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2
▣ 엘리사의 사역의 시작-열왕기하 1-4장
이제 우리는 엘리사의 생애와 사역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은 종종 대조된다. 엘리야는 극적인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맹렬한 선지자였던 반면에, 엘리사는 그의 백성에게 개인적인 방법으로 사역한 목회적인 선지자였다. 엘리야는 거친 언덕에, 엘리사는 평화로운 골짜기에 속해 있었다. 엘리야는 외로운 일군이었으나, 엘리사는 백성들과의 교제를 즐겼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엘리야는 그 민족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려 한 심판의 선지자였으며, 엘리사는 그 민족이 멸망하기 전에 “남은 자“을 불러내는 은혜의 사역자였다.
1. 엘리야를 계승한 엘리사(1-2장)
불의 심판(1장)-열왕기상 22장의 마지막 세 구절은 사악한 아하시야왕이 최근의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그는 모압의 반역에도, 낙상함으로 인한 상해들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그가 나올지 안나올지의 여부를 알아오도록 이방 신들에게 사람을 보내기조차 하였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엘리야는 “왕이 죽으리라“는 참된 멧세지를 전하도록 사자들을 되돌려 보내고는 다른 곳으로 피했다(요 12:35-36 참조). 엘리야의 하나님께 순복하기보다도 왕은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하늘로부터 내린 불이 그들을 죽였다. 이 심판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으로, 엘리야가 한 일이 아니었다. 선지자의 동기는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데에 있었다(눅 9:51-56 /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오용함). 세번째의 군대는 비록 믿음이 아닌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라도 겸손하게 자신들을 낮추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접근하도록 허용하셨다. 두려움없이 엘리야는 운명의 멧세지를 전했고, 왕은 죽었다!
불병거(2장)-열왕기상 19장 20절에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충실하게 따르겠다고 약속했으며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따랐다. 그를 섬긴 지 10년이 되자 엘리야는 떠나야 할 때임을 알렸다. 만약 엘리사가 안일한 길을 택하여 뒤에 쳐져 있었다면 그는 9-15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명에는 충성을 다해야 한다(“갑절“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신 21:17 참조). 수 년전에 엘리야는 광야에서 죽기를 구하였었다. 하나님이 이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대신 선지자는 회오리 바람 가운데 하늘로 올리워갔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최선의 것을 주신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올리워진 그의 주인을 보았으며 영감을 갑절이나 받았기 때문이다. 12절에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군대와 비교한다. 그들의 안전에 있어서 그는 말들과 병거보다도 더 중요하다(13:14 참조). 엘리사는 엘리야의 외투를 붙잡았으며(왕상 19:19 참조), 능력을 주실 것을 위해 하나님을 담대히 의지하였다. 엘리야와 함께 요단강을 건넌 것과 자신이 직접 믿음의 발을 내딛은 것은 확실히 별개의 것이었다. “엘리아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엘리야도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엘리야의 외투로 행한 그의 첫 기적은 선지학교의 젊은이들에게 엘리사가 참으로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입증한 것이 되었고, 그들은 엘리사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야가 정말로 사라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16-18절에서 우리는 그들의 불신앙과 어리석음이 기록된 것을 본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부활과 육체로 승천하셨음과 성도들이 미래에 휴거할 것을 의심하는 “자유주의“설교자들을 예증하는 것이다. 소금으로 물을 고친 것은 3년 반동안 물의 공급을 멈추게 했던 엘리야의 기적과는 상당히 대조가 된다.
23-25절은 성경을 주의깊게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이었음과 그들 스스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음을 기억하자. 벧엘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왕상 12:28-33). 거룩한 장소가 오염되었으며, 실제로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42명이 함께 만났다는 것은 조직적으로 계획된 일임을 암시한다. 선지자를 “대머리“라고 부른 것은 모욕 중에서도 가장 천한 모욕중의 하나였다. “올라가라“는 것은 엘리야가 하늘로 휴거한 것을 조롱하는 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곰들이 그들을 “찢었는데“, 죽은 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이는 좀 더 알고 배워야 할 사람들이 경박하게 조롱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다."
왕하 3
2. 민족을 구한 엘리사(3장)
유다의 여호사밧이 스스로 아합의 사악한 아들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죄였으나, 그는 이 죄를 범하였다. 이들 두 사람은 모압과 싸우기 위하여 또다른 적인 에돔과 결탁하였다. 이스라엘의 여호람은 모압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의 군대가 유다와 에돔의 영토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들과 연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실 물조차 고갈되었다. 여호사밧은 엘리사와 여호와께로 돌이켰다. 엘리사는 다윗의 자손(여호사밧)을 의식하여 도움을 베풀었으나, 아합의 불경건한 상속자(여호람)를 인정하지는 않았다(13-14절).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그들이 판 도랑에 물을 공급하셨으며 그들 앞에 있는 대적들을 파하셨다. 이 일은 다음과 같은 이상한 사건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희망을 잃은 모압의 왕은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하여 번제를 드렸으며, 유다와 에돔은 이스라엘을 향해(여호람) 대단히 분개하여 전쟁을 철회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와 동맹을 맺지 말았어야 했다. 나라를 구한 것은 사악한 왕이 아니라 충성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왕하 4
3. 백성을 섬기는 엘리사(4장)
“숨어있는 기간“ 동안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도왔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주된 사역은 아니었다. 엘리야는 근본적으로 불의 선지자였으며 엘리사는 백성들에게 “목회자“적인 사역자였다. 우리는 가난한 백성을 돕기 위하여 몇 가지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선지자와 과부(1-7절/ 레 25:39-46 참조)-유대인들은 빚에 관한 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으며 율법에 순종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때 우리의 가진 것을 취하여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신다(출 4:2). “문을 닫으라!“는 말은 마태복음 6장 6절을 상기시킨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에는 종종 “문을 닫았던 것“에 주목하자(21, 33절). 하나님은 그녀가 믿음으로 가져올 수 있는 만큼의 많은 그릇들을 채우셨고, 그녀에게 그릇을 빌려 주었던 사람들도 역시 유익을 얻었을 것이다. “나의 하나님께서 너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다.“
수넴여인(8-37절)-여기에는 두 가지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의 남편이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주셨으며, 그 아이가 죽자 생명을 되살려 일으키셨다. 수넴은 갈멜에서 7마일(약 11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집을 자주 지나다녔던 엘리사는 마침내 그들 부부와 더불어 떡을 떼도록 초청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선지자가 엘리야와는 달리 사회적인 경향이 있는 것을 본다. 세례(침례)요한과 그리스도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다. 요한은 엘리야처럼 홀로 살았으나, 그리스도는 엘리사처럼 가정을 방문하며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겼다. 그 여인은 참으로 영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방문하는 선지자를 위하여 지붕에 “선지자의 다락방“으로서 특별한 방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상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한 아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 아들은 들에서 심한 괴로움을 당하였으며(일시병일수도 있다) 죽은 채로 집으로 옮기워졌다. 어머니는 실망하지 않고 즉시 낙타를 타고 선지자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선지자의 종 게하시와는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게하시는 그 아이를 살리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이미 마음에 자리잡은 탐심 때문일 것이다. 이 탐심은 나중에 드러나게 된다(5:20- 이하). 게하시가 그녀를 물리치려고까지 했었던 것을 주목하자(27절/ 마 14:15/마 15:23). 엘리사 자신이 여행을 하여 그 아이를 일으켜야만 했다. 34절은 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노력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실례이다(왕상 17:21- 이하 참조). 일곱번의 재채기는 정상적인 호흡작용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 소년은 살아서 일어났다.
선지학교(38-44절)-이 학교는 사무엘이 시작하였고 엘리야가 계속하였다(삼상 19:2/왕상 20:35). 젊은이들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며, 그 땅에 경쟁이 되는 배교자들의 학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2:23-25 참조).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말은 음식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설교자들은 국을 끓였다. 이 생도들 중의 하나는 그 음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더 나은 것으로 먹기 위하여 채소를 찾으러 나갔다. 그가 가져온 독있는 호박은 거절해야만 하는 식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국은 늘 먹는 음식이었는데 여기에 호박을 첨가시켰다. 우리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맛을 본 후 위험한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의 기도는 엘리사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하였다. 그는 밀가루를 떨어뜨려 독을 제거하였다. 말하기는 슬프지만 많은 대학에, “선지 학교에“, 그리고 교회에까지도 “늘 먹는 음식“에 “죽음“이 들어있다. 독있는 음식의 독을 제거하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순전한 밀가루이다. 42-44절에서 우리는 또다른 문제를 발견한다. 손에 좋은 음식이 있었으나 다 돌아갈 만큼 넉넉하지 못하였다. 엘리사는 모든 사람의 필요에 대처할 만큼 음식을 늘렸다(요 6장 참조).
엘리사는 물론 기적의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그 필요에 대처할 수 있으시다. 그리고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자!"
왕하 5:1-19
▣ 나아만의 병고침-열왕기하 5장-
1. 나아만의 저주(5:1-19)
우리는 이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아름다운 사례를 본다.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은 자신이 나아만과 같은 것을 볼 수있을 것이다. 또한 구원하는 믿음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정죄되었다-그가 정죄되었다는 근거는 문둥병에 걸렸다는 점이다. 그의 아름다운 복장과 승리의 위업들도 그가 죽은 사람, 문둥병자라는 사실을 위장할 수는 없었다. 레위기 13장은 문둥병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죄를 예증하는 것이다. 피부 깊숙이 파고 들며(3절), 퍼지며(7절), 사람을 더럽게 하여 고립시키며(45-46절), 불로 처리되어야 한다(52절). 물론 수리아의 법은 문둥병자를 격리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로 오면 하나님의 법은 나아만에게 따로 떨어져 있을 것을 명령한다.
