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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수아(4): 기업을 분배하라(1) (13-17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12

 여호수아(4): 기업을 분배하라(1) (13-17장)

 
  우리는 지난 2주 동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과정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5:13-12장).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12지파가 그 땅을 어떻게 분배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12-21장). 오늘은 요단 동편과 유대,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13-17장), 다음 주에는 나머지 7지파 반이 분배받은 기업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18-21장).
                       

요단강을 건너라!

가나안을 정복하라!

땅을 분배하라!

여호와만 섬기라!

도하준비

정탐
파견

요단
도하

중부
정복

남부
정복

북부
정복

정복요약

요단동편
분배

유다요셉기업

기타지파 기업

도피성레위성

동편지파

1차

2차

모세죽음

길갈/군대장관

심판과 구원

12지파

레위인

제단

언약갱신

임종

1     2

3     4

5:1
   -12

5:13
   8

9
   10

11장

12장

13 

14 
  17

18
 19

20
    21

 22

  

   23

  24



1. 서론: 땅 분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7)

  "1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온 지방과 그술 사람의 전경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남방 아위 사람의 땅과 4 또 가나안 사람의 온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사람의 지경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사람의 땅과 동편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거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나이 많아 늙었다'는 말은 보통 임종이 그리 멀지 않은 연로한 상태를 말한다(23:1;창 24:1).  가데스 바네아의 거역 사건으로 인해,  시내 광야에서 계수 된 사람들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살아남았다(민 14:30). 그 당시 갈렙의 나이가 85세였기 때문에(14:10), 여호수아는 거의 100세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전투 속에 살아온 여호수아도 이제 기력이 쇠하여 더 이상  전투를 지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은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이 많이 남아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나머지 땅의 정복을 각 지파에게 남겨두고 미리 그 땅을 분배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이후부터 각 지파는 정착과 정복을 동시에 병행해야만 했다. 가나안 땅은 완전히 정복된 것이 아니라, 아직 부분적으로 정복되지 않은 땅이 남아 있었다. 이처럼 가나안 땅이 완전 정복되지 않은 이유는 여호수아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가나안 거민들을 조금씩 쫓아낼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다. 하나님께서 이러게 점진적으로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가 황폐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2) 우상 숭배자들인 가나안 족속을 일부 남겨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지를 시험하고 단련시키기 위해서(삿 2:30-3:4).

  블레셋 족속은 '그레데'로 알려진 '갑돌'(렘 47:4; 암 9:7; 창 10:14)에서 가나안 해안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고 전해진다. 블레셋 족속의 땅은 욥바에서 가사 남쪽까지 이르는 서남부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였다. 성경에서 블레셋이 최초로 이스라엘의 주된 적으로 언급된 것은 삼손 시대로서(삿 13-16장), 이 무렵에 그들은 단과 유다 지파를 지배하고 있었다(삿 14:4;15:11). 사사 시대에 블레셋의 영토 확장 사업에 쫓겨난 단 지파는 북쪽으로 이동하였다(삿 18:11, 29). 사사 엘리 시대에는 이들의 침공을 저지하려 했지만, 오히려 에벤에셀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 패전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언약궤와 당시  이스라엘의 예배 중심지였던 실로 성읍까지 빼앗겼다. 이후 사무엘 시대에 일시적인  승리가 있었지만(삼상 7:7-14), 블레셋 세력은 꺾이지 않았다. 이러한 블레셋 세력이 정복된 것은 다윗 때였다(삼하 8:1;21:5). 그들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독립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앗수르의 사르곤 왕에게 정복됨으로써 그들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사 20:1). 그술 지방은 북쪽 요단강의 동부 지방으로서, 마아갓 족속의 땅과 함께 므낫세의 아들 야일에게 분배되었다(신 3:14). 그러나 후에 그술 족속은 아람 족속과 더불어 하봇-야일(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취했던  곳)과 다른 지역을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았다. 압살롬은 다윗과 그술 왕 달매의 딸이었던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삼하 3:3;대상 3:2). '시홀 시내'는 애굽 앞 국경 가까이에 있던 애굽의 강 이름이다. 시홀(Sichor)은 (사 23:3)에서 나일강이라고 불리러졌다. 그리고 (렘 2:18)에서는 유브라테스 강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시홀 강이 나일 강 지류의 한 갈래였던 펠루시악(Pelusiac) 강이나 부바스티테(Bubastite) 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이 강을(역대상 13:5에 근거하여) 다윗 제국의 최남단인 와디엘 아리쉬(Wadi el Arish) 강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Keil).

  가사는 블레셋 남서쪽에 있는 5개의 주요 성읍들 가운데 최남단에 있는 성읍으로, 애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아스돗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세 개의 블레셋 성읍들(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중 가장 북쪽에 있다. 여호수아 당시 이곳에는 아낙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11:22), 후에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5:47). 엘리 제사장 때에 아스돗은 블레셋의 수중에 있었으며, 블레셋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아스돗에 놓았다(삼상 1-4장). 그러나 하나님이 내린 재앙으로 인해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삼상 6:1-8). 아스글론은 가사 북쪽 약 27km의 지중 해변에 있는 비옥한 성읍이다.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이 영토를 확장하여 하맛 왕국의 변방 땅을 정복했지만 하맛 왕국 수도를 점령하지는 못했다(대상 8:4). 그리고 수리아의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이후 이곳은 '에피파니아'로 명명되었다(J.J. Lias, F.R. Fay). 가드에는 가드 족이라고 하는 키 큰 아낙 족속(Anakim)이 살고있었다. 아낙 족속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때에 전멸 당했으나, 그 잔류 자들은 아스돗, 가사, 가드에 남아  있었다(10:36-39; 11:21,22).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도 가드(Gath)출신의 아낙 족속이었다(삼상 17:4, 23). 에그론은 블레셋의 5개 주요 도시 가운데 최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지중해 연안에서 동쪽으로 약 14km 지점에 있다. 에그론(Ekron)은 유다 지파에 할당된 지역으로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는 점령되지  않았다가(15:11, 45, 46), 유다 지파가 사사 시대 초기에 점령하였다(삿 1:18). 아위 족속(the Avvim)은 가사 남쪽, 곧 팔레스타인 남서부 해안 지방의 여러 촌락에 흩어져 살고 있던 가나안의 초기 원주민 족속이었다. 그러나 갑돌(그레데) 지역에서 이주해 들어온 블레셋 족속에 의해 쫓겨났다(신 2:23). 그렇지만 이 종족 중 일부는 블레셋 족속 가운데 잔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나안 사람의 온 땅은 지중해 동해안에 자리잡은 좁고 긴 베니게(Phoenicia) 지역(시돈, 두로, 므아라 일대)을 말한다. 시돈(Sidon) 두로(Tyre)와 더불어 지중해 연안에 있던 가장 큰 항구이다. 후에 아합 왕이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에 바알 신 숭배가 유행했다(왕상 16:31). 그 결과 시돈은 선지자들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고, 그 예언대로 시돈은 계속 열강에 예속되었다(사 23:4; 렘 47:4; 겔 28:22; 욜 3:4). 므아라는('동굴'이라는 뜻). 오늘날 시돈 동쪽 바논에 위치한 '무그르 예진'(Mughr Jezzin)으로 추정되며 은신처로 잘 알려져 있다(Keil). 아벡은  (12:18)에 나타나는 남부의 '아벡'과는 다른  곳으로, 여기 '아벡'(Aphek)은 아셀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19:30). 이곳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비너스 신전으로 유명했다. 따라서 후일 콘스탄틴 대제는 이곳을 파괴했다(Eusebius). 이곳의 오늘날의 위치는 베이루트(Beirut) 북동쪽의  '아프카'(Afka)로 추정된다(Robinson, Keil). '그발'(Chebar)은 지금의 '예바일'(Jebail)로서 그리이스 로마 시대에는 '비블로스'(Byblos)로  알려진 아름답고 항구 도시였다(Masius) 그발 인들은 뛰어난 건축술과 항해술로 크게 인정받았다(왕상 5:18; 겔 27:9). 그러나 이곳은 '담무스'(Tammuz)와 '아도니스'(Adonis)를 섬기는 신전 장소로 유명했다(F.R. Fay). 레바논 산은 베니게 역사와 분리시킬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 이  레바논을 보기를 원했지만(신 3:25) 허락 받지 못했다. 이 땅은 약속의 땅 안에 포함되어 있었지만(신 1:7) 정복되지 않았다. 바알갓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레바논 산과 헤르몬 산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하맛은 다메섹 북쪽 약 200km 지점에  있는 수리아 지방의 한 성읍이다. 이 성읍은 오론테스(Orontes) 강의 제방 위에 세워졌다. 미스르봇마임은 두로(Tyre)와 악고(Accho) 중간에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북부 동맹국들을 정벌할 때 지나간 곳이다.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땅 분배 당시, 아직 점령되지 않은 북부 지역을 포괄적으로 언급한 말이다. 곧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미스르봇마임으로부터 동쪽으로는 바알갓까지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시돈 사람의 모든 땅과 블레셋 족속의 땅까지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분배할 것을 명하셨다. 그들은 아직 그 땅을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이미 받은 것으로 알고 기업을 분배했다.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9지파 반(半)에게 분배되어야 했다. 그것은 2지파  반(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은 이미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기 때문이다(민 32:33-42).  (1-6절)은 가나안 땅 가운데 이스라엘이 채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열거하였고, (8-33절)은 요단 동편 땅의 기업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4장부터는 요단 서편 땅의 기업 분배에 대하여 기록한다. 따라서 본절에 기록된 가나안 기업 분배 명령은 14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나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크'는 '분배하다', '매끄럽게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기업 분배가 제비뽑기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해 준다(민26:55-56).


