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느헤미야

[스크랩] 느헤미야 (13 : 1~3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01
느헤미야 13장


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ㅇ그 날(하욤 하후) - 12:44의 '그날'과 동일한 날로 봄이 무난하
겠다. 성벽 봉헌시 뜨겁게 달아 올랐던 감격과 헌신의 마음 자세가 식기 전인 성벽 봉
헌 직후에 계속 정화 운동을 전개했을 것이다(Kidner). 특히 12:44부터 본장 3절까지
는 3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데 반해 4절 이후부터는 1인칭 시점으로 바뀐다는 점 또한
본절의 '그 날'과 12:44의 '그 날' 의 동일성을 뒷받침해준다.
ㅇ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 '모세의 책'은 주로 모세 율법, 즉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본절은 이어 전개되는 정화 운동이 철저히 성경 말씀에 따른 것임을 천명하는 내용이
다.
ㅇ암몬사람...하나님의 회(會)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 이것은 신 23:3의 요약이다.
한편 '하나님의 회'(카할 하엘로힘)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표현이다. 즉, 여기의 '카할'은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항상 '여호와'와
함께 사용된것이다(레 4:13;민 16:3;20:4). 일반적로 '여호와의 회'는 (1) 언약 공동
체로서의 백성들의 모임(민 20:4;신 23:1), (2) 성전(聖戰) 수행을 위해 모인 백성들
의 집합, 혹은 (3)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제의적(祭儀的) 의미에서의
회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 23:3과 관련된 문맥에서 사용된 이 '하나님의
회'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총회'(카할)와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임에 분명하다.

