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0장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ㅇ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 - 모세가 이미 28, 29장에서 언급한 축복과 저
주,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임할 복과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를 가리킨다. 그러
나 여기서는 '복'이라는 말을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본문 이해에 자연스럽다.
ㅇ기억나거든(슈브) - 본 뜻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다'(3:20), '원상태
로 회복되다'(삭 15:19)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마음에 적용될 경우에는 '뉘우치다'(렘
8:6)란 의미를 지닌다. 2절의 '돌아와'의 원어가 바로 이 '슈브'이다. 그리고 이 '슈
브'는 왕상 8:47에서 '스스로 깨닫고' 및 '돌이켜'란 말로도 번역되었다.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ㅇ여호와께로 돌아와...순종하면 - 참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는
구절이다. 즉 회개란 단순히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란 (1) 먼저 자기의 잘못을 겸손히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과감히 그 죄악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
는 것이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올바른 삶
을 살아가는 것이다(골 3:1-10).
ㅇ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6:9 주석 참조.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ㅇ마음을 돌이키시고 -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섭리나 뜻의 변개(變改)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주를 거두시고 인간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의 사역을 의인화하여 묘사한 말일 뿐이다.
ㅇ흩으신...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 선민(選民)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다시 '모아진다'는 것은 선민의
자격이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 이를 설명하자면 '흩는다'는 것
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귀한 보배, 26:18)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반면
'모은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knobel).
4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찌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ㅇ하늘가에 있을지라도...이끄실 것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아주 먼
곳에 끌려가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신의 소유로 회
복시키겠다는 뜻이다(Lange). 회개한 자에게 임할 이 회복의 메시지는 훗날 선지자들
이 포로 생활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희망을 일깨워 주는데
자주 사용하였다(렘 32:37-44;겔 34:13;36:24). 그리고 후일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
크게 기여했던 느헤미야 역시 본 메시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한 바 있다
(느 1:8, 9).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너로 다시 그것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ㅇ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 이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3차 걸쳐 실제로
성취되었다. 즉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후 그
곳으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망하자 바사 왕 고레스(Cyrus)의 칙
령에 의하여 3차에 걸쳐 고토(故土)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였다. 그중 1차 귀환은
B.C.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스 2:1-70). 그리고 2차 귀환은
B.C.458년, 에스라의 인솔하에(스 7:1-10), 그리고 마지막 3차 귀환은 B.C.444년, 느
헤미야의 인솔하에(느 2:9-11) 각기 이루어졌다.
ㅇ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 물론 본절의 1차적 의미는 '육적 이스
라엘의 번창'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
인들이 모두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경우, 가나안 땅이 그들 모두를 넉넉히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Keil), 본절은 반드시 문자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
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가 엄
청나게 급증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서신 11장에서 논한 바, 꺾이운 바된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먼저 이방의 돌감람나무가 접붙임 바된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유대인의 진정한 회복이 있게 되리라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ㅇ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할례'(割禮)는 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
를 나타내는 상징적 징표였다(창 17:11).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모든 죄악된 것을 제
거해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옛 언
약하에서 이루어졌던 이러한 '육신의 할례'는 어디까지나 새 언약하에서 이루어질 '마
음의 할례'를 예표했던 그림자였다(렘 4:4;롬 2:28, 29). 그렇다면 결국 본절은 하나
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고 새 마음을 심어 주
사(겔 36:26, 27). 그들을 다시금 새 언약하의 새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은총의 선포
인 셈이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종 완성된다
(히 8:6-13).
ㅇ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 6:5 주석 참조.
ㅇ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하이'는 '생
명'을 뜻하는 일반적 용어인 '네페쉬'(12:23;13:6)와는 달리 '신선한 생
명', '힘있는 생명'이라는 뉘앙스(nuance)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15, 19, 20
절;28:66;32:47). 따라서 본절에서 말하는 '생명'을 단순한 육적인 목숨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구약 시대 당시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참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었다(시 27:1). 그리고 신약 성경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
다(요 3:16).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대적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ㅇ네 대적...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핍박했던
모든 대적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인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이스라엘보다 의로왔기 때문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따
라서 그들 역시 자신의 죄값에 대하여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
다. 본절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시 62:12;렘 17:10).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ㅇ너는 돌아와...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은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계속적인 저주를 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지침이다. 즉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절 주석을 참조하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10 (9절에 포함되어 있음)
ㅇ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 - 이것들은 결단코 인간을 얽어매는 속박과 사슬
의 법조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은혜 언약의 일환으로 율법을 자기 백
성들에게 주셨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의 속성을 깨닫게 하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생명의 등불'인 것이다(시 119:105;잠 6:23).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은 인
간들이 그것을 잘 지켜 행할 때, 복에 복을 더하시기 위하여 주신 '축복의 방편'인 것
이다(28:1-14;출 19:5, 6).
