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2장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벧과 및 예수아를 좇아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이러하니라 제사장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ㅇ느헤미야는 인구 재정착 작업을 마친후 (11장), 이스라엘의 존재 기반인 여호와 신
앙의 종교적 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의 가계를 조사한다.
ㅇ스룹바벨과 및 예수아 - 이들은 바벨론으로 부터의 제1차 귀환을 주도했던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적 지도자였다(스 2:2). 따라서 본절부터 7절까지에 언급되는 제사장 가
문은 모두 최초의 귀환 대열에 속했었다. 한편, 1-7절 외에 12-21절과(느헤미야 초기
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 10:2-8(느헤미야후기 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에도
제사장 목록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차이에 관해서 는 주제 강해, '세 가지 제사
장 계보 명단 비교'를 참조하라.
ㅇ스라야 - 대상 9:11에는 '아사랴'로 나온다.
ㅇ예레미야 - 이 가문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다.
ㅇ에스라 - 에스라서의 저자인 에스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자들은 이 '에스라
'가 10:2의 '아사랴'의 축약형이라고 주장한다(Kidner).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ㅇ아마랴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의 뜻이다.
ㅇ말룩 - 14절의 '말루기'와 동일한 듯하다. '통치하는'의 뜻이다.
ㅇ핫두스 - '대적자'의 뜻이다.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ㅇ스가랴 - 14절 및 10:4과 같이 '스바냐'로 고쳐야 할 것이다(Rawlinson).
ㅇ르훔 - '하림'의 오류로 추정된다(Rawlinson, Kidner, 10:5;스
2:39).
ㅇ므레못 - 15절의 '므라욧'의 바른 이름이다. '높은곳들'
의 의미이다.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ㅇ잇도 - 10:5의 '오바댜'의 바른 이름이다. 보다 후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12-21절)
에도 '잇도'(16절)로 나오는 것을 보면 '오바댜'는 필사자의 잘못인것 같다(Rawlinson).
ㅇ긴느도이 - '긴느돈'의 오류인 듯하다(Rawlinson, 16절;10:6).
ㅇ아비야 -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바로 이 제사장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눅 1:5).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ㅇ미야민 - '운이 좋은'의 뜻이다.
ㅇ마아댜 - 이것은 17절의 '모아댜'와 동일한 듯하다
(10:8). '여호와의 장식품'의 뜻이다.
ㅇ빌가 - 10:8의 '빌개'와 동일하다.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ㅇ스마야 - 18절과 10:8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ㅇ요야립 - 이 '요야립' 앞에만 '그리고'의 의미를 갖는 접속사 '와우'가 있다.
본서의 저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앞의 '스마야'까지와 여기의 '요야립'부터를 확연히
구분하려고 시도한다(19절). 추측컨대 이는 '요야립' 가문부터, 어떤 원인에 의해서인
지는 모르지만, 언약에 인을 치지 못했던 때문인 것 같다(Rawlinson). 이와 같은 주장
은, '요야립'이하의 가문명들이 10장의 인친 가문의 명단중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
실로써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한편, '요야립'은 '여호와께서 아심'의 뜻이다.
ㅇ여다야 - '여다야'라고 불리위지던 대제사장 가문의 일족(一族)이다(스 2:36). '여
호와께서 알고계시다'의 의미이다.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과 그 형제의
어른이었느니라
ㅇ살루 - 조절의 '살래'와 동일한 듯하다. '무게를 단'의 의미이다.
ㅇ아목 - 조절에서도 다시 언급된다. '깊은'의 의미이다.
ㅇ힐기야 - '여호와의 분깃'의 뜻이다.
ㅇ여다야 - 6절의 '여다야'처럼 대제사장 가문 출신일 것이다. 한편, 다윗 시대에는
제사장들이 24반차로 구분되어 번갈아가며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된 바 있으나(대
상 24:1-19), 1-7절에 열거된 제사장들의 수효는 22명이다. 그렇다고 느헤미야 시대에
와서 22반차로 의도적으로 재구성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1-7절에서는 24반
차 중 2개의 명단이 생략되었다고 본다.
8 레위 사람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저의 맞은편에 있으며
ㅇ본절의 명단들은 가계명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비록 귀환 당시에는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밖에 없었지만(스 2:40) (1)약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레위 사람들의
인구가 증가하였고, (2)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을 바벨론에서 데려왔기(스 8:15-20) 때
문에 이처럼 가문의 숫자도 늘어났을 것이다.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았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았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았고
ㅇ본절과 다음 절은 포로 귀환 시대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의 계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대상 6:3-15에 나타난 아론으로 부터 바벨론 포로 때까지의 대제사장
족보의 연장이다. 물론 포로 기간, 즉 B.C. 586년부터 B.C. 538년까지는 대제사장이
없었다.
ㅇ예수아 -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인물이다(스 2:2). 그는 B.C. 520년 경
의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하는 데 참여했음이 분명하다(스 5:2). 그러나 성전이 준공
될 때까지 살아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스 8:15-18).
ㅇ요야김 - 예수아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 역할을 했다(12,26절). '여호와께서 일으키
실 것이다'의 뜻이다.
ㅇ엘리아십 - 이 사람은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해인 B.C.458년 이전에 이미 대
제사장이 되어 있었다(스 10:6).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적극 방해했던 암
몬 사람 도비야와 내통하는 등의 이적(利敵) 행위를 하기도 했다(13:4,5,28).그 이름
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이다'이다.
