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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무엘하

[스크랩] 사무엘하 (24 : 1~25)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06

사무엘하 24장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ㅇ다시(요세프) - 이는 다윗 치세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적 재앙이 지난번 3
년 연속 기근(21:1)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임을 밝혀 주는 구절이다.
ㅇ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 본장에 나타나는 바(2-9절) 다윗의
인구 조사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적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우선적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
시고자 다윗으로 하여금 그릇된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셨던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다
윗이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방임하셨던 것이다-대상 21:1).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케한 이스라엘의 범죄는 무엇인가 ? (1) 혹자는 그것을 본서에 기록되지
아니한 '숨은 죄'라고 본다(Kimchi). (2) 또 다른 혹자는 다윗의 인구 조사에 동참한
죄라고 본다(Lange).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본 구절에서는 명확히 하나님의 진노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
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
노를 불러 일으킨 이스라엘의 범죄는 (3) 지난번 압살롬의 난(15:7-12)과 세바의 난
(20:1, 2)에 보여 주었던 저들의 반역적인 행동이라고 보아야 한다(Keil). 즉 그때에
이스라엘의 다수는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 왕을 반역하고,
그를 대적하여 압살롬과 세바를 좇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반
역죄였던 것이다.
ㅇ다윗을 감동시키사...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 본서 저자는 다윗의 범죄 행위
(인구 조사)를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
(自由意志)를 말살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모든 인간 역사를 당신의 뜻대로 섭리하여 가
신다. 따라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다윗의 자유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
다. 다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다윗의 의식 속에 있던 악한 의도를 허용하셨
을 뿐이다. 한편, 대상 21:1에서는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두 기록은 상호 모순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단을 이용하시기 때문이다(욥 1:12;삼상 26:19).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허용 하에서 사단의 격동으로 일시 교만한 마음을 품은 다윗
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본장의 인구 조사는 다윗 통치의 말기에 이루어졌음
이 분명하다(Hengstenberg). 그 근거로서 우리는 인구 조사가 약 10개월에 걸쳐 이루
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군대 장관 요압이 수도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당시의 태평 성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때는 대내외적
으로 모든 정벌과 반란이 완료되고 진압됨으로써 태평 성대를 구가하고 있던 다윗 통
치의 말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ㅇ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단(Dan)은 이스라엘 북쪽 경계 성읍이며, 브엘세바
(Beersheba)는 유다 남쪽 경계 성읍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스라엘 온 땅을 통칭하
는 표현이다(삿 20:1;삼상 3:20;대상 21:2;대하 30:5).
ㅇ인구를 조사하여...내게 알게 하라 - 다윗의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의 재앙의 원인
이 되었다. 그러나 인구 조사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이스라
엘은 하나님의 인정하에 여러번 인구를 계수한 바 있기 때문이다(출 30:12;38:26;민
1:44-46;26:51). 문제는 다윗의 인구 조사가 군사적인 목적, 또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제사장들이 그 일을 감당하였다(민
1:3;26:1, 2). 이에 반해 여기서 다윗은 요압을 인구 조사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던 것
이다. 또한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조사받은 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贖錢)을 내게 하
였다(출 30:2). 그리고 이 생명의 속전은 성소에 봉헌됨으로써 여호와께 속하게 하였
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
하는 의식이었다(출 30:13). 그러나 다윗은 본 인구 조사에서 이를 시행치 않았다. 이
로 보아, 다윗은 단순한 인구 조사를 명령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인 목적과 왕권의 강
화를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이었다(Lange, Smith, Keil, The Interpreter's
Bible, Hengstenberg, Schmid). 그런데 이와 같은 다윗의 행위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고, 강
화된 군사력과 왕권에서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삼상 17:47). 그러므로 이는, 후일 바
벧론 왕의 사신들의 방문을 받은 히스기야 왕이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보물 창고와 무
기고를 보여 줌으로써 재력과 군사력을 자랑한 교만죄와 같은 성질의 죄인 것이다. 이
처럼 다윗은 인구 조사를 통해 자기의 세력과 영광스러운 번영을 확인하고 자랑하려
했다. 특히 군사력에 대한 실세를 파악(9절)함으로써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는 (1) 번영의 근거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며, (2) 하나님 보
다는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인간들은 흔
히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과 번영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힘을 괴시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러한 인간의 과시욕과 명예욕은 그러한 번영과 힘
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일로서, 결국 그분의 진노를 자초하고야 만다
(시 94:2;잠 21:4;눅 1:51).