2. 요단 동편 땅의 분배(13:8-33)(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참고 지도 보기: "이스라엘 12지파가 분배 받은 기업들")

 2-1. 서론(8-14)
 
 "8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은 요단 동편에서 그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9 곧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디본까지 이르는 메드바 온 평지와 10 헤스본에 도읍하였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의 모든 성읍 곧 암몬 자손의 지경까지와 11 길르앗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의 지경과 온 헤르몬 산과 살르가까지 이른 온 바산 12 곧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도읍하였던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라. 모세가 이 땅의 사람들을 쳐서 쫓아내었어도 13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14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

  히브리 원문에는 므낫세 반 지파란 말이 생략되고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만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은 지파들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이므로, 여기서 므낫세 반 지파가 기입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8-13)에 설명되어 있는 요단 동편 땅은 (수 12:2-5; 민 32:33-42; 신 3:8-17)와 같이 언급되고 있다. 아르논, 아로엘에 대해서는 (12:2) 참조하라. 디본은  (사해 동쪽에 있는) 아르논 강 북쪽에 있는(모압의) 도시로서,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 대한 승리를 말할 때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민 21:30). 디본(Dibon)은 갓 자손이 건축했으므로 종종  디본 갓(Dibon-gad)이라고도 불리웠으며(민 33:45, 46),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3:17). 메드바는 요단 동편의 고원 지대에 있는 성읍으로 헤스본에서 남쪽으로 약 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메드바는 아모리 왕 시혼이 모압에게서 빼앗은 성읍이었으나, 이스라엘이 시혼을 격파하고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하였다(13:16).  1868년 이곳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모압 비문에 의하면, 오므리 시대에 이스라엘이 이 지역과 수도 디본을 점령한 일과 모압 왕 메사가 이곳을 탈환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사 15:2).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Sihon)과 그 수도 헤스본(Hesbon) 및 그에 딸린 여러 성읍 및 촌락을 정복한 사실은 (민 21:23-26)을 참조하라. 길르앗은 야르묵 강과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는 땅으로서 목축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창 31:21; 신 3:12-17).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의 지경은 (신 3:14)에서 므낫세 지파의 야일(Jair)이 취한 성읍으로 기록되어 있고, (12:5)에서는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경계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 지역이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지파들의 영토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이 땅을 완전히 차지한 적은 없었다. 헤르몬 산에 대해서는 (신 3:8)을 참조하라. 살르가는 바산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성읍으로(12:5; 신 3:10), 잠시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하였다가, 후에 갓 지파의 기업으로 귀착되었다(대상 5:11). 바산에 대해서는 (신 3:1)을 참조하라. 모세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이 바산 왕 옥(Og)을 정복한 사실은 (수 12:4, 5; 민 21:33-35; 신 3:1-11)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바산은 갈릴리 바다 곁, 상부 요단  강 동쪽에 위치한 비옥하고 넓은 지역이다. 바산(Bashan) 지역의 경계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불가능 하지만, 대략 북쪽으로는 헤르몬 산, 동쪽으로는 살르가, 남쪽으로는 길르앗 땅, 서쪽으로는 그술과 마아가 지역을 그 경계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바산 지역은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준 기업의 땅 가운데 일부분이었다(신 3:13). 한편 바산에 포함된 골란 지방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세 개의 도피성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옥은 바산의 왕으로서 그가 사용한 침상의 길이는 무려 4m 가량이었으며 그 폭은 1.8m였다(신 3:11). 그는 에드레이 전투에서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하였으며(민 21:33-35), 그후 바산 지역의 60개에 달하는 그의 모든 성읍이 함락되었다(신 3:4-6).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에 대해서는 (수 12:5; 신 3:14)을 참조하라.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일, 곧 성소의 일을 위해 구별되었다(민 8:14-19). 따라서 맡은 바 종교적 직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계를 위한 기업(땅)이 분배되지 않았다.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첫 예물을 받을 수 있었다(민 18:8-20). 성경은 이 사실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셨다'(신 10:9;18:2)고 말하고 있다. 본래 '화제물'(잇솨)은 '불'(엣솨)이란 말에서 파생된 말로, 곧 번제 단 위에서 불로 태워져 드려지는 희생 제물을 말한다(레 4:35; 5:12).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가져온 각종 예물 중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지고 난 나머지(레위인들의 몫)를 가리킨다(신 18:1).


 2-2.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된 지역(15-23)
  이 부분은 요단 동편 땅 중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르우벤 지파는 요단 강가를 그 서편 경계로 하여 남쪽으로는 아르논 골짜기, 북쪽으로는 헤스본과 그 주변의 촌락들을 경계로 하는 사해 동편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민 32:37, 38).

  "15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16 그 지경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메드바 곁에 있는 온 평지와 17 헤스본과 그 평지에 있는 모든 성읍 곧 디본과 바못 바알과 벧 바알 므온과 18 야하스와 그데못과 메바앗과 19 기랴다임과 십마와 골짜기 가운데 산에 있는 세렛 사할과 20 벧브올과 비스가 산록과 벧여시못과 21 평지 모든 성읍과 헤스본에 도읍한 아모리 사람 시혼의 온 나라라 모세가 시혼을 그 땅에 거하는 시혼의 방백 곧 미디안의 귀족 에위와 레겜과 술과 훌과 레바와 함께 죽였으며 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 23 르우벤 자손의 서편 경계는 요단과 그 강가라 이상은 르우벤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은 (12:2)을 참조하라. 여기서 '골짜기'는 요단 동편의 지형을 고려할 때 경사가 완만한 평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뒤따라 나오는 '평지'란 말은 이러한 골짜기의 특성을 말해주는 보충적 용어이다. 메드바와 디본은(13;9)을 참조하고, 헤스본은 (12:2; 민 21:26)을 참조하라. 바못 바알의 원래 이름은 바못이었다. 이 곳을 '바못 바알'('바알의 신당'이란 뜻)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할 때에 이곳에 설치했던 바알 제사 의식에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이 곳에 진(陣)을 쳤다(민 21:19-20). 벧 바알 므온의 원래 이름은 '바알 므온'이며(민 32:38), '벧 므온'(렘 48:23), 또는 '브온'(민 32:3)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편 성경에서 이 성읍은 '벧여시못'과 '기랴다임'과 함께 모압 변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으로 묘사되었다(겔 25:9). 야하스는 아모리 왕 시혼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영토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과  전쟁하다가 패한 곳이다(민 21:23; 신 2:32; 삿 11:20). 이 곳은 르우벤 지파에게 주어졌다가, 다시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주어졌다(21:36). 야하스(Jahaz)의 위치는 아르논 강의 북쪽, 헤스본의 남방인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그데못은 아르논 강 상류에 있는  성읍으로, 모세는 이곳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그 땅을 통과하게 해달라는 사자를 보냈다(신 2:26). 그 후 그데못(Kedemoth)은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나중에 레위 지파인 므라리 자손의 성읍이 되었다(21:37). 메바앗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약 9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야와'(Jawah)이며, 이 곳도 역시 르우벤 지파에게 주어졌다가 다시 레위 지파인 므라리 자손에게 부배되었다(21:37). 기랴다임은 정복 후 르우벤 자손이 새로 건축한 성읍이었으나(민 32:37) 후에 모압인이 다시 탈취했다. 이 성읍은 선지자에 의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받았다(렘 48:1, 23). 오늘날 기랴다임의  위치는 사해 동쪽, 아르논 강 북쪽에 위치해 있는 '엘 케레이야트'(el Qereiyat)로 추정된다. 십마 는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으로,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했다(민 32:38; 사 16:8, 9; 렘 48:32). 오늘날 그 위치는 느보와 헤스본 사이의 평평한 구릉지 위에 있는 폐허이며, '와디 살마'(Wadi Salmah)를 굽어볼 수 있는 '쿠른 엘 키브쉬'(Qurn el-Kibsh)로 추정된다. 세렛 사할은 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으며 그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벧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진을 쳤다(신 3:29). 여기서 모세는 신명기를 선포하였고 또 이 계곡에 매장되었다(신 34:6). 한편, 오늘날 이곳은 느보 산 북쪽 및 헤스본의 서쪽에 있는 '길벳 에쉬 세이크 야일'(Khirbet esh Seikh Jayil)로 추정된다. 비스가 산록은 (수 12:3; 신 3:17)을 참조하고, 벧여시못은 (수 12:3; 민 33:49)을 참조하라.

  평지 모든 성읍과 헤스본에 위치한 시혼의 온 나라는 르우벤 지파가 받은 기업을 결론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시혼의 방백 곧 미디안의 귀족은 (민 31:8)에서 '미디안의 다섯 왕'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즉 아모리 왕 시혼은  미디안을 정복하여 이 다섯 왕을 예속시켜 자신에게 조공을 바치는 봉신(封臣)으로 삼았다. 따라서 이 미디안의 왕들은 각자의 영토에서 독자적인 행정 체제를 갖춘 채 시혼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러나 시혼이 정복당한 후에는 이들 역시  '바알브올의 사건'(민 25:1-9)에 깊게 연류된 죄로 전멸 당했다.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은 (민 22:5)을 참조하라.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모압 국경에 이르렀을 때,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당시 유명한 점술가인 발람을 청했다. 발람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만류로 처음에는 가지 않다가 발락이 두 번째로 더 큰 부와 명예로 유혹하자 끌려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발람은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으며 천사에게 견책도 당하였지만 결국 모압으로 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저주 대신 축복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발람은 자신의 사악한 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범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람은 결국 모세에 의해 미디안 다섯  방백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민 22, 25장). 르우벤 자손의 서편 경계는 요단과 그 강가였다. 본문에는 르우벤 지파의 서쪽 경계선이 마치 요단 강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르우벤 지파의 서쪽 경계선은 사해가 차지하고 있어서 그들은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요단 강 하구의 서쪽 경계선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2-3. 갓 지파에게 분배된 지역(24-28)
  이 부분은 요단 동편 아모리 왕 시혼의 딸 중 갓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갓 지파는 요단 강을 서편 경계로 하여 동으로는 랍바 앞의 아로엘까지, 북으로는 얍복 강 위 갈릴리(긴네렛) 바다 남단에 미치는 요단 계곡 지대를 기업으로 분배받았다(민 32:34-36).

