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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수아(3): 가나안 남부-북부 정복 (9-12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11

 여호수아(3): 가나안 남부-북부 정복 (9-12장)

 
  우리는 지난 주부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주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중부 지역을 점령한 내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5:13-8장). 이번 주에는 지난 주에 이어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남부와 북부지역을 점령한 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9-12장).
                           

요단강을 건너라!

가나안을 정복하라!

땅을 분배하라!

여호와만 섬기라!

도하준비

정탐
파견

요단
도하

중부
정복

남부
정복

북부
정복

정복요약

요단동편

길갈분배

실로분배

도피성

레위인성

동편지파

1차

2차

모세죽음

길갈/군대장관

심판과 구원

12지파

레위인

제단

언약갱신

임종

1     2

3     4

5:1
   -12

5:13
   8

9
   10

11장

12장

13
 

 18

 19

 20

 21

  22

  

   23

  24



1. 가나안 남부 점령(9-10장)
  이스라엘의 여리고-아이 성 함락에 대한 소식을 들은 가나안 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정복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우호 조약을 맺는 것이었으며(기브온), 둘째는 이스라엘의 정복을 거부하고 그들과 맞서 싸운 것이다(아도니세덱, 야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정복을 받아들인 기브온에게 구원을 베푸셨고, 이를 거부한 아도니세덱과 야빈은 심판하셨다. 이것은 가나안 주민의 구원과 멸망이 그들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1-1. 기브온 거민의 우호조약(9장)


  
가. 기브온 거민에게 속아 평화조약을 맺음(1-15)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 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1),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하더라(2).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3),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헤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부대를 나귀에 싣고(4),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5), 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니다(6)."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은 곧 가나안에 있는 모든 왕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나안의 왕들은 이 소식을 듣고 힘을 합해서 이스라엘 군사들과 싸우려고 준비하였다.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 해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서 '산지'(hills)는 에브라임과 유다의 산지(10:40; 11:16)를 포함하는 가나안에 있는 산지(민 13:17;신 1:7)를 말하고, '평지'(Valleys, lowlands)는 산지와 해변가 사이에 있는 낮은 지대(욥바에서 가사에 이르는 대평원지대)를 말하고, '레바논 앞 대 해변'은 욥바로부터 두로에 이르는 지중해 해변을 말한다(Keil, Lias).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사람은 여호수아 당시에 가나안에 살았던 여섯 족속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덧붙여서 가나안 후기 일곱 족속이라고 불렀다. 가나안의 왕들은 여리고 성, 아이 성의 진멸 소식을 듣고 나서 즉시 이스라엘에 대항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가나안 족속들은 동맹을 맺어 남부 연합군을 조직했다. 가나안 거민 모두가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음으로 성읍 단위로 싸우던 전쟁은 이제 커다란 지역 연합군과의 싸움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기브온 거민들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과 싸우는 대신 그들을 속여서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기브온 족속은 히위 족속에 속했는데, 히위 족속은 가나안 땅 도처에 집단적으로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여호수아 당시에 이들은 기브온을 중심으로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등지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9:17). '기브온'(Gibeon)은 주변에 여러 소성(小城)들을 거느린 왕도(王都)였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 1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722m에 있는 가나안 중부에서 매우 중요한 성읍이다. 후일에 이 성읍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고(18:25), 다시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21:17). 기브온 거민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기 위해서 치밀한 모략을 사용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24절), 이스라엘과 화친(和親)을 맺는 것만이 그들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화친을  맺기 위해서 가나안 땅에 살지 않고 먼 나라에서 온 사신인 것처럼 거짓 위장을 했다. 한편 본문에서 '꾀를 내다'는 말('아람')은 원래 '벌거벗다', '매끄럽다'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교활하다', '간계를 취하다', '술책을 부린다'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기브온 거민들이 먼 나라에서부터 오랫동안 여행하여 찾아 온 사신처럼 보이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위장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만 행위가 발각되면 죽임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아이 성 정복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과 저주의 종교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세겜으로 갔다가(8:30-35) 다시 길갈에 있는 진영으로 돌아왔다. 기브온 거민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있는 곳을 파악하고 그 곳으로 나아갔다. 당시 길갈은 가나안 정복의 군사적 중심지였다. 기브온 거민의 사신들은 마치 멀리서 온 사신처럼 외모를 꾸미고(5절),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자신들이 멀리서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평화조약을 맺기를 요청했다. "약조한다"는 말('카라트 베리트')은 직역하면 '언약을 베다'하는 말이다. '언약'과 '베는 일'이 결합된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잡아 고기를 베어 그 조각 사이를 지나가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22:8; 렘 34:18). 이러한  풍습은 만일 언약을 어기면 죽임 당한 짐승과 같이 죽임을 면치 못할 것임을 의미했다(창 15:10). 이러한 언약은 1)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하는 언약과 2) 한 쪽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입장에서 하는 언약으로 구분되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한언약은 다윗과 요나단(삼상 18:3,  4), 야곱과 라반의 형제들(창 31:54), 아브라함과 헤브론의 아모리 족속들(창 14:13)이 맺은 약속이다. 그리고 일방작인 언약을 맺은 사건은 본문에 기록된 히위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과 맺은 약속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강한 쪽이 역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준수할 조건을 제시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7)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9),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10).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11)."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이 가까운 곳에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언약을 맺기를 주저했다.  여호수아는 모세 율법(출 23:32; 32:12; 민 33:55)이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는 일을 금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기브온 거민들은 자신을 낮추어서 스스로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종이라고 불렀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불러서 "그들이 누구며 어디에서 왔느냐?" 물었다. 기브온 거민들의 사신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고 막연히 먼 곳에서 왔다고 만 대답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신 사건(출애굽 시혼과 옥을 멸한 일)을 언급하였다. 그들이 관심을 종교적인 문제로 유도한 것은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모략이었다. 그들은 오래 전에 출발한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 최근에 있었던 여리고 성과 아이 성 점령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기브온의 장로들과 모든 거민이 자신들을 이스라엘에 보내어 평화조약을 맺도록 파송했다고 설명했다. 기브온 성읍과 그에 속한 세 성읍, 곧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은 왕정(王政) 체제를 갖추지 않고 장로(長老) 체제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J. J. Lias). 아마도 이러한 체제 때문에 기브온 성은 다른 가나안의 성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행동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12), 도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부대도 새 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14),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릴 것이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15)."

  멀리서 온 사신들처럼 꾸민 기브온의 대표들은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기 위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종의 신분으로 비하시키면서(8, 9절), 신앙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접근하였다. 세상 세력은 종종 우는 사자처럼 덤벼들지만, 때로는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탄원자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왕국 편에 선 것처럼 자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Gerlach). 신앙적이고 복종적인 태도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호감을 얻게 만들었다. 기브온 사신들은 이제 자신들이 멀리서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사전에 준비하고 계획한대로 남루한 옷차림을 비롯하여 곰팡이 난 양식과 찢어진 가죽 부대, 헤어진 신발 등을 일일이 증거물로 내보이면서 '먼 여행길'을 왓다는 것을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기브온 사신들은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는데 성공한다(15절). 아마도 그들은 1)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 이외의 나라들과는 화친을 잘 맺으며, 2) 그들의 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화친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친을 맺기 위하여 그들이 벌인 각종 거짓 행각은 결코 정당시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는 용서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만일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와를 신뢰하고 정직하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들은 기생 라합과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 부지를 위해 여호와의 이름을 이용했으며 여러 가지 거짓말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속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들과 즉시 화친 조약을 맺고 말았다. 본서 저자가 특별히 이 말을 기입한 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화친 조약을 맺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 조약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정탐꾼의 말만을 믿고서 전투를 시작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7:2-5),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기브온 거민들의 말만 믿고서 화친 조약을 맺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뜻을 묻기 위해 대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해 '우림과 둠밈'(출 28:30 주석 참조)의 판결법을 사용했어야 옳았다(민 27:21).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 거민들과  화친 조약을 맺은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1) 출애굽 이후 줄곧 적대 세력들만  상대해 오다가 이처럼 우호 세력이 나타나자 쉽게 호감이 갔을 수 있다. 2) 기브온 사신들의 복종적인 태도에 마음이 우쭐하여졌다. 3) 치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힘센 민족과 동맹을 맺으면 정복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기브온 거민의 위장이 드러나게 됨(16-21)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3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16).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 3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 사신들의 신분을 알게 된 것은 그들과 언약을 맺은 지 3일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에 길갈에서 기브온이 있는 곳까지는 군대를 이끌고 3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17절). 3일 뒤에 기브온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그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찍이 히위 족속들은(기브온 거민은 히위 족속이었다) 야곱의 딸 디나를 욕보였다가 크게 보복 당한 적이 있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 여동생 '디나'가 당한 수욕을 보복하기 위해서 디나와 결혼하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한 뒤에 그들을 무참히 살륙했다(창 34:1-29). 그 사건이 있은지 500년 후에 이제는 이스라엘이 히위 족속에게 속임을 당했다. 이러한 사실을 건고로 해서 어떤 학자는 히위 족속인 기브온 거민이 살아남은 것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디나 사건에 대한 배상(賠償)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 서북쪽으로 9.6km 지점에 있는 해발 722m 정도의 성읍으로서(3절), 후에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8:25). 후에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지혜룰 구하여 응답받기도 했다(왕상 3:4; 대하 1:3 이하). 그비라는 히위 족속에 속한 성읍으로, 나중에 베냐민 지파의 영토가 되었다(18:26). 브에롯 역시 나중에 베냐민 지파의 땅이 되었다. 기럇여아림은 기브온 족속의 성읍 중에 하나로 '바알라' 또는 '기럇바알'이란 이름으로도 불리운다(15:9, 60). 후에 이 성읍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의 경계선에 위치하였다(15:9; 18:14, 15).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돌려보낸 후에 다윗 왕이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때까지(삼상  6:1-15; 대상 13:5-14; 15:2-28; 대하 1:4),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이나 있었다(삼상 6:19-7:2). 미 이름의 뜻은 '수풀의 마을'이란 뜻이며,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고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18),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견드리지 못하리라(19).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20),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었더라(21)."

