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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무엘하

[스크랩] 사무엘하 (18 : 1~3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03

사무엘하 18장

 

1 이에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 위에 세우고

ㅇ백성 계수하고 - 여기서 다윗이 '백성을 계수했다'고 하는 말은 단순히 계수(計數)
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군대의 조직을 정비하고 사열했음을 의미한다. 즉 다윗왕
은 자기를 따르던 기존의 용사들과 새로운 지원병들을 재 편성하여 조직적이고 효율적
인 전시(戰時)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Wycliffe Bible Commentary). 한편 유대 역사가
인 요세푸스(Josephus)는 이와 관련, 당시 다윗군의 병력이 그렛 군과 블렛 군 및 가
드에서 온 육백 용사, 기타 추가 병력을 합하여(15:18) 약 4천명에 이르렀다고 주장한
다(Dake's Annotated Reference Bible,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2, p.537).
ㅇ천부장과 백부장을...세우고 - 여기서'천부장'(captains of thousands)과 '백부장'
(captains of hundreds)이란 각기 자기 수하에 천 명과 백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
는 지휘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편제(編制)는 신약 시대 당시 로마 군에서도 찾
아볼 수 있다(행 10:1; 21:31,32; 23:10-17). 한편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러한 편제는
모세에 의해 최초로 수립되었는 바. 평상시에는 행정 체제로 운용되다가 비상시에는
군사 체제로 전환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출 18:24-26 주석 참조). 아무튼 본절에서
다윗이 백부장과 천부장 같은 소단위 지휘관을 세우는 등 지휘 계통을 확립한 것은 전
군(全軍)의 힘을 결집시키고 효과적인 작전수행을 가능케 한 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
다.

2 그 백성을 내어 보낼쌔 삼분지 일은 요압의 수하에, 삼분지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이고 삼분지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ㅇ요압의 수하에...아비새의 수하에...잇대의 수하에 - 다윗이 자신의 전(全)군대를
삼분(三分)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와 같이 군대를 셋으로 나누는 전술은 소수
로써 적의많은 군대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근세(近世)까지만 해도 많이 사용되
었던 전술이다(삿 7:16; 9:43 ; 삼상 11:11). 한편. 다윗이 이방인 출신의 잇대
(Ittai)를 요압과 아비새와 동등하게 삼분의 일의 군장(軍長)으로 삼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조치였다(15:19 주석 참조). 이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에서 급
히 도망할 당시 보여 주었던 잇대의 충성을 다윗이 인정하였다는 증거이다(15:21).
ㅇ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 원문에는 다윗의 참전(參戰) 의지가 더욱 확
실히 표현되어 있다. 즉, 원문에는 인칭 대명사 '나'가 '아니'로 나와 있는
데, 이는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이다. 또한 '나가리라'는 말, '야차'앞
에도 절대 부정사 '야초'가 덧붙여져 있는데 이는 다윗 자신이 반드시 전쟁에
나가리라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금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
지 않고 먼저 군사들 앞에서 솔선 수범하려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다. 추측컨대 다윗은 지금의 이 전쟁이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났으므로
(12:7-14; 13:21; 14:28-33) 속죄하는 마음에서도 이같은 자세를 보였을 것이다.