  "24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25 그 지경은 야셀과 길르앗 모든 성읍과 암몬 자손의 땅 절반 곧 랍바 앞의 아로엘까지와 26 헤스본에서 라맛 미스베와 브도님까지와 마하나임에서 드빌 지경까지와 27 골짜기에 있는 벧 하람과 벧니므라와 숙곳과 사본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땅 요단과 그 강가에서부터 요단 동편 긴네렛 바다의 끝까지라 28 이는 갓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

  야셀은 시혼에게 빼앗은 헤스본 북쪽의 마을이며, 후에 갓 지파가 이 곳에 정착하였다가, 다시 레위 지파의 성읍이 되었다. 다윗의 큰 용사 가운데 야셀(Jaazer) 출신이 있었으며(대상 26:31),  다윗은 야셀까지 인구조사를 실시했다(삼하 24:5). 이 곳은 아합이 죽고 난 후에 모압이 침략하여  점령했다(사 16:9). 이곳은 오늘날 암만 서쪽의 약 11km 지점에 있는 '길벳 사르'로 추정된다(민 21:32; 32:35). 길르앗 모든 성읍은 아모리 왕 시혼이 차지하고 있었던 길르앗의 성읍 전체를 가리키며, 본문에서는 이곳이 얍복 강을 중심으로 한 길르앗 남부를 가리킨다. 길르앗의 북부 지역은 바산 왕 옥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암몬은 모압과 더불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였다(창 19:36-3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을 좇아 암몬의 땅을 결코 침범하지 않았다(신 2:19, 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몬 자손의 영토가 절반이나 갓 지파에게 할당된 것은 당시 암몬이 이 땅을 시혼(Sihon)에게 빼앗겨 시혼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Keil). 랍바는 (신 3:11)에 바산 왕 옥(Og)의 본거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후일 다윗의 용사 우리아가 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다윗의 죄악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후 다윗은 이 성을 재차 공격하여 탈환했으나(삼하 12:26), 얼마 있지 않아서 다시 빼앗겼다(삼하 17:27). 본문에 나오는  갓 지파의 아로엘(Aroer)은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르우벤 지파 소속의 아로엘(12:2; 13:9,16)과는 다른 성이다. 이 성은 랍바 근처에 위치해 있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삿 11:26,33; 삼하 24:5). '라맛 미스베'(Ramath-Mizpeh)는 헤스본과 브도님 사이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혹자들(Van de Velde, Keil)은 이곳을 '길르앗 라못'(신  4:43)으로 보고 그 유적을 현재의 '잘트'(Szalt)에서 찾고 있다(Keil & Delitzsch). 브도님은 여리고에서 동북쪽으로 약 26km 떨어져 있는 '길벳 바트네'(Khirbet Batneh)로 추정된다.

  마하나임은 야곱이 그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을 떠나 자기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을 때 붙여진 이름이다(창 32:2).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처음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후에 레위인의 성읍이 되었다(21:38).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곳을 그의 수도로 삼았으며(삼하 2:8),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과의 전쟁 때에 임시 수도로 정하기도 했다(삼하 17:24-27). 드빌은 (10:38-39)에 언급된 가나안 남부의 드빌이 아니라, 갓 지파에 속한 길르앗 지역의 드빌(Debir)이다. 벧 하람은 아모리 족속에게서 빼앗아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요단 계곡을 흐르는 요단 강 동편 고지 위에 있다. 현재 이곳은 와디 헤스반 남쪽, 곧 요단 입구 동북쪽으로 12.8km 떨어진 '텔 익타누'로 알려져 있다. 벧니므라는  갓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으로 양을  치기에 적절한 곳이었다(민 32:36). 숙곳이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여호와의 천사와 씨름을 하고, 그 다음날 형 에서와  화해한 뒤, 이후 여행하며 머무른 장소로 나타난다(창 33:17). 후일 미디안의 두 왕을 추격하던 중 기드온과 그의 군대가 숙곳 사람들에게 식량 공급을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이 있다(삿 8:5-16). 후에 솔로몬 때에는 이곳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사용될 쇠붙이가 주조되기도  했다(왕상 7:46; 대하 4:17). 사본은 오늘날  와디 라엡(Wadi Rajeb)의 북쪽에 위치한  '텔 에스 사이디에'(Tell es Saidiyeh)로 추정된다.. 이곳은 성경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암몬 족속을 물리친 입다를 만나기 위해 모인 곳이다(삿 12:1). 긴네렛 바다는 '갈릴리 바다'(마 4:18)를 가리키는데, '디베랴 바다'(요 6:1) 또는 '게네사렛 호수'(눅 5:1) 등으로 불리웠다.


 2-4.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된 지역(29-31)
  이 부분은 요단 동편 땅 중 모세가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할당한 기업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므낫세 반 지파는 갓 지파의 북동쪽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는데, 곧 길르앗  북부와 갈릴리(긴네렛) 바다 동편에 있는 바산의 전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민 32:39-42;신 3:13-15).

  "29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으되 므낫세 자손의 반 지파에게 그 가족대로 주었으니. 30 그 지경은 마하나임에서부터 온 바산 곧 바산 왕 옥의 전국과 바산 경내 야일의 모든 고을 육십 성읍과 31 길르앗 절반과 바산 왕 옥의 나라 성읍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라 이는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돌린 것이니 곧 마길 자손의 절반이 그 가족대로 받으니라 32 요단 동편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분배한 기업이 이러하여도 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마하나임은 (13;26)을 참조할 것. 바산은 요단 강 상류, 갈릴리 바다 동편의 비옥하고 있는 광활한 고원지대이다. 해발 480m-690m까지 이르는 이곳은 목축업으로 유명하다(겔 39:18). 바산 땅은 야르묵(Yarmuk) 강을 경계로 둘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하나는 얍복 강에서 야르묵 강에 이르는 길르앗 산지 북부 지방이며, 다른 하나는 야르묵 강에서부터 레바논의 헤르몬 산에 이르는 팔레스틴 최북단 지역이다. 모세가 점령할 당시 바산 왕 옥(Og)은 길르앗 산지 절반과 레바논 산지의 바산 땅  전부를 통치하고 있었다(민 21:33). 바산 왕 옥은 (수 12:4; 민 21:33)을 참조하라. '야일'(Jair)은 므낫세의 외아들인 마길의 외손자 스굽이 낳은 아들로서(대상 2:22), 바산 땅을 점령할 때에 얍복 강 북부를 점령하여 '하봇 야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민 32:41;신 3:14). 그러나 후일에 이 지역은 그술인과 아람인들에게 탈취 당하고 말았다(대상 2:22, 23). 길르앗 절반은 갓 지파가 분배받았던 길르앗 남부 지역(25절)을 제외한 길르앗 북부 지역을 가리킨다.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는 (수 12:4)을 참조하라. 마길(Machir)은 므낫세의 외아들로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그의 슬하에서 양육시켰다(창  50:23). 후일 므낫세 지파를 형성한 마길의 후손들은 요단 강 동편 지역의 길르앗을 쳐서 그 땅을 얻었으므로, 모세는 그 땅을 마길의 후손들에게 주었다(민 32:39, 40). 요단 동편 땅에는 야일을 비롯한 마길 자손의 반이 거주하였고, 나머지 마길 자손은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얻었다.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는 (민 22:1; 34:14,15)을 참조하라. 그러나 성전의 일을 담당할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이다(민 18:20; 신 10:9; 18:2 참조).


3. 요단 서편에서의 분배(1): 유다와 요셉 지파의 분배(14-17장)

 3-1. 서론: 분배의 원리(14:1-5)
  "1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아래와 같으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4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들만 줄 뿐으로 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본문은 가나안 땅 분배(14-19장)에 관한 내용의 서론이다. 12장까지는 가나안 땅의 정복에 관해서, 13장은 요단 동편 땅의 분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14장부터는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요단 서편 땅의 분배가 아홉 지파 반을 대상으로 시작되고 있다. 가나안 땅의 기업을 분배하는 일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족장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이 사람들이 가나안 땅의 분배를 담당하도록 지시하셨다(민 34:16-18).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엘르아살은 종교적인 지도자였고, 여호수아는 정치, 군사적인 지도자였으며, 그리고 족장들은 혈연적인 면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대표들이었다. 이와 같이 기업 분배에 있어서 대표자들이 적절히 선발된 것은  기업 분배가 항 두 사람에 의해 편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여 분쟁 없이 은혜스럽게 수행하기 위함 조치였다(Pulpit). 엘르아살은 아론의 세째 아들로서(출 6:23), 아론의 사후에 대제사장직을 계승했다(민 20:25-28;신 10:6). 엘르아살(Eleazar)은 광야 행진 때에 언약궤와 성소 기구들을 담당한 고핫 사람들을 지휘했으며(민 3:30-32), 성막과 성소의 모든 기구와 등유와 분향할 향품 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민 4:16). 그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란 후에 유명해졌으며(민 16:25-40),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안수하였다(민 27:19-23). 그의 아들 비느하스는 미디안을 정복하고 전리품을 가져왔을 때, 나머지 반을 회중에게 나누어주었다(민 31:25-27). 그는 죽은 후에 에브라임 산지에 장사되었다(24:33).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은 열 지파에서 선발된 족장들로서 그 자세한  명단은 (민 34:19-28)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10지파의 족장들만 언급된 것은 두 지파(엄밀히는 두 지파 반)가 이미 요단 동편에서 땅을 분배받았기 때문이다(3절).

  기업을 분배한 방법은 '제비뽑기'였다. 제비뽑기로 기업을 분배하는 방법은 (민 26: 52-56; 33:54; 34:13)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이 규정에 의하면, 1) 이스라엘 백성의 각 지파는 인구 비례에 따라 기업을 분배해야 하되, 2) 먼저 제비뽑기로 기업을 분배했고, 3) 그리고 결정된 땅은 각 지파 조상의 이름을 따라 얻어야 했다(민 26:52-56). 제비뽑기는 두 개의 항아리를 사용했는데,  한 항아리에 각 지파의 이름을 기록한 쪽지를 넣고, 다른 항아리에는 지파 수에 맞게 기업을 나누어 기록한 쪽지를 넣었다. 그리고 지파의 명칭을 기록한 쪽지를 넣은 항아리에서 먼저 제비를 뽑고, 다음에 기업의 이름을 기록한 쪽지를 넣은 항아리에서 제비를 뽑아 이 둘로써 지파와 기업을 연결시켜 기업 분배를 결정지었다(Keil & Delitzsch). 제비뽑기를 통해 기업을 분배한 것은 기업 분배가 인간의 생각이나 슬수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잠 16:33; 시 47:4).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로 결정된 일에 대해서 잘 순종하였다. 제비뽑기는 대략적인 지역의 위치를 결정하였고 그 지역 안에서 각 지파가 땅을 정복하게 하였다(Calvin, Keil, Clericus).