ㅇ요야다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후기 시대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그의
아들 하나는 사마리아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됐었다(13;28).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
와께서 알고 계신다'이다. 한편,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월절 기략'(the
Paschal Chronicle)이라는 유대 문헌에 따르면 그의 재직 기간은 삼십 육 년으로 되어
있다(Rawlinson).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았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ㅇ요나단 - 22,23절의 요하난과 동일 인물인 듯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요하
난'이 페르시아 총독 바고아스의 환심을 사서 자신의 대제사장직을 빼앗으려고 시도
했던 동생 예수아를 살해하였던 인물이라고 말한다(Rawlinson, Fensham). 또한 '요하
난'은 애굽에서 발견된 B.C. 410년 경의 파피루스 문서에서도 그이름이 언급된다
(Fensham).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총애하심'이다.
ㅇ얏두아 - 요세푸스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얏두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
살렘에 입성했을 당시의 대제사장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의 예루살렘 입성이
B.C.332년이었으므로, 본서가 B.C.5세기후반 (421-400년 경)에 기록됐었다는 입장은
손상을 입게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10,11절의 족보가 후대의 어떤 인물에 의
해 가필(加筆)되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의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ㅇ여기서부터 21절까지에서는 제사장 21반열의 이름 각각과 그 각각의 우두머리 이름
이 나열되고 있다. 이는 당시에 제사장 체계가 새로 정비되고, 성전 제사가 엄정히 드
려졌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Rawlinson). 사실 요야김이 대제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
던 시기는, 성전이 재건된(B.C. 516년) 직후였으므로 당연히 성전 제사가 철저히 드
려졌을 것이다.
ㅇ요야김 때 - 에스라나 느혜미야가 귀환하기 얼마 전의 시기를 가리킬 것이다. 분명
치는 않지만 예수아의 대제사장 재직이 B.C. 490년까지였다면(B.T. Dahlbaerg). 요야
김은 에스라의 도착(B. C. 458년)직전까기 대제사장에 있었을 것이다.
ㅇ스라야 족속 - 1절의 '스라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ㅇ므라야 - '모반'의 뜻이다.
ㅇ예레미야 족속 - 알려진 바가 없다.
ㅇ하나냐 -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셨다'의 뜻이다.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ㅇ에스라 족속 - 1절의 '에스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ㅇ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ㅇ아마랴 족속 - 2절 주석 참조하라.
ㅇ여호하난 - '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의 뜻이다.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ㅇ말루기 족속 - 2절의 '말룩'과 동일하다.
ㅇ요나단 - '여호와께서 주셨다'의 뜻이다.
ㅇ스바냐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요셉 - '그가 더할 것이다'의 뜻이다.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ㅇ하림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아드나 - '즐거움'의 뜻이다.
ㅇ므라욧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헬개 - '할당된'의 뜻이다.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ㅇ잇도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스가랴 -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뜻이다.
ㅇ긴느돈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ㅇ아비야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시그리 - '기억할만한'의 뜻이다.
ㅇ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 - 이 두 이름은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아마 필사
자의 오류로 '미냐민 족속'의 우두머리 이름이 누락됐을 것이다(5절). 한편'모아댜 족
속'에 대해서는 5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빌대 - '구출된'의 뜻이다.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ㅇ빌가 족속 - 5절의 '빌가'와 동일하다.
ㅇ삼무아 - '소문' 혹은 '풍문'의 뜻이다.
ㅇ스마야 족속 - 6절을 참조하라.
ㅇ여호나단 - '여호와께서 주셨다'의 뜻이다.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ㅇ요야립 족속 - 본 제사장 가문 명단중 유일하게 이 앞에만 '그리고'의 뜻인 접속사
'와우'가 있다. 그이유에 대해서는 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맛드내 - '자유로운'의 뜻이다.
ㅇ여다야 족속 - 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웃시 - '힘센'의 뜻이다.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벧이요
ㅇ살래 족속 - 7절의 '살루'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ㅇ갈래 -'경솔한'의 뜻이다.
ㅇ아목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에벨 - '건너편'의 뜻이다.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ㅇ힐기야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하사뱌 - '여호와께서 생각하셨다'의 뜻이다.
ㅇ여다야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느다넬 -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의 뜻이다.
22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ㅇ본절과 23절도 10,11절처럼 후대의 삽입인 듯하다.
ㅇ엘리아십...요야다...요하난...얏두아 - 10,11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바사 왕 다리오 - 다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페르시아 역사상 세 명 등장한다.
그러나 문맥상 본문의 다리오는 유다의 대제사장 '얏두아'와 동시대 사람인 다리오 3
세(B.C. 335-331년)를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23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ㅇ역대 지략 - 여러 가지 명단과 기록을담은 공식적인 성전 연대기로 추측된다(Edwin
Yamauchi). 한편, 성경에 언급된 자료나 문서들에 관해서는 대하 35:26,27의 도표를
참조하라.
ㅇ요하난은 약B.C.400년까지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최후의 선지자 말라기도 바로 이
시대에 활동했었다.
24 레위 사람의 어른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저희가 그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 반차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ㅇ본절과 다음 절의 레위 사람들의 명단은 개인의 이름이 아닌 가문의 이름임이 분명
하다.
ㅇ하사뱌 - 포로 귀환 후 생긴 레위 사람의 가문일 것이다(8,21절).