3 백성들이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찌라도 저희는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찌라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ㅇ왕은 나가지 마소서 - 백성들의 이와같은 만류는 자기들의 왕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 주는 말이다. 즉, 백성들은 진심으로 다윗왕을 아끼고 사랑하였던 것이다. 때문
에 그들은 반역자들이 생명을 노리고 있는 다윗(17:21)을 전장(戰場)에 내보내지 않으
려 한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다윗이 전사할 경우 자신들은 목자없는 양같이
유리하게 될 것임을 염려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와 같이 솔선수범하는 왕과, 왕
을 아끼는 백성들의 아름다운 모습속에서 이미 건쟁의 승리를 예감(豫感)할 수 있다.
한편 이와 관련, 요압과 같은 약삭빠른 사람은 보다 실제적인 계산 하에서 왕의 출전
을 만류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Hertzberg, payne). 즉. 요압
은 다윗이 건쟁에 참여할 경우 혈육이 정 때문에 반란의 주모자인 압살롬의 생명을 구
해줄지도 모른다는 계산하에 다윗의 출전을 만류했을 수도 있다.
ㅇ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 여기서 '성'은 다윗이 현재 압
살롬을 피해 거처하고 있는 마하나임의 성을 가리킨다(17절 주석 참조). 한편 이처럼
백성들은 다윗 왕이 마하나임 성에 있는 것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점에서 보다 유리하
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즉 다윗 왕이 무엇보다도 안전할 수 있다는 점, 다윗
왕이 성에 남아서 후방(後方)을 튼튼하게 지킬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사실 슷자면에서
압살롬의 군대에 비해 열등한 다윗 군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성을 굳게 지키는 것
이 중요하였다. 또한 성에는 귀중한 보급품이 저장되어 있어(17:27-29), 유사시 이를
적절하게 공급해 줄 지도자도 필요했다(Lange). 아마도 바로 이러한 이유를 들어 백성
들은 당시 다윗의 출전을 만류했을 것이다.

4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선히 여기는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서매
모든 백성이 백명씩 천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ㅇ너희가 선히 여기는대로 내가 행하리라 - 여기서 '너희가 선히 여기는대로'라는 말
은 본래 '너희 눈에 좋은 대로'(Whatever seems best to you, RSV)란 뜻이다. 아무튼
본절은 백성들의 사리(事理)에 맞는 말을 겸허히 수용할줄 아는 다윗의 고매한 인품을
잘 드러내준다.

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ㅇ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 여기서 '너그러이 대접하다'에 해당하는 히브
리어 '라아트'는 '부드럽게 감싸다'는 뜻이다(욥 15:11). 따라서 이같은 다
윗의 말에서 우리는 다윗이 이미 자기의 군대가 승리하리라는 확신(15:16, 25)과 압살
롬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Hertzberg, Payne). 이와 같
이 다윗의 강열한 부성에(父性愛)는 아버지의 생명만을 노렸던 압살롬(17:1-4)의 경우
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향편, 본절에서 다윗은 압살롬을 '소년'이라고 부름으로써
아직도 압살롬을 정치적 반란자이기 보다는 자신의 철없는 아들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Wycliffe). 즉 여기서 `소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
는 미성숙한 아이를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창 14:24; 21:12,17 삼상 1:22,24 ;2:11;
왕상 3:7 대상 22:5 호 11:1).
ㅇ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 혹자는 본절을 가리켜 다윗 왕이 지휘체계에 따라 자신의
명령을 말단 군사들에게 까지 시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ry). 그러나 우리는 그같은 주장을 지지할수 없다. 왜냐하면 본절은 백성들이
지휘 체계를 통해 다윗의 명령을 시달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전 군대
를 사열할때(1절) 군장들에게 특별히 명령하는 것을 백성들이 들은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 그증거로 우리는 12절에 나오는 한 사람의 말을 들 수 있다. 즉 그는 거기서
자신이 왕의 명령을 시달받은 것이 아니라 나만 군장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들었을 뿐
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것이다

6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ㅇ에브라임 수풀 - 본절에서 뜻하는 에브라임 수풀(the wood of Ephraim)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현제 학자들 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에브라임 수풀'하면 우선 요단 서편의 에브라임 경내(境內)에 있는 무성한 숲을 연상
할 수 있기때문이다(수17:15,16). 그러나 본문에는 다윗군이 요단 강을 건너 다시금
서편 땅으로 들어갔다는 언급이 없다. 대신 본문과 관련된 기록들은 다윗 군과 압살롬
군 간의 전쟁이 요단저편(동편), 곧 마하나임 근처(17:24,26,27)에서 벌어졌음을 다음
과 같이 보여 준다. 즉 아히마아스가 승전 소식을 마하나임에 있는 다윗 왕에게 알리
기 위해 요단 계곡의 길을 달려갔다고 함은 본 전쟁이 마하나임에서 가까운 요단 동편
에서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19-23절). 또한 다윗 군이 압살롬의 군대를 패퇴시키
고 마하나임으로 회군(回軍)한 사실(19:3)도 이 전쟁이 요단 동편의 수풀에서 있었음
보여 주는 것이다(Thenius) 다시 말해서, 만약이 전쟁이 요단 서편의 수풀에서 있었더
라면 다윗 군은 아마 마하나임으로 회군하기 보다는 곧장 예루살렘까지도 정복했으리
라는 주장이다(Ewald). 그러나 다윗 군이 그렇게 아니했음은 전쟁의 무대가 요단 동편
이었음을 증거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본장에서 전쟁
의 무대가 되고 있는 '에브라임 수풀'은 비록 그 명칭상 혼동이 되기는 하지만 요단
이편(서편)의 수풀이 아닌요단 저편(동편)의 수풀이었음을 결론지을 수있다.

