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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로마서

[스크랩] 로마서 (16 : 1~27)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43
로마서 16장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ㅇ겐그레아 - '겐그레아'(Cenchreae)는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항구
도시로서 당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인 고린도의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바울은 2
차 전도 여행시 고린도에 도착하여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 교회를 세
웠는데(행 18:1-18), 바로 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복음이 그 주변의 여러 도시로 전파
되었고, 그 결과 세워진 교회 가운데 하나가 겐그레아 교회이다(고후 1:1, E.F.
Harrison).
ㅇ교회의 일군 - 이는 헬라어 '디아코논 테스 여클레시아스'                   
로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서 '디아코논'은 '디
아코노스'의 여성 목적격으로 '교회에서 섬기는 자', '사역자'라는
의미이다(KJV, NIV). 그러나 '집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RSV, JB, NEB). 초대 교회에
서 '집사'라는 직분은 회중의 인정을 받아 교회의 기물이나 그 밖의 봉사를 관장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남자들이 봉사하고 있었다(빌 1:1). 그러나 후에 여자들도 집사로 임
명되었다(딤전 3:11). 바울이 '뵈뵈'라는 여집사를 로마 교회에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여자들이 집사로 봉사한 사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벌써 알려져 있는 사실임을
볼 수 있다(Lenski). 집사직은 여인들도 자신들의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Murray). 당시 교회에서 여자 집사들은 심방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 그리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과 같은 남자들의 손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일들을 독
립적으로 담당했었다(Godet).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겐그레아 교회는 어느 정도 교
회 조직을 갖춘 교회로서 다른 교회보다 더 진보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ㅇ뵈뵈 - '뵈뵈'(포이벤)는 '밝다', '빛을 발하다'의  뜻으로 그녀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 추천할 정도로  겐그레아 교회에서  믿음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Murray). 바울은 '뵈뵈'를 '우리의 자매'(아델펜 헤몬)라
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육신적인 혈연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신자를 가리킨다(Robertson).
ㅇ천거하노니 - 바울은 뵈뵈를 로마 교회에 추천(推薦)하고 있다. '천거하노니'로 번
역된 헬라어 '쉬니스테미'는 신약성경에서 (1) '소개한다', '추
천한다'(고후 3:1;5:12)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에서는 '추천한다'의 의미이
다. 바울은 로마에 갈 계획을 세웠으나 곧바로 갈 처지가 안 되었기에(15:25) 다른 사
람을 통해서 먼저 본 서신을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 뵈뵈가 로마로 떠나려고 하
였으므로 그녀 편에 본 서신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뵈뵈가 본 서신의 전달
자라고 인정하는데 대부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Godet, Murray). 그녀가 본 서신의
전달자라는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녀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추론해 보
면 바울이 뵈뵈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히 추천한 사실과 뵈뵈가 로마에 도착한
시점에 로마서가 로마 교회에 전달된 사실을 통해서 볼 때 뵈뵈가 본 서신의 전달자라
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Lenski).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ㅇ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 바울의 이러한 언급은 로마 성도들의 열
렬한 환대의 전통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당시 이방인 신자들에 대한 유대 우월주의를
고려한 것이었다(Dunn). 겐그레아 지역에서 바울의 서신을 가지고 당시 제국의 수도
로마를 방문하는 뵈뵈에게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가 걱정
이 되었을 것이다. 혹 그녀를 배타적으로 여기거나 그들의 우월감으로 천시(賤視)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의 기쁜 소식을 가지
고 로마 교회를 방문하는 뵈뵈를 로마 교회가 정중하게 영접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
이다.
ㅇ보호자 - 이는 헬라어로 '프로스타티스'로 일반적으로 남성에
게만 사용되는 단언이다. 즉 어떤 공동체의 합법적인 우두머리나 대변인을 뜻할 때 사
용되어졌다(Bauer). 당시 여인들은 법적인 기능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으
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유일하게 여성형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어려울때나 위급할 때 도와주는 '후원자', '구원자', '조력자'
(helper, NEB)라는 의미를 가진다. 헬라 문화권에서 후원자, 또는 보호자로서의 역할
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물질이 부유한 사람들이었다(Dunn). 여자의 경우에 있
어서도 당시에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이 단어
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바울은 그의 선교 사역에 경제적 도움을 준 뵈뵈의 따뜻한 배
려에 관해서 그녀를 '보호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사실로 보아 뵈뵈는 부자였고 사
회적으로 유력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ㅇ동역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르구스'는 '함께 일하는
사람', '돕는 사람'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는 대부분 바울 서신에서 사용되어졌는
데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이 용어를 사용했다. 첫째, 그의 동역자들을 지칭
함으로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그들의 권위를 강화시켜 주기 위해 사용하였다. 둘째,
바울 자신 역시 동역자로 언급함으로 모두 다 하나님의 조력자들이며 함께 하나님 나
라의 사역자들이라는 점을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G. Kittel).
ㅇ브리스가와 아굴라 - 바울은 그의 동역자 중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언급하고 있
다. 이들은 부부로서 바울이 고린도를 전도할 때 만났던 사람들이다(행 18:2). 그들은
원래 로마에서 살았으나 로마의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의 유대인 추방 명령 때문
에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살고 있었다(행 18:2). 또한 그들은 바울과 동일한 직업인
장막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울과 함께 평상시에는 그들의 집에 거하면서
장막을 만들었으며 또 한편으로 복음을 힘써 전하였던 것이다(행 18:3). 여기서 브리
스가는 통상적으로 브리스길라(프리스킬라. 행 18:18)라고 불
려졌는데 이것은 앗시리아족의 여성을 나타내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다(Robertson). 바
울이 그들 부부를 호칭(呼稱)하는 데 있어서 대개 아굴라 보다 브리스가를 먼저 언급
하고 있는 것은 '브리스가'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더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또한 하
나님 나라의 진리를 이해하고 믿음의 도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자기 남편, 아굴라보
다 더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Bruce). 이는 행 18:23-26에서 나타난 바대로 그들 부부
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는 아볼로에게 믿음의 도에 대해서 자세한 교리를 가르친 것
에 대해 '브리스가'먼저 언급된 데서도 유추된다. 아무튼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행하여 에베소까지 갔으며(행 18:18, 19) 거기서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바울의 목회 사역을 돕다가 글라우디오 황제가 사망하자 바울이 로마서를 뵈뵈의 편으
로 보낼 무렵에는 로마에 돌아갔던 것으로 추측된다(Harrison, Murray, Lenski).