ㅇ세레뱌 - '하사뱌'와 마찬가지이다.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 - '아들'(벤 )은 '빈누'의 오류임이 분명
하다(Kidner, 8절).
ㅇ그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 레위 성가대가 교송(交頌) 형식으로 찬양을 드렸음을 의
미한다(9절;스 3:11). 즉, 두 파트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며 찬양하였던 셈이다.
ㅇ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찬양하며 감사하고 - '하나님의 사람'은 다윗이
신정 왕국 이라엘의 예배 체계를 신실하게 확립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용어
인 듯하다(대하 8:14). 다윗이 노래하는 자들의 반차를 정한 것은 대상 25장에서 언급
되고 있다.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반차대로 문
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ㅇ'노래하는 자'(11:17)들이 '문지기기'의 역활도 병행했었다는 추측은 불필요한 듯
하다(Fensham). 따라서 우리는 '오바댜' 까지의 세 사람을 24절의 후미에 붙여야 할
것이다(Kidner). 그렇게 할 경우, '맛다냐'와 '박부갸' 사이에만 유일하게 있는 접속
사 '와우'를 '오바댜'와 '므술람'사이로 옮기면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 사이
의 구별이 뚜렸 해진다. 6절의 '요야립'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면, 이 같은 구별에 대
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ㅇ므술람과 달몬과 악굽 - '므술람'은 대상 9:17절 및 스 2:42 등을 볼
때, '살룸'의 오류임이 분명하다(Schultz).
ㅇ문 안의 곳간 - '문지기'들이 지켰던 '곳간'은 성전에 부속되어 있던 '곳간'들을
가리킨다(Schults, 10:38,39).
26 이상 모든 사람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방백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서기관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ㅇ모든 사람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 - '요사닥'은 바벨론에 붙들려간 '여호사닥' 대
제사장과 동일 인물이며(대상 6:15), '예수아'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대제사장(스
2:2)이다.
ㅇ요야김과...느헤미야와...에스라때 - 이것은 여기의 세 사람이 모두 동시대(同時
代)의 사람들임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의 '요야김'은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B.C.458년 이전에 죽었을 것이다. 즉, 에스라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요야김'의 아
들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의 직책에 올라 있었다(스 10:6).
27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ㅇ여기서 문제가 되는 바는, 본절 이하에서 언급되는 성곽 봉헌식 행사가 언제 실시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1) 성곽 공사가 준공된 직후에 봉헌식이 있었
다는 견해(Rudolph), (2) 예루살렘으로의 인구 재정착 사업을 끝마친 후에 봉헌식이
있었다는 견해(Fensham, Keil, Myers), (3)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온 직후인
B.C.432년에 봉헌식이 있었다는 견해(Rawlinson) 등으로 견해가 엇갈린다. 원래 봉헌
식이라는 것은 집이든 성곽이든 준공 직후에 시행되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보
편적 관습이었으나(스 6:14-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시급한 예루살렘 성의 방
비 문제(7:4)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기쁨으로 봉헌식을 실시하기는 어려웠
으리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 (2)의 견해가 가장 타당할 것이다.
ㅇ예루살렘 성곽이 낙성(落成)되니. - 6:15에서 언급되고 있다.
ㅇ각처에서 레위사람을 찾아 - 이것은 연대기적으로 혹은 내용상 당시에 레위 사람들
이 십일조의 징수 등의 목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의 각 성읍에 거주하고있었다는11:36의
내용과 바로 연결된다. 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에게 배당된 성읍에서 살았지만, 자신
들의 봉사 순서가 돌아오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예루살렘으로 와야만 했다
(대하 23:2).
ㅇ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봉헌식을 행하려 - 이것은 성전 봉헌식 때 솔로몬
이 사용했던 방식의 답습이다(대하 5:12,13). '제금'(메칠타임)은 이 단
어의 복수 형태가 잘 보여주듯이, 마치 솥뚜껑처럼 생긴 한 쌍의 금속을 부딪혀 소리
내는 악기로서 현대의 심벌즈와 유사하다.
ㅇ비파(네벨) - 요세푸스는 이 악기의 현(絃)이 열 둘임을 중언하고 있다
(Ant.VLL,xii,3).
ㅇ수금(키누르) - 현이 셋밖에 없는 것으로 부터 열 둘 되는것까지 다양
했었다. 특별히 귀족들에 의해서 많이 사용된 고급 악기였던 관계로, 은 혹은 상아,
심지어는 금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앞의 비파 보다는 크기가 작았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동네에서 모여 오고
ㅇ예루살렘 사방 들 - 여기의'들'(키카르)은 때때로 평지를 가리키기도 하
지만 예루살렘 둘레에는 말 그대로의 '들'은 없다는 점에서. 본 문구는 다만 '예루살
렘 일대의주변'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Myers).
ㅇ느도바 사람의 동네 - 베들레헴의 동남쪽 가까이 위치했던 작은 마을인 것 같다
(Fensham,schults).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뚫 들에서 모여 왔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동네를 세웠음이라
ㅇ벧길갈 - 예루살렘 동북쪽 약 26km지점의 '길갈'과 동일 지역인 듯하다.
ㅇ게바 - 11:31 주석을 참조하라.
ㅇ아스마웽 들 -예루살렘 북동쪽 약 8km지점 베냐민 지경(스 2:24)을 말한다.