  그들은 거짓에 속아서 조약을 맺었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이 화친  조약이 거짓에 속아 맺어진 것이므로, 이 거짓이 발견된 후에는 그 조약을 파기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계약은 이스라엘과 기브온 족속과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된 계약이었기 때문에 파기될 수가 없었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 약속을 파기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당하게되고,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Calvin). 따라서 이 계약을 파기하지 않은 족장들의 행동은 옳았다고 보아야 한다(Pulpit). 아더 핑크는 이러한 족장들의 처사를 '속았지만 명예로운 처신'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세심하지 못한 처사에 대해서  매우 비난했다. '비난했다'는 말(룬)은 "계속적으로 불평했다"는 말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비록 거짓으로 조약을 맺긴 했지만, 그들은 이 조약으로 인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로 인해 자유를 박탈당하고 종이되고 말았다. 이들이 맡은 나무 패고 물긷는 일은 성막에서 제사 때에 필요한 나무를 예비하고, 제사장이 정결 의식을 할 수 있도록 물두멍에 물을 채우는 일이었다. 성막의 잡무는 레위인들이 담당했지만 이제부터 어렵고 힘든 일을 기브온 사람들이 하게되었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 중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로 취급되었다(신 29:11, Keil).


 
 다.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의 종이 됨(22-27)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22)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리라(23).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24).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25).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26).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27)."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의 지도자를 불러서 그들이 속인 일에 대해서 추궁하였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을 속여서 화친을 맺은 결과로 죽지는 않지만 그 대신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 개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곧 성막에 소속된 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저주가 저주를 위한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긍휼이요 축복이었음을 보여준다(Matthew Henry), 이러한 일은 야곱으로부터 흩어질 것이라고 저주를 받았던 레위 지파가 오히려 성전 일을 맡게되어 오히려 축복이 된 것과 같다(창 49:5-7). 기브온 거민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속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며, 여호수아가 한 말을 그대로 수용했다. 해명의 요점은 목숨을 부지하고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짓말을 한 대가로 기꺼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다고 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가나안의 후손인 히위 족속(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의 종이 된 것은 노아의 저주(창 9:25)가 성취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Keil, Matthew Henry). 여호수아는 거듭해서 그들을 해치지 말라고 강조하였다(19, 20절). 왜냐하면 기브온 거민에게 속아 화친을 맺은 것에 불만을 가진 일부 군인들이 과잉 열심으로 그들을 진멸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거민을 성막의 종으로 삼은 것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목적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우상 숭배, 음란)이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들을 성막에서 봉사케 함으로써 그들의 타락한 습성이 변화될 수 있도록 고려했을 지도 모른다(Keil, Delitzsch).

                                 * 적용 및 교훈 *

1. 기브온 거민의 긍정적인 면: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기브온 거민들은 여리고와 아이 성 점령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들도 점령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이스라엘의 점령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구원받을 길을 모색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섭리를 따른 기브온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기브온 거민의 기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2. 기브온 거민의 부정적인 면: 거짓에 대한 징계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위장과 거짓을 사용했다. 만일 기브온 사람들이 라합과 같이 자신들의 입장을 정직하게 밝히고 이스라엘에게 화친을 요청했다면, 그들은 종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위장과 거짓으로 이스라엘을 속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말았다.


 1-2. 가나안 남부 점령(10장)  (지도 보기: "기브온 전투 사건")
  기브온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인 반면에 아노니섹은 적극적으로 이를 거주하고 맞서 싸웠다. 그 결과 그는 헤렘의 법이 적용되어 엄한 처벌을 받고 말았다. 강성한 기브온 성이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은 헤브론과 야르뭇과 라기스와 에글론의 왕들과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러 올라왔다. 이때에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 요청을 들은 여호수아는 즉시 출동하여 남방의 다섯 나라의 연합군을 제거하고 그들의 땅을 정복하였다.

  가. 남부 연합군의 공격과 기브온의 원군 요청(1-6)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일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이 듣고(1)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2).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아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3), 내게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4), 이러므로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5).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에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진언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6)..."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를 점령한 일과,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은 일은 곧 가나안의 왕들에게도 전해졌다. 기브온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던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불안해하였다. 예루살렘은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약 53km, 사해에서 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곳을 '살렘'이라고  불었으며(창 14:18), 사사시대에는 '여부스'라고 불렀다(삿 19:10, 11). 다윗 왕은 이 곳에 있는 성을 '다윗 성'이라고 부르고(삼하 5:6-10),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했다. 아도니세덱은 '의의 주(主)'라는 뜻으로서 이 명칭은 예루살렘 왕들에게 부여된 공식 칭호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 칭호가 '의의 왕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멜기세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창 14:18). 따라서 일부 학자는 이 예루살렘 왕을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Matthew Henry). 여부스 족속에 속하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당시 남부 팔레스틴의 여러 왕들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아도니세덱은 기브온 성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음으로 여리고->아이->벧엘->기브온으로 이어지는 가나안 중심부가 이스라엘 군대의 수중에 들어간 일을 듣고 두려워 떨었다. 왜냐하면 가나안의 중부를 점령했다는 것은 곧 가나안의 남북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다음 대상이 기브온과 가장 가까운 거리(약 10km)에 있는 예루살렘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 등 네 왕과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동맹한 기브온을 치려고 했다. 이러한 아도니세덱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브온은 장로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갖춘 성읍이었다(9:11). 그러나 기브온은 주변의 여러 성읍들 곧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과 같은 성읍들을 거느린 영향력 있는 성읍이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왕도와 같은 성읍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9:17).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m의 성읍으로서, 구약 성경 에서 50번 이상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이곳은 애굽의 '소안' 보다도 7년 먼저 세워진 고대 가나안의 문화. 정치의 중심지였으며(민 13:22),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에 이 곳으로 이주했다(창 13:18).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했으며, 이삭과 리브가도 이곳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요셉은 헤브론에 자기 부친인 야곱을 장사하였다(창 50:13). 가나안 정복 후에는 갈렙이 이곳을 차지하여(수 14:13), 나중에는 도피성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이곳 이름은 '친구', '벗'이란 뜻의 '엘 칼릴'인데, 매우 질 좋은 우량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야르뭇은 현재의 엘류데로폴리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약 15km 지점에 있다.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 할당되었으며(15:20-62), 바벨론 포로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 성읍으로 돌아왔다(느 11:29). 오늘날의 명칭은 '얄무크'이다. 라기스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서남방 약 48km 지점에 있는 가사와의 중간 지점인 세렐라 지방의 저지대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 곳은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5:39).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곳은 오늘날의 '움 라기스'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Robinson). 에글론은 라기스 동쪽으로 약 40분 거리의 위치에 있는 성읍이다. 이 성은 가사로부터 예루살렘 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오늘날의 명칭은 '아월란'(Ajlan)으로 추정되는데(Keil, Lias).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었다(15:39).