ㅇ문안하라 - '아스파사스데'는 서신서에서 가장 일반적인 인
사의 형태로서 '아스파조마이'의 제 1부정 과거 2인칭 복수 명
령형으로 '너희들이 문안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인사를 사랑의 표현만큼이나 매우 중
요한 것으로 여겼다(1:7;고전 1:1-3;고후 1:2;갈 1:2, 3). 특히 본절에서는 멀리 떨어
져 있는 사도가 명령형을 사용하여 그의 독자들에게 서로 문안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H. Windisch).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ㅇ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 바울의 복음 사역을 조
력(助力)함에 있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이 어느 정도인지 잘 표현되어 있다.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톤 테아우톤 트라켈론 휘
페데칸'으로 '사형 집행
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 놓다'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핍박의 손길에서 바울의 생명을 구하고자 극단적인 위험을 겪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인 표현이다(John Murray, Dunn). 이 사건이 고린도에서 일어났는지(행 23:12),  아니
면 에베소나 그 밖의 지역에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언제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Godet, Meyer). 아마도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와 유대인들이 폭동(暴動)을
일으켜 바울의 목숨을 해하려고 할 때 바울의 생명을 구하려고 온갖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쓴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행 19:28-31;고전 16:8, 9, 19). 그러
나 확실한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일
사 각오로 생사 고락을 함께 하였다는 점이다(Meyer). 이처럼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자
신의 복음 사역을 돕기 위하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한 것에 대하여
바울은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복음 사역을 위하여 희생적으
로 사역자들을 도운 그리스도인 부부의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준고 있다.
ㅇ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희생적인 헌
신으로 복음 사역을 도와준 것에 대해 바울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 교회까지 감사와 경
의를 표하고 있다.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약간은 과장적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
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듯하다. (1) 헌신적으로 조력한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대한 바
울의 존경과 경의뿐 아니라 그들의 영향과 그 소식이 넓은 지역으로까지 퍼져 있었음
을 엿볼 수 있게 한다(Dunn). (2) 본 서신의 수신자들인 로마의 성도들이 그들의 모본
을 따르도록 한다. (3) 바울의 이방인 선교 사역에 많은 신실한 동역자들이 헌신적으
로 그를 도와준 것에 대해 말함으로써 로마 성도들에게 이방인 복음 사역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도록 한다.

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ㅇ저의 교회 - '저의 교회'                                                 
(텐 카트 오이콘 아우톤 여클레시안)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로마 가정 교회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Meyer). 바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독립된 교회 건물보다는 성
도들의 가정집을 정규적인 회합(會合)의 장소로 사용한 것이 보편적이었으며(10, 11,
14, 15절;고전 16:19;골 4:15) 몇 개의 가정 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
었다(Dunn). 여기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 교회로 로마의 전체 교회에 포함된 하
나의 교회에 불과하다.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에서 대표적인 가정 교회는 마가의 다
락방(행 1:13), 빌립보에 있는 루디아의 집 (행 16:40),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
(몬 1:2),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의 집(골 4:15)등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중심
한 신앙과 참된 형제애로 이루어진 가정 교회는 초대 교회의 신앙과 생활상을 알려주
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ㅇ에배네도(에파이네토스) - 이것은 '칭찬을 받을 만한'이라
는 뜻을 가진다. 그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중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인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는 과정에서 얻은 최초의 이방인 회심자로 여겨진다
(Godet, Meyer, Dunn). 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함께 바울의 전도를 받아 회심한 자
였다(Dunn). 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함께  바울의 전도를 받아 회심한 자였다
(Dunn). 그후 자연스럽게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 교회에 속해 함께 일을 도우면서
에베소에서 로마까지 복음의 동역자로 함께 수고한 것으로 보인다(Godet).
ㅇ아시아에서...열매니라 - '에배네도'를 가리켜 '아시아에서 처음 익은 열매' 
(아파르케 테스 아시아스)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뒤이어 많은 사람의 열매가 맺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암시한다(고전 16:15, 16). 또한
바울은 그를 가리켜 '사랑하는'(아가페톤)이라는 수식어를 쓰고 있
는데 이것은 에배네도가 아시아의 첫 개종자로서 주의 사역에 대해 열심이 있었음으로
바울이 그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ㅇ마리아 - 헬라어는 '마리안'으로 이름의 뜻은 '높여진 자'이다. 어
떤 사본(P46, D, F, G)에는 히브리어형인 '마리암'으로 나온다. 이
이름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을 나타낸다(Robertson, Dunn). 신약성경
에는 마리아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7명의 여인이 나온다. (1) 예수의 어머니(마
1:16;막 6:3;눅 1:41), (2) 막달라 마리아(마 27:56;막 15:40;눅 8:2), (3) 야고보의
어머니(마 27:56;막 15:40), (4) 글로바의 아내(요 19:25), (5) 마르다의 동생(눅
10:39;요 11:1), (6) 마가 요한의 어머니(행 12:12), 마지막으로 본절에 나타난 마리
아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신앙이 훌륭한 여인들이었다. 본
절에 소개된 마리아에 대해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이란 표현 이외에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간단한 소개로도 우리는 (1) 그녀가 로마 교회 초창기
(草創期)의 한 회원이라는 것과 (2) 로마 교회가 그녀의 수고와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과(Murray) (3) 뵈뵈나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활동적으로 바울의 사역에
참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처럼 바울의 배후에서 그의 선교 사역을 헌신
적으로 지원해왔음을 알 수 있다(Godet).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ㅇ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이스'는 문자 그대로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9:3에서처럼
'골육'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
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
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Lenski, Murray). 또
한 이들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소개한다(고후  6:5;11:23).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
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된 자'란 뜻이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언제 감옥에
갇혔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
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브루스(Bruce)는 그곳이 에베소였을 것이라고 추측한
다.
