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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히브리서

[스크랩] 히브리서 (10 : 1~39)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15
히브리서 10장

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ㅇ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8:3-5, 23-26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ㅇ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 저자는 본문에서 `율
법'과 '장차오는 좋은 일'의 대조를 통해 율법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율법'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제사 제도를 포함한 모든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Morris). 저자는 본절에서 율법을 두가지로 정의한다. (1) 그림자. '그림자'에 해당
하는 헬라어 '스키안'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유래하는 '비실제적
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의 종말론
적 특성을 반영한다. 율법은 미래의 실체를 증언하는 과거의 증거이다(Williamson,
Lane). (2)참 형상이 아님. '참형상'의 헬라어 '에이코나 톤 프라그마톤'
은 문자적으로 `그러한 실체들의 형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슷하거나
닮은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실체를 완전히 구현한 화신을 가리킨다(Bruce). 율법은 앞
서 언급한 것처럼 그림자에 불과하며 초월적인 실체 자체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한편
율법의 대조 개념인 '장차 오는 좋은 일'은 `톤 프라그마톤'
('그러한 실체들')과 동일한 의미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새 시대의 축복
을 가리킨다(Peterson).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서
(9:11)이루신 구속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Michel,
Cody).곧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의미하며 동시에 불
완전한 옛언약이 성취할 수 없는 완전함을 뜻한다(5:9, Bruce, Hewitt).
ㅇ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
니라 - 본문은 참 형상의 그림자인 율법의 한계에 대한 진술이다. `늘'에 해당하는 헬
라어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의 어순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해마다'를 수식한다(NIV). (2)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를
수식한다(NEB).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의
어순도 '에이스토 디에네케스'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를 수식하고 있으며 본문이
옛 언약인 율법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Morris, Montefiore). 이와 같
이 옛 언약인 율법은 해마다 속죄일에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재사를 통해 하나님
께 나아가게 하였지만 그 효력은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것으로 죄를 제거하는 데에 아
무런 효력이 없다(Peterson).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ㅇ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
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본절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논
증이다. 본절의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이데신 하마르티온'
은 문자적으로 '양심의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율법이 정결케 할 수 없었
던 내적인 죄를 가리킨다. 율법에 의해서 행해진 희생 제사만으로는 외적인 죄만을 정
결케 할 뿐 내적인 죄인 양심의 죄는 단번에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없었다(9:9). '정결
케 되어'의 헬라어 `케카다리스메누스'는
완료 분사로서 최종적인 정결을 성취할 수 없었다. 만약 율법이 완전하여서 온전히 정
결케 할 수 있었다면 매년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
다. 매년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나타내며 한계성
을 시사한다.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ㅇ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대제사장이 속죄일
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음
을 시사한다(Lane). 백성들은 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죄를 인
식하게 되었으며(민 5:11-15)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나 징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저자는
옛 언약하에서의 제사의 역할이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새 언약에서 약
속을(8:12) 대조시켜서 반복적인 제사와 그리스도를 통해서 단번에 드린 제사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있다(Bruce). 한편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나니'의 헬라어 '아남네
시스'는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 당신을
'기념하라'하실 때에도 사용되었다(눅 22:19;고전 11;24, 25). 두 언약에 사용된 `아
남네시스'는 옛 언약의 제사가 죄를 기억하고 그것을 용서받기 위해 매년 드려져야 하
는 반면에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더 이상 죄를 기억지 아니하심을(렘
31:34)비교하여 옛 언약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Morris, Hewitt).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ㅇ이는 황소와 염소의 죄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제거함에 있어서 '피'를 전제로 해야 함을 나타낸다(9:22). 이처럼 속죄일에 드
려진 동물의 희생 제사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제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인 죄를
깨끗이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양심의 죄까지 깨끗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
면 그러한 `황소와 염소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형
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Hewitt, Berkhof, Bruce). 저자는 본절에서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해서는 죄를 제거하는 것이 불충분한 것임을 드러냄으로 죄를 완전히 제거해
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피를 강조하고 있다(Johnsson).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ㅇ본문은 시 40:6-8(시 39:6-9, LXX)의 인용이다. 시편은 본래 다윗의 시였으나 저자
는 본문을 인용하면서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여 다윗에 관한 내용이 아닌 그의 자손 즉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인용을 통해서 옛 언약하에서 드
렸던 희생제물보다 새 언약하에서 드려진 그리스도가 더 탁월함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성육신의 이유를 제시한다(Hewitt, Morris).
