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로마서

[스크랩] 로마서 (12 : 1~2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42
로마서 12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ㅇ그러므로 - 이는 본장에서부터 전장들의 내용에 대한 결론이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권면으로 이끌기 위해 자연스럽게 꺼내어진 이 단
어는 이스라엘의 유기(遺棄)와 장래의 구원에 관한 기록인 9-11장을 받는 것이 확실하
지만, 넓게는 자비하신 하나님에 관계된 진술 전체 즉 1-11장에 이르는 교리적 내용을
이어받는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Godet, Cranfield, Murray, Harrison). 한편 '그러
므로'를 사용해서 설명과 권면을 이끌어내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 자주  나타난다(고전
4:16;엡 4:1;딤전 2:1)
ㅇ형제들아 - 이는 수신자(受信者)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 어린 표현이다. 이 단어를
수신자에게 적용시킬 때마다 사도는 깊이 감동되어 있음을 주목하라(1:13;7:1;8:12;10
:1).
ㅇ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 이는 바울의 권고의 근거가 되는 문구이다. 인간들
이 하ご纛?자비를 얼마나 덧입고 사는 가를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를 행할 수 없다. '모든 자비하심'에 해당되는 헬라어 '오이크티르몬'         
은 '자비'(고후 1:3;빌 2:1;골 3:12) 혹은 '불쌍히 여김'(히 10:28)으로 번역
되는 단어로서 복수형태이다. 이는 '큰 자비'나 '동정'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라하
밈'(삼하 24:14;대상 21:13;시 25:6)이라는 복수 형태를 따른 것이다. 이
는 복수를 취하여 강조하는 '강의(强意)의 복수'이다. 따라서 '모든 자비하심'으로 번
역되었다.
ㅇ권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로'는 쓰임이 다양하
나 여기에서는 명령과 간청의 양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
고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단어를 '간절히 원하다', '청하다'(beseech,
RV) 또는 '애원하다'(implore, NEB)로 번역한 것은 사도 바울이 사도적 권위로 권했다
는 것을 배제한 일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단어는 본절의 성격을 지시하
면서 나머지 다섯 장(12-16장)의 성격도 권면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ㅇ너희 몸을 - 이 문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6:11-13의 문맥에 비추어서 단어 자체
가 가진 단순한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고전 6:20;고후 5:10). 혹자는 '몸'에 대해
말하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존재라
했고(Kasemann), 또한 혹자는 삶의 구체적인 실재(realities) 속에 있는 개인적 제사
의 체현(體現, physical embodiment)이라 하였다(Seiden Sticker). 또한 2절의 '마음'
(노오스)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Olshausen, Maier,
Moule). 그러나 여기서의 몸은 몸과 마음, 즉 온 인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바람직하다(Calvin, Beza, Shedd). 그러므로 '너희 몸'은 '너희 자신'(yourselves)을
뜻하며, 우리의 인격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표현되는 삶의 양태까지 포함한다.
ㅇ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란 하
나님께 전 인격적으로 우리의 몸을, 생애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생애를 통
해 계속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이란 말은
흠이 없이 순전(純全)하다는 의미이다(엡 1:4;빌 2:15;골 1:22). 그러므로 거룩한 제
사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6:16, 17;엡 2:1, 5)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 그
가 주신 새 생명으로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6:4-7, 13, 14, 22;갈 2:20). '산 제
사'의 '산'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산'은 현재 분사로 '지금 살아있는'이
란 뜻을 포함한다. 이 말은 구약적인 제사, 즉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드리는
제사와 대조된다. 또한 당시에 이교 사회(異敎社會)에서 성행했던, 몸을 부정(不淨)한
일에 악용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즉 '산 제사'는 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처
럼 다른 존재로써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드리라는 것이며 또
한 지역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제사로서 살아 움직이며 생활하는 자체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약 2:22).
ㅇ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이 부분은 앞에 나온 권면을 설명하고 확증(確
證)하는 의미에서 쓰여졌다. '영적 예배'의 '영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형용사 '로기
켄'인데 '로기코스'에서 유래되어 '합당한'
(reasonable, KJV), '합리적인'(rational)의 뜻을 가졌다. '영적'(spirtual, NIV)인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켄'을 사용하지 않고
'로기켄'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들의 미신적인 행동들을 염두에 두었거나(Calvin), 하
나님이 요청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 즉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예배를 강하게 표현하
려는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를 '합당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를 이스라엘 성전 예배의 외형적 의식과
대조하여 '영적' 예배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은 번역이다(Hendriksen, Bruce, ARV,
RSV, NIV). '예배'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구약의 제사를
지칭하기도 했는데, 본절에서는 단순히 제사 행위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삶으로서의 예
배를 의미한다. 즉, 삶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주께 두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
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를 '섬김'(service)으로 번역한 번역본도 있다(KJV).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ㅇ이 세대 - '세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온'은 '세계', '세상'을 의미
하는 '코스모스'와 비슷한 의미를 가졌는데, 일반적으로 '코스모스'가
공간적이고 현상적인 세상을 의미하는데 반해 '아이온'은 시간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
계를 의미한다. '이 세대'(아이온 후토스)란 용어는 바울이 여
러 차례에 걸쳐 사용했다(고전 1:20;2:6, 8;3:18, 19;5:10;7:31;고후 4:4;갈 1:4). 유
대교 종말론에서는 시간을 '현 세대'(present age)와 '올 세대'(age to come)로 구분
하는데 바울도 이와 같이 종말을 기점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 사용하였고 바울이 사용
한 '이 세대'라는 말 속에는 대부분 이러한 유대교적 종말론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세대'가 시대 구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신' 혹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대
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적대 세력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
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 기준 등 시대 정신도 포괄한다.