그는 적이었다-심지어 그는 유대인을 집에서 하녀로 쓰고 있었다. 이 소녀는 침략했을 때 사로잡혀 온 것이다. 나아만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있었다(엡 2:11-22 참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주셨다(롬 5:6-10).
그는 간증을 들었다-어린 유대인 소녀는 주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비록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의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간증하는 데 민첩했다. 만일 그녀가 그 가정에서 충실한 일군이 아니었더라면 효력있는 간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충성되게 일하였으므로 그녀의 간증은 보상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이런 간증들을 필요로 하신다.
그는 스스로, 구원해보려고 노력하였다-나아만은 문둥병에서 고침받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해보았으나 고칠 수 없었다. 우선, 그는 수리아의 왕에게 갔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그는 이스라엘 왕에게 갔으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죄인들은 왕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롬 10:9-10). 얼마나 많은 잃어버린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자 이 사람 저사람에게 찾아 다니는가! 그런데 그리스도는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고자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나아만은 또한 은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5절). 잃어버린 죄인은 구원을 사거나 벌려고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벧전 1:18-20).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엘리사는 나아만의 곤경에 대하여 들었으며 사람을 보내어 오게 했다. 구원받을 자격을 갖춘 죄인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인간이 그리스도께 오게 되는 것은 성령의 은혜로운 부르심으로만 가능할 뿐이다(요 6:37 참조). 누가복음 4장 27절에서 예수께서는 나아만이 많은 문둥병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셨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그는 하나님의 간단한 구원의 방법에 저항했다-엘리사는 나아만을 맞으러 나오지 않았다. 장군은 문둥병자였으며 선지자를 더럽힐 위험이 있었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거절당하고 정죄받은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하려고 하였다. 그는 교만한 장군을 죄인처럼 다루었다. 그러나 나아만은 평범한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에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오늘날의 죄인들처럼, 나아만은 선지자가 세례(침례), 성찬식, 견진례 등 어떤 의식을 행하리라고 생각했다(11절). 그래서 그는 스스로 겸손하게 죽음의 강인 요단강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집 근처에 있는 친근한 강들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다-13절에 나오는 겸손한 종은 대 장군보다도 생각이 예민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간단한 구원의 길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일인가! 박식한 니고데모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요 3장). 그러나 나아만이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그는 “거듭났으며“ 어린 아이의 피부처럼 정결하게 되어 물에서 나왔다! 요단강에 일곱 번 잠긴 것은 세례(침례)의 상징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례(침례)는 한 번 받는 것인데 여기서는 일곱번을 잠겼으며 또한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은 행위로써 입증이 되었다. 그는 말씀을 신뢰하였으며 말씀에 따라 행동했다. 믿음은 일곱 번이라도 행동하게 한다.
그는 확신이 있었다-전에 그는 “보라,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했으나 이제는 “보라, 내가... 아노니“라고 말한다(15절). 그는 하나님의 능력의 실제와, 여호와만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공식적으로 간증하였다. 나아만은 너무도 감사하여 엘리사에게 재물을 제공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제안은 거절되었다. 만일 그 선물이 용납되었다면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란 교훈을 망쳐놓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훔쳤을 것이다.그는 평화 가운데 집으로 갔다(19절)-그는 수리아로 돌아가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의 왕이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여호와께 순종하기를 원하였으며 온전히 그를 높이고 싶었다. “모든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과 화평하다“(롬 5:1)."
왕하 5:20-27
2. 게하시의 탐욕(5:20-27)
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문제를 일으키고 죄를 짓게 되는 시작이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라면, 그래서 마음의 탐욕을 심판했더라면 결코 문둥병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정직하게 자신의 마음의 죄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내가... 하리라“는 것이 그의 태도였다.
사람이 일단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얼마나 재빠르고 능률적으로 되는지에 유의하자. 그는 죽은 소년을 일으키려고 갈 때에는 뛰어가지 않았다(4:29-31). 그러나 여기서 그는 물질적인 재물을 얻으려고 나아만에게 달려간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적인 일들에서처럼 영적인 일에 관심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이제 우리는 두 가지 거짓말을 보게 된다.
그는 나아만에게 거짓말했다(21-32절)-“내 주인이 나를 보내었는데, 엘리사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도 중의 몇 명을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라고 그는 장군에게 말하였다. 유다처럼 게하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와는 반대로 그는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요 12:1-7). 물론 돈을 받음으로써 게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으며, 선지자의 교훈을 위반하였고, 구원에는 돈과 선한 행실이 개입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한 가지 이기적인 행동이 전체의 상징적인 교훈을 망쳐놓았다. 게하시는 나아만의 두 종들이 그를 위하여 옮겨다 줄 만큼의 재물을 얻었다!
그는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하였다(25-27절)-그는 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였으나 선지자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엘리사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주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또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다! 26절은 게하시가 유다와는 달리 자신의 작은 농장을 마련하는 데에 그 돈을 사용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이 사건이 있기 오래 전에 이미 탐욕이 그의 마음에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4장에서 우리는 그가 죽은 소년을 일으키는 데 얼마나 능력이 없었는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심판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직접 그를 심판하셨다. 나아만의 문둥병은 그에게, 그리고 그의 자손에게로 옮겨졌다.
우리는 8장 1-6절에서 게하시가 다시 나오는 것을 보는데, 이번에는 왕의 앞에 출현한다. 어떤 이는 그가 회개하여 고침을 받았다고 추정하지만 이에 대해성경에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질병은 그의 자손들에게 전해지도록 되어 있었다. 해답은 간단하다. 열왕기하에 기록된 사건들은 반드시 사건이 일어난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은 아니다. 게하시와 왕과의 대화는 아마도 왕이 백성들의 불평을 들으려고 할 때에 성문에서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여호와께 헌신한 종이 탐심으로 인하여 수치와 거절을 당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신성 모독(베드로의 경우), 또는 간음(다윗)인 듯하지만, 사실은 탐욕이라는 감추어진 죄인 것이다. 탐심이 모든 죄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또는 어떤 사람을 탐하게 되면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범하지 못할 죄가 없는 것이다. 여호와의 종 엘리사는 물질적인 소득을 위하여 살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다. 게하시는 여호와와 돈이라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과 우상 숭배를 동일하게 본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7장 22절에서 탐심을 육의 무서운 죄와 관련시켜 생각하신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9절에 나오는 “이방인의 죄의 목록“에 탐심을 기록한다. 누가복음 12장 13절 이하에서 주님은 탐심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16장 13절 이하에서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해 가는 것을 보여 준다(엡 5:3 참조).
2-3절에 나오는 하녀와 게하시를 대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녀는 노예였으나 여호와를 위하여 즐거이 증거하였던 반면에 게하시는 자유로운 자로서 그의 고국에서 살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또한 그녀는 나아만을 구원의 장소로 인도한 반면, 그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녀는 물질적인 소득은 없었으나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고, 게하시는 재물을 가져왔으나 모든 것을 잃었다."
왕하 6:1-
▣ 엘리사의 기적들-열왕기하 6-8장-
이 부분에서는 엘리사의 기적과 사역에 대해서 다룬다. 기적 중에서 더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행하였으며 더러는 민족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행하였다. 어느 경우에서나 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 일은 결코 없었음을 보게 된다.
1. 도끼날을 되찾아 줌(6:1-7)
선지자들의 학교 중에서 하나가 커지고 있어서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되었음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국내 선교사들이었으며, 엘리사에게 훈련을 받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미래사역자들을 훈련시키는 복음 전도 학교는 중요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지원을 받기에 합당하다. 엘리사가 너무 바쁘거나 교만하여 건축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음에 유의하자. 물론 그가 함께 있다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격려가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생도들은 가난하였으며 적어도 한 사람은 도구를 빌려 와야할 정도였다. 도끼가 물에 빠지자 생도는 두려워하였으나, 엘리사는 도끼를 도로 찾아 주었다. 빌려 오는 것은 죄가 아니다. 빌려 온 것은 잘 관리하여 돌려 주어야한다. 하나님은 물론 그의 백성의 개인적인 필요에 관심이 있으시며, 우리의 마음에 부담을 주는 작은 일에조차 관심을 가지신다.
왕하 6:8-23
2. 수리아의 침략자들을 사로잡음(6:8-23)
수리아왕은 한 떼의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노략질하고 있었다(5:2).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적의 모든 동태에 대해 계시하고 계셨다. 시편 25편 14절에는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엘리사가 비록 사악한 왕 여호람을 존중하지는 않았지만(3:13-14) 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이들을 보호하기를 원하였다. 왕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귀를 기울일 정도의 지혜가 있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다. “엘리사가 숨겨진 첩자“라는 말이 들리자 수리아왕은 그를 잡으려 일단의 군인들을 보냈다. 엘리사의 종(분명히 게하시를 대신한 사람일 것이다)은 자기의 성읍에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끝이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의 눈을 열어 엘리사를 구하려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천군을 보게 하셨다.16절이 그 날의 유대인들에게 진실이듯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진실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것인가?“
엘리사는 그의 종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였으나, 침략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는 이중의 기적을 행하였다. 따라서 사마리아에게 있어서 그 군대를 사로잡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수리아인들의 눈이 뜨였을 때 자기들이 적의 성읍에 있는 것을 알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엘리사는 그 군사들을 죽이려는 이스라엘왕을 금지시켰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로잡으셨으므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엘리사는 자비함으로 그들을 패배시켰다(롬 12:20-21/잠 25:21-22/마 5:43-45). 이 때로부터 수리아는 이스라엘의 성읍에 침입하도록 은밀한 “특공대“를 보내는 일이 없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시 46편 참조)."
