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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데살로니가후서

[스크랩] 데살로니가후서 (1 : 1~1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2:04
데살로니가후서 1장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ㅇ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 이 세 사람은 본 서신의 공동 발신인이다. 그러나 실
루아노와 디모데는 본 서신을 쓰는데 협력하였을뿐이며 본 저자는 바울이다.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서에서와 달리 본 서신에서는 굳이 자신의 사도권을 언급하지 않고 간
결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그의 사도적 권위가 충분히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그가 세 사람의 명의(名義)로 데살로니가 교회
에 편지를 보낸 것은 이 세 사람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깊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실루아노는 실라와 동일 인물(행 15:22)로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당시 바나바
를 대신하여 바울을 수행하였다(행 15:40). 그는 바울의 진실한 동역자로서 빌립보 감
옥에 바울과 함께 투옥당하기도 하였고 그를 도와 데살로니가 교회를 함께 설립했으며
베뢰아와 고린도에서 복음을 함께 전하기도 하였다(행 17:1, 10;18:5). 그리고 디모데
는 바울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이며 복음 전도의 동역자였다. 그는 경건한 유대인 어머
니 유니게에게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받았으며(행 16:1;딤후 1:5)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실라와 합류하였다. 그는 데살로니가를 직접 방문하여 그
곳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바울에게 오기도 하였다(살전 3:1, 2, 6). 바울과 함께 실루
아노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파하고 함께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데살로니
가 교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고 가장 존경받는 전도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
살로니가 교회에 깊은 관계를 갖고 서로 협력하였던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공동 발신인
으로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냄으로서 실루아노와 디모데도 서신을 쓰는 바
울 자신만큼 데살로니가 교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ㅇ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샅로니가인의 교회 - 데살로
니가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데살로니가에
서 그의 복음 전도를 받은 많은 경건한 헬라인들이 개종하여 그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
였다(행 17:1-9).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한 지역 교회
에 불과하였지만 바울은 그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존
재'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교회는 지역적으로 또한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띠지만 각각의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성도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
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ㅇ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바울의 서신서에서 서두의 인사말과 함께 흔
히 쓰이는 표현이다. 본래 '은혜'는 헬라식 인사법의 표현이며 '평강'은 유대인 인사
법의 표현이다. 혹자는 바울이 이 두 가지 인사법을 한데 결합시킨 것에 대해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헬라인과 유대인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P.J. Gloag).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의미로써 사용하기보다는 좀더 깊은 의미로 사용
하였을 것이다. 즉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그의 서신서
인 고후 8:9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참여함을 뜻하며,
엡 2:8, 9에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진술한다. 이는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건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임을 가리킨
다. 그리고 '평강'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어로 '샬
롬'이며 이는 적대감이 그쳤거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좀더 깊은
의미로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행복 또는 화목을 말한다. 회계하기 이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이었지만(롬 5:10;골 1:2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
어 화평을 누리게된다(롬 5:1).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그를 믿는 자들
로 하여금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셨다.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
이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은혜' 와 '평강'의 상태에 이르기를 원했다. 이에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서에서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라고 있
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ㅇ우리가 - 여기서 바울은 일인칭 복수형을 사용함으로써 암시적으로 데살로니가 교
회에서 함께 협력하였던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포함시키고 있다.
ㅇ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졌던 지대
한 환심과 끊임없는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다. 혹자는 본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책망하기전에 먼저 바울이 가졌던 그들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키기 위한 형식적 인사라
고 한다(P.J. Gloag). 그러나 문맥으로 보아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넘치는 감정의 표현이다.
ㅇ이것이 당연함은 - 바울의 감사가 결코 막연한 인사 치레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에
대한 감사임을 암시하고 있다.
ㅇ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 바울이 데살
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구체적 사실은 바로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이었다. 여기서 '더욱 자라고'의 혤라어는 휘페라욱사네이
로 본절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로서 '풍성하게 성장하다', '한계점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성
장에 대하여 이토록 감사한 배경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알기 위해 디모
데를 보내고(살전 3:5) 그들의 믿음의 부족을 온전케 하기위하여 주야로 힘써 기도한
사실(살전 3:10)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들의 믿음이 그
토록 놀랍게 성장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그들의 사랑이
서로 넘치도록 기도했는데(살전 3:12) 그 응답으로 그들의 사랑이 모든 공동체 안에서
나누어지고 있었으며 개인 서로간에도 오고가고 있음을 보고 감사하게 되었다. '풍성
함'의 헬라어 '플레오나제이'는 '풍부하다','증가하다'의 뜻으로
서 사랑에 대해서 사용될 때는 충만함에 이르도록 점점 더하여지는것을 의미한다
(TDNT). 이러한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은 그 자체가 기독교 신앙을 대표한다. 즉 믿음
은 사랑의 시작이며 근원이다. 또한 사랑은 믿음의 결과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생활의
정점은 그 사랑안에서 완전케 된다고 할 수 있다(요일 4:20, 21).