ㅇ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복을 주시리라 - 비록 교만과 허영으로 집을 떠났던 탕
자라 할지라도, 다시금 돌아오면 각양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
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눅 15:22-24). 한편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풍성한 축복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28:1-6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 주석을 참조
하라.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ㅇ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 '어려운'에 해당하는 원어 '팔라'
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삼하13:2) '기이하거나', '놀라운 일'(잠
30:18)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율법의 평이성(平易性)', 즉 '율법은 너무 어려워
서 인간이 그 도(道)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Keil, Schultz, Knobel).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
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밝히 계시(啓示)되어 있는 것이다(29:29). 그러므
로 누구라도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다(요일 5:3). 물론 이는 상대적이긴 하다. 왜
냐하면 심령이 완악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
하기 때문이다(마 13: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와 같은 가난한 심령이 필요하다.
ㅇ먼 것도 아니라 - '먼'에 해당하는 '라호크'는 거리적으로 먼 것
(13:7)과 시간적으로 오랜 것(왕하 19:25), 그리고 친밀한 정도에 있어서 먼 것(시
22:1)을 다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 모든 면에서 '율법의 인접성(隣接性)'을 의미
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도
아니라
ㅇ하늘에 있는 것...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 율법은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사 45:19),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의 현실 삶에 구체
적이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딤후 3:16, 17). 실제로 우리는 하
나님의 말씀이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궁극
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요 1:14).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저기 저곳'(over there)에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곳'
(here)에 있다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을 지킬 수 없
다"든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접할 수 없어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라는 핑
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자신 곁에 있기 때문이다.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ㅇ네 입에 있으며 -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읽을 수 있으며 강론(講論)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뜻이다(Lange).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입에 담
아 두었더니 그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았다'(시 19:10)라고 고백까지 하였었다.
ㅇ네 마음에 있은즉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묵상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
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6)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ㅇ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라고 하였다.
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ㅇ보라(라) - '볼지어다'(be hold)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감탄사 '헨'
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 '주목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 이 두 가지 중에서 그들이 양자를 똑
똑히 주목하여 살펴 관찰한 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 말씀
을 하셨다.
ㅇ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예비해 놓으
신 길은 '생명 및 복(福)의 길'과 '사망 및 화(禍)의 길'이라고 하는 단 두 갈래 길
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서는 후일 예수께서도 '좁은 문'과 '넓
은 문'의 비유로써 우리들에게 명확히 교훈하셨다(마 7:13, 14). 그러므로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벗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더 늦기 전에 죄악의 길에서 돌이
켜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약 4:8).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ㅇ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보다 이같은 권고가 먼저
나옴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마
22:36-38).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연스런 외적(外
的) 표현이다(요일 5:3).
ㅇ그 모든 길로 행하며 -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 곧 그와 동행하는 삶
을 살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한 동행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나를 쳐서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의합(意合)치 아니하고서
는 둘이서 동행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암 3:3).
ㅇ명령과 규례와 법도 - 사실상 모두 동의어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다. 4:1;5:31 주석 참조.
ㅇ복 - 28:2 주석 참조.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ㅇ유혹을 받아서 -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어쩔 수 없이...하다'(be impelled
to) 또는 '이끌림을 받다'(be drawn away)로 번역하고 있다(KJV, NIV, Living Bible,
RSV).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주
위의 유혹에 대하여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실제로 그들은 바
람에 날리는 겨와 같으며(시 1:4), 또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모
든 일에 정함이 없다(약 1:6, 8).
ㅇ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는 사망과 저주에 이르
는 치명적 단계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6:15;출 20:5). 그러므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헛된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아니하신다(4:19;13:2-16;17:2-7;18:20-22).