  본래 이스라엘의 지파수는 야곱의 12아들들의 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창 35:22-26). 그런데 그중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지파로 간주되어 공식적인 계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 대신에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한 지파씩을 차지했다(창 48:5, 6).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에 두 지파 반(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은 요단 동편 지역(Trans-Jordan)의 땅을 이미 모세로부터 분배받았다(12:6; 13:8; 민 32:33). 그러므로 그들은 요단 서편 지역의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이때에 땅을 분배받은 지파의 순서는 1) 유다-->2) 에브라임-->3) 므낫세 반-->4) 베냐민-->5) 시므온-->6) 스불론-->7) 잇사갈-->8) 아셀-->9) 납달리-->10) 단 지파 순이었다. 요셉 자손이 두 지파를 차지한 것은 야곱이 요셉에게 베푼 축복에 근거한다(창 48:5). 요셉은 기근때에 야곱의 가족을 구한 공으로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마치 르우벤과 시므온 처럼 야곱의 아들로 격상되었다. 레위 사람에게는 그들이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들만 이 분배되었다. 그들에게는 기업이 될 땅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거할 성읍과 가축을 방목할 목초가 주어졌다. 이 성읍들과 목초지는 다른 지파들이 그들의 기업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할당해 준 것이었다. 여기서 '들'은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먹이는 목초지(민 35:2; 대상  13:2)를 의미한다


 3-2. 갈렙의 기업(14:6-15)
  갈렙은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격하기를 주저하던 난공불락의 요새 헤브론을 정복하기를 자청했다. 이러한 갈렙의 모습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참된 신앙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갈렙의 신앙은  가나안 정복에 참여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야 할 자세였다.

  "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도하한 후 최초로 진친 곳으로 가나안 정복의 본부가 되었으며,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이 곳에서 기업을 분배했다. '그니스 사람'(the Kenezite)이란 본래 일찍부터 팔레스틴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 족속 중 하나(창 36:11, 15)로, 아마 이 족속 중 일부가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에  합류되었던 것 같다. 따라서 갈렙(Galeb)도 순수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탐꾼으로서(민 13:6), 가나안 정복 전쟁의 용사로서 갈렙은 이스라엘 중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다. 가나안 정탐을 보고할 때에 갈렙은 여호수아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으로 격려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믿음대로 그가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갈렙은 사십 세 때 정탐꾼 노릇을 했다.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란 말('카아쉐르 임-레바비')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란 말이다.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잇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선택된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탐지한 후에 원주민의 기세에 눌려 악평, 불신앙적인 보고를 함으로써(민 13:31-33) 백성들을 낙담케 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모두 죽었다(민 14:36-37). 갈렙이 여호와를 '온전히' 좆았다'는 말은 갈렙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갈렙이 밟는 땅이 그와 그 자손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갈렙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한 때는 갈렙이 40세 때였다(민 14:24). 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38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한 후에 요단 강을 건넜다. 이때는 갈렙의 나이가 78세가 되던 때였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 전쟁이 종료되고 기업을 분배할 때에 갈렙이 자신의 나이를 85세로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요단 강 도하에서 시작된 가나안 정복 전쟁은 약 7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렙은 나이가 85세가 된 지금까지도 40대와 같은 힘과 정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힘'('코아흐')은 단지 육체적인 힘만을 뜻하지 않고 신앙과 담력도 포한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갈렙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힘을 허락해 주셨다. 여기서 '산지'(하르)는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보았던  헤브론의 산악 지대를 가리킨다(민 13:22). 당시 하나님께서는 갈렙이 당신을 온전히 좇았기 때문에, 그 땅을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민 14:24). 아낙 사람은 헤브론을 중심으 가나안 남부의 산간 지대에 주로 거주했던 가나안 족으로, 키가 크고 거대했으며 힘이 센 거인족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신  9:2). 갈렙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면 아낙 족속을 정복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여기서 '혹시'('울라이')란 말은 '만약', '혹시'라는 가정과 의심의 뜻이 아니라 '정녕', '필시'라는 소망과 확신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 사건 이후, 38년 동안의 광야 생활 기간과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 전쟁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하고 확신했을 것이다. 갈렙은 이러한 연단 과정을 통해서 어떠한 역경도 하나님 안에서 해쳐 나갈 수 있는 담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거나 방치하지 않는다(1:5, 7;3:7; 신 31:6; 왕상 8:57).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동행하기 때문에 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신 31:8; 대상 28:20). 3)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도 부족함이 없다(신 2:7).

  여호수아는 갈렙의 신실한 신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요청에  어떠한 거부나 조건도 없이 축복과 더불어 흔쾌히 응해 주었다. 즉 여호수아는 갈렙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그리고 믿음의 용사 갈렙이 능히 아낙 족속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헤브론'은 헤브론을 중심하여 그에 딸린 주변의 많은 촌락들과 그 산간 지대를 의미한다. 헤브론의 본래 지명은 기럇 아르바인데, 헤브론이란 이름으로 구약 성경에 50번 정도 나오고, 기럇 아르바로는 5번 정도 언급되어 있다(15:13; 창 23:2; 35:27; 삿 1:10). 갈렙이 공들여 정복한 이 헤브론은 나중에 레위 지파에게 할당되고(21:11), 또한 도피성으로 지정되게 된다(20:7). 한편 '기럇 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으로 '아르바'는 아낙 자손의 조상이자 이 족속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본서는 그를 가리켜, '아낙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며, '아낙의 아비'(15:13; 21:11)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딴 견고한 성읍을 창건했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기럇 아르바'로 명명되다가, 후일 '헤브론'으로 바뀐 것이다. '헤브론'(Hebron)에 대해서는 10:3 주석을 참조하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이 더 이상 이스라엘을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그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이 평화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말다.

                                    * 적용 및 교훈 *

  갈렙은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아낙 자손이 살던 난공불락의 요새인 헤브론을 기업으로 달라고 자청했다. 여호수아의 저자는 이러한 갈렙의 모습을 가나안 정복 기사의 앞에 배치함으로 가나안 정복의 비결이 어디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갈렙과 같이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믿음과 충성심을 보일 때에 가나안 정복 사업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3-3. 유다 지파의 분배(15장)-남부 지역-

  가. 남쪽 경계(1-4)
  "1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제비뽑은 땅의 극 남단은 에돔 지경에 이르고 또 남으로 신 광야까지라 2 그 남편 경계는 염해의 극단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3 아그랍빔 비탈 남편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편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앗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갈에 이르고 4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고 애굽 시내에 미치며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편 경계가 되리라."

  (1-4)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지역의 남쪽 경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다 지파의 남쪽 경계는 사해(염해) 남쪽 약 12km 지점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며, 거기서 '애굽 시내'의 하구 쪽으로 뻗어가 결국 '지중해'에서 끝나고 있었다.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은 가나안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야곱은 유다 지파가 좋은 포도원과 비옥한 목초지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창 49:11,12), 그 예고대로 유다 지파는 포도의 소출이 많고 비옥한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유다 지파가 얻은 땅의 남쪽 경계는 에돔과 신 광야였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지역을 정복 대상에서 제외시켜주셨다 (신 2:4-23). 그러나 다윗 시대에 에돔은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하게 된다. '신(Zin)광야'는 (출 16:1)에 나오는 '신(Sin) 광야'와는 다른 곳으로, 에돔 근방에 있는 광야 지대를 가리킨다. 이곳은 미리암이 죽은 곳이었고(민 20:1),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솟아나게 한 곳이기도 하다(민 27:14). (신 1:19; 8:15)에서는 '신 광야'는 '크고 두려운 광야'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그 표현대로 이곳은 일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대부분이 항상 말라붙은 불모지였다.

  아그랍빔 비탈은 '전갈의 언덕'이란 의미로, 사해(死海) 남쪽에서 유다 남쪽으로 올라가는 산비탈 지대를 가리킨다(민 34:4). 이곳은 현재의 '네겝 에스 사파'(Negeb es Safa)로 추정된다(Knobel). 가데스 바네아(신 1:2 참조). 헤스론은 '울타리', '마을'이란 뜻인데 이 곳은 유대 남부 가데스 바네아 서편에 있는 성읍이다. 앗달은 (민 34:4)에는 '하살 아달'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곳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서북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길벳 엘 쿠데이랏'과 동일시된다. 갈가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는 장소로서 '아스몬'(Azmon) 부근에 있는 성읍인 것 같으나, 그 위치는 확실치 않다. 아스몬은 (민 34:4)과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는 장소로서, 가데스 바네아 서북쪽 약 6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아인 엘 카세이메'(Ain el Qaseimeh)로 추정된다.

  애굽 시내는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영토의 남쪽 경계를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곳이다(왕상 8:65; 대하 7:8). 유다가 차지한 영토는 지중해가 남쪽 경계의 끝이 되었다.  여기서 '바다'는 곧 '지중해'를 의미한다.


  
나. 동쪽, 북쪽 경계(5-11)
  "그 동편 경계는 염해니 요단 끝까지요....(5(상))"

  유다 지파의 동쪽 경계선은 요단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해의 서편 해안을 접하고 있었다.  

  "그 북편 경계는 요단 끝에 당한 해만에서부터 6 벧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편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으로 올라가서 강 남편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8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편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편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 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편 끝이며 9 또 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 성읍들에 미치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에 미치며, 10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편으로 돌이켜 세일 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편에 이르고 또 벧 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로 지나고 11 또 에그론 북편으로 나아가 식그론에 이르러 바알라 산에 미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5(하)-11)에는 유다 지파의 북편 경계가 기록되어 있다. 이 북편 경계는 요단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지중해까지 이어지는데, 이 경계선은 베냐민 지파와 단 지파의 남쪽 경계선과 일치하고 있다(18:15-19). 한편, 여기서 '해만'(海灣)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숀'은 직역하면 '혀'(tongue)라는 뜻인데, 이 말은 요단 물이 사해(염해)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가리킨다.벧호글라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에 있는데, 후에 베냐민 지파에 분배되었다(18:21). 이곳은 현재 요단에서 서편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인 하일라'(Ain Hajla)로 추정된다(Keil, Robinson, Ritter). 벧 아라바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에 위치한 성읍으로, 이 성읍 역시 나중에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8:18). 보한의 돌(the Stone of Bohan)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를 표시하는 돌로서 여리고 근처에 있었다. 이 두 지파 사이의 경계선이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여호수아가 각 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분배함으로 각 지파 지경 경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르우벤 지파 중 일부가 이 유다 지경 동북쪽 모퉁이에 함께 살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르우벤 지파 자손이 곧 보한 자손인데, 보한은 르우벤의 아들이었다(18:17). 아골 골짜기는 아간과 그의 가족들이 돌에  맞아 죽은 곳으로  '고통의 골짜기'란 뜻이다. 이 곳의 위치는 현재의 '켈트'(Kelt) 시내로서 유다와 베냐민 경계선에 있었다(7:24). 드빌은 유대 남부에 있는 성읍으로 옷니엘에게 정복당했다. 아둠밈 비탈은 여리고 근처 요단 골짜기로부터 예루살렘을 포함한 산지까지 이르고 있다. 이 길은 이 두 성읍들 사이에서 현재까지 도로의 일부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곳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여리고로 향하는 도상에 위치한 '말레도밈'(Maledomim)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Lias).