ㅇ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 '세상에 임하실 때'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에 들어오실 때 즉 성육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다음에 언급되는 '한 몸을 예비하셨
도다'와 연관된다(Hewitt, Lane). 저자는 이런 표현을 통해서 다음 인용문들의 화자
(話者)가 다윗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임을 드러낸다.
ㅇ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
니하시나니 - 저자는 본문에서 옛 언약을 나타내는 네 가지 종류의 제사를 언급하고
있다. 네 가지 제사 중 `올라'('번제')와 '해타트'(`속죄제')
는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다섯 종류의 제사-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에
속하며, '제사'(제바흐)는 종류에 상관없이 동물 희생 제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화목제와 연관되며 '예물'(민하) 역시 일반
적으로 제사를 가리키나 레위기에서는 곡물 제사 즉 소제와 연관되어 사용된다.이러한
네 가지의 제사는 레위기에 묘사된 주요한 종류의 제사들을 모두 내포하는 것으로 옛
언약을 대표한다(Spicq, Hughes).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으신
다. 하나님의 불만족은 제사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단순히 의식적
인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하나님의 불만족은 그리스도께서 자
발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새 언약을 맺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삼상 15:22;시
40:6;50:8-10;51:16-17;사 1:10-13;66:2-4;렘 7:21-24;호 6:6;암 5:21-27). 하나님께
서 만족해 하시고 열납하시는 제사는 자발적으로 드리는 마음에서 비롯된 제사이다
(Taylor, Manson).
ㅇ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본문은 앞서 언급된 `세상에 들어올 때'
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능동적인 순종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
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드린 제사가 율법
에 의해서 드려진 동물 희생 제사보다 질적으로 우월함을 시사한다(8-10절, Lane). 한
편 헬라어 본문은 70인역의 영향을 받아서 맛소라 본문과는 약간 상이하다. 맛소라 본
문(MT)의 '귀'(시 40:7)가 70인역이나(시 39:7) 본문에서 `몸'으로 변화된 것에 대해
서 혹자는 잘못 번역된 것이라고 주장하나(A. Kuyper, F. Bleek, G. Lunemann) 70인역
자들이 일부러 '귀'를 '몸'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Bruce, Delitzsch). 70인역자들이 위와 같이 해석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구약 시대에 종이 귀를 뚫어 주인에게 평생토록 종노릇하겠다는 것에서 비
롯되었다고 주장한다(Hewitt). (2) 혹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귀로 들어 몸으로 행한다
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Westcott). (3) 혹자는 신체의 일부인 귀가 신체
전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Bruce). 이러한 세 가지 견해 중 첫
번째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두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Morris).
ㅇ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 '두루마리 책'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팔리디 비블리우'는 문자적으로 두루마
리의 봉을 가리키는 것으로 토라 즉 모세 오경을 포함한 모든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Bruce, Hewitt, Morris). 저자는 율법에 기록된 사실을 언급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성
경 전체의 내용을 성취함은 물론 율법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
해 오셨음을 시사한다(막 14:49). 한편 본문은 70인역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
│ │ * │
│ 본 문 │ 투 포이에사이, 호 데오스, 토 델레마수 │
│ │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
├─────┼────────────────────────────────┤
│ │ * │
│ LXX │ * │
│ 시 편 │ 투 포이에사이 토 델레마 수, 호 데오스무, 에불레덴 │
│ 39:9 │ `오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바라나이다' │
└─────┴────────────────────────────────┘
헬라어 본문에는 70인역에 언급되어 있는 두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무'
('나의')와 '에불레덴'('내가 원하옵건데')이다. 저자는 70
인역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생략시킴으로 인용문 전체를 보다 더 자연스
럽게 기독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성취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세상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
한다(Lane, Kistemaker).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ㅇ본문은 5-7절의 인용문에 대한 설명으로 저자가 그 본문을 본서에 인용한 강조점을
나타낸다.
