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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디모데후서

[스크랩] 디모데후서 (1 : 1~1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2:09
디모데후서 1장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ㅇ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델레마토스 데우'
는 '사도 된'을 직접 수식한다(고전 1:1;고후 1:1;엡
1:1;골 1:1). 이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권'이 자신의 노력이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과 부르심에 근거한 것임을 시사한다(갈 1:1). 바울은
이것을 통해서 (1) 바울의 '사도권'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반박하며, (2) 디모데가
계승할 '사도직'에 대해 확증하고 있다.
ㅇ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 본절
은 그리스도 예수와 바울 사이에 '생명의 약속'을 통한 결속(結束)이 존재함을 나타낸
다. '생명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의 부활을 통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
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이 생명의
약속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바울을 사도로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ㅇ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다음 두 가지를 시사한
다. (1) 바울의 설교를 듣고 디모데가 개종하였음을 시사한다. (2)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 아들로서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ㅇ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는 '선물' 혹은 '기쁨'을 의미하는 것으로 값
없이 베푸시는 용서와 구원의 선물, 계속 주어지는 일반적인 은혜를 가리킨다. '긍휼'
의 헬라어 '엘레오스'는 '자비','측은히 여김'의 뜻으로 하나님의 무
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평강'(에이레네)은 구약의 '샬롬'
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시사한다(고
후 5:18). 이 세 가지 중 '은혜와 평강'은 바울의 전(全)서신에 등장하는 인사 양식이
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만은 '은혜'와 '평강' 사이에 '긍휼'이 첨가되었
다(1:2;딤전 1:2). 이것은 바울이 영적 아버지로서 아들 디모데를 깊이 사랑함을 시사
한다.

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ㅇ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위
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생각한다'는 의미보다는(whthout ceasing I have remembrance
of thee, KJV) '생각날 때마다 항상'이라는(as night and day I constantly
remember you, NIV) 의미라고 봄이 타당하다(Lock, Guthrie).바울은 기도 가운데 디모
데가 생각날 때마다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를 생각하
는 것은 곧 감사 드리는 것이었다(Lock).
ㅇ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
를 생각할 때마다 드리는 감사의 내용이다. 바울은 현재 유대교와 심한 갈등을 빚는
처지에 있지만, 자신은 항상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심오한 관점과 자부심을 갖고 있음
을 밝히고 있다(롬 9:3-5;빌 3:4-6). 바울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밝힘으로 자신의 신
앙이 조상의 신앙과 구약에 근거를 둔 신앙임을 천명하며 동시에 같은 유대교 집안에
서 성장한 디모데도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
다(Scott).