  길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시에 주둔했던  최초의 진영인 길갈(4:19;5:10)과는 다른 곳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충분한 이유는 없다(Pulpit Commentary). 엔 세메스는 현재의 '아인 엘 호드'(Ain el-Hod)로 확인된 샘으로서, 요르단 골짜기 안의 여리고로  가는 노상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이곳은  예루살렘 동쪽 약 4.8km 지점이다.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사도들이 물을 마셨다고 하여 '사도의 샘'(The Spring of Apostles)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한편, 당시 이곳은 유다 지파와 냐민 지파의 경계선 위에 위치해 있었다. 엔로겔은 예루살렘 정남쪽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오늘날에는 '비르 아웁'(Bir Ayyub) 즉 '욥(Job)의 우물'이라고 불린다(18:16). 이곳은 후일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을 피하여  잠시 머물렀던  곳이며(삼하 17:17, 18), 또한 아도니야가 반역을 도모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왕상 1:9).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쪽에서 남쪽으로 둘려 있는 곳으로서 아하스 왕 이래로 몰록에게 자녀를 불살라 드리는 유아 인신 제사의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이 곳에 있던 도벳(Topheth)에서는 부모들이 자기 아들들을 바알과 몰록(Moloch)에게 바치기 위해 아이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극악한 제사를 드렸다.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 골짜기에 패역한 사람들의 시체가 누워 있을 것이라고 저주하였으며, 아울러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불이 꺼지지 않을 곳이라고 묘사했다(사 66:24).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골짜기를 정죄하면서 '살륙의 골짜기' 불릴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7:31, 32;19:5, 6). 여하튼 이 골짜기는 죽은 죄인들과 동물들의 시체가 불에 계속 태워졌기  때문에 죄와 형벌과 고통의 장소를 상징했다. 한편 이 이름은 '게 벤  힌놈', 혹은 '게헨나'로 바뀌어, 신약 성경에서는 게헨나(Gehenna)가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다(마 5:22).

  여부스 족속은 다른 가나안 족속들과 같이 이스라엘의 진멸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었다(3:10; 12:8; 24:11; 삿 3:5). '여부스 족속'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진멸시키고자 이스라엘을 퇴치하고자 골몰한 족속 중 하나였다(9:1). 이들은 하솔 왕 야빈이 여호수아를 물리치기 위하여 원조를 요청했던 족속들 가운데 하나였다(11:3). 가나안 정복 후 이 성읍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결코 정복 당하지 않았으며,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결국 정복당하고 말았다. 다윗은 여부스(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이  성읍을 그의 정치, 종교적 중심지가 되게 했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에서부터 시드기야 왕까지 역대 왕들은 이 성읍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르바임  골짜기의 북쪽 끝은 유다 지파의 북쪽 접경지인 동시에 또한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지이다. 이 르바임 골짜기와 맞닿은 곳으로는 북쪽의 힌놈 골짜기가 있다. 한편 성경에는 이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신빙성 있는 언급이 전혀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인족으로  생각했던 가나안 땅 거민들의 이름을 따서 이 골짜기 이름을 삼았으리라는 견해가  있지만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골짜기 부근에 살았던  르바임 족속(12:4;신 2:11)의 이름을 따서 골짜기 이름을 르바임 골짜기라고 했다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 있다. 넵도아 샘물은 오늘날의 '립타'(Lifta) 성읍인데, 예루살렘 북서쪽 약 4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예루살렘 곳곳에 물을 보내줄 수 있을 만큼 좋은 샘물이 있으며, 주변의 여러 정원에도 물을 대주고 있다(Keil). 에브론 산은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으며, 넵도아 샘물과 기럇여아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베이트 하니나(Beit hanina) 시내 서편에 있는 가파른 산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 Delitzsch).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은 여호수아를  속여서 화친 조약을 맺은 기브온 거민들의 4 성읍중 하나이다(9:17). 이 성읍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의 경계선 구실을 하였다(18:14, 15). 한편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돌려보낸 후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때까지 이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문 적이 있다(삼상 6:19-7:2).

  이제까지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던 유다 지파의 경계선이 '기럇 여아림'(바알라)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다. 세일 산은 에돔 지경의 세일 산(창 32:3;36:8)과는 다른 산으로,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 상에 위치한 산이다. 현재의 '사이라(Sairah) 산'으로 추정된다. 여아림 산은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에 위치한 산으로, 그 산의 정상 부근이 '그살론'과 동일시 되고 있다. 그리고 그살론은 현재의 '케슬라'(Kesla)로 추정된다. 벧 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란 뜻을  지닌 제사장 성읍이었다.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르  세메스'(Ir-Shemesh)란 지명으로 단 지파에게 배당되었다(19:41). 그러나 아모리인들이 단 지파를  밀어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차지할 수 없었다(삿 1:35).  후일에 블레셋인들이 법궤를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낼 때에소렉 골짜기를 경유하여 벧세메스로 운반한 적이 있다(삼상 6장). 딤나는 유다 지파의 산지 마을로, 유다가 다말을 만난 딤나(창 38:12-14)와는 다른 딤나를 가리킨다. 이 딤나(Timnah)는 삼손이 자기 아내를 취한 곳이며(삿 14:1), 그 장인은 딤나 사람이었다(삿 15:6). 이곳은 벧세메스 서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의 딥네(Tibneh)와 동일시된다. 에그론은 블레셋의  주요 5개 성읍 가운데 하나로, 유다  지파가 사사 시대 초기에 이곳을 점령하였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사사 시대동안 줄곧  이곳에 거주하였다. 한편 아스돗과 가드에서의 사건  이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들어간  법궤가 에그론 지방으로 옮겨진 적이 있었다(삼상 5:10;6:16). 13:3 주석 참조. 식그론은 에그론과 바알라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에 인접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렉(Sorek) 계곡에서 조금 북쪽으로 나아간 곳에 있는 현재의 '텔 엘 풀'(Tell el-Ful)인 것으로 추정된다. 얍느엘은 유다 지파의 서쪽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데, 욥바와 가사 사이의 해안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이 성읍은 '비아 마리스'(Via  Maris) 도상에 있는 중요한 성읍으로 후기에는 얌니아(Jamnia)라고도 알려졌다(마카비 1서 4:15; 5:58; 10:69; 15:40;마카비 2서 12:9). 현재 지명은 '야브네'(Yavne)이다.


  
다. 서쪽 경계(12)
  "12 서편 경계는 대해와 그 해변이니 유다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사면 경계가 이러하니라."

  유다 지파의 서쪽 경계선은 대해(大海), 곧 지중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중해와 가나안 인접 지역의 가장 아래 부분이다. 위로는 단 지파, 므낫세 지파, 아셀  지파의 서쪽 경계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해안 평지에 있는 성읍들은 기업  분배시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사실상 정복되지 않고 있다가 후일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정복된다(대상 18:1). 한편 이곳에 위치한 성읍들은 본장 21-62절의 성읍 명단 내에 있다.


  
라. 갈렙과 옷니엘의 정복(13-19)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19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 샘과 아랫 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여호수아는 갈렙이 요구한대로(14:6-12), 유다  지파의 기업 내에서 특별히 헤브론(Hebron)을 분배해 주었다(14:13-15 참조). 갈렙은 헤브론에서 아낙 자손을 쫓아냈다. 그런데 (11:21-22)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미 헤브론을 비롯한 여러 성읍들에서 아낙 자손을 멸절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사실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즉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던  헤브론을 정복한 다음, 곧장 가나안 북부 거민들과의 전투를 시작하였는데, 그 동안에 정복당했던 아낙 자손들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갈렙은 헤브론을 자기의 기업으로 갖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아낙 자손을 다시 한번 완전히 정복하기를 원했으며 여호수아의 허락을 받고 그들을 정복했다. 아낙의 소생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본절과 (민 13:22, 삿 1:10)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도 아낙 자손의 강력한 지도자들이었던 것 같다. 드빌(Debir)은 유다 남부에 위치한 성읍으로, 여호수아의 남부 가나안 정복시에 일단 정복당한 적이 있다(10:38). 이 성읍은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드빌(7절)과는 다른 성읍으로, 예루살렘 서남쪽의 세펠라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기럇 세벨'은 헤브론의 본래 이름으로 '책의 도시' 혹은 '기록의 도시'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성읍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에 근거하여 어떤 학자는 이  성읍에 역사적인 문헌 등이 보관되어 있었거나, 혹은 헬라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 장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메튜 헨리는 이러한 추측에 동의하면서, 갈렙이 이 성읍을 정복하고 싶어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발달된 가나안 땅의 학문을 교육받기 위한 것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갈렙이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선언한 것은 고대의 일반적 풍습을 따른 행위였다. 즉 고대에는 혁혁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딸을 주어 그 공을 치하하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사울이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자기의 딸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러한 풍습에 따른 것이었다(삼상 17:25;18:17). 여하튼 이러한 갈렙의 말은 윤리적인 문제 이전에 고대 가부장적(家父長的) 제도하에서 부권(父權)이 가지는 절대적 권한을 잘 보여 준다.  한글 성경에는 마치 옷니엘(Othniel)이 갈렙의 아우인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였다. 그러므로 이 번역은 '갈렙의 아우인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고 해야 옳다(삿 3:9). 드빌(Debir)을  취하는 자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는 갈렙의 말을 듣고, 많은 이스라엘인 가운데 옷니엘이 당당히 나서서 드빌을 취함으로 악사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한편, 옷니엘(Othniel)은 여호수아 사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를 받았을 때, 그를 격퇴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한 이스라엘 최초의 사사인데,  아마 이때도 그러한 용감성을 발휘하여 드빌을 정복했을 것이다. 악사(Achsah)는 옷니엘의 아내가 되어 집을 떠나면서 그녀의 아버지 갈렙에게 밭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악사가 요구한 '밭'(사데)은 (삿 1:14)에서는  '그 밭'(하사데)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던 특별한 밭을 의미한다. 19절을 보면 갈렙이 그녀에게 윗 샘과 아랫 샘을 주었다고 한 것을 보면 이 밭은 물이 풍부한 밭이었을 것이다.