왕하 6:24-7:20
3. 성을 구함(6:24-7:20)
6장의 23절과 24절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침공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은 작은 무리가 아니라 전 군대를 동원하였다. 수도는 포위되었고 거의 식량이 고갈되었으며, 최하의 음식이 가공할 만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25절에 나오는 “비둘기의 똥“이란 가장 값싼 종류의 곡식인 듯하다. 그러나 굶주린 백성들은 동물들도 먹지 않는 것을 먹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백성들 중의 어떤 이들은 사람을 서로 잡아 먹기까지 하고 있었다. 사악한 왕 여호람이 이 기근을 엘리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의 아버지 아합의 말을 복창한 것이다(6:31/왕상 18:17).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왕의 사자는(엘리사는 그를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이상한 예언을 받았다. 다음 날 사마리아는 구원을 받게 되며 먹을 식량이 많게 되리라는 것이다. 7장 1절에서 엘리사는 정가의 1/15의 가격으로 여섯 배의 음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왕의 수령 중의 하나가 불신앙을 표명하자 엘리사는 그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맹세하였다(7:17-20).
참호를 파고 진을 친 수리아 군인들을 파멸시키는 데 하나님은 어떤 무기를 사용하셨는가? 시끄러운 소음과 네 명의 문둥병자였다. 한 떼의 용병들이 그들에게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여 수리아인들은 진 중에 재물과 양식을 남겨둔채 도망하였다. 합리적으로 생각한 네 사람의 문둥병자는 자유 가운데 굶어 죽는 것보다는 죄인의 몸으로 먹는 것(또는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9절은 확실히 복음이었으며, 위대한 선교 사역의 본문이다! 참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을 암송해야 한다. 사마리아 성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이 기쁜 소식을 듣자 달려 나갔으며 불신앙적인 수령을 발 아래 짓밟았다. 그는 좋은 소식을 듣고 예언이 증명된 것을 보았으나, 그것을 누리게 되기 이전에 죽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미루는 죄인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다."
왕하 8:1-6
4. 수넴 여인을 보호함(8:1-6)
1절을 읽어보면 “엘리사가 말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은 7년 전에 온 땅에 기근이 들 것에 대하여 그녀에게 경고하였었다(4:38 참조). 7장에 설명된 기근은 사마리아 성읍에만 제한된 지역적인 기근이 아니었다. 게하시가 왕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나아만의 병고침이 있기 전에 있었던 것임을 시사한다(5장). 그 여인은 엘리사에게 순종하여 자기의 재산을 구하였으며 블레셋에서 임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돌아 왔을 때 누군가 그녀의 재산을 몰수했음을 알았다. 그녀가 자신의 경우를 호소하려고 왔을 그 순간에 게하시가 왕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지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수 년 전에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날 것을 정하셨으며, 그녀의 잃었던 땅을 되찾을 수 있었던 기적도 정하셨던 것이었다(4:18-37). 우리는 지금 당하는 시련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들은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신자들이 빼앗기지 않을 유업을 가지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벧전 1:4/엡 1:14/엡 1:18)."
왕하 8:7-29
5. 왕을 심판함(8:7-29)
하나님은 하사엘 왕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엘리야 선지자에게 명령을 하신 일이 있었다(왕상 19:15).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기의 후계자가 되도록 기름을 부었는데, 엘리사에게는 하사엘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볼 일이 남아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들의 실패에도, 불신자들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적이었으나 위기가 오자 도움을 받으려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향하였다. 세상의 사람들과 얼마나 비슷한가! 그는 엘리사에게 정교하게 만든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 그가 그 선물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만일 받았다면 선지학교를 위하여 썼을 것이 분명하다. 엘리사가 하사엘에게 한 기이한 대답에 주목하자.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사엘이 그의 왕에게 14절에서 인용한 첫번째 말은 그의 회복이 확실한 것처럼 꾸미고 있다. 두번째 언급은 왕을 죽임으로써 성취되었다(15절).
11-13절은 주의깊게 연구해야 한다. 하사엘에게 이상한 응답을 한 후에 하나님의 사람은 오랫동안 그 방문객을 노려보았다. 사실상 엘리사는 하사엘의 사악한 마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방문객이 왕을 살해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사엘은 자기를 부끄럽게 하는 이상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당황하였으며, 그 반면에 엘리사는 울었다. 사악한 방문객은 마음의 죄를 덮으려고 하였으나 그러기에는 엘리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엘리사는 울면서 “네가 이스라엘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무서운 죄악을 설명하였다. 하사엘은 이러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으나, 자신의 마음이 사악함을 인하여 충격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극도로 사악하기“ 때문이다. 엘리사의 마지막 말은 “당신이 수리아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그 일을 성취하도록 하는 대신 하사엘은 앓고 있는 왕을 침대에서 질식시킴으로 성취하였다. 후에 역사는 엘리사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나타냈다. 왜냐하면 하사엘은 그의 치리 기간 동안에 무서운 범죄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10:32-33/13:3-7/13:22).
본 장의 남은 구절들은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요람과 여호사밧은 여호사밧의 마지막 통치 기간 동안에 서로 섭정을 한 듯하다. 이들 민족의 왕들이 여로보암과 아합의 나쁜 본을 따르는 것을 보게 됨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치적인 쇠퇴와 백성들의 죄로 점철된 이 기간에 하나님은 엘리사와 헌신한 선지자 생도들을 사용하셔서 백성 중에서 믿음있는 사람들을 불러내셨다. 전체의 나라가 구원을 받을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도 전 세계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사람들을 불러내신다. 신자로서의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하여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내도록하는 일이다."
왕하 9:1-13
▣ 예후의 통치-열왕기하 9-10장-
이 두 장은 폭력과 피흘림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에게 그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예후왕은 여호와의 손에 붙들린 복수의 도구였다(9:7). 비록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그의 열성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지만(10:16), 그는 지나치게 피에 굶주려 있었던 것 같다. 호세아 1장 4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무자비한 살인 행위로 인하여 예후의 집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예후는 이것을 “여호와를 향한 열성“이라고 불렀으나 그의 살육을 통하여 여호와를 영광스럽게 하지 못한 육신적이고 죄악된 동기를 볼 수 있다.
1. 기름부음(9:1-13)
아합의 아들 요람(여호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당시에 아하시야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었다. 두 왕은 수리아왕 하사엘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동맹을 맺었다(왕하 8:25-29). 요람은 전쟁 중에 상처를 입고 이스라엘에서 치료하고 있었으며, 아하시야는 그를 방문하러 그곳에 와 있었다. 예후는 이스라엘의 군대에서 존경받는 대장이었으며, 전쟁의 주역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사악한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 아합의 경호원 중의 하나였었다(9:25-26). 엘리사가 직접 예후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아니었다. 그를 알아보고 폭행을 가해 올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의 생도“를 급히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어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서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다. 이 일은 여러 해 전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었다(왕상 19:15-17). 젊은 선지자는 재빨리 순종하였다. 그는 전략 회의에 나타나 예후에게 개인적인 방으로 들어갈 것을 청하여 그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으며 올 때와 같이 재빨리 떠났다. 예후는 자기의 사명을 알았다. 그것은 아합의 집을 쓸어 버리는 것이었으며, 아합과 이세벨과 그 자손들이 흘린 무죄한 피를 복수하는 것이었다(9절/ 왕상 15:29/왕상 16:3-11 비교).
군인들은 선지자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예후는 군인들이 이 모든 일을 진행시킨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들에게 “그대들이 그 사람(선지자)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고 말한다. 예후는 그들이 은밀하게 군대를 일으켜 왕에게 반역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시인하였다. 그래서 예후는 그 사자가 한 말을 전해 주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에게 순복하는 것이었고, 그를 왕으로 선언하였다. 15절에서 새로운 왕은 자기의 기름부은 것에 대해 자기의 중요한 임무를 성취하기까지는 기름부음 받은 것을 비밀에 붙이도록 조정하였다. 만일 이 말이 이스르엘에 있는 두 왕에게 전해 진다면 예후의 갑작스런 공격은 방해를 받을 것이었다."
왕하 9:14-10:28
2. 복수(9:14-10:28)
요람왕의 죽음(9:14-26)-앓고 있는 왕은 이스라엘에 있었으며, 아하시야가 그를 방문하러 와 있었다. 하나님은 심판의 시간에 두 왕이 함께 있도록 배정해 놓으셨다. 왕은 예후를 차단시키기 위하여 사자들을 보냈으나 예후는 그들을 위하여 멈추거나 어떤 것도 알려 주기를 거절하였다. 보초가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유명한 장군은 마차를 “사납게 모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느 정도 방어를 할 수 있었을 성에서 기다리지 않고 두 왕은 예후를 만나러 나갔다. 아마도 그들은 대 장군이 이 전쟁에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후는 우선 요람을 노렸으나 사악한 군주는 예후의 말을 듣고 등을 돌려 도망하였다. 예후는 뒤에서 활을 쏘아 쉽게 그를 죽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왕이 죽은 장소가 약 20년 전에 아합이 나봇에게서 빼앗은 땅 위였던 것이다(왕상 21:17-24).