4 내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ㅇ너 보기를 원함은 - 바울이 디모데를 보고자 한 이유는 다음 두가지이다.
(1) 네 눈물을 생각하여 - 이것은 밀레도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과 헤어질 때
에베소 교인들이 눈물을 흘렸던 사건을 가리킨다(행 20:37, Scott, Guthrie). 바울은
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더 간절히 디모데를 보기 원했다.
(2)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 바울은 당시 2차 투옥되어 죽음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누구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4:9-11).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서 사랑의 교제를 나눔으로 위로받으며 기쁨으
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고 있다.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ㅇ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기쁜 마음
으로 만날 수 있는 근거이다. '거짓이 없는'의 헬라어 '아뉘포크리투'
는 문자적으로 '위선이 아닌'을 의미한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식적이거나 겉치레가 없는 믿음으로 율법적으로 매여있는 믿음이 아니라 복음으로
충만한 믿음을 시사한다. 한편 '생각함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폼네신 라본'
은 문자적으로 '생각나게 하는 것을 가졌다'는 의미로 '외
적인 조건에 의해서 상기(想起)되었음'을 시사한다(Lock).그래서 혹자는 '디모데의 서
신이나 다른것에 의해서 디모데의 거짓없는 믿음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Ben-
gel, Earle, Guthrie).
ㅇ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 디모데의 믿음이 유대교적인가 아니면 기독교적인가에 대해서 혹자
는 '로이스'와 '유니게'가 유대인이므로 유대교적 신앙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Lock, Calvin). 그러나 '로이스'가 '유니게'를 헬라인과 결혼시킨 것으로 보아(행 16
:1) 이미 '로이스'와 '유니게'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교 신자들은 절대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니게'
에 대해 '믿는 유대 여자'라고 누가가 소개하고 있다(행 16:1). '믿는'이라는 표현은
기독교로 개종한자에게 적용되고 있다(행 16:14,15). 따라서 디모데의 믿음은 유대교
적 신앙이라기 보다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교적 신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Hendriksen, Guthrie). 이처럼 디모데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로이스'와 '유니게'에
의해서 신앙 교육을 받음으로 '로이스'와 '유니게'의 신앙을 전수받았다. 한편 '확신
하노라'의 헬라어 '페페이스마이'는 '페이도'('확
신 시키다', '설득하다')의 완료 수동 직설법으로, '나는 확신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바울이 완전히 확신하였을 때 사용하던 관용구로(Simpson) 디모데의 신앙에 대
해 바울이 완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ㅇ본절은 디모데가 안수받을 때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활용해서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하는 이유이다.
ㅇ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마음이니 - '마음'으로 번역된 '프뉴마'
를 혹자는 서술 소유격으로 보아 인간의 '영'이라고 주장한다(Guthrie, Lenski)
그러나 '프뉴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6절의 '네속에 있는'과 연결된
다. 6절의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는 곧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므로 '프뉴마'를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Scott, Hendriksen).
ㅇ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 '두려워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일리아스'
는 '의기소침해 있거나 비겁한 상태'를 의미한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린
목회자여서 거짓 교사들을 대적할 때 두려위 하였으며(딤전 1:3-7;4:6,7,12), 육체적
으로 병약해서 늘 의기소침해 있었고(딤전 5:23), 바울이 투옥된 후 복음 전파하는 것
을 두려워했다(7,8절).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님을 권면한다.
ㅇ능력 -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을 견디며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시사한다(Scott, Guthrie).
ㅇ사랑 - 이것은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열매로서(갈 5:22-24)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타인을 돕는 것을 가리킨다(Scott).
ㅇ근신 - 이것은 자신을 절제(節制)하는 것과 타인이 온전해지도록 영향을 끼치고 지
시하는 것을 시사한다(Scott, Lenski). 이런 세가지 은사는 사역자가 꼭 갖추어야 할
것으로 바울은 디모데가 과거에 받은 이 은사들을 잘 활용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
히 자신의 직분을 수행할 것을 간절히 기대하며 권면한다.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ㅇ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 '우리 주의 증거'를 혹자는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주께서 행하신 증언'이라
고 주장하나(White) 그것은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주에 대한 증거' 즉 '복음'을 시사
한다(Bernard, Lock, Guthrie).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롬 1:16) 디모데도 복음에 대하여 부끄러워 말 것을 당부한다. 더 나아가 디모데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인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주를 위하여 갇힌 자'
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데스미온 아우투'는 문자
적으로 '그의 갇힌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어떤 목적 때문에 바
울 자신을 죄수로 만드셨음을 시사한다(Scott).
ㅇ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함께 고난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카코파데손'은 '쉰'
('함께')을 합성하여 만든 바울의 조어이다. 이것은 바울의 언어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
으로, 본절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라기보다 차라리 '복음을 위하여 나
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이다(Lock).왜냐하면 '복음과 함께'는 '복음을 위하여'
를 의미하기 때문이다(Earle). 따라서 이것은 바울이 당한 고난을 디모데도 반복함을
시사한다(Scott). 한편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는 디모데 자신이나 바울 자신의 능력
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에 의해 고난에 동참하여 견딜 수 있
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할 때만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롬 8:17).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ㅇ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 '거룩하신 부르심'
(클레세이 하기아)의 '거룩하신'(하기아)이 여격으로
수단이나 방편보다는 목적을 나타내므로 '부르심'(칼레산토
스)의 이유와 목적이 바로 '거룩함'임을 나타낸다(살전 4:7, Guthrie).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다'는 의미로 하나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소속
되어서 세상과 구별된 자임을 시사한다.
ㅇ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 하나님의 구원과 거룩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나 노력 따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롬1:17;3:20-24;10:5-13;11:6;갈2:16;3:6-14;
6:14,15;엡 2:9;딛 3:5). 그것은 두가지 선행 조건에 의해서 성취된다.
(1)자기 뜻 - 구원과 거룩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지혜롭고 확실한
계획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롬 8:28;엡 1:11).
(2)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 - '은혜'는 하나님
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것으로(엡 2:8,9), 인간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은혜를 얻을 수 있다(Lock). 그 '은혜'는 인간의 반응에 따라주어지는 것이 아
니라 인간의 반응 이전에 이미 '영원한 때 전부터' 즉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
신 것이다(딛 1:2).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ㅇ개역 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구원의 은혜가 '영
원한 때 전부터' 계획된 것이지만 '이제' 성취된 것임을 시사한다.
ㅇ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 '나타나
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파네이아스'는 '현시'라는 의미
로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나(4:1,8;살후 2:8;딤전 6:14;딛
2:13)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림 즉 성육신을 가리킨다(Earle, Hendriksen, Lock).
'이제는'(뉜, '지금', '현재')이란 영원 전부터 이미 계획된 구원 사역이 그
리스도 예수의 성육신(그의 초림)으로 말미암아 현재적 사실로 드러났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의 뜻을 이루신 것은 두 가지이다.
(1) 사망을 폐하시고 -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사망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사망이 사
라졌으며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영생으로 들어가는 축복이 주어지게 되었다(요 11:26;
빌 3:7-14). '폐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르게산토스'
는 부정 과거로서 이미 성취된 사건임을 시사한다.
(2)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
으심, 부활, 승천 즉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가리킨다(고전 15: 3,4). 그리스도는 자
신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나타내셨다. '생명'
(조엔)과 '썩지 아니할 것'(아프다르시안)이란 같은 뜻으로
'썩지 않을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자신의 부활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받
을 썩지 않는 생명을 나타내보여 주셨으며(고전 15:42,52-54),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인들을 썩지 아니할 부활의 몸으로 덧입히실 것이다(고전 15:42).