7 거기서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곳에서 살륙이 커서
이만에 이르렀고

ㅇ이스리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 여기서 '이스라엘 무리'란 압살롬 휘
하의 군사들을 가리킨다(17:26). 그리고 '다윗의 신복들'이란 다윗이 세운 군장들과
천부장과 백부장및 그휘하의 군사들을 의미한다 (1,2절). 그런데 이처럼 본서 저자가
다윗 군에의해 압살롬의 대군이 패퇴하였다고 기록한 것 다윗 군대의 우수한 조직력
(組織力)과 그 지휘관들의 탁월한 지휘력(指揮力)을 보여 주기위함이었다. 즉 이는 다
윗 군대가 숫자면에서의 열세를 조직력과 지휘력의 월등한 우세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8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ㅇ사면으로 퍼져. 여기서 '퍼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츠'는 '흩어지다
',`정신없이 도망치다'는 뜻이다(민 10:35; 왕상 22:17 대하 18:16; 사 21:1 렘
23:2). 즉 본절은 압살롬의 군사들이 다윗 군에 대항하기 위해 사방으로 배치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군의 훌룡한 조직력과 효율적인 공격에 의해 혼비 백산
(魂飛魄散)하며 홑어지는 모양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Keil).
ㅇ수풀에서 죽은 자가...많았더라 - 요단 동편의 에브라임 수풀에는 좁은 협곡이나
가파른 벼랑, 또는 늪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다윗 군의 효율적인 공격에 뿔뿔이
흩어졌던 압살롬의 군사들은 이러한 곳에 떨어지거나 빠져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했
을 것이다.

9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ㅇ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 히브리 원문에는 '다윗의 신복'이 복수형(複
數型)으로 나와있다. 따라서 압살롬은 다윗의 여러 신복들과 마주쳐 신분이 발각되었
음을 알수 있다. 때문에 압살롬은 그 순간 자기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황급히 도망쳤
던 것이다.
ㅇ압살롬이 노새를 탓는데 - 노새는 구약 시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개 왕족이
나 괴족들이 이용하던 운송 수단이었다. 13:29 주석 참조.
ㅇ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 나무에 걸리매 - 히브리 원문에는 압살롬의 `머리'
(로쉬)가 상수리 나무에 걸렸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절만으로는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 나무의 굵은 가지 사이에 끼었는지, 아니면 숱이 많은 그의 머리털이
가지에 걸렸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압살롬의
머리털이 걸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Wycliffe Bible Commentary). 한편, 압살롬의 머
리털 숱이 많고 빨리 자라기로 소문나 있었다(14:26). 그러나 여기서 압살롬은 자기
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두 가지로 말미암아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노새는 왕의 신분을 나타내던 것이며 그의 무거운 머리털은 백성들의 큰 호감을 사던
것이었으나, 이제 그는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것이다(Lange). 우
리는 여기서 악인의 자랑거리를 도리어 수치의 도구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공정한 섭리
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ㅇ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 다윗 군의 한 군사가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달린 것을 요압에게 보고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그가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요압에게 보고한 까닭은, 그가 압살롬을 너그러히 대접하라 한 다윗 왕의 명령(5절)을
들은 탓이었다.