  이때에 옷니엘은 악사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해 풍습에 따라 처가에 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보편적으로 어떤 사람이 상대방 앞에서 자신이 탄 말이나 나귀등에서 내리는 것은 겸손과 예의의 표시였으며, 무엇을 간청하는 표시였다(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 "악사가 슬픈 표정을 지었으며, 또한 울고 한숨 지었다"고 의역했다. 딸의 뜻을 알게된 아비 갈렙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내게 복을 달라고 간청했다. 여기서 '복'('베라카')은 '축복'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선물'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 말하면 '결혼 지참금'에 해당된다. 이처럼 악사가 아비 갈렙에게 밭과 샘물을 요구한 일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이것은 악사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Matthew Henry). 2) 이것은 악사의 분에 넘치고 뻔뻔한 허영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Calvin).  그녀는 아비에게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달라"고 간청했다. 여기서 '남방'은 히브리어로 '네게브'이다. 카일(Keil)은 이 말이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최남단에 있는 지명이 아니라, 단순히 건조하고 메마른 땅을 가리킨다고 했다. 따라서 악사는 그녀가 가게 될 곳이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에 필요한 샘물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갈렙이 악사의 요구에 따라 그녀에게 윗 샘과 아랫 샘(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에 있는 샘물)을 주었다. 이 두 샘물은 높은 지대의 밭과 낮은 지대의 밭에 골고루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샘물이었다. 한편 이 윗 샘과 아랫 샘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드빌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Keil).


 
 마. 유다 지파의 영토(21-63)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의 영토는 그 지리적 특성상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1) 에돔 경계에 근접해 있는 남방(네게브) 지대(21-32절).
 2) 애굽 시내와 지중해로 뻗어 나가는 평지(세펠라) 지대(33-47절)
 3) 산악 지대(48-60절)
 4) 광야 지대(61, 62절).
  위치 상 동쪽에는 사해(염해)와 유대 광야가 놓여 있었고, 서쪽에는 중앙고원 지대와 연결된 많은 구릉과 계곡들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메마르고 건조한 네게브 사막 지대였고, 북쪽에는 고원 지대로서 군사적으로 취약한 지역이었다.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영토는 후일 유다 왕국의 중심지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 에돔 경계에 인접한 남방(네게브)지역(21-32절).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으로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32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이십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 애굽 시내와 지중해에 인접한 평지(세펠라) 지역(33-47)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십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십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

  * 중앙의 산악 지대(48-60)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십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8 할훌과 벧 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 광야 지역(61-62)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

  본문에는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120개의 주요 성읍들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이러한 유다지파의 영토는 지역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구역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1) 브엘세바를 중심으로 해서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역(21-32절)
 2) 남쪽의 아둘람(Adulam)에서 북쪽의 그데라(Gederah)에 이르는 평지로서, 현재 '예루살렘-얍바'간의 철도를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지역(33-36절)
 3) 제 1, 2구역 중간에 있는 남부 평지(37-41절)
 4) 마레사(Mareshah)를 중심으로 한 제 2, 3구역 사이에 있는 지역(42-44절)
 5) '애굽  시내'와 연접한 남부 해변 평야 지대. 이 구역의 중심지인 에그론(Ekron)은 블레셋의 5대 도시 중에 하나였으며, 얼마 후에 단 지파의 소유가  되었다(45-46절; 19:43)
 6) 애굽과 가나안의 관문에 있는 지역. 그 중심지였던 아스돗(Ashdod)은 오랫동안 미 정복 상태로 남아 있다가 웃시야 왕 때에 정복되었다(47절; 대하 26:6).
 7) 북쪽으로 제 1구역과 인접된 지역. 그 중심지는 드빌(Debir)이었다(48-51절)
 8) 제 7구역의 북쪽과 제 3, 4구역의 동쪽에 있는 남부 산지. 그 중심지는 헤브론(Hebron)이었다(52-54절)
 9) 헤브론 남부 유대 산지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55-57절).
 10) 헤브론 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맥 지대(58, 59절)
 11) 유다 지파의 북부 경계선 주변에 위치한 지역(60절)
 12) 베냐민 지파와의 접경 지대(18:21-24)인 동시에 동부 경사지에 해당하는 지역(61, 62절)

  이와 같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은 그들이 살기에 너무 넓은 땅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시므온 지파의 기업은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배당되었다(19:1-9). 따라서 이는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7)라는 시므온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바. 유다 지파의 영토에 대한 결론(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63)."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the Jebusites)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가나안 족속과는 언약을 맺거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7:2)을 거역한 행위였다.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나태한 마음가짐에서 연유한 것이었다(Calvin, Matthew Henry). 이러한 모습은 초기 가나안 정복 때의 신앙적이며 순종적인 모습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과거에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다른 네 왕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했으나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10:22-27). 하지만 그때에 예루살렘이 정복당했다는 언급이 없으며 그 이후에 유다 지파도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삿 1:8)에서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성읍을 불태웠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예루살렘을 부분적으로 점령한 것을 의미할 뿐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은 B. C. 1000년 경 다윗 왕 때가 되서야 비로소 완전히 점령하였다(삼하 5:1-6). (삿 1:21)에서는 이들을 베냐민 지파가 쫓아내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은 모순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 성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여호수아서 저자는 이 책을 쓸 때까지 예루살렘 거민인 여부스 족속(the Jebusites)이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여호수아서가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된 다윗 왕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Pulpit).
 

  3-4. 요셉 지파의 분깃(16-17장)-중부 지방과 산지-
  여호수아는 자신이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으면서도 유다 지파와는 달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  파에게 넓은 땅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요셉 지파는 인구에 비해 너무 적은 땅을 분배한 것을 불평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산지를 개척해서 그것을 차지하라고 권했으며, 그들은 그 말대로 했다.

  가. 서론(1-4)
  "1 요셉 자손이 제비뽑은 것은 여리고 곁 요단 곧 여리고 물 동편 광야에서부터 나아가 여리고로 말미암아 올라가서 산지를 지나 벧엘에 이르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사람의 경계로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편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사람의 경계에 이르러 아래 벧호론 곧 게셀에 미치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 기업을 얻었더라."

  야곱의 12아들(창 35:22-26) 가운데 요셉을 제외한 다른 열 한 명의 아들들은 각각 한 지파로  구성되었으나, 요셉은 기근 시에 가족을 구한 그의 공로로 인해 그의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름으로 각각 지파가 구성되어 두 지파가 되었다(4절: 창 48:5). 그러나 그들은 기업을 분배받을 때에 한 자손으로 취급되어 한 제비만을 뽑았기 때문에, 요셉 자손들은 두 분깃을 주도록 여호수아에게 항의하였으며(17:14-18),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산지를 개척해 가지라고 하였다. 구약 시대의 여리고(Jericho)는 오늘날의 '텔 에스 술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매우 침식된 알 모양의 언덕으로 된 성읍이다. 이 언덕은 사해(死海)의 하구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져 있으며, 지반 위로 50피이트나 솟아오른 언덕을 형성하고 있다. 그 언덕으로부터 도로 쪽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한 '아인 에스 술탄'이라는 샘이 있는데, 이것이 곧 여리고 샘물이다. 오늘날 이 일대의 오아시스에 물을 공급해 주고 있는 것은 풍부한 이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샘물은 평원으로 흘러 들어가 작은 개천을 이루는데, 특별히 우기(雨期)에는 켈트(Kelt) 계곡으로 이어져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간다(Keil & Delitzsch). 벧엘은 예루살렘에서 북쪽 으로 약 19.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남북을 잇는 대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작은 성읍인 '베이틴'(Beitin)이 이 벧엘과 동일한 성읍으로 추정된다. 한편 벧엘이 고대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이곳 언덕 정상 가까이에 아주 좋은 샘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벧엘은 여리고를 지나 요단 건너편 서쪽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東西) 루우트의 요충지이며, 아얄론 골짜기와 고브라를 지나 샤론 평야와 지중해에 이르는 요단 동편 동서 도로상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벧엘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벧엘 주변의 지리적 상황의 중요성 때문이다.      

  일찍이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의 손길을 피하여 외삼촌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하던 도중 도착한 곳이 바로 '루스'(Luz)였다. 여기서 밤을 지새우던 야곱은 꿈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을 본 후에 이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Bethel)로 고쳤다(창 28:19). 따라서 루스는 가나안사람들이 불렀던 본래 이름이고, 벧엘은 야곱이 명명한 이름이므로 벧엘과 루스는 동일하다. 하지만 본 구절은 벧엘과 루스를 다른 곳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벧엘은 성읍이름이 아니라, 벧엘 성읍 남쪽에 위치해 있는 산악 지대로 보고있으며, 루스는 벧엘 성읍 자체를 가리킨다(Keil, De Wette, Bunsen). 따라서 벧엘 산맥에서부터 경계선이 루스로 계속 뻗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수 18:13)에서는 베냐민 지경의 경계를 묘사할 때에 벧엘과 루스는 동일한 곳으로 간주되었으며, 이 성읍은 사사 시대까지 가나안 거민들에게 루스로 계속 알려져 있었다. 다윗의 친구이자 후에 압살롬의 조언자가 되었던 후새는 아렉 사람이었다(삼하 15:32; 16:16; 대상 27:33). 아렉 사람들(the Archites)은 베냐민의 북쪽 변경인 아다롯 앗달에 거주했다. 아다롯 은 (수 18:13)에는 '아다롯 앗달'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요셉 자손의 남쪽 경계선과 베냐민 지파의 북쪽 경계선 상에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카일(Keil)은 이곳을 현재의 '아타라'(Atara)로 본다. '야블렛'이란 조상의 이름을 딴 종족인 것 같은데, 어떤 종족인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요셉 자손에게 할당된 가나안 영토에 살았던 한 종족 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이곳은 벧 호론에 가까운 에브라임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벧호론'은 상, 하 벧호론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들은 각각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16km와 1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상, 하 벧호론 성읍들은 베냐민 지파 지경과 에브라임 지파 지경의 경계선 상에 있었다. 후에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이 두 성읍은 북 왕국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다(수 10:10 참조). 게셀(Gezer)은 스블라의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여호수아가 북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동안에 게셀 왕 호람은 라기스를 지원하기 위하여 원정왔다가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10:33). 벧호론을 통해 산간 지방으로 들어가는 측면대로는 지중해의 해안으로 가는 길과 만나기 전에 바로 게셀로 이어진다(수 10:33 참조).     

