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3): 메시야와 그의 선구자 (3:1-18) |
3. 메시아와 그의 선구자(3장)
3-1. 하나님의 두 사자(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1)" 말라기 3-4장은 1-2장보다 우리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말라기 3-4장에는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들로 가득하다.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처럼, 이 부분도 초림과 재림 사상이 혼합되어 나온다. 3장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원문은 개역성경과는 달리 "보라!"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하나님은 장차 자기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것은 2:17에 기록된 회의적인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다. 히브리어로 "내 사자"라는 말은 "말라기"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자기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자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4:5을 근거로 해서 이 사람이 엘리야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전체적인 내요이 매우 불확실해진다. 어떤 사람은 이 사자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거의 받아들일 수 없다.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여기에 언급된 사자는 메시아의 선구자로 올 사람을 가르킨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여기에 언급된 사자는 세례요한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와서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그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고는 (사 40:3-5)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근동의 왕들은 왕이 가기 전에 미리 사람을 보내서 그 길에 있는 장애물이나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여 그 길을 예비하게 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역하을 충실하게 해냈다. 그는 요단강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그들이 메시아를 영접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했다.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 장차 그들이 사모하던 언약의 사자가 갑자기 성전에 임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언약의 사자는 예정된 시간이 되면 홀연히 임하실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부분적으로는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재림 때에 완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언급된 "언약의 사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이 사람은 3:1에 나오는 사자와 동일한 사람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절망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는 구약 성경을 비교 연구해 보면, 이 사람은 (출 23:20-23, 33:15, 사 63:9)에 언급된 언약의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천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현현으로 나타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이다. 아브네즈라(Abenezra)와 킴치(Kimchi)와 같은 유대 학자들은 이 사자를 하나님으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킴치는 이 사자는 메시아로 보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메시아의 신성에 관한 세 가지 명백한 증거를 볼 수 있다. 1) 그는 하나님과 동일시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2) 그는 성전의 주인으로 불리우고 있다(그 전에..."). 3) 그는 그들이 구하는 바 "주"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면 언약의 사자라는 말에서 언급된 "언약"은 어떤 언약을 의미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 언약이 (히 9:15)에 언급된 새 언약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에 언급된 언약은 오랜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나타난 것이며, 구약 성경에서 이미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언약이다. 이것은 이미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다. 말라기 시대와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일시적인 구원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주실 구원자는 영원한 구원자이다. 구원의 언약에서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그 핵심에 놓여 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이스라엘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재림 때에도 이스라엘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언약은 예전에는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 언약에 모든 이방인이 포함되게 되었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2)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3)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4)..." 우리는 3:1에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 혼합되어 나타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현상은 (사 61:1-3)과 같은 구약 성경의 예언에 나타나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특징은 3:2에도 나타나고 있다. 3:2에는 메시아께서 자기 백성에게 임하실 두 가지 양상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해왔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께서 오시면 그들은 그 임재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신실치 못한 자들은 크게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말라기 시대에도 적용되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의 파괴를 예고하셨던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적용되는 예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세상에 다시 오실 그때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심판 주로 재림하실 때에, 주님은 경건한 자들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모든 찌꺼기들(거짓 신자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메시아는 세상에 오셔서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용광로의 불처럼 강한 불이 되어 자기 백성들로부터 부정하고 더러운 찌꺼기들을 제거하여 순수한 금과 은처럼 만드실 것이다. 또한 그때에 메시아께서는 표백하는 자의 잿물이 되실 것이다. 양잿물은 더럽고 변색된 옷감들을 눈처럼 하얗게 만든다. 이와 같이 메시아는 자기 피로 붉은 피와 같은 자기 백성의 죄를 흰 눈과 양털처럼 하얗고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세상을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연단은 레위 자손들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백성들에게 확산될 것이다. 말라기가 레위 자손의 정결을 언급한 것은 말라기 당시에 레위인들이 크게 부정케 되어서 그들이 드리는 제물이 열남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차 하나님은 부정해진 레위인들을 정결케 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께 정결하고 의로운 제물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로마 카톨릭 학자들은 이 구절이 신약의 성만찬을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일은 메시아께서 다시 오셔서 이루실 천년 왕국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정화되고 회복될 때에, 그들이 드리는 제물은 의로운 것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은 성만찬을 통해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신약의 성도들이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드리는 경건한 예배를 열납해 주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열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차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게 될 것이며, 그때에는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순결한 예배를 열납해 주실 것이다. 그때에 유대인들은자신들이 드리는 희생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5)" 3:5에서 말라기는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행악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심판 선언 역시 거만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항의(2:17)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될 첫 번째 대상은 마법사들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후에 이스라엘에는 마술이 횡행했다. 아마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 아내 때문에 이러한 죄에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신약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간음하는 여인들도 역시 하나님의 분노의 막대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간음하는 자"는 2;16에 언급된 히브리 여자들과 이혼하고, 이방인 여자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거짓 증거를 하는 거짓 맹세자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위증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비난을 하고 있는 범죄이다(출 20:23, 레 19:12, 신 19:16-20, 렘 29:23, 잠 19:5 참조). 또한 품꾼들의 삯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자들도 행악자의 무리로 분류되어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판을 받는 자드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시고 사랑하시는-을 압제하던 자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불법을 자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참아주시면서 계속해서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할 때에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인 야곱과 맺은 언약으로 인해 "야곱의 자손들"이라고 불리운다. 이스라엘이 마땅히 멸망당할 죄를 수없이 지었지만, 그들이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맺은 언약을 지키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와 은혜가 없었다면 그들은 벌써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포함한 열방 역시 멸망받아 마땅한 일들을 수없이 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열방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이 땅에 남겨 주셨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6).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7)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8).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9)." 