11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ㅇ은 열 개와 띠 하나 - 이는 전공(戰功)을 세운 군사들에게 주는 포상물(褒賞物)이
다. 한편 여기서 '은 열 개'는 화폐라기 보다는 군복에 다는 일종의 장식품 또는 소지
품(눅15:8)이란 의미가 더 강하다(Lange). 또한 '띠'에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고라
' 역시 허리에 두르는 군장(軍裝)으로서, 화려한 수가놓인 일종의 장식
품이기도 하다(왕상 2:5; 사3:24; 22:21). 따라서 요압이 제시한 포상물은 군인의 명
예를 세워주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찌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ㅇ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 이는 명예스러운 훈장 보다는 다
윗 왕의 명령(5절)에 순종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병사의 말이다.
ㅇ우리가 들었거니와...하셨나이다 - 왕명을 귀히 여기고 있는 병사가 온갖 명예와
특권들(11절)을 거부함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요압의 잘못된 생각까지 돌이켜 주
려고 애쓰고 있는 장면이다. 이는 지난날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불의한 명령에도 기꺼
이 순종하였던 요압의 행동과는 극히 대조적이다(11:14-17).

13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더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ㅇ내가 만일...해하였더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 만일 자신이 압살롬을 죽
일경우 훗날 다윗 왕 앞에서 받을 혹독한 질책을 다윗의 병사가 우려하고 있는 장면이
다. 즉, 그는 자신이 압살롬을 죽일 경우, 요압이 도리어 자기를 압살롬을 살해한 자
로 다윗 왕에게 고소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보아 이병사는 평소 요
압의 교활하고 기회 주의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신임하지 아니한 듯
하다.

14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ㅇ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 이처럼 요압이 지체하지 않고 압살롬을 죽이려한
것은 아마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공식적인 사면령(赦免令)이 내려지기 전에 그를
처치하기위한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즉 요압은 압살롬을 살려 둘 경우 그가 또다른 국
가적인 큰 재앙을 야기시키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였기에 그 화근(禍根)을 미리 제
거하려는 의도에서 서둘러 압살롬을 살해하려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일전에압살롬의 귀
환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추진했던 요압(814:1-24)이 이제는 도리어 그를 살해하려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시류(時流)에 편승하기에 급급한 요압의 기회
주의적 태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ㅇ작은 창 셋을 가지고 - 여기서 `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베트'(* )는
날카로운 창이나 화살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대신 이는 '지팡이', 혹은'길쭉한 막
대기'를 의미한다(대상 11:23; 욥9 34;시 23:4; 잠 26:3; 29:15 사9:4). 즉 요압은 끝
이 뾰족한 막대기를 들고서 압살롬을 죽이러 간 것이다. 요압이 그와 갈은 것을 세 개
씩이나 갖고 갔던 까닭도 그것이 날카로운 창이나 화살이 아닌 막대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요압이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 후에도 열명이나되는 병사들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인 사실(15절)은 더욱더 요압이 뾰족한 막대기를 사용했음을 입증해 준다(Keil,
Lang). 즉, 요압이 막대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압살롬이 즉시 죽지 아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요압이 날카로운 무기를 가져가지 않고 막대기를 가져간 까닭은 아마
그의 마음이 너무도 조급하여 손에 잡혀지는대로 가져갔기 때문일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로 보아 이 용어를 `창', 또는 `쇠꼬
챙이'로 번역한 70인역(LXX)이나 벌겟역(Vulgat)은 재고(再考)해볼 여지가 있다.