  아도니세덱은 이들 네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올라오라'는 말은 다른 왕들의 성읍이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과 잘 부합되는 말이다. 그리고 '도우라'는 말('아자르')은 '원조하다', '구원하다'는 뜻으로, 침략을 당하거나 침략을 할 때에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 힘에 부쳐서 상대방의 원조를 요청하는 말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이스라엘보다 먼저 기브온을 공격하자고 제안하고 명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같은 가나안 족속으로서 동맹 관계를 맺어 공동의 적 이스라엘을  함께 격퇴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은 데 대한 강한 배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 기브온을 멸절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제2의 기브온과 같은 성읍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타격을 주기  위함이다. "사단은 자기 수하에 있던 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사단은 예전처럼 그들을 예속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방해한다. 아모리의 다섯 왕은 이렇게 해서 서로 동맹하게 되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중 가장 강력하고 넓은 판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족속으로 성경에서 흔히 '가나안 족속'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창 15:16). 그들은 동맹한 후에 기브온과 마주 진을 치고 싸웠다. 여기서 '대진하였다'는 말('하나')은 '기울이다', '야영하다', '포위하다', '방어하다'등의 뜻인데, 여기서는 '야영하다'(encamp)란 의미로 사용되었다(KJV, RSV). 기브온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동맹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즉시 이스라엘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나.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도와 남부 연합군을 공격함(7-15)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7).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8).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9),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10).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11)."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과 화친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을 구원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즉각 가나안 동맹국들을 치러 나선 것은 기브온 족속과의 화친 조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차피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쳐야 하는 임무가 있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이용해서 가나안 연합 세력을 격파하며 남부 지역을 장악하려고 했다. 기브온 족속들의 구원 요청 속에는 사태의 긴박성이 잘 나타나 있다. 왕도(王都)와 같은 큰 성이요, 매우 강한 기브온 족속(2절)이 이와같이 급하게 원조를 청한 것은 다섯 동맹국의 세력을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막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 여부스 족속인 예루살렘 왕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왕들은 아모리 족속으로서, 그들의 주요 거주지는 가나안 산악 지대 였다. 지금까지 벌인 성읍 단위의 소규모 전투와는 달리, 기브온 전투는 가나안 남부 연합세력과의 대규모 전쟁이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길갈 진(陣)으로부터 기브온을 향해 출동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남부 다섯 동맹국과의 큰 전투를 눈앞에 두고 출전하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가나안 본토 연합 세력과 싸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 격려의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손 가나안 남부 지역의 왕들을 넘겨주셨다. 여호수아는 즉각적으로 기브온의 도움 요청에 응답했다. 길갈에서 기브온까지는 걸어서 3일 정도 되는(40km) 거리였으며, 험난한 산악 지형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하룻밤만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곳의 야간 산악행군은 매우 힘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아이 성 전투에서는 매복 작전을 구사한 반면(8:3-9), 기브온 전투에서는 여호수아가 기습 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하였다. 가나안 동맹국들은 요단 강 부군의 길갈(9:6)에 진 치고  있는 여호수아의 군대가 그토록 빨리 습격해 올 줄은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바로 이 점을 역이용하여 그들을 초기에 제압하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갑자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타'는 원래 '눈을 깜박이다'라는 뜻으로, 여호수아의 기습 작전이 매우 신속하고 빈틈없이 진행되었음을 강조해 준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기습 작전으로 쉽게 가나안 남부 다섯 동맹국을 정복할 수 있었다. 여호수아 군대가 강력한 다섯 동맹국을 쉽게 정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군대를 패배시켜 주셨기 때문이었다. '벧호론'은 예루살렘 서북쪽 약 16km와 19.2km에 위치해 각각 '상(上) 벧호론'과 '하(下) 벧호론'을 구별하여 부른다. 상. 하 벧호론 사이에는 약 3km 걸친 가파른 바위투성이의 비탈 길이 있다(Robinson). 지금도 이들 두 벧호론을 연결하는 로마 시대의 도로가 남아있는데, 이것은 이들 두 성읍이 동쪽 기브온과 서쪽 아얄론 골짜기, 그리고 해안 평지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도로 상에 위치해 있었던 사실을 말해 준다.

  아세가는 아얄론 골짜기 남부의 견고한 성읍으로서, 지금의 텔 에즈 자카리에를 가리킨다. 베들레헴 서쪽  27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으로,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의 접전 지역이었다(삼상 17:1).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이곳이 매우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는 다시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하였다(느 11:30). 막게다는 '목자의 숙소'란 뜻을 지닌 '막게다'(Makkedah)는 가나안 남부 평지에 위치한 주요 성읍이다.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군대를 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큰 덩어리로 된 우박을 내리셨다. 본문에 사용된 '큰 덩이 우박'('아바님 게돌로트')는 단순히 '큰돌들'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이 말이 '돌 같이  단단하고 큰 우박'을 말하고 잇다. 성경에서 우박은 항상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표현되었으며(출 9:24; 사 28:2, 겔 38:22; 학 2:17; 계 11:19; 16:21),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적과 친히 싸우실 때 사용하신  전쟁 도구였다(욥 38:22, 23; 사 32:19). 기브온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박에 맞지 않고, 다섯 동맹국 군대만이 우박을 맞아 죽은 것은 이 우박이 하나님에 의해 내려진 초자연적 현상임을 말해준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12),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13)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14).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15)."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을 공격하던 날에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을 그 자리에 멈추라고 명령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섯 동맹국을 추격하던 때에 날이 저물면 그 공격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낮이 연장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해와 달을 멈추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 결과 기도의 응답으로 태양과 달은 그 자리에 정지하는 전무후무한 이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두고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렸다. 1) 일부 학자들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군대에게 힘을 더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듣고 하루종일 싸워 이길 것을 반나절만에 승리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군대에게 힘을 주셨다고 말한다. 2) 일부 학자들은 여호수아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멈추게 해달하고 기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시고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잠시 구름으로 덮으셔서 여호수아 군대가 승리할 수 잇게 해 주셨다고 말한다. 3) 일부 학자들은 실제 해는 졌지만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해 마치 해가 머문 것처럼 낮이 길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성경의 이적을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견해에 불과하다. 14절을 보면 분명히 이 날의 이적이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라 이 사건이 실제로 해가 중천에 머물렀던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Leon Wood). 기브온은 동쪽이요, 아얄론 골짜기는 서쪽에 위치했는데, 대략 기브온에서 서쪽으로 북위 17도 가량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때는 7월경이요, 태양과 달의 위치는 달이 3/4 공전  때로, 곧 반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얄론은 여리고와 지중해 사이에 있는 아얄론 평야를 굽어보고 있는 산 위에 있는 성읍으로 오늘날  얄로(Yalo)로 추정된다(Robinson). 기브온은 이 곳에서 서쪽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다. 이 성읍은 주로 전쟁사의 무대로 등장하며, 훙 단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19:42), 다시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지정되었다(21:24).  야살의 책(세펠 하야솰)은 '의로운 자의 책'이란 뜻으로, 이곳과 (삼하 1:18)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의 기원은 잘 알 수 없으나 정경 외에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여러 가지 민족적 자료들을 연대를 따라 수록한 고대 문서라고 볼 수 있다(Keil). 이 책은 이스라엘의 역사 초기부터 있었던 기록물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나 기념할만한 큰 사건을 노래한 시를 모은 민족적 시라고 할 수 있다(Goldschmidt). 이 책은 (민 21:14)에 나오는 '여호와의 전쟁기'와 함께 구약에서 중요한 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 '중천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하치'는 '둘로 쪼개다', '반으로 만들다'란 뜻의 '하아'에서 유래한 말로, 여기서는 태양이  하늘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종일토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욤타밈'은 '완전히 하루동안'을 의미하는데 공동 번역은 '하루를 꼬박'이라고 번역하였다.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은 평소와는 달리 그 진행 속도가 반이나 느려져 12시간 이상 하늘에 더 지체되어 속히 내려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태양이 머물도록 간구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신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구원 역사에 필요한 일이라면 어떠한 기도라도 응답해 주신다. 태양이 중천에 머문 놀라운 기적은 단순히 적군의 섬멸이라는 목적 외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1) 요단 강 도하의 기적과 더불어 태양이 멈춘 기적 사건은 여호수아의 권위를 한층 더 강화시켜 주었다. 2) 하나님은 애굽과 광야 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3) 해와 달도 모두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아것들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 준다. 4) 구속사적으로 이 기적은 사단의 모든 세력을 섬멸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실 것을 예시한다. 카일(Keil)은 히스기야 왕 때에도 해 그림자가 일영표 상에서 10도 물러간 사건(왕하  20:9-11)을 지적하면서, 이 사건이 천체를 움직인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본문에서 전무후무하다는 말은 위대한 기적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다(왕하 18:5; 23:22, 25).

  다. 연합국의 다섯 왕을 죽임(16-27)
  "그 다섯 왕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16), 혹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가로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의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17).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주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18), 너희는 지체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로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19),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도륙하여 거의 진멸시켰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으로 돌아간 고로(20),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으나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21)."