ㅇ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 '사도에게'를 가리키는 헬라어 원문은 '엔 토이스
아포스톨로이스'로 복수 여격을 취하고 있다. 이 말의 일차적인
뜻은 그들이 사도들에게 잘 알려졌다는 의미도 있지만(Kasemann) 넓은 의미로 보면 주
님이 직접 세운 사도를 제외한 다른 사도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
하면 사도를 지칭하는 '아포스톨로스'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
께서 선택하셔서 세우신 열두 사도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12제자 이외의 제자들도
포괄하여 의미하기 때문이다(고후 8:23;빌 2:25, Dunn, Bruce). 또한 칼빈(Calvin) 역
시 여기서는 제자들의 개념을 확대 적용해서 사도들처럼 여러 곳에서 선교 사역을 감
당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유명히 여
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세모이'는 '에피 세마'           
('도장을 찍은')에서 파생된 단어로 신약성경에서 본절과 마  27:16에서만 사용되었
다. 본절에서는 좋은 의미로 '유명한', 혹은 '뛰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마태복
음에서는 나쁜 의미로 '소문난', '이름난'이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 구절이 의미
하는 바는 이 두사람(안드로니고와 유니고)이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
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으 사역을 돕는 사도들
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특별히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다는 것이다(Murray).
ㅇ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왜 높이 평가
받고 있는지를 말해준다(Lenski).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回心)
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
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
합될 수 있었을 것이다(Murray).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ㅇ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 어떤 사본에서는 단축형 '암플리아스'
로 기록되기도 한 '암블리아'는 라틴식 이름 '암플리아투스'(Ampliatus)의
축소형이다(JB, NIV, RSV). 이 이름의 뜻은 '큰' 또는 '많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이름은 당시 로마에서는 흔했으며 특히 황제의 가문에 많이 사용되었다(Bruce).
초기 기독교 묘지나 카타콤의 비문에도 이런 이름이 발견된다. 바울은 암블리아에 대
해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매우 다정한 수식어를 사용하여 특별히 개인적인 애정을 고
백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바울과 그의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이 깃든 교제가 있었
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관계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
를 통해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ㅇ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 '우르바노'(우르바노스)는 '세련
된', '우아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이름은 일반적으로 로마 노예의 이름이다
(Godet, Hendriksen, Murray). 바울이 그를 가리켜 '우리의 동역자'라고 말하는 것으
로 보아 그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
들도 도와주었음을 알 수 있다.
ㅇ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스타퀸) - 신약성경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언
급은 없으나 '나의 사랑하는'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도 역시 바울 사도와 개인적
인 친분 관계가 있던 자로서 암블리아와 같이 바울의 사랑을 받은 로마의 성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이름이 귀족의 비문(碑文)에 나타난 것을 볼 때 황제의 가족에 속한
자라고 여겨진다(Gifford).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ㅇ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벧레(아펠렌) - '특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또한 황
제 가문이나 로마인들 사이에도 종종 발견되는 이름이다.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
서 인정함을 받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로는 '톤 도키몬 엔 크리스토'  
로 여기서 '도키몬'은 아벧
레가 어떤 극심한 시련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단단히 받았음을 시사한다(Lenski,
Murray). 이것으로 보아 그가 자기에게 임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다.
ㅇ아리스도불로의 권속 - 아리스도불로는 헤롯 왕의 손자였으며, 아그립바(Agrippa)
와 형제였다(Dunn). 당시 그는 로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으며 또한 로마 황제 클라우
디오의 친구요 추종자였으며(Josephus),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Meyer).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른 황제의 집안에 귀속(歸屬)되어 그들
의 신분이 유지되었고 그의 집안의 노예들과 자유인은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Dunn). 혹자는 그들 가족 중의 일부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라고 추론
한다(Lightfoot). 즉 바울은 그의 권속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리스
도불로 아래 있었던 노예들과 일꾼들이었을 것이다.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ㅇ헤로디온 - 바울은 7절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처럼 '헤로디온'도 자기의 '친척'
이라고 부른다.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는 7절에서 언급
한 것처럼 바울의 가까운 '유대인 동료',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뜻한다. 윌리암
람세이(William Ramsay)는 '헤로디온'은 문자 그대로 바울의 친척이 아니라 다만 바울
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유대인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다. 헬로디온은 아리스도 불로의
권속처럼 헤롯의 가계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Lightfoot,
Murray). 바울은 주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 활동을 폈지만 항상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
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동족 중 대부분이 현재는 비록 복음을 거절하
고 있지만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1:1-6).
ㅇ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나깃수         
(나르킷수)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나르킷수스(Tiberius Claudius
Narcissus)라고 하였다(Calvin, Lenski, Bruce, Murray). 이 사람은 로마 황제 티베리
우스(Tiberius)의 노예의 신분으로 있다가 해방된 자유민으로서 권모 술수(權謀術數)
에 능한 부자였다고 한다(Gifford).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 치하에서 권력
을 휘둘렀던 자로 A.D. 54년에 네로(Nero)가 즉위한 직후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
(Agrippina)의 미움을 사서 그녀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Lightfoot). 그
의 죽음 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 되었는데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와 구별하기 위하여 나깃수에게 속한 모든 노예들에게 아리스도불로
의 권속처럼 '나르키시아니'(Narcissiani)라는 명칭을 붙였다(Bruce). 권모 술수에 능
하고 극악 무도한 나깃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 권속들 중의 일부와 노예
와 가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바울은 나깃수의 권속에 속한 종들로서
그리스도인된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하고 있다. 이는 나깃수의 권속 중 '주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는 어구가 지지해 준다. 이렇듯 바울 사도는 그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회있을 때마다 그들
에게 문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ㅇ드루배나와 드루보사(트뤼파이난
카이 트뤼포산) - 이 두 이름의 뜻은 '화사하다' 혹은 '우아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
다. 이 이름은 동일한 어근 '트뤼파오'('호화롭게 생활하다')에서 유래
된 것으로 아마 이들은 같은 자매였을 것이다(Godet, Dunn). 또한 쌍동이였을 가능성
이 크다(Robertson). 왜냐하면 당시 같은 어근에서 유래된 이름들은 쌍동이를 나타내
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같은 이름은 귀족 계층에 어울리는 이름으로서
그들은 당시 귀족 집안의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Harrison). 바울은 그들을 '주 안
에서 수고한'(타스 코피오사스 엔 퀴리
오) 자들이라고 칭찬하고 있는 바, 그들이 귀족적인 풍요로운 생활에서 안주(安住)하
지 않고 열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며 헌신하였음을 보여준다.