3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ㅇ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 이는 요압이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을 반대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요압의 반대는 다윗의 범죄를 방지해보려 했던 충
언이었다. 하나님은 신정(神政) 국가의 복된 미래를 약속하신 바 있다(신 33:9). 그러
나 그 약속에는 어디까지나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하여야 한다는 전
제가 붙어있는 것이었다. 다윗이 이러한 전제에서 벗어나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힘을
의지하려 하자, 이에 요압이 다윗의 잘못됨을 인식하고 충언을 하였던 것이다(Smith,
Fay). 한편, 정세(政勢)에 대단히 민감했던(19:5-7) 요압은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다윗의 명령에 반대하였을 가능성도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즉, 주변 이방
나라들의 경우 인구 조사는 주로 과세와 징병의 목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자칫 이
번의 인구 조사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오해와 원성을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
던 것이다.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ㅇ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 이때에 요압과 더불어 요압 휘하
의 각 부대 장관들도 함께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은 공
식 석상에서 하달된 것으로 보인다(Pulpit Commentary). 한편 원문상으로 볼 때 이들
이 요압의 견해에 동조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이 요압
과 군대 장관들 각각에게 인구 조사 시행을 재촉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엘 요압 웨알 사레이 헤하일)은 직
역하면, '요압에 대하여(against), 그리고 군대 장관들에 대하여(against)'이다. 그리
고 '재촉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자크'는 '강퍅하다', '완악하다'란 의
미리 말로서(출 8:19;9:35), 이는 다윗이 신하들의 만류를 끝까지 뿌리치고 자기의 고
집을 극구 주장하였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5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ㅇ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 '아로엘'(Aroer)은 요단 동편에 있던 한 성읍으로
서(신 2:36;수 12:2), 원래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으나 그곳에 성(城)을 쌓은 자들은
갓 자손이었다(민 32:34). 이곳은 사해(死海)에서 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이며,
아르논 강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Biblical Commentary). 한편 이곳은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요압은 여기서부터 인구 조사를 착수했던 것이다.
ㅇ야셀 - 본래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성읍이었으나, 후에 갓 족속의 정착지가 되었다
(민 32:35;수 13:25). 또한 이곳은 아모리 지경과의 경계지가 되었고, 갓 지파가 레위
지파에게 준 네 성읍 중 하나였다(수 21:39).
ㅇ장막을 치고 - 인구 조사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동원되었다. 따라
서 요압은 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막을 아로엘과 야셀 사이의 초원 지대에
건설하고, 이 장막을 인구 조사의 본부로 이용했던 것이다(Keil, Lange).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ㅇ길르앗 - '길르앗'(Gilead)은 인구 조사 본부가 설치되었던 아로엘과 야셀이 속해
있는 지방으로서(신 3:10), 얍복 강 양편의 산악 지방을 일걷는다(창 31:21-48). 이곳
에는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가 살았다.
ㅇ닷딤홋시 - 이곳의 위치는 불분명하나 갈릴리 바다 동편인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
하면 이들이 그곳에서 이스라엘 북단 '다냐안'으로 갔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길르앗
에서 다냐안으로 가는 중간 지점인데, 이렇게 볼 때 닷딤홋시(TahtimHodshi) 땅은 갈
릴리 바다 동편일 수 밖에 없다(Keil).