  다섯 왕은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어 있었다. 가나안 산악 지대의 여러 곳에는 흔히 석회암으로 된 큰 동굴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굴은 몇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고 건조하기 때문에 종종 도피처로 사용되었다(Robinson, Von Schubert). 그러나 곧 그들이 굴에 숨은 것이 발각되어 여호수아에게 보고되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굴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굴 입구를 돌로 막고 그 입구를 사람을 세워 지키게 하였다. 여호수아는 이미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된 다섯 왕의 처리에 연연치 않고 잔존 세력을 철저히 진멸 시키기 위해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가나안 군사의 뒤를 추격하여 그들이 성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여호수아가 이와 같이 명령한 것은 패주 하는 다섯 동맹국 군사들이 자신들의 성읍에 들어갈 경우, 다시 세력을 결집해서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Matthew Henry).  따라서 여호수아는 지체하지 않고 적군의 뒤를 추격하여 진멸함으로써 적의 반격을 사전에 완전히 봉쇄해 버리려고 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보내면서 여호와께서 가나안 군사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엿다고 선언하였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여호수아의 지시대로 가나안 군대를 맹추격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가나안 남부 동맹군들은 완전 해체된 채 일부 군사들만이 겨우 성읍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세력은 이스라엘 군대에 재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일단 막게다 진으로 귀환했다. 견고한 성은 '요새화 된 성'을 의미하며 1) 높은 망대가 세워져 있고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 싸였을 뿐 아니라, 2) 전쟁을 치를 물자가 비치된 성읍을 말한다. 이에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평안히'는 '안전하게'(RSV, NTV), '한 사람도 희생당하지 않고'(Living Bible)를 의미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단 한사람도 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결과는 여호와께서 친히 싸워주셨기 때문에(11절) 가능한 일로서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기브온 전투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어느 누구도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이 말은 일종의 격언적인 표현으로 '완전한  침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명예롭게 하심으로 가나안 족속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을 비난이나 조소할 수 없게 하셨다.

  "때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22),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 내니라(23).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밟으라. 가까이 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24),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25),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 대로 두었다가(26),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27)."   

  추격전을 일단 마무리 짓고 진(陣)으로 귀환한 여호수아는 다음 날 아침 아모리 다섯 왕(5절)의 공개 처형식을 엄숙하게 거행하였다. 먼저 여호수아는 그 다섯 왕이 숨어 있던 막게다 굴에서 그 왕들을 잡아 자기 앞으로 끌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여호수아는 군장들에게 이르되 그 왕들의 목을 밟으라고 명령했다. 적대국 패장(敗將)의 목을 밟는 일은 고대 근의 전쟁 풍속이었다. 일반적으로 패장의 목울 밟는 사람은 승전국의 최고 장수였으며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강화시켰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군장들에게 패장의 목을 밟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에 대한 멸절 의지를 심어주려고 했다. 이러한 행동은 타락한 가나안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모습은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목을 밟으실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왕들을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다(시 110:1; 빌 2:10; 히 2:8).

  여호수아는 군장들에게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담대 하라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스라엘이 싸울 다른 모든 가나안 족속들에게도 이와 같이 하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다섯 동맹군의 왕들을 쳐서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다가 해질 때에 내려서 그들이 숨었던 굴에 던지고 그 입구를 돌로 막아버렸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는 신명기 규례(신 21:22-23)를 따른 것이다. 이미 처형당해 죽은 범죄자의 시신을 또 다시 나무에 매다는 것은 1) 죽은 자를 수치스럽게 하기 위한 징벌인 동시에(민 25:4; 창 40:19), 2) 이스라엘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한 조치였다.   


 
 라. 가나안 남부 점령(28-43) (막게다, 립나, 라기스, 게셀, 에그론, 헤브론, 드빌,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 고센 점령) (지도 보기: "가나안 남부 정령 사건")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일과 일반이었더라(28).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29),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30).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31),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32).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33).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34),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였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35).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36), 그 성읍을 취하고 그것과 ㄱ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37)."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부의 모든 성을 쳐서 그 성과 성읍에 있는 왕과 모든 거민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이러한 일은 립나(30절), 라기스(32절), 게셀(33절),  에글론(35절), 헤브론(37절), 드빌(39절) 등의 도시에서 모두 동일하게 행해졌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거민들을 철저하게 진멸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의 왕들을 칼날로 쳐죽여 나무에 매달고, 거민 들을 남녀 노소 구별 없이 모두 죽인 일은 너무 잔인한 행위였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가나안 정복은 단순한 침략 전쟁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수백 년을 참아오셨던(창 15:16)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형을 집행하는 대리인으로서 사사로운 감정에 잡혀서 그들을 살려둘 수가 없었다.

  립나는 가나안 남부의 세펠라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기스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성읍이다. 립나는 처음에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15:42) 후에 레위 지파에게 주어졌다(21:13). 립나는  여호람 왕 때에 유다에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였다(왕하 8:22;  대하 21:10). 그러나 후에 이 성읍은 앗수르 군장인 산헤립에게 공격을 받아 세력이 약화되었을 때에 다시 유다에게 점령되었다(왕하 19:8; 사 37:8). 오늘날 립나로 추정되는 곳은 '텔 에스 사피에'(Tell es Safieh)이다. 그 이유는 '흰 것' 또는 '백색'이란 뜻을 가진 '립나'(LIbnah)란 말에 어울리게 이 곳이 우뚝 솟아 있는 흰 석회암 절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셀은 세펠라(Shephelah) 평지 북서쪽  변방, 곧 라기스 북쪽 32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고대 가나안의 주요 도시이다. 가나안 정복 후 게셀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어졌으나, 나중에 레위 지파에게 재분배되었다(21:21). 라기스 정복과 관련된 사건은 게셀왕 호람(Horam)에 관한 기사이다.  본래 게셀은 여호수아 군대의 진행로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군대를 이끌고 라기스를 도우러 왔다가 멸망당했다. 이 사건은 불의의 끈으로 맺어진 결과 악한 일에 동조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Matthew Henry). 헤브론이 정복됨으로써, 가나안 남부 다섯 동맹국 중 세 성읍(라기스, 에글론, 헤브론)이 모두 정복되게 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두 성읍, 곧 예루살렘과 야르뭇에 관한 정복 기사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두 성읍의 위치가 중부 지역에 위치한 관계로 유보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야르뭇'은 곧 정복되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5:35). 헤브론(Hebron)도 기브온과 마찬가지로 왕도(王都)였으므로(1절), 휘하에 여러 작은 성읍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성읍들은 헤브론과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해 연합해서 싸우다가 이스라엘에게 전멸 당하고 말았다.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러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38),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요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였더라(39).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40).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4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4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43)."

  드빌은 올브라이트(Albright)에 의하면 라기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이다. 이 곳은 헤브론으로 부터 남서쪽으로 약 20km지점에 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기럇 세벨'로서(15:15; 삿 1:11), 그 뜻은 '문서(文書)의 성'이란 말이다. 이곳은 고대 문화의 중심지였을 것이며, '기럇 산나'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15:49). 여호수아 정복 당시에 이곳에는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으며(11:21) 이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던 성읍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산지, 남방, 평지, 경사지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왕과 백성을 모두 전멸시켜 버렸다. 산지는 유대 산맥과 할락 산맥으로 이어지는 산악 시대와 그 주변 지역을 가리키며, 남방은 네게브(Negeb)지역과  팔레스틴 남부를 형성하는 건조하고 광활한 사막 지대를 가리킨다. 평지는 네게브 지역보다 훨씬 비옥한고 아름다운 곳으로서, 욥바로부터 가사까지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세펠라(Shephelah)평원 지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경사지는 유다의 산들로부터 사해 쪽으로 시내, 언덕을 형성하면서 길게 기울어진 산비탈 지대를 말한다.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남부 지역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여호수아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 그리고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온 고센 땅을 쳐서 점령하였다. '가데스 바네아'는 시내 반도의 북쪽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으로, 출애굽 후 정탐꾼 파송지로 유명하다(민 13:2, 26). '가사'(Gaza)는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80km, 그리고 지중해로부터는 약 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창 10:19). 이 곳은 팔레스틴에서 애굽에 이르는 대로상에 위치한 주요한 성읍이었다. 이곳은 가나안 정복 당시에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1:22), 블레셋 족속으로 인해 점령하지 못하다가 솔로몬 때에 정복되었다(왕상 4:24). '고센'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거주했던 애굽의 고센(창  46:28; 47:6; 출 8:22; 9:26)이 아니라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된 가나안 남부의 고센을 가리킨다.  오늘날 위치는 헤브론 서남쪽 19.2km지점의 텔 엘 다히리에(Tellel-Dhahiryeh)로 추정된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는 가나안 남방으로부터 북서쪽 방면을, 그리고'거센 땅에서 기브온에 이르기까지'는 가나안 남방으로부터 북동쪽 방면을 언급한 것이다(Keil).

  여호수아 기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싸웠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이 모든 성읍을 단번에 점령했다고 말한다. 10장의 결론 부분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싸우셨다. 우리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보면서 가장 중요시 해야할 점이 이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싸워주셨기 때문이다.

