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2):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1) (9-13장) | ||||||||||||||||||||||||||||||||||||||||||||||||||||||||||||||||||||
1.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킴(9장) 다윗은 시바를 통해서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서 그를 마길의 집에서 왕국으로 데리고 왔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그의 부친 요나단을 인해 그에게 은총을 베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말했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왕자 중 한 사람처럼 왕궁에 살면서 왕의 식탁에서 먹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집에 속한 모든 것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고, 시바를 불러서 그를 섬기고 공궤하라고 지시했다. 시바는 다윗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했다. 므비보셋은 이로 인해 궁전에 머물면서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식탁에서 먹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므비보셋은 예루살렘 궁전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5-13). 어떤 학자는 다윗이 므비보셋을 왕국에 머물게 한 것이, 북왕국 사람들이 사울의 가족을 통해 반역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옳은지를 확인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므비보벳을 왕궁으로 데리고 왔다는 사실이다. 2. 암몬과 수리아의 도전과 정복(10장) <참고 지도: 다윗의 정복> 이에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왕의 미움을 사게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서 돈을 주고 여러 지역에서 군사들을 사들였다. 그들은 벧르홉 아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20,000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군사 1,000명, 그리고 돕 사람 12,000명을 용병으로 고용했다(6). 위의 4개국 중에서 3개국은 아람의 도시 국가였다. 당시 아람인들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각각 분립적인 소도시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벧르홉 아람은 벧르홉에 도시를 건설한 아람 소국을 의미한다. 벧르홉은 단 지파의 성읍이었던 라이스의 북쪽에 있었다(삿 18:28; 민 13:21). 소바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 동쪽에 있던 아람 소국으로, 아람의 여러 소국들 중에서 하맛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또한 마아가는 바산 동북쪽(신 3:14), 헬몬 산 서남쪽에 있던 아람 왕국으로, 그술과 인접해 있는 나라였다. 이때에 마아가만 암몬의 모병에 응하고, 그술은 응하지 않은 것은 그술 왕 달매가 다윗의 장인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3:3). 돕은 이스라엘 지경 길르앗 지방 안에 있던 한 성이었다(삿 11:2, 5). 이곳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암몬 땅에서 가까왔기 때문에 암몬의 모병에 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상 19:6)을 보면, 이때에 암몬 왕 하눈이 군대를 모집하기 위해서 사용한 돈은 은 칠천 달란트였다. 이를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로 환산하면, 6백만 드라크마가 된다. 암몬왕 하눈이 고용한 2만 명의 보병은 역대기의 기록에는 '병거와 마병'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대상 19:6). 당시 하눈이 고용한 아람 용병은 보병과 전차병, 기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Keil & Delitzsch).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을 암몬으로 보냈다(7). 이때에 암몬 사람은 요압과 싸우기 위해서 성문 어귀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들이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은 따로 들에 있었다(8). 요압은 이들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고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은 정예병을 이끌고 아람을 치고, 나머지 군사들은 자기 아우 아비새에게 맡겨서 암몬 사람과 싸우게 했다(9-10). 요압이 먼저 아람 군사들을 공격했고 아람 군사들은 요압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본 암몬 사람들은 싸우기를 그치고 성으로 피해 도망치고 말았다(11-14). 아람 사람들이 요압에게 패배한 것을 본 하닷에셀은 다시 강 건너 편에 있는 모든 아람 군사들을 모았다. 이때에 그 군사들은 소박이 지휘하고 있었다(15-16).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친히 아람-암몬과 싸우기 위해서 출정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는 이 전쟁에서 아람 병거 700승과, 마병 40,000명, 그리고 군대장관을 쳐서 죽였다(17-18).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은 이스라엘에게 패한 후에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19). 그러나 문제는 암몬인이었다. 그들은 먼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엇기 때문에, 다윗은 그 쪽에서 다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요압을 시켜서 암몬의 수도인 랍바 성을 치라고 명령했다(11:1). 당시 야전 사령관은 요압이었으며,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다윗은 그 유명한 밧세바와의 스캔들을 일으키게 된다. 이 사건은 다윗을 두고 두고 괴롭힌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후에 요압은 전쟁에서 이겨서 랍바 성을 정복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에 다윗을 불러서 다윗이 그 성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12:26-29). 3. 다윗의 범죄: 밧세바와 우리야 사건(11-12장) 3-1. 다윗의 범죄(11장) 저녁이 되었을 때에 다윗은 침상에서 일어나서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다윗의 나태한 태도는 국가적으로 초긴장 상태에 있었던 당시의 상황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윗은 낮잠을 즐길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모습은 다윗이 당시에 계속되는 성공으로 인해 영적으로 심히 나태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저녁때'는 늦은 오후(오후 3시부터 어두워질 때까지)를 의미한다(삼상 30:17). 낮잠에서 깬 다윗은 저녁녘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서 지붕 위를 산책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는 다윗의 일상적인 습관이었을 것이다(Lange, Pulpit). 