진정한 개혁 의지를 갖고 일을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엘리사의 이러한 책망을 여호람 왕이 충심으로 받아 들이고 진실로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면 그는 피살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오므리 왕가가 그렇게 비참하게 멸망하지
도 않았을 것이다(9:6-9)
ㅇ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 이것은 여호람과 그 부
모의 우상 숭배를 꾸짖는 엘리사의 대담한 말이다. 즉 엘리사는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
가는 일에 조언을 해준 아합의 사백 명의 선지자들(왕상 22:6)과 이세벧이 섬기는 바
알 선지자들(10:19)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본절은 곧 '그 선지자들에게는
당신이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없습니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한편 본절은 왕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책망하는 선지
자의 의연한 모습이 돋보인다. 즉 엘리사는 여호람 왕의 면전에서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발했던 것이다(Matthew Henry, Vol. , p.721).

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ㅇ내가 섬기는 - 히브리어 '아마드티 레파나우'를 번역한
말로서 '내가...의 얼굴을 향해 서다'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 드리며
봉사하던 사실에서 연유한 용어로서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자 대사(大使)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왕상 17:1;18:15).
ㅇ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행한 선한 일을 기
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 참으로 여호사밧이 산당
과 우상을 제거하고 선지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워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선행이 있
기 때문에(대하 17:3-9) 그것을 주께서 기억하고 계셔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도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길르앗 라못에서 악한 왕 아합을
도운 일이나(대하 19:2), 오빌로 가는 배들을 건조하기 위해 아하시야와 결탁한 일(대
하 20:36;왕상 22:48), 그리고 본장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모압 원
정에 참예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동맹하는 일 등은 결코 선한 일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행한 여호사밧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구
원을 베푸시는 것이다(대하 19:1-3). 한편 엘리사의 이러한 태도는 12절 말씀과 더불
어 파숫꾼이 행해야 하는 바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모든 사역자에게 있어서 귀감이 된
다(겔 2:7).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ㅇ거문고 탈 자 -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제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자'로 옮기는 것이 적합하다. 이러한 번역상의 어려움은 이 말을 '수금 뜯는
사람'(공동 번역), '악사'(KJV, RSV), '하프 연주가'(NIV)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 역
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ㅇ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본절에서 거문고 소리를 통해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시킨 사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엘리사가
여호람으로 인해 흥분했던 자신의 마음을 진정 시키며 신적 감응을 잘 받기 위한 상태
인 무아경에 잠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 Rawilnson, Pulpit
Commetary, Keil & Delitzsch). 둘째는 고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에서도
(The Interpreter's Bible, Vol. , p. 200) 예언을 할 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악기
를 사용했는데(Bleek), 엘리사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Bahr). 전자의 해석
을 지지하는 근거로는 사울을 위해 다윗이 수금을 탔을때 악신이 떠나갔던 일(삼상
16:23)과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블레셋 성읍으로 들어갈 때 비파와 소
고와 수금을 앞세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였던 사건(삼상
10:5)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리고 후자와 같은 해석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
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더욱이 거문고를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선지자 엘리사 뿐만 아니라 세 왕과 곤경에 시달린 병사들의 시선이
한 데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용이하였을 것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신적 감응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되었다(삼상 10:5;대상25:1-3). 거문고의 소리
는 선지자들의 동요를 잠잠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으로 미
루어 엘리사는 전형적인 '예언자의 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
언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엘리사는 그의 선생 엘리야와 다르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돌발적이고 직접적인 예언을
했으며, 금욕적이며 독자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6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ㅇ골짜기 - 본절의 골짜기는 모압 남쪽에 있는 제렛(Zered), 즉 지금의 와디 엘 헤사
(Wadi el Hesa)라고 하는데(Wycliffe) 그곳은 붉은 사석(沙石)이 깔려 있어서 때로는
온 골짜기가 붉게 보인다고 한다.
ㅇ개천 - 히브리어 '게빔'을 번역한 말로 이는 '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로 물이 흘러 내려 이 웅덩이들에 가득 고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일은 있는 것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롬 4:17) 하
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ㅇ바람도...비도 보지 못하되...물이 가득하여 - 근동 지역에서 비는 대개 바람과 함
께 동반한다. 더욱이 본절의 바람이란 강한 폭풍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바람
도, 비도 없이 골짜기의 물을 채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
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수행하는 전쟁은 오
직 배후에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이 임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
여준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의 영적인 투쟁 역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엡 6:10-20). 한편 본절의 육축은 군대의 식량용 동물
을, 짐승은 사람 및 군수품 운반용을 말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리고 16, 17절과 18절에서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 (2)바람이나 비를 보지 않고도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리라는
것, (3)모압 원정이 성공을 하게 된다는 것(18,19절)등이다. 실로 첫째, 둘째 예언은
다음날 아침 소제를 드릴때에 성취되었다(20절). 이때에 가득한 물은 에돔 동편 산악
지대에 내린 비로써 이스라엘 진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었
던 것이다(Keil). 셋째 예언은 모압의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군이 반격할 때에 이루어
졌다(24, 25절).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먼 곳의 기상 조건과 지형 조건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이를 초월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이다.

