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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룻기

[스크랩] 룻기 (1 : 1~2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2:03
룻기 1장 


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ㅇ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 여호수아서 저자가 그 책의 기록 배경을 밝히기 위해 책
의 서두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구절을 기록하여 역사 서술을
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사기 저자 역시 책의 서두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삿 1:1)
라고 기록함으로써 그 역사적 배경을 밝혔던 것처럼, 본서의 저자도 이와 같은 역사
서술의 전형적인 형태를 좇아 본 구절을 삽입시켰다. 이처럼 룻기의 저자가 본 구절을
서두에 기록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사적 의미를 일깨워 준다. (1) 저자는 본
서가 확실한 역사적 사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명백히 했다.(2) 저자는  본서의 역사적
기록 배경을 제공했다. 이로써 본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종교적
인 교훈만을 주기 위한 허구의 소설(fiction)이 아니라, 엄연히 역사적  사실(fact)위
에 근거하고 있는 구속사적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
곧 '사사 시대'란 일반적으로 여호수아 사후, 첫 사사 옷니엘이 등장할 때(삿
3:9, B.C. 1367년)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이 등장할 때(삼상 10:1,B.C.
1025년)까지 대략 342년간의 기간을 말한다(J.P. Free, Archaeolgy and Bible
History).그중에서도 특별히 룻기의 배경이 되던 때는 드보라와 바라그이 활약상에 힘
입어 이스라엘이 누린 40년간의 평화기(삿 5:31)가 끝나고, 미디안 족속의 압제를 받
던 12세기 후반 경의 사사기드온의 시대로 추정된다(Keil), 이러한 연대 추정은 B.C.
1010년에 헤브론에서 통치를 시작한 다윗이 바로 룻의 증손이라는 사실(4:17)에
근거한다(L.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한편, 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옮기
면 '사사들의 재판하던 날들에'란 의미가 된다. 당시 '사사'(쇼페트)들의
직무란 문자 그대로 주로 백성들의 소송을 '재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왕이
'다스린다'란 의미를 지닌 '말라크'대신 '재판하다'에 해당하는 '솨파트'
란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울러 사사들은 전시에는 군대를지휘하는
지휘관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는데, 이런 점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기도 했
다(삿 2:16,18).
ㅇ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 특히 고대의 농사는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
을 받았기 때문에, 흉년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흉년은
대부분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기만 한다면 풍성한 소출이 약속된 반면(레 26:3-5, 10;
신 28:1-14).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우상을 섬긴다면 온갖 재앙과 아울
러 기근과 흉년이  또한임할  것이라고경고되어 있기 때문이다(레 26:19,20;신
28:23,24). 이런 맥락에서 여기의 흉년도 사사 시대의 타락상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특히 이때의 흉년은 당시 이스라엘의 소산물을 약탈해 갔을 뿐 아니라 토
지를 황폐화시켰던 미디안 족속의 침략(삿 6:2-4)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듯하
다(Schmidt, Patrick).
ㅇ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 모압지방은 요단 동편에 위치하며, 사사 시대에
는 아르논 강을 경계로 르우벤 지파와 인접해 있었다. 유다 지파의베들레헴에서 이
지방까지는 그렇게 멀리 않았으므로, 엘리멜렉 가족들이 흉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가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모압 지방'(세
데 모압)이란 단어는 문자적으로 '모압 들판'(field of Moab)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들판은 바로 아르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들판이며 초지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들이 모압 땅에 우거하기는 했으나 자기 동족들인 르우벤 지파가 살고 있는 곳에 인
접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난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기 때문이다(민
36:6-9).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압 평지에 10년 동안 우거했던 것으로 보아(4절). 흉
년으로 인해 모압으로 간 것은 단순히 일시적 이동이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불신앙적
행위로 말미암아 이들 가족은 그곳 모압 땅에서 큰 고초를 겪게 된다(3-5,20절).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ㅇ엘리멜렉(Elimelech) - '하나님은 왕이시라'란 의미로서, 곧 이
이름은 그의 부모의 신앙을 반영하는 이름이다. 한편 엘리멜렉의 처 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귀환했을 때 온 성읍의 화제가 되었던 일(19절)이나, 그의 친척 보아스
의 지위(2:1;4:1)등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엘리멜렉은 성내의 유력 인사였던것 같다
(P. Cassel).