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ㅇ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중에서 -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때 당했던 고난과
핍박(행 17:5-7)이 바울과 그 일행이 떠난 뒤에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계속되고 있
었다. '환난'(들립세신)은 일반적인 시련으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
다. 그리고 '핍박'(디오그모이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고통을 말한다.'참는다'는 말은 현재 시상으로 핍박과 환난이 과
거의 일로 지나간 것이 아니라 바울이 편지쓰고 있는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신자들은 그들의 믿음때문에 고난을 당한다. 신자에게 있어서 고난은
실제적이며(행 11:19), 또한 불가피한 것이다(요 16:33). 신자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기도하고(살전 1:6), 투옥되기도 하며(행 20:23), 내적인 고민과 슬
픔(빌 1:7), 또는 걱정과 두려움(고후 7:5)을 격기도 한다. 신자들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애매한 고난을 당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하나님의 상급이다(벧
전 1:7).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을 연단하며,그러한 연단된 믿음은 하
나님앞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벧전 1:7).
ㅇ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 '인내'(휘포모네스)란 견뎌낼 수
없는 정도의 무게에서도 끝까지 참아내는 자세를 의미한다. 이 '인내'에 대해서 핀들
레이(Findlay)는 "그것은 고난 당하는자가 수동적인 자세로 체념에 빠지는 것이 아니
라, 용맹스러운 군인처럼 강건하게 서서 버티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그리스
도인에게 있어서 인내는 믿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믿음을 가진 성도는 고난 중에서
굳건한 인내를 발휘하게 된다.
ㅇ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극한 어려
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을 끝가지 지켰다. 여기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
란 고린도에 있는 교회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롬 16:1).
이와 같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극심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 보여
준 인내의 모습은 당시 고난을 받고 있는 많은 교회에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다.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ㅇ이는 - 바울은 이 접속사를 사용함으로써 앞절까지의 진술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서
5절이하 10절까지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설명을 전개하고자 하고 있다. 즉 본절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과 삶을 함축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앞으로 하나님의 공의로
운 심판을 전개하기 위한 전환점이 된다.
ㅇ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 - 현재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자신들의 환난과 핍박을 악한 박해자들의 번영이라는 현실과 비교하여 하나님의 의로
운 심판이 참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시행될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
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구심은 구약 선지자 하박국도 하나님께 가졌던 적이 있다(합
1:2-4). 그러나 바울은 미래에 각 개인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고난
이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표'
(엔데이그마)는 '분명한 표식', '증거'의 뜻으로 쓰인다. 즉 데살로니가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은 바로 그들이 장차 있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영광을 받는 증거가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심한 핍박속에서 지켜 주신다는
사실에 대한 보증이 된다.
ㅇ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함이니 - 본 구절은 앞문맥과 동격
절로서 접속사 '이는'에 대한 수식적 설명이다. 본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참아낸다고 해서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나 공의로 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엡 2:8, 9). 이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로 하여금 믿
음을 소유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모든 환난과 핍박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
도록 보호해준다(벧전 1:5).
ㅇ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 본문은 현재 시제로서 과거의 고
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뒤따른다(빌 1:29). 이 고난은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당하셨으며(벧전 2:21-25), 이 편
지를 쓰고 있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도 당하고있다. 이처럼 성도에게 있
어서 고난은 실제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다(요 16:33). 그런데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그
들의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받은 것이어야 한다. 성도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자랑할것이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된다(벧전 2:20).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라면 그것이 정금보다 귀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되는 것이다(벧전 1:7).

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ㅇ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 본 구절은 하나님의 공의
의 속성을 보여준다.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반드시 형
벌하시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신다. 이에 대해 레온모리스(Leon Morris)는
'이 진리는 어떤 철학적 견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에
뿌리 박고 있다'고 진술했다. '갚으시고'의 헬라어 '안타포두나이'
는 '합당한 것을 돌려 준다'란 뜻을 가지고있다. 살전 3:9에서는 '보답할꼬'
라고 번역되어 좋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롬 11:35), 본문에서처럼 부정적 의미로
도 사용된다(롬 12:19;히 10:30). 아무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報應)의 원칙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것으로(히 10:30) 반드시 그들의 행한 악을 따라 갚으신다
(롬 1:27). 그러므로 핍박받는 성도들은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악을 악으로 갚지 말
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여야 한다'(살전 5:15). 그뿐 아니라 더 적극적
인 태도로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야 한다(벧전 3:9).