ㅇ본받지 말고 - '본받다'의 헬라어 '쉬스케마티조'는 '스
케마'('품행', '행동', '외형', '모양')에서 파생된 것으로 고전 7:31에
나오는 '이 세상의 형적'의 형적(形跡)에 해당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표면적
이고 흘러가는 이 세상 풍습을 받아들이거나 순응하지 말라(Sanday, Headlam)는 것이
다.
ㅇ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이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가 새롭게 계속 변화
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아나카이노세이 투
노오스'는 '마음의 새로움으로써'
라고 번역할 수 있다(표준 신약 전서) 여기서 '마음'이란 도덕적 활동과 관련된 이해
력이나 사고력 등을  말한다(Barmby). '변화를 받아'의 헬라어 '메타모르푸스데'는 현
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곧 이 말은 자신이 아닌 타자(他者)에 의해서 변화하며
일시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꼭 그렇게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즉 우리의 인격 내부에
변화를 일으키는 세력인 성령에 의해 마음이 새롭게 계속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인간
에게 꼭 필요하다.
ㅇ선하시고 - 헬라어 '아가도스'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특별하
게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선'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선'을 의미한다(2:10;7:12, 13, 18, 19). 그러므로, 이 '선'의
개념을 교회 안에서(9절), 사회 속에서(21절) 그리고 국가에 대한 관계 속에서
(13:3ff.) 사용하였다. 다만 본절에서 바울은 '선'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
ㅇ기뻐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이 이뤄지거나, 그의 뜻과 일치될 때 기뻐하신
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뜻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뜻에 합
당하게 생을 영위하거나, 피조 세계가 원래 목적대로 진행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다.
ㅇ온전하신 - 인간의 뜻은 타락한 욕심이 작용하기에 그 어떤 뜻도 온전할 수 없다.
하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뛰어난 특성은 그 자체가 온전한 것이다. 신앙과 행위의
충분한 규범으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다(딤후 3:16, 17). 이는 그 뜻을 가지신
하나님 자신이 온전한 분이기 때문이다(마 5:48).
ㅇ분별하도록 하라 -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도키마조'            
는 '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다는 말은 판단하거나 시험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Murray). 신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아야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계속적
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한다(엡 5:8-10;빌 2:12).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ㅇ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나오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는 본절이 앞절 (1, 2절)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ㅇ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데이세스'      
는 수동태 과거 분사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이미 받았음을 의미한다. '은혜'
는 바울의 사도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Stuart, Meyer, Barmby, Godet,
Lenski, Bruce), 더 나아가서 사도 직분 외에 그가 받은 모든 은혜와 은사를 포함한다
고도 한다(Hodge). 사도직을 은혜와 관련시키는 이유는 자신의 만용이 아닌 소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1:5;고전 15:9, 10;갈 1:1). '내게 주신 은혜'라는 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하곤 했는데(15:15, 고전 3:10, 갈 2:9 등) 위임받은 은혜의 역동성을 표현
한다(Dunn).
ㅇ너희 중 각 사람에게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표현은 '판티 토 온티 엔 휘민'
인데 이는 '너희 모든'을 나타내는 일
반적인 헬라어 표현 '파신 휘민'에 비해 훨씬 강조된 표현이
다. 이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이는 로마교인들뿐 아니라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나 직분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Liddon, Meyer).
ㅇ말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고'는 1절에 나오는 '내가 권하노
니'라는 표현보다 더욱 권위적이다. 이는 명령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로써 권위를 상
기시켜 경고하는 말투이다(마 3:9;눅 3:8;13:3, 5;갈 1:9;5:2).
ㅇ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 본절 중 이부분 이하에서 사용된 헬
라어 기본 동사는 '프로네오'('생각하다')인데 문장 중에서 '휘페르프
로네인'-'프로네인'-'프로네인'-'소프로네인'의 구조로 사용되었다. 이는 헬라 문학
에서 종종 나타나는 문학적 기교이다. '생각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네인'은 '의
견을 가지고 생각하다'의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평가나  견해를 말할 때 쓰인다
(LST. BGD). 신약성경에서는 거의 바울 서신에만 나타나며(16절;8:5;11:20;14:6). 특
히 '높은 마음을 품다'의 헬라어 '휴셀라  프로네인'이
쓰인 문장에서 나온다(16절;11:20). '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한다'함은 '자기 자신의
처지나 조건에 맞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그 이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파
라'는 필요한 것 '이상'을 나타내며 '휘페르프로네인'과 같이 쓰여 '휘페
르'('위에')를 강조한다(BGD).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휘페르프로
네오'는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다', '부풀은 생각을 하다', '자
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다'(BGD)라는 뜻을 가졌다. 칼빈(Calvin)은 '휘페르프로네오'를
'지혜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그 이상의 생각
을 품지 말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휘페르프로네인 파라'                   
는 그 뜻을 밝혀 번역하자면 '그 이상의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지
말고 생각의 한계를 가지라'는 것이 된다. 여기서 분에 넘치는 생각이란 다음에 나오
는 구절이 설명하는 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생각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자신의 능력과 소명(召命)으로 감당(堪當)할 수 있는  이
상의 것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을 금하고 있다.
ㅇ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
는 '...을 하지 말고, 오직...을 하라'는 표현에 나오는 강조어로서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과 '지혜롭게 생각함'을 대조한 것이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카스토 호스 호 데오스 에메리센'                                     
은 '각 사람에게'를 나타내는 '헤카스토'가 앞에 나와서 도치된 강조 형태이
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것은 모든 산자들에게 빠짐없이 주신 것을 말하며
각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는 뜻이다.