11 낵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ㅇ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세우심을 입었노라 - 바울은 목회자의 세 가지 직분을 언
급한다.
(1) 반포자 -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무조건 널리 선포하는 사명을 가진 자이다.
선포자는 복음을 선포할 때 비로소 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2) 사도 - 이것은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사람으로 하나님
의 대리자를 나타낸다.
(3) 교사 - 이것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자이다. 바울은 특별히 이
방인의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한다(딤전 2:7). 이런 세 가지 직분을 엄밀히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바울은 본절에서 이 세 가지 직분을 하나님에게서 받았다고 밝
힘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자로서 자신의 독특한 권위를 강조한다(Scott).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학신함이라

ㅇ이를 인하여 - 이것은 6절의 '그러므로'와 동일한 것으로 바울 자신이 하나님께로
부터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ㅇ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 '고난을 받되'의 헬라어 '파스
코'는 죽음에까지 이르는 깊은 고난을 겪음을 의미한다.이것은 바울이 죽
음을 맞아야 하는 로마 감옥 생활을 시사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함으로 그 고난이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충성의 표시임을 시사한다
(Scott). 본절은 바울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1)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 '나의 의뢰한자'의 헬라어 '호 페피스튜카'
는 문자적으로 '내가 믿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믿음의 대상
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킨다. 이것은 바울이 어떠한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리스도
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바울 자신의 확신을 시사한다(롬 8:38,39). 한편
'페피스튜카'는 완료시상으로 바울이 이 확신을 날마다 갖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2)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 '나의 의탁
한 것'에 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ㄱ) 혹자는 바울이 하나님에게 맡긴 것을
의미하며 '맡긴 것'은 바울 자신의 생명이나 구원이라고 주장한다(Bengel, Calvin,
Alford, Simpson). (ㄴ) 혹자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긴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하나
님께서 바울에게 부여하신 사역이나 교리라고 주장한다(Lenski, Scott, Guthrie;what
I have entrusted to him, RSV). 이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한
편 '그 날'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1:18;4:8;살후 1:10) 바울은
주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자신의 구원이나 사역 전체를 지켜주실 것을 신실하게
믿고 있으며 디모데에게도 이와같은 확신을 기대하고 있다.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ㅇ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의 헬라어 '휘포튀포신 에케 휘기아이논톤 로
곤'은 문자적으로
'바른 말의 본으로 지키라'를 의미한다. '바른 말'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해준 것으
로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 고백과 삶을 가능케 하는 건전한 복음의 진리를 가리킨
다(4:3;딤전 1:10). 디모데는 이런 바울의 가르침을 본으로 삼아 지켜나가야 한다. 바
른말을 지키는 수단은 '믿음과 사랑으로써'이다.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믿음과 신
뢰,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바울이 전해준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유지하며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수단' 즉 '믿음과 사랑'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생겨나며 행해질 수 있다.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ㅇ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 '거하시는'(에
노이쿤토스)은 '에노이케오'('거주하다')의 현재 분사형으로 성령
이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인 안에 머물러 계심을 나타낸다. 한편 '성령 으로 말미암아'
의 헬라어 '디아 프뉴마토스 하기우'는 문자적
으로는 '성령을 통하여'란 의미로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을 통해서
만이 복음의 진리를 행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ㅇ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부탁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데켄'
은 12절의 '의탁한 것'과 동일한 단어이나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2절의 '의탁한 것'은 바울이 자신의 구원과 사역을 하나님에게 맡긴 것과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사역을 바울에게 맡긴 것을 시사하는 반면에 본절의'부탁한 것'은 바울이 디
모데에게 맡긴 것을 시사한다. '부탁한 것'은 생명에 이르게 하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복음을 가리킨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되기
때문에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이다(롬 1:16;고전 4:14).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것으로 이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기고 있다. 한편 '지키다'의 헬라어 '퓔락
손'은 '잃어버리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어떤 것을 지키다'라는 의미
로 거짓 교사들이 복음을 변형(變形)시키고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하고 경계함을 시사
한다. 이러한 보존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ㅇ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 '아시아'는 소아시아
서쪽끝에 위치한 로마 제국의 한 도(道)로 디모데가 거주할 에베소가 수도였다. 바울
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3년 이상 머물렀기 때문에(행 20:31) 아시아에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을 버렸다. '버
린' 사건은 바울이 재판을 받을 당시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변론하지 않
은 것을 가리키거나, 바울이 체포되었을 당시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대한 원
조를 거절한 것을 암시한다. 본절에서 언급된 '모든사람'은 바울의 서운한 점을 강조
한 표현이다.
ㅇ부겔로와 허모게네 - 두 사람에 대해서 성경에 다른 언급이 없으나 바울을 등지는
일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Lock, Guthrie).

