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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욥기

[스크랩] 욥기 (11 : 1~2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5
욥기 11장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ㅇ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 나아마 사람 소발의 욥에 대한 첫 번째 변
론이다. 여기에서 `나아마'는 수 15:41에 나오는 곳과 또다른 곳으로 추정되며 일반적
으로 북 아라비아의 헤자즈(Hejaz)와 동일한 장소로 간주된다. 한편 `소발'이란 `수다
떠는 자', `지저귀는 작은 새'라는 뜻으로서 욥의 세 친구 가운데 제일 나중에 변론하
며 그것도 다른 두 친구들과는 달리 두 번만 변론한 것으로 보아 세 친구 중 제일 연
소자인 것 같다. 그는 일반적으로 볼 때 성격이 가장 성급하며 열렬한 것으로 보이나
(Delitzsch). 그의 변론은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그 논리의 근거를 정통성(正統性)에
두고 있다.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ㅇ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얻겠느냐 - 본문에서 소발은 죄 때문에 고난 당
한다고 주장하는 앞의 두 친구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욥을 책망하여 조롱하고 있
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지혜서에서는 말이 많은 것을 어리석은 것, 또는 허물을 면키
어려운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바(잠 10:19; 전 5;2, 3), 본문에서도 소발이 욥을 말이
많은 자로 규정한 것은 그를 우둔한 자로 취급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하겠다. 한편 본문
의 `입이 부푼 사람'이란 문자적으로는 `이쉬 세파타임'으로서
`입술의 사람'(man of lips)을 뜻한다(M. H. Pope, J.E. Hartley). 그리고 본문에서
소발이 말한 바 `의롭다함을 얻겠느냐'란 욥의 말한 바 6:29; 10:2 등에 빗대어 한 말
이다.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
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ㅇ자랑하는 말 -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드'는 `허풍', `잡담', `거짓말
'(사 16:6; 렘 48:30) 등의 뜻을 지닌다(KJV, lies; NIV, idle talk, ; RSV, babble).
이로써 소발이 자신의 무죄를 고집하는 욥의 말(6:24-30; 10:2-11)을 헛된 것으로 간
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소발이 잠잠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고
대에서 흔히 논쟁에서 잠잠하는 것은 상대방의 뜻에 동조하는 것으로 여겨졌는 바, 소
발이 결코 욥의 뜻에 수긍하지 않으며 오히려 욥의 말을 반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J.
E. Hartley).

4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ㅇ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깨끗하다 하는구나 - 본절의 `내 도'를 70인역(LXX)에
서는 `토이스 에르고이스'(나의 행동)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드라이버(Driver)나 그레이(Gray)등도 이 의미를 지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그 원
형이 `레카흐'로서 본래 `받아들여진 것'(what is recieved), 더 나아가 `지
식', `학식', `교훈', `가르침'등을 뜻한다(사 29:24, J.E. Hartley). 본문에서는 욥
이 앞에서 증거한 말, 특히 그 자신은 의롭고 하나님이 그런 자신을 징계하고 계신다
고 말한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M. H. Pope). 한편 `주의 목전에'라는 말이 맛로라
사본에 의하면 `너의(당신의) 목전에'(in your eyes)로 번역된다. 그러나 `내 도는...
깨끗하다'를 직접 화법으로 바꾸어 보면 `너의'(당신의)란 곧 하나님을 지칭한것이 된
다. 70인역에는 `그의 앞에'로 되어 있으며, 영역본
RSV는 이를 `하나님의 목전에'(in God's eyes)로 번역하였다.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ㅇ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입을 여시고 - 이는 욥이 현재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
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여기는 소발의 확신을 보여준다

6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ㅇ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광대하심이라 - 여기에서 `오묘'란 문자적으로는
`타알루마'로서 `비밀', `숨겨진 것'등을 뜻한다. 한편 본문 전반절은
욥이 현재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15:2). 그리고 본문 후반
절의 `광대하심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플라임'은 `이중의', `두
배의'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지식은 양면(兩面), 즉 보여지는 면과 보여지지 않는
면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현재 욥이 하나님의 지식의 보이지 않는 깊은 면을 알고
있지 못함을 은근히 나무라는 말이다.
ㅇ하나님의 벌하심이...경하니라 -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이(너를 위해) 너의 불의
(의 일부분)를 잊어버리신다'(NIV, God has even forgotten some of your sin ;
NASB,God forgets a part of your iniquity)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 욥의 불의를
모두 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분에 대해서만 징벌하고 계신다는 점을 의미한
다.