ㅇ믿음의 분량 - 이 표현은 믿음이 물질처럼 측정되는 양적인 것이라기보다 교회안에
는 다양한 기능들이 있어 각자 주어진 직분과 은사의 한계와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뜻
이다(고전 12:4-31). 그리고 '믿음'이란 그 안에서 훈련되어진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Murray).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것으로 객관적이라기보
다 주관적이다. 혹자는 본문에 나온 '믿음'을 일반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
는 믿음'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하기도 한다(Stuart, Meyer, Godet, Shedd).
그러나 머레이(Murray)나 해리슨(Harrison)등이 주장한 바 본문의 '믿음'은 구원의 수
단인 진리를 믿는다는 말이 아닌,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의 성격을 알고 은사를 사용
하는 것'을 가리킨다. 브루스(Bruce)는 이를 '영적 능력'이라고 했다.
ㅇ지혜롭게 생각하라 - '지혜롭게'의 헬라어 '소프로네인'은
'건전하며 겸손하게'의 뜻이다. 혹자는 '지혜'를 '자신을 바르게 보는 것'으로 이해했
는데(Dodd) 헬라 철학에서 지혜를 나타내는 단어인 '소프로쉬네'
는 '겸손'(謙遜)과 '자제'(自制)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분에
넘치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건전하고 겸손한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특히 '하나
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와 관계되어 사용된 말로서 지혜롭게
생각할 그 기준으로서 '믿음의 분량'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주었다는 것은 각자의 직분과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며 동시에 자신이 받지 아
니한 직분의 영역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제
한을 의식하고 그가 교회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관한 그의 열망을 규제해야 한다
(Godet).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ㅇ저자는 이제 믿음의 분량에 따른 각 신자의 직분의 한계에 관해 신자들의 소명과
관련시켜 말하려고 한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나 고대에서 인체의 비유는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서 바울 서신에 종종 나온다(고전 12:12;엡 1:22;4:16).
ㅇ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 모든 지체는 곧 많은 지체이다. '같
은 직분'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랖시스'는 '행함', '활동',
'기능' 등의 뜻을 나타낸다(BGD). 이 단어는 마 16:27에서는 '행함'으로 나온다. '직
분을 갖다'라는 말은 6절에 나오는 '은사를 받다'라는 표현과 같다. 모든 지체는 특별
한 기능들과 다양한 능력들을 지녔다. 곧 3절에 나오는 바, 각 사람들의 받은 바 '분
량'들이 모두 다른것이다(엡 4:7). 이는 자신에게 할당된 기능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
며 한 몸에 있는 많은 지체들의 독특성을 인정하게 하는 문구이다.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ㅇ이와 같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는 '이리하여', '이런 식
으로'를 의미하는데 4절에 나오는 '카다페르'와 함께 '이와 같이'의
뜻을 나타낸다. 앞절에서 예를 든 것처럼 인간의 유기적 조직(有機的 組織)을 통해 신
자 각 사람에게 할당된 기능의 필요성과 한계를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ㅇ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 '한 몸'이라는 표현은 통일성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우리'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교회
를 이룬다(고전 12:27ff.). '많은 사람'을 나타내는 헬라어 '호이 폴로이'       
는 셈어투(Semitism)의 형태로 3절에 나오는 '너희 중 각 사람'과 같은 의미
이다. '한 몸'이란 인간의 혈통으로나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
스도께서 이 연합의 기반을 이루시고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엡 2:21).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그의 몸된 유기체
는 오직 교회이다(Godet).
ㅇ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데 칼 헤이스 알렐론 멜레'
에서 '칼헤이스'(주격)는 부
사로 사용되어 '개인적으로', '하나씩', '각각'으로 해석된다(BDF, BGD). 이런 표현은
막 14:19;요 8:9;고전 14:31;엡 5:33에 나오는 것으로서 각각의 성도가 교회 전체와
서로 관계를 가지므로 각 지체는 다른 모든 지체들에게 속한다는 뜻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특히 교회론(ecclesiology)적인 의
미를 강조하는 본문으로 보기도 한다(Dunn). 즉,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없는 연합을
생각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으
로 본다(Shedd). 다라서 4, 5절의 내용을 종합하여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통일성, (2) 각 지체들의 다양성과 이에 상응하는 기능의 다양성, (3) 여러 지체들의
상호성이다. 이처럼 사람의 몸에 나타난 유기적인 원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성도
들의 사회,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가르친다. 이는 성도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ㅇ이제 앞서 말했던 것을(3-5절)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봉사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적용시킨다(6-8절). 즉 각 지체의 기능에 관해 말한다.
ㅇ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 본 구절은 은사의 근거가 되는데, 어느 누구도 자기의
받은 바 은사에 대해 자만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은혜대로'                  
(카타 텐카린)를 문자대로 번역하면 '은혜에 따라'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신
자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시는 원리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안에서 성령
의 역사(役事)하심에 따라 은사들이 주어지는 것은 각각 다른 기능과 직분을 유기적으
로 수행하기 위해서이다(고전 12:7). 은사에 따른 직임과 기능에 관해서는 고전 12장
주제 강해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비교'를 참조하라.
ㅇ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 '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콘테스'
는 '가지고 있는', '소유하고 있는'이라는 뜻으로 은혜로 받은 것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은사'는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몸의 지체들에게 반영되어 실제
행함으로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난다. '각각 다르니' 즉 '은사가 다르다'는 것은 5
절에 나오는 '서로 지체'라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이끈다. 신자들이 각각의 은사들을
받은 것은 이 은사들이 개별적으로 주어진 목적대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다. 교회에서
의 특별한 직분(職分)이나 기능들은 서열(序列)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에게 주어진 은사의 다양함과 그에 따른 능력들을 나타낸다.