ㅇ나오미(Naomi) - '감미로운 자', '은혜스런 자', '사랑스러운 자'등의
의미인데, 이 이름은 특히 자부룻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말년에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ㅇ말론과 기룐 - 각각 '병약한(연약한)자'와 '사모(열망)하는 자'란 뜻으로 순수한
히브리식 이름이다(Keil)
ㅇ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 - '에브랏'또는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이름(창
48:7)으로, 족장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라헬이 죽은 곳이기도 하다(창 35:16-19:48:7).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후일 미가 선지자의 입을 통해 메시야가 태어날 장소로 예
언된 곳으로서(미 5:2),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마 본서의 저
자도 이러한 구속사적 통찰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이처럼 자세하게 설명했을 것이다.
즉 본절은 엘리멜렉 가족의 고향이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삿 12:8)과 분명히 구별했고, 또한'에브랏 사람들'
(Ephrathites)이라고 밝혀줌으로써, 그들이 베들레헴 본토인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했
다(P.Cassel). 한편 허비(A.C. Hervery)는 여기 '에브랏 사람'과 '에브라임 사람'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잘못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즉 (1) 성경 어느 곳에서도 에브랏과 에브라임을 동일시 하지 않았다. (2)
에브라임은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산악 지대인 반면, 베들레헴은 예루살
렘 남쪽 7km 지점의 유다산지에 속해 있다.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ㅇ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 엘리멜렉은 가족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들어와
그 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물론 이때는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
룐이 장가들기 전이었다. 아마도 나오미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사후에도 계속 모압 땅에 머문 것 같다.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ㅇ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 페쉬타 역본(the Syriac  Peshitta)
과 탈굼 역본(the Targums)은 본절에 덧붙여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취한 것은 하나님
의 율법을 어긴 것이다'라는 내용을 삽입시켰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이 번역에  동
의하여 그들의 결혼을 정죄했다(Matthew Henry. Thomas Fuller).그러나 혹자는 주장하
기를, 모세 율법은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만을 금지했지(신 7:3), 모압여인과의 결혼까
지 금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결혼 자체를 정죄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Keil,
Hervey).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모압 족속에 대한 신명기의 규례
(신 23:3-6)를 자세히 살펴볼 때 그들의 결혼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화란의 신학자 고스링가(Goslinga)의 말대로, 이들의 결혼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범한
것은 아니지만 율법의 정신을 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율법에서 가나안 여인
과의 결혼을 금지시키신 것은 그곳의 우상 숭배(왕상 11:1,2)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모압 여인과의 결혼도 결국은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들은 율법의
정신을 범한 것이다. 사실 당시 모압과 암몬 족속의 우상 그모스와 몰렉은 다른 여타
우상들보다 더욱 가증스러웠다. 따라서 나오미의 두 아들의 결혼은 잘못된 것인데, 이
는 무엇보다도 결혼 후 가정에 임한 환난을 두고 나오미가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
다'(13절)라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Atkinson). 이처럼 언
약의 백성은 실패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도 당신의
오묘하신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셨으니, 곧 이때 결혼한 모압 여인 룻을 통해 다윗의
가계를 형성하신 점이다(4:17).
ㅇ오르바...룻 - 각각 나오미의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의 아내가 된 이 두 여인의 이름
은 전형적인 모압식 이름이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의 이름 뜻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
고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오르바'(Orpah)는 '돌아가는 자', '룻(Ruth)
은 '친구'를 뜻한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추론했을 뿐  근거
는 없다(Pulpit Commentary).이에 비해 카젤(P. Cassel)의 추론은 흥미롭다. 즉 그에
따르면, 소녀들의 이름은 흔히 꽃이나 동물의 이름 따위에서 따온다는 전제하에 고대
셈어로부터 그 어근을 유출하여 '오르바'는 '암사슴'을, '룻'은 '붉은 꽃'(장미)를 각
각 의미한다고 보았다(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그러나 이러
한 견해 역시 하나의 흥미있는 추정일 뿐, 그 언어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ㅇ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 혹자는 엘리멜렉에 이어 그의 두 아들까지 일찍
죽은 것은 (1) 언약의 땅 가나안을 떠난 죄와(2)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G.Gerleman).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향후 전개되는 구
속사적 위치상 나오미가정이 점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결코 우연의 일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는 이방의 신실한 여인 룻(Ruth)을 '여호와의 날개 아래'(2:12)로
불러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의 결과로 봄이 타당하다.