아하시야왕의 죽음(9:27-23)-그도 역시 도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사람들은 사마리아 왕국(사마리아성이 아님)으로 뒤쫓아가 므깃도에서 그를 죽였다(대하 22:9 참조). 그의 종들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장사를 지내도록 허락을 받았다. 아하시야는 요람의 매부였으므로(8:18), 아합의 집에 대한 심판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세벨의 죽음(9:30-37)-왕의 어머니인 이세벨은 이스라엘에서 여전히 많은 권위를 행사하였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심판의 시간이 왔으며, 아무도 그녀를 보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예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담대하게 새로운 왕을 맞으러 나갔다. 그녀는 “눈을 그리고“ 머리에 왕관을 썼다. 그녀는 왕비답게 죽고자 하였다. 31절의 그녀의 언급은 열왕기상 16장 9-20절로 우리를 인도해 가는데, 거기에는 시므리가 왕을 죽이고 7일간 통치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사악한 이세벨은 예후를 뇌물로 매수하여 그녀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보좌를 더욱 안정되게 하라고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왕궁에 있는 몇 명의 시종들은 윗창문에서 여왕을 내던짐으로써 예후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예후는 자기의 말들과 마차로 그녀의 시체 위를 달려 그 일을 끝냈다. 그리고나서 그는 왕국을 차지하고는 왕성한 식사를 즐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시하여 죽은 왕비를 장사지내게 했으나, 개들이 이미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먹은 후였다.(왕상 21:23 참조)아합 자손들의 죽음(10:1-17)-아합의 70명의 후손들(아들들, 손자들, 등)은 사마리아에서 살고 있었으며, 예후는 그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장로들에게 공식적인 편지를 써서(이세벨이 했던 방법/ 왕상 21:8-14) 이르기를 “아합 집안에서 우수한 자를 뽑아 예후와 그의 신하들에게 대항하여 싸우게 하라“고 하였다. 장로들은 싸우기를 두려워하여 즉시로 화평을 간청하였다. 예후는 두번째 편지에서 70명의 자손들의 머리만 가져오라고 제안하였다 그 날 저녁 사람들이 머리들을 가지고 왔으며, 다음 날 아침에 예후는 성문으로 들어가면서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9절에서 그는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 무죄한 체하는것 같다. 10절에서는 살해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라고 확신을 준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예후의 말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보다도 아합의 집을 도륙하는 데 더 마음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2-14절에서 그는 아하시야의 사촌 42명도 죽였다. 17절에 보면 예후가 수도인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의 남은 가족들을 진멸했음을 알 수 있다.
바알 숭배자들의 죽음(10:18-28)-예후의 마음은 목적으로 방법을 정당화시켰다. 그래서 그가 백성들에게 “바알 숭배에 있어서, 나는 아합보다 더 열성적이다“라는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 음모에 여호나답을 가담시켰는데 그는 그 땅에서 우상 숭배를 제거하는 데 헌신한 유대인이었다. 레갑 집안에 대하여 더 알아보려면 예레미야 35장을 보라. 사마리아에 도착하여 예후는 바알을 섬기겠다는 자기의 의향을 널리 알리었고, 백성들은 그를 믿었다. 바알의 충성된 추종자들을 바알의 산당에 모이게 하고 군대를 밖에 세워 두고는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사람들이 실수로 이교의 전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깊게 군중을 점검하였다. 예후 자신은 이 의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의식이 끝나자 지키던 사람들이 바알의 추종자들을 죽였으며, 우상의 형상들과 전을 파괴하였다 “산당은 변소로 바뀌었으며“ 영속적으로 불결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하여 듣고, 움츠러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에 회개하고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후의 열성이 이 일을 해 낸 것이지만 그의 동기가 반드시 영적인 것만은 아니었으며, 그는 죄악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 해를 기다렸으며, 하나님의 자비가 그것을 받을 만하지 못한 민족에게 닿을 동안 심판은 “잠을 자고“ 있었다. 죄인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은혜의 때를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왕하 10:29-3
3. 방종함(10:29-36)
하나님은 예후가 순종한 것을 칭찬하시고 4대에 걸쳐 안정된 보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15:1-12 참조). 그러나 예후는 여호와의 말씀을 간직하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 숭배로 곧장 되돌아 갔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있는 죄들을 판단하기가 쉬우나, 우리 자신의 삶에서 똑같은 죄들을 보지는 못한다(마 7:1-5 참조). 하나님은 수리아 왕 하사엘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영토를 빼앗게 하심으로 예후를 징계하셔야 했다. 그는 28년 동안 통치하였다. 호세아 선지자는(호 1:4) 하나님께서 예후의 집에 대해 이스르엘에서 흘린 피를 복수할 것이라고 알렸으며,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셨다. 예후는 여호와를 포기했었으며 이제 여호와께서는 네 세대가 지난 후에 그와 그의 씨를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후와 관계된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근본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자비는 오랫동안 기다려 주기는 하지만 주님의 심판의 말씀은 성취된다. 죄인은 흔히 거짓된 평화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심판의 검이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올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불경건한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죄와 저주로 인도해 간다. 아합이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과 바알 숭배를 따라간 일은 그 집안과 국가를 어두움과 운명으로 인도해 갔다. 한 사람이 백성을 죄 가운데로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할 수 있으나, 그런 후에 스스로 철저하게 순종하는 데 실패할수 있다. 예후가 만일 여호와께 대하여 계속해서 열심이었다면 그의 통치는 특별히 축복되었을 것이나, 자신이 오히려 우상을 숭배한 일은 그와 가족을 정죄받게 하였다.
왕하 11-12/대상 22-24
▣ 이스라엘의 변절-열왕기하 11-16장-
이 장들에서는 유다에서 다섯 왕, 이스라엘에서 여덟 왕, 모두 열 세 명의 왕들을 다룬다. 각 왕의 생애들을 점검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다섯 왕에 대하여 촛점을 맞추고 그들의 생애를 통하여 교훈들을 얻기로 하자.
1. 요아스-소년 왕(11-12장/ 대상 22-24장)
보호를 받음(11:1-3)-왕의 모친 아달랴는 자기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것을 보고 왕의 가족을 쓸어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경쟁자가 나타나 그녀로부터 보좌를 훔쳐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한 어린 소년이 구출되어 7년 동안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다윗의 씨가 유다의 보좌를 유지해 가리라는 그의 약속을 성취하셨다. 역대하 22장 11절은 요아스의 생명을 구한 경건한 여인은 사실상 그의 숙모, 즉 아사랴의 이복 누이이며, 거룩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음을 말해 준다. 사단의 씨는 하나님의 씨를 전멸시키려 하지만, 싸움의 승자는 하나님이시다.
왕으로 선포됨(11:4-21)-여호야다는 섭정 왕후가 전혀 음모를 눈치채지 못하게 전체의 계획을 진행시켰다. 그는 사악한 아달랴가 행동하기 전에 레위인들과 경호원들을 각 위치에 배치했다. 그녀가 나타났을 때는 그녀의 죽음을 의미했다. 호위대가 오래 전에 다윗이 노획했던 성전의 무기들을 사용하였음을 주목하자(10절). 그러나 일은 “정권의 변화“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종교적인 부흥 운동이기도 하였다. 어린 요아스에게 율법 책이 주어졌고(12절/ 신 17:18) 그는 여호와와 백성을 섬길 것을 맹세하였다. 일단 그의 보좌가 견고해지자, 왕은 “성전을 정결케“ 할 것과, 바알 숭배자들과 그들의 우상을 제거하도록 허락하였다. 부흥에는 “헌신“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듯이 “심판“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하나님께 축복받음(12:1-16)-여호야다는 어린 왕의 영적인 안내자였으며, 통치 초기에 있어서 요아스는 기꺼이 이 안내자를 따랐다. 바알을 숭배한 아달랴는 여호와의 집을 수리하지 않고 퇴락하게 버려 두었으므로 여호야다와 왕은 성전을 수리하여 복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계획을 위한 경비 조달의 첫번 계획은 제사장들이 서원을 하거나 제물을 바치려고 오는 사람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이었다(4-5절). 그러나 오랜 후에 이 정책은 폐지되었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제물과 서약을 위하여 바치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으며, 임의대로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성전문 곁의 놋제단 바로 옆에 헌금 상자를 두었다. 백성들은 관용적인 반응을 보였으므로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으게 되었다. 일군들은 정직하고 충성스러웠으므로 자금이 사용된 데 대하여 특별히 계산하는 일은 없었다.
죄로 인하여 패망함(12:17-21)-역대하 24장 15-27절은 거룩한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130세에) 왕은 타락하기 시작하여 사실상 우상 숭배에 들어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주님께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묶여 있다는 것은 대단히 나쁜 일이다. 하나님은 왕을 경고하려고 선지자들을 보냈으나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선지자들 중의 하나는 스가랴였으며, 그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이며 요아스의 사촌이었다(대하 22:11). 왕은 그의 말을 듣기는커녕 성전 뜰에서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예수님은 이 살인에 대하여 마태복음 23장 34-35절에서 언급하셨다.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자, 요아스는 수리아의 침략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전의 재물을 하사엘에게 줌으로써 그를 매수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고백하고 주께 돌아오는 대신에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것을 훔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유감스럽게도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무죄한 죽음을 복수하려는 자기의 종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왕하 13
2. 요아스-잃어 버린 기회(13장)
첫 9절까지에서 우리는 요아스의 아버지인 여호아하스에 대하여 읽는다. 이 요아스를 11-12장에 나오는 유다의 어린 왕과 혼동하지 말자. 이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왕이였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14장 8-14절에서는 이 왕이 유다왕 아마샤를 멸망시킴을 보게 된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에 요아스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임종을 맞게 되었다. 엘리사는 그에게 수리아를 단번에 모두 멸망시킬 황금의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그 기회를 사용하는 데 실패했다. 25절은 그가 세 번만 이겼음을 말해 준다. 여호와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크고 놀라운 기회들의 이 점을 취하지 못할 때 얼마나 비극이겠는가! 오늘의 잘못된 결정은 내일의 패망을 뜻하는 때가 많다. 20-21절에 나오는 비범한 기적은 거룩한 사람이 죽은 후에조차 가질 수 있는 능력의 영향력을 암시한다.