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ㅇ우리와 함께 - 여기서 '우리'는 바울 자신과 실라와 디모데를 가리킨다. 데살로니
가 성도들이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과 그외 동역자들도 그
들과 같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고후 11:23-28). 그뿐 아니라 바
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일체감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이 환난이나 안식에 동참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ㅇ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 '안식'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네신'으
로 본래 팽팽하게 당긴 활의 줄을 원래의 상태로 느슨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
다. 여기서는 '역경에서 해방되다', '수고를 그치고 쉬다'는 휴식(休息)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바울은 그들이 믿음 때문에 무고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 고난
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결국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게 되는 과정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ㅇ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다 장엄하게 묘
사하고 있다(Calvin). '저의 능력의 천사들'이란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있는 존재들로
서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보내진 존재들이다(마 13:49;24:31;살전 4:16). 성경
은 종말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종종 심판과 천사들을 결부시켜 언급한다. 예수 그리스
도께서는 그날에(10절)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마 16:27,
Gloag).
ㅇ하늘로부터 불꽃중에 나타나실 때에 - 여기서 '때'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때,
곧 대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위엄 가운데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이다. '하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우라누'로 여
기에서는 단순히 문자적으로 '공중'(air, 행 11:6), '하늘'(sky, 계 6:14)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heaven,마 5:16;계 3:12) 곧 '하나님의 보좌'(마
23:22;막 6:41)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이땅에 오셨고(요 3:13), 다시 그곳
으로 승천하셨으며(벧전 3:22), 또 다시 재림하실때에 천사들을 대동하고 그곳에서 내
려오실 것이다(마 24:30). 이것은 심판의 확실성을 보여주고 있다(官村武天). 한편
'나타나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세이는 일반적으로
'계시', '폭로',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종말론적 의미로서(롬
8:19;고전 1:7) 마지막 날에 감추었던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게 됨을 가리킨다(TDNT).
즉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는 비밀에 싸였던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실 뿐 아니라 이 세상
의 모든 일들을 숨김없이 밝혀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가 '불꽃중에' 오신다고
진술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주권과 영광과 위엄을 나타낸다(출3:2;사 66:15;계
1:13-15).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ㅇ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 여기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이 말이
이방인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갈 4:8) 견해(Robertson). (2) 이 말이 이방인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누구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려는 은혜와 지식을 거절하는 자
들을 가리킨다는 견해(Leon Morris).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 구절 다
음에 사용된 접속사 '카이'가 어떤 의미로 사용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
야한다. '카이'가 일반적으로 '그리고'란 의미로 사용되지만 '즉'이란 의미로도 사용
된다. 만약 '카이'가 '그리고'의 의미라면 첫번째 견해가 타당하며 '즉'의 의미라면
두번째 견해가 타당하다. 그렇지만 본절에서 '카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분명
하게 단정지을 수 없으므로 두 견해 모두 어느 정도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ㅇ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 - 여기에서도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 유대인 선동가들과 이방인 읍장들이라는(6절;행 17:5-9) 주장(Robertson). (2) 전
반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병행 관계로 보고 앞구절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들었지만 그 궁극적 계시를 무시하는 자들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Leon Morris). 그렇지만 앞구절에서 설명한 바대로 접속사 '카이'
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따라 본 구절의 해석이 달라지므로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
구인지에 대해 단정지을 수 없다. 아무튼 바울은 본절에서 구원의 종말적 계시를 거부
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복음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
조하고 있다.
ㅇ형벌을 주시리니 - 본 구절은 히브리적인 표현법이다(Leon Morris). 구약성경에서
형벌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집행할 수 있는 그분의 전유물로 소개되어 있다(신 32:35).
그런데 그 형벌의 집행권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진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ㅇ이런 자들이 - 여기에 쓰인 헬라어 '호이티네스'는 질적인 면을
나타내는 관계대명사로 '이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선행절
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븍음을 복종치 않는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은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ㅇ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 여기서 '주의 얼굴'이란 '주의 임재' 또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주의 얼굴을 떠난다'는 것은 악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게 되는 영광과 기쁨으로부터 단절,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Alford). 또한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난다'는 것은 형벌의 또다른 측면을 보
여주는 것으로 지금 악행하는 자들이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타나실 때에는 그 영광 앞에서 그 힘이 무력해질것을 시사한다. 주의 영광스런 '능력'
에 의해서 그들의 사악한 행동은 심판을 받고 주님으로부터 영원히 쫓겨날 것이다.