ㅇ다냐안 - 이는 정확히 말해서 '단야안'이며, 곧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단'을 가리킨다(수 19:47;삿 18:29). 이곳은 다메섹 남서쪽에 위치했으며 당시
다윗 왕조의 북쪽 경계지였다. 한편, '야안'은 베니게의 신(神)의 이름으로, 이교적인
풍습에 의해 이 우상의 이름이 지명에 붙여진 듯하다(Bunsen).
ㅇ시돈 - '시돈'(Sidon)은 사실상 다윗 왕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다윗 왕국의 속국
으로서 당시 군역(軍役)에 가담하고 있었다(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시돈성(城)은 베니게의 부요한 성읍이었으며, 단의 북서쪽 지중해 해안
에 위치하였다(창 10:15;수 11:8;19:28).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ㅇ두로 견고한 성 - '두로'(Tyre) 역시 시돈과 마찬가지로 당시 다윗의 종속국이었
다. 이곳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지점이다(수 19:29) 따라서 이스라엘 최북단까
지 올라간 요압 일행은 시돈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ㅇ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 - '히위 사람'(the Hivite)이나 '가나안 사
람'(the Canaanit)은 모두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비록 히위
사람들은 기브온 근처까지 내려와 살기도 하였지만(수 11:19), 이들 이방인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북방 지역, 즉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땅에 공동 거주하였다. 따
라서 이곳은 후에 '열방의 둘레'라는 뜻의 '갈릴리'로 불려지게 되었다(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이들 이방인들 역시도 군역(軍役)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인
구 조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ㅇ브엘세바 -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 네게브 지방의 한 성읍이었고, 남쪽 유
다의 행정 중심지였다(대하 19:4). 그리고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最南端)에
위치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판도를 서술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
바까지'라고 기술하였다(삿 20:1;삼상 3:20;삼하 3:10).

8 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달 스무날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ㅇ아홈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 이 기간 동안에 펼친 요압의 인구 조사
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즉 병행 구절인 대상 21:6에 보면,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
게 여겨'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대상
27:24에 의하면, 인구 조사를 채 끝내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
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때문에 여기에 기록된 인구 조사 기간은 매우 긴 기간으로서,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못 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소홀하게 했던 것
으로 보여진다(Keil, Fay).

9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ㅇ이스라엘...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 이 기록은 병행 구절인 대상
21:5의 기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역대기에서는 이스라엘의 병력이 110만이
요 유다의 병력은 47만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 혹자는 역대기의 기록이 이
방인의 숫자를 포함시킨 것이기 때문에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Schmid) (2) 그리고
또 혹자는 역대기의 수효에는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의 수효까지 합산되었기 때문에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D. Kimchi). (3) 그러나 우리는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
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27:24)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이 같은 차이는
그 수치가 구전(口傳)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Lange,
Smith, 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어느 기록이 더 신빙성 있는 것인지 우리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략 이 두 기록의 중간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병력이 130만이든 아니면 157만이든, 이 숫자는 출애굽 당시의 군
사력(603,550명;민 2:32)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보고를
받고 자기의 국력을 확인하고는 크게 만족해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다윗은 어리
석게도 이 모든 번영과 강성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또한 많은 대군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기 않는다면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사
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ㅇ칼을 빼는 담대한 자 - 모세 율법에 따르면(민 1:3;26:2), 이스라엘 백성 중 싸움
에 출전할 수 있는 자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였다. 그런데 요압의 인구 조사 결
과 이처럼 이스라엘 중에 전투 능력이 있는 장정들은 도합 130만 명이었다(대상 21:5
의 기록에는 157만명). 이런 수치에 근거하여 통례상 군복무 가능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가량이라고 본다면, 당시 다윗 통치하의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500~600만 명 가량
으로 추산될 수 있다(Keil, Fay).