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ㅇ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 '선언하다'에 해당하는 '나가드'는
본래 '정면에 두다'란 뜻이다.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주로 상대
방의 입장 혹은 다수의 주장에 대해 반대 견해를 담대히 피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시 따
르게 되는 사망과 저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ㅇ요단을 건너가서...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 요단 건너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사
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가 살 거룩한 언약의 땅이다. 따라서 그 땅에
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
로 만일 그 땅에서 그러한 자들이 생겨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 가나안(창 12:7)에서오래도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뿐
임을 보여 준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같은 가나안 땅은 하늘 가나안, 즉 천국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 역시 하나님의 새 언약대로 그
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 뿐이다(히 5:9).
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ㅇ천지를 불러서...증거를 삼노라 -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축복과 저주의 언
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모세가 천지(天地)를 증인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1) 지금 맺고 있는 언약이 마치 언제나 요지 부동한 천지처럼 확실
하고 불변하며 영구하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2) 또한 이 언약 체결이
전우주적인 관심사가 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란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아뭏
든 이처럼 하늘과 땅을 의인화한 표현은 구약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창 4:11;시 19:1;
사 1:2).
ㅇ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과 저주를 반길리 없다. 모두가
다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참 생명과 참 행복을 향유(享有)하
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27:1), 그리고
참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16:2)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는 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 생명의 도(道)를 따라 걷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ㅇ그에게 부종하라 - '부종(附從)하다'에 해당하는 '다바크'는 '굳게 연합
하다', '착 달라붙다', '밀접히 결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각별한 애정이나
우정을 나누는 사이를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자들이 형식적으
로 또는 엄격한 규정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10:20).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
분께 가까이하여 그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바로 이것이 모세 설교의 핵심으로서
곧 축복과 생명을 길이 누리는 참된 비결임을 보여 준다.
ㅇ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신 땅 -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
엘'이란 민족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들의 3대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
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거듭거듭 맹세로 약속하셨다(창 12:7;13:14, 15:7,
18;17:8;26:3;28:13). 따라서 이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
나안에서 길이 장수하며 복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길이 복받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세와 선지자
들을 통해 만가지로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호 8:12).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ㅇ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 - 모세가 이미 28, 29장에서 언급한 축복과 저
주,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임할 복과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를 가리킨다. 그러
나 여기서는 '복'이라는 말을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본문 이해에 자연스럽다.
ㅇ기억나거든(슈브) - 본 뜻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다'(3:20), '원상태
로 회복되다'(삭 15:19)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마음에 적용될 경우에는 '뉘우치다'(렘
8:6)란 의미를 지닌다. 2절의 '돌아와'의 원어가 바로 이 '슈브'이다. 그리고 이 '슈
브'는 왕상 8:47에서 '스스로 깨닫고' 및 '돌이켜'란 말로도 번역되었다.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ㅇ여호와께로 돌아와...순종하면 - 참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는
구절이다. 즉 회개란 단순히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란 (1) 먼저 자기의 잘못을 겸손히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과감히 그 죄악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
는 것이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올바른 삶
을 살아가는 것이다(골 3:1-10).
ㅇ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6:9 주석 참조.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ㅇ마음을 돌이키시고 -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섭리나 뜻의 변개(變改)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주를 거두시고 인간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의 사역을 의인화하여 묘사한 말일 뿐이다.
ㅇ흩으신...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 선민(選民)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다시 '모아진다'는 것은 선민의
자격이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 이를 설명하자면 '흩는다'는 것
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귀한 보배, 26:18)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반면
'모은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knobel).
4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찌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ㅇ하늘가에 있을지라도...이끄실 것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아주 먼
곳에 끌려가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신의 소유로 회
복시키겠다는 뜻이다(Lange). 회개한 자에게 임할 이 회복의 메시지는 훗날 선지자들
이 포로 생활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희망을 일깨워 주는데
자주 사용하였다(렘 32:37-44;겔 34:13;36:24). 그리고 후일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
크게 기여했던 느헤미야 역시 본 메시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한 바 있다
(느 1:8, 9).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너로 다시 그것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ㅇ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 이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3차 걸쳐 실제로
성취되었다. 즉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후 그
곳으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망하자 바사 왕 고레스(Cyrus)의 칙
령에 의하여 3차에 걸쳐 고토(故土)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였다. 그중 1차 귀환은
B.C.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스 2:1-70). 그리고 2차 귀환은
B.C.458년, 에스라의 인솔하에(스 7:1-10), 그리고 마지막 3차 귀환은 B.C.444년, 느
헤미야의 인솔하에(느 2:9-11) 각기 이루어졌다.