ㅇ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
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 앞서 언급된 인용문
(5-7절)에서는 '제사와 예물'의 헬라어 `뒤시안 카이프로스포란'
은 단수로(5절), '번제함과 속죄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홀로카우토마타
카이 페리 하마르티아스'는 복수로 나타난다.
반면에 본절에 언급된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
(뒤시아스카이 프로스포라스 카이 홀로카우토마타 카이페리 하마르티아스)는 모두 복
수이다. 본절에서 사용된 복수는 총체적인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네 종류의 제사가 구
약성경에 언급된 모든 종류의 제사를 대표하는 것임을 나타낸다(Morris). 저자는 단수
에서 복수로의 변화와 반복을 통해 율법속에 나타난 희생 제사들이 근본적으로 부적당
함을 나타내고 있다(Lane). 즉 율법에 나타난 희생 제사들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과
죄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으며 단지 방향만을 제시하는 부분적인 것에
불과했다(Morris).
ㅇ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
7절의 '말하기를'의 헬라어 `에이폰'은 부정 과거인 반면에 '말씀하
시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켄'은 완료 시상이다. 이
러한 시제의 변화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지속성을 시사한다. 한편 본문에 나타
난 인용문 즉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는 시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
한 본질적인 언급임을 의미함과 동시에 자신을 희생시킨 그리스도의 제사가 하나님께
서 간절히 원하시는 희생 제사임을 시사한다(Johnsson, Davidson, Lane).
ㅇ그 첫것을 폐하심은 둘째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아나이레이 토 프로톤 히나 토 듀테론 스테세) - 헬라어 본문은 구조적으로 교차 대
구법으로 되어있다.
ㅇ저자는 본문 자체를 교차 대구법으로 기록하면서 앞서 언급된 시편 인용의 목적을 기
술하고 있다. (1) 첫 것: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첫 것'은 8절에서 묘사된 율법과 희생 제사를 가리킨다. 희
생 제사는 율법에 의해서 규정된 제사로서 부분적인 것이며 불완전한 것이었다. 왜냐
하면 첫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식적인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 둘째 것: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이것은 그
리스도의 삶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된 하나님의 뜻이라 하겠
다(Bruce). 둘째 언약 즉 새 언약이 효력이 있고 유용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
리신 희생 제사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언약 즉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세우신 새 언약은 옛 언약인 첫 것의 폐지를
요구한다.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ㅇ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목적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한
방법과 결과를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방법'은 자
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는 것이다. `드리심으로'의 헬라어 `프로스포라스'
는 70인역에서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된 용어이다(LXX, 시 39:7;
단 3:38). 저자는 '프로스포라스'를 사용하여 효력이 없는 동물 희생 제사와 온전하고
효력있는 희생 제사 즉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는 인격적인 제사를 비교하고 있다(Taylo
r, Manson).그리스도께서 몸을 드리신 것은 완전한 것으로 더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는
'단번에' 드린 제사이다. `단번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팍스'
는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시사함과 동시에 구속 사역의 완전성을 암시한다(7:27;13:12, Bru
ce, Lane). 한편 그 '결과'는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거룩함을 얻었노라'는 말은 하나님께로 성별됨을 나타낸다.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면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ㅇ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
게 하지 못하거니와 - 본절은 1절과 비슷한 방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
│ 본 절 │ 1 절 │
├─────────────────┼────────────────────┤
│ 매일 │ 해마다 │
│ │ │
│ 같은 제사를 │ 같은 제사로 │
│ │ │
│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 │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
└─────────────────┴────────────────────┘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은 날마다 성소에 서서 자신의 직무를 행하였다. 지상의 제사장
들이 '서서' 직무를 감당한다는 사실은 그 직무가 완성되지 않았으며 동물 희생 제사
로는 죄가 온전히 제거되지 않아 양심을 온전히 깨끗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반복되었음을 시사한다(Bruce, Lane, Morris).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ㅇ본문은 시 110:1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ㅇ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지상의 제사장들의 직무와 비교되는 예수의 대제사장 직무에
대한 진술이다. '앉으사'는 지상의 제사장들이 '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11절)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옛 연약의 속죄 사역과는 달리 온전히 성취되어
서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것임을 암시한다(Lane, Hewitt). '영원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는 부사
구로 문법적으로 '드리시고'를 수식할 수도 있고 '앉으사'를 수식할 수도 있다. 그러
나 문맥상 '드리시고'를 수식한다고 보는 것이 본절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Morris, Westcott).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번에' 드리신 희생 제
사로 그 죄를 제거하는 효력은 더이상 반복할 이유가 없는 영원한 것이다. 한편 '하나
님 우편에 앉으사'는 시편 110:1의 인용으로 등극(登極)하신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
을 위하여 중보사역을 행하신다(8:1-6).