  요셉 자손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두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므낫세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은 (17:7-13)에 기록되어 있고,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은 (16:5-10)에 기록되어 있다. 요셉 자손의 두 지파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의 중앙지대로, 비옥했을 뿐만 아니라 광활했다. 이것은 일찍이 야곱을 통해 예언된 축복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창 48:15, 16;49:22-26). 여하튼 이들 지파의 지역은 동쪽으로는 요단 강을 경계하며, 서쪽으로는 지중해를, 남쪽으로는 단과 베냐민 지파를, 그리고 북쪽으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나.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5-10)
  "5 에브라임 자손의 그 가족대로 얻은 것의 경계는 이러하니라. 그 기업의 경계는 동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 호론에 이르고, 6 또 서편으로 나아가 북편 믹므다에 이르고 동편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편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서 여리고에 미치며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편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미치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과 촌락도 있었더라. 10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의 두 아들인데, 므낫세가 형이고 에브라임이 동생이었다. 그런데도 아우인 에브라임이 형 므낫세 보다도 먼저 기업을 분배받은 것은 에브라임이 동생인데도 불구하고 야곱에 의해 장자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창 48:8-20). 따라서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두 지파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가 각각 남과 북의 우두머리 지파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이처럼 이 두 지파가 이스라엘 12지파 중 주도적인 지파가 된 것은 각각 야곱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축복에 근거한다. 야곱은 죽기 전에 유다 지파에 대해서는(창 49:8-12)에서,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에 대해서는 (창 48:8-20; 49:22-26)에서 그들의 축복된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였다. 에브라임 지파의 동쪽 경계선은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까지였다. '믹므다'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경계선에 위치한 성읍으로 세겜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 믹므다는 현재의 '길벱 줄레이질'로 알려져 있다.다아낫 실로는 에브라임 지파 내의 동북쪽에 위치한 이 성읍은 믹므다와 야노아 사이에 있었다. 세겜에서 동남쪽으로 1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성읍에서는 고대의 언덕 요새가 축성되었었다는 증거가 발굴되었다(Robinson). 오늘날의 위치는 나블루스(세겜) 동남쪽에 있는 아인 타나로 추정된다(Keil, Fay). 성경에는 '야노아'(Janoah)란 동일 지명을 가진 두 곳이 있는데(7절; 왕하 15:29), 본절의 성읍은 에브라임 지파의 동쪽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성읍으로서, 오늘날 세겜에서 남동쪽으로 약 1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길벱 야눈'(Khilbet  Yanun)으로 추정된다.       

  7절에 나오는 아다롯은 2절과 5절에 나오는 '아다롯'과는 다른 성읍이며 이 곳은 에브라임 지파의 북동쪽 국경에 있는 도시였다. 나아라는 (대상 7:28)에 언급되어 있는 '나아란'과 동일한 성읍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여리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2시간 가량 떨어진 유대 언덕 기슭의 '아인  두크'(AinDuk)로 추정된다. 답부아는 세겜 서쪽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경계선, 므낫세 지파의  남쪽 경계선에 있는 성읍으로 지금의 '쉐이르 아부 자랏'(Shejrh Abu Zarad)으로 추정된다. 가나 시내는 '갈대 시내'란 뜻으로, 이는 그곳에서 많이 자라는 갈대로 인해 유래된 명칭이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경계를 지어주는 시내이며(17:9), 오늘날 욥바 바로 북쪽에서 지중해로 빠지는 '와디 카나'(Wadi Qana)시내이다.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일부 성읍들을 분배받았는데, 17:8에 의하면 답부아 성읍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장자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먼저 기업을 분배받았지만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 인구에 비해 너무 넓었기 때문에 일부 성읍을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칼빈). 므낫세 지파의 성읍은 필요 이상으로 넓었기 때문에 그 경계선이 재조정되어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선이 상향됐다.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Gezer)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가나안 족속을 철저히 멸절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신 7:2)을 거역한 일이었다. 특히 게셀 왕 호람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정복할 대에 이스라엘과 싸우던 라기스 왕을 돕기위해서 원군을 보낸 적이 있었다. 에브라임 지파가 이러한 게셀을 정복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게셀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사역시키고 그들로부터 공물까지 받았다. 이러한 행위는 에브라임 지파가 그들을 쫓아낼 힘이 충분히 있었지만, 자기 지파의 이익을 위해 그냥 방치하면서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죄는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않은 것보다 더 악한 행위였다(Calvin). 따라서 향후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보다 급격히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다. 므낫세 지파의 기업(17:1-6)

  *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므낫세 반 지파(17:1-13)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이었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비라. 그는 무사이어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에브라임은 실제 장자가 아니었지만 야곱으로부터 장자권을 부여받아(창 48:14-20) 먼저 기업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장자는 므낫세였다. '마길'(Machir)은 므낫세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대상 7:14-19)에 기록된 족보에 의하면, 마길의 모친, 즉 므낫세의 처는 아람여인이었다. 후일 가나안 정복시 이들 마길의 후손들은 바산과 길르앗 지역을 할당받았다(민 32:40). '길르앗'(Gilead)은 므낫세의 손자이자 마길의 아들이었다. 길르앗 가계는 부친인 마길의 가계와 더불어 므낫세 지파를 형성했다. 원래 '길르앗'은 아람지역과 가나안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의 이름이었던 것을 행각하면 아마도 그의 이름은 아람여인인 조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길르앗과 바산을 차지한 자는 마길 혼자가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었다. 여기서 무사(武士)는 히브리어로 '이쉬 밀하마'인데, 직역하면 '전쟁의 사람'이란 말이다. 모세 오경에는 마길 자손이 무사라고 한 구절이 없지만, (민 32:39)에 그들이 길르앗을 쳐서 아모리 족속을 정벌할 정도로 용맹했음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여호수아서 저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민 32:39)에 근거하였던 것 같다. 므낫세의 지파중 마길의 후손들은 길르앗과 바산을 쳐서 그곳에 살던 거민들을 쫓아내고 그곳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었다(민 32:39-40; 신 3:13-15). 그리하여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으로 형성된 므낫세 반(半)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게 되었다(13:29-31).        

  *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얻은 므낫세 반 지파(17:2-6)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은 자손이며,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 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기업을 그 아비 형제 중에서 주므로 5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6 므낫세의 여손들이 그 남은 자손 중에서 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더라."

  므낫세의 남은 자손은 요단 동편에서 길르앗과 바산 땅을 기업으로 얻은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반(半) 지파를 가리킨다. 이들은 도합 6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요단 서편의 가나안 중부 지역에서 기업을 얻었다. 이와 같이 한 지파가 둘로 나뉘어 두 곳을 기업으로 얻은 지파는 므낫세 지파뿐이다. 그들은 땅 분배를 위해 제비를 뽑았다. 제비 뽑는 방식에 대해서는 (수 14:2)을 참조 할 것. 므낫세의 남은 자손은 길르앗의 여섯 아들 곧 아비에셀, 헬렉, 아스리엘, 세겜, 헤벧, 스미다의 자손인 6가족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므낫세 지파는 도합 3대(代)에 걸친 8가족으로 구성되었다. 즉 1대는 므낫세의 아들인 마길 가족이며, 2대는 마길의 아들인 길르앗 가족이고, 3대는 길르앗의 여섯 아들들의 가족이다. 이중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은 요단 동편의 바산과 길르앗 지역을 기업으로 얻었다(13:29-31). 따라서 이제 6가족만이 남게 되었다(민 26:29-34).  슬로브핫의 아버지는 헤벧, 그 아버지는 길르앗, 그 아버지는 마길, 그 아버지는 므낫세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민 27:1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순서는 여기와는 반대로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벧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길르앗의 6아들 중 5번째 아들인 헤벧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었고 딸만 5명 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관례대로 한다면 슬로브핫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그 이름이 끊김은 물론 기업도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여성 상속법이라는 새로운 법이 생겨나게 되었다(민 27:1-11 참조). 기업 분배의 주도자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이었다. 여기서 방백은 곧 이스라엘 각 지파의 족장들로서, 요단 서편의 기업 분배에 참여한 10지파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이들의 명단은 민 34:16-29에 나타나 있다). 따라서 기업 분배는 종교적 대표자인 아론의 아들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정치적 대표자인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대표자인 10명의 족장들에 의해 진행되었다(수 14:1 참조).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민 27:6-11)을 근거로 해서 그들의 기업을 요구했다. 그리고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그들의 요구를 따라 그녀들에게도 기업을 주었다. 당시 기업 상속권은 딸에게는 없고 아들에게만 있었다. 즉 딸은 시집을 가면 다른 지파, 다른 가계에 속하게 되므로 기업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의 가계에 아들이 없기 때문에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될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비의 이름을 지파 내에서 보존코자 하는 충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에게도 기업을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민 27:1-4), 결국 이 요구는 허락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업을 분배받는 대신 한가지 조건이 부여되었다. 그 조건은 그들이 반드시 자기 지파 내에서만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민 36:6-9). 그 이유는 분배받은 기업의 땅을 같은 지파 내에 보존시키기 위해서였다. 요단 동편의 길르앗과 바산은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으로 형성된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어졌다(13:29-31). 그러나 그 외에 남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그 기업이 주어졌다.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다는 말은 직역하면 '므낫세에게 할당된 몫이 열 분깃으로 나뉘었으니'란 말이다. 즉 헤벧을 제외한 므낫세의 남자 자손은 다섯이고(2절),  또 헤벧의 아들인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섯이기 때문에 합치면 모두 열 분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슬로브핫의 다섯 딸은 슬로브핫이 얻을 한 기업을 잇는 것이기 때문에, 다섯 딸의 기업 전체는 다른 남자 자손들 중의 하나의 기업과 동일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열 분깃이 돌아간 이유는 다섯 남손(男孫;2절)뿐 만 아니라, 다섯 여손(女孫)들도 기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요단 서편의 므낫세 지파의 영토(7-13)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에 미치고, 우편으로 가서 엔답부아 거민의 땅에 이르나니, 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 읍은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9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10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아셀은 아셀 지파에 속한 지역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남부 경계선에 위치한 지역이다. 오놈에 따르면 이곳은 오늘날 야실(Yasir) 성읍으로, 나불루스에서 베이산에 이르는 도로상에 위치한 거대한 폐허지라고 한다(Keil & Delizsch). 세겜은 팔레스틴의 주산맥인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58km 지점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란을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단을 쌓았고(창 12:1-7), 야곱의 딸 디나가 욕을 당한 결과 '디나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며(창 34장), 또한 요셉의 뼈가 이곳에 장사되었다(수 24:32). 그리고 가나안 땅 분배시에는 처음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7:7-9), 나중에 레위 지파에게 할당되어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수 20:7). 또한 그후에 이스라엘 열 지파가 유다에게서 분리하여 여로보암을 이곳에서 왕으로 삼았으며(왕상 12:1-25), 후에 사마리아의 수도가 되었다(요 4:5). 오늘날의 지명은 '나불루스'(Nabulus)이다. 믹므닷은 '믹므다'로도 표기괴며(수 16:6 참조), 엔답부아는 '답부아'(Tappuah, 능금, 사과)로도 표기된다(수 16:8 참조).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르우벤과 갓 지파 보다 더 넓은 땅을 분배받았다(13:8-31). 그런데 요단 서편에서 나머지 므낫세 지파에게 배당된 땅도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의 2배 가까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두번째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32,500명,  므낫세 지파는 52,700명으로 계수되었다(민 26:34-37). 물른 인구비례에 따라 기업을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민 26:53-54 ;33:54), 그래도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인구에 비해 너무 넓었다. 따라서 형평(衡平)의 원칙에 따라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에는 '답부아' 성읍과 같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도 있었다(9절;16:9). '가나 시내'(Brook Kanah)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나누는 경계선의 일부로 그 남쪽은 에브라임 지파가, 그 북쪽은 므낫세 지파가 각각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가나 시내 남쪽에는 원래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다시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것으로 재조정되었다(16:9). 다시 말해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가 가나 시내 위로 약간 올라와 원래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었던 일부 성읍들이 에브라임 지파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인 10절에 보다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킨다.