2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ㅇ본절은 하나님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엄금한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서, 신 23:4,5의 요약이다.
ㅇ저희가...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 '암몬'과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 백
성들을 영접해야 했던 이유는, 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적으로 한 뿌리에 속했
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었다(창 19-30-38)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관계를 고려하여 절대로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고까지 하셨었다(신 2:9,19).
ㅇ양식과 물 -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두 가지였다
(신 2:6,7).
ㅇ발람에게...저주하게 하였음이라 - 이것은 모압 왕 발락이 주동이 되어 메소포타미
아의 브올에 살던 복술가(卜術家)'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가 임하
도록 하라고 요청했던 사실을 가리킨다. 모압과 암몬 족속이 이처럼 행동했던 까닭은,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아모리 족속까지 격파시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도 그 같은 군사 행동을 취할까 염려해서 였다(민 22:2,3). 그러나 사실상 이 같은 염
려는 어처구니없는 기우(杞憂)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형제로 인식하고
있었다(신 2:9,19). 이에 따라 그들은 다만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날 수 있는 길만
비켜주고(신 2:27,28), (2) 먹을 양식과 먹을 물을 돈을 받고 공급해주면 그만이었다
(신 2:6).
ㅇ뇌물을 주어(사카르) - '품삯을주고 고용하다' 혹은 '어떤 일에 대한 대
가를 지불하다'의 뜻(창 30:28;민 18:31;전 4:9;9:5). 이것은 구체적으로, 모압 사람
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한 대가로 발람에게 많은 은금(銀金)을 주었던 사실을 가리
킨다(민 22:18;24:13).
ㅇ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 비록 발람이 모압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스
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마음을 가졌었지만,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에 따라 그가 도리어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사실을 가리킨다(민 24장).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ㅇ백성들의 이 같은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이 칠칠절 절기 이래 계속적으로 에스라로
부터 신앙적 감화를 받은(8:1,13;9장) 결과였다.
ㅇ섞인 무리를...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 여기의 '섞인 무리'(에레브)
는 '함께 사귀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아라브'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함께 있는 사람
'의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서 성전 의식에 참여하는 등
이스라엘 사람 행세를 했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Fensham). 이 히브리어는 출애굽 당
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던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 바 있다(출 12:38).
그러나 거기서는 그들이 아무런 무리없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반면
에 본문의 이방인들은 실제적으로 여호와 신앙에 바로 서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방
악습을 끌어들여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분리케 하였느니라'(얍딜루)는 '구분하다'혹은 '나누다'의 뜻
인 '바달'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강제적으로 이방인들을 쫓아내는
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바달'이라는 동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두 개체를
각기 위치해야 할 곳으로 완전히 갈라놓는 것을 가리킨다(창 1:14;출 26:33;레 10:10;
스 6:21).
ㅇ이스라엘 가운에서 - 혹자는 전통적으로 진정한 이방인 개종자들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 받아들여졌으며 또 당시 팔레스틴에 이방인 거주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고려
하여 본문을 '종교적 모임으로부터의' 축출로 이해한다(Barren, Myers, Williamson).
그러나 당시 이방인들로 말미암은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건대, 보다 단호한 조치가
취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Fensham).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ㅇ이전에(리프네이 미제)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돌아가기
전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6절).
ㅇ우리 하나님의 전 - 여기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들어갈 수있는'의 의미
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표현은 암몬사람인 도비야에게 성
전의 방을 주었던 제사장 엘리아십의 조처가 대단히 잘못된 일임을 보여준다.
ㅇ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 - 본절의 '엘리아십'은 (1) 대제사장 엘리아십(Raw-