왕하 14/대하 25
3. 아마샤-교만으로 인하여 패망함(14장-대하 25장)
이 왕은 여호와께 순종하여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살인자들을 복수함으로써 좋은 출발을 하였다(12:20). 그가 6절에서 신명기 24장 16절에 엄격히 순종하는 것을 눈여겨 보자. 하나님은 에돔과의 싸움에서 그에게 큰 승리를 주셨다. 그러나 역대하 25장 14-16절은 그가 돌아오면서 에돔의 이방신을 들여와서 패전한 적의 신들을 섬겼다고 말한다. 우상 숭배와 교만이 조화를 이루자, 그는 이스라엘왕 요아스를 간섭하며, 전쟁을 일으키려는 충동을 느꼈다(13:10-13). 이스라엘왕은 지혜로와서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9-10절에 나오는 그의 비유가 이를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샤는 약간 가시돋힌 성격이었다. 결과는 자명하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유다는 이스라엘에게 심히 패전하였으며 예루살렘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여호와의 보고는 비게 되었다. 만일 아마샤가 자기 자신의 땅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떤 음모에 걸려 죽음을 당하였다고 전한다(대하 25:25-28)."
왕하 15/대하 26
4. 웃시야-유다의 위대한 왕(15장/ 대하 26장)
웃시야는 “여호와의 힘“이란 뜻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아사랴인데 “여호와의 도움을 받다“는 의미이다. 그가 보좌에 오른 것은 열 여섯 살 때이며, 그의 건전한 지도력 아래 나라는 새로운 생활과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를 영적으로 지도한 사람은 스가랴였는데(대하 26:5), 이 사람은 요아스를 섬긴 스가랴와는 다른 사람이다(왕하 12:17-21). 하나님은 웃시야에게 블레셋과 아라비아 민족들을 크게 이기도록 하셨다. 그는 나라의 대규모 건설 계획을 이끌어 갔으며 특히 관개 분야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의 군사적인 위업 또한 현저한 것이었는데, 삯을 받는 전쟁에서 그는 최신의 기계를 사용하였다. 선지자 이사야가 소명을 받은 것은 웃시야왕이 죽던 해이다(사 6장).
교만은 그의 멸망을 가져왔다(대하 26:16). 그가 성전에 들어가서 향을 피웠으므로 하나님은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 그의 아들 요담은 웃시야가 죽을 때까지 몇 년간 그와 함께 통치하였다. 그의 죽음은 유다에 큰 애도를 가져왔다. 그는 52년간 통치하였으며, 그의 치리 기간 동안 나라는 가장 안정을 누렸고 번영을 이루었다.
15장 8-31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다섯 왕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본다. 스가랴는 단지 6개월만 통치하였고 살룸에게 암살을 당하였으며, 이리하여 여로보암의 왕조는 4대에서 그치게 되었다(왕하 10:30/암 7:9). 살룸은 한달간 치리하였으며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했다. 므나헴은 10년간 통치하였으며, 이방인들도 놀랄 사악한 행동을 하였다. 그를 계승한 사람은 브가히야로서 2년을 치리하였는데, 그 다음은 베가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 시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왜냐하면 나라가 여호와께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왕하 16/대하 28
5. 아하스-타협의 대가(16장-대하 28장)
이 유다의 왕은 대단히 사악하여 자기의 아들을 희생제물로서 몰록에게 드리기조차 하였다. 그는 16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의 행적 중의 하나는 바알에게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헌납한 것이었다. 나중에 요시야왕은 그 골짜기를 속되게 사용하였으며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만들었다. 지옥을 상징하는 헬라어의 “게헨나“는 “게힌놈“(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나님은 수리아가 그를 대항하게 하심으로 그를 벌하셨으며(그의 선조들처럼),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에서 훔친 것으로 그를 원조하도록 앗수르인들을 매수하였다.
그가 앗수르왕과 친교를 가진 일은 더욱 큰 문제로 이끌어 갔다.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이교 제단을 보고 그것을 예루살렘에 복제하려 하였다. 사실상 그의 새로운 제단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성전의 제단을 대신하였다. 세상을 흉내내기란 얼마나 쉬운가! 역대하 28장 20-27절은 앗수르와의 이 친교가 아하스를 우상 숭배로 인도해 갔으며, 앗수르왕은 결국 재물만 빼앗아 갔을 뿐 유다를 전혀 돕지 못했다. 17-18절에서 우리는 아하스가 여분의 금 장식품들을 감추어서 앗수르왕이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을 본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보좌를 이어 받았으며 이는 여호와의 축복을 구한 경건한 왕이었다. 아하스는 타협하려고 하였으며 자기의 방식대로 승리를 사려고 하였으나, 수치와 패배로 이끌려 갔을 뿐이었다."
왕하 17:1-6
▣ 이스라엘의 멸망-열왕기하 17장-
이 긴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과, 어떻게 하여 북왕국이 결국 유배당하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앗수르는 주전 722년에 그 민족을 정복한 후에 사마리아(북왕국의 수도)를 빼앗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 승리가 될 수있었던 것이 패전으로 바뀌어 졌고, 이 일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장 보잘것 없는 일로 만들어 놓았다.
1. 사마리아의 함락(17:1-6)
호세아는 앗수르의 협력을 얻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앗수르왕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사악한 왕으로 알려져있으나(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20명의 사악한 왕이 있음), 그의 죄들은 그의 선조들만큼 나쁜 것은 아니었다. 2절은 호세아가 그 민족을 보다 나은 길로 인도하고 싶어한 것을 암시한다. 역대하 30장 6-11절은 그가 경건한 히스기야왕이 초청한 큰 유월절에 그의 백성이 참가하도록 허락한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왕은 자신을 앗수르에 팔았으며, 바꾸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말하기는 슬프지만, 그는 연례적인 조공을 바치기를 거절하고 애굽과 은밀한 협정을 맺음으로써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도움을 청하려 “애굽에 내려가기를“ 얼마나 좋아하였는가 !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원을 받기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예레미야 17장 5-7절과 호세아 7장 11-13절에는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선지자의 태도에 대해 묘사되어 있다.
앗수르는 이 반역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그들의 군대는 북왕국을 짓밟았으며, 마침내는 수도인 사마리아에 집결하였다. 사마리아는 방비가 든든한 성이었으며, 앗수르가 그 성을 점령하는 데에는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백성은 여호와를 버렸고, 하나님은 이미 그들이 포로될 것을 말씀하신 터였다. 앗수르는 “농작물의 정수“(최고의 시민들)를 그들의 땅에서 데려가는 것과 다른 곳에서 포로되어 온 외국인들로 그 빼앗은 땅을 식민지화시키는 정책을 썼다. 250년 간의 계속적인 죄와 반역 끝에, 결국 이스라엘 민족(북왕국)은 적에게 포로가 되어 수치와 패전의 불모지에 남겨지게 되었다. 만일 이스라엘의 첫왕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길로 행하여 그의 민족을 율법에 순종하도록 이끌어 갔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로보암이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인도해 갔음을 본다. 그의 후계자들도 “이스라엘을 죄에 빠지게 한 여로보암의 죄 가운데 행하였다(왕상 16:19/왕상 16:26/왕하 3:3).단과 벧엘에 둔 금송아지들은 이스라엘을 곁길로 인도해갔다(왕상 12:25-33)."
왕하 17:7-23
2. 포로된 경위(17:7-23)
역사란 단순히 인간의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다. 왜냐하면 각 민족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에서는 성령께서 사마리아가 망한 이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라들을 존경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처럼 혹독하게 징계하셨다면 오늘날 그에 대항하여 반역하는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은 어떠하겠는가! “역사(History)는 그 분에 대한 이야기(His story)이다.“
백성이 하나님을 잊음(7절)-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속하셨으며 그들을 값주고 사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연중 행사인 유월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케 하였으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잊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여러 번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기억하며 그의 자비를 잊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신 10:6- /신 8:1- 참조).
백성이 은밀히 불순종함(8-9절)-하나님은 가나안에 있는 이방 민족들과 섞이지 말라고 그들을 경고하셨었다(신 7장).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밀하게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마음이 육욕에 차서 점차적으로 그들 주위의 이교 숭배에 굴복하였다.
백성이 공개적으로 반역함(10-12절)-은밀한 죄로 시작한 것은 궁극적으로 공개적인 죄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극시켰다(출 20:4/신 4:16/신 5:8 참조).
백성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저항함(13-15절)-여호와는 그들을 경고하고 그들과 변론하도록 거룩한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이 민족은 고집스럽게 반역을 하며 목을 곧게 하였다(출 32:9/출 33:3/행 7:51 참조). 그들은 성령으로 씌어졌으며 그들을 축복하려고 주어진 율법을 거절하였다. “허무한 것(헛된 우상들)을 좇아 허망하며“라는 15절의 말씀은 대단히 두려운 선언이다.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것처럼 되어 진다(시 115:1-8 참조).
