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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데살로니가후서

[스크랩] 데살로니가후서 - 내용: 1. 시작하는 말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2:02

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


I. 시작하는 말 (1:1-12)

1.소개와 인사(1:1-2)

가. 송신자

1바울과 실라아노와 디모데는...

바울은 전서에서와 똑같이 본서의 서두에서도 자신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기록하고 있다(살전 1:1의 주석을 보라).

나. 수신자

1....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바울은 본서의 대상에 관하여,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1절 하반) 라고 한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신자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점을 강조하는 우리라는 말이 첨가된 것 외에는 전서와 똑같다(살전 1:1의 주석을 보라).

다.축도

2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찌어다(2절)라고 축도한다. 전서와 다른 점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가 첨가되어 있는 것이다. 이 첨가어는 전치사 아포(부터)와 함께 '은혜와 평강'(살전1:1의 주석을 보라)의 근거를 표시하는 것이다.

2. 감사와 기도(1:3-12)

가.감사의 이유

3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4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화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대체로 바울은 편지를 쓸 때에 보내는 자와 받는 대상을 밝힌 후에 축도를하고, 이어서 받는 대상에 대한 감사와 기도를 기록하고 있다(롬1:8-9,고전 1:4,엡1:16,빌1:3-4,골1:3,딤후1:3,살전1:2,몬4 등).
본서에서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3절)라고 한다.
우리가.. 감사할찌니는 유카리스테인 오페이로멘으로서,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 또는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강한 표현이다.
감사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오페이로멘은 이곳과 2:13에서만 나오는 표현인데, [이는 바울이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암시해 주고 있](토마스,p.298).렌스키나 히에벨트(Hiebert)1)는 [데살로니가가 교회 형제들의 괄목할 만한 진보나, 그들 사이의 특별한 필요성에 의해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개인적 의무를 지칭하는 언급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롬1:14,고전 9:16,17). 왜냐하면 동사 오페일로(... 해야만 한다)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무만을 뜻하기 때문이다(토마스.p.298).
이것이 당연함은.. 이란 카토스 악시온 에스틴으로서, 감사해야만 한다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다.

바울은 자기 일행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유를 가리켜,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3절 하반)라고 설명한다.
전서의 감사의 이유가 단순히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살전 1:3)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짧은 기간 동안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역사하는 그 '믿음'(피스티스,살전 1:3의 주석을 보라)이 더욱 자랐고, 수고하는 그 형제간의 '사랑'(아가페,-살전 1:3의 주석을 보라)도 풍성해졌음(비교:빌4:17,골1:6,10)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의 기도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서 3:10에서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었고, 전서 3:12에서는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넘치게 하사"라고 기도하였었다.

믿음과 사랑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을 보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 감사한 바울은, 이번에는 다른 측면에서2)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4절)고 하여, 그들의 소망을 암시해 준다.
핍박과 '환난'(틀리프세신,-살전 1:6의 주석을 보라)의 전자는 디오그모이스로서,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복음의 적대자들에게서 받는 압력이나 고통 등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파신,) 핍박과 환난들이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 때문에 온갖 종류의 고통과 어려움을 반복해서 겪어 왔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참조: 살전 1:6,2:14,3:2-5).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잘 참아내고 있었다.
너희 '인내'(살전 1:3의 주석을 보라)와 믿음의 믿음은 피스테오스로서, 여기서는 믿음3)이라기보다는 '신실함 또는 충성'4)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롬 3:3, 갈5:22,딛2:10). 전자를 취하는 이들은 인내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의 믿음이라고 하지만, 이미 바로 앞에서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라고 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 믿음의 결과인 인내와 신실 또는 충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믿음의 인내와 신실함 때문에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여러 교회'(살전 2:14의 주석을 보라)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4절 하반)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바울 일행이 당시의 모든 교회를 일일이 방문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 때로는 방문하여 자랑한다는 뜻이다.
목회자들의 자랑거리란 모든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의 인내와 신실성을 보여 주는 성도들인 것이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핍박과 환난의 종말적 의의에 대해,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5절)라고 말한다.
원문에는 이는 이 없다. 그러나 문맥상 본절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의 주어는 '핍박과 환난'일 것이기 때문에 개역 한글판 성경에 이는을 붙인 것이다.
본절의 요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현실 생활에서 받고 있는 핍박과 환난 그리고 그에 대한 인내와 신실함(A.클라케, 차프멘, 에어하트)이야말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엔더이그마,;증거)라는 것이다. 헨드릭슨은 더욱 자세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핍박과 환난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은 그의 심판이 공의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어떤 이들5)은 이 귀절 속에 현재의 심판이 언급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엔데이그마와 어원이 같은 엔데익시스는 보통 시행 중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사용하는 말이며, 베드로는 현재의 고통을 하나님의 심판의 국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벧전 4:17). 그러나 이후에 나오는 진술(6-10절)에 비추어 보아 현재의 심판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으로 이해해야 한다.6) 물론 이 최후 심판은 이미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요3:19).
또한 엔데이식스는 빌립보소 1:28에서도 사용됐는데, 거기서도 성도에 대한 대적 행위가 대적자에게도 멸망의 빙거요, 대적 행위의 대상인 성도에게는 구원의 빙거라고 하였다.