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ㅇ네가 하나님의 오묘를...온전히 알겠느냐 - `오묘'란 원어상으로 `심사 숙고', `깊
은 것'(RSV, the deep thing)등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묘'란 하나님의 깊은
마음속에 감추어진 깊은 뜻을 가리킨다. 그리고 `측량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
차'는 `발견하다'(RSV, find out; NASB, discover)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 전반절은 욥과 같이 말이 많고(2절) 어리석은 자가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과 비
밀들을 발견할 수도 깨달아 알 수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한편 본
문 후반절의 문자적 의미는 `네가 전능자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RSV, Can you
find out the limit of the Almighty)의 뜻이다. 즉, 본문 후반절의 `온전히 알겠느냐
'의 히브리 원어는 전반절의 `측량하며'(팀차)란 말과 같은 잘못된 것으
로 보고 후자의 `팀차'를 `네가 도달하다'(you reach)로 수정 번역한다
(Driver & Gray). 그러나 본문은 동일 어휘의 반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강화
시키고 있다고 봄이 무난하다.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ㅇ하늘보다 높으시니...음부보다 깊으시니 - 본절과 다음 절에서는 고대 히브리인들
의 의식 속에 있었던,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영역(하늘, 음부, 땅, 바다)을 비교대
상으로 삼아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Anderson). 특히 본문의 `어찌하겠으며'란
문자적으로는 `마 티팔'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NASB, RSV, N
IV, What can you do)를 뜻한다. 이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
나님의 지혜를 욥으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한편 흔히 피조 세계의
광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네 개의 서로 다른 측량 단위가 사용되는데, 그것은 `높이
', `깊이', `길이', `넓이'등이다. 이중 `높이'와 `깊이'는 `하늘'과 `음부'와 관련되
어 사용되며(시 139:8; 롬 10:6, 7), `길이'와 `넓이'란 `땅'과 `바다'와 관련되어 쓰
인다(11:9; 37:10; 애 2:13).

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ㅇ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 `도량'이란 그 원형이 `마드'
로서 `규모'(measure)를 뜻한다. 그리고 영역본들 중 대부분은 이 단어의 주어를 비인
칭(NASB, RSV, Its)을 사용하여 옮기고 있다. 이럴 경우 그 주어는 하나님의 지혜, 또
는 깊으신 뜻 등을 가리키는 셈이다. 결국 본절 역시 앞절(8절)처럼 하나님 지혜의 초
월성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ㅇ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능히 막을소냐 - 이는 8,9절에 암
시된 초월적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시공(時空)에 제한 받지 않으시고 땅 끝 이곳 저곳
을 다니시사(욥과 같이)어리석고 범죄한 자들을 잡아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그 어느
누구도 막거나 제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정하시면'의 히브리어 `카할'
은 죄인들을 정죄 또는 심판 할 목적으로 `회중을 모으다', `소집하다
'(NASB,calls an assembley; NIV, convene a court)는 뜻이다(잠 5:14; 겔 16:40).
이와같이 욥의 고난이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이 본절에서도 뚜렷이 드러
난다.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ㅇ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키'(For
, RSV, NASB, KJV, For ; NIV, Surely)라는 연결사가 있다. 이것은 소발이 본문을 근
거로 그의 주장을 강하게 변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허망한'에 해당하는 히
브리어 `솨으'는 `헛된'(NJV, vain), `아무것도 아닌'(of nothingness)의 뜻
이다. 이는 본서에서 욥의 친구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악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
로 보인다. 즉 그 속에 지혜, 진리가 없고 거짓으로 가득찬 사람을 묘사하는 말이다.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ㅇ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새끼 같으니라 - 여기에서 `허망한'이란 원문상으
로 `나바브'(* )로서 11절의 `허망한'이란 말과 어휘가 다르나 그 의미 면에서는
유사하다. 그리고 본문 전반절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허망한 사람의 지각있게 될 것이
다'(KJV, Vain man would be Wise ; RSV, a stupid man will get understanding ;
NASB, an idiot will become interllingent)의 뜻이다. 이와 같은 의미는 후반절과 연
결될 때 그 뜻이 더욱 확연해진다. 본문 후반절의 문자적 의미는 분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영역 본 RSV 나 NASB 등은 각각 이것을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될
때'(When a wild ass's colt is born an man ; When the wild ass is born tame)란 뜻
으로, 그리고 하틀리(J. E. Hartley)는 `들나귀가 나귀로 태어날 수 있음 같이'(as a
wild ass can be born a donkey)란 의미로 이해한다. 아무튼 이런 다양한 본문 해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 의미는 결국 본문 후반절의 내용이 불가능한 것처럼 전
반절의 내용, 즉 허망한 자가 지각이 있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
다. 이것은 욥과 같이 어리석고 속이 빈 허망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오묘하신 깊은
뜻, 지혜를 깨달아 알게 될 수가 없으리라는 소발의 단정을 보여준다.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ㅇ마음을 바로 정하고...손을 들 때에 - `마음을 바로 정하고'란 마음을 하나님께 대
하여 확고히 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삼상 7:3). 그리고 이는
과거의 죄악된 곁길에서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따름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
한 본문 후반절의 `손을 들때에'란 지난 과거의 죄악된 길에서 떠나 회개하고 하나님
께 도움을 간청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겠다(시 28:2; 63:4; 134:2; 141:2; 사 1:15; 애
2:19; 3:41). 한편 본문의 `손'(카프)이란 문자적으로는 `손바닥'을 의미 하
는데, 본문에서는 쫙 펴고 높이 든 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J. E. Hartley)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ㅇ욥으로 하여금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새롭게 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죄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웬'은 일반적으로 여러 죄악들을 포
괄하며 특히 사회적 강자가 약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문
후반절은 욥의 가정에 불의가 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말로서, 이는 욥의 재산이 빼앗기
고 그 아들들이 죽임당한 사실과 연관시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15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ㅇ흠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 이는 소발이 욥의 말한 바 10:15 내용을 빗대어 한 것
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언급은 욥이 죄 때문에 고난과 징벌을 받는다는 가정하
에 주어진 것이다. 한편 얼굴을 들게 된다는 것은 욥이 이전에 가졌던 사회적 지위와
권위, 명성 등을(29:4-25) 회복하는 것을 암시한다.
두려움이 없으리니 - 이는 욥이 현재 고난받고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을 매우 두려
워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9:28).