linson, Schultz, Kidner, Keil). (2) 동명(同名)의 또 다른 제사장(Fensham, Myers,
Williamson) 등으로 추측되어지고있다. 그러나 첫째, 대제사장은 성전의 사소한 부분
에 대한 감독권까지 갖고 있었으며 둘째, 본절의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
었다는 사실과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라는 28절의 내용이 잘 부합되며 셋째, 대제사장에게는 다만 '제사장'이라
는 직함이 적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대하 24:2;스 2:63)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1)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ㅇ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 '도비야'는 암몬 출신으로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
의 주구(走拘)였다(2:10). 그는 비록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뜻의 히브리식 이름을
가졌지만, 결코 여호와 종교의 예배자는 아니었다. 한편, '연락이 있므로'
(카로브)는 (장소, 혈연 또는 시간등에 있어서) '매우 가깝다'는 뜻으로서 각별한 친
근 관계를 가리킨다(Rawlinson).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ㅇ엘리아십이 도비야와 특별한 밀착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느헤미야의 귀환 전, 곧
오래전부터였겠지만, 본절과 같은 시혜(施惠)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일시 돌아갔었
던 B.C. 433-432년 동안에 이루어졌었다.
ㅇ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 엘리아십이 여러 개의 곳간을 헐어서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어 도비야에게 주었음을 뜻한다(Rawlinson).
ㅇ그 방은...곳이라(하이우) - 원문상으로는 '그것들은...이다'의 뜻이다.
이처럼 본 동사(하야)의 주어 어미가 3인칭 복수라는 사실은, 엘리아십이 도
비야에게준 '한 큰 방'이 여러 개의 작은 방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임을 여실히 증명
해준다.
ㅇ소제물 - 고은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만든 일종의 무교병(레 2:1)으로서
상번제와 안식일 제사 그리고 대부분의 희생 제사와 함께 드려졌던 예물이다(민
15:3:10).
ㅇ유향 -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 등의 향품을 동일한 비율로 섞어 증거궤 앞에 놓았
던 제물이다(출 30:34).
ㅇ기명 - 성전제사 때에 사용되던 여러 가지 그릇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최초의
포로 귀환때 바벨론에서 가져온 것들임이 분명하다(스 1:6-11).
ㅇ레위사람...노래하는 자...문지기 - 세 종류의 레위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레위
지파에 속하였지만, 그 직임에 따라 이와같이 세 종류로 분류되었었다(스 2:40-42).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ㅇ그 때에는 - 문자적으로는 '이 모든 동안'이다. 구체적으로 도비야가 엘리아십의 호
의에 따라 성전에 속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기간을 말한다.
ㅇ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 년 - B.C. 433년을 가리킨다. 한편, '바벨론왕 아닥
사스다'라는 표현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로 자처했던 전통과 관련이
있다(스 5:13).
ㅇ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아간 것은 (1) 그가 아닥사스
다에게 약속했던 기간이 다 됐거나, (2)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호출을 받았기 때
문이었을 것이다.
ㅇ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 '며칠후에'(레케츠 야밈)는
문자적으로'날들의 끝에'의 뜻이다. 추측컨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온 지 1년
이 다 되어가는 무렵을 의미하는 듯하다. 바로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우리는 느헤
미야가 B.C. 433년에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정확히 1년만에 팔레스틴으로 귀환했으리
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ㅇ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 이처럼 느헤미야가 팔레스틴으로 다시 돌아온 까닭은, 이
스라엘 공동체의 여러 가지 개혁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일시 돌아갔던 것도 분명히 본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ㅇ하나님의 전 뜰 - 스룹바벨 성전에는 두 개의 뜰이 있었다(사 62:9;슥 3:7). B.C.
4세기 헬라 사가(史家)인 헤카테우스(Hecataeus of Avdera)에 의하면 그 성전의 안뜰
의 길이가 500규빗이요 광이 100규빗이었다고 한다(Edwin Yamauchi).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ㅇ내가 심히 근심하여 - 여기의 '근심하여'(야레)는, 산발랏 일당의 군사적
공격 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사용했던 단어이다
(4:14). 그렇게 본다면, 느헤미야는 도비야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호의에 따라 성전
의 한 방을 차지한 사실을 산발랏 일당의 군사 공격만큼 두려운 일로 여겼음이 분명하
다. 백성의 최고 지도자였던 그는, 도비야라는 이방인을 통하여 이루어질 이방 문화
및 이방 종교의 침투를 심각하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9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ㅇ그방을 정결케 하고 - 추측컨대 그방은 물이나 피를 뿌리는 등의 정결 의식을 통하
여(레 14:52) '정결케'되었을 것이다.