ㅇ혹 예언이면 - 예언을 나타내는 헬라어 '프로페테이안'의
동사 '프로페튜오'는 '예언하다', '미리 말하다'의 뜻을 가졌다.
'예언'은 주로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관
이었고 계시의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 바로 그것이었다(출 4:12;7:1, 2;렘 23:16, 18,
22, 28). 한편 성경의 기록이 끝난 시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에게서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성된 이후에는 새로운
계시를 위한 예언자도 필요없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언은 경고와 권면, 교훈
과 판단, 그 마음의 비밀을 나타내며(고전 14:3, 24, 25), 영감을 받아 하는 것으로
나온다(벧후 1:21). 이 기능을 가진자 중에는 여자도 있다(행 21:9). 예언을 시험하거
나 고려해 봐야 할 때에는(고전 14:29)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와 그 척도를
두어야하며 이에서 벗어나면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 계시 이상의 예
언은 없다. 즉 여기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하여
백성을 가르치는 설교나 말씀 선포등과 연관되는 직분으로 본다. 이 예언하는 직분이
다른 곳에서도 사도직에 이어 곧바로 나오는 이유는(고전 12:29ff. 엡 4:11) 이런 중
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나 선지자들이 교회에서 우선권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외의 은사들은 그 중요도에 있어서 특별하게 우선권을 갖지는 않았다(Ladd).
ㅇ믿음의 분수대로 - '분수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 텐 아날로기안'    
인데 '아날로기아'는 수학 용어로
'바른 관계' 혹은 '조화, 비례'(proportion)라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칼 아날로기
안'은 '적당하게', '...에 비례하여'라는 의미가 있다(Dunn). 어쨌든 본 구절은 예언
이 시행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데  혹자는 '아날로기
아'를 '유비'(analogy)라고 직역하여 본절의 '믿음', '교회가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계시 체계로서의 믿음이나 규범'을 의미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에 의하면 '믿음의 분
수대로'는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대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해놓은 규범에
따라 예언을 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Kasemann, Schlier, Ortkeuper, Weiss 등). 그러
나 본문의 '믿음'은 객관적 규범이나 교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일반적 의미의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분수대로'는 3절의 '믿음의 분량대로'를 나타내는 헬라어 '메트론 피
스테오스'와 6절의 '은혜대로'를 표현한  헬라어 '카타
텐 카린'과 병형구로 그 뜻하는 바가 같다(Bruce,
Barmby, Gaffin).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ㅇ혹 섬기는 일이면 - '섬기는 일'은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한 가지로 정하기는 어렵다. 이의 헬라어 '디아코니아'
는 종종 비신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행 6:4).  그러나  본
구절의 '섬기는 일'은 그 행사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집사의 직분'(엡 4:12 이외에는 '디아코니아'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
지 않은 것은 의미 심장함)에 제한된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은사(섬기는 일)가 예언과
가르침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섬기는 일'이란 신자의 물질적 요구를 관장
하는 보다 좁은 의미의 봉사를 뜻하는 것 같다. 영역 성경 NEB와 JB는 그 낱말을 '관
리'(administration)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궁핍한 자를 돕는 일이 감독, 특히
집사의 직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해 준다(Gidet, Meyer, Hendriksen, Cranfield).
물론 다른 사람들도 성도의 곤경을 도와 줄 수 있는 여러 직분에 종사할 수 있었다(고
전 16:15).
ㅇ섬기는 일로 - 이는 '믿음의 분수대로'의 원리에 적용하여 실제적으로 섬김의 은사
를 받은 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그 직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벧전 4:11).
혹은 바른 섬김을 하며 전적으로 그것에 종사하거나(Gifford) 실제로 섬김을 실행하는
것(Cranfield)을 가리킨다.
ㅇ가르치는 자 - 이에 예언하는 것과 구별되며 섬기는 것과도 다르다. 예언은 계시와
관계되어 있는 반면에 가르침은 지식과 관련하여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써(고전
12:8;14:6) 하나님의 계획을 조화롭게 나타내는 것이다(Godet). 즉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형성케 하고 훈계를 통해(15:4;딤전 4:13;딤후 3:16) 신자들의 삶에 도움을 주
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가르침이다. 본서의 구조 자체도 그러한 사실을 입증한
다. 즉 진리의 해석인 교리 교육을 기초로 하여(1-11장)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을
(12-16장)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서 바울은 구약성경을 상당히 인용
하고 있는데, 그것은 초대 교회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을 함에 있어서 구약성경에 크
게 의존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Harrison).
ㅇ가르치는 일로 -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섬길 것을 의미하여 아울러 6절에서
제시한대로 자기 '믿음의 분수(분량)대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원리
를 다시 언급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사사로이 풀거나 억지로
해석하지 말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벧후 1:20, 21;3:16).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ㅇ권위(權慰)하는 자 - '권위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레오'          
는 '권면하다'(고전 4:16;16:12;고후 10:1;12:18), '요청하다', '위로하다'(고후
1:4;7:6, 7;살전 3:7)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과 명백하
게 다른 말로서 문맥을 살펴볼 때 형제를 위로하고  권면한다는 뜻이 지배적이다(행
15:31;딤전 4:13). '가르치는 자'는 복음 진리를 선포하는 반면 '권위하는 자'는 진리
를 들은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 속에서 복음에 순종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마음과 의지
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Godet).