다윗은 신하를 시켜 그녀가 헷 사람 엘리얌의 딸이며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상 3:5)을 보면 밧세바는 '암미엘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엘리암(Eliam)과 암미엘(Ammiel)은 모두 '하나님'이란 뜻의 '엘'과 '백성'이란 뜻의 '암'이 합성된 칭호로서,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23:34)을 보면 엘리암은 다윗의 모사인 아히도벨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로 있다가 압살롬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다윗을 배반했던 사람이었다(15:12; 16:20-23).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보고, 밧세바의 조부인 아히도벨이 이러한 다윗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고, 후에 압살롬의 난에서 다윗을 배반했다고 주장한다(Pulpit Lange). 이러한 같은 주장은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헷 사람 우리아는 다윗의 37인의 용사 중에 하나였다(23:39). '우리아'는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뜻으로, 우리는 그의 이름을 통해서 그가 비록 이방인(헷족속)이지만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헷 족속은 원래 가나안의 둘째 아들인 헷의 후손으로(창 10:15),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팔레스타인 살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이다(수 9:1-2). 다윗은 부하를 시켜서 그녀를 데려오게 했다. 이때에 다윗은 정욕을 절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점점 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다. 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5)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은 결국 그녀와 동침하게 되었다(2-4). 일이 이렇게 되자 다윗은 또 다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요압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후에 그것을 우리야를 통해 전달하게 했다. 그 편지에는 우리야를 전쟁터에 보내서 고의로 전사하게 만들라는 영이 기록되어 있었다(14-15). 다윗은 간사하게도 이러한 간악한 명령을 기록한 편지를 우리야의 손을 통해 전달했다. 요압은 그 명을 받고 용맹한 암몬 군사들이 있는 곳에 우리야를 보내서 싸우게 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야와 다윗의 신복, 즉 군사 고문들이 죽게 되었다. 다윗은 자기 죄를 은폐하기 위해 이처럼 큰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에 요압이 제대로 된 장군이었다면, 그는 다윗에게 왜 우리야를 죽여야 하는 지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그렇게 하지 않고 즉시 충성스러운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를 죽이고 말았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토해서 요압의 진실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후에 요압은 패전과 우리야의 전사 소식을 다윗에게 전했다(16-24). 다윗은 우리아의 전사 보고를 받고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다윗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불의한 죄악을 감추려 한 계략(15절)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자, 충성스러운 신하가 죽은 일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는 우리아의 충성과 대비되는 다윗의 폭정이며, 배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일로 인해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다윗은 신하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다윗의 반응은 평상시에 보여 주던 그의 자애로운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1:12; 3:31,32; 18:33). 이는 그가 우리아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도 쾌재를 감추기 위해 태연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것이다(Lange).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다윗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웠던 신하들의 아까운 죽음(17, 24절) 보다도 자신의 은밀한 죄를 감추기 위해 오직 한 사람 우리아의 죽음 여부에만 온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의 한 번 실수(4절)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고력과 판단력을 잃음은 물론 그 심령 또한 완전히 메말라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다시 요압에게 "그 성을 향해 더욱 힘써 싸워서 그 성을 함락시키라!"고 지시했다(25). 밧세바는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호곡했다. 호곡했다는 말('사파드')은 '죽은 자를 위해 가슴을 치며 우는 것'을 말한다(왕상 14:13; 창23:2; 렘 4:8; 슥 12:10). 히브리인들은 대개 죽은 자를 위해 7일간 호곡했으며(창 50:10; 대상 10:12; 삿 16:24), 특별한 인물이 죽었을 때는 30일간 호곡하기도 했다(민 20:12; 신 34:8). 밧세바는 자기 남편 우리아를 위해 보통의 경우처럼 7일간 호곡하였을 것이다. 장사를 마치게 되자 다윗은 밧세바를 데리고 와서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그가 이렇게 서두른 것은 자신이 밧세바가 전에 임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밧세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어 그를 위해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사무엘서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행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 여기에서 '악했다'는 말(라아)은 다음과 같이 서너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1)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되는 불의한 행동(룻 1:21; 왕상 17:20),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부도덕한 행동(사31:2; 습1:12), 3) 죄인 줄 알지 못하고 행하는 습관적인 악한 행동(창 19:9; 렘 4:22; 13:23; 잠4:16; 17:4). 이러한 악한 행동은 반드시 그 행위에 대한 보응이 뒤따르는 악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11장 전체에 걸쳐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다윗의 행동이 악하다고 결론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도 정욕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여호와 앞에서 악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은 이를 경고 삼아 안목의 정욕(요일 2:16)에 빠져 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욥 31:1;시119:9). 