10 내가 또 알아 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ㅇ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 - 레위 사람들의 유일한 수입원(收入源)이었던 십일조를 가
리킨다(10:37).
ㅇ주지 아니하였으므로 - 느헤미야는 십일조의 원활한 징수를 위하여 레위 사람들을
각 성읍에 주재시켰었다(10:3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했
다는 사실은, 그들이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불과 1년 가량의 기간 동안 성전 제사의
절대적 필요성을 무시할 만큼 영적으로 침체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받은 바 신령
한 은혜를 계속 보존하기란 이렇듯 힘들다.
ㅇ레위 사람들...그 전리(田里)로 도망하였기로 - 성벽 봉헌식 이전에도 레위 사람들
의 상당수는 여러 촌(村)에 흩어져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다(12:27).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성실히 내겠다는 백성들의 다짐(10:37-39)을 믿고 예루살렘으
로 돌아왔지만, 십일조 납부가 중단되자 다시 생업 유지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한
편, '도망하였기로(바라흐)는 생명의 보존을 위한 자구책(自球策)으로서 위
험한 곳으로부터 떠나는 일을 가리킨다(삼상 19:18;대하 10:2;사 48:20).

11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ㅇ민장을 꾸짖어 - '민장'(세가님)은 백성들 중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유력한 귀인(貴人)들이다. 그들은 백성들을 독려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바쳐
야 할 책무를가졌을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바치는 일에 있어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
야만 했다.
ㅇ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 레위 사람들이 성전을 떠나 촌으로 흩
어짐으로써 성전의 본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그들이
모두 떠나버림으로써 희생 제사와 관계된 일들이 제대로 거행될 수 없었을 것이 분명
하다. 한편, '버린 바 되었느냐'(네에자브)는 '배반하다' 혹은 '모반하다'
의 뜻을 갖는 동사 '아자브'의 수동형이다.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ㅇ십일조를...곳간에 들이므로 - 백성들이 직접 십일조를 갖고 성전까지 왔음을 의미
한다. 이처럼 레위 사람들에 의하여 징수되도록했던 느헤미야의 십일조 규정(10:37)에
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직접 성전까지 십일조를 가져온 것은 느헤미야의 호되면서도
충정어린 책망을 백성들이 달게 받아들였음을 암시한다.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ㅇ느헤미야의 이러한 조처는, 백성의 십일조 납부가 재개되어 성전의 곳간에 재물이
많아진 그 당시의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항은, 느헤
미야가 재물의 효율적 관리, 특히 분배 문제로 말미암는 불화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
기 위하여(10:38)'고지기'로서 각계 각층의 세 사람을 세웠다는 사실이다(고후 8:18-
21).
ㅇ제사장 셀레먀 - 성벽재건에 참여했던 하나냐의 아버지 '셀레먀'일 가능성도 있다
(3:30). '여호와의 친구'의 뜻이다.
ㅇ서기관 사독 - 느헤미야의 부하 관리였던'시드기야'일 가능성이 크다(Rawlinson).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1)'시드기야'(여호와는 나의 의이시다)와 '사독'(의로운)
은 모두 '의롭다'의 의미를 갖는 동일한 어근 '차다크'에서 왔으며, (2) '서
기관'은 성전 운영의 국고를 담당하기도 했다는(왕하 12:10) 점 등이다.
ㅇ레위사람 브다야 - 이 사람은 에스라의 율법 낭독시 그의 곁에 있었던 레위 사람 '
브다야'일 가능성도 많다(8:4).
ㅇ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 '버금을 삼았나니'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손에 두었
다'이며, 하난이 위의 세 사람을 도와 고지기 직무를 수행하였다는 뜻이다(NIV, made
Hanan...their assistant). 한편, 위의 세 고지기가 각각 제사장, 서기관, 레위인 출
신이었다는 점에서, 하난은 평민 출신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Edwin Yamauchi).
ㅇ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 고지기라는 중책이 맡겨질 수 있었던 이유이다.
여기서'충직한 자'(네에마님)는 '든든히 세우다'(삼상 25:28), '확실
하게 하다'(왕상 8:26), '신실하다'(사 49:7) 등의 뜻이 있는 동사 '아만'
의 분사로서, '신뢰할 만한자' 혹은 '신임을 받는 자' 등의 의미이다(삼상 22:14;잠
25:13;사8:2;렘 42:5 등 참조).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어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ㅇ느헤미야의 이 짧은 기도는 이기심에서 나온 자고(自高)의 표현이 아니다(5:19).
ㅇ선한 일 (헤세드) - 이것은 일반적으로 (1) 하나님의 은혜, 자비(시 5:8;3
6), (2) 사람들 사이의 인자, 긍휼(창 21:23;욥 6:14), (3) 하나님을 향한 경건(사
57:1)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전 제사 유지를 위한 느헤미야 자신의 신실
한 노력을 뜻한다.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게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ㅇ그 때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서 재 귀환한 직후일 것이다(Fensham).
ㅇ내가 본즉 -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민정(民情)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특히
'본즉'(라아)은 세밀한 조사 관찰 행동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창 6:12;22:13;왕하 7:13;대하 24:22).
ㅇ안식일에 술 틀을 밟고...식물을 팔기로 -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 계
명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들은 성벽 재건 직후 언약을 갱
신 하면서 안식일 계명을 제대로 지키기로 결단한 바있다. 그들은 그때 자신들과 이방
인을 분명히 구별케 해주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종교적, 문화적 순수성 유지
를 도모하려고 했었다(10:31).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들과의 빈번한 경제적 접촉의 결
과로, 오히려 안식일 개명을 경시하는 두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아무튼 이
같은 안식일 계명의 경시는, 그 날에 소용되는 양식을 하나나님께서 채워주신다(출
16:19-22)는 분명한 약속을 망각하고 또한 믿지 않은 결과였다. 한편, '술틀을 밟고'
에 대해서는5:14-19 주제 강해, '포도주 제조 과정'을 참조하라(욥 24:11;사 63:2,3).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ㅇ15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안식일을 범했던 사실에 대
해 다룬다. 한편, '두로 사람'은 고대 중근동 뿐만 아니라 지중해 지역 전체에 그 명
성을 날렸던 페니키아 상인(본 단락 주제 강해, '페니키아 상인' 참조)들을 가리킨다
(겔 27:12-36;28:16).
ㅇ예루살렘에 거하며 - 이방인들의 이 같은 행위 자체는 결코 불법이 아니었다. 다윗
시대에도 여부스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대상 21:15).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
당시에도 유대인들과의 무역에 종사하는 많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었다.
ㅇ물고기와 각양 물건을...안식일에...팔기로 - '물고기'는 이스라엘 백성에 의하여
매우 애호되던 식품이었다(레 11:9;민 11:5;신 14:9;마 14:17). '두로 사람'들은 이 '
물고기'를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지중해 연안에서 잡았거나, 혹은 갈릴리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잡은 것을 사와서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물고기'는 '어문'을 통해서 예
루살렘 안으로 반입됐을 것이다(3:3).