ㅇ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뒤에 남았더라'에 해당하는 기본 동
사 '솨아르'는 '부지하다', '연명하다' 등의 뜻으로, 남편과 두아들을  잃
고 홀로 뒤에 쳐져 남아있는 나오미의 모질고 비참한 모습을 풀러(Thomas Fuller)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한 존재이다. 여자 중에서도 노년기의
여자는 더욱 약하다. 그중에서도 과부는 더 불쌍하며, 거기에 가난한 과부는 더더욱
측은하다. 나아가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 중에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은 더욱 처량하며,
그것도 먼 타국에서 객이된 자식 없는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는 실로 가련하며 불쌍하
다. 진정 욥이 남자 중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다면, 나오미는 여자 중 가장 처량한 지
경에 빠진 여자이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이처럼 나오미는 낯선 이국 땅에서 일
찍이 남편을 여의고, 애써 키운 두 아들마저 잃고 말았지만, 그러나 그녀는다행스럽
게도 깊이 좌절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은 듯 하다. 즉 나오미는 언약의 땅을
쉽게 떠나온 것을 깊이 뉘우치고, 오직 위로자요 구원자되시는 여호와만을 더욱 의지
하고자 한 듯하다(6절). 이러한 나오미의 신앙이 마침내는 기쁨의 결실을 보게 된 원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4:14-17).

6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ㅇ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 여기서 '권고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방문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계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다. 이는 곧 목자가 양떼를 보살피기 위해 찾아가 양들을 계수하며 모든 환경을 주의
깊게 돌아보는 상태를 일컫는다(출 4:31; 렘 23:2). 한편, 본서의 저자가 이러한 표현
을 사용한 것은 사사시대의 형편을 암시해 준다. 즉 사사 시대는 일반적으로 암흑의
시기로 이야기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중 우상 숭배
가 극심했으며,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때에는 반드시 그 백성을 돌보기 위해 찾아가셨다. 즉 이방의 침략하에 고통하며 당신
을 향해 부르짖을 때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돌아보사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절에 언급된 나오미 시
대의 이 흉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지만(1절의 주
석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기억하사 그 백성을 찾
아가심으로써 그 기근은 해결되었다(6절). 이와 같은 역사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
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서 끊임없이 적용되었다.
ㅇ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기
근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지난 날을 뉘우침과 동시에 이방족속의 땅,
곧 우상 그모스의 땅을 떠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으며,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빠진 나오미
가 이전에는 유지 가문으로 지냈던(2절 주석 참조)고향으로 다시금 돌아가려고 결정한
것은 매우 용기있는 결단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며 뉘우친 신앙의
결단이기도 했다.

7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ㅇ두 자부도...길을 행하다가 - 두 자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모(시)를 단
순히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모와 함께 시모의 고향으로 갈 결심으로 같이 동행
했던 것같다. 이로 보아 평소 나오미와 두 자부 사이의 관계는 퍽 애정이 깊었던 것
같다. 특별히 나오미의 신앙 인격이 두 자부에게 깊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아마도 길
을 행하는 도중 나오미는 한두번 돌아갈 것을 권면했겠지만, 두 자부는 그럼에도 불구
하고 계속 따라온 것 같고, 마침내는 모압에서부터 낯익은 유다의 고향 땅으로 통하는
대로에 이르자, 시모 나오미는 젊은 두 자부의 장래를 위해서 그들 역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굳힌 것 같다.

8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ㅇ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 나오미에게 있어 이말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 며느리초자 떠나버리면 나오미는그야말로
의지 할데 없는 홀홀 단신 과부가 되기 때문이다. 노년에 의지할 데가 전혀 없는 과부
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들의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나오미 자신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으니, 고향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정을 가지고 평안히 살아가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9-12절). 뿐만 아니라 향후 닥칠 모든 고통을 나오미 자신이 혼자 짊어
지겠다는 자부()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담겨 있다.