ㅇ사랑하는 버시 - '버시'의 헬라어는 '페르시다'로 '페르시아 여
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외국인들은 흔히 그들 출신 지역을 따서 이름을
명명하곤 했다(Godet). 이러한 이름은 로마나 기타 다른 지역에서 헬라어나 라틴어로
쓰여진 묘비명에서 노예나, 자유인 여자의 이름으로 발견된다(Bruce). 대부분의 주석
가들은 이런 점을 참고하여 그녀가 해방된 여종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Dunn). 바울은 에배네도, 암블리아, 스다구에 대해서는 '나의 사랑하는'이란 말을 붙
였으나, 여기서는 그냥 '사랑하는'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그녀가 독신녀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였으므로 바울 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사랑하는'
여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Harrison). 시제상 앞의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 대해
서는 현재 시제를 사용했고 '버시'에 대해서는 과거 시제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의미
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추측해 보건대 '버시'가 수고를 많이 한 것은 이미 지난 날
이었고 사도가 편지를 쓴 현재는 아마도 나이든 노령(老齡)의 여인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연령이나 허약함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처럼 활동적으로 일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기에 시제를 과거로 썼는지 모른다(Murray, Godet).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ㅇ루포 - '루포'의 헬라어는 '루폰'으로 '붉다' 또는 '머리카락이 붉
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나 희랍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루포는 막
15:21에 언급되어 있는 루포와 동일 인물로서 골고다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진 바 있는
구네레 사람 시몬의 아들이다(Harrison, Meyer). 마가는 주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하였는데 그가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을 언급한 것은 로마 성
도들이 그들을 알고 있었고 특히 루포는 저희 교인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
일 것이다(Lenski). 바울은 루포를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 해
당하는 헬라어 '톤 에클레크톤'은 보통 의미의 '택하신
자'라기 보다는 다른 성도들에 비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사와 충성이 뛰어나게 구별
된 자임을 나타낸다(Meyer, Godet, Hodge, Murray).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영역본은
'톤에클레크톤'을 '주님을 탁월하게 따르는 분'(NEB, RSV)으로 번역하였다. 또한 그는
그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 겪은 십자가에서의 사건 때문에 로마의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명성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Harrison).
ㅇ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 루포의 어머니가 문자 그대로 바울의 친 어머니가
아니라 바울이 한때 그녀의 모성애어린 돌봄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을 암시한다
(Murray). 이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헤리슨(Harrison)
은 추측하기를 수리아 안디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바울이 루포를 생각할 때
면 반드시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회상할 만큼 그녀는 바울에게 특별한 존재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여 자기 가족들을 떠난 후에(빌 3:8) 인간
적으로 외로웠었는데 잠시 루포의 집에 유숙하는 동안 루포의 어머니가 그의 외로움을
알고 친아들처럼 그를 따뜻한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아주었던 것 같다(Godet, Moule).
따라서 그녀가 당시 로마에 있었다는 사실은 바울로 하여금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로
마 방문을 고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에게 특
별한 친애(親愛)와 존경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ㅇ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 - 이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름만
나오고 그들에 대한 칭찬이나 설명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과 바울
과의 유대 관계가 앞에 언급된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덜 강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모두 남성으로서 아마도 어떤 특수한 지역이나 직업에 종사하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Murray). 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노예나
혹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로 노예 계급중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라는 점이다
(Dunn, Sanday).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ㅇ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
- '빌롤로고'(필롤로곤)는 황제 가문의 권속들 중에 특히 노예나
노예에서 자유롭게 된 자들의 헬라와 라틴 묘비명에서 발견된다(Lightfoot). '율리아'
(율리안)는 로마 여성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름으로 황제 가문의 노
예들 사이에도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Lampe). 이들 둘은 한 부부이거나 오누이로서 황
제 가문의 노예로 생각되어진다. 또한 '네레오'(네레아)와 그 자매는 빌
롤로고와 율리아의 아들과 딸일 가능성이 있다(Dunn). '올름바'(올륌
판)는 올림피오도루스(Olympiodorus)의 약칭으로서 전로마 제국에 널려있는 흔한 이름
이었다. 앞절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로마에서의 다른 가정 교회이다. 그
러나 앞절과의 차이점은 본절에서는 '모든 성도'(판타스
하기우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구성원에 남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
로 이 단체가 여러 단체들 가운데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Lenski, Meyer). 이것으로
보아 이 도시에는 여러 구역의 가정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나오는 무리들도 로마의 여러 가정 교회 중 하나로서 정기적으로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Liddon).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ㅇ거룩하게 입맞춤으로 -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하는 표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는 습관
이 있었다(고전 16:20;고후 13:12;살전 5:26). 이와 같은 인사법은 전체적으로 고대
근동 지방에 퍼져 있었고 유대 전통에서도 이러한 유사한 인사법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당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랑의 표로 이를 실행했다(Dunn, Murray). 그런데
초대 교회의 이런 인사법은 결코 호색이나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과 거룩
한 형제애(兄弟愛)의 구체적인 표현인 것이었다(J. Calvin).