15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이니라

ㅇ병기를 맡은 소년 - 직속 상관 밑에 예속되어 있어 항상 그를 보좌하며 상관의 병
기를 대신 들고 다니면서 관리하는 병졸을 가리킨다. 대개 이같은 직책은 신분이 확실
하며 총명하고 남다른 충성심과 용맹을 지닌 자에게 맡겨지는 것이 통례였다(삿 9:54
삼상 31:4).
ㅇ압살롬을...쳐 죽이니라 - 이처럼 요압과 그의 신복들이 압살롬을 살해한 행위는
다윗의 명령(5절)을 거역한 처사이자 다윗 왕가에 대한 일종의 뗬시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파괴자요 인격의 파탄자인 압살롬을 요압의 손을
빌어서라도 결국 공의의 심판에 처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전
(全)역사를 주장하사 모든 존재들을 공의의 법대로 이끌어 가신다. 따라서 우리가 견
지해야 할 최선책은 항상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진실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하겠다
(왕상 2:4; 렘 4:1,2; 엡 5:9). 한편, 압살롬이 과거 자신의 종들을 시켜 암논을 살해
하였던 것(13:28,29)과 유사하게 요압의 신복들의 손에 의해 죽임당하였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충격과 또다른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마 26:52).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 하니 저희가 이스라엘을 따르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ㅇ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하니 - 압살롬의 죽음(14,15절)은 곧 반란
(15:10-12)에 대한 완전한 평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요압은 자신의 군사는
물론 압살롬의 군사들도 더이상 희생당하지 않도록 나팔을 불어 종전(終戰)을 선포한
것이다(Keil, Kurtz).

17 무리가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ㅇ큰 구멍 - 여기서 말하는 구멍(pit)란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렁이나 아니면 현재는
폐쇄된 과거의 우물 따위를 의미하는 듯하다(Wycliffe). 왜냐하면 팔레스틴에는 물이
귀하므로 곳곳에 우물을 파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창 26:17-22).
ㅇ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 요압이 이처럼 압살롬의 시체 위에 돌무더기를 쌓
은 것은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패륜아는 돌로쳐서 죽이라는 율법의 조항을 준수한 것
이었다(신 21:21). 또한 이 돌무더기는 아간과 아이왕의 경우처럼 반역자의 수치를 나
타내는 표시이기도 하였다(수 7:26; 8:29). 따라서 이는 곧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
만한 자의 최후는 이처럼 비참한 결말과 수치 뿐임을 교훈해 주는 산 증표라 하겠다
(겔 32:26-28; 마 27:3-8).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ㅇ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 본래 압살롬에게는 세 아
들이 있었으나 모두 조사(早死)하고 말았다(14:27 주석 참조).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이름을 이을 소망이 없게 되자, 변칙적인 방법으로 비석을 세워 자기의 명예를 후대에
전하려 하였던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명예에 대향 압살롬의 과도한 욕심을 발
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에서 세워진 그의 비석은 이제 정반대로 그의 수치
(41-17절)를 전하는 것이 되고말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교만한자의 악
한 계획은 끝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게 될 뿐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있
다(창 11:1-9; 잠 18:12).
ㅇ왕의 골짜기에 있고 - '왕의 골짜기'(the king'sdale)는 창 14:17에 나오는 '사웨
골짜기'(the valley of Shaveh)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이곳은 아브라함이 그돌라오
멜을 물리친 후 소돔 왕과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났던 골짜기이다. 한편, 혹자는 이곳
에 다윗이 거닐며 휴식을 취하던 동산이있었다고 주장한다(Barrois). 그렇다면 이 왕
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바로 근처에 있었다고 볼 수있으므로, 곧 기드론골짜기(the
valley of Kidron)와 일치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요세푸스(Josephus)는 왕의 골짜
기가 예루살렘에서 약 400미터의 거fl에 위치했다고 주장한다(Ant. Vii,3). 이러한 요
세푸스의 주장은 왕의 골짜기가 기드론 골짜기의 어느 한 부분임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는 것이다(Keil, Lange).

19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ㅇ아히마아스...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 다윗 왕의 연락원 아히마아스(15:27,36;
17:17-22)가 다윗 군의 승리를 다윗 왕에게 전달하겠다고 자원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아히마아스가 이 일을 자원한 이유에 대해서, 혹자는 그가 다윗군의 승리만을 알았을
뿐 압살롬의 죽음(14-17)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Hertzberg). 그러면서
그들은 그 증거로서,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는 다윗 왕의 추궁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나이다'라고한 아히마아스의 대답(29절)을 든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 왕의 연락
원이었던 아히마아스가 이 전쟁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압살롬의 죽음을 몰랐었다
고 추측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20절에서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고 한 요압의 말은 이미 아히마아스가 압살름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압살롬의 죽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히마아스가 이 일을 자원했다고는 볼 수 없다. 추측컨데 아히마아스는 이 사실을 알
고 있었지만,다윗 왕에 대해 진정한 동정심(同情心)을 품고있었던 그였기에 본 사건을
보다 부드럽게 전하려고 이 일을 자원했을 것이다(Payne, Rust).
ㅇ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 본절을 직역하면.`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들의 손
으로부터 심판하셨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히마아스가 `...로부터'(민)란 말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원수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는 사실을 강조
하기 위한 표현이다(Keil). 즉 아히마아스는 다윗군의 승리를 다윗왕을 원수의 세력에
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서 이해하였던 것이
다.(Lange).