ㅇ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멸망'의 헬라어 '올레드론'
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린다'란 의미로서 단순히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몰락하여 삶의 의욕이 송두리째 박탈된 상태를 말한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
으로부터 분리되어 삶에 대한 가치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마 7:23;8:12;눅
13:27). 한편 '형벌'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켄'은 단순히 범죄자에 대한
형벌을 가리키는 '콜라시스'나 감정에 치우친 형벌을 가리키는 '티모
리아'와 달리 공의에 입각해서 충분한 심리(審理) 절차에 따라 이루
어진 형벌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 구절에서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 악인에 대한 하나님
의 형벌이 공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10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ㅇ그 날에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테 헤메라 에케이네'
는 보통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다(사 2:11, 17). 성경에는 '그 날'의 시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직 '그 날'은 하나님께 속한 권한으로(마 24:36) 언급되며 예수께서는 '그 날'에 대
한 징조들을 언급함으로써 성도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하셨다(마 24:3-51;눅
21:10-36). 한편 '그 날'은 악행하던 자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날이 되겠지만 성도들에
게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기쁨과 영광의 날이 될것이다(7절;2:1;살전 4:17).
ㅇ강림하사 - 그리스도의 강림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므로 바울은 강림하시는 예수
의 모습에 대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라는 묵시 문학적인 용어로 묘사하였다.
ㅇ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 '성도들에게서'와 '모든 믿는 자에게서'란 구절 앞에 헬라어 성경에는 '엔'
(...안에서)이라는 전치사가 삽입되어 있다. 이대로 직역하게 되면 성도들이 영광을 반
사(反射)하는 자가 될 것임이 강조된다. 즉 그리스도는 자신이 택한 백성의 삶 속에
거하시면서 그들을 통하여 영광받으실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신다(시 89:7). 더욱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의 영광이 너무도 찬란하고
놀랍기 때문에 기이히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행
하신 일로 인하여 그날에 성도들은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갈이 바
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그 영광을 소망하라는
암시와 함께 그들이 당하는 핍박과 박해 속에서 낙심치 않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확신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ㅇ이러므로 - 본절은 헬라어 접속사 '에이스 호'를 사용하여 앞문단 전
체(5-10절)에 언급된 내용을 압축하면서 동시에 이후에 진술될 내용이 앞 진술의 결론
적 교훈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에이스 호'는 '이 목적을 위해서'라는 뜻으로 직역될
수 있다. 골 1:29에도 이와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ㅇ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
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고, 그들의 영적 상태에 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 나가며(엡
4:13-16), 고난 가운데서 승리하는 신앙을 유지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ㅇ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함에 있어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에 기초하여 간구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구원을 얻기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Thomas L. Constable). '부
르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세오스'는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에서
복음의 특권을 얻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롬 11:29;엡 1:18) 본절
에서는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부여되는 특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ㅇ모든 선을 기뻐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도키안 아가도쉬네스'
는 직역하면 '선의 욕구'란 의미로 성도들이 맺어야 할 성
령의 열매 중 한 부분이며(갈 5:22, 23) 올바르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끊
임없이 추구하는 활동적인 성품을 뜻한다. 그래서 혹자는 본 구절에 대해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 속에 있는 선한 의지를 일깨우셔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시는
것으로 해석한다(Leon Morris). 이 해석은 다음에 이어지는 '믿음의 역사'란 표현과
부합된다.
ㅇ믿음의 역사 - 살전 1:3에도 이와 동일한 표현이 나오는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
들이 가졌던 처음의 믿음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하고 있다(Robertson). 믿음은
결코 정지(停止)하거나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동적인 행위를 동반한다(약
2:20-26). 이에 대해 혹자는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하나님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
의 능력을 사용하기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Leon Morris). 본절에
서 '믿음의 역사'란 믿음을 통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맺은 열매 자체를 가리키는것으
로 봄이 더 타당하다.
ㅇ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 바울은 앞에서 언급된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
사'가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즉 모든 선한 성품과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그것을 위
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모든 선한 마음과 믿음의 일 둘 다 인간의 힘으로 이루
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것들을 이루기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야 했다.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ㅇ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 본 구절은 어려운 문장 구조로 이루
어져 있다. 본 구절에 대하여 크게 다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하나님과 주'는
헬라어로 '데우'와 '퀴리우'인데 이 두 단어 중에 하나님
앞에만 관사가 사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하나님이며 주(主)이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석될 경우 본 구절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된다(Robertson). 혹자는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는 고유
명사처럼 관사가 없이 사용될 수 있기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 구
분하여 해석하기도 한다(Leon Morris, Gloag).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오는 1절;2:16;
살전 1:1;3:11 등에서 성부와 성자가 서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본 구절은 후자의 견해
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ㅇ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 '이름'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노마'
는 그리스도를 지칭할 경우,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위엄과 주권과 능력을
가리킨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여 복음을
전파했다. 또한 '너희 가운데서'란 표현은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밀접한 통일성을 나타
내는 말이다(요 15:1-11).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ㅇ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
서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성도들은 주안에서 그와 함께 영광
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주께서 그들 속에 계시고 그들이 주 안에 거하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다(롬 6:11, 23;고전 1:5). 바울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롬 4:16;11:5, 6;엡 2:5, 8).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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