 2) '단번에' 점령했다. '단번에(파암 에하트)라는 말은 '단 한번 원정에'라는 뜻이다. 이 말은 가나안 남부 정복이 여러 번의 원정에 걸쳐 힘겹게 된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원정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단 한번의 원정으로 가나안 남부 정복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적들과 친히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긴 가나안 남부 원정을 끝내고 이스라엘의 본거지가 있는 길갈로 철수했다.

                    <참고: "여호수아에 나타난 긴 하루"에 대해서">

  여호수아서에는 "해가 종일토록 지지 않았던 하루"에 대한 기록(기브온 전투)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사건이 전 우주에 미치는 일이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에 이 시건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해리 림머(Harry Rimmer)는 몇 사람의 천문학자들이 천문학적 계산에서 하루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였다. 하버드 연구소의 피커링(Pickering) 교수와 예일대학의 토튼(Totten) 박사는 이 누락된 하루를 여호수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았다. 그러나 램(Ramm)은 이 보고를 입증할 아무런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 기록은 지구의 자전의 중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태양열로부터 막아주신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이 시간은 태양 빛의 굴절 등과 같은 특별한 현상을 통해서 이스라엘 군대들이 볼 수 있는 시간을 연장시킨 것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수 10:13)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그 임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서 하루를 연장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적용 및 교훈 *

1. 하나님은 주권과 섭리에 불응하는 남부 가나안 거민은 힘을 모아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은 기브온을 공격했다. 이렇게 악한 자들은 항상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마련이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위기 처한 기브온 거민을 구원하게 하셨다. 주님을 믿고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대적과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3. 하나님의 주권과 십리를 거부한 남부 가나안 거민들은 여리고 성과 같이 처벌을 받고 말았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단 한 번의 원정만으로 자기 뜻을 거부하는 남부 연합군을 전멸시켜 버리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려진 최후의 심판과도 같다.


2. 가나안 북부 점령(11장)  (지도보기: "메롬 물가의 전투 사건")

 2-1. 북부 연합군의 공격(1-4)
  "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2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쳤더라."

  하솔왕 야빈은 가나안 중부와 남부가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의 성읍에 사람을 보내서 원군을 요청했다. 하솔은 '성' 또는 '요새'란 뜻으로, 당시 가나안 북부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성읍이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성의 위치는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15km지점, 그리고 훌레(메롬) 호수에서 서쪽으로 약 7km 되는 곳에 있는 '텔엘-케다이'(Tell el-Qeday)로 추정된다(Y. Yadin). 이 성의 크기는 약 200에이커(1에이커=약4km)로서, 라기스가 18에이커, 므깃도가 14에이커, 그리고 여리고가 8에이커인 것을 생각하면 매우 큰 성이었다(L.  Wood). 이 성은 메롬 전투 패배 이후에 여호수아에 의해 불태워졌다(11절). 후에 이 성은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19:36), 사사 시대에 다시 복구되어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성은 다시 사사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정복당했다(삿 4:2,17; 삼상 12:9). 이후 솔로몬이 중수하여 요새화 하였으나(왕상 9:15), 결국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1세에 의해 함락당하고 그 성 거민들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왕하 15:29). 야빈은 '지략가'라는 뜻으로서 당시 '하솔'(Hazor) 성을 통치하던 최고 군주에게 붙였던 일반적 명칭이었다(삿 4:2). 당시 하솔이 북부 가나안에서 가장 큰 도시 국가였던 만큼, 하솔 왕 야빈(Jabin) 역시 당시 가나안 북부 지역의 최고 실권자로 큰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야빈은  여호수아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 북부 가나안의 모든 왕들을 불러모아 북부 동맹군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마돈은 디베랴 서북쪽에 있는 오늘날의 카른 하틴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성경에서 본문과 (수 12:19)에만 언급되어 있다. 시므론은 디베랴 남쪽 19km 지점에 있는 가나안 북부의 주요 성읍으로 후에 스불론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19:10, 15). 악삽은 악고에서 동남쪽으로 11.2km 지점에 있는 성으로 현재의 텔 키산(Tell Kisan)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후에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9:25).

  북방 산지는 납달리 지파의 경계를 형성하는 갈릴리 지역의 산악 지대로 된 북부지역을 가리킨다(19:32-39). 긴네롯 남편 아라바는 아라바(Arabah)는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 계곡을 가리킨다(3:16). '아라바'는 성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평지는 지중 해안을 따라 멀리 욥바까지 이어지는 세펠라(Shephelah) 평원 지대를 가리킨다(9:1; 10:40). 그리고 돌은 가이샤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km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갈멜 산에서 남쪽으로 약 17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타인 해안의 요새화 된 성읍이다. 이곳은 해안을 따라 자주 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베니게 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 가나안 정복 후 이 성은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다시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졌다(17:11). 이 곳은 오늘날의 '탄투라'(Tantura)로 추정된다(Wilson, The Holy Land). 하솔 왕 야빈과 동맹한 가나안 여러 족속들은 북부 팔레스틴의 거의 모든 족속들을 총괄하고  있다. 요단 서편에는 '미스바'(Mizpah, '망대'란 뜻)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이 세 곳 나온다. 본문과 8절에 기록된 미스바는 유다 지파의 미스바(15:38)나 베냐민 지파의 미스바(18:26)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편 8절에는 여호수아가 북부 가나안 동맹군을 메롬 물가에서 쳐부수고 그들을 추격할 때에 '동편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뒤쫓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헤르몬  산 동남쪽 지역으로 추정될 뿐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헤르몬 산은 스닐 산이라고 불리어졌다(신 3:8; 겔 27:5). 헤르몬 산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지역의 북방 한계선이었다(11:17; 12:17). 당시에 히위 족속은 헤르몬 산  기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동맹군들의 매우 많아서 마치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았다. 이 표현은 '수효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보병 뿐 아니라 북부 연합군들은 말과 병거도 심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1세기의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는 당시 그들에게 30만 명의 정예 보병, 1만 명의 기병대, 그리고 2만 명의 병거 부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메롬 물가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 서북방 15km, 예벨 야르막(Jebel Jarmag) 기슭에 있는 메이룬(Meirun) 마을과 동일시되고 있다. 구약 사가 올브라이트(Albright)는 메이룬 근방 유적지 경사면에서 후기 청동기와 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들을 발견한 후 메이룬과 메롬(Merom)을 동일시하였다. 이곳은 악고(Accho)로부터 갓(Gad)을 경유하여 갈릴리의 가데스(Kadesh)로 가는 주요 도로상에 위치해 있다. 아래 지도를 참조하라. 가나안 북부 연합군들이 함께 진을 쳐서 이스라엘에게 대항한 곳은 메롬(Merom) 물가였다. 이 메롬 물가의 전투는 대단히 중요한 전투로서, 지금까지 중부, 남부를 모두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한  가나안 족속들로서는 이 전쟁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으므로 북부의 모든 잔존 세력들이 총 규합한 전투였다. 만일 가나안 북부 연합군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가나안 땅 전체는 이제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이 메롬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그 동안 다져놓은 모든  기반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일전(一戰)은 가나안 땅의 주인을 결정짓는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2-2. 여호수아의 기습 공격(6-9)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8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9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북부 대군과의 일전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번 같은 용기를 주시고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이때쯤이면 그들이 몰살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러한 승리의 확신을 갖지 못했다면,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병거로 무장한 북부의 연합군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던  '길갈'에서 '메롬'까지는 거리상으로 볼 때, 하루만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길갈에서 북진하여 하루만에 메롬에 당도할 수 있을 만한 곳에 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Campbell). 하나님께서는 메롬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말의 뒷발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르라고 명하셨다. 왜냐하면 만일 이스라엘 기병대와 병거로 무장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 대신 기병대와 병거를 더 의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세는 (신 17:16)에서는 이스라엘 왕에게 말과 병거를 많이 갖추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기보다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 무적의 군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Calvin). 마침내 여호수아는 메롬 물가에 도착했으며, 그는 적들을 갑자기 습격했다. 당시 가나안 지역은 여러 작은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이 동맹했다고 해도 일사 분란 한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허점을 노려 가나안 북부 동맹군이 체제를 정비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기습했다.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은 아직 이스라엘이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습을 받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Pulpit). 여기서 '졸지에'라고 전역된 말('피테옴')은 '눈을 깜빡이다'(wink)란 말('페타')에서 유래한 말로서, 상대방이 전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들이닥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메롬 전투'의  대승리는 1) 하나님의 도우심과, 2) 여호수아의 전술 전략,  그리고 3) 이스라엘 군대의 용기 있는 기습이 하나가 되어 빚어낸 혁혁한 전과였다.