17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ㅇ느헤미야의 귀인들에 대한 이러한 책망은, 귀인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에 오히려
앞장섰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들은 기득권을 남용하여 자신들의 식탐(食貪)
과 물욕(物慾) 충족을 위하여 안식일을 범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ㅇ악을 행하여 -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1) 십계명 중 제4계명을 범하는 것이었다는
점, (2) 그래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다시 초래케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18절;렘
17:27;겔 20:12,13)에서 분명히 심각한 '악행'이었다.

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ㅇ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성읍에 내리신 것 - 본절의 '이 성읍'은 단수라는 점에
서 예루살렘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
키지 않음로써 그 형벌로 수도 예루살렘이 완전히 훼파당하는 사태를 맞이했었던 사실
을 가리킨다(렘 17:27).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
려갔던 사건을 가리킴도 물론이다.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 오지 못하게 하매

ㅇ본절부터 22절까지에서는 안식일을 보다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한 시책이 언급된다.
ㅇ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성문을 닫고 -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는
문자적으로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가 드리워 질 때'의 뜻이다(NIV, Fensham).따라서
이것은 밤이 되기얼마 전의 시간을 가려킨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느헤미야가 일몰
시간이면 닫았던 성문을 보다 이른 시간에 닫도록 했었음을 뜻한다(Rawlinson).
ㅇ내 종자...성문마다 세워서 - 일상적으로는 예루살렘 주민 중 그날의 당번에 해당
되는 사람들이 성문을 지켰을 것이다(7:3).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이 어떤 대가를 보
장받고 장사꾼들을 예루살렘 시내로 들여놓을 가능성을 염려하여 자신의 심복들을 성
문마다 배치하였다.

20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성 밖에서 자므로

ㅇ장사들...성밖에서 자므로 -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상품을 들여와 팔기 위한 장삿속
때문이었다. 장사꾼들이 성밖에서 군거(群居)하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매우 요란했을
것이며, 또 백성들이 성벽 아래의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 성문 혹은 성벽 쪽으로 몰
려들어 혼란을 야기시켰을 것이다(Rawlinson).