ㅇ그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 본문은 시
110:1의 인용으로 시 8:6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
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이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등극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고전 15:24-28)중보 사역을 행하
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Bruce).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중보로서(8:6) 모든 원수
가 멸망할 때까지 중보 사역을 행하신다. 저자는 이런 진술을 통해서 이미 그리스도께
서 원수들에 대해 승리하셨음을 암시하며 수신자들에게 하나님을 대적하여 멸망당하는
원수들의 자리에 동참하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다(3:14, Morris, Hewitt).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ㅇ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 '가르'는 본절
이 10,12절과 연관됨을 시사한다.
ㅇ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 '한 제물로'의 헬
라어 `미아 프로스포라'는 10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을 단번에 '드리심으로'(프로스포라스)와 12절의
'한 제사를 드리시고'
(미안 프로세넹카스 뒤시안)와의 연관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절의 강조점은 `미아
프로스포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에
있다(Lane).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사의
영원한 결과를 시사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게 된 자들'로 만드셨으며 완전케 하셨다
(Peterson).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단지 외적인 면만이 깨끗게 된 것이 아니라 내면적
인 양심까지 깨끗하여졌으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Bruce).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ㅇ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 '증거하시되'의 헬라어 `마르튀레이'
는 현재 시상으로 성령께서 다음에 언급되는 렘 31:33,34의 예언 신탁을
현재 말씀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을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서 실현시키셨으며, 새 언약의 약속이 현재의 그리스
도인들과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ㅇ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하셨으니 -
렘 31:31-34이 본문 외에 이미 8:8-12에서 인용되었으나 8장의 인용은 옛 언약의 희생
제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반면에 본문의 인용은 그리스도인에게 미친
새 언약의 완전성을 강조한다(Bruce, Lane). 그래서 저자는 본문에서 렘 31:31-34의
내용 중 31:33,34만 선별하여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 선별된 본문의 인용을 통해서
새 언약의 두 가지 약속에 대해 언급한다.
(1)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 이것은 새 언약 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더이상 외적인 율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율법을 이마나 팔에 기
록할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출 13:16;신 6: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단과
의지를 나타내며 내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
였기 때문이다(Behm, Lane).