  시돈은 두로의 북쪽으로 약 30km,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6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시돈은 베니게에서 가장 유명한 대도시 중의 하나였으며, 두로와 더불어 해상을 통한 무역도시로 유명했다. 이 성은 B .C. 2000년경 함의 손자인 '시돈'에 의해 건설된 성이었다. 이 성은 가나안 정복 후에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19:28), 아셀 지파가 이곳 거민을 완전히 정복치 못하여  섞여 살게 되었다(삿 1:31). 예루살렘 성전 건축시 솔로몬은 벌목을 위해 이곳 시돈 사람들을  고용했다(왕상 5:6).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시돈 출신의 이세벨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을 바알신의 숭배지로 만들기도 했다(왕상 16:31-33). 본문에서 시돈을 '큰 시돈'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베니게의 수도였던 시돈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Keil, Lias). 미스르봇 마임은 '더운 물'이란 뜻으로, 시돈에서 멀지 않은 두로와 악고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이다. 이름의 뜻을 보고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온천 지대' 또는 '염전 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오늘날의 위치는 '엘 나쿠라'(el Nakhura)로 추정되는데, 이 지역에는 많은 온천들이 널려 있다(Fay, Keil).

  미스바는 갈릴리 북부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북부 군사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들을 살라버렸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여호수아가 전쟁의 가장 큰 노획물인 말과 병거를 못쓰게 한 일은 신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3. 북부의 하솔과 산지 정복(10-15)

  "10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11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12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13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14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15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하솔은 당시 가나안의 군사,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당시 가나안 북부 동맹군의 주동이 될 수 있었다(1). 마리(Mari)왕국의 문서 보관소에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 하솔은 비옥한 반달 옥토 지대의 전초 지점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하솔이 중요시 되는 것은 그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팔레스틴 남서쪽 해안가를 통과하는 비아 마리스 대로는 므깃도에까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하나의 도로가 북쪽 해안선을 따라 악고와 두로에까지 이어지며, 또 다른 도로는 내륙으로 돌아 하솔로 이어지고, 계속 북쪽으로 나아가 '아벨 벳 마아가'(Abel-Beth -Maachach)와 이욘(Ijon)및 레바니스  베가(Lebanese Bega) 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하솔에서 이 남북 도로가 하나로 합쳐지며, 하솔 근처에 있는 훌레 호수 아래에는 요단 강을 건너 다메섹으로 가는 도로가 있었다.  B. C. 855년경 벤하닷 I세와 B. C.733년경 디글랏 빌레섬 III세는 모두 이 도로를 통해 팔레스틴을 침입했다(왕상 15:20; 왕하 15:29). 하솔은 가나안 북부 동맹군의 주동 성읍으로서, 메롬 물가 전투의 선봉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가장 먼저 하솔을 정복했다. 진멸한다('하람')는 말은 '분리하다', '바치다', '구별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기 위해 분리된 것, 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기로 바쳐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하솔에서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그는 하솔을 불로 태워버렸다.

  성서 고고학자 야딘(Y. Yadin) 팀에 의한 발굴 결과, 옛 하솔 유적지의 여러 지층에서 파괴되고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였다. 그중 지층 III의 도시가 13세기 이전의 것으로, 아마 여호수아에 의해 파괴되고 불살라진 도시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L. Wood,Survey of Israel's History).   그러나 여호수아는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불사르지 않았다. 당시 가나안 북부 대부분의 성읍들이 산 위에 세워졌었다(Keil). 여호수아는 산 위의 성읍들의 실용적 가치 때문에 점령 후  에 일부러 불사르지 않았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이 성읍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 사용했을 것이다(신  6:10). 여호수아는 가나안 족속의 호흡 있는 자는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전멸시켰다. 그러나 여리고 성을 제외하고 다른 성읍의 재물과 가축은 전리품으로 취할 수 있었다(8:2).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 인들과 언약하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며,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여호수아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었으며 여호수아는 이 명령을 받아 차질 없이 철저히 수행하였다. 여호수아는 비록 이스라엘 군대의 최고 지도자였지만, 자의대로 가나안 족속을 처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쟁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명(命)을 좇아 그대로 실행해야만 했고, 또 그대로 실행했던 것이다.

                                  * 적용 및 교훈 *

* 가나안 북부 거민은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정복 사역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들은 여리고 성과 같은 방법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장차 당하게 될 형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정복 기사의 요약(11:16-12:24)  (참고지도: 정복된 가나안 도시들")

 3-1.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11:16-23)

  
"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는 여러 날이라. 19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 바 되었으니, 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 하려 하심이었더라.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6-23)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기사를 요약해주고 있다. 16절에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의 지역이 소개되고 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를 차례로 모두 점령함으로써 가나안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는 '가나안 남부 지역'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고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는 '가나안 북부 지역'을 묘사하는 말이다. '세일'(Seir, '거칠고  험한 산지'란 뜻)은 에돔의 산악지대로서 사해 남쪽, 아라바 저지대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름의 뜻 그대로 험준한 지형의 세일 산지는 에돔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데, 본래는  호리 족속이 차지했던 곳이나, 후에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에게 정복당했다(신 2:22). '할락 산'(Mt. Halak, '민둥산', '매끄러운 산'이란 뜻)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지역으로, 브엘세바 남방 42km 지점에 있다. 오늘날의 "예벨 할락'(Jebel Halaq)과 동일한 산으로 추정된다. '레바논 골짜기'는 베니게 해안에서 가까운 내륙에 있는 산악 지대이며, '바알 갓'은 레바논 산과  헤르몬 산 사이에 있는 성읍으로,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이다. 이곳은 신약 시대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이다.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 여러 날이 흘렀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갈렙(Caleb)의 나이로 추정이 가능하다. 갈렙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탐지했을 때의 나이가 40세였고(14:7), 가데스 바네아에서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38년이 걸렸기 때문에, 그가 요단 강을 건넌 때는 78세였다. 그리고 전쟁이 다 끝나갈 무렵의 나이가 85세였으므로(14:10), 가나안 정복 전쟁 기간은 거의 7년이 걸린 셈이 된다.

  기브온 거민들은 이스라엘에게 진멸 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족속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는 것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거짓으로 이스라엘을 속여서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그들만이 유일하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다른 가나안 족속들은 모두 전멸을 당했다. 그러나 기브온 족속을 제외한 다른 가나안 사람들은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이스라엘을 대적했다. 일찍이 (창 15:16)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 찰 때까지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의 애굽 노예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차고 그들의 마음이 강팍해져 있을 때였다. '강팍케 하다'는 말('하자크')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완고한 저항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은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강퍅함을 그대로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끝까지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결국 멸족하고 말았다. 여호수아는 남부와 중부, 그리고 북부에 있는 성들을 쳐서 그 성에 있던 아낙 사람을 전멸시켰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종결 부분에서 특별히 아낙 사람(14:12; 15:13; 민 13:22, 28, 33)이 언급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전에 모세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을 정탐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아낙 사람을 힘세고 무서운 거인으로 묘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을 하지 않기로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민 13:33).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던 아낙 자손을 하나님께서 전멸시켜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옛날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아낙 사람에 대해 겁을 먹은 것이 믿음이 부족해서였음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아납은 헤브론 남서쪽 약 17km 지점에 있는 유다 산지의 성읍으로 드빌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시 이곳에 거주하던 아낙 거민을 몰아내었다. 아낙 사람은 가나안 족속보다 훨씬 전에 그 땅에 거주했던 원주민들로,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여러 산지에 흩어져 살던 족속이다. 이 족속은 키가 크고 강했기 때문에, 그 소문이 이스라엘에게서 속담처럼 되어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신 9:2)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민 13:22; 신 1:28; 9:2). 가사는 가나안 남서쪽 지중 해안에 위치한 블레셋의 성읍(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글론, 가드)중 하나였다. 가드는 블레셋의 성읍 중에 하나로 최북단에 있던 성읍이다. '가드'(Gath)는 다윗과 싸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고향이며(삼상 17:4), 동시에 다윗의 충복이었던 잇대의 고향이다(삼하 15:18-22).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이곳에 두 번이나 피신하였으며(삼상 21:10;  27:2-7), 한때 언약궤가 이 곳에 머물기도 했다(삼상 5:8,9; 삼하 6:11). 후일 이곳은 다윗에 의해 정복당했고(삼하 21:20),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다(대하  11:8).  아스돗은 '진'(陣)이란 뜻을 가진 성읍으로서 가사 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교통의 관문이었다. 이곳은 '다곤' 우상 숭배의 본산지로서, 가나안 땅 분배시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정복하지 못했다(수 15:47). 후일 웃시야 왕이 이 곳을 정복하여 견고히 요새화 했다(대하 26:1). 이곳은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란 명칭으로 불리웠다(행 8:40).