ㅇ노래하는 자들은...예루살렘 사방에 동네를 세웠음이라 - '노래하는 자들'이 이같
이 한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 봉사에 쉽사리 참여하기 위함이었다(Rawlinson). 아무튼
이 문구는 '노래하는 자들'이 앞절과 본절의 전반부 처럼 쉽사리 예루살렘에 올 수 있
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니라
ㅇ성벽 봉헌식에 앞서 정결례를 행함 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올바른 마음가짐
을 갖추는 내용이다. '정결케 하다'의 뜻인 히브리어 '타헤르'는 구약 성경
에서 94회 나오며 거의 의식적 혹은 윤리적 정결과 관련 하여사용된다. 특히 부정했던
자를 다시 회복시켜 의식 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정결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흔히 사용되었다 (레 22:4-7).
ㅇ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하고 - 금식, 성적 욕구의 절제, 속죄제를
드리는것 등을 가리킨다.
ㅇ백성...정결케 하니라 - 일반 백성들은 옷의 세탁(출 19:10,14), 목욕 및 물을 뿌
림(민 8:7;19:12) 등을 통해 정결케했을 것이다.
ㅇ성문과 성 - 이것들 또한 '정결케'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성벽 재건 도중 성벽
에 부정한 것들이 접촉되었거나 혹은 거기서 부정한 일들이 저질러졌을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Myers, 신 23:14). 그것들을 정결케 하는방법은, 개인의 가옥을 정
결케 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슬초로 새의 피를 거기에 뿌리는 방식이었음이 분명하
다(레 14:49-53).
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성 위로 항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하니
ㅇ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 느헤미야의 이 같은 조처는 서쪽 성곽의
중앙부 곧 골짜기 문(2:13)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Rawlinson). 이같이 볼 수
있는 까닭은,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온 직후 성벽의 파괴 정도를 관
찰하기 위한 경로를 바로이 '골짜기 문'부터 잡았기 때문이다(Schultz).
ㅇ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 - 레위 사람들 중 아삽 자손들을 가리킨다(27-29
절;11:17).
ㅇ성위로 행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 이러한 독특한 의식적(儀式的) 행동은, 그 성벽
이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과 인도에 따라서 재건 되었음을 감사및 고백하는 데(27절)
그 목적이 있었다(Kidner,시 48:12-14). 물론 거기에는 예루살렘의 방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ㅇ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糞門)을 향하여 가게 하니 - 이 대열은 '골짜기 문'(2:13)
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약 450km 떨어져 있던 '분문'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서론
의 '성벽모형도' 참조). 이대열의 인도자는 '학사 에스라'였고(36절). 선두에는 찬송
하는 레위인들이 위치했다.
32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방백의 절반이요
ㅇ호세야와 유다 방백의 절반 - '호세야'가 '유다 방백'의 선두에 섰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Schultz), 한편, 여기의 유다 방백'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방백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지파를 막론한 '이스라렘 백성'들의 방백을 가리킬 것이다.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ㅇ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 - 이들을 방백들의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Schultz), 성벽 봉헌식에 있어 레위인과 제사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본문 전후의 문맥
을 고려해볼 때 레위인 혹은 제사장의 명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Rawlinson).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며
ㅇ유다와 베냐민 - 이것은 평민들의 집단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ㅇ스마야와 예레미야 - 두 제사장 가문의 이름이다(12,18절).
35 또 제사장의 자손 몇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손 아삽의 육대손 스가랴와
ㅇ제사장의 자손 몇이 나팔을 잡았으니 - '나팔'은 레위 사람들에 의해서 간혹 사용
되었을 뿐(대상 16:42), 주로 제사장들에 의해서 다뤼지던 악기였다. 이 악기는 특별
한 종교적행사 혹은 사건의 축하를 위하여 사용되었다(삼하 6:15;대하 7:6;29:26-28).
한편, '잡았으니'라는 번역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다음에 나오는 이름들이 '나팔'
을 잡은 사람의 구체적 명단인 양 착각케 한다는 점에서. '잡았고'라고 해야 보다 타
당하다. 물론 개역 성경과 같은 번역은, 원문상 본 문구와 바로 다음에 나오는 단어인
'스가랴' 사이에 '그리고'를 뜻하는 접속사 '와우'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긴 하
다. 하지만 본 문구 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레위 사람들이 분명한 이상,'잡
았고'로 고쳐 번역함이 보다 자연스럽다(Rawlinson, Myers, Williamson).
ㅇ맛다냐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레위 지파의 아삽 자손이었다(11:17).
ㅇ아삽의 육 대 손 스가랴 -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송의 책임을 부여받았
던 레위 사람이었다(대상 16:4-7;대하 5:12). 한편, '스가랴'는 느헤미야 시대의 인물
이었다. 그렇다면 약 50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나므로, 여기의 '육 대 손'이라는 번
역은 적절치 않다. 차라리 '자손'으로 번역함이 무리가 없다.
36 그 형제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ㅇ그 형제 - 다음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앞절의 '스가랴'처럼 아삽 자손들이라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ㅇ아사렐 - '하나님께서 도우심'의 뜻이다.
ㅇ밀랄래 - '말이 많은'의 의미이다.
ㅇ느다넬 -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의 뜻이다.
ㅇ하나니 - '은혜로움'의 뜻이다.