(2)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 옛 언약 하에 있던
희생제사는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어서 반복해서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지만
(3절) 새 언약 하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더이상
기억지 아니하시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리스도인의 죄를 기억
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더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제사임
을 시사한다(Bruce, Lane).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ㅇ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 앞서 인용된 예레
미야 예언의 성취는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인해 초래된 새로운 상황과 연결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다시 기억지 않
으신다는 사실은 더이상 속죄제사가 필요하지 않음을 시사하며 동시에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드려진 희생제사의 영원한 효력을 나타낸다(Peterson). 그 결과 새
언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19-22절).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ㅇ그러므로 형제들아 - '그러므로'의 헬라어 `운'은 본절이 속해 있는
19-25절 단락이 9:1-10:18까지 전개된 논의의 결과적인 권면임을 시사한다(Michel,
Morris) 한편 `형제들아'는 저자가 수신자들에게 간절한 권면을 하기에 앞서 애정어린
호칭을 사용하여 수신자들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ㅇ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지상의 성소에 속한
자들 중에서 오직 한사람 즉 대제사장만이, 오직 제한된 즉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하
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담력'에 해당하는 헬라어`파르레
시안'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권리로
(Lane)양심을 깨끗게 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속죄 사역의 확실성을 시사한다
(22절;9:9, 14, Bruce). 한편 '예수의 피를 힘입어'는 새 언약하에 있는 하나님의 백
성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소유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저자는
본서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
성을 나타내는 `예수의 피'를 강조하여 진술하고 있다(29절;9:12,14;13:12,20). 이는
희생 제사적 측면에서(9:1-10;18)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을 강조하는 것이다(Lane).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ㅇ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 그리스도께
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
신 길은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Lane). (1) 새로운 길이다. 이 `새로운 길'은 두 가지
차원 즉 시간상으로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 그리스도의 희생 결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현재 주어진 것임을 나타내며, 질적으로 옛 언약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이 새 언약에서는 변할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시사한다. (2) 산 길이다. 이것은 그리
스도께서 이루신 길이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여 생명으로 인도하
는 길임을 시사한다. 또한 이 길은 '휘장' 가운데 열어놓은 길이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분리하는 것으로서(Bruce, Hewitt)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
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로 인식되었다(Hofius). 이렇게 장애물로 인식되었던 휘장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찢어졌으며(마 27:51;막 15:38;눅 23:45)그
결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인해 열려진 길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하
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ㅇ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본문의 '휘장'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
가 있다. (1) 혹자는 '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NEB, Westcott). (2) 혹자는 '육체'
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Hofius, Johnsson, Hewitt, Moffatt). 이 두
가지 견해 중(10절)과 '예수의 피'(19절)가 본문의 '저의 육체'와 연결되며 동시에 십
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졌을 때 휘장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ㅇ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 본절은 4:14절과 병행을 이룬다.
┌───────┬─────┴────────────────────────┐
│ │ * │
│ 19-21절 │ 에콘테스 운 히에레아 메간 │
│ │ `그러므로 큰 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이다' │
├───────┼──────────────────────────────┤
│ │ * │
│ 4:14 │ 에콘테스 운 아르키에레아 메간 │
│ │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이다' │
└───────┴───────┴────────────────┬─────┘
'큰 제사장'은 히브리어 '해헨 하가돌'('대제사장')을 직역
한 것으로(레 21:10;민 35:25, 28;슥 6:11)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으로서(12-14절)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공동
체인 교회를 다스리시며 중재사역을 행하신다(Bruce, Michel, Hewitt).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ㅇ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 '마음
에 뿌림을 받아'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피를 뿌림으로 깨끗하여진 것을 연상케 한
다(출 29:21;레 8:30).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새 언약에 참여한 그리스
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옛 언약하에서 깨끗게 할 수 없었던 양심이 온전히
깨끗게 되어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맑은 물'의 헬라어
'휘다티 카다로'는 70인역에서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물을 가리킨다(민 5:17;겔 36:25). 그러나 본절의 '휘다티 카다로'는 육체의 외적인
더러움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적 정결을 통해서 깨끗게 된 양심에서 비
롯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나타내는 것이다(Bruce). 따라서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
니'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성취된 내적 정결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징으로 '세례'를
의미한다(Windisch, Bruce, Morris, Spicq, Dahl).
ㅇ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내적인 정
결을 경험하고 세례를 통해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고백을 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본절에서 수신자들
에게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것을 권면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1) 참마음.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언약하에서 자기 백성에게 '새 마음'을 창조하시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킨다(렘 31:33). 이러한 약속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새로
운 백성에게 성취되었으며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더럽혀진 양심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정결케 되었다(18절;9:13,14).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양심 곧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Bruce, Morris, Hewitt). (2) 온전한 믿음.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서
창조된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성과 확실성을 가리킨다(Morris, Lane). 그리스도
인들은 대제사장이시며 자신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한다.