10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ㅇ다윗이...그 마음에 자책하고 - 다윗의 만족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곧 양심의 가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책하다'(나카)란 말은 '때리
다', '치다'란 의미로서, 곧 신앙 양심이 무디어진 마음을 쿵쿵 치는 상태를 가리킨
다.
ㅇ여호와께 아뢰되...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자신의 행위를 깨닫고 여호와께 진심으
로 회개하는 다윗의 겸손한 모습이다. 여기서 '큰 죄'라 함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
고, 자기의 군사력(힘)을 의지한 그의 자고하고 교만한 생각과 행동이었다.
ㅇ여호와여...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다윗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다윗의 솔직하고도 겸허한 '회개'에 있었다. 즉 다윗도 간음, 살인, 교만
등 온갖 죄악을 저질렀으나,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지체하지 않
고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요압의 보고를 접한 직
후에 무디어졌던 양심의 기능이 회복되어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
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발견하기까지는 약 10개
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8절). 그는 그 동안 이생의 자랑이라는 편협한 사고에
의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보이셨던 것이다(눅 15:17-24). 한편 다윗의 회
개는 자신의 실수에 따르는 책임(형벌)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로우신 손길에 자신을 전폭적으로 맡김으로써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
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태도였다.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ㅇ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 이는 다윗이 습관적으로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났음
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특별히 다윗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밤새도록 침대 안에서
뜬 눈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났거나(Keil), 또는 밤새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한 사
실(Lange)을 말해 준다. 따라서 여호와의 선지자 갓(Gad)의 방문은 다윗의 회개 기도
에 대한 하나님의 자애로운 응답이었다(Smith).
ㅇ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 - 여기서 '선견자'(先見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
제'는 '이상을 보다'는 의미의 동사 '하자'에서 파생된 말로서, 이는
하나님의 이상 또는 계시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단 2:26, 41, 43, 45;4:20;7:2). 삼상
9:9 주석 참조. 이러한 선지자 갓은 다윗의 망명 시절에 모압 땅을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갈 것을 다윗에게 권면하기도 하였다(삼상 22:5).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ㅇ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내가 네 위에 세 가지
를 두노니'이다. 즉 '보이노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탈 알'은 '~위
에 짐을 지우다', '위에 올려 놓다'는 뜻으로(애 3:8), 이는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무거운 형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ㅇ칠년 기근 - 병행 구절인 대상 21:12에서는 7년이 3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3년이 보다 정확한 기록인 것 같다(Smith, Fay). 왜냐하면 본 구절에서 갓 선지자를
통해 제시된 재앙들이 모두 3이란 숫자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70인경(LXX)
도 이를 3년 기근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한편, 여기에 제시된 세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네 가지 중한 벌(罰)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 네 가지는 기근, 전쟁(칼), 온역, 그리고
사나운 짐승이다(겔 14:21). 이중 두 가지(칼과 기근)는 이미 다윗이 당한 바 있다.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ㅇ내가 곤경에 있도다 - 여기서 '곤경'에 해당하는 '차라르'는 사방에서 짓
누르는 압박감을 뜻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제시한 3가지
징벌은 하나 같이 다윗이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명예와 힘을 꺽어놓기에 충분한 것들이
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의 선택을 위임받았던 다윗은 결국 하나님의 품보다
더 나은 피난처가 없음을 깨닫고(시 46:1;90:1),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 시행
되는 징벌인 '3일 동안의 온역'을 택하였다. 결국 그는 위임받은 선택권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렸던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는 (1)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자신
을 낮추는 겸손이며(시 131편), (2)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궁극적으로는 은혜
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안 올바른 신지식(新知識)에 따른 결정이었으며(민 6:24-26),
(3) 모든 문제의 원천적 해결자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마 11:28).