3-2.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12장)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은 다윗의 행위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왕권을 남용하는 일이었다.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섬기기 위해 여호와께서 세운 종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크게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신 때는 다윗이 범죄한 후 약 1년 정도가 지났을 때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밧세바가 다윗의 아이를 해산한 때였기 때문이다(14절). 하나님께서 이처럼 범죄한 다윗을 즉시 책망하지 않고 1년 동안 기다리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1) 다윗으로 하여금 죄로 말미암은 영적인 고통의 실상을 경험하게 함으로 다시는 죄를 범하려는 욕망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시 32:3,4). 2) 다윗의 굳어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리기를 기다리기 위함이다(시 32:5). 다윗은 범죄한 후에 먼저 하나님께 나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먼저 범죄한 다윗을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다윗을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다윗은 여전히 죄와 절망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롬 1:28). 다윗의 악한 범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나단 선지자는 한 가지 비유를 사용했다. 나단이 비유로 다윗을 책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한 나라의 왕인 다윗의 권세에 대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함으로 다윗의 완고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2)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다윗이 스스로 회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3) 자신의 죄의 실상에 대해 둔감한 다윗에게 비유를 통해 그 죄의 참담한 실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비유는 완악하고 어리석은 죄인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한 방법이다(사 5:1; 겔 17:3; 19:2, 3; 24:3; 마 13:34). 나단이 다윗에게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한 성에 두 사람이 살았는데, 한 사람은 부유하고 한 사람은 가난했다. 가난한 자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그 암양을 함께 먹고 마시게 하며 딸처럼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 집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부자는 자기 집의 양을 잡는 것이 아까워서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서 손님을 대접했나이다(1-4)."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노발대발하면서 "그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했다. 그리고 그 부자는 자기가 빼앗은 양의 4배를 갚아야 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 말을 들은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사울의 손에서 왕위를 빼앗아서 다윗에게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모두 다윗의 손에 주셨다. 하나님은 만일 다윗이 더 원했었다면 더 많은 것도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업신여기고 우리야를 죽이고 하나밖에 없는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5-10).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서 악을 행한 다윗에게 다음과 같은 징계를 선언하셨다.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10-).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네 처를 백주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 그 사람이 네 처와 동침하리라(11). 너는 은밀히 이 일을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에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11-12)."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 즉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다. 그러자 나단은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13). 그러나 나단은 다윗이 이 일로 인해 여호와의 원수들이 다윗을 비방할 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대답했다(14). 하나님은 나단의 말대로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치셨으며, 이로 인해 그 아이는 크게 앓았다. 이로 인해 다윗은 금식하며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신복들은 왕의 몸이 쇠할 것을 염려하여 금식을 중단하기를 요청했으나 다윗은 이를 듣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 아이는 앓기 시작한 지 7일만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이 슬퍼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이가 죽은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아이가 죽은 것을 알아챘다. 다윗은 신하들을 통해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일어나서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차리게 하고 그것을 먹었다. 신하들은 이러한 다윗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아이가 살아있을 때에 슬퍼하던 다윗이 어찌해서 아이가 죽은 후에는 슬퍼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다윗은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데려간 후에는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15-23). 다윗은 그의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들어가서 그녀와 동침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했다. 그가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하셨다. 솔로몬의 탄생과 그 이름을 여디디야로 짓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하시고, 그에게 은총을 베푸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솔로몬'은 '평강의 사람'이란 뜻이다. 