ㅇ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 물론 본절의 1차적 의미는 '육적 이스
라엘의 번창'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
인들이 모두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경우, 가나안 땅이 그들 모두를 넉넉히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Keil), 본절은 반드시 문자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
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가 엄
청나게 급증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서신 11장에서 논한 바, 꺾이운 바된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먼저 이방의 돌감람나무가 접붙임 바된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유대인의 진정한 회복이 있게 되리라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ㅇ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할례'(割禮)는 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
를 나타내는 상징적 징표였다(창 17:11).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모든 죄악된 것을 제
거해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옛 언
약하에서 이루어졌던 이러한 '육신의 할례'는 어디까지나 새 언약하에서 이루어질 '마
음의 할례'를 예표했던 그림자였다(렘 4:4;롬 2:28, 29). 그렇다면 결국 본절은 하나
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고 새 마음을 심어 주
사(겔 36:26, 27). 그들을 다시금 새 언약하의 새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은총의 선포
인 셈이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종 완성된다
(히 8:6-13).
ㅇ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 6:5 주석 참조.
ㅇ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하이'는 '생
명'을 뜻하는 일반적 용어인 '네페쉬'(12:23;13:6)와는 달리 '신선한 생
명', '힘있는 생명'이라는 뉘앙스(nuance)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15, 19, 20
절;28:66;32:47). 따라서 본절에서 말하는 '생명'을 단순한 육적인 목숨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구약 시대 당시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참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었다(시 27:1). 그리고 신약 성경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
다(요 3:16).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대적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ㅇ네 대적...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핍박했던
모든 대적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인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이스라엘보다 의로왔기 때문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따
라서 그들 역시 자신의 죄값에 대하여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
다. 본절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시 62:12;렘 17:10).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ㅇ너는 돌아와...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은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계속적인 저주를 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지침이다. 즉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절 주석을 참조하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10 (9절에 포함되어 있음)
ㅇ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 - 이것들은 결단코 인간을 얽어매는 속박과 사슬
의 법조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은혜 언약의 일환으로 율법을 자기 백
성들에게 주셨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의 속성을 깨닫게 하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생명의 등불'인 것이다(시 119:105;잠 6:23).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은 인
간들이 그것을 잘 지켜 행할 때, 복에 복을 더하시기 위하여 주신 '축복의 방편'인 것
이다(28:1-14;출 19:5, 6).
ㅇ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복을 주시리라 - 비록 교만과 허영으로 집을 떠났던 탕
자라 할지라도, 다시금 돌아오면 각양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
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눅 15:22-24). 한편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풍성한 축복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28:1-6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 주석을 참조
하라.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ㅇ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 '어려운'에 해당하는 원어 '팔라'
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삼하13:2) '기이하거나', '놀라운 일'(잠
30:18)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율법의 평이성(平易性)', 즉 '율법은 너무 어려워
서 인간이 그 도(道)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Keil, Schultz, Knobel).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
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밝히 계시(啓示)되어 있는 것이다(29:29). 그러므
로 누구라도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다(요일 5:3). 물론 이는 상대적이긴 하다. 왜
냐하면 심령이 완악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
하기 때문이다(마 13: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와 같은 가난한 심령이 필요하다.
ㅇ먼 것도 아니라 - '먼'에 해당하는 '라호크'는 거리적으로 먼 것
(13:7)과 시간적으로 오랜 것(왕하 19:25), 그리고 친밀한 정도에 있어서 먼 것(시
22:1)을 다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 모든 면에서 '율법의 인접성(隣接性)'을 의미
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도
아니라
ㅇ하늘에 있는 것...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 율법은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사 45:19),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의 현실 삶에 구체
적이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딤후 3:16, 17). 실제로 우리는 하
나님의 말씀이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궁극
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요 1:14).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저기 저곳'(over there)에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곳'
(here)에 있다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을 지킬 수 없
다"든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접할 수 없어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라는 핑
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자신 곁에 있기 때문이다.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ㅇ네 입에 있으며 -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읽을 수 있으며 강론(講論)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뜻이다(Lange).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입에 담
아 두었더니 그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았다'(시 19:10)라고 고백까지 하였었다.