ㅇ권위하는 일로 - 권위하는 자는 권위 받을 일을 당한 자의 상황을 지혜롭게 파악하
고 권위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해야 한다
(엡 6:6)
ㅇ구제하는 자 - 구제에 대해서는 (1) 자신의 소유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재물을 공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라고도 하며(Lenski, Calvin), 공적인 재산이 아닌
개인의 재산을 나눠주는 것이라고도 한다(Murray, Shedd, Godet). 그러나 여기서는 어
떤 형식을 취해 구제를 하느냐를 따지지 않고 다만 구제의 원리를 따라, 즉 성실함으
로 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개인적 구제(눅 3:11;엡 4:28)
와 공적인 구제를(행 6:2) 다같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ㅇ성실함으로 - '성실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플로테티'는 '단
순함', '순전함', '섞이지 않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Dunn). 따라서 '성실함'은
감추어진 목적이나 뜻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며(행 5:2) 동시에 관대한 마음으로
후히 주는 것을 일컫는다(고후 8:2;9:11, 13). 새번역, 공동번역, 표준신약전서는 '순
수한 마음'으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후하게'로 번역했다. 또한 영역 성경 흠정역은
'순수함으로', RSV, NASB는 '관대하게', NEB는 '마음을 다해'로 번역했다.
ㅇ다스리는 자 - '다스리는'의 헬라어 '프로이스테미'는 '선두
에 서다', '통치하다', '지도하다'의 뜻이 있다. 이는 성경에서 주로 교회에서 다스리
는 것과(살전 5:12;딤전 5:17) 가정에서 다스리는 것을 나타낼 때(딤전 3:4, 5, 12)
사용된 어휘이다. 그래서 혹자는 '다스리는 자'를 '감독과 장로'로 보기도 하며
(Calvin, Gifford, Murray, Lenski) 혹자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로 보기도 한다
(Godet, Barmby). 여기서는 문맥을 볼 때 교회에서 교인들을 지도하고 통솔하는 은사
를 받은 사람에 대한 표현이다(Harrison).
ㅇ부지런함으로 - '부지런함'을 나타내는 헬라어 '스푸데'는 '부지런
함'(12:11), '간절함'(고후 7:11, 12;8:7, 8, 16) '급히', '빨리'(마  6:25;눅 1:39)
등으로 번역되었고, 대체로 '종교적인 열심'을 뜻한다(BGD). '다스리는 자'는 맡겨진
일에 열의를 가지고 세월을 아끼며 충성해야 한다(고전 4:2;엡 5:15-17). 바울은 부지
런함을 잘 실행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주신 직분을 확신하여 열심을 품고 복음을 전파
했으며 충성을 다했다. 사도가 여기서 '다스리는 자'의 은사를 받은 자에게 '부지런함
으로'라는 단서를 첨가한 것은 다스리는 직무를 봉사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
려 자기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경계하면서 근면에게 직무 수행에 임할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행 29:17-24;딤전 1:12).
ㅇ긍휼을 베푸는 자 - '긍휼을 베푸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에오'가
인간이 베푼 자비를 나타낸 경우는 바울 서신 중 본문에만 유일하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가리킨다(9:15, 16, 18;11:30-32;고전 7:25;고후 4:1;빌 2:27;
딤전 1:13, 16). 본절의 '긍휼'은 일반적 의미의 '긍휼'이다. 즉 병든 자와 환난 중에
있는 자, 무력한 자, 노인들을 돌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 단락이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그 은사의 바른 사용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거룩하게 세우는 일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ㅇ즐거움으로 - 고통받는 곳에 도움을 주며 즐거워 하라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 즐거
움으로 나아가는 그들은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궂은 일이란 마지 못하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
세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은
신자들의 공동체가 한 몸인 것을 강하게 부각시킨 말이다.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
로', '즐거움으로'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들을 가지고 남을 섬길 때 취해야 할 마음 자
세와 그 태도를 말한 것이다.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ㅇ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 이를 표현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아뉘포크리토스'  
는 명사 문장으로 동사 '에이미'      ,
('be')가 있는 것처럼 번역해야 한다. '사랑'의 헬라어 표현인 '아가페'는
본서를 제외한 바울 서신 전체에서는 주로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나
타내는데(Ridderbos) 사용된 반면 본서에서는 주로 신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5:5, 8;8:35, 39;15:30;단 8:28은 예외;Cranfield, Dunn). 그러므로 '아가페'는 10절
에 나오는 '형제 사랑'을 나타내는 헬라어 '필라델피아'보다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인 것이 확실하다. '거짓이 없나니'를 표현하는 헬라어 '아뉘포크
리토스'는 '위선없이'를 나타내며 '진실한', '성실한'의 뜻
을 가졌다(고후 6:6;벧전 1:22). 사랑은 꾸밈 없이 진실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영역 성경 흠정역과 NASB에 각각 '숨김없이'(without dissimulatin), '위선없이'
(without hypocricy)로 번역한 것은 헬라어 원어에 가까운 표현이며 RSV나 NIV에서 각
각 '진심에서 우러난'(genuine) '성실한'(sincere)으로 번역한 것은 문맥의 뜻을 밝혀
의역한 것이다.
ㅇ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미워하다'의 헬라어 '아포스튀게오'           
는 '몹시 미워하다', '혐오하다'의 뜻이 있다. '악'(포네로스)
은 '나쁜'을 의미하는 헬라어 '카코스'보다 더 강한 의미로 '악한', '사
악한'의 뜻이 있다. '속하다'의 헬라어 '콜라오'는 '함께 하다', '연합
하다'의 뜻을 가졌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한 것에 연합하
라는 가벼운 명령 혹은 권고이다. 이는 결정이 요구되는 삶의 길목길목에서 확실하게
선을 택하는 생활 원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 속하기 위해 악은 그 모양이라
도 미워하고 버리는 태도가 필요하다(살전 5:22).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ㅇ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테 필라델피아...필로스
토르고이'의 '필-'로 시작되
는 두 단어는 가족간의 사랑을 나타낼 때 쓰인다. 즉 '형제를 사랑하여'를 가리키는
'필라델피아'는 형제 자매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우애하고'를 가리키는 '필로스톨고
이'는 혈육(血肉)간에 주고 받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Dunn). '필라델피아'라는 단어
를 구성하는 '아델포스'('형제')는 교회 생활에서 신자들에게 광범위
하게 적용되는 단어이다. '필로스톨고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지만 본서가
기록 될 당시의 헬라 문헌에 자주 나오며 특히 가족간의 '지극한 애정'을 나타낼 때
사용됐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로 이뤄진 가족으로 그 공
동체 안에서 가족간에 느끼는 지극한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마 12:46-50;갈 4:5;엡
3:17). 사도 바울은 사랑이 단순한 이념으로 간주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이제
사랑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지침)을 언급한 것이다. 즉, 사랑은 이론으로만 베
풀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도는 그 사랑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성도들간의 관계에서 표현되기를 요구한 것이다.