20 요압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ㅇ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 요압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 문에(14-17절) 이처럼 아히마아스가 다윗에게 승전(勝戰)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금
하였다. 즉, 요압은 이번에는 이 일에 아히마아스가 적합하 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히마아스는 지금까지 좋은 소식만을 전달한 다윗의 심복이었으므로 이번에
도 다윗은 그가 좋은 소 식을 가져오는 줄로 착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27절). 따라서
요압은 압살롬의 죽음을 알리는 이번 일에는 아히마아스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 단하
고. 그에게 다음번에 연락원의 임무를 수 행하라고 권다고했던 것이다.

21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ㅇ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 성경에 나오는 구스
(Cush), 즉 에디오피아(Ethiopia)는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를 수도(首都)로 삼고
있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는 다르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구스 (민 12:1; 대하
14:9-15; 행 8:27-39)는 오늘날의 수단(Sudan) 북부와 이집트의 남부 사이에 위치한
누비아(Nubia) 지방을 영토로 삼았던 나라이다. 또한 사료(史料)에 따르면 구스는 애
굽 왕 세소스트리스 1세(Sesostris I, B.C.1971-1930)의 치세하에 예속되어 있다가
B.C.1000년 경에 독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이 구스 왕조는 B.C.715-663년에 에
굽을 통치하기도 하였는데, 애굽인들은 이를 자신들 의 제 25왕조(누비아 왕조) 역사
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에 나오는 `구스 사람'이 바로 이 에디오피아인인데,
아마 그는 다윗 왕의 노예로서 이번 전쟁(1-4절)에 참전하였던 것 같다. 한편, 요압이
이번의 흉사(凶事)를 다윗 에게 알리는 일을 이 구스인에게 맡긴 까닭은 아마그가 외
국인인데다 다윗 왕의 노예였으므로 아무런 부담감 없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릴 수 있
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Rust). 또한 다윗 왕이 이 구스인 전령(傳令)을 보
는 순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예감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윗 왕의 충격
완화를 기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아무쪼록 나로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음질하게 하소서 요압이 가로되 내 아들아 왜 달음질하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ㅇ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 이 말의 원문인 '레카 에인 베소라 모
체에트'를 직역하면, `네게 보여진 소식은 없다
'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너에게 유익(상급)이 될 만한 소식은 없다'(Bottcher,
Thenius)는 의미이다. 즉 요압은 전쟁에서의 승리(6-8절) 보다도 압살롬의 죽음(14-17
절)이 다윗 왕에게 더욱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 줄 것이라고 내다보고 현재 소
식을 전하려 하는 아히마아스를 자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23 저가 아무쪼록 달음질하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가로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서니라

ㅇ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서니라 - 여기서 들길은 `요단 계곡의 길'을
의미한다(Keil, Lange, The Interpreter's Bible, Wycliffe Bible Commentary). 이 길
은 평평한 평지의 길이었으므로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구스인은
에브라임 수풀(6절)에서 마하나임으로 가는 직선거리를 택하였던것 같다. 그 길은 비
록 거리상으로는 짧은 길이었으나 언덕과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험란한 길이었다. 따
라서 아히마아스가 비록 구스인보다 뒤늦게 출발하였지만 이 구스인을 따라 잡수 있었
던 것이다(Hertzberg, Wycliffe Bible Commentary).