ㅇ네 마음에 있은즉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묵상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
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6)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ㅇ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라고 하였다.
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ㅇ보라(라) - '볼지어다'(be hold)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감탄사 '헨'
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 '주목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 이 두 가지 중에서 그들이 양자를 똑
똑히 주목하여 살펴 관찰한 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 말씀
을 하셨다.
ㅇ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예비해 놓으
신 길은 '생명 및 복(福)의 길'과 '사망 및 화(禍)의 길'이라고 하는 단 두 갈래 길
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서는 후일 예수께서도 '좁은 문'과 '넓
은 문'의 비유로써 우리들에게 명확히 교훈하셨다(마 7:13, 14). 그러므로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벗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더 늦기 전에 죄악의 길에서 돌이
켜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약 4:8).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ㅇ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보다 이같은 권고가 먼저
나옴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마
22:36-38).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연스런 외적(外
的) 표현이다(요일 5:3).
ㅇ그 모든 길로 행하며 -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 곧 그와 동행하는 삶
을 살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한 동행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나를 쳐서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의합(意合)치 아니하고서
는 둘이서 동행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암 3:3).
ㅇ명령과 규례와 법도 - 사실상 모두 동의어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다. 4:1;5:31 주석 참조.
ㅇ복 - 28:2 주석 참조.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ㅇ유혹을 받아서 -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어쩔 수 없이...하다'(be impelled
to) 또는 '이끌림을 받다'(be drawn away)로 번역하고 있다(KJV, NIV, Living Bible,
RSV).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주
위의 유혹에 대하여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실제로 그들은 바
람에 날리는 겨와 같으며(시 1:4), 또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모
든 일에 정함이 없다(약 1:6, 8).
ㅇ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는 사망과 저주에 이르
는 치명적 단계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6:15;출 20:5). 그러므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헛된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아니하신다(4:19;13:2-16;17:2-7;18:20-22).
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ㅇ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 '선언하다'에 해당하는 '나가드'는
본래 '정면에 두다'란 뜻이다.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주로 상대
방의 입장 혹은 다수의 주장에 대해 반대 견해를 담대히 피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시 따
르게 되는 사망과 저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ㅇ요단을 건너가서...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 요단 건너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사
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가 살 거룩한 언약의 땅이다. 따라서 그 땅에
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
로 만일 그 땅에서 그러한 자들이 생겨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 가나안(창 12:7)에서오래도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뿐
임을 보여 준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같은 가나안 땅은 하늘 가나안, 즉 천국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 역시 하나님의 새 언약대로 그
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 뿐이다(히 5:9).
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ㅇ천지를 불러서...증거를 삼노라 -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축복과 저주의 언
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모세가 천지(天地)를 증인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1) 지금 맺고 있는 언약이 마치 언제나 요지 부동한 천지처럼 확실
하고 불변하며 영구하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2) 또한 이 언약 체결이
전우주적인 관심사가 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란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아뭏
든 이처럼 하늘과 땅을 의인화한 표현은 구약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창 4:11;시 19:1;
사 1:2).
ㅇ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과 저주를 반길리 없다. 모두가
다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참 생명과 참 행복을 향유(享有)하
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27:1), 그리고
참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16:2)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는 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 생명의 도(道)를 따라 걷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ㅇ그에게 부종하라 - '부종(附從)하다'에 해당하는 '다바크'는 '굳게 연합
하다', '착 달라붙다', '밀접히 결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각별한 애정이나
우정을 나누는 사이를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자들이 형식적으
로 또는 엄격한 규정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10:20).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
분께 가까이하여 그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바로 이것이 모세 설교의 핵심으로서
곧 축복과 생명을 길이 누리는 참된 비결임을 보여 준다.
ㅇ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신 땅 -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
엘'이란 민족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들의 3대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
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거듭거듭 맹세로 약속하셨다(창 12:7;13:14, 15:7,
18;17:8;26:3;28:13). 따라서 이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
나안에서 길이 장수하며 복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길이 복받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세와 선지자
들을 통해 만가지로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호 8:12).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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