ㅇ그리스도의 모든 교회 - 이것은 특이한 표현이다. 바울은 대개 '하나님의 교회'(고
전 1:2;10:32;11:22;15:9;고후 1:1;갈 1:13;살전 2:14;살후 1:4;딤전 3:5, 15)라고 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특히 '교제'의 측면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이
용어를 선택하였다. 바울은 몇몇 경우에도 '모든 교회를'(all the churches)이라는 용
어를 사용하고 있는데(4절; 고전 4:17;7:17;14:34;고후 8:18;11:28), 바울 사도가 '모
든 교회들'이라고 할 때는 그의 선교 사역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본문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도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들은 실제로
서신을 통해서 바울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Dunn) 아무튼 사도가 여기서 모든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는 인사를 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그리스도의 모
든 교회의 일체감을 상기시키며 (2) 흩어진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로 함께
묶여져 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ㅇ권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로'는 전치사 '파라'
('곁에서')와 동사 '칼레오'('부르다')의 합성동사로 '곁에서
말을 걸다', '이야기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주의시키다', '경고하다'
의 의미를 갖는다.
ㅇ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 사도는 밖으로부터 들어온 거짓 교사들로
인해 위험에 직면해 있는 로마 교회를 위해서, 본 서신을 끝마치기 전에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여기서 '너희 교훈을 거스려'란 말은 헬라어 성경에 '파
라 텐 디다켄 헨 휘메이스 에마데테 포이운타스'로 되어 있어 '너희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란 말로 번역된다. 이 말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배운
복음의 진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렇듯 그들이 로마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 행동하
게 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로마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는 그들의 성격을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분쟁'에 해당
하는 헬라어는 '디코스타시아스'로 '떨어져서 있는 것', '쪼
개진 틈', '분열' 등을 의미한다. 거짓 선생들은 거짓 진리로 성도들을 현혹하여 배운
바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여 교회의 분열(分裂)을 조장하고 획책하였음이 분명하다.
ㅇ거치게 하는 자들 - 거짓 선지자들의 성격을 묘사해 주는 또다른  표현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칸달라'는 '덫', '함정', '길에 놓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사람을 잘못가게 해서 죄에 빠져들게 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의 분열을 조장하여 교회의 연합을 깨
뜨릴 뿐만 아니라 결국은 저희가 가르치는 교훈을 따르게 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치명
적인 죽음의 함정으로 빠지게 한다(Lenski). 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 즉 사단의 세력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본절에 나타난 거짓 선생
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들을 가리키는가? 이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골
로새서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자(Dodd). (2) 도덕 폐기론적 자유인(Lightfoot). (3) 유
대교적 열심분자들(Godet, Hendriksen). 여기서 (3)번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유대교적 열심분자들은 항상 율법과 복음을 혼합하여 사도들을 대적하고 교회를 어지
럽히는 세력으로서 복음 진리를 곡해(曲解)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초대 교회
안에는 이런 율법주의자들이 늘 문제가 되었다(Lenski).
ㅇ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 이 말은 바울의 지혜로운 훈계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
다(Dunn). 거짓 선생들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태도는 '살피고 떠나는'것이다. '살피
고'의 헬라어 '스코페인'은 목표를 계속 응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로서 '피하기 위하여 네 눈을 항상 뜨고 있으라'는 뜻이다. 즉 유혹받을 때 요구되는
경계의 태도로서 거짓 선생들에 대한 본질과 본성을 확실히 깨닫고 주의하라는 것이
다. '떠나고'로 번역된 헬라어 '여클리네테'로 '단번에 저희에게
서 돌아서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성도들이 거짓 선생들의 본질과 본성을 알았으면 그
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즉각 돌아서라는 의미이다.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ㅇ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 바울은 개역성
경에는 생략되어 있는 '왜냐하면'(가르)이란 말로 시작해서 거짓 선생들을 경
계하고 떠나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Murray). 거짓 선생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기의 주(主)로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자신을 섬긴다. 이들은 어떻게 해
서든지 교회와 성도들을 넘어뜨리려는 자들로서 순전히 동물적인 욕구에 지배를 받던
자들이었다(Dunn). 여기서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의 헬라어는 '둘류우신 알라 테 헤
아우톤 코일리아'                                                           
로 직역하면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라고 할 수 있다. 거짓 선생들은 자
기 욕망에 가득차서 복음을 구실삼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다(Bruce). '섬기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류우신'은 '종노릇하다'의 의미로 쓰이
지만, 크게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쓰인다. 여기서는 나쁜 의미
로서 '자기의 욕망이나 본능을 절대화(絶對化)하여 그 노예가 되어 섬긴다'는 뜻이다.
거짓 선생들의 이러한 삶의 양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으로 특징지워
진다(약 3:15). 이처럼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거짓 선생들의 심각한 위협 아래 있었다
(Godet).
ㅇ공교하고 아첨하는 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 '디아 테스 크레스톨로기아스
카이 율로기아스'                                                          
는 두 단어의 합성이다. 첫번째 단어 '공교하고'로 번역된 헬라어 '크레스톨로기
아스'는 신약성경 중 본절에서만 나오는 단어로서 '유용
한', '가치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크레스토스'와 '로고스'  
('말씀')의 합성어이다. 이 말의 의미는 '유창한 말', '분명하고도 수긍이 갈
만한 말', '멋있고 그럴듯한 말'이다. 두번째 단어 '아첨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율로기아스'는 '좋게', '행복하게'의 뜻을 가진 부사 '유'
와 '로고스'의 합성어로서 '축복', '아름다운 말', '칭찬'의 의미로 쓰이
나 여기서는 '그 자체는 매혹적이지만 진실하지 않은 능변', 또한 '속일 목적으로 듣
기에 좋은 말'로 쓰였다(Dunn). 따라서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은 진실이 없는 거짓말
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감언 이설(甘言利說)로써 성도들을 유
혹하여 속이는 데에 아주 능수 능란한 자들이다(고후 4;2;엡 4:14, Murray).