이러한 이름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밧세바를 용서하시고 그 가정에 평화의 표시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솔로몬의 출생이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화목한'관계가 회복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이 아이의 이름을 재차 지어주신 것(25절)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그러나 솔로몬은 사실상 밧세바가 다윗에게 낳은 넷째 아들이었다(5:14; 대상 3:5). 여기서 솔로몬이 앞서 죽은 아이(18절)의 바로 다음에 태어난 것처럼 기록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특별히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25절). 2) 장차 다윗의 왕위를 이을 계승자로서 솔로몬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왕상 1장). '여디디야'란 이름은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 이름을 주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회개한 다윗을 전보다 더욱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솔로몬을 선물로 주셨다(Keil). 2) 다윗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의 아들 중에 하나를 후계자로 선택하여 다윗 왕조를 계승하게 하셨다(7:14-16). '여디디야'(Jedidiah)라고 하는 이름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다윗의 후계자로 선택하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Pulpit, Payne).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셨음을 알 수 있다. 요압은 랍바성을 쳐서 거의 그 성을 정복하게 되었을 때에 다윗에게 기별하여 그 곳으로 와서 그 성을 취하라고 전했다. 이 이야기는 솔로몬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때는 이미 요압이 랍바 성을 공격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요압은 자기가 성을 취하면 자기 이름이 높아질 것을 염려하여 다윗에게 와서 그 성을 직접 점령하라고 요청했다. 다윗은 그 요청을 따라 즉시 랍바 성으로 가서 요압과 함께 그 성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 성의 왕의 머리에서 금 한 달란트나 되는 보석이 박힌 면류관을 취하여 자신의 머리에 썼다. 다윗은 그 성에서 수많은 물건을 가져왔으며, 그 성 사람들은 데려다가 힘든 일, 즉 톱질, 써레질, 도끼질, 그리고 벽돌을 굽는 일을 시켰다. 다윗은 암몬 자손에게 속한 모든 성을 이와 같이 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25-31). 4. 암논의 근친상간 사건(13장) 마침내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기 지작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것과 동일한 범죄가 암논을 통해서 그의 가족 안에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주한다. 그 후에 압살롬은 다시 돌아와서 다윗을 몰아내고 왕이 되려는 계획을 감행한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은 다윗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관계되어 있으며, 나단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동생 다말을 강제로 욕보인 사건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다. 그런데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1). 그러나 다말은 처녀였기 때문에 암논이 어찌할 수 없어서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2). '처녀'라는 말('베투라')는 '동정녀', 즉 아직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정숙한 여인을 의미한다(Lange, Keil). 다말은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품위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암논이 함부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다말이 암논에게 연정을 품게 할 정도로 성숙한 것을 보면 이때에 다말은 15세 이상 되었을 것이다. 다말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딸이기 때문에(대상 3:5-9), 본문에 기록된 사건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한 지 최소한 15년은 경과했을 때였다(5:1-5). 그런데 암논에게는 요나답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로서 심히 간교한 자였다(3). 시므아는 이새의 셋째 아들로서(대상 2:13) 삼마라고도 불렀다(삼상 16:9; 17:13). '간교한 자'란 말(이쉬 하캄')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 '지혜롭고 능숙한 자'를 의미하지만, 나쁜 의미로 사용되면 '교활한 자'를 의미한다. 본문에서느 이 말이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는 사람의 마음과 사건의 정황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그 지혜를 범죄하는 일에 사용하고 말았다. 요나답은 친구 암논이 나날이 말라가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암논은 다말로 인한 상사병 때문이라고 대답했다(4). 그러자 요나답은 암논에게 다말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요나답은 병이 든 척하다가 다윗이 오면 다말에게 요리를 해서 먹게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말했다. 암논은 그의 말대로 해서 다말과 둘만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를 거부하는 다말을 강제로 범하고 말았다(5-14). 그러나 암논은 다말을 범한 후에는 그녀를 향했던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암논은 다말을 강제로 문밖으로 쫓아내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이로 인해 다말은 재를 그 머리에 쓰고,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에 얹고 크게 울면서 돌아갔다(15-19).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쓴 것은 자신의 수치스럽고 비참한 현실에 대한 슬픔과 고뇌를 나타내는 행동이다(삼상 4:12; 왕하 5:8). 아마도 다말은 조금 전 과자를 구울 때 사용한 화로나 벽난로에서 취한 재(8절)를 머리에 뒤집어썼을 것이다(Pulpit). 옷을 찢는 행위 역시 금식이나 굵은 베옷을 입는 행위(왕상 21:27; 에 4:3; 시 35:13)와 함께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는 히브리인의 표현법이었다. 다말이 손을 머리 위에 얹은 것은 자신의 머리에 수치가 임한 것을 애통해하는 표현이었다(렘 2:37). 다말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당한 억울함(11-14절)과 결백함을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Lange). 다말의 오라비인 압살롬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암논이 장남인 고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고 있었다. 