ㅇ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 '전쟁의 재앙'은 대적의 손에 죽는 것이며, '기근
의 재앙'은 흉작을 유발하여 사회를 피폐시킨다. 반면, '온역'(데베르)은 '불
치의 전염병'으로서 고대인들은 이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하였다(The
Interpreter's Bible, Wycliffe Bible Commentary). 다윗은 이 중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된 온역의 재앙을 택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선택은 기왕이면 하나님께 직
접 매맞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해진 것 같다. 즉, 다윗은 사악한 인간
이나 피폐된 사회에 붙여지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형벌을 받는 것이 긍휼하신
여호와의 위로와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재
앙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다윗의 신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ㅇ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 '그 아침'이란 갓 선지자가 다윗 왕을 방문한 그날
아침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하신 때'는 염병이 시작된 날로부터 3일을 의미하지 않는
다. 왜냐하면 1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재앙의 시간을 단축시키셨음을 볼 수 있
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 원어상 이 말에는 관사가 붙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때는
하나님께서 본래 작정하셨던 바로 '그 때'(만 3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정하신 때'(에트 모에드)란 하나님께서 재앙을 맞이하는 다
윗의 신앙적 태도를 보시고 그 재앙의 기간을 단축한 그 마지막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Lange).
ㅇ단부터 브엘세바까지 - 이스라엘 전역을 통칭하여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20;삿
20:1;삼상 3:20).
ㅇ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자가 죽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실상을 생생히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범죄(1절)에 진노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무서운 온역(전염병) 재앙이 맹렬하고도 급속히 이스라엘 전역을
내리 덮은 것이다. 이로써 다윗과 이스라엘은 큰 병력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자의 그 힘을 현저히 약화시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똑똑히 발견하게 된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ㅇ천사 - 이 천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실행하는 '멸하는 천사'(출 12:23)를 가
리키는데, 온역 재앙시 이 천사는 다윗에게 가견적(可見的)으로 나타났다(17절). 대상
21:16에서도 다윗이 천지(天地) 사이에 서 있는 천사를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처럼 천사가 가견적 모습으로 나타나 백성을 쳤다는 사실은 이 온역(溫疫) 재앙이 자
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Keil,
Smith).
ㅇ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 여기서 '뉘우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 )은 '뜻을 돌이키다'는 뜻으로서(창 6:6;출 32:14;삿 2:18;시 106:45),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거두셨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
신의 뜻을 돌이키심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지만, 궁극
적으로는 다윗과 그 백성을 사랑하신 긍휼과 자비의 성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가변적(可變的) 속성을 반영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전
지 전능하신 분으로서 불변성(不變性)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로우시며 초월
적인 품격을 지니신 분으로서, 당신의 목적을 수행하실 때 인간과 더불어 섭리하시기
를 기뻐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대응 여부에 따라 그 섭리의 방식
을 다양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의인화(擬人化)시켜 신인 동형 동성
론(神人同形同性論, Anthropomorphism)적으로 묘사할 때,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가변
성 품성인양 비쳐질 뿐이다.
ㅇ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 여부스인(the Jebusite)은 예루살렘 성의 원
주민이다(5:6-8). 그리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모리아 산 곧 예루살렘 동북편 언덕
에 위치해 있었다(대하 3:1). 그런데 타작 마당은 추수한 곡물의 겨나 지푸라기 등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해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Smith). 결국 이곳은
얼마 후 솔로몬 성전의 터가 된다(대하 3:1). 한편 역대상에는 '아라우나'의 이름이
'오르난'으로 기록되어 있다(대상 21:15, 18, 20, 21, 22, 23). 여기서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표기이며, '오르난'은 히브리식 표기이다(Keil, Ewald, Lange). 그런데 70인
역(LXX)에는 일괄적으로 '오르나'로 표기되어 있다.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ㅇ나는 범죄하였고...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 다윗의 진정한 회개의 기도이다.