  아셀 지파의 기업은 (수 19:24-31)에 기록되어 있고, 잇사갈 지파의 기업은 (수 19:17-23)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므낫세 지파의 북쪽 경계선은 아셀 지파와 접하고 있었으며, 동쪽 경계선은 잇사갈 지파와 접하고 있었다. 보다 상세히 말하자면 지중해 방향의 북서쪽 일부 가아셀 지파와 접하며, 요단 강 방향의 북쪽 및 동쪽 일부, 즉 므낫세 지파와 북동쪽이 잇사갈 지파와 접하고 있었다. 잇사갈 지파의 기업 내 뿐만 아니라 아셀 지파의 기업 안에도 므낫세 지파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분배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이 확정된  연후에야 이루어졌다(19:17-31). 그러므로 본 기록은 시간 순서에 따른 기록이 아니며, 단지 므낫세 지파의 기업을 전달하기 위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앞선 기록(16:9)에서, 우리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에도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중에도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 각 지파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지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시간을 두고 상호 재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서로 연합하여 상부 상조해야 할 공동체임을 보여 준다. 벧 스안은 '조용한 장소', '안전한 집'이라는 뜻으로 야룻(Jalud) 게곡에 있는 성읍이며 중요한 요새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 계곡과 요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읍은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었으나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 거민들이 철 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16절), 이 성읍 서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이곳은 특히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후 사울의 시체가 이곳 성읍의 벽에 매어달린 곳으로 유명하다(삼상 31:10;삼하 21:12). 그렇지만 훗날에 정복되어 솔로몬의 12관장 가운데 한 사람인 바아나에 의해 관할받았다(왕상 4:12). 구약시대에는 '벧산', 또는 '벱산'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며(삼상 31:10-13;삼하 21:12-14),  신약시대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라고 명명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베이산'(Beisan)이다.

  이블르암은 벧스안, 다아낙, 돌, 므깃도 등의 도시와 함께 에스드렐론 평야와 이스르엘 계곡을 통과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나안의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리적으로는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경내에 속하지만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원주민들은 정복당하지 않고 게속 남아 있었다. 한편 이곳은 '빌르암'으로 불리기도 한다(대상 6:70). 이블르암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사건은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왕하 9:27). 이곳은 현재의 '길벱 벧라메'(Khirbet belameh) 지역으로 추정된다(Keil). 돌은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에 위치해 있다. 팔레스타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아주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있었다. 오늘날 '톨투라'(Tortura)로  추정된다(11:2 참조). 엔돌은 (시 83:9-10)에 따르면 기손(Kishon) 시내 부근으로 다볼 산 남쪽 약 6.5km 지점에 있다. 이곳은 므깃도(Megiddo) 전투지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바락(Barak)은 시스라(Sisera)와 야빈(Jabin)을 패퇴시켰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사울 왕의 군대가 이곳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삼상 29:1). 당시 사울은 최후의 전황(戰況)이 어찌될지 몰라 이곳 엔돌의 신접한 여인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였다(삼상 28:7). 오늘날 이곳은 '엔돌'(Endor)이란  곳으로, 여전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다아낙은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 평야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Via Maris)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의 지명은 '타아낙'(Taanak)이다(12:21 참조). 므깃도는 애굽으로부터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주요 대상로(隊商路)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레윤'(Lejun)으로 추정된다(12:21 참조). 세 높은 곳은 산지(山地)에 위치하고 있는 세 성읍 곧 엔돌, 다아낙, 므깃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벧스안, 이블르암, 돌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다(Fay, Lias).

  에브라임 지파도 그들의 기업에 속한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16:10). 이러한 행위는 가나안 거민을 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7:1-5)을 거역한 범죄행위였다. 왜냐하면 각  지파는 이미 그들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이제 믿음으로 용감히 정복하여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만 신앙적 나태에 빠져 현실의 안일만을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므낫세 지파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가나안 사람들은 결심하고 그 곳에 거주하였다. 여기서 '결심하였다'는 말('야알' )은 '적극적으로 일에 착수하다', '감히...하다'의 뜻이다. 이 말은 가나안인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땅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므낫세 지파가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을 때 그들은 더욱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사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향후 올무와 덫에 걸릴 수  밖에 없었다(23:13). 이 지역은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정복할 수 있었다. 학자들은 이때를 이스라엘 역사의 전성시대인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대로 이해하고 있다(왕상 9:15, 16). 즉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나안 정복이 실제적으로 완전히 성취되게 되었던 것이다.      


  
라. 산지를 개척하라! (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16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으니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요셉 자손은 구체적으로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두 지파를 형성할만큼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큰'은 수적인 많음뿐만 아니라, 능력의 탁월함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 그 자부심이 대단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후일 사사 시대에 기드온과 입다의 행동에 에브라임 지파가 당당히 항의하는 그 위세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삿  8:1-3; 12:1-6). 결국 이러한 의식은 솔로몬 사후 남북 분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에브라임 지파는 북왕국 이스라엘 10지파의 주도 지파가 되었다(삼하 2:1-11; 19:41-43). 따라서 왕국 분열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은 에브라임 지파를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와 종종 동일시하여 명명하기도  했다(사 7:2; 11:13; 렘 7:15 ;31:9; 겔 37:16; 호 7:8 등). 요셉 지파는 인구가 많은 데 한 지파의 기업만을 분배 받은 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불만은 지나친 욕심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즉 모세 시대에 모압 평지에서 행한 제 2차 인구 조사에 따르면(민 26:51), 므낫세 지파의 인구는 52,700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의 인구는 32,500명에 불과했다. 그중 므낫세 지파의 반(half)은 요단 동편 땅에서 이미 넓은 기업을 분배받은 터였으므로(13:29- 31), 실제 요단 서편에서 분배받을 요셉 자손의 인구 수는 도합 60,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유다 지파의 76,500명, 단 지파의 64,400명, 잇사갈 지파의 64,300명, 심지어 스불론 지파의 60,500명에 비교해도 결코 많지 않은 숫자였다. 그러나 요셉 자손이 분배받은 땅의 넓이는 그들 지파들 보다도 훨씬 넓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요단 서편의 중심부로서 비록 산지가 있다하나 그리 높지 않았으며, 땅은 가장 비옥한 양질의 옥토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산술적 논리에 근거한 요셉 자손의 이러한 불만은 지나친 욕심에서 나온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 Delitzsch, Vol. 2. p. 182-183). 한편  여기서 한 제비 한 분깃이라는 말은 '제비'(고랄)를 한번 뽑아, 그 결과 측정되어 분배된 기업 곧 '분깃'(헤벧)을 말한다.       

  요셉 자손들이 부당하게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꾸짖지 않고 오히려 타이르고 권면하였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자세에서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에브라임 산지는(11:16,21)에 기록된 '이스라엘 산지'와 동일한 곳이다. 브리스 사람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부분과 (9:1-2)을 참조하고, 르바임 사람은 (12:4)을 참조하라.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산지를 개척하여 차지할 것을 권했다. 개척하라는 말('베레타')은  '나무를 자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삼림(森林)을 개간하여 초지로 만들라' 또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요셉 자손은 이에 대해 몇 가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에브라임 산지는 별로 쓸모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옥한  이스르엘 골짜기는 철 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거민이 있어서 개간이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요셉 자손들의 무기력한 자세는 그들의 조상인 요셉과 여호수아의 신앙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벧 스안'(Bethshean)에 대해서는 11절을 참조하라. 그리고 '향리'('베노트')는  직역하면  '딸들'이란 뜻인데, 즉 이는 주요 성읍 주변에 형성된 요새화 되지 않은 촌락을 말한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에스드렐론(Esdrelon) 평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골짜기는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당시에는 그곳 전체가 비옥하였다(Von Raumer). 위치상 동쪽으로는 길보아 산, 서쪽으로는 갈릴리 고지대, 남쪽으로는 갈멜 산지와 에브라임 산지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갈릴리에 미친다(Keil & Delitzsch).

  당시 벧 스안에서 므깃도에 이르는 가나안 북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은 이미 철병거를 갖고 있었다(11:4). 따라서 아직 청동기 문화권 속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위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나타나신 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였다면, 조금도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철 병거'(iron chariots)는 바퀴에 날이 선 철제 제품의 철 병거는 아니다. 그러한 본격적인 철병거는 고레스(Cyrus)시대 이후로 근동 지역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Wilkinson). 여기서는 단지 목재로 짜여진 전쟁용 병거에다 철을 몇군데 덧입혀 씌운 것을 가리킨다(Ibid).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들의 비신앙적 요구를 다시 한번 권면과 격려로써 응답해 주었다. 즉 여호수아는 그들 지파의 크고 강함을 십분 인정하면서, 그렇기에 그들이 기필코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다. 여호수아는 비록 가나안 거민들이 아무리 철 병거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다면 능히 그들을 진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의 요구에 떳떳이 신앙의 권면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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