23 또 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ㅇ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
'믿는 도리의 소망'의 헬라어 '텐 호몰로기안테스 엘피도스'
는 문자적으로 '우리가 고백하는 소망'이라는 의미이다. 이 '소망'은 예수의
제사장적인 행위와 연관된 것으로 그 내용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이다(Lane).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행위에 의해 약속하신 종말론적 구원을 온
전히 성취하실 것을 의심치 말고 확신 가운데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
한 소망 즉 종말론적 구원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게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약
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ㅇ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며 - 저자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서로 돌아볼 것을 권면하
고 있다. 돌아보는 방법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두 가지 덕목을 서로 격려하는 것
이다.
(1)사랑 - 이것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돌아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랑은 반드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나타나야만하는 행동 표현이다
(Morris).
(2)선행 - 이것은 돌보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6:10).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능동적인 지원과 관심은 당시 시련으로 인해 좌절하기 쉬운 공동체 삶 속에
서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었다(Bruce, Peterson).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격려와 돌
봄은 공동체의 일원들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고 소망을 굳게 지켜 확신 가운데 거하
게하며 친교와 확신을 복돋우는 자극제가 된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ㅇ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 '모이기를'의 헬라어 `에
피쉬나고겐'은 '에피'('그 외에도')와
'쉬나고게'('회당')의 합성어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회당 예
배외에도 다른 특별한 그리스도인 모임을 가졌음을 나타낸다. 이 경우 특별한 그리스
도인 모임을 폐하는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유대인 관습에 빠져 그리스도인
로서의 신앙과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기에 저자가 그리스도인들의 특별한 예배를 폐하
지 말라고 권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Manson).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에피'라는
접두어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으며 본문 외에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경우로 해석되는
예가 없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 모임을 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모
임의 협동적인 생활을 파기하게 되며 상호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
기 때문에 저자는 모이기를 폐하지 않도록 수신자들에게 권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ㅇ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그 날'에 대해서는 두 가
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본서의 기록 연대와 연관되어 예루살렘 멸망의 때를 가리킨
다. (2)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
은 어렵다. 왜냐하면 실제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두 날을 구별하여 생각하였다
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Hewitt, Bruce). 저자는 그 날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올
수록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더욱 열심을 내어 다가오는 고난과 박해 속에서 서로 격려
와 위로를 통해 담대해지기를 권면하고 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ㅇ본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6:4-8과 병행된 구절들로 배교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시
사한다.
ㅇ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 '진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구원의 개시를 의미하며 '죄를 범한'의 헬라어
'하마르타논톤'은 현재 분사로 계속적으로 범죄함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계시와 그리스도를 통해 드려진 희
생제사의 효력을 거부하고 계속적으로 범죄하는 자는 더 이상 속죄할 수 있는 제사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는 의도적이며 자발적으로 배교하였으며 유일한 구원의 방법
인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ㅇ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
으리라 - 의도적으로 배교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자에게는
속죄할 수 있는 제사가 없고 오히려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맹렬한 불'에 해당하는 헬
라어 '퓌로스 젤로스'는 문자적으로 '불의 질투'를 의
미하는 것으로 백성의 배교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손상되어 생겨난 격정적인 질투
를 시사한다(Montefiore). 이것은 사 26:11을 암시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멸망시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대적자로서 그들에게는 오직 맹
렬한 불의 심판만이 존재한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ㅇ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 저자는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모세의 율법을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엄한 심판을 자초하는 것
임을 드러내고 있다. 본문은 신 17:2-7을 인용한 것이다. 신명기 본문은 우상 숭배를
한 자에 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두 세 사람의 증인만
있으면 그들은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ㅇ하물며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 본문은 새
언약을 성취시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한 자에 대한 징벌이 옛 언약하에서 우
상 숭배로 인해 죽임을 당한 징벌보다 훨씬 더 엄함을 나타낸다. 그 형벌이 훨씬 더
엄한 것은 옛 언약보다 새 언약이 훨씬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새 언약을 성취
시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고 배교하는 것은 옛 언약하에서 우상 숭배하는
것보다 더 강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Lane, Morris). 그리스도의 속죄 사
역을 거부하는 배교 때문에 고소를 당하는 이유는 세가지이다.