히브리어에서 인칭은 동사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인데, 여기서 다윗
은 인칭 대명사 '아노키'를 두번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범죄의 주
범임을 거듭 강조하였다. 즉 다윗은 여기서 오직 자기만이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라고
고백하면서, 일체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전가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회개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참된 회개란 (1)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고
백하는 차원을 넘어, 그 범죄로 말미암은 결과에 대해서까지 달게 책임지려는 마음 자
세를 갖는 것이며, (2) 타인의 허물과 죄악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통회하는, 긍
휼과 자비의 마음 자세를 갖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병행 구절인 대상 21:16을
보면, 다윗은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였다. 이는 다윗이 일
국의 왕이라는 처지에 결코 연연치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최대한의 겸손과 회개
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었다.

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ㅇ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단을 쌓으소서 - 이와 같은 갓 선지자의 말은 다윗의
겸허한 회개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자애로운 응답이요 화해 선언이었다. 즉 하나님께
서는 다윗의 회개를 인정하시고, 당신의 진노를 진정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갓 선지자
를 통하여 다윗에게 전달하신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 화해의 장소로 아라오나의
타작 마당을 지시하신 것은 그곳에서 천사의 심판 활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다
시 말해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타난 곳이었다. 그러므
로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화해와 자비의 장소로 지정하시고, 이곳을 성별케 하기를 원
하신 것이다. 후에 이곳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져 택한 백성들의 시은소(施恩所)가
되었다.

19 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ㅇ다윗이...올라가니라 - 다윗은 크신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지체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ㅇ아라우나가...나가서 - 병행 구절인 대상 21:20, 21에서는 아라우나가 밀을 타작하
다가 다윗을 맞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ㅇ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 이마가 땅에 닿도록 무릎을 꿇고 몸을 숙
이는 자세를 가리키는데, 이는 윗 사람에 대한 경외와 절대 복종의 자세이다(삼상
25:23;에 8:3;왕하 4:37).

21 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ㅇ어찌하여...종에게 임하시나이까 - 한때 사울은 그 왜곡된 종교적 열정으로 가나안
땅의 이방 족속을 멸절시키고자 시도하기도 했었다(21:2). 이런 배경하에서 가나안 땅
의 잔존 원주민인 아라우나는 자신의 외진 타작 마당에 왕이 그 수행원들과 더불어 친
히 당도했다는 사실에 두려움부터 앞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Smith). 따라서 아라
우나는 분명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다윗 왕과 그 수행원들을 맞이했을 것이다(삼상
16:4).

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ㅇ소가 있고...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 '아라우나'(Araunah)는 다
윗 왕에게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소'
(하바카르)는 탈곡 썰매를 끌도록 하기 위해 멍에로 함께 매어 놓은 '한쌍의
소'를 가리킨다(Keil). 그리고 '마당질하는 제구'(threshing instrument)는 소가 끌고
다니면서 곡식을 떠는 썰매의 일종이다(신 25:4). 그런데 이러한 제구(instruments,
KJV;sledges, NIV)와 멍에(yoke)는 모두 나무로 제작되었다(렘 28:13). 또한 이러한
나무는 제물을 태우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ㅇ왕이여 아라우나가...왕께 드리나이다 - 혹자는 여기서 '왕이여'(하멜
렉)란 말을 호격(呼格)으로 보지 않고, 주격(主格)으로 보아 아라우나를 왕으로 묘사
하고 있다(A.V.) 그리고 이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아라우나가 이전에 여부스족의 왕
이었다고 주장한다(Ewald). 그러나 이것은 근거없는 억측이다. 그리고 고대 역본들
(LXX, the Vulgate, the Syriac, the Arabic, the Chaldee etc)은 아예 이 말을 생략
해 버리고 단순히 간접 화법으로 처리하여, 곧 "아라우나가...왕께 주었다"고 번역했
다. 그러나 이것은 24절에서 다윗 왕이 값주고 샀다는 묘사와 모순되기 때문에 취할
수 없다. 결국 본 어구는 히브리 원문(M.T.) 그대로 "왕이여 ! 아라우나가...왕께 드
리나이다"(O. King, Araunah gives...to the King, RSV, NiV)로 해석함이 가장 좋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T. Vol. II-ii, pp. 510-511).