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파숫군이 성문루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음질하는지라

ㅇ때에 다윗 왕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 여기서 `두 문 사이'란 성의 외문(The
outer gate)과 내문(The inner gate) 사이를 의미한다(Keil, Hertzberg, Lange). 이곳
은 파숫꾼의 성문루(城門樓)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다윗 왕은 하루 종일 이
곳에 앉아 초조한 마음 으로 전쟁터에서 기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
다.

25 파숫군이 외쳐 왕께 고하매 왕이 가로되 저가 만일 혼자면 그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저가 차차 가까이 오니라

26 파숫군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왕이 가로되 저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ㅇ저가 만일 혼자면 그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 전쟁에서 아군이 패배할 경우에는 여
러 명의 패잔병들이 도망쳐 올 것이지만,그렇지 아니하고 승리하였을 경우에는 한 사
람이 승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달려올 것임은 기정 사실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성
으로 달려오고 있었으므로 다윗 왕은 이제 승리의 소식알리는 연락병이 오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7 파숫군이 가로되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왕이 가로되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ㅇ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 이로 보아 아히마아스는 평소 그 달음질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익을 정도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습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기
에 파숫꾼은 대뜸 그 걸음걸이를 보고서도 달려오는 자가 아히마아스라는 사실을 알았
던 것이다(Lange, Keil).
ㅇ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말은 물
론 `다윗 왕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책무(責
務)를 소흘히 하지 않는 사람'이란 의미일 것이다. 즉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전장(戰
場)에서 혼자만 도망쳐 올 정도로 비겁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였기에
아히마아스의 입에는 자신들이 기대하던 `좋은 소식', 곧 승전보(勝戰報)가 담겨 있으
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히마아스가 이렇게 평가되기까지에는 평상시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참으로 신뢰받을 만한 삶의 모범을 보여 왔으리라고 충분히 짐
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향기로운 인품은 갑작스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속에서 꾸준히 그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ㅇ평강하옵소서 - 히브리어로 `솰롬'인 이같은 인사말은 `건강', `행복',`
평화', `안녕'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이같은 인사말을 하면서 자신
과 상대방 사이에 영존(永存)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자신들을 참된 평강으로 인
도하시기를 기원하는데, 이는 곧 메시야 대망(待望) 사상과도 연결된다. 그런데 본절
에서 아히마아스는 다윗에 이같은 인사말을 하면서 특별히 두어 가지를 기원하였을 것
이다. 그것은 곧 전쟁 후의 평화와, 압살롬의 죽은 사건이 완만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한편 이상과 관련하여서는 창33:1-11 강해, `구약 시대의 인사법'을 참조하라.
ㅇ얼굴을 땅에 대고 절혀여 - 이같은 인사는 곧 자신을 최대할 낮추므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겸양의 자세이다. 여기서 아히마아스는 다윗 왕에 대한 충성과 존경심을 표현
하기 위해 이러한 신하의 예(禮)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14:22 주석참조.
ㅇ그손을 들어 내 주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 여기서 `그 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붙여 주셨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가르'
는 '가두다', '폐쇄하다'는 뜻이다 (창 19:6, 10; 시17:10; 겔 46:12;출
14:3). 따라서 본절은 여호와께서 다윗의 반란자들을 더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묶어
주셨다는 뜻이다.즉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다윗 군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말
인 것이다.

29 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ㅇ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 이처럼 다윗 왕은 아히마아스에게 무엇보
다도 압살롬의 생존 여부부터 물었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으로서 반란
군의 진압 성공 여부부터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도, 아버지로서의 강한 부성애(父性愛)
를 먼저 나타냈던 것이다.
ㅇ나를 보낼 때에...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 압살름의 생사 여부에 관련 다
윗왕의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는 아히마아스의 말이다. 즉 아히마아스는 압살롬
의 죽음이 다윗 왕에게 큰 충격이 될 줄 알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확실한 대답을 회피
하였던 것이다. 이는 분명 다윗 왕에 대한 그의 동정심에서 나온 행동일 뿐만 아니라,
요압의 언질을 기억한 행위이다(Hertzberg). 즉. 요압은 아히마아스에게 이는 상 받을
만한 소식이 아니므로 가지 말라고 만류하였던 것이다(22절). 할편 이같은 아히마아스
의 행위와 관련된 윤리성 문제는 본장 19-33 강해, `아히마아스의 거짓에 대한 정당한
판단'을 참조하라.