(1)하나님 아들을 밟고 - 예수의 칭호로 사용된 '하나님 아들'은 그리스도인 공동
체내에서 이미 잘 알려진 공식적인 신앙고백이었다(4:14, lane). 한편 '밟고'의 헬라
어 '카타파테사스'는 모욕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배교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를 모욕하는 행위이다(Morris, Bruce).
(2)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 '언약의 피'는 옛 언
약을 세울 때 사용되었던 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출 24:8) 새 언약을 세울 때 희
생되었던 그리스도의 피 곧 십자가상의 죽음을 의미한다(9:20;마 26:28;막 14:24;눅
22:10;고전 11:25). 새언약을 위해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는 옛 언약하에서 제거할 수
없었던 양심의 더러움까지 정결케하며 거룩하게 하는 매우 귀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10, 14절;13:12) 배교자들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피를 가볍게 여기고 사소한 것으로
이해하며 보통 사람의 죽음과 동일하게 여긴다(Morris,Lane). 배교자의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축복과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다(Bruce).
(3)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 성령께서 '은혜의 성령'으로 나타나는 곳은 신약
성경에서 이곳 뿐이다. `은혜의 성령'은 슥 12:10(LXX)을 암시한다(Windisch,
Michel). 만약 이것이 의도된 암시라면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은혜를 공동체에 부어주신
오순절의 성령을 의미한다(Michel). 하나님께서 회중에게 부어주신 성령은(2:4;6:4)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은혜를 나타내는 표시이다(Lane,
Schweizer). 따라서 본절의 '은혜의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영'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영'을 가리킨다(Morris). 의도적으로 배교하는 것은 은혜를 가져다주
는 성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성령을 모욕하는 죄이며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다
(막 3:29, Bruce, Hewitt).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ㅇ본절은 신 32장에서 인용된 두 가지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인용문을
통해서 배교자에 대한 심판이 공동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Lane) 그
심판의 엄중함을 나타낸다(Hewitt, Bruce).
ㅇ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 본문은 신 32:35의 인용이다.
신명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변호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당
신의 백성이 당신을 잘 섬겼을 때 원수를 갚아주시고 구원을 이루시며 변호하시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직접 개입하셔서 공정한 의의 원리에 입각해서 심판하신다(Bruce,
Morris). 이러한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님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배교자에게도 동일하
게 적용되기 때문에 본문은 배교자에게 반드시 심판이 임할 것임을 시사한다(Lane).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ㅇ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 본문은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한 후 심판을 받을 때 한 말의 인용이다(삼하 24:14;대상 21:13). 다윗 왕은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본절의 요점은 다윗 왕의 선
택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할 경우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배교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무서운 것임을 시사한다(Lane,
Morris). 그래서 저자는 `포베론'('무서울진저')을 27절의 '포
베라'('무서운')와 연결시켜 배교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엄
함을 나타내고 있다.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ㅇ개역성경에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이전 문단에서(26-31
절) 배교자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한 반면 32-36절에서는 경고와는 달리 위로의 말씀
을 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ㅇ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 수신자들은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빛을 마음에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해를 받았다. '싸움'
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들레신'은 본래 운동 경기를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박해를 의미한다(Lane). 이 박해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
는 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는 박해는 아니다(12:4, Bruce,
Hewitt). 수신자들은 박해를 받았으나 그것에서 좌절하지 않고 잘 인내하였으며 저자
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과거에 겪었던 박해와 인내를 상기시킴으로 수신자들이 배교
에 이르지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도록 권면하고 있다.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ㅇ본문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박해에 대해 인내했던 구체적인 모습들에
대한 표현이다. 본문은 교차 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Riggenbach, Vanhoye).
┌──────────────────────────────────────┐
│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 이런 형편에 있는 자 │
│ 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들로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
├──────────────────────────────────────┤
│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
│ 것도 기쁘게 당함 │
└──────────────────────────────────────┘
ㅇ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
'비방'은 거짓으로 고소하여 비난하는 것을 나타내며 '환난'은 폭력을 동반한 박해를
의미한다(Lane). 또한 '구경거리'의 헬라어 '데아트리조메노이'
는 `데아트론'('극장')과 연관된 것으로 공적이고
공개적인 박해를 받는 것을 나타낸다.수신자들은 과거에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고
소를 당하기도 하고 폭력을 당하기도 하며 공개적으로 조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한
편 '빼앗기는 것'의 헬라어 '텐하르파겐'에 대해서 혹자는 수신
자들이 자신이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재산을 자진 헌납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
나(Buchanan) 본절에서는 수신자들이 당한 박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치
않다. '텐하르파겐'은 도리어 폭도들에 의해 재산조차 빼앗기는 고난을 당하는 것을
시사한다(Morris).