  위에 언급된 3성읍 곧 가사, 가드, 아스돗에 아낙 자손이 약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전지역을 골고루 완전히 정복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사실 정복 전쟁은 내륙의 평지와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 해변 지역은 여호수아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나안의 주요 거점들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이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상은 가나안을 이스라엘이 점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지역들은 그 지역을 분배받은 각 지파의 점령 대상지로 남겨졌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함으로써, 더 이상  정복 전쟁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온 땅을 취했다'는 말이 가나안 전 지역을 전부 정복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단지 가나안 거민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가나안에 대한 지배권은 이스라엘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완전한 가나안 정복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되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많은 지엽적인 전쟁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분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 적용 및 교훈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셨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일은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옛적에 10명의 정탐꾼은 아낙 사람을 쫓을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능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을 통해서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정복 사업을 성취하신 것이다.

 
 
3-2. 모세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정복한 31왕의 명단)(12:1-24)

  모세와 여호수아의 정복 사역이 같이 언급된 것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사역이 서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기록은 요단 동편과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민족이 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지역(1-6)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 강까지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4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5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1-6절)은 요단 동편 땅에서 과거에 모세가 전멸 시켰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은 요단 동편 땅을 가리키는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가 점령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한 땅을 말한다(1:12-15). '아르논'('급류', '물살이 빠른 시내'란 뜻)은 지금은 바닥이 말라붙은 골짜기이지만, 구약 시대에는 북부 아라비아의 산지에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약 32km정도 되는 긴 강이었다. 가나안 땅 분배 후에 아르논은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된 영토의 남쪽 경계선이 되었다(신 3:12). '헤르몬 산'(Mt. Hermon)은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스닐'(신 3:9; 대상 5:23; 겔 25:5)이라고 불렸으며, 아모리 왕국의 북쪽 경계선(신 3:8; 4:48)을 이루었다. 이 산은 여호수아에게 의해 정복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수 11:17; 12:1;  13:5)으로 묘사되었고, 가나안 땅 분배 후에는 므낫세 영토의 북방 한계선이 되었다(신 3:8 참조). '동방 온 아라바'는 요단 동편의 남쪽 한계선인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한계선인 헤르몬까지 이르는 요단 계곡의 동편 지역을 가리킨다. 여기서 '아라바'(Arabah)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 계곡을 말한다.

  '헤스본'(Heshbon)은 요단 강 동쪽 약 29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다. (민수기 21:25-30)에 따르면, 헤스본은 본래 모압 땅이었으나, 아모리 왕 시혼이 이 성읍을 모압인에게 빼앗아 수도로 삼았다. 그 이후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던 도중에 시혼에게서 이 성읍을 탈취했다. 탈취 후 땅을 분배할 때 헤스본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 내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계선 상에 위치해 있었다(민 32:37). 그런데 갓 자손은 가나안 정복 후에 이 성읍을 재건하였다(민 32:37). 그후 갓 지파가 이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후 헤스본은 갓의 성읍으로 있다가,  후일 므라리  자손의 레위인들에게  할당되었다(21:39; 대상 6:81; 민 21:26). '아모리  사람'은 족장 시대 이전부터 요단 강 동,. 서편에 정착해 살던 가나안 원주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이 작정된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다(3:10; 창 15:16,  19-21; 신 7:1).  그리고 '시혼은 모세 당시 아모리 사람들의 왕(민 21:21-30)으로, 모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가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다가 참패를 당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시혼을 격파한 후 이스라엘은 그의 땅을 최초의 정복지로 선포했다. 이러한 시혼의 수도는  헤스본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아르논이었고, 북쪽 경계는 얍복이었다(민 21:24). 그리고 시혼의 영토  내에는 많은 촌락과 성읍이 있었다(민 21:25). 결국 시혼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땅이 되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자손 일부가 정착한 요단 건너편(Trans Jordan)의 일부가 되었다.

  아로엘은 사해 동쪽 약 22km 지점인 아르논 강의 북쪽 강 언덕에 위치한 요단 강 동편의 고대 도시이다. 오늘날  아라이르(Arair)로 추정되는 '아로엘'(Aroer)은 당시 아모리 오아국의 남쪽  한계 지점을 가리켰으며,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었다(12:2; 신  2:36; 3:12; 4:18).  그후 아로엘은 르우벤  지파에게 배당되었는데(13:7, 16; 삿 11:26). 그전에 정복된  다른 성읍들과 더불어 갓의 아들들에 의해 수축되었다. 암몬 자손은 (창 19:38)에 따르면, 롯의 두 딸 가운데 작은딸이 그 아비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벤  암미'(Ben-Ammi)라고 지었으며, 후일 이 아들이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의 트랜스 요단(요단 동편) 땅에  있었으나, 이스라엘은 친척 족속이므로 이들과는 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신 2:19)을 좇아 멀리 돌아서 진행했다. 얍복 강은 요단 동편에 위치한  약 96km길이의 이 강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곳으로 유명하다(창 32:24). 강 북쪽의 만곡선 부분은 당시 암몬 자손의 서쪽 경계를 형성하였으며(민 21:24), 그 유역 서쪽으로 멀리는 갓 지파가 정착했다. 그리고 강의 서쪽 부분은 길르앗 지역을 둘로 구분시키는 천연적인 정치적 경계가 되었고(신 3:12, 16), 한편으로는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인  시혼 왕국과 옥 왕국을 구분지어 주는 강이기도 했다.

  긴네롯 바다는 '갈릴리' 바다의 별칭으로 '긴네렛'  바다(신 3:17)로도 불리운다. 대략 남북이  22km, 동서가 14km 정도 되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이다. 염해는 '사해(死海)'라고도 불리우며 본래는 싯딤 골짜기였다(창 14:3). 이 바다는 '아라바 해', '동해'라고도 불리운다(신 3:17)  벧여시못 은 모압  평지에 있는 헤스본 지역 성읍들 중의 하나로서, 나중에 르우벤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된 곳이다.(13:20). 민 33:49에 따르면,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최후로 진을 쳤던 곳으로 나타나 있다.  '비스가'(Pisgah)란 명칭은 '비스가 산꼭대기'(민 21:20; 23:14; 신 3:27; 34:1), '비스가 산록'(신 3:17;  4:49) 등의 결합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산록'(山麓)이란 산의 구릉(丘陵)이 시작되는  산기슭을 뜻한다. 그리고 비스가 산정(山頂)에서는 모압 평지가 내려다 보이며, 서쪽으로는 사해도 보인다(신 3:17; 4:49). 후에 비스가 산록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중 일부가 되었다(13:15-20). 한편 하나님께 서는 말년의 모세에게 이 비스가 산에 올라 멀리 언약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라고 하셨다(신 3:27). 르바는 '크다', '강하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곧 거인 족속인 '르바임 족속'을 가리킨다(창 14:5; 15:20; 신  3:11; 삼하 21:16, 18). 아스다롯은 바산  왕 옥(Og)의 고향으로서(신 1:4; 3:10),  후에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되었다. 이 지방은 이스라엘  북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는 '가르나임'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신 1:4). 에드레이는 바산 왕 옥이 거주한 큰 성읍으로(신 1:4; 3:10), 동쪽 사막 근처 바산의 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야르묵 강의 한 남쪽  분기(分岐)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요단 동쪽 정벌시, 모세는  에드레이 외곽에서 싸운 전투에서 옥을 쳐 부수고 그 성읍을 멸하였다(민  21:33-35; 신 3:1-6). 살르가는 바산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땅으로(신 3:19), 처음 므낫세 지파에게 배당되었지만, 후에 갓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대상 5:11).

  그술 지방은 북쪽 요단 강의 동부 지방으로서 마아가 족속의 땅과 함께 므낫세의 아들 야일에게 배당된 땅의 일부이다(신 3:14). 이 그술의 경계 지역은 본절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이곳까지 취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술 족속(the Geshurites)이란 말은 13:11,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못한 족속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다윗과 그술왕  달매의 딸인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삼하  3:3; 대상 3:2). '마아가'는 헤르몬 산의 동 남쪽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로, 남쪽으로는 '그술'과 접경을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요단 강을 건너 '아벨 벳 마아가'에 이르렀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이 땅을 정복했으며(신 3:14), 그  공로로 이 땅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신 3:14 주석 참조.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산지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또 넓게는 요단 강 동편의 전 지역을 가리키나(22:9 이하), 좁게는 요단 강 동편의 중앙부 지역만을 가리키기도 한다(왕하 10:33). 모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죽이고, 그들이 다스리던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그 분배하게 된 관정과 분배 지역은 (민 32장)에 잘 나타나 있다.


 
3-3.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서 정복한 지역(7-23)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 일 왕이었더라."