ㅇ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이는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준다는 뜻이
다. 그런데 성도들이 서로 먼저 존경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개인적 인격이나 능
력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크신 구속의 은혜를 입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데 있다. 그리하여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아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생각할 때 그 형
제의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떠나서 진실하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러러 나는 것이
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고후 5:17)되게 한 하나님
의 크신 은혜 베풂에 근거를 둔 권면인 것이다(빌 2:13).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ㅇ부지런하여 - 바울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근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앙 생활의 나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보통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에는 매우
열심이다가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게 되면 주를 향한 처음 사랑을 잃고 영적인 타성
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계 2:4;3:15). 자세한 주석
은 8절을 참조하라.
ㅇ게으르지 말고 - '게으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크네로이'인
데 이는 근심이나 걱정 또는 부끄러움으로 늑장부리는 것을 의미한다(잠 6:6,
9:21:25;마 25:26). 진정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삶은 게으르거나 나태할 여유가 없
다.
ㅇ열심을 품고 - 이 구문의 헬라어 표현은 '토프뉴마티 제온테스'            
이다. 개역 성경에는 '영'(토 프뉴마
티)을 해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뉴마'를 '하나님의 영'으로 이해할 것인지(Calvin,
Deodoret, Dunn, Hendriksen) 아니면  '인간의  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견해로
(Meyer, Murray, Philipi, Kasemann) 나뉘어진다. 이 말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본문의 의미는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 혹은 '열심을 품고 성령으로
인하여'가 될 것이며 '인간의 영'으로 한다면 '열심을 품은 마음으로'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전자가 더욱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토 프뉴마티'             
가 '열심을 품고'와 연결되어 있는 바 주를 섬기기 위한 열심은 성령의 감화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ㅇ주를 섬기라 - 주를 표현하는 헬라어는 '퀴리오'인데 이는 A, B,
P46 사본 등을 따른 것이다. 보다 덜 중요한 사본으로 간주되는 D, G 사본 등에는
'시간에'를 나타내는 헬라어 '카이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기록 당시의 상황의 급박성을 나타내어서 '시간을 아끼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사
본의 우위성과 문맥상, 전자가 많은 지지를 얻는다. 한편 '주를 섬기라'는 헬라어 표
현은 '토 퀴리오'로 3격으로 표현되어 '주께' 섬김을 다하라의 의
미가 된다. '섬기다'의 헬라어 표현은 '둘류온테스'로 '종노
릇하다', '섬기며 충성하다', '종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신자들은  주인의 종으로서
충성을 다해 주인을 섬겨야 함을 의미한다.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ㅇ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 '소망'의 헬라어 표현 '엘피스'는 일시적으로
더 좋은 것을 바라는 헬라적인 개념보다는 '확실한 소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개념이
다. 이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소망 중에'는 '종말론적 보류'
(eschatological reserve)를, '즐거워하며'는 '종말론적 설레임'(eschatological
excitement)을 나타낸다(Dunn). 죄의 형벌 아래에서 인간은 참된 소망도 즐거움도 없
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망만이 참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의 근거이며 근본이 되시므로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는 자
이시다.
ㅇ환난 중에 - 환난은 모든 인간이 당하지만 특히 신자에게는 복음으로 인한 환난이
있다.
ㅇ참으며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휘포메노'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
는 '참다', '끝까지 견디다', '굽히지 않다'의 뜻으로 나타난다(고전 13:7;딤후 2:10;
히 10:32;약 1:12). 이는 단순한 인내를 의미하기 보다는 소망을 바라보고 참는다는
의미로서 종말에 취할 것에 대한 선취(先取)를 근거로 참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에 대
한 소망과 그 선취로 인한 확신으로 성도는 끝까지 견디는 힘을 공급받는다(히 7:19).
ㅇ기도에 항상 힘쓰며 - '항상 힘쓰며'의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룬테스'         
는 '전심 전력하다', '헌신하다', '견디다'의 뜻이 있다(Dunn).
이 단어는 기도를 언급할 때 주로 쓰인다(행 1:14;2:42;골 4:2). 종말이 가까워 올수
록 하나님과 기도로 그 긴장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본 구절에서
현재 분사형을 사용한 것은 기도에 힘쓰는 것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ㅇ성도들의 쓸 것을 - 성도들은 로마에 있거나 예루살렘에 있거나(15:25)를 막론하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들을 일컫는다. '쓸 것'에 해당되는 헬라어 '크레이아이
스'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사본, 비잔틴(Byzantine) 사본 등을
따른 본문이며 어떤 사본들은(D, F, G) '크레이아이스' 대신 '기억', '기념'의 뜻을
가진 '므네이아이스'로 나오는데, 고대 라틴 사본들이 이를 지지한
다. 또한 여러 학자들(Barth, Zahn, Kuhl)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연보한 것을 언급하면서 '므네이아이스'를 지지한다. 그러나 '기억', '기념'이라
는 뜻의 '므네이아이스'보다는 '쓸 것'이나 '궁핍'을 뜻하는 '크레이아이스'가 내용에
더 부합하며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나 비잔틴 사본은 다른 사본에 비해 오래되고 우수한
사본이다. 즉 사본상의 우위성과 문맥상 전자가 우월하다.