ㅇ순진한 자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아카콘'은 '악의
와 교활함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들은 남을 속이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므로 타
인에게서도 그런 것을 의심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다(J. Murray). 그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속기 쉬운 약점으로 말미암아 쉽게 기만당할 수 있고 멸망에 이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Harrison).
ㅇ미혹하느니라(에크사파토신) - 이는 전치가 '에크'
('~밖으로')와 '아파타오'('속이다', '유혹하다')의 합성 동사로서 '완
전히 속이다', '사기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거짓 교사들은 순진한 자들을 명망케 하
는 악한 계교를 꾸미며 기만한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서 즉시 떠나라고 경
고한 것이다.

19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ㅇ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 바울은 엄중한 경고를 한 후에 이제 로
마 성도들의 헌신과 신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Dunn). 비록 앞 구절에서 성도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바로 이어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이런 사태에 잘 대처해 나갈 수 있
을 것이라는 점을 로마 성도들의 진리에 순종하는 믿음에 근거하여 밝히고 있는 것이
다. 또한 로마 교회가 높은 평판에 걸맞게 거짓 선생들의 거짓된 궤휼을 올바로 분별
하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고 바울은 확신하고 있다(Harrison). '순종함'     
(휘파코에)이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 받은
교훈에 서서 행하는 믿음을 가졌음을 의미한다(Lenski). 이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
아닌 고로 순종치 않는 거짓 선생과 엄격히 구별되는 모습이다. 따라서 로마 교회가
거짓 선생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고를 그대로 순종하여 모든 유혹과 간계를 이기고
다시 한번 믿음에 굳게 선다면 이미 모든 지역에 잘 알려져 있는 로마 교회의 복음에
대한 순종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임을 모든 교회에 확증하는 것이다(Godet). 한편 '들
리는지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피케토'로 전치사 '아포'
('~으로부터')와 동사 '히크네오마이'('도착하다')가 합성된 동사로
서 신약성경 중 본절에만 나온다.
ㅇ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 두 단어 '지혜롭고'
(소푸스)와 '미련하다'(아케라이우스)는 거짓 교사들
의 계교에 대해서 민감하고 식별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Murray).
즉 로마의 성도들이 선한 것을 따르는 데에는 '지혜롭고' 악에 이끌리는 데에는 '우둔
함'으로써 거짓 선생들의 미혹(迷惑)에 넘어가지 않기를 강력하게 주의시키고 있다.
여기서 '미련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아케라이우스'는 고대 형용
사로 '악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이란 뜻이다. 이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다'(마 10:16)에서 '순결하다'(아케라이오이)와 같은 단어로
서 원래 순수하여 죄가 없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와 유사한 의미로서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나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고 권면한 바 있다.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ㅇ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 이 표현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는 하나의 약속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사단과 싸울 것을 권면하면서 확실하고 신속한 승리가 그들에게 주어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Calvin). 한편 '평강의 하나님'(15:33;고후 13:11;빌 4:9;살전
5:23;살후 3:16;히 13:20)이라는 말 속에는 자기 백성들을 분열시켜 불안을 조성시키
는 악한 세력들로부터 보호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마침내 승리를 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는 말은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창 3:15)이라는 말씀을 비유하여 사
용한 것으로서 사단이 성도들에게 거짓된 교훈을 가지고 올 때 하나님이 성도들의 발
아래서 사단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Lenski). '상하게 하시리라'로 번역된 헬라
어 '쉰트마세이'는 미래 능동태형으로 '함께 으스러뜨리다', '눌
러 으스러뜨리다', '짓밟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단에 대하여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실 것이라는 축복된 약속을 강하게 시사한다(Robertson). 즉 종
말에 믿는 자가 얻는 궁극적인 승리는 믿는 두 가지 요인, 곧 하나님의 요인('하나님
께서 상하게 하시리라')과 사람의 요인('너희 발 아래서')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서
는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내려 주시지만 그 힘은 그것을 받아 들이고 사용
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Godet, Harrison). 이상과 같은 말씀은
17-19절에 기술된 거짓 교사들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Dunn). 바울 당시 거짓 교사
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거스려 어리석고 허탄(虛
誕)한 교훈을 퍼뜨림으로 교회를 어지럽혔다(딤후 3:8;4:3, 4). 그리하여 성도들과 사
도들은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자 거짓 선생들과 영적 싸움을 하였는데, 바울은 본절을
통해 그와 같은 싸움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결국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요일 3:8;계 20:10).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ㅇ나의 동역자 디모데 - 바울은 디모데를 다른 서신서에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다(행
16:1;17:14, 15;고전 4:17;16:10;고후 1:19;빌 2:19;살전 3:2, 6). 이와 같은 언급은
그가 사도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 동역자 중의 한사람인가를 보여준다(빌 2:22;딤후
1:2, Dunn).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이 아니고 오히려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협력한 전도자이며 바울의 동역자로 수고하였다. 그는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한 믿음의
아들로서(딤후 1:5;3:15)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시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고(행 17, 18장) 고린도 교회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도운 바 있다(고
전 4:17;16:10). 또한 바울은 때때로 디모데를 서신의 공동 집필자(執筆者)로 대우하
기도 하였다(고후 1:1;골 1:1;살전 1:1;살후 1:1). 바울이 여기서 디모데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동역자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영광을 허락한 것은 그가 믿음의 아들
로서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음을
암시한다.
ㅇ나의 친척 -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이들 세 사람을 바울은 '나의 친척'이라고 지
칭하고 있는데 앞절에서(7, 11절)처럼 헬라어로 '슁게네이스'를
사용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피를 나눈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골육'(9:3)이라는
말로 한정되어 동족인 유대 민족을 지칭한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 성도라 하더라도
아무나 친척이라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남달리 바울과 보
다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본장에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
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다(7, 11, 21절).