30 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ㅇ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 이처럼 다윗 왕이 아히마아스를 물러서게
한것은 곧 이어 구스 사람이 당도하였기 때문이다(24-27, 31절). 한편 여기서 `서 있
으라'에 해당하는 `야차브'는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자리로 돌아가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이말은 어떠한 목적이나 임무 수행을 위해서 있으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출 8:20;9:13;신 31:14;삼상 10:19;12:7; 욥 33:5; 렘 46:14). 따라서 다윗 왕이
아히마아스에게 곁에 서 있으라고 명령한 것은, 구스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후에
아히마아스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더 듣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있다.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ㅇ여호와께서...모든 원수를 갛으셨나이다 - 아히마아스가 다윗에게 보고하였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28절). 아마도 구스인은 무엇보다도 다윗이 전쟁의 결과를 궁금히 여기
리라생각하고 먼저 이같은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ㅇ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 29절에 이어 다윗이 다시 압살롬의 신변부터 염려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는 분명 지금껏 다윗을 위하여 목숨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반란을
무찔렀던 다윗의 군사들(1-8절)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19:5, 6). 훗날 요압이
아도니야와 손을 잡고서 솔로몬에게 반역한 것(왕상 1:7)도 이러한 다윗의 태도에 실
망한 때문일 것이다.
ㅇ왕의 원수...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 압살롬의 죽음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는구
스인의 보고이다. 그런데 여기서 구스인이 압살롬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급하
고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즉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화(禍)를 당하리라
는 공공연한 인식(19-22절)에도 불구하고, 구스인은 압살롬의 죽음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의 그 죽음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던져 주는데 사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우주 퉁치권을 믿는자라면 이처럼 죽음
의 위협 앞에서도 담대히 진실을 증거할수 있을 것이다(단3:16-18; 행4:17-21).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ㅇ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 여기서 `마음이 심히 아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
' 는 본래 `떨다', `전율(戰慄)하다'는 뜻이다(22:8; 출 15:14 삼상 14:15;
시 18:7; 77:16; 99:1). 따라서 본절은 다윗 왕이 압살름의 죽음의 소식을 접한 후 극
심한 충격과 함께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비탄에 빠진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
다.
ㅇ저가 올라갈때에 - 여기서 `올라갈'이란 말은 바로 앞에 나온동사 `올라가서'와는 다
른 용어이다. 즉, 앞의동사 `올라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는 `밑에
서 아래로 올라가다'는 뜻이다(15:24 창 19:28; 출 8:3). 그러나 여기서 `올라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얄라크'는 `행하다', `나가다'는 뜻이다(창 11:31; 출
33:16; 레 18:4; 신 8:6; 10:12; 왕상 2:3,4). 따라서 이 말은 앞의 경우처럼 다윗 왕
이성루에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없다. 대신 이 말은 성루에 이미 올라간
다윗 왕이 이리저리, 또는 미친 듯이 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
서 본절은 다시금 `저가 이리저리 배회할 때에', 또는 `저가미친 듯이 방황하면서'로
개역(改譯)할 수 있다.
ㅇ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 이러한 다윗 왕의 절규에는 다음과 갈은 이중적인
슬픔이 내재해 있었음이 분명하다. 죽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본능적 비탄이다.
ㅇ자신의 범죄(11장)가가져온 뿌리깊고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12:10-12)에 대한 아픔
이다. 즉 다윗 왕은 여기서 압살롬의 죽음이 자기의 죄의 결과임을 절감하면서 흐느끼
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 자신의 범죄로 인해 이미 두 아들을 잃었는 바
(12:15-19; 13:30-39), 이제 또 압살롬을 잃게 되자(14, 15절) 자신의 뼈아픈 과거의
죄가 기억나서 통한(痛恨)의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격정적인 절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지금껏 압살롬을 대항하여 싸웠던 군사들
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32절 주석참조.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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