ㅇ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 '선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
세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언약적인 사랑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출 15:13;20:6). 특별히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호 중 언약
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호와'가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나오미는 며느리
들이 비록 자기 곁을 떠나 그들의 고향 땅에 갈지라도 모압의 국가신인 '그모스'를
섬기지 않고, 여호와만 섬기며 그분의 축복 가운데 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간절했던
것 같다. 즉 나오미는 이별의 순간에 여호와만이 축복의 근원이시며 참되시고  유일한
신이심을 주지시켜 주었다. 이것은 비록 나오미가 언약의 땅은 떠났지만 언약의
하나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동시에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비단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의 모든 국가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ㅇ여호와께서 - 본장에서 하나님의 성호가 '여호와'(Jehovah)로 가장 많이 사용된 점
에 유의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호가 여러가지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각 문
맥에서 특징지워지는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여기서 나오미가 '여호와'라는 성호를 사용한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1) 언약의 하나님을 상기시킬 때(6, 8, 9절):6절에는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 곧 언
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찾아가셨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8절과  9절에서는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언약 백성 가운데 포함된 자들에게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복주
시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언약을  파기한 백성에 대하여 징계할 때
(13,17,21절):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언약을 맺는 과정에서 짐승을 잡아 각을 뜨
고 피를 사방에 뿌린다. 그것은 그 언약을 범한 자도 반드시 그 같이 될 것이라는 표
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경우에 반드시 '여호와'라는 성호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신 4:27,31,40; 호 1:9; 암 3:2).한편, 또한 본장에는 '전능자'(솨다이)란
말이 여호와란 말과 연관되어 동의어 처럼 사용되었다(20,21절). 그런데 '솨다이'라는
하나님의 성호는 족장시대 이후부터여호와의 거의동의어로 사용되었다(시
68:14;91:1;겔 1:24;10:5). 그 이유는 언약을 실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여호와'라는 성호는 당신의 백
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ㅇ남편의 집에서 - 전통적으로 과부는 고아와 나그네와 함께 가장 소외된 계층의 사
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호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는 율법으로 그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하셨다(출 22:22,23).특별히 과부들의 권리를 보
호하고 그들의 짐을 덜어 줄것을 가르치셨다(신 14:29;24:19,20;27:19). 그럼에도 불
구하고 과부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대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사 1:23; 겔
22:7; 말 3:5). 나오미는 이러한 당시 사회 형편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며느리들이
자기와 함께 가는 것을 극구 막고자 했던 것이다. 대신 두 자부가 아직 젊기 때문에,
재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가지라고 권유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과부가 사
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ㅇ평안함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누하'는 '안식처', '안
식','안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종합적으로 '메누하'는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안식처
를 찾아 안정을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속에는 기거하
는 집은 있으나, 보호받을 남편이 없어 진정한 안식 없이 슬픔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
내는 과부의 고통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재혼하
여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안식을 누리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ㅇ소리를 높여 울며 - 즉 '목 놓아 엉엉 울었다'란 의미인데, 어려운 처지에서 10년
동안 동고 동락했던 시모 나오미가 강력히 이별을 권하자, 두 자부가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일시에 터뜨리는 장면이다. 진정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장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떨치고 극구 보내려 하고, 며느리들은 며느리대로 홀로 남게 될 시모
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극구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 서로 껴앉고 목놓아 우는 이 장면
은 물론 처량하기도 하거니와 반면 아름다운 고부의 관계를 보여 준다.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ㅇ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 본절은 문맥상 약간 이상한 표현이다.
즉 오르바와 룻은 모압 출신이며 모압에서 자라 그곳에서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스라엘 백성에게 '가겠다'(go)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return)고 고집했다.
그래서 이것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단순히 나오미가 돌아가는 길을 자
기들이 동행한다는 의미에서 '돌아가겠다'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 (2)나오미와 자
신들이 비록 출신은 다르나 같이 와서 함께 돌아간다는 공동체적 입장에서 그렇게 말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시모 나오미의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나오미
와 헤어지기 싫어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번째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분명히
그들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땅에 왔던 것처럼 표현하여, 그와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갈
당위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11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ㅇ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 본절은 나오미가 신25:5,6에
나타난 바 '계대 결혼'(, Levirate Marriage)의 규례를 고려하여 한  말이다.