21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ㅇ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 느헤미야는 유다 지역의 합법적 총독이었기 때
문에(5:14), 그 지역 내에서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방인들도 유다 땅에서는 유대법, 즉 하나님의 율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8절). 비록 유다가 페르시아의 속국이긴 했지만, 유다는 페르시아의 회유 정책
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들의 법률로 삼을 수 있는 자치권을 허용받았었다(스 7
:14,25,26).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ㅇ레위 사람들...몸을 정결케 하고 - (1) '성문'을 지키는 일은 성전을 지키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이며(대상 9:17-22;26:12-19), (2) 성문 파수가 안식일 준수를 목적으
로 하는 종교적 성격이었다는 점 등에서, 레위인들은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다.
ㅇ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 성문에는 이미 평민들과 느헤미야의 종자
(19절)가 성문 파수를 위해 배치되어있었다. 그런데 다시 레위 사람까지 배치한 까닭
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보다 잘 아는 그들을 통해 성문 파수가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게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물론 레위 사람들은 성벽 파수의 직무를 부여받았었
다. 그러나 그것은 성벽 파수의 감독 직무였을 뿐이다(7:1). 느헤미야는 금번에 그들
을 감독의 자격이 아닌 직접적인 성문 파수 담당자로 발령한 것이다.
ㅇ나의 하나님...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이것은 느헤미야가 비록 자신이
선한 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에는 지극히 미흡하다고 느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이는 그의 겸손이 잘 드러나는 기도라고 할 수있다. 그 문
자적 의미는 '나의 하나님 큰 사랑을 베푸시옵소서'이다. 한편, 여기의 '은혜'
(헤세드)는 신적인 언약에 근거한 불변적 사랑을 뜻한다.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ㅇ본절과 같은 문제는 에스라의 개혁조치가 있었던 B.C. 458년 이후에는 크게 노출된
적이 없었다. 물론 그 같은 풍조가 간간이 있기는 했었지만(6:18;10:30), 그 풍조가
사회 문제화된 것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왔던(6절)그 이후였다.
ㅇ그때에 - 느헤미야의 귀환 직후이다(15절).
ㅇ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 '아스돗'은 블레셋의 일파로서 유다 땅 서쪽에 위치했었으
며(4:7) '암몬과 모압'은 모두 유다 땅 동쪽에 위치했었다. 이들 모두 유다 땅과 인근
지역이었던 까닭에 쉽사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혼(通婚)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24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ㅇ통혼의 심각한 결과가 언급되고 있다. 이스라엘 남성과 결혼한 이방 여인들이 그사
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모국어를 가르침으로써 야기된 현상이었다.
ㅇ아스돗 방언...유다 방언은 못하니 -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해석이 애매한 부분이
다. 이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통혼한 이들의 자녀들 중 절반 가량은 아스돗 방언이나
기타 이방 언어로는 말할 수 있어도 유다 방언은 제대로 못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것
이 가장 무난하겠다(NIV, Half of their children spoke the language pf Ashdod or
the language of one of the other peoples, and did not know how to speak the
language of Judah). 언어는 한 민족을 공통적인 유대 관계로 맺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더구나 히브리어가 종교 의식상의 언어였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민족
언어의 상실은 곧 하나님 말씀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지는 불과 1년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해서 통혼이 진행됐고 또한 태어난 여러 자녀들이 이방 언어에 그토록 깊이 젖어들게
되었느냐는 점이다. 바로이 같은 의문 때문에 혹자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있었던
기간을 1년이 아닌 휠씬 더 오래동안으로 잡는다. 그러나 개혁의 미진함을 절감하며
떠났던 느헤미야가 오랫동안 페르시아에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는,
(1) 이와 같은 통혼과 그에 따른 이방 언어 사용의 문제가 이방 민족들이 살던 지역과
인접한 변방(邊方)에서 주로 야기되었고, (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에
서만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비록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가기 전부터 통혼이 간간
이 진행됐지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Keil).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부
터 재귀환한 후에야 변방 지역의 순시를 통하여 백성들의 통혼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
던것이다.