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ㅇ환난 -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말'은 3:10에서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
과 시련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 소발은 욥이 회개할 경우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본
문 후반절의 문자적 의미는 `흘러가버린 물처럼 그것(환난)을 기억할 뿐일 것이다'라
는 뜻이다. 이것은 욥이 그의 당하는 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서 그 모든 고난을 아
득한 옛일처럼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ㅇ네 생명의 날이...될 것이요 -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레드'는
장수(長壽)의 측면에 강조점을 둔 단어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생애에 빛이 비췬다
는 것은 그 생애에 따뜻함과 생기 발랄함 혹은 풍요로움이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결
국 본문은 욥이 그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 불의한 길에서 돌이킬 경우 그의 생애가 더
욱 왕성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어두움이...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란 욥의 현재 처지가 암울하고 환난과 고통으로 가득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
이것들이 사라지고 밝고 활기찬 삶이 도래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윗이 `네 의
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6)라고 노래한 싯
귀를 연상시킨다(사 58:10). 결국 소발은 여기서, 욥이 이전에 자신의 생애에 대해 암
울한 상태로 부정적으로 말한 것을 염두에 두고 빗대어 말하고 있는 셈이다(10:21,
22).

18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지며 두루 살펴보고 안전히 쉬리니

ㅇ네가 소망이 있으므로...안전히 쉬리니 - 17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욥이 회개하면
장차 현재 당하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왕성하고 풍요로
운 장래를 누리게 되리라는 소발의 주장이 점철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악인은 쫓
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 28:1)라는 말씀을 생각
케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욥은 계속 이어지는 고난과 질병으로 인하여 소망이 끊겨졌
다고 탄식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처하게 된다(13:15; 14:17; 17:13,15,16; 19:10)

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

ㅇ누워도 -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바츠'는 주로 네 발 가진 짐승에게 적
용된다(창 49:9; 사 11:6; 17:2, M. H. Pope, J. E. Hartley). 그러나 상징적으로 사
람이 편안히 누워 쉬는 것에도 적용되는데(시 23:2) 본문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리

ㅇ첨을 드리리라 - 는 `얼굴을 기쁘게 할 것이다'(Would make sweet your face, M.
H. Pope), 또는 `쓰다듬어 얼굴을 부드럽게 하다'(to make the face smooth through s
troking)는 의미를 지닌다(J. E. Hartley). 다시 말하면 이는 `잘 대해 주다', `호의
를 베풀다', `달래다' 등의 뜻을 시사한다. `이 말은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께 대해 적
용되었으나(출 32:11; 왕상 13:6; 대하 33:12; 렘 26:9; 슥 8:21; 말 1:9)종종 사람에
대해서 언급되어지기도 한다(시 45:12; 잠 19:6). 소발의 이와 같은 언급은, 만약 욥
이 그의 죄악을 회개하고 불의한 길에서 돌이킬 경우 예전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 권
위를 회복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를 따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15절; 29:2-25)

20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 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

ㅇ그러나 악한 자는...끊침이리라 - 소발은 본문에서 악인의 비참한 최후를 묘사함으
로 욥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앞절들(15-19절)에 묘사된 회개한 자의
형통과 대조를 이룬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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