암논이 다말에게 행한 일은 다윗의 귀에도 들어갔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심히 분노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과감하게 처벌할 수 없었다. 이러한 다윗의 우유부단함에 대해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자신이 친히 그 원수를 갚을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압살롬은 그 때부터 암논을 미워하여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22). 마침내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지 만 2년 후에 에브라임 곁에 있는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게 되었다. 압살롬의 복수극은 즉흥적인 감정에 의해 돌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오래 동안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압살롬의 이러한 음모는 누이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쿠테타 성격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의 차남인 길르압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세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장남인 암논만 제거하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알하솔은 에브라임 성에서 북쪽으로 약 4km,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는 산지 마을이었다. 이곳은 해발 1,200m 가량 되는 고지로서 목양하기에 아주 적합한 목초지였다. 압살롬은 다른 왕자들처럼 이곳에 자기 토지를 마련하고 많은 양들을 사육했을 것이다. 목축업을 주산업으로 삼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양털을 깎는 일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행해졌다(삼상 25:2-8). 따라서 압살롬은 이 일을 미끼로 자연스럽게 형제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다윗은 먼저 이 축제에 다윗을 초청했다. 물론 그는 다윗이 바쁜 국사로 인해 그 축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이 이를 거절하는 것은 본 압살롬은 다윗 대신에 장남인 암논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다윗은 암논과 다른 모든 왕자들을 압살롬의 양털을 깎는 축제에 참가하도록 지시했다(23-27). 이때에 압살롬은 미리 신복들을 시켜서 자신의 신호를 따라 암논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마침내 암논은 압살롬의 신호에 맞추어 압살롬의 신복들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모든 왕자들은 모두 노새를 타고 뒷산 언덕길로 도망치고 말았다(28-29). 히브리인들은 동쪽 방향을 앞쪽이라고 불렀고, 서쪽 방향을 뒤쪽이라고 불렀다(출 3:1 ; 사 9:12). 따라서 뒷산 언덕길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던 산길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후에 다윗은 압살롬이 모든 왕자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옷을 찢고 충격으로 혼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의 신하들도 옷을 찢고 다윗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다윗을 찾아가서 다윗을 위로하였다. 그는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암논만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암논에게 다말을 범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후에 압살롬이 보복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앗을 것이다. 그는 다윗에게 암논이 다말을 범한 때부터 압살롬이 원수를 갚기 위한 일을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요나답은 모든 왕자가 죽지 않고 암논만 죽었다고 말하면서 다윗을 위로했다(30-33).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한 후에 다윗 왕을 두려워하여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에 다윗은 왕자들이 노새를 타고 언덕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나답은 그 광경을 보고 다윗에게 자신이 한 말대로 되었다고 하였다. 왕자들은 다윗과 그 신하들을 보고 통곡했으며, 다윗 왕과 그 신하들도 함께 애통해 하였다. 다윗이 대성 통곡한 까닭은 자신의 죄와 잘못이 기억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압살롬이 다말 사건으로 인해 암논을 살해한 사실을 알고, 과거 자신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살해했던 죄를 기억했을 것이다(11장). 그리고 자신이 암논을 엄히 징계하지 못한 결과(21절) 결국 형제간의 살육이란 비극을 초래한 일에 대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죽임 당한 암논에 대한 안타까움, 압살롬에 대한 염려 등이 어우러져서 심히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Pulpit). 압살롬은 암논을 죽인 후에 그의 조부인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인 달매에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다윗은 압살롬을 인해 날마다 슬퍼했다(34-37). 그술은 아람 소국들 중 하나로,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있던 나라였다. '그술'이란 말의 뜻은 '다리의 땅'으로, 이는 헤르몬 산에서 갈릴리 호수까지 북부 요단강 양편으로 다리처럼 길게 뻗어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다윗은 당시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여 그술과의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아가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압살롬이었다. 따라서 그술 왕 달매는 압살롬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압살롬이 달매에게로 도망을 한 지 3년이 지나갔다. 3년은 다윗이 압살롬의 죄악을 잊어버리고 그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애끓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그때에 다윗은 이미 압살롬을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를 보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다윗은 이미 암논이 죽었기 때문에 마음에 위로를 받았으므로 압살롬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었다(38-39). 다윗 왕은 마음 속으로 압살롬을 법에 따라 처벌할 의지를 포기했다.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으며, 오히려 압살롬에 대한 연민의 정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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