18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ㅇ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 좋은 나무를 베라는 명령은 과실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한
신 20:19,20에서의 규례와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여
기에 대해서 카일(Keil)은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여 으례껏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신명기에서와 같은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예언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과실수 벌목 금지에 대한 명령을 여기에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율법은 당시, 아직까지 가나안 땅의 첫소산
을 거두기 이전이므로 병사들의 양식을 위한 필요성에 의해 명령되었던 것이기 때문이
다(T. R. Hobbs). 한편 침범한 적의 땅에서 과목(果木)을 베어버리는 일은 당시 전쟁
후에 행해지는 보편적인 일인데, 특히 앗수르나 애굽에 의해 이런 일이 널리 행해졌었
다(Pulpit Commentary).
ㅇ모든 샘을 메우고 - 샘이나 우물을 메우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의 전쟁시에는 으례
껏 보복조치로 행해졌다(창 26:18), 흔히 마을이 샘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던 당시에
'샘을 메운다'는 사실은 그 마을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샘은 히브리어 '아인'의 번역으로서 연못이나 우물과는 달리 산에서
부터 천연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샘물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샘은 생활 용수의 근원이
되었다.
ㅇ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좋은 땅 모두를 비탄에 잠기게 하
라'는 말인데 이 문맥은 70인역(LXX)에서 농사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 '밭에 돌을 던
지다'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헐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케이브'
로서 때때로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고통을 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Word
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것은 땅을 황폐케 한다는 뜻의 시적인 표현으로서 땅에
대한 의인화인데(Keil & Delitzsch) 렘 23:10과 욜 1:10등에서 유사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요단 강 주변에서 개간할 때는 돌이 많기 때문에 돌을 한 쪽으로 치워
놓는다. 그래서 땅을 망칠 때는 다시 밭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를 헤쳐 놓으면 되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nary).

20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ㅇ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 '소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로
소제뿐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이 다른
역본들에 의해서는 '제사'(공동 번역), '제물'(RSV, NIV, Living Bible)로 번역되었
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
씩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대하 8:13). 이렇게 규칙적으로 제사를 드리던 습
관이 포로 시대나 신약 시대에는 기도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단 6:10;행3:1).
그래서 예수께서도 주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막 1:35). 한편 아침 제사 드리는 시
간과 에돔 서편에서 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기 시작한 시간이 일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Keil).

21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ㅇ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 연합군의 공격에 대한 모압의 방어
준비는 대단히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최소
한의 어린 병사들까지 온 군대가 소집되었다. 혹자는 이때에 입은 갑옷이 정규 복장이
아니라 간편한 복장인데 이 전쟁에 어린 병사들까지도 참여했다고 한다(T. R. Hobbs).
ㅇ그 경계에 섰더라 - 모압은 연합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그 군
대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를 방어하게 하려고 모압의 최전방, 즉 와디 엘 아시의 북쪽
에 진영을 정비했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찌기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ㅇ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 북쪽 600m 높이의 절벽 위에 진을 치고 있는 모압
사람들은 해 뜰 무렵 동쪽 골짜기, 연합군의 진지 근처가 벌겋게 반사됨을 보았다. 이
처럼 물이 붉은 피와 같이 보인 것은 아침에 떠오른 해의 강렬한 붉은 색조가 물에 비
췸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편 에발드(Ewald)에 의하면 비가 내릴때 에돔 땅의 붉은색
흙덩이들이 빗물에 실려온 것이 햇빛에 반사된 때문이라고 하며, 카일(Keil)은 이 현
상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엘리사의 명령에 의
해서 판 구덩이의 흙이 붉은 색을 띠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요
인들로 인하여 모압군들은 속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바에 대한
(17,18절) 성취로서 여호와의 이적적인 방법의 결과였다(Lange).