바울은 핍박과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더욱 위로와 힘이 되는 놀라운 사실을 진술한다. 즉 그러한 고난은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살전 2:12의 주석을 보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5절 하반).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하려 함이니에 사용된 카락시오테아니는 악시오보다 강한 말로서, '가치 있다고 선언하였다','가치 있다고 판단한다'를 의마한다. 그러나 핍박과 환난 중의 인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은 주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은혜로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밝혀 주는 하나의 증거가 바로 세상에 의한 핍박과 환난이요, 그에 대한 인내인 것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겪는 고난이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7) 고난을 받느니라고 한다.
또한에 대해서는 (1)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이라는 설,8) (2) 바울이 고난받는 것처럼 너희가 또한 이라는 설(프레임,김용옥), (3)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고난받는 것처럼 너희가 또한이라는 설(토마스,p 302)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천국 백성들인 신자들이 고난받는 것처럼 너희가 또한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떠한 길을 걷든지 인생에는 고난이 따르게 마련이다. 문제는 고난의 유무가 아니라, 고난의 원인과 내용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복음 또는 천국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인 것이다. 이러한 고난을 받는 자에게는 반드시 주께서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신다. 온갖 박해와 핍박 그리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한 바울9) 자신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고 고백하였다.

나. 하나님의 공의

6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형벌을 주시리니 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믿는 자의 핍박과 환난을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지어 설명한 바울은,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6절)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7절 상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공의란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몫을 돌려주는 것이다. 현재 신자를 핍박하여 환난받게 하는 자에게는 환난으로 보복하시고, 환난 받는 신자에게는 안식으로 보상하신다. 이 사상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한 이방 민족들을 처리하신 하나님의 행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시 137:3-9,사13:23장,렘43-51장,암1:3-2:3등). 우리와 함께는 바울과 실로나오와 디모데 등과 함께라는 뜻이다.

안식은 아네신으로서,긴장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의미한다. 이 말은 고린도후서 2:13과 7:5에 나오는 '마음이 놓이다,'또는 '쉬다'와 동일하다.여기서는 주의 재림의 날에, 성도들은 모든 환난으로부터 벗어나서, 주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김용옥).
바울은 주의 재림의 광경에 대해,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7절하반)라고 설명한다.v 저의 '능력'(살전1:5의 주석을 보라)의 천사들10)에 대해 (1) "능력"이 "천사들"을 형용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천사들'이라는 설,11) (2)"능력"이 "저의"와 연관되어 "그리스도의 능력"의 도구인 "천사들"12)이라는 설이 있는데, 많은 학자들의 견해인 후자가 더 적합하다.
결국 [주께서 심판자로서의 권능을 가지고 천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종말적 구주가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 온다는 것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 흔히 보는 사상이다. 다니엘서 7장도 그 중의 하나이다](김용옥). 이 사상은 바울 서신 뿐만 아니라 신약 곳곳에도 나타난다(마13:41,42,16:27,24:31,32,막8:38,비교:유15,계14:19).
천사는 앙켈로스로서, 어느 종교에 있어서나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 존재가 천사이다. 천사의 표상은 인간적인 영역,혹은 신적인 영역에서 유출되어 나온다.