25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ㅇ본절에서의 느헤미야의 행동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認識)한 결과에 따른 경고적
성격의 것이었다.
ㅇ책망하고(리브) - 11,17절에서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해
석은 5:7 주석을 참조하라.
ㅇ저주하며 - 이것은 종교적 선포의 성격을 갖는다. 즉, 느헤미야는 통혼으로 말미암
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리라는 사실을 선포하였을
것이다(Fensham).
ㅇ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 느헤미야는 총독의 자격(5:14)으로 중한
체벌(體罰)이나 가산 적몰(스 7:26)의 징계를 통혼자들에게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문의 행동은 체벌이라기 보다는 느헤미야 자신의 극단적 불쾌감과 격노의 표시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머리털을 뽑는 것은 진노를 나타내거나 모욕이나 경멸을 표현하는
행위이다(삼하 10:4;사 50:6).
ㅇ너희는...맹세하라 - 10:29,30을 참조하라.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ㅇ솔로몬이...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 솔로몬이 이방 후궁들의 꾀임에 빠져 이방신
들을 섬겼던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왕상 11:4-8).
ㅇ저는...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 솔로몬이(1) 하나님으로부터 큰 지혜를 받았
고(왕상 4:29),(2)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한 국가를 이룰수 있었으며(왕상 4:20,21
;9:26-28),(3) 그 결과 이방인들로 부터도 칭송을 받았던 사실(왕상 10:1-9)등을 가리
킨다.
ㅇ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 (1) 압살롬과 아도니야 등 이복 형들의 잇단 왕위 승계
투쟁이 있었던 사실(삼하 15:7-12;왕상 1:5),(2) 솔로몬은 다윗이 부정하게 취한 여인
밧세바의 소생이었다는 사실(삼하 12:24,25) 등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
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만하다.
ㅇ이방 여인 - 솔로몬에게는 이방 출신의 후궁이 약 천 명이나 있었다(왕상 11:3).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ㅇ통혼자들이 이방 여인들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는 내용이
다.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ㅇ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 - 이것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야다의 아들 하
나'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12:10).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사위가 된 '요야다'의 아들
을 다만 '하나'라고 하여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축출되어 그의 이름도 명부에서 도말됐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느헤미야
는 그 같은 이름을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본 문맥에 기록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아십'은(1) 느헤미야가 귀환했던 B.C. 444
년, 즉 13년 전에 이미 대제사장이었으며(3:1),(2) 그의 손자가 결혼 적령기가 됐다는
점 등으로 볼 때 그 당시 꽤 연로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요야다'는 '엘리아십'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에 올랐었을 것이다(12:10).
ㅇ호론사람 산발랏 - 이같은 표현은, 산발랏의 가문이 결코 이스라엘 백성 특히 대제
사장 가문과는 결혼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해준다. '호론 사람'에 대해서는2:19
주석을 참조하라.
ㅇ쫓아내어...떠나게 하였느니라 - 이것은 '요야다'의 아들 부부가 함께 사마리아로
쫓겨났음을 의미한다(Williamson).이처럼 느헤미야가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
은 요야다의 아들이 산발랏의 딸과 이혼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인 듯하다(Rawlinson).

29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ㅇ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민 중에서 구별되어 선택되었었
다(신 7:6). 하나님께서는 그중에서도 '제사장 을 특별히 성별하여 그 직분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을 드러내기 원하셨었다(레 21:4,6). 따라서 그 같은 제사장이 율법이 엄
히 금하는 이방여인과 통혼했다는 사실은 곧 그 거룩한 직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ㅇ제사장...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 - 이것에 대해서는 (1) 구약의 율법이 전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바 곧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평민들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는 공통 인식으로 보는 견해(Rawlinson),(2) '제사장'이 이방 여인과 통혼해서는 안
된다는 레 21:14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Fensham),(3)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
으로서 범법자들을 처단했던 그 정신(출 32:26-29;민 25:10-13)을 계승하여, '제사장'
과 '레위 사람'들이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거룩성 유지에 힘써야 한다는 언약(말 2:4-8
)으로 보는 견해(Williamson, Keil) 등으로 그 해석이 나뉜다. 그러나 첫째, 본절은
레위 사람의 통혼을 책망하는 문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레위 사람'까지를 거론하고
있으며 둘째, 레 21:14은 오직 제사장의 통혼 금지 규정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30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ㅇ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 느헤미야가 제사장들을 권면하여 그들과 함께 살던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도록 한 것을 가리킨다(스 10:18,19).
ㅇ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하고 - 문자적으로는 다만 '각각 그 일을 맡겼다'이
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페르시아 여행 기간 동안 일부 와해된 반차 조직을 재정비했다
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Fensham).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ㅇ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 '나무'는 상번제 등에 계속적으로 소
용됐던 화목(火木)을 가리킨다(10:34). '처음 익은 것'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생계
유지에 필요했던 여러 헌물 중의 대표적인 것이었다(10:35).
ㅇ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 5:19 주석을 참조하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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