하나님의 선하심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줄곧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서 살아왔으며, 수없이 많은 악을 자행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회개를 촉구하면서, 그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을 욕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오랫 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있었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기꺼이 그들을 받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방종한 삶에 만족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미약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일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일을 자행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의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물을 줄여서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하나니므이 것을 훔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제물은 처음 익은 곡식, 즉 옥수수, 포도주, 기름의 1/60 이상을 드려야 했다. 또한 그들이 드렸던 십일조에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1) 첫 곡식을 수확한 후, 남은 것의 1/10을 드렸는데, 이것은 레위인의 생계비로 사용되었다(레 27:30-33). 2) 레위인들은 자신이 받은 생활비 중에서 다시 1/10을 제사장에게 드렸다(민 18:26-28). 3) 레위인들과 그 가족들이 장막에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위해 회중이 드리는 제 2의 십일조(신 12:18), 4) 매 3년 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드린 십일조(신 14:28-29).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방에 거주하는 레위인들을 잘 돌보아 주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방의 3년에 한 번씩 예루살렘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지방에 있는 레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했다. 느헤미야와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다. 따라서백성들이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잘 한 만큼 그들의 소유에서 제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많이 심고 일해도 아주 적은 것만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말라기가 이 말을 할 때에도 그들은 이러한 죄를 계속해서 짓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임해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악행은 일부 사람들만 행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백성들이 자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악한 행위에 대해서 드러내어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살 속에도 저주가 임해서 수확과 소출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구별해 드릴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실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면이 다음에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11),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2)." 그러나 이스라엘의 미래가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선지자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모든 세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헌신하는 심령을 축복으로 받아주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축복이 창고를 열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우리의 창고를 열어야 한다.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의 창고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권고한다. 여기에 언급된 창고를 십일조를 쌓아놓은 성전의 방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인지 아닌지 시험해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의 시험을 당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은 자처해서 인간에게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요구하신다(대하 31:10). 하나님은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축복의 비를 내려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축복해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을 짓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축복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죄로 인해 땅이 가뭄이 들고 갈라질 때에, 순종하기만 하면 다시 그 땅이 비옥해지고 윤택한 곳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모든 해로운 것들, 즉 메뚜기나 그와 비슷한 것들을 통해 오는 재앙들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여기에서 메뚜기는 만족할줄 모르고 먹는 탐욕 때문에 (게걸스럽게) "먹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제 때에 비를 내려 주실 것이며, 재앙이 그들을 덮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온전히 헌신한 자녀들을 위해서, 그들이 심은 밭에서 곡식이나 과실이 추수 전에 떨어지는 일이 없게 지켜주실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수고한 모든 것에 대해서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에 황페하던 땅이 다시 아름답게 될 것이며, 열방이 이를 보고 그들을 복되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말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해서 약속하신 말이다. 이 말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은 죄로 인해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부르심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다시 그들을 안아 주시고 축복의 은혜로 덮어 주실 것이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동안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고, 다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13).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14)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15)." 2:17에서 신실하지 못한 제사장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형태의 회의주의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확산되었다(13). 그들이 한 말은 하나님께서 참기 어려운 완악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무슨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했느냐?"고 항의했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헛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슬프게 행한 일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근본 태도가 잘못 되어 있었다. 그들은 상업적인 태도로, 즉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겼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동기와 생각을 잘 알고 계셨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를 위해 슬퍼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서 슬퍼하는 척했다(참된 예배에 대해서는 사 58:3-8을 참고하라).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들은 불행하며, 오히려 교만한 자들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교만한 자들이 더 행복하게 보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교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이스라엘 백성 안에 있는 불경건한 자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쩌면 본문에 언급된 교만한 자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좋아보일 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하고 외람된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을 괴롭게 했으며, 참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16).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17),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18)." 악인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을 거스려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러면 이러한 때에 경건한 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실패하고, 타락할 때에도 항상 소수의 경건한 무리들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함께 모인다. 이러한 목적으로 가지고 함께 모인 경건한 사람들은 진리와 경건한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더욱 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굳게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깊게 들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순수한 영적인 교제와 그들이 한 일을 기념책에 기록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를 책에 기록하실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들의 행위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경건한 소수의 사람들을 인정해 주식, 또 그들이 계속해서 그 경건을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다. 바사(페르시아)에서는 왕을 섬긴 사람들의 이름과 그가 왕을 섬긴 일을 기록해서 보관하는 관습이 있었다(에 6:1-2).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기념책이 이러한 관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인용된 시편 103:13과 단 12:1에도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자신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자기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나의 것, 나의 소유"이라고 부르신다(3:17). 이 말은 (출 19:5, 신 7:6, 14:2, 26:1)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행하기로 결정한 날, 즈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특별히 하나님 앞에 기억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버지가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완수한 아들처럼 그들을 대해주실 것이다. 그 날에 그들에게는 악인에게 임할 심판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 즉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명히 구별하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3:12에 나오는 "너희"가 불평하며 원망하는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말이 의인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제까지 경건한 사람들은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상황을 많이 목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의의 길을 따랐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실한 사람들을 반드시 기억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의인과 악인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그들이 가진 믿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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