성서적 관점에 의하면 천사란 용어는 이중적인 의미, 즉 '하나님의 사자'와 '영적인 존재'로 사용된다. 구약의 초기저서에는, 하나님의 사자란 모두 영적인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적인 존재가 다 하나님의 사자는 아니다.포로기 이후의 구약 저서에는 이런 구분이 없어지고, 다만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이해되었다. 또한 구약의 천사는 천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구약 외전에 의하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천사 개념에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자연 현상을 조절하는 영으로 되어 있다. 신약에는 전통적인 천사론에 별로 보탠 것이 없다. 대체로 천사 출현은 예수의 사건과 결부되어 있다(13) (천사장들에 관한 것은 살전 4:16의 주석을 보라).
불꽃 중에의 불꽃은 N,A,K,L.P 사본 등에는 퓌리 플로고스(:a fire of flame)로, B,D,E,G,F, 사본등에는 플로기 퓌로스(flame of fire)로 되어 있으나(프레임)의미상 문제될 것은 없다.
불꽃은 신(사 10:17,비교:계1:14,2:18,19:12)또는 신의 현현을 묘사하는 것이다(출 3:2,사29:6,66:15,단7:9,행7:30).특히 불꽃은 하나님의 징벌의 심판을 나타낼 때에 사용되었다(사29:6,66:15,16,욜1:19,겔20:47).여기서도 재림주의 심판을 의미하고 있다(딤후 4:1,8,고후5:10).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는 직역하면, '하늘에서 나타나심에 있어'이다. 나타나심(아포칼뤼프세이)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시하는 말이다(살전 4:15-17의 주석을 보라).

바울은 주께서 재림하셔서 하실 일에 대해,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8절) 라고 설명한다.
바울은 주께서 재림하셔서 하실 일에 대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8절)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살전 1:5의 주석을 보라)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 대해, (1) 전자는 믿지 않는 이방인(롬1:19,21), 후자는 믿지 않는 이방인, 후자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지시한다는 설,15) (3) 에트네신(이방인)이 없고, 전자와 후자에 모두 관사(토이스,)가 있으므로 둘 다 불신자들을 지시한다는 설16) 등이 있다.
구약의 예레미야도 백성 (유대인들)을 향해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9:6)고 대언하였고, 이사야 역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1:3)라고 대언한 것,그리고 또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 해도 그토록 많이 거역한 것과 복음을 복종치 않은 것 등을 보아, 그들 역시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았다고 할 수 없다. 이점에 대해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책하셨다(요8:54,55).따라서 (3)설이 가장 적합하다. 사실상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나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이란 같은 의미의 표현이다(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의 인간들의 구원 문제나 복음을 듣지 못한 인간들의 구원 문제는 갈3:6-9의 주석을 보라).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본위로 사는 것 자체도 심판이기는 하지만(롬8절하반)라고 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시 79:6,렘10:25). 엄밀한 의미에서 형벌이란 주 하나님께만 속한 권위라고 생각되고 있다(신 32:35). 이것은 구약에서 주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것을 주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킨 실례의 하나이다(요5:22,27,행17:31,롬2:16,고전1:8-32이다(참조:행17:23-,엡4:18-,살전4:5).
그러므로 [죄 가운데서도 가장 비통한 궁극적인 죄는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그의 아들을 통하여 하시는 은혜로운 초청을 반대하는 죄이다 (참조 : 막12:1-12,롬2:8,10:16,21)](에어하트).
바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형벌의 구체적인 내용에 비해,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9절) 라고 설명한다. 직역하면, '... 영원한 멸망이라는 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이다.
영원한 생명(조에 아이오니오스)과 대조되는 영원한 멸망은 올레트론 아이오니온으로서,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말이다.
멸망(올레트로스,)이란 절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절멸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헨드릭슨).70인 역과 신약의 용법에서 그 말은 결코 이러한 의미(절멸)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격리되어, 삶에 있어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Schneider,Morris).17)
영생이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영원한 멸망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마25:41,46).

그러한 최후 최대의 형벌을 받은 사람들은, 이미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9절 상반)있는 사람들이다.
주의 얼굴에서 떠나란 예수와 함께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참조:사2:10(LXX)
).주의 얼굴을 떠나 추방되는 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형벌의 내용이기도 하다(마7:23,8:12,22:13,25:30,눅13:27).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는 심판의 날에 예수께서 행사하실 힘(이스퀴오스,) 즉 본래적이며 본질적인 능력에 의한 '영광'(독세스,-살전 2:6의 주석을 보라)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이 표현은 종말의 날에 주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재림의 날에 주와 불신자들의 관계에 대해 논해 온 바울은, 이제는 성도들과의 관계에 대해 논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10절).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하기오이스,살전 3:13의 주석을 보라)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엔독사스테나이,)는 재림 날에 주께서 그의 모든 신자를 부르시는 자리에서 그가 영광을 받게 될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영광은 주께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신자들이 함께 영광에 참여한다.원문에(그의 성도들 안에서)는 주께서 성도들 사이에서 홀로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도들이 함께 영광에 참여하는 자리에서 그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시사한다(김용옥). 이 사실을 가리켜 [상호간의 영광](바클레이)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의 우리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재림하신 주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10절 중반)고 한다. 즉 모든 성도에게서 놀라운 찬사를 받으실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그 모든 신자 가운데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포함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10절 하반)고 한다.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바울 일행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들은 그 증거를 받아 들여 믿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다. 기도