ㅇ공급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네오'의 현재 분사
형인 '코이노눈테스'이다. '코이노네오'는 물질적이며 재정적인
도움의 의미를 띤 '주다', '몫을 기부하다'(15:27;빌 4:15), 또는 '참예하다'(빌
4:14;벧전 4:13), '함께 하다'(갈 6:6)의 뜻을 가진다. 성도들에게 서로 어려운 성도
의 필요와 궁핍을 도와줄 뿐 아니라,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라는 권면이다. 당시의 로
마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등 많은 재정적인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따라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거기다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도 감수
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도간의 곤경(困境)을 도우며 동참하는 것은 서로에게 용
기를 주며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이다.
ㅇ손 대접하기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롸세니안'은
'필'과 '크세노스'의 합성어이다. '필'은 '사랑하는', '좋아하
는'의 뜻이며 '크세노스'는 '손님', '이방인', '객'을 뜻한다. 따라서 '필롸세니아'는
'손님이나 이방인, 즉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손님을 환대함을 일컫는다. 애굽에
서 '객'으로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서 '손 대접'하기를 강
조하곤 했다. 또한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으므로 이곳 저곳 나그
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하는 자들(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핍박으로 도
망하는 자들, 돈 때문에 심부름 다니는 자들은 곳곳에서 신자들에게 대접을 잘받았다.
신자들은 한 가족이면서(10절) 모두 나그네이므로(히 11:13), 서로를 손님으로 여기고
합심하여 서로를 돌본 것이다.
ㅇ힘쓰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형은 '디오코'인데 '추구하다', '좋
다', '노력하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현재분사형 '디오콘테스'가
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권면이다. 이는 14절에 나오는 '핍박하
는 자'를 나타내는 헬라어 '디오콘타스'와 같은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바울이 의도적으로 문맥상 상반되는 곳에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 '힘쓰라'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었다.

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ㅇ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어떤 사본에는(P46) 두
번째에 나오는 '축복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이테'가
빠져 있다. 또한 '너희를'의 헬라어 '휘마스'가 빠진 사본도 있다(P46, B).
'율로게이테'의 원형 '율로게오'는 '좋게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
이다. 이 말을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쓸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며(눅
1:64;2:28;약 3:9),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사용하면 복주신다는 뜻이며(마 25:34;행
3:26;갈 3:9;엡 1:3),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용하면 축복하는 것이 된다(눅
2:34;고전 10:16;히 11:20)(Murray). 본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것이다(마
5:44;눅 6:28). 핍박하는 자, 즉 원수를 축복한다는 것에는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이것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하기 위해서는 나의 본성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에 따
라 행해야 한다(갈 5:16).

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ㅇ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14절과 본절은 자신
을 잊어버려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본절은 우리가 슬픔 중에 있을 때에도 즐거워하는
자들과 즐거워하며 우리가 즐거울 때에도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과 슬퍼하라는 권면이
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는 것, 즉 감정과 처지와 조건을 같이 하는 것은 사랑
으로써 가능하며(눅 10:27), 성령으로 인도받아야(갈 5:16)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빌
2:2). 이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신자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고전 12:26;빌 2:17,
18), 14절과 관련하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도 필요하다(Dunn,
Cranfield). 그리스도께서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
셨다(요 11:33-35).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선한 것을 즐거워하는 자들과 선한 것을 함
께 즐거워하며(빌 2:18) 곤경과 불행으로 우는 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지체로서 같은 슬픔을 갖는다(마 5:4;눅 6:21).

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ㅇ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 '마음을 같이한다'는 표현은 15:5;고후 13:11;빌 2:2;4:2
에 나오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우토 프로네인'                   
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나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을 뜻한다. '서로'를 나
타내는 헬라어 '에이스 알렐루스'('toward one anothe')
에서 '알렐루스'(one another)는 대개 전치사 '엔'('안에')과 함께 사용된다.
이 차이는 '엔 알렐루스'가 '너희 중에', '너희 가운데'라는 범위의 의미가 강하다면
'에이스 알렐루스'는 '서로를 향하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외부로 나타나는  행
동에 강조점이 있다. 또한 14절이나 17-20절로 비추어 보아 저자가 특히 신자들의 행
동이 외부에 나타남으로써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빛된 선행으로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돌
리게 될 것이다(마 5:16).
ㅇ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 '높은 데'의 헬라어 '타 휴셀
라'는 중성 명사이면서 목적격으로 '높은 것들'을 의미한다. 따라
서 '높은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수준을 망각하고 분에 넘치는 기이한 일
에 뜻을 품는 것이다(시 131:1). '낮은 데'의 헬라어 '타페이노이스'           
는 '비천한'(눅 1:52;약 1:9), '겸손한'(마 11:29;고후 10:1)의 뜻이다. 따라
서 '낮은 데' 처하라는 것은 자신을 생각함에 있어서 겸비(謙卑)하라는 것이며, 3절의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며 처신하라'는 권유를 반복하는 것이
다.