ㅇ누기오 - 로마식 이름으로서 그를 보는 견해가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그를 '누가'와 동일인물로 보는 견해이다(A. Deissmann). (2) 그를 누가와 다른 인물
로 보는 견해이다(Lenski, Harrison, Dunn, Godet). (3) 누기오가 누구인지 자세히 언
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불확실한 인물로 보는 견해이다(Bruce). 여기서 (2)의 견해를
취함이 무난하다. 물론 누기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이 없으므로 추측만으로
누구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누기오를 가리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임에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같은 견해를 지지하여 누기오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지자나 교사(敎師)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구레네인  누기오'
(루키오스 호 퀴레나이오스)로 알려진 자라고 말하고 있다(Hendriksen, Dunn, Godet).
또한 누가는 이방인 의사였으므로(골 4:14) 누기오와는 구별되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ㅇ야손 - 이것은 헬라식 이름으로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
니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바울과 바울의 동행인들을 대접한 집 주인과 동일 인물일 것
이다(행 17:5-7, 9 Liddon). 그러나 그는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대표자 명단 가운데 들어 있지는 않았다(행 20:4).
ㅇ소시바더(소시파트로스) -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
더'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행 20:4, Meyer). 그는 당시 이방 교회들이 예루
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연보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가
운데 한 사람이었다(15:25-27;고후 8:18).

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ㅇ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 - '더디오'(테르티오스)는 '셋째'
를 의미하는 로마식 이름이다. 그는 로마 독자들에게 알려진 인물로서 고린도에서 바
울과 함께 있으면서 바울의 편지를 대필해 주었다(Meyer). 그는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
는 언급되지 않다가 갑자기 여기서 제1인칭으로써 자기 자신이 직접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하는 표현을 취함으로써 로마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권면으로
필기자 더디오 자신의 인사말을 직접 기록한 것일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더디오'에 대한 바울의 특별한 호의와 동시에 그를 한낱 대필하는 기계로 여기지 않
았다는 것이다(Dunn, Godet). 바울은 보통 서신의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서신을 남에게
대서시키는 것이 습관이었는데(고전 16:21;갈 6:11;골 4:18;살후 3:17) 대필자의 이름
이 그의 서신에 직접 기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Meyer). 본서신의 대필
자 더디오에 관해서 더 자세한 언급은 없어서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알 수는 없지만 짐
작하건대 그는 필사에 능하여서 바울의 구술을 필기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ㅇ교회 식주인 가이오 - 여기서 '가이오'(가이오스)는 마게도니아의 가
이오가 아니며(행 19:29), 더베 사람 가이오드(행 20:4), 요한 삼서에 언급되어 있는
가이오도(요삼 1:1) 아니다. 본절의 '가이오'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행 18:7의 '디도
유스도'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여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인물로 본
다(고전 1:14, Godet, Meyer, Lenski, Bruce). 그러므로 가이오는 바울의 고린도 전도
사역에서 첫번째 회심자 중 한 사람이었다(Dunn). 그리고 그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
울을 보내는 동안 머물러 있었던 집 주인이기도 하다. 본절에서 그를 가리켜 '온 교회
식주인(食主人)'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당시 어느 정도 재산이 있었다는 것을 말
해주며 또한 그의 집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집회 장소로 개방되었음을 암시하며 아
울러 가이오의 집이 고린도를 방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개방되고 있음을 말해 주
기도 한다(J. Murray, Meyer, Godet). 여기서 '식주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크세
노스'로 처음에는 '객우'(客禹), '초청된 친구'라는 뜻이었다가 후에는
'나그네'(마 25:35), '외국인'(엡 2:19) 또는 본절과 같이 나그네다 다른 사람을 친절
하게 환대하거나 영접하는 사람으로'집 주인'의 의미로 바뀌었다(Dunn). 특히 여기서
바울이 가이오를 자기가 머물렀던 집 주인으로 언급한 것은 이 서신을 겐그레아나 또
는 마게도냐의 어떤 지역에서 쓴것이 아니라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
게 뒷바침하고 있다(Harrison).
ㅇ에라스도 - '에라스도'(에라스토스)는 고린도 시의 '재무관'으로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모스'는 '극장  지배인', '관리
인'(눅 12;42)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서는 '도시의 재산 관리인'이라는 뜻으로 쓰
여졌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고린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음
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Murray).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교회가 사회적 저명 인
사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에라스도가 다른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어 있는(행 19:22;딤후 4:20) 에라스도와 같은 인물이라는 근거는 없다(Bruce,
Lenski, Murray, Harrison, Godet, Meyer). 당시 그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ㅇ형제 구아도 - 이의 헬라어 '쿠아르토스'는 '네번째'라는 의미
를 가진 로마식 이름이다. 바울은 그를 '형제'(아델포스)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에라스도나 더디오의 형제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를 의미
하는 것이다(1:13;고전 1:1;고후 1:1;갈 1:2;빌 1:12;골 1:1;살전 1:4;살후
1:3;Godet, Dunn). 구아도에 대해서는 본 절에 기술된 것 이외에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이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한편 바
울이 여기서 그를 언급한 것을 통해 그가 로마교인들과 관계를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
서 로마교인들이 이미 그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Meyer). 이상과 같은 본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로서 특별히 고린도시에서 영향력이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예외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복음이
신분의 고하(高下)를 초월하여 역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마 24:14;28:19).