16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ㅇ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 본절은 '오네시보로의
집'에 대한 바울의 축복기도이다. '오네시보로'가 아니라 '오네시보로의 집'이라고 언
급된 것에 대해서 혹자는 오네시보로가 죽어서 그 유족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
다(Bengel, Alford, White). 그러나 이것은 오네시보로를 포함한 가족 전체에게 임하
기를 원하는 바울의 소망을 시사한다(Guthrie).
ㅇ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 오네시보
로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와 위로하고 즐겁게 하였으며,당시 수치로 여겨졌던 '사
슬에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바울은 이런 오네시보로를 제시함으로 디모
데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시사한다.
ㅇ그러므로 -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것이(3-5절) 이후에 언급될 내용의 근거임을 시사
한다(Lenski, Guthrie, Scott).
ㅇ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 바울은 디모데에게 과거에 안수받을 때(딤전 4:14) 받았던 하
나님의 은사를 상기시킴으로 디모데가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안수'는 교회에서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도록 직분을 부여하는 의식이다.이 의식은 하
나님께서 부여하시는 능력과 함께 성직(聖職)을 수여하는 것이었다(Scott). 그래서 디
모데도 장로회에서 안수를 통해 '사역자'가 되었다. 디모데가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바울' 개인이 안수한 것처럼 서술된다. 이것은 디모
데가 바울 자신의 계승자이며 안수를 통해서 바울 자신의 기능과 권위를 위임받았음을
시사한다(Scott, Lock). 한편 디모데는 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딤전
4:14). 바울은 그 은사를 계속해서 활용하도록 디모데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불일듯
하게'(아나조퓌레인)는 '아나조퓌레오'
('불길을 일으키다')의 현재 능동 부정사로 계속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이것은
디모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가 완전히 중단되었거나 그 불씨가 꺼졌음을 의미하
지 않는다. 그러나 사역에 대한 열의가 식어갈 때였기에 바울은 처음 안수받을 때를
상기시킴으로 자신을 계승해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ㅇ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 로마의 감옥에는 수없이 많은
죄수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오네시보로가 감옥에서 바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투옥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바울을 찾아 방문하였다.

18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만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ㅇ(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 본절은
16절 기도문의 반복이다. 혹자는 오네시보로가 그때 당시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본문의 기도가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여지를 제공한다고 본다(Lock, Bernard)
그러나 본절에서 오네시보로가 죽었다는 암시를 찾을 수 없으며(Guthrie) 미래의 심판
즉 종말론적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해야 된다(Scott).바울은 본절에서 '그 날' 즉 주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께서 오네시보로에 대해 보상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는 오네시보로의 경우를 언급함으로 디모데로 하여금 보다 충성된 사역자가 되기를
바라는 바울자신의 마음을 시사한다.
ㅇ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 오네시보로는 로마
감옥에 있을 때만 바울을 섬긴 것이 아니다. 그는 떠나기 전 에베소에 있을 때도 바울
과 복음을 위해 봉사하며 섬겼다. 디모데는 오네시보로의 봉사와 섬김을 다 지켜 보았
다. 그러기에 바울이 오네시보로에 대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디모데 자신이 잘 알고
있음을 바울은 상기시키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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