다윗의 악기 - 레위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악기들, 곧 제금, 수금, 비파 등을 가
리킨다(27절;대상 15:16,19-21). 이처럼 '제금'. '수금', '비파'를 '다윗의 악기'라고
한 까닭은, 그 악기의 사용이 다윗에 의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명령된 것이기 때문이었
다(대상 15:16).
ㅇ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 그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에스라'라는 인물이 차지
하던 비중을 잘 보여준다. 비록 그는 느헤미야와 같은 정치적 권세를 갖고 있지는 않
았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각성이 그의 종교적 역량에 힘입은 바가 컸
음을 감안한다면 중요시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8:1-12).
37 샘문으로 말미암아 전진하여 성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ㅇ성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 성벽을 타고 행진하던 에스라 일행이 일단 성벽에
서 내려왔음을 전제로한다. 사실 에스라의 일행은'샘문'이 가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성벽에서 일단내려왔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반대쪽의 성벽 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ㅇ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 이 '다윗 성의 층계'는 샘문을 통하여 성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되었었다. 바로 이계단을 통하여 에스라의 일행은 성의 안쪽으로 들
어갔음이 분명하다(Schultz).
ㅇ다윗의 궁 윗길 - 여기의 '길'(호마)은 잘못된 번역이다. 이 '호마'는 '
성벽'의 뜻이 있을 뿐이다(출 14:22;신 3:5;렘 1:18).
ㅇ동향(東向)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 이것은 에스라의 일행이 샘문 북쪽의 성벽 끝을
출발하여 그 성벽을 따라 계속 진행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본문의 수문이 느헤미야
당시에 재건된 성벽의 바깥에 위치하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이 문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 느헤미야가 포로 이전시대의 수문과는 별도의 수문을
만들었으리라는 견해. 그러나 그러한 언급이 3장에 나오지 않으며 또 3:26의 수문과
본문의 수문이 동일한 지점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받아
들이기 곤란하다. (2) 에스라 일행이 새로 재건된 성벽을 벗어나 그 바깥쪽으로 돌았
으리라는 견해. 하지만 에스라 일행은 특별한 경우만 성벽 안쪽으로 돈 것을 제외하면
줄곧 성벽 위로 돌았음에 분명하다. (3) 본문의 '수문'을 3:26에서처럼 '수문과 마주
대한 곳'으로 해석하는 견해. 여러 측면에서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Will
-iamson).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떼는 저희를 마주 진행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 위로 행하여 풀무 망대 윗 길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ㅇ저희들 마주 진행하는데 - 여기의 '마주'(레모올)는 '반대로'의 의미
이다(NIV). 따라서 이는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는(36절) 한 대열이 성을 따라 우추으로
돈 데 반해, 또 다른 한 대열은 좌측, 즉 북쪽으로 돈 것을 가리킨다.
ㅇ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 비록 느헤미야가 그 대열의 인도자였
지만, 그 대열의 선두에는 아삽 자손의 노래하는 자들이 위치했었음을 말해준다. 이
같은 순서는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 대열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ㅇ풀무 망대 윗길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 여기의 '풀무 망대 윗길'은 '다윗의 궁
윗길'과 마찬가지로 '풀무 망대에 이르는 성벽'으로 번역되어야 한다(37절 주석 참
조). 한편, 이 '풀무 망대 윗길로'와 다음의 '성 넓은 곳에 이르고'사이에는 '경유하
여'(메알)라는 단어가 삽입되어야 한다. '성 넓은 곳'에 대해서는 3:8주석을
참조하라.
39 에브라임 문 위로 말미암아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그치매
ㅇ에브라임 문 - 북쪽 성벽의 서쪽 부분에 있던 '하나넬 망대'(3:1)와 '함메아 망대'
사이의 '문'이다.
ㅇ옛 문 - 3: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어문 - 3:3 주석을 참조하라.
ㅇ하나넬 망대와함메아 망대...양문 - 3:1 주석을 참조하라.
ㅇ감옥문 - 이것은 수문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어느지점에 위치했을 것이다
(Rawlinson).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와 민장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ㅇ본절은 '감사 찬송하는 두 떼는 하나님의 전에 섰고 나를 포함한 민장(民長)의 반
은 나와 함께 있었다'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성전에서의 봉헌식을 주관하던
성직 계급과 평신도들의 분리되는 모습이 생생히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Fensham).
결국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 무리들과 느헤미야에 의해 인도된 무리들은 각기 반대 방
향으로 나아가서 성전에서 서로 만났다고 볼 수 있다.
ㅇ민장 - 32절에서 언급되는 '방백'과 본질상 동일할 것이다(Rawlinson).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ㅇ본절부터 43절까지에서는 성벽 봉헌식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본절에 언급되는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임이 분명하다(Rawlinson). 만일 이것이 가문의 이름이라면 제사
장 가문 목록에 실려있어야 했을 것이다(12-11절;10:2-8).
ㅇ나팔를 잡았고 - 35절 주석을 참조하라.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ㅇ마아세야...에셀이 함께 있으며 - 원문에는 '함께 있으며'에 해당되는 말이 없다.
아무튼 '마아세야...에셀' 등도 41절의 제사장처럼 나팔을 불던 제사장이었음이 분명
하다(Fensham).
ㅇ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 이는 반드시 노래만 했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
다. 분명히 이 '찬송'하는 무리 속에는 악기를 잡은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
문이다(36절). 따라서 이 봉헌식에는 (1) 느헤미야가 인도하던 대열만이 참여하였고,
(2) 그래서 악기를 사용하는 레위인들은 없고 다만 '노래하는 자들'만이 있었다는 롤
린슨(Rawlinson)의 주장은 결코 타당치 못하다.