23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ㅇ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 이와 같이 모압이 물을 피로 잘못 알고
착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즉, 유다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적이었
다는 사실을 모압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은 틈만 있으
면 반란을 꾀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압은 이스라엘 진중에
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식수 부족으로 서로 분쟁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해서 침공하는 이스라엘
동맹군에 대한 증오와 아울러 이것이 약탈의 좋은 기회라고 조급히 판단했기 때문에
(Wycliffe) 서둘러 진격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들로 하여금 스
스로 착각하게 하여 함정에 빠지게도 하신다(에 5:11,12).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라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ㅇ모압 땅이 황폐케 된 것은 엘리사가 예언한 그대로였다(18,19절). 그런데 이런 파괴는
그 당시에 전쟁의 승자가 취하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초토화 전법'(scorched
earth)과 같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길하레셋(Kir Haresheth)이 모압 비문에는 언급되
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사해 남단에 위치한 지금의 '엘케락'(El Kerak)과 동일한
성으로 보고 있다(Hobbs). 이곳은 홍해를 잇는 중요한 관문으로서 모압 남방의 최후
보루이며 군사상 전략적 요새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의 십자군 전쟁때 십자군들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영웅적인 싸움을 반복했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길헤레스'(렘 48:31,36), '모압 길'(사 15:1) 등은 모두 이 고장을 말한다.
ㅇ물맷군 - 히브리어 '켈라임'을 번역한 말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
는 물맷꾼(Lange)뿐만 아니라 석궁이나 그와 비슷한 공격용 기계를 작동시켰던 사람까
지도 의미한다고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ㅇ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 본절에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는데 왜 모압 왕
이 이스라엘의 동맹국인(12절)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했느냐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에돔 왕은 이스라
엘 및 유다와 마지 못해 동맹을 맺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압왕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므로(대하 20:10,22) 모압 왕이 에돔 왕의 우호적 입장을 기대했을 것이다(Kei
l,Skinner). (2)'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라고 해석하는 견해
이다(Kittel). 그러나 이 학설은 왜 모압왕이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 향했는지를 설명
하기가 어렵다. (3) '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아람 왕에게로'라는 견해도 있다. 즉,
'에돔'과 '아람'이 자음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하지만 '에돔'에는 반자음 '와우'가 첨
가 되어 있다. 따라서 필사자들이 잘못을 범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4) 에돔을
연합군의 배반자로 보고 모압이 그 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G. Rawlinson). 그러나 이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에돔 왕이 배반했을 경우에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그냥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의 견해가 가장 타당
하다고 본다. 한편, 모압의 성읍이 완전하게 공략되었으며(25절), 모압 왕이 필사적으
로 이스라엘과 유다 및 에돔 동맹군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한 점(26절)을 미루어 보아
이 전쟁은 엘리사의 예언대로(18,19절) 동맹군의 대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10, 13절).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들에
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롬 8:25;고전 9:12;골 1:11;딤후 2:12;약 1:12).

27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ㅇ맏아들을 취하여...번제를 드린지라 - 정예병 칠백 군사를 거느리고 에돔을 향해
가려고 했으나 실패한 모압 왕은 자신의 왕위를 이를 맏아들을 취하여 모압 신 그모스
에게 번제물로 드렸다. 이는 이방인들이 역경이나 환란을 자신들의 신이 노함에 의한
결과로 이해했기 때문인데 모압 왕이 장자를 번제로 드린것은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
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방법이었다(Wycliffe). 한편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는 이방인의
이러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며 정죄받을 행위였다(레
18:21;20:1-5).
ㅇ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우상 숭배의 특
징은 인간의 감정을 격분케 한다. 그래서 모압 병사들은 왕이 자기 맏아들을 그들의
신에게 번제물로 바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하여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공격하였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압군의 결사적인 모습에 겁에 질린 이스라엘군은 포위망을 풀
고 고국으로 돌아왔다(Pulpit Commentary)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를 하나님의 분노로 이해한다. 즉 "크게 통분함"이란 '큰 진노'라는 뜻으로 그모스 신
의 격렬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닥쳐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여호와가 있는 것같이 모압에는 그모스 신이 있다는 것이 당시 모압의 일
반적인 신앙이었는데 모압 땅에서의 이러한 광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사기가 크게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신적 공포감에서 철수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미신을 하나님
과 동일시 하는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
노하심으로 심판을 내리셨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이때에 이스라엘이 패전한
기록은 모압 왕 메사의 비문의 기록과 서로 통하는 바 많으며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불리해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
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은 확실하나 열왕기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 침묵하였다
고 한다(Lange). 또다른 학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의 수도를 포위한 연고로 모압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제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 재앙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심히 놀라 철수했다고 한다.
ㅇ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 연합군은 무력으로 더이상의 공격이나 정
복을 포기하고 즉 모압을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철수했던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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