ㅇ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 본
문은 고난당한 그리스도인들과 동참함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재산이 하나도 없이 감
옥에 갇힌 자는 밖에 있는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굶어 죽기 쉬웠기 때문에 당연히 돌
보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을 돌보는 것은 감옥에 갇힌 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
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였다(Bruce).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봄으로 감옥에 갇힌 자들의
고난에 동참하였다. 비록 이런 행위가 당시에는 위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장래에 하나
님으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행위이다(마 25:36).
ㅇ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 수신자들이 앞서 언급
한 위험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큰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다(눅 6:22,23, Bruce). 저자는 고난과 위험을 감
수하며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휘파르크신'(`산업')을 수신
자들이 지상에서 고난당하면서 상실했던 '휘파르콘톤'
('산업')과 연결시켜 비교함으로 고난과 위험을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산업이 훨
씬 더 탁월함을 드러내고 있다(Lane).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ㅇ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 '담대함'은 본서
에서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다. (1)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4:16;10:19). (2) 새 시대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가
져야 할 용기있는 신앙을 나타낸다(3:6). 본절은 후자의 경우로 사용되었다. '담대함'
은 그리스도인의 표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비방과 재난을 당하면서도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받을 상 때문이다(34절;11:26;눅 6:23). 하
나님은 믿음 안에서 당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며(11:6) 그 상은 그리스도
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한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23,
25절;9:28, Lane).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ㅇ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 `필요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레이안'은 단순히 바라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담대함 뿐만 아니라
인내도 그리스도인의 표식임을 시사한다(Lane).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고난과 위험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잘 인내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약속'을 받게 된다.
그 '약속'은 새 언약하에 있는 하나님 백성이 바라보아야 할 최종적인 목표로서 앞절
의 `큰상'과 동일하며 `영생'을 의미한다(9:15, Thompson).

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ㅇ잠시 잠깐 후면 -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반드시 인내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그 이유
는 '잠시 잠깐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사실이다. `잠시 잠깐'은 사 26:20을 인
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환난과 위험의 기간이 짧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께서 곧 재림하셔서 심판과 보상을 하실 것을 암시한다.
ㅇ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본문은 합 2:3, 4(LXX)의 인용이다.
'오실 이'는 70인역에서 '에르코메노스'인 반면에 본절에서는
'호 에르코메노스'로 본절에는 관사 '호'가 첨가
되어 있다. 70인역에서 '오실 이'는 '기다리던 어떤 구원자'에 불과하나 저자는 본문
에서 관사를 첨가함으로 재림 때에 오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Michel, Spicq,
Lewis).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속히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고
난과 위험 속에서도 인내해야만 한다.
ㅇ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셨느니라 - '나의 의인'은 '살리라'와 '물러가면'의 주어로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롬 1:17;갈 3:11, Morris, Lane, Hewitt,
Bruce).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속히 오시리라는 사실을
믿고 직면한 고난과 박해에 대해 담대하게 맞서며 인내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삯과
약속을 허락하실 것이지만 반대로 뒤로 물러나 인내하지 못하고 배교한다면 하나님에
게서 버림을 받고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ㅇ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앞서 인용한 합 2:3, 4의 결론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
라 수신자들이 믿음을 가진 자임을 확인시킴으로 파멸에 이르지 않고 구원에 이를 것
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만약 수신자들이 직면한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여 배교를 한
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멸망의 심판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
스도의 재림을 기다림으로 박해와 위험을 잘 인내하고 담대하게 맞서서 두려워하지 않
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에 이를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의 '믿음'을 언
급함으로 다음 장에서 설명할 믿음을 예시하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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