즉 남편이 죽고 자식은 없을 때 그 미망인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남편의 대를
이을 수 있다는 율법의 계대 결혼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신 25:5-10
부분 주석 참조). 따라서 본절은 죽은 아들들을 대신하여 대를 이어줄 자식이 이
제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오미의 이 말과 관련하여 학자들 간에는 다음 몇가지
해석이 따른다. (1) 나오미가 재혼하더라도 그녀의 아들들이 엘리멜렉의 자녀가 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말론과 기룐의 진짜 형제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다. 이러한 이유로 나오미가 계대 결혼의 의미를 완전히 곡해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
들이 있다(J.B.Carpzov). (2)이와 반대로 어떤 학자들은 나오미가 엘리엘렉의 형제와
결혼하게 되면 계대결혼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Keil). (3)본절이 계대 결혼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 정신은 나오미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는 사실을 강조한 것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David  Atkinson).결론적으
로 우리는 두번째와 세번째의 견해에 의거하여 본절을 해석할 수 있는데, 곧 나오미는
계대 결혼을 할 수는 있으나 이미 그는 늙었으므로(12절) 자식을 가질 수 없는 형편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계대 결혼을 염두에 둔 것만은 사실이다. 근본적인 의미
는 자기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과부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 의미는 이하 언급되는 12,13절에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
게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강조한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된다<1:6-18강해,계대 결혼의
성경적 의미>.

12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ㅇ말한다든지...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기다리겠느냐 - 나오미는 자부들이 만
일 자신과 함께 가면 끝내 과부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점층적인 표현으로서
설득하고 있다. 즉 (1) 자신의 나이나 처지를 감안할 때 전혀 재혼(계대 결혼)의 가망
이나 의사가 없지만, 만일 재혼을 하여 남편이 있다손 치더라도 (2) 자신은 늙었으므
로 도저히 자식의 잉태를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백보 가정하여 아이를 낳았다
손 치더라도 (3) 그 아이가 계대 결혼법을 이해하고 지킬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2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터인데...,그것이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냐란 의미를 강력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시 나오미는 이들이 모압 여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비록 이들이 이스라엘로 간다고 할지라도 계대 결혼 이외에는 도저히 재혼이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한 것 같다.
ㅇ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마지막으
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 그녀가 며느리들을 설득시
키는 마당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신 사실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해 보인
다. 그러나 오르바가 돌아간 후 나오미가 룻을 설득할 때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
에게로 돌아가나니"(15절)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보아, 분명코 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여호와 신앙을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토, 친
척, 아비 집을 떠나 풍습과 언어가 다른 먼나라로 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섬기던 신을 떠나 여호와의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로 간다는 것은단순한애정이나
의지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고난과
슬픔의 원인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다. 만일 나오미가 자기의 가정에 닥친 고난
을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일로 생각했다면, 비록 유다땅에 흉년이 그쳤다
는 소문을 들었을지라도(6절)돌아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9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도 그 재앙의 원인을 바로 깨닫지 못했던 애굽 왕 바로와는 좋은 대조가 된
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ㅇ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 고대 근동의 관습상 입맞춤의 포옹은 기쁜 상봉
의 순간(창 33:4;45:15;출 18:7)이나 아쉬운 이별의 순간(창 31:55;행 20:37)에 주로
행하던 풍습이었다. 물론 여기서는 어쩌면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를 그 아쉬움 때문
에 입맞춤한 것이다.
ㅇ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여기서 '붙좇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
는 '굳게 결합하다'(cleave). 또는 '붙들고 늘어지다'(cling)란 의미를 지니
고 있다. 성경에서 주로 사용된 '다바크'란 동산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녀의 결혼 관
계에서(창2:24), 그리고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되었다(시 63:8). 뿐만
아니라이동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구속의 은총에 대한응답으로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실 때 역시 사용되었다(신 10:20). 이를 통해 볼 때
'다바크'란 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에 사용되었으며, 은총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 때도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룻이 그의 시어머니를 좇아간 것은
북받치는 애정과 충실한 마음으로 결코 이별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에 의해서였다.
아울러 나오미로부터 주로 영향받았을 여호와 신앙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 의해서였
다(Driver,Briggs).