ㅇ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 이 '예스라히야'는 '노래하는 자'와 '악기를 잡은 자'모
두에 대한 지휘자였던 것 같다.
ㅇ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 여기서'제사'(제바힘)는 주로 감사의
화목제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출 24:5;29:28;레 3:3;7:20;민 6:17;왕상 8:63
). 그때 백성들은 제물의 일부를 하나님께 불살라서 바친 후(레 3:11). 그 나머지의
부분 중 일부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레 7:29-34),그 잔여분을 가난한 사람
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을것이다(신 12:17,18).
ㅇ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벽을 성공적으로
재건할 수 있도록 해주신 일(6:15,16)로 인하여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음을 가리킨
다.
ㅇ부녀와 어린아이도 줄거워하였으므로 - 성경은 여자들이 슬퍼하며 애통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고 있으나(삿 11:40;렘 31:15;49:3;욜 1:8), 기뻐하는 모습에 대
해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본절의 언급은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이 너무나도
컸음을 더욱 확연히 보여준다(Rawlinson).
ㅇ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 백성들이 기뻐 환호하는 소리가
매우 커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백성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연상할수 있을 정도
였을 것이다. 반면, 성전 지대가 놓여졌을 때도 백성들의 소리가 무척이나 컸었지만,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분별되지 못했었다(스
3:13).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볍에 정한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ㅇ본절부터 47절까지에 언급된 사실은 봉헌식이 성대히 거행된 이후 나타났던 바람직
한 결과였다.
ㅇ그 날에 - 봉헌식이 있었던 직후의 어느 시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ㅇ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 헌물의 수령 및 관리를 담당할 사람을 임명한 것을
가리킨다. 전에 느헤미야는 '곳간'을 담당하는 레위 사람과 입회인 자격의 제사장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10:38).
ㅇ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 '제사장들'은 처음 난 가축이나 과일 그리
고 포도주와 기름 등을 백성들로부터 받았다(10:35-37).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백성
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으며(10:38) 그 십일조의 십분지 일은 제사장에게 다시돌려졌
었다(민 18:26).
ㅇ거제물(擧祭物)과 처음 익은 것 - 10:35-47을 참조하라.
ㅇ유다사람이...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 이것은 백성들이 봉헌
식을 통하여서 성직자들의 사역이 얼마나 귀중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았
던 연고일 것이다. 한편, '유다 사람'은 지파를 막론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곧 평민
들을 가리킨다.
45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을 좇아 행하였으니
ㅇ본절에서는 희생 제사 등과 관련된 봉사를 하는 제사장 및 레위 사람, 그리고 노래
하는 자 및 문지기 모두 그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다. 이는
말할나위없이 백성들이 성직자들을 물질로 뒷받침한 결과였다.
ㅇ하나님을 섬기는 일 - '섬기는 일'(미쉬메레트)은 구약 성경에서 주
로 '직무' 혹은 '직분'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이 성전 봉
사와 관련하여 담당하던 제반사(諸般事)를 가리킨다(민 3:7;대상 23:32;대하 7:6;겔
44:8).
ㅇ결례(潔禮)의 일 - '결례'(타하라)는 성전 봉사와 관련하여 자신들의
부정(不淨)을 정결케 하는 노력을 가리킨다(Myers, 대하 30:19;겔 44:26). 자신 뿐만
아니라 '성물'을 정결케 하는일도 포함될 것이다(대상 23:28).
ㅇ다윗과...솔로몬의 명을 좇아 - 이것은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 뿐만 아니라
앞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문구이다. 즉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봉사도 '다윗'과 '솔로몬'이 정한 규례대로 시행되어졌던 것이다.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ㅇ본절은 '노래하는 자들'이 '다윗'과 '솔로몬'의 규례대로 봉사했다는 45절 후반부
의 언급을 보충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기록된 듯하다. 본절 초두에 있는 '왜냐하면'의
뜻인 접속사 '키'는 본절이 45절 후반부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임을 보여준
다. 여기서 느헤미야는 '노래하는 자들'이 규례에 따라 봉사했다는 사실이 역사적 합
법성에 근거한 것이므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 것이다.
ㅇ노래하는 자의 두목 - '두목'(라쉐이)은 복수이다. 이것은 다윗 당시에
'아삽'을 포함한 세사람의 '두목'이 있었다는 사실과 잘 합치된다(대상 6:33,39,44;15
:17). 그 나머지 둘은 '헤만'과 '에단'이었다.
ㅇ찬송...감사하는 노래 - '찬송'과 '감사'는 신구약을 막론한 모든 성도들의 찬양에
담겨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주제일 것이다.
47 스룹바벧과 [느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것을 주되 그 구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ㅇ본절은 포로 귀환 시대에 성직자들이 특별히 존중되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
고있다.
ㅇ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 - 이것은 곧 포로 귀환 시대 전(全)기간을 가리킨다.
ㅇ날마다 쓸 것...그 구별한 것 -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한
다. 즉, 이들은 '십일조'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일 뿐이다.