백성이 스스로 악에게 팔림(16-23절)-그들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 여로보암이 세웠던 금송아지조차도 이스라엘의 육욕에 찬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하였다. 이들은 가나안의 신들을 예배했을 뿐아니라 다른 나라들로부터 신들을 들여왔다. 하나님은 왕국을 분열시키시고(18절), 다윗의 집안으로 하여금 유다를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나 유다도 역시 죄에 빠져 들어갔다. 하나님은 그 민족을 “약탈자“에게 넘기셨는데(2절), 이 약탈자들은 그들의 나라 안에도 있었고 “산울타리“ 밖에서 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왕으로부터 노략질당하였으며, 적들로부터는 공격을 받았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셨으나, 백성들은 맹목적으로 이 죄에서 저 죄로 옮겨 다녔다.
구약은 20명의 이스라엘왕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사악했다.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되기까지는 250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들은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으나 여호와께 무릎꿇기를 거절하였다. 배교에 대해서는 치료책이 없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심판하시는 일 뿐이며 남은 신자들을 취하여 다시 시작하는 일뿐이다."
왕하 17:24-41
3. 사마리아의 식민지화(17:24-41)
앗수르왕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외부로 내보낸 후에, 자신의 통치 아래 있는 다른 민족들로부터 시민들을 이끌어 들였다. 이러한 이주 정책은 이스라엘이 조직화하여 반역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구절들은 사마리아인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들은 곧 요한복음 4장과 사도행전 8장에서 보게 되는 혼혈의 사람들인 것이다.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온 신앙의 그루터기 유대인들, 즉 정통 유대인들은 이 “혼혈“의 민족과는 상종을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예배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으며 구원은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것임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요 4:22).
초기에는 사마리아에 종교적인 신앙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에 경외심을 주기 위하여 사자떼를 보내셔야만 했다(사 25장 참조). 그러나 지도자들은 가장 특이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들은 유대의 제사장들을 데려다가 여호와의 도를 배웠다. 그리고는 여호와와 자신들의 민족적인 신을 동시에 섬기도록 하였다.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었다“고 29절은 말한다. 이것은 옛날의 “에큐메니칼 운동“(교회연합운동)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눈여겨 보자(25, 28, 32-34, 41절). 그들은 여호와를(“그 땅의 신“으로/ 27절) 경외하였으나 정작 예배하고 섬긴 것은 그들 자신의 신이었다(33절). 그들의 여호와께 대한 예배는 공허한 형식이었으며 단순해 외적으로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진심으로 예배한 것은 자신의 이교 신상이었으며, 여호와는 다만 그들이 신을 수집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신“에 불과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땅에 심판의 엄한 손이 임한 것을 보고서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버티었다. 궁극적으로, 우상 숭배의 암적 영향은 유다에게로 퍼져갔으며 주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파괴하였다. 한 떼의 남은 자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로 돌아 왔으며 민족은 다시 꽃피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자기 백성에게 보내셨을 때 이들은 그를 거절하였으며, 다시 한 번 심판이 임했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민족은 온 세계에 흩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나라는 복되도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의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 시민들로 하여금 나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동기를 주게 된다. 거룩하지 못한 지도자들은 거룩하지 못한 시민의 세대를 산출하며(41절), 타협적인 제사장들은 예배자들을 여호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인도해 간다. 여호와의 말씀이 거절당할 때(34-38절), 민족의 장래에는 희망이 없다. 자비가 연장될 수는 있으나(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250년을 참으셨다!) 최종적으로는 심판이 임할 것이다. “배교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교훈이다. 일단 교회나 교파, 또는 민족이 여호와께 등을 돌리면 하나님은 심판하시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충성된 믿음의 “그루터기“를 구원하셔서 다시 증거를 시작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자를 축복할 수는 없다."
왕하 18-19
▣ 히스기야의 통치-열왕기 하 18-20장-
우리는 이제 유대 역사에 있어서 가장 흥미진진한 기간의 하나인 경건한 왕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한 연구에 들어섰다(사 36-39장/ 대하 29-32장 참조). 사마리아(북왕조 이스라엘)는 앗수르에게 몰락하였고, 이제 적은 유다를 공격하고 있었다. 아하스는 수 년 전에 앗수르와 조약을 맺었으나(16:7-9) 히스기야는 이를 반역하였으므로(18:7/18:13-16), 적의 침략을 초래하게 되었다. 사실상, 이 세 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정확한 순서에 따라서 기록된 것은 아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난 것은 포위를 당하고 있는 동안이었다(20:6 참조). 그는 회복된 후에 바빌로니아 지도자들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29년을 통치하였으며(18:2), 회복한 후로는 15년을 통치하였다. 그리고 침략은 그의 통치 기간의 14년 째에 발생하였으므로(18:13) 발병과 침략을 받게 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 된다. 히스기야가 직면해야 했던 세 종류의 적들과, 그가 이 적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주목하여 보자.
1. 앗수르의 침략자(18-19장)
히스기야의 개혁(18:1-8/대하 23-32 장)-이 경건한 왕은 즉각적으로 그 땅에서 우상 숭배와 죄를 제거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성전을 다시 열어 수리하였으며 거기 모아 두었던 폐물들을 청소해 냈다. 그리고, 제사 의식을 다시 거행하였는데, 특별히 찬양대와 희생제사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또한 유월절 절기에 전체의 민족(이스라엘을 포함하여)을 소집하였다. 이것은 갱생의 기회였으나, 불행하게도 백성들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변화는 다만 표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사랑했음을 입증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인하여 축복을 내리셨다.
히스기야의 반역(18:9-37)-오랜 동안 이 민족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 왔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반역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하여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왔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는 대신에 두려워서 굴복하였으며 앗수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성전의 것을 훔치기까지 하였다. 이 당시 유다에는 세 당파가 있었다. 첫째는 앗수르에게 항복하자는 당파였고 두번째는 애굽에 도움을 청하자는 당이었으며, 세째는(이사야의 인도를 받아) 이 민족이 구원을 받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자는 파였다 사실상, 앗수르왕은 돈을 받고도 마음을 바꾸어 결국 침략을 하였다. 이사야는 이것을 “배반“이라고 불렀는데(사 33:1-8), 앗수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앗수르 장군들 중의 셋이 유대인들을 조롱하였다(17절/ 이것은 장군들의 계급 이름이다). 이들은 히스기야의 믿음과 지도력을 약화시키려고 하였다. 31-32절은 죄의 속임수를 예화로 보여 주고 있다. 그는 평화와 풍족케 해 줄 것을 약속하였는데 결국에는 포로로 잡혀가기에 이르렀다!
히스기야의 간구(19:1-19)-자기 힘으로는 자신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왕은 성전으로 기도하러 갔다. 2절은 성경에서 제일 먼저 이사야 선지자에 대해 언급된 곳이다. 선지자는 왕에게 “하나님이 유다를 건지시고 앗수르를 멸하시리라“는 평화의 답을 보내었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경들로 인하여 앗수르는 군대를 되돌려 갔다. 그러나 랍사게는 오만한 편지를 보내어 그를 위협하여 항복하게 하려 하였다. 왕은 편지를 성전으로 가져가 “여호와 앞에 펼쳐 놓았다.“ 19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강조를 두고 있는 것에 주목하자. 이것은 기도의 참된 기본이다.
히스기야가 받은 보상(19:20-37)-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관계이다. 히스기야는 기도하였고,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앗수르를 판단하실 것이며 나라들에게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2년 후에는 다시 추수를 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29절).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기도에 응답하셨으나, 유다와 왕이 이같은 자비를 받을만해서가 아니었다(34절). 하나님은 하룻밤에 185,000명의 군사들을 죽이셨으며, 산헤립은 후에 자기의 아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하나님은 애굽의 도움 없이도 적을 무찌를 수 있으셨다(사 30-31장 참조)."
왕하 20:1-11
2. 죽음(20:1-11)
죽음은 “마지막 원수“라고 불리워진다(고전 15:26). 앗수르가 침략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동안 왕이 아프다는 것은 대단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여러 겹으로 오는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대처하시기에 넉넉하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병을 보내셨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히스기야의 불신앙과, 18장 13-16절에 나오는 조공을 기꺼이 바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다른 은밀한 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사 38:17 참조). 이사야 38장 9-20절에 나오는 왕의 찬양의 시는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며, 개혁을 끝마치기 위하여 살아 있기를 원함을 시사한다. 어찌 되었거나, 히스기야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기를 기도했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특별한 치료 방법으로 고치셨는데, 이 때에는 무화과 반죽을 사용하셨다(그러나, 의사에게 가는 것이 불신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15년을 더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해시계의 그림자를 10도 쯤 뒤로 물러 가게 하심으로그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셨다(해시계란 단계별로 시간을 표시하게 된 큰 돌인 것 같다). 왕은 이 일을 그의 창문에서 볼 수가 있었다.
성경 연구자들은 히스기야가 치료를 위해 기도를 했어야만 했는가, 또는 히스기야가 회복된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인가 아니면 그의 허용적인 뜻인가에 대한 문제로 오래도록 논란을 벌여 오고 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 아닐 때라도 기도에 응답하셔서 들어 주시는 때가 있다(시 106:15). 히스기야가 옳지 않았다고 말하는 연구자들은 왕의 마지막 15년이 바벨론과의 악한 동맹을 맺은 때였고(20:12-21), 유다의 가장 사악한 왕으로 밝혀진 므낫세가 출생한 때임을 지적한다(21절). 만일 히스기야가 죽었더라면 유다는 바벨론과 타협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므낫세의 사악한 통치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므낫세는 회개하였고 마침내 여호와를 섬겼다(대하 33:11-13).