ㅇ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 성공적인 제사는 하나님께서 제
물과 함께 그 제물 드리는 사람을 함께 받으시는 제사이다(창 4:4, 5). 그러므로 여기
서 아라우나는 다윗 왕의 제사에서 제물과 더불어 제물 드리는 자가 모두 기쁘게 여호
와께 열납됨으로써, 성공적인 제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던 것이다. 이로 보아
아라우나는 예루살렘 정복 이후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것이 분명하다.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ㅇ값 없이는...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 다윗은 아라우나의 소유를 취해 그냥 드
릴 경우, 그 제사는 완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진정 다윗은 자신의 재산
을 바쳐 최대한의 정성을 드리고자 했던 것이다(Lange). 여기서 우리는 이방 출신 개
종자 아라우나의 아낌없는 헌신과, 참된 눈물의 회개자 다윗 왕의 희생적인 순수함을
보게 된다. 이같이 아름다운 정경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참된 헌신은 결코 이해 타산이나 인색함 없이 온전하고도 자발적으로 드려야 한다
(고후 9:7). (2) 자기 희생 없는 값싼 제사는 여호와께 무의미한 것이다(신 16:16).
(3)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온전한 헌신과 순수한 희생의 마음 자세이다(삼
상 15:22;사 1:11-17;히 13:16).
ㅇ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 병행 구절인 대상 21:25에는 그 땅 값으
로 금 600세겔을 지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혹자는 이같은 차이를 필사자의 착오
에 의한 오기(誤記)로 보려 한다(Keil). 그러나 착오 치고는 너무나 큰 차이다. 또 혹
자는(Bochart) 대략 금화가 은화의 12배의 가치에 해당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즉
50X12=600), 여기서의 '은'(케셔)을 단지 '돈'이란 뜻을 지닌, 실상의 '금'으
로 본다. 그리고 대상 21:25의 '금'(자합)을 '은 600세겔에 해당하는 금'으로
고쳐 해석한다. 그러나 이처럼 원문을 임의로 고쳐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는 이러한 차이를 각기 다른 두 품목에 대한 두 가격으로 보아야 한다(Pulpit
Commentary). 즉, 여기에서 지불된 은 50세겔(Shekel, 은 1세겔은 대략 노동자 4일의
품삭에 해당됨)은 소와 타작 마당에 해당하는 값이며, 대상 21:25에 나타난 금 600세
겔은 성전 부지로 사들인 모리아 산 전체에 대한 값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5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ㅇ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 하나님은 다윗과의 화해를 표시로 아라우나
마당에서의 제사를 요구하셨다(18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징벌하시는 방법과 더불어
그 형벌을 해결하시는 방법까지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회개와 죄
로부터의 회복은 인간 스스로의 자의식과 자발적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원 섭리에서 비롯된다(시 51:10-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사의 처소로
'아라우나 마당'을 특별히 요구하신 데는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즉 예루살렘 성 동
쪽 모리아 산에 위치한 그 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으로서(창
22:1-14), 아브라함의 순종 및 신앙과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기억되는 장소였다. 이런 역사적인 명소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화해와 자비의 처소로
다시 한번 택하시고 성별케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마다 하나님
의 자비와 용서와 보살피시는 은혜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적이
고 내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에 얼마 후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게 된 것은 참으
로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다(대하 3:1).
ㅇ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 '번제'는 다윗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다(레 1:4). 그리고 다윗은 번제에 이어 화목제를 드렸다.
이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셨다는 근거하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과 앞으
로 베풀어 주실 은혜를 감사하여 드린 제사이다(레 서론, 7.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
미).
ㅇ이에...재앙이 그쳤더라 - 다윗의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내의 온역 재앙은 완전
히 그쳤다. 이것은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재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직 '하
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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