ㅇ노래하는자들...문지기들...레위 사람들 -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이들은 모두 레위
지파의 후손, 즉 레위인들이었으며, 그래서 모두 기업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백성들
이 주는 십일조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십일조 제도가 세워진 모세 시대
심지어는 사울 시대까지 레위인들 중 '노래하는자들'과 '문지기들'은 구별되지 않았었
다.
ㅇ레위 사람들은...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로부
터 징수한 십일조 중 십분지 일을 '제사장'에게 준 것을 가리킨다(10:38;민 18:26).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벧과 및 예수아를 좇아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이러하니라 제사장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ㅇ느헤미야는 인구 재정착 작업을 마친후 (11장), 이스라엘의 존재 기반인 여호와 신
앙의 종교적 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의 가계를 조사한다.
ㅇ스룹바벨과 및 예수아 - 이들은 바벨론으로 부터의 제1차 귀환을 주도했던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적 지도자였다(스 2:2). 따라서 본절부터 7절까지에 언급되는 제사장 가
문은 모두 최초의 귀환 대열에 속했었다. 한편, 1-7절 외에 12-21절과(느헤미야 초기
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 10:2-8(느헤미야후기 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에도
제사장 목록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차이에 관해서 는 주제 강해, '세 가지 제사
장 계보 명단 비교'를 참조하라.
ㅇ스라야 - 대상 9:11에는 '아사랴'로 나온다.
ㅇ예레미야 - 이 가문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다.
ㅇ에스라 - 에스라서의 저자인 에스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자들은 이 '에스라
'가 10:2의 '아사랴'의 축약형이라고 주장한다(Kidner).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ㅇ아마랴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의 뜻이다.
ㅇ말룩 - 14절의 '말루기'와 동일한 듯하다. '통치하는'의 뜻이다.
ㅇ핫두스 - '대적자'의 뜻이다.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ㅇ스가랴 - 14절 및 10:4과 같이 '스바냐'로 고쳐야 할 것이다(Rawlinson).
ㅇ르훔 - '하림'의 오류로 추정된다(Rawlinson, Kidner, 10:5;스
2:39).
ㅇ므레못 - 15절의 '므라욧'의 바른 이름이다. '높은곳들'
의 의미이다.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ㅇ잇도 - 10:5의 '오바댜'의 바른 이름이다. 보다 후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12-21절)
에도 '잇도'(16절)로 나오는 것을 보면 '오바댜'는 필사자의 잘못인것 같다(Rawlinson).
ㅇ긴느도이 - '긴느돈'의 오류인 듯하다(Rawlinson, 16절;10:6).
ㅇ아비야 -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바로 이 제사장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눅 1:5).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ㅇ미야민 - '운이 좋은'의 뜻이다.
ㅇ마아댜 - 이것은 17절의 '모아댜'와 동일한 듯하다
(10:8). '여호와의 장식품'의 뜻이다.
ㅇ빌가 - 10:8의 '빌개'와 동일하다.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ㅇ스마야 - 18절과 10:8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ㅇ요야립 - 이 '요야립' 앞에만 '그리고'의 의미를 갖는 접속사 '와우'가 있다.
본서의 저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앞의 '스마야'까지와 여기의 '요야립'부터를 확연히
구분하려고 시도한다(19절). 추측컨대 이는 '요야립' 가문부터, 어떤 원인에 의해서인
지는 모르지만, 언약에 인을 치지 못했던 때문인 것 같다(Rawlinson). 이와 같은 주장
은, '요야립'이하의 가문명들이 10장의 인친 가문의 명단중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
실로써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한편, '요야립'은 '여호와께서 아심'의 뜻이다.
ㅇ여다야 - '여다야'라고 불리위지던 대제사장 가문의 일족(一族)이다(스 2:36). '여
호와께서 알고계시다'의 의미이다.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과 그 형제의
어른이었느니라
ㅇ살루 - 조절의 '살래'와 동일한 듯하다. '무게를 단'의 의미이다.
ㅇ아목 - 조절에서도 다시 언급된다. '깊은'의 의미이다.
ㅇ힐기야 - '여호와의 분깃'의 뜻이다.
ㅇ여다야 - 6절의 '여다야'처럼 대제사장 가문 출신일 것이다. 한편, 다윗 시대에는
제사장들이 24반차로 구분되어 번갈아가며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된 바 있으나(대
상 24:1-19), 1-7절에 열거된 제사장들의 수효는 22명이다. 그렇다고 느헤미야 시대에
와서 22반차로 의도적으로 재구성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1-7절에서는 24반
차 중 2개의 명단이 생략되었다고 본다.
8 레위 사람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저의 맞은편에 있으며
ㅇ본절의 명단들은 가계명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비록 귀환 당시에는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밖에 없었지만(스 2:40) (1)약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레위 사람들의
인구가 증가하였고, (2)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을 바벨론에서 데려왔기(스 8:15-20) 때
문에 이처럼 가문의 숫자도 늘어났을 것이다.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았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았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았고
ㅇ본절과 다음 절은 포로 귀환 시대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의 계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대상 6:3-15에 나타난 아론으로 부터 바벨론 포로 때까지의 대제사장
족보의 연장이다. 물론 포로 기간, 즉 B.C. 586년부터 B.C. 538년까지는 대제사장이
없었다.
ㅇ예수아 -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인물이다(스 2:2). 그는 B.C. 520년 경
의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하는 데 참여했음이 분명하다(스 5:2). 그러나 성전이 준공
될 때까지 살아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스 8:15-18).