  (7-24)에는 여호수아가 요단 강 서쪽에서 정복한 31명의 왕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는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정복한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킨다. 산지와 평지와 아라비아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은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을 대략 지형적 특성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10:40, 11:16)에서 언급하였다. 이곳에는 '광야'란 말이 더  첨가되어 있는데, 여기서 '광야'는 남부의 '네게브'(Negeb)라기 보다는 아라바 지역과 네게브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유대 사막' 지역을 가리킨다. 여리고.....벧엘.....아이는 7:2을, 예루살렘은 (10:1)을, 그리고 헤브론...야르뭇은 10:3을 참조하라. 그리고 라기스...에글론은 (10:3)을, 게셀과 드빌은 (10:33, 10:38)을 참조하라. '게델'(Geder)은 이곳에만 언급된 지명이지만, 구약 성경에서는 '그돌'(15:58), '그데라'(15:36), '그데롯'(15:41)등 유사한 지명들로 등장한다. 한편 이곳 주민이었던 그데라 사람  요사밧은 대상 12:4에 시글락(Ziglak)에서 다윗에게 모여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세펠라(Shephelah)에 있는 유대  산지의 서쪽 비탈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 학자들은 오늘날 이곳을 헤브론 산지의 '예둘'(Jedur)로 추정한다(Conder, Van de Velde, Keil, Robinson).

  호르마는 에돔변경, 유대 남쪽 험준한 지방의 마을로 '스밧'(삿 1:17)으로도 불리운다. 본절에는 게델과  아랏 사이에 있는 것으로,  15:30에는 그실과 시글락 사이에, 그리고  19:4에는 브둘과  시글락 사이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호르마(Hormah)는 민 14:45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가나안의 가데스를 성급하게 침략했을 때, 아말렉군과 가나안 군대가 그들을 물리치고  호르마까지 추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일 여호수아는 이 성읍을 점령하여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하였다(19:4; 대상 4:30; 삼상 30:30). 오늘날 '아인 가데스' 북쪽 약  39km 지점에 위치한 '세바이타'(Sebeita)로 추정된다(Keil). 아랏 은 헤브론 남방 약 30km 지점에 있는 네게브 지방 동북부의 도시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 성읍은 4번 언급되어있는데(12:14; 민 21:1; 33:40; 삿 1:16), 완만하고 넓은 경사지가 큰 평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위치로 중요한 성읍이다.

  립나에 대하서는 (10:29)을 참조하라. 아둘람은 북쪽 세펠라(Shephelah)에서 유대  산지로 들어 오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가나안 성읍 중 하나로, 창 38:1, 2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는데, 곧 유다의 친구 히라의 고향으로 나타난다. 한편 아둘람(Adulam)은 성경에서 항상 동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다윗이 사울에게 추격당할 때 이곳에 피한 적이 있다(삼상 22:1). 이곳은 후일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고(대하 11:7), 또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자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느 11:30). 카일(Keil)은 반 데 벨드와 로빈슨의 견해를 따라 이곳을 오늘날의 '데일 듀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악게다는 (10:10)을 참조하라. 답부아는 유다지파의 성읍인지(15:34, 53), 므낫세 지파의 성읍인지(16:8; 17:7, 8)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유다 평지에 속한 유다 지파의 답부아(Tappuach)일 가능성이 많다(Keil). 헤벨은 아벡과 함께 북부의 샤론 평야에 위치한 도시로, 솔로몬의 12행정지구 중에 세 번째였다(왕상 4:10). 아벡은 샤론 평원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욥바의 정북동쪽인 야르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텔  라셀 아인'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아벡'은 비아 마리스로 가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자주 언급되었다. 또한 이곳은  언약궤를 압류하고 실로를 파멸시킨 블레셋을 원정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삼상 4:1). 랏사론은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이곳을 디베랴(갈릴리) 호수 근처의  '사루네'와 동일시하기도 한다(Knobel).

  마돈...하솔...시므론 므론...악삽은 (11:1)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시므론 므론'은 '시므론'과 동일한 곳이다. 다아낙은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가 이곳에 있다. 삼림이 우거진 북쪽 에브라임 산지 계곡은 매복하기에는 최적지이다. 가나안 점령  후 다아낙(Taanach)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으나(21:25), 므낫세 자손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는 데  실패하였고 나중에 가서야 그들을 종으로 삼았다(사사 1:27, 28). 그리고 왕국 시대에는 다아낙이 레위인들의 여러 성읍 중 하나로 묘사되었고(대상 6장), 솔로몬 치세 때에는 행정 구역상 주요한 이 곳은 므깃도 동남쪽 약 6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델 타아낙'(Tell Taanak)으로 추정된다. 므깃도는 샤론 평야와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에 있는 비아 마리스(Via Maris)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는 요충지이다. 따라서 이 곳은 애굽과 다메섹을 이어주는 주요 대상로였다. 가나안 정복  후 므깃도(Megiddo)는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지만, 므낫세 자손들은 므깃도나 이스르엘 평야 주변의 다른 요새 성읍들을 정복하지 못했다(17:11; 삿 1:27). 그러나 후일 솔로몬  치세 시에 므깃도와 하솔 및 게셀은 모두 정복되어 솔로몬 왕의 군사 요새로 사용되었으며(왕상 9:15), 나중에 므깃도는 솔로몬의 다섯번째 행정지구에 편입되었다(왕상 4:12). 후일 이곳은 유대 왕 아하 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으로(왕하 9:27), 그리고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 느고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곳으로(왕하 23:29,  30; 대하 35:20, 25) 유명하다. 특히 최후의 '아마겟돈'('므깃도의 언덕'이란  뜻) 전쟁이 일어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기도 한다(계 16:14, 16). 한편  로빈슨(Robinson)은 이곳을 오늘날의 '레윤'(Lejjun)으로 추정한다.

  게데스는 '납달리  산지의 게데스'(19:35-38;20:7)라고도 불리우는데, 요단강 서편에 위치한 세 도피성 중에 하나이다(19:37;20:7;21:32). 또한 사사 바락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삿 4:6). 후일  이곳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정복당했다(왕하 15:29). 현재는 훌레(Huleh)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가데스'(Tell Kades)로 알려져 있다. 욕느암은 갈멜  산 근처, 스불론 지파의 서남쪽  국경에 있던 한 성읍(19:11)으로,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다시 분배되었다(21:34). 욕느암(Jokneam)은 오늘날의 '텔 쿠이문'(Tell Quimun)과  동일시 되는데, 이곳은 므깃도  북서쪽 약 11km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다. 돌은 (11:2)을 참조하라. '길갈'(Gilgal)은 성경에서 5개와 각기 다른 곳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의 길갈은 팔레스틴 북방에  있는 갈릴리 지방의 길갈을 가리킨다. 이 길갈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명단에 나타나는 왕들이 주로 북쪽 지역의 왕들인 점으로 미루어, 이 길갈  역시 사마리아 북쪽 지중해와 갈릴리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곳은  오늘날 북부 요단 평야에 있는 '일율리예'(Jiljulieh)로 보기도  한다(Van de Velde, Conder, Robinson). 그리고 '고임'은 히브리어로 '민족들', '족속들'을 뜻하는 말로, '길갈의 고임 왕'이란 길갈 족속들의 왕을 가리킨다. 디르사는 동쪽 아담의 시내쪽에서  요단 계곡으로 들어가는 와디 파라(Wadi Farah)의 내리막길에 위치해 있다. 이 주위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아 6:4),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7:2, 3).  '디르사'(Tirzah)는 오므리가 사마리아 성을 건축할 때까지 여로보암 1세로부터 바아사와 엘라와  시므리 때 까지 약 40년간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다(왕상 14:17; 16:8,  9). 이곳의 오늘날의 위치는 세겜에서 북으로 약 2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탈루자'(Talluza)로 추정된다(Robinson, Knobel, Van de Velde).

                          <참고: "텔 엘 아마르나의 편지">

  우연히 아멘호텝 4세의 옛 수도였던 아케타톤(Akhetaton, 즉 텔-엘-아마르나)에서 고대의 외교 서신 문서 한 묶음이 발견됨. 이것은 점토 비문에 바벨론 설형문자로 쓰여졌는데, 이 문자는 애굽 왕 제 18왕조 때에 국제적인 서신 왕래에 사용되던 언어였다. 이 서신에는 예루살렘 왕 아브디 헤파가 가나안 침공 자들이 그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점령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신에는 "하비루"(Habiru)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가나안의 어린 군주가 모든 상황을 기록하여 시돈에 보내는 서신에서도 이라한 언급이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이 그 당시 히브리인이 가나안을 침공한 것을 기록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이 서신의 내용과 그 당시의 여러 가지 다른 정황들을 살펴볼 때에, 이 서신에 나타나는 기록과 여호수아에 나타나는 정복 기록 사이에는 서로 연관시킬 만한 충분한 유사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적용 및 교훈 *

1. 여호수아의 저자는 이 곳에서 모세와 여호수아가 진멸한 왕들의 이름이 연대순, 정복 순으로 기록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가나안의 왕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2. 이 곳에 기록된 수많은 왕들은 한결 같이 개인, 또는 연합의 형태로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거부하고 대적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정복 요약의 기록은 하나님의 주권의 승리를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의 찬송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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