반대로, 또다른 이들은 이사야가 운명의 멧세지를 히스기야에게 전했을 때 그에게는 보좌를 상속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의 기도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그 국가를 위한 기도이기도 했다. 20장 1절에 나오는 “집을 처치하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하면 “당신을 계승하여 보좌에 오를 한 사람을 뽑으라“는 말이었다. 하나님은 유다의 보좌에는 언제나 다윗의 자손이 오를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약속 앞에 붙들어 두고 있었다. 그의 모든 아들은 마지막 15년 사이에 태어났다(20:18 참조). 므낫세가 경건하지 못한 왕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이것은 아버지인 히스기야에게는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 다음 왕인 요시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히스기야가 죽었다면 요시야도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경에는 히스기야의 마지막 통치 15년 동안 그가 “히스기야의 사람들“로 더불어(신하들의 기관/ 잠 25:1) 구약 성경을 복사하며 순서를 붙였음을 시사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다. 많은 학자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가 히스기야의 병과 회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엮어진 것임을 믿는다. 또한 히브리 성경 각 권의 끝에는 히브리 문자로 “H Z K“라고 쓴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인 듯하다.
히스기야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 15년을 백성들을 위하여 구약에 차례를 붙이는 일에 헌신하였다. 사람이 사악한 아들을 낳았으므로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말이다. 다윗의 아들들은 솔로몬을 포함하여 사악했었는데 하나님은 왜 다윗을 살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은 아직 잉태되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에 범할 죄로 인하여 그 사람을 죽이시는가? 더구나 왕의 병고침과 예루살렘의 구원은 동시에 일어났다(20:5-6). 성은 구하면서 그들의 왕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었을까?
아마도 이런 면에 대한 문제점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신자는 기도하는 중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가져갈 권리가 있으나, 죽음에 이르는 죄가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요일 5:14-17)."
왕하 20:12-21
3. 바벨론의 방문객들(20:12-21)
앗수르가 무력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바벨론은 책략으로 성취하였다. 사단은 사자요 뱀이다. 병을 고침받고 예루살렘이 구원을 받은 후 히스기야의 교만은 바벨론과의 사악한 동맹을 맺게 하였다. 역대하 32장 25-26절과 31절은 모두 그가 치료를 받은 후 교만하여져서 징계를 초래했다고 시사한다. 왕이 적에게 자기의 재물과 무기를 보게 한 것은 확실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결국은 그 일로 인하여 민족이 고난을 당하였다. 15절에 나타난 왕의 교만에 유의하자. 그는 “나의 집... 나의 보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던 히스기야에게 치료의 기쁜 소식을 전했던 바로 그 선지자는 이제 “보물과 그의 아들들이 바벨론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슬픈 심판의 멧세지를 전해야만 하였다. 하나님은 왕이 자기의 보물과 그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의지하는지의 여부를 시험하고 계셨다(대하 32:31). 므낫세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스스로 겸손케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내셨다(대하 33:11-19).
히스기야가 민족의 장래보다도 당대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됨은 슬픈 일이다. 결정적인 패망이 모퉁이에 있는 때에 일시적인 평화를 누리며 쉬는 것은 가장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의 실수와 죄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위대한 왕으로서 히브리 역사에 기록된다. 그는 성의 방비를 튼튼히 하였고 관개시설을 향상시켰으며, 우상을 일소하였고 백성들을 여호와께 인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여호와 앞에 기도를 펼쳐 놓는“ 방법을 아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왕하 21
▣ 므낫세와 요시야-열왕기하 21-23장-
이 장들에서는 다섯 왕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우리는 주로 두 사람, 즉 므낫세와 요시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몬왕은 2년간 다스렸고(21:19-26), 여호아하스는 3개월만 다스렸다(23:31-33). 여호야김은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요시야와 므낫세를 비교할 때 흥미로운 일은 그들의 영적인 삶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므낫세는 죄 가운데 통치를 시작했지만 순종 가운데서 끝냈고, 요시야는 그의 생애를 순종으로 시작하여 불순종(죄)으로 끝냈다.
1. 므낫세의 통치(21장)
그의 반역(1-9절)-역사가들은 므낫세가 경건한 히스기야와 적어도 마지막 10년 동안 함께 통치한 것으로 본다. 므낫세는 사악한 사람이었는데, 그보다 앞선 누구보다도 그리고 그 후의 누구보다도 더욱 그러했다. 경건한 히스기야가 29년을 통치했는데 경건하지 못한 므낫세가 55년을 치리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원했던 대로, 그리고 받을 만한 대로 주고 계셨다. 히스기야가 무대에서 사라지자마자 므낫세의 본래 성품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히스기야가 헐어 낸 것을 세우고 히스기야가 세운 것을 헐었다. 창세기 26장 18절에 나오는 이삭과 비교해 보라. 경건한 히스기야를 본받는 대신 므낫세는 아합왕의 길을 따랐다.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므낫세는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한다(히 11:37). 므낫세는 그의 우상 숭배를 성 전 뜰로 끌어들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경건한 본보기에 항거하여 반역하였으며 여호와의 법에 대항하였다.
그의 이동(10-15절)-전체의 흐름을 알려면 역대하 33장 11-20절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왕을 경고하셨으나 왕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심판과 유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이 민족에게 알렸다. 유다는 사마리아의 두려운 심판을 목격하였으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합의 집을 다루시던 대로 다윗의 집을 다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13절). 앗수르의 장군들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데려갔으며, 그는 그곳에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의 회개(대하 33:12)-그는 “환란을 당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실례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 중에 사악한 왕을 용서하시고 그의 보좌로 돌아 오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진실로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을 위하여 일하신다.
그의 회복과 개혁(대하 33:13-20/왕하 21:17-26)-므낫세의 회개는 피신하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는 아니었다. 일단 보좌에 돌아 오자,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이 파괴했던 것들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적에 대항하여 예루살렘의 방비를 튼튼히 했으며, 우상과 이상한 제단들을 제거하였고 백성을 여호와께 인도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을 원상태로 돌리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죽기 전에 성취한 일들로 인하여 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므낫세가 히브리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통치하도록 하셨으나 그가 성취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상 그의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심판의 손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이 민족이 포로가 되도록 하나님을 움직인 것은 므낫세의 죄였다(23:26-27).
므낫세왕이 경건한 삶을 살며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충실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다윗을 제외한 유다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을 것이며, 가장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그 시대에 사역을 하고 있었으나, 므낫세는 그의 생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가 회개한 후의 행한 일들을 칭찬한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시정한 것보다는 초기에 입힌 손상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왕들과 함께 장사되지 않았고 개인 동산에 묻혔다.
그의 아들 아몬왕은 아버지의 늦은 개심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의 죄를 본받았다. 아몬왕의 치리 기간은 불과 2년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떤 음모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후 므낫세의 곁에 묻혀졌다."
왕하 22-23
2. 요시야의 통치(22-23장)
아몬왕의 계승자로서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랐다. 우리가 다루는 핵심적인 사건들은 이 경건한 왕의 짧은 생애와 통치를 요약해 준다.
구원(16세, 왕하 22:1-2/대하 34:3)-그가 통치하기 시작한지 8년째 되는 해에 요시야는 여호와를 찾게 되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쳤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여디디야)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애칭“인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삼하 12:25). 그 이름은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레미야와 스바냐도 이 때에 사역하였다.
개혁(20세, 대하 34:3-7)-왕은 이제 그 성과 나라에서 므낫세와 아몬의 우상 숭배를 정화시킬 수 있는 성숙한 나이가 되었다. 요시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전을 복구하는 것이었고 민족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순종을 하기에 앞서 과거의 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시야의 부흥운동“은 표면적인 것이어서 백성들의 마음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요시야의 죽음에 임하여 많이 울었지만, 그가 이른바 “부흥 운동“에 대해서 젊은 왕을 칭찬한 것은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왕과 그의 고문들은 진지했으나 백성들은 따르지 않았으며, 마음은 우상 숭배에 머물러 있었다.
복구(26세, 왕하 22:3-23:28/대하 34:8-35:19)-우상들을 파괴하기는 했으나 요시야는 여호와를 참되게 섬기는 일을 재개하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재건을 해야만 한다. 그는 제사장들에게 돈을 모으도록 명령했으며, 성전을 수리하였다.
재건을 성전을 수리하던 중, 대제사장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오래 전에 버려졌던 모세의 율법 사본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들은 헌물들을 다루다가 그 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책이 은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진 것에 유의하자. 이것은 하나님의 전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었다. 요시야는 율법을 읽는 소리를 듣자 즉각적으로 유다가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여호와께 물었다. 여선지자 훌다는 그 성의 “둘째 구역“(“College“: 22:14)에서 살았으며, 근심하는 왕에게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다. 멧세지의 내용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나, 요시야 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케 하였으므로 심판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요시야는 즉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나라의 장로들과 상의하였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하는 대 예배를 주선하였다. 그는 그 땅의 부패를 일소하는 데에 계속해서 노력하였고, “도벳“(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사람들은 여기서 몰록에게 자기의 자녀들을 제물로 불태워 바쳤다)을 더럽혔다. 왕은 그 골짜기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만들었으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게힌놈)란 이름은 신약에서 “게헨나“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지옥을 생생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올리브산은 “퇴폐의 산“이었으나(23:13), 요시야가 이를 회복시켰다. 그의 일소 기간 동안에 요시야는 사악한 왕 여로보암의 제단을 들추어 내었고, 또한 그에게 경고하였던 선지자의 무덤도 찾아 냈다. 이렇게 하여 요시야는 열왕기상 13장 1-5절에 나오는 예언을 성취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게 돌아가는 일이 결코 없다. 왕은 성전과 율법을 회복하였을 뿐아니라 그 민족이 오랜 동안 소홀히 해 온 유월절도 회복하였다. 그는 자기의 백성이 “값으로 산 바가 되었음“을 기억하기를 원하였다.