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ㅇ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 이것을 원문대로 문자적으로 옮기면 '그녀의
백성과 그녀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가 된다. 다시 말해 오르바(Orpah)는 자기가 속
한 백성에게로 갔을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이 섬기는 신에게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볼 때 오르바는 단순히 그의 시어머니의 품을 떠난 것이 아
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그모스(삿 11:24)또는 바알브올(민 25:3,5)신을 섬기는
우상의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이 말을 한 것은  13
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시모에 대한 애정을 초월하여, 여호와를 향한 룻의
신앙을 시험해 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고대 세계에서는 자기 종족이 섬기는
신을 버리는 것은 본토나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 이상으로 극히 어려웠다. 특히
부족 국가를 이루며 살던 당시에는 부족신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흔하지 않았
으므로, 나오미는 이것으로 룻의 신앙을 시험해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풀러
(Thomas Fuller)박사는 야곱의 경우와 비교하여 역설적으로 재미있게 묘사했다. 즉
"마치 하나님이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신앙을 꺾기 위해 애쓰신 것처럼, 여기서 나오
미는 자부 룻의 올바른 결심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Pulpit Commentary).
ㅇ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 이 말을 풀어 쓰면, 곧 '너도 동서가 결단을 내린 것
처럼, 결단을 내려 너의 백성과 너의 신에게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했듯, 나오미의 이 말속에는 다분히 여호와를 향한 룻의 신앙을 시험코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렇다고 우리는 여기서 나오미(Naomi)가 오르바(Orpah)의 행동을
은근히 비난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사실 일반적인 도덕 수준에서 볼 때, 오르
바도 나름대로 시모 나오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룻(Ruth)의 각오와
신앙이 더욱 뛰어나고 위대했을 뿐이다. 따라서 나오미가 룻에게 "네 동서(오르바)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라고 말한 것은 다만 그 결과만을 언급한 것 뿐이
다. 여하튼, 오르바는 떠나갔고 룻은 남았다. 이것은 마치 이스마엘은 떠나가고 이삭
은 남은 것처럼(창 25:6), 그리고 에서는 떠나가고 야곱은 남은 것처럼(창 36:6) 하나
님의 심오한 구속사적 경륜과 섭리의 결과였다.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ㅇ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이러한 룻의 고백은 진실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되신다는 올바른 신앙에 근거해 있
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재혼하여 남은 여생 동안은 편안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
음에도 불구하고(9절) 자기의 부모, 친척, 그리고 신을 떠나 아무 희망이 없는 시어머
니를 따라가겠다는 룻의 결심은 단순한 효성이나 애정을 초월하여 완전한 자기 희생을
감수한 위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17절). 한편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나오미가 이방 우상의 나라에서도 그 신앙의 빛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
라, 자신의 여호와 신앙을 물려 주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신앙적으로 며느리들을
교훈시켰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하거나 가르치는 자가 없었다면, 이처럼 룻이 훌륭
한 믿음의 고백을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롬 10:14,15).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ㅇ만일...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 룻의 신앙은 여기서 가장 확실하
게 입증된다. 즉 룻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만 발견되는 독특한 서약의 형태로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 맹세했다(삼상
3:17;25:22;왕상 2:23). 본래 서약에는 일반적으로 어떤 표적이나 의식이 동반되지만,
여기서는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 서약을 범할 경우 스스로 벌을 받겠다는 엄숙한 형식
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여기서 룻이 맹세를 할 때 '여호와'(Jehovah)라는 신명칭을 사
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란 성호는 언약 공동체인 이스
라엘 사회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신명칭이었기 때문이다(왕상 19:2). 그런데 이방인
이었던 룻이 여기서 이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룻
은 나오미의 신앙을 따라 자기 나라 모압의 신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확실히 지니고 있었다. (2) 룻은 자신이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성호로 맹세
함으로써 이미 언약의 백성에 속해 있음을 고백했다. 이러한 룻의 신앙에 근거해 볼
때 진정 그녀는 여기서 언약을 어긴 자에게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여호와를경외하는
마음으로 엄숙히 맹세했다고 볼 수 있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ㅇ나오미가...말하기를 그치니라 - 사실 홀로 된 나오미인들 그동안 정든 두 며느리
를 떠나 보내는 것을 진정 원했겠는가? 다만 두 자부의 형세적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욕심은 일단 접어두고 그들을 돌려보내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것은 시험적 형태를 띠게 되었고, 결국 룻만이 통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두 자부
는 나오미의 의도를 따라 각자 자신의 행복의 길을 추구했다. 즉 오르바는 모압 땅 자
신의 아비 집에서, 룻은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 모두를 기쁘게 인정했다.