24 (없음)

ㅇ본절의 내용이 한글 개역성경 본문에 실려있지 않고 다만 난하주(爛下主)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
다. 영역성경에서도 본문의 축도가 RSV, NIV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KJV, Living Bible
에는 나타나 있다. 이것은 어떤 사본을 인용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사본
중에서 체스터 베티 파피루스 II(P46),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에브라임 수리아어 사본
(Codex Ephraemi Syricirca)등을 위시한 대표적인 사본들에는 본절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베자 사본(Codex Bezae), 보엘네라안 사본(G) 등 몇개의 사본에는 이 축도가
나타나 있다.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ㅇ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 -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위탁하심으
로 전파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음을 말한다(Murray). '나의 복음'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 토 유앙겔리온 무'                               
로 복음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믿고 있고 전파하고 있는 메시
지를 가리킨다(2:16;딤후 2:8). 그가 여기서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해서
그를 자기 중심적이거나 배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다만 바울의
경우에 그 복음이 직접적 계시로 왔다는 것(1:1;갈 1:12)을 암시해주고 있다고만 이해
하면 된다(Harrison). 일반적으로 바울의 복음은 모든 기독교적 선교사역에 있어서 예
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구속 사건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5:1-3, Dunn).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토 케뤼그마 예수 크
리스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선포된 말씀'(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선포된 말씀'을
가르키는 '케뤼그마'는 '나의 복음'과 같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
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긴세월 동안에 걸쳐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확실
하게 역사상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곧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Dunn).
ㅇ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크로노이스 아이오니오이스
세시게메누'로 직역하
면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비밀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다음 두가지이다. (1)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2) 이 구원이
이방에 전파되져서(갈1:16) 이방인들이 믿음을 통하여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된 것을 말한다(Godet). 여기서는 문맥상 (1)번의 뜻을 담고 있다. 그
리고 '영세 전부터'는 '천지 창조 이전부터'(딤후 1:9;딛 1:2)라는 의미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시간의 진전에 따라 수정, 발전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을 창조 이전에 이미 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 영원한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통해서 드러났고 또한 성령에 의해서 충분히 계
시되어졌다(고전 2:7-12, Godet). '감취었다가'(뮈스테리우)란
말은 구체적으로 '창조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시대'를 두고한 말이다
(히 1:1). 그 여러 시대에 걸쳐 '선포된 말씀'(케뤼그마)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여러 모양과 여러 형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오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비로소 온전히 계시된 것이다(1:2;엡 3:3-5;골 1:26-28).

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ㅇ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 한글 개역 성경에는 '이제는'이란 말만 있지만 헬
라어 원문에는 '데 뉜'(but now)이란 복합 접속사를 사용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 '데'('그러나', '그런데')는 '강한 반의어'로서
앞절(25절)에서 말한 것들에 대한 대조와 함께 구체적인 강조를 표시하고 있기에 이를
살펴 '그런데 이제는'이라고 번역하면 문맥의 뜻이 훨씬 더 선명해진다(Godet). 이는
율법에서 복음으로, 옛시대(old aeon)에서 새시대(new aeon)로, 즉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함이 감추어져 있던 데서(25절) 이제 온전히 드러나게 된 역사의 전환점을 선언하
는 중요한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를 가리키는 '파네로덴토스'
는 '파네로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베일에 가리웠던 것이 베일을 벗김으로써 나타나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는 '그늘
에 있던 것이 밝은 햇빛에 의해 드러났다'는 말로서 영세 전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난 복음의 역사적 확실성을 명시한 말씀이다. 따라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이제는 감취어진 것이 아니다. 즉 더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역사의
한 가운데 모두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점진적으로 계시
되어 오던 것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
을 사도는 다시한번 천명(闡明)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해하는 데 이것만
큼 중요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Murray).
ㅇ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좆아                                             
(카트 에피타겐 투 아이오니우 데우) - 계시의 커다란 변화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된 것이다(딤전 1:1;딛 1:3). 이는 복음의 우주적 전파에 대해 권
위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이 헌신하고 있는 사명도 포함하고 있다(Murray).
즉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속 역사를 담당하시고 직접 명령들을 내리시는 것에서 자기
자신의 임무의 근거를 찾는다(1:1, 5;골 1:25-27;딛 1:3).
ㅇ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아 테 그라폰 프로페티콘'
으로 '성경의 예언서들로 말미암
아'라는 의미이다. 문자 그대로 이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가리킨다. 물론 신약
시대에도 선지자들은 활동하였으며 그들은 권면과 안위(安慰)뿐 아니라(고전 14:3) 계
시도 하였다(고전 14:29, 30;엡 3:5).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말로 행해졌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지자의 글'은 구약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사도가 지금까지 전파
한 '나의 복음'(25절)은 구약에서부터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전파
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를 떠나서, 즉 구약
성경과의 통일성이 단절된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거짓 그리스도(복음)
를 전파하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복음은 이처럼 점진적인 계시의 역사성과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더더욱 자신이 전파한 복음의 내
용, 구원 진리는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은' 것이라 하여 구약에서부터 시작한 복음
의 역사성과 통일성을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Harrison, Lenski). 이것은 사도가 본서
의 첫머리에서 이미 밝힌 것이다(1:2).
ㅇ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 바울은 서론에서도(1:11) 자기가 로마의 성도를 견고케
하기 위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하루속히 방문하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취지를 말
한바 있다. 이제 그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결과를 가져 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견고케 하는 도구로서 복음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
을 '이 복음으로'란 어구를 삽입하여 강조함으로 확실하게 천명한 것이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ㅇ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 '지혜로우신 하나님'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모노 소포 데오'로 직역하면 '유일하
게 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로우신'이라는 말은 인류의 구속을 위
하여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계획으로써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송영으
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내용은 앞에서 계속 언급한 바
있는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25, 26절)된 구원의 비밀의 계시를 의미한다.
즉,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감추었다가 이제는 그 아들의 복음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
타내심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구원 섭리의 오묘함을 뜻한다. 따라서 본절은 이러한 오묘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찬
양의 첫 발성이다(11:33). 그렇게 오랫동안 구원 비밀을 간직했던 침묵이 이제 마침내
드러나 그 구원의 실체와 그 결과를 목격하면서 사도는 그 일을 이루신 지혜로우신 하
나님께 끝없는 찬양과 영광을 돌리면서 본 서신을 끝맺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언급은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혜로우신 하나님께(고전 2:6-13) 영광을 돌리는 일에 있음
을 나타내는 것이다(15:6;시 22:23;벧전 4:11).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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