ㅇ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자들 즉 지
혜없는 자들의 생각이다(잠 3:7). 이를 히브리어식으로 표현하면 '높은 것에 대해 심
사 숙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남들보다 뛰어나길 원하고 우월 의식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진중(珍重)하게 대하고 온순함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Calvin). 그렇
지 않고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 오만함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ㅇ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이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제한시키는 가르침이다. 일반적
으로 악행하는 자에게 보다 큰 악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이는 이
러한 인간의 자연 욕구를 제재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눈은 눈으로...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공식적인 형벌을 말한 것이며 이런 규정
을 세운 것도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들을 금하기 위한 것이다(잠 20:22;24:29). 바울
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1:21)을 잘 알았으므로 인간에게 이런 교훈이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또한 본문과 살전 5:15;벧전 3:9은 서로 유사한데 이는 예수의 가르침(마
5:38ff.)을 따라 일정한 교리가 형성되어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ㅇ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본절 전반부의 소극적인 권면에서 발전하
여 이제 적극적인 권면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람'은 '아무에게도'에 대칭되는 말로
신자나 불신자 모두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 앞에서'는 또한 '주님 앞에서'(고후
8:21)와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다. 왜냐하면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사람들과의 현상
적인 관계와 별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절에서는 '선한'이라는 말을
7:12에 나오는 헬라어 '아가도스' 대신에 '칼로스'를 사용
했다. 이는 일반적인 아름다움, 즉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선한 일'을 나타낸다(Dunn).
'도모하다'의 헬라어 '프로노에오'가 본문에서는 분사형 '프로노우메
노이'로 쓰여 명령을 나타낸다. '프로노에오'는 '미리 생
각하다', '간구하다', '몰두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어떤 일에 반응하여 선을 행
하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고, 미리 솔선 수범하여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
다. 그러므로 이는 '선한 일'에 너희 자신을 몰두하라는 뜻이 된다.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ㅇ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 이는 모든 사람과 평화
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신자
들이 가능한한 모든 사람과 평화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교훈한다. '할 수 있거든'
이란 표현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화합(和合)을 향한 욕구가 아무리 강력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음을 시사한다(Harrison). 진정한 평화는 인간의 애씀만으로는 이뤄지
지 않는다. 평화를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눅 2:14),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
을 화목케 하시려고(골 1:20, 22)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평화를 이루셨다. 이는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 평화를 이루어야하는 궁극적인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죄악
된 인간과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신자들도 평
화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골 3:15). 그러므로 신자들은 화평케하는 자들이
다(마 5:9).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ㅇ내 사랑하는 자들아 - 이에 대해 1절을 보라(1:7;16:5, 9, 12;고전 4:14, 17;고후
7:1;엡 5:1). 이는 1절의 '형제들아'와 비슷한 애정이 담긴 호칭이며, 이런 호칭들이
여러 곳에 나온다(고전 10:14;고후 7:1;빌 2:12).
ㅇ진노하심에 맡기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테 토폰 테 오르게'
를 직역하면 '진노의 자리를 주라'이다. 신약성경에서 '진
노'가 수식어 없이 나올 때는 대개 '하나님의 진노'로 본다. 본문에서도 수식어가 없
으므로 하나님의 진노임이 분명하다(3:5;5:9;9:22;13:5;엡 2:3;살전 5:9). 하나님의
진노는 절대 공정하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치나치게 냉혹하지 않
다. 또한 심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주권은 하나님께만
속한다. 따라서 사람이 원수를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공정성(公正性)면에서도 문
제가 되지만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된다.
ㅇ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 바울이 자주 그러했듯이 본 구절에서
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4:7;8:36;9:33;10
:19;11:26). 구약성경의 본문 신 32:35에는 "보수는 내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로 되어 있다. 신명기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능
욕하며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개입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
한다. 하나님의 복수는 자신의 적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거짓 신에게까지
도 미친다(Harrison). 이처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마 12:18, 요
5:30;9:39;살후 1:5;히 9:27). 예수께서는 이 권한과 권위를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많
은 수욕(受辱)과 고난(苦難)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보복하지 않고 기꺼이 십자
가를 지셨다(벧전 2:23). 우리에게 대한 진노를 그리스도로 인해 거뒤가심(8:1)을 생
각하며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보복은 포기되어야하는 것이다.
ㅇ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 앞에서 언급한 내용의 절대적 권위와 확실성을 언급한 것
이다.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ㅇ본절은 70인역(LXX) 잠 25:21, 22을 거의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다. 이는 17절의 진
술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서술하는 것이다.
ㅇ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 원수가 궁핍하며 곤경에 처했을
때 선행과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다. 실제로 원수를 먹이고 마시우는 것은 생명과 관계
되는 행위이며 궁극적인 마시움과 먹임은 생수의 근원,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받아들
이게 하는 것이다(요 6:35).
ㅇ숯불 - 해석이 다양한데, '숯불'은 '회개의 표'(Klassen), '마음의 불'(Liddon),
'회개와 부끄러움의 가책으로 타는 듯한 고통'(Cranfiedl, Hendriksen, Harrison),
'은혜', 즉 궁극적으로 은혜를 가져오는 '후회와 부끄러움에서 오는 고통'(Godet)등으
로 해석한다. 대체로 숯불을 쌓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만이 하
나님께서 신자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복수 방법이다. 은혜를 베풀므로써 원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키게 되어
서로에게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ㅇ이는 17절에서부터 계속 진행되어 온 내용의 요약이며 결론이다.
ㅇ악에게 지지 말고 - '악에게 진다'는 것은 원수의 악한 행위로 번민하거나 원수에
대해 악으로 갚으려고 악한 행위를 계획하는 것이다. 즉 원수의 악한 행위로 인해 선
한 상태를 떠난 것을 의미한다.
ㅇ선으로 악을 이기라 - 이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곧 선행
구절에서 말한 겸손(3, 16절), 봉사(6-8절), 평화를 유지하는 것(18절)을 가리킨다.
또한 20절의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삶에서 승리하
는 생활을 말한다. 이 승리는 자신의 노력, 열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
스도의 대속(代贖)을 믿는 믿음과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의 힘으로 이뤄진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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