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ㅇ온 성읍이...떠들며 이르기를 - 성읍내에서 유력한 가문이었던(2절) 엘리멜렉 가족
이 먼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간 사실도 분명 한때의 큰 화제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어언 10년이 지난 후, 낯선 여인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나타난나오미의
등장은 분명 조그마한 성읍 베들레헴을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소동케 하기에 충
분히 재미난 화제거리 였음에 틀림없다.
ㅇ이가 나오미냐 - 이 말은 단순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놀라움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이방 여인인 며느리만을 데리고
빈손으로 처량하게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연민의 정을 느껴 발한 탄성이다.
따라서 이 말은 10여년 전 고향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르게(21절) 변한 나오미의 모습과
처지를 반영한 말이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ㅇ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 '나오미'(Naomi)란 이름
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장의 전후문맥과 어근을 살펴 볼 때 '감미로운
자','은혜로운 자','사랑스러운 자'란  의미를 지닌다. 반면에 '마라'(*         ,
Mara)란 단어는 '괴로움', '쓰라림', '씀'을 의미한다(출 15:23). 그러므로 이처럼 나
오미가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고 한 것은 그녀가 모압에서 생활하는 중 극도의 슬
픔과 고통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괴로운 상태에 머물
러 있기 때문이다.
ㅇ이는 전능자가...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여기서 나오미가 특별히 하나님의 신명칭
을 '전능자'로 부르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전능자'(솨다이)란
신명칭은 택한 백성이 순종의 길로 걸어갈 때는 무한히 축복해 주시되, 어그러진 길로
갈 때는 어김없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 주는 명칭이다. 나오미
도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용한 듯하다.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ㅇ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 이 말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혹
자는 엘리멜렉의 가정이 지방 귀족 가문으로서, 그들이 모압을 향해 떠나던당시에는
베들레헴에서 널리 알려질 정도로 부유하였다고 주장한다(David Atkinson, Leon
Moris). (2) 어떤 학자는 나오미가 풍족하게 나갔다는 말은 재산이나 명예의 풍부가
아니라, 든든한 남편과 두 아들로 풍족하게 나갔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A.C.
Hervey). 그런데 본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우리는 위의 두 가지 내용이 모두 함
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오미가 떠날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에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사람 뿐 아니라 재물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나오미가 돌아올 때 남편과
자식들 없이 공수로 돌아온 것에 초점을 맞추면 두 번째의 주장도 타당하다. 사
실 충족한 재산을 가지고 이방 땅에 가서 흉년이나 기타 재난으로 망하지 않았다면,
비록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 지라도 재물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
나 이후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생활한 형편을 보면(2:2), 남편과 자식들
을 잃은 것 외에 재물까지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오미가 떠날 때 풍족
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위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ㅇ징벌하셨고...괴롭게 하셨거늘 - 이 두 동사형은 서로 관련이 있다. 즉 '징벌하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는 눈 밖에 난 자를 비천하게 만들어 결국 괴
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괴롭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하나님의 징계로 괴로움을 당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한편 나오미가 본절에서 이
두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1) 자기의 고통스러움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는 사실과 (2) 그 징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인다는 회개의 의미로 설
명될 수 있다.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ㅇ본절은 1장의 요약이자 2장의 서론으로서, 나오미와 룻의 귀환을 역사적 바탕 위에
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ㅇ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 팔레스틴(가나안)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리를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추수한다(2:23). 그리고 보리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밀수확을
한다. 팔레스틴의 보리 추수는 보통 4월말 경에 시작되었으나(수 3:15) 고원 지대에서
는 5월 또는 6월 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또한 보리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나는 주산물 중 하나로서 주로 말이나 노새의 먹이로 경작되었으나, 가난한사람들에
게는 이것이 양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
를 하나님께 바치고 봉헌하기 위해 '초실절'을 절기로 지킨다(레 23:9-14).
한편, 본절은 나오미가 자기 고향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6절), 곧바로 모
압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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