11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므로는 에이스 호로서, 직역하면 "그것을 위하여"이다. 여기의 호는 6-10절의 내용을 받는 관계 대명사이다. 그리고 그 대명사 앞의 에이스와 합하여 "그것을 위하여"라는 목적적 의미를 갖는다.18) 즉 바울은 독자들이 재림의 날에 어김없이 영원한 영광의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항상 기도한다는 것이다'(프로슈코메타,-살전 1:2의 주석을 보라).
기도의 첫 번째 조목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11절 중반)이다.
그 부르심(테스 클레세오스,)은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엡2:1)을,그의 은혜로 인한 믿음에 의해 구원하여(엡2:8)그의 영원한 영광을 나눌 자녀로 삼으신 것과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삶, 즉 선교적 삶을 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에 합당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A.마틴은 [우리는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삶을 살도록 권면을 받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엡4:1의 주석).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악시오세,:가치 있다고 인정하다)이다. 즉 합당하게 하시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서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다(비교:엡4:1 골1:10,살전2:12,빌1:27).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부르심에 합당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순복하는 것 뿐이다.
이 기도의 내용을 보면, 부름받은 자들 가운데 끝날에 합당하게 여김을 받지 못할 자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내퍼되어 있다.19)
기도의 두번째 조목은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1절 하반)이다.
모든 선을 기뻐함의 선이란 성령의 열매(갈 5:22)인 아가토쉬네스,)로서, 양선(갈5:22),의(시38:20), 즐거움(전2:1,5:4),후대,선대(삿 8:35,9:16),선(롬15:14,살후1:11)등을 뜻한다. 그리고 기뻐함은 유도키안으로서, 즐거움, 기쁨,뜻,소원,염원,결단 등을 의미한다. 두 낱말이 결합하여 나타난 것은 헬라어 성서에서는 이곳밖에 없다(프레임).

이 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관련짓는 설20)과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관련짓는 설21)이 있다.원문에는 인칭 대명사가 없이 파신 유도키안으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어느 설을 취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믿음의 역사'(살전 1:3의 주석을 보라)가 믿는 자의 믿음에 따른 행위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후자가 더욱 적합하다.
인간의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염원과 믿음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살전 1:5의 주석을 보라)에 의해서만 성취되리라는 것이 바울의 확신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르심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름받은 자들로 하여금 천국에 가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게끔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하는 목적에 대해,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 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2절)고 설명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하는 목적에 대해,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12절)고 설명한다.
성서에서 이름은 바로 그 실체, 즉 인격, 역량, 품성 등을 대변하는 것이다.

바울의 요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 주께서 영광을 얻으시게 되는 것이고,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영광을 얻으신 주 안에서 영광을 얻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와 성도의 상호 영광은 재림의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이르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살전 5:28의 주석을 보라)로 말미암는 것이다.
지금가지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독자들에 대해 항상 감사해야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유를 가리켜, 그들의 역사하는 믿음이 더욱 자랐고, 형제간의 사랑이 풍성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그들이 계속되는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믿음으로 잘 인내하고 신실하기 때문에 여러 교회에서 자기 일행이 친히 자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참고 있는 핍박과 환난의 종말적 의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최후 심판의 표이며, 그들이 천국에 합당하다는 판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겪는 고난은 천국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란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몫을 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현재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보복하시고, 환난받는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평안(안식)으로 보상하신다.
바울은 주께서 그의 능력의 도구인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신다고 한다. 이때 주께서는 심판자로서 모든 불신자들로 하여금 그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을 받게 하신다. 반면에 독자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놀라운 찬사를 받으실 것이다.

바울은 독자들이 실족함이 없이 영원한 영광의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또한 그들의 모든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염원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성취시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주께서 그렇게 생활하는 성도들 속에서 영광을 얻으시고, 성도들 역시 영광을 얻으신 주 안에서 영광을 얻도록 하기 위하 ㄴ것이다. 이와 같은 주와 성도의 상호 영광은 재림의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결과에 이르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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