요시야의 개혁과 복구가 성취한 일은 무엇인가? 요시야의 시대에는 평화와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므낫세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한 본래의 약속은 철회되지 않았다(22:26-27). 요시야의 거룩한 생활과 사역은 수 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의 손을 유보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포로로 유배당할 일이 닥치고 있었으며 아무도 이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암살(31세, 왕하 23:29-37/대하 35:20-26)-아마도 애굽의 군대는 바다를 통해 와서 블레셋 해변에 상륙한 것 같다. 바로는 그가 유다에 대항하여 싸우지는 않을 것이며, 다만 앗수르를 공격하는 중임을 명백히 하였다. 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지 않았고, 사실상 하나님의 뜻에 고의적으로 불순종한 것 같다(대하 35:22 참조), 그의 변장은 그를 보호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었다. 스가랴 12장 11절을 보면 요시야를 위하여 므깃도에서 큰 곡성이 들렸었다는 암시가 있다. 왕은 잠언 20장 3절과 26장 17절을 마음에 간직했어야 했다. 아마도 이 때에 유다는 앗수르의 동맹국이었고, 함께 행동할 의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바로는 요시야와 전쟁하지 않게 되기를 더욱 바랬던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바로가 그를 퇴위시키고 결박할 때까지 겨우 3개월을 다스렸다. 바로는 요시야의 아들들 중에서 엘리야김을 선택하여 왕을 삼고 “여호야김“(여호와가 그를 일으킬 것이다)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우리는 다음 연구에서 그의 생애와 치리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왕하 24:1-12/왕하 24:17-2
▣ 유다의 멸망-열왕기하 24-25장-
마침내 심판의 때가 왔다. 하나님은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 무서운 진노를 내리심으로써 말씀을 지키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좌와 성전과 성읍과 땅을 주셨으며, 이들 각각에 대해 진노를 쏟으셨다(렘 25-34장/ 대하 36장 참조). 유다에 내린 심판에 유의하자.
1. 왕이 폐위됨(24:1-12, 17-20)
경건한 요시야의 통치가 끝나자 다윗의 보좌는 지속적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연속적으로 점령을 당하였다. 여호아하스는 3개월을 다스렸고 여호야긴(고니야 또는 이고니야/ 렘 22:24)도 그러하였다. 여호야김은 11년 동안 통치를 하였으며, 그의 통치 3년째에 바벨론에 대항하였다(바벨론은 애굽을 패배시켰고, 유다의 적들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여호야김은 주전 604년에 바벨론에게 항복하였으나 601년에 항거하였다. 예레미야의 예언서들을 조각조각 찢어 불태운 사람이 바로 이 부도덕한 왕이었다(렘 36장). 597년에 여호야김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계승하여 석달간 다스렸다.
강력한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주년 597년이었다. 물론 연약하고 믿음이 없는 그는 가족과 더불어 즉시 항복하였으며,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 왕의 삼촌 맛다니야가 다음의 왕이 되었으며, 시드기야라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다(렘 52장 참조). 그는 597년부터 585년까지 11년을 통치하였다. 그는 통치 9년째에(주전 588년) 애굽과 은밀한 동맹을 맺어 바벨론 사람들의 진노를 샀다. 예레미야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결된 동맹은 예루살렘에 마지막 공격을 하도록 바벨론 군대를 이끌어 들인 어리석은 행위였다. 25장 27-30절에서는 여호야긴 왕이 포로 생활의 반 쯤 지났을 때 바벨론의 감옥에서 석방되었다고 말한다. 다윗의 보좌는 실제적으로 이제 비어 있었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예루살렘의 최후의 날은 달랐을 것이다.
왕하 24:13-16
2. 백성들이 추방됨(24:13-16)
18개월에 걸친 성에 대한 무서운 공격이 끝나자, 세 번의 추방이 있었는데, 605년(다니엘이 포함됨), 597년(위의 구절에 언급됨), 587년에 시행되었다. 바벨론은 왕자, 귀족, 군사, 기술자 등의 고급 인력을 그 땅에서 데려가는 정책을썼다. 그리고는 가장 가련한 사람들만을 남겨 두어 자기들의 총독의 지휘 아래 뒤에서 일들을 관리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면 정복된 민족은 저항을 위한 조직을 구성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방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이며(25장), 모세도 율법서에서 예언하였다(레 26장/ 신 28장). 그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피와 우상들로써 더럽혔으며, 더이상 거기서 살기에 적합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들을 쓸어 내셔야만“ 했고, 그럼으로써 다시 한 번 그 땅을 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왕하 25:1-12
3. 성이 파괴됨(25:1-12)
예루살렘성이 파괴된 모습은 예레미야 애가서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은 주전 588년 1월 15일에 시작하여 586년 7월 19일까지 18개월간 포위되었었다. 성에 돌파구가 생기자 백성들은 종말이 임했음을 알았다. 시드기야와 그의 사람들은 도망하려고 하였으나(4-6절), 바벨론 군대에게 차단되었다. 예레미야 32장 4-5절과 34장 1-7절, 또한 에스겔 12장 13절은 시드기야가 도망할 수없음이 예언되어 있다. 그는 바벨론의 왕을 볼 것이지만 바벨론 자체를 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는 느부갓네살을 보았으나 그의 눈은 뽑혀졌고 맹인으로서 바벨론에 잡혀갔다. 한달 후 바벨론 사람들은 성을 불태웠으며, 성벽을 헐어버렸고 성전을 파괴하였다.
왕하 25:13-17
4. 성전이 치욕거리가 됨(25:13-17)
바벨론 군대들은 성전에서 그 재물을 모두 벗겨냈다. 너무 커서 전체를 들고 갈 수 없을 때에는 여러 조각으로 깨뜨려 가져갔다. 놋, 금, 은 기구들이 이방 땅으로 옮기워졌다. 24장 13절에서 우리는 그 전리품 가운데에 솔로몬의 금과 보석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기록을 본다. 예레미야 7장에서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유의하자. 거짓 선지자들과 세상적인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믿도록 했으며, 이것은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나 종교적인 의식이 그들을 심판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여호와의 전의 그릇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는 대신 우상의 전을 장식하기 위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졌다(대하 36:7).
성전의 존재 자체가 그 민족을 구원할 수는 없었으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참된 고백과 회개가 있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기를... 치료책이 없게 되기까지“ 하였다."
왕하 25:18-30
5. 땅이 황폐화 됨(25:18-30)
바벨론의 장군 중의 한 명이 그 땅에 남아 있는 귀족들을 함께 모아 놓고 그들을 죽였다(18-21절).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 뿐이었다. 느부갓네살은 그 땅을 다스리기 위해 총독제도를 도입하여, 첫 총독에 그달리야를 세웠다. 그의 아버지는 예레미야를 도왔고(렘 26:24), 그의 가족은 선지자에게 헌신하였다(렘 39-40장). 그달리야는 뒤에 남은 자들의 안전과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응분의 일을 해나갔으나 이스마엘(아마도 왕의 먼 친척인 듯함)의 시기심은 음모를 꾸미게 했으며 총독을 살해하게 했다(렘 40-41장). 음모가 드러나자, 많은 유대인들이 안전을 위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다.
역대하 36장 20-21절은 포로 생활 70년이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안식년“에서 추산된 것임을 알려 준다. 유대인들은 매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수 세기를 내려 오며, 이 법을 순종하지 않았다(렘 38:8-22 참조).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7배“로 벌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에 주목하자(레 26:18/레 26:21/레 26:28). 따라서, 포로 생활에 있어서는 7이란 숫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유다(남쪽 왕국)의 20명의 왕들의 전 통치 기간은 대략 390년이었고, 다윗과 솔로몬과 사울이 합해서 120년이므로 군주국의 전체 치리 기간은 150년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통치한 예도 있으므로 그 기간이 중복된 경우도 있다. 이것은 유다 왕국의 통치 기간이 사울에게 시드기야까지 500년이 채 못된다는 뜻이다. 500년을 7(안식년)로 나누면 대략 70년이 된다. 이스라엘이 40일간 땅을 정탐함으로써 광야에서 40년 간 방황하는 것을 택하였듯이. 그 500년 동안 안식년을 소홀히 하였으므로 70년 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가셨다. 다윗의 보좌에는 왕이 없었고 오늘날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전도 없었다. 불타버렸고 흩어진 그릇들은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성전은 없으며, 거룩한 성은 파괴되어 그 때 이후로는 전쟁과 불안의 촛점이 되어 왔다. 그들의 땅은 빼앗긴 바되었고, 그들은 나라들 중에 흩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 무서운 포위 공격은 주후 70년에 있은 예루살렘의 무서운 파괴를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때, 이 나라는 민족으로서의 특성을 잃었다(1948년 8월까지). “당신의 죄가 당신을 찾아 낼 것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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