ㅇ요야김 - 예수아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 역할을 했다(12,26절). '여호와께서 일으키
실 것이다'의 뜻이다.
ㅇ엘리아십 - 이 사람은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해인 B.C.458년 이전에 이미 대
제사장이 되어 있었다(스 10:6).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적극 방해했던 암
몬 사람 도비야와 내통하는 등의 이적(利敵) 행위를 하기도 했다(13:4,5,28).그 이름
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이다'이다.
ㅇ요야다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후기 시대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그의
아들 하나는 사마리아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됐었다(13;28).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
와께서 알고 계신다'이다. 한편,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월절 기략'(the
Paschal Chronicle)이라는 유대 문헌에 따르면 그의 재직 기간은 삼십 육 년으로 되어
있다(Rawlinson).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았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ㅇ요나단 - 22,23절의 요하난과 동일 인물인 듯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요하
난'이 페르시아 총독 바고아스의 환심을 사서 자신의 대제사장직을 빼앗으려고 시도
했던 동생 예수아를 살해하였던 인물이라고 말한다(Rawlinson, Fensham). 또한 '요하
난'은 애굽에서 발견된 B.C. 410년 경의 파피루스 문서에서도 그이름이 언급된다
(Fensham).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총애하심'이다.
ㅇ얏두아 - 요세푸스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얏두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
살렘에 입성했을 당시의 대제사장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의 예루살렘 입성이
B.C.332년이었으므로, 본서가 B.C.5세기후반 (421-400년 경)에 기록됐었다는 입장은
손상을 입게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10,11절의 족보가 후대의 어떤 인물에 의
해 가필(加筆)되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의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ㅇ여기서부터 21절까지에서는 제사장 21반열의 이름 각각과 그 각각의 우두머리 이름
이 나열되고 있다. 이는 당시에 제사장 체계가 새로 정비되고, 성전 제사가 엄정히 드
려졌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Rawlinson). 사실 요야김이 대제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
던 시기는, 성전이 재건된(B.C. 516년) 직후였으므로 당연히 성전 제사가 철저히 드
려졌을 것이다.
ㅇ요야김 때 - 에스라나 느혜미야가 귀환하기 얼마 전의 시기를 가리킬 것이다. 분명
치는 않지만 예수아의 대제사장 재직이 B.C. 490년까지였다면(B.T. Dahlbaerg). 요야
김은 에스라의 도착(B. C. 458년)직전까기 대제사장에 있었을 것이다.
ㅇ스라야 족속 - 1절의 '스라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ㅇ므라야 - '모반'의 뜻이다.
ㅇ예레미야 족속 - 알려진 바가 없다.
ㅇ하나냐 -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셨다'의 뜻이다.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ㅇ에스라 족속 - 1절의 '에스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ㅇ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ㅇ아마랴 족속 - 2절 주석 참조하라.
ㅇ여호하난 - '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의 뜻이다.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ㅇ말루기 족속 - 2절의 '말룩'과 동일하다.
ㅇ요나단 - '여호와께서 주셨다'의 뜻이다.
ㅇ스바냐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요셉 - '그가 더할 것이다'의 뜻이다.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ㅇ하림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아드나 - '즐거움'의 뜻이다.
ㅇ므라욧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헬개 - '할당된'의 뜻이다.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ㅇ잇도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스가랴 -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뜻이다.
ㅇ긴느돈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ㅇ아비야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시그리 - '기억할만한'의 뜻이다.
ㅇ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 - 이 두 이름은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아마 필사
자의 오류로 '미냐민 족속'의 우두머리 이름이 누락됐을 것이다(5절). 한편'모아댜 족
속'에 대해서는 5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빌대 - '구출된'의 뜻이다.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ㅇ빌가 족속 - 5절의 '빌가'와 동일하다.
ㅇ삼무아 - '소문' 혹은 '풍문'의 뜻이다.
ㅇ스마야 족속 - 6절을 참조하라.
ㅇ여호나단 - '여호와께서 주셨다'의 뜻이다.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ㅇ요야립 족속 - 본 제사장 가문 명단중 유일하게 이 앞에만 '그리고'의 뜻인 접속사
'와우'가 있다. 그이유에 대해서는 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맛드내 - '자유로운'의 뜻이다.
ㅇ여다야 족속 - 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웃시 - '힘센'의 뜻이다.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벧이요
ㅇ살래 족속 - 7절의 '살루'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ㅇ갈래 -'경솔한'의 뜻이다.
ㅇ아목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에벨 - '건너편'의 뜻이다.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ㅇ힐기야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하사뱌 - '여호와께서 생각하셨다'의 뜻이다.
ㅇ여다야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느다넬 -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의 뜻이다.
22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ㅇ본절과 23절도 10,11절처럼 후대의 삽입인 듯하다.
ㅇ엘리아십...요야다...요하난...얏두아 - 10,11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바사 왕 다리오 - 다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페르시아 역사상 세 명 등장한다.
그러나 문맥상 본문의 다리오는 유다의 대제사장 '얏두아'와 동시대 사람인 다리오 3
세(B.C. 335-331년)를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23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ㅇ역대 지략 - 여러 가지 명단과 기록을담은 공식적인 성전 연대기로 추측된다(Edwin
Yamauchi). 한편, 성경에 언급된 자료나 문서들에 관해서는 대하 35:26,27의 도표를
참조하라.
ㅇ요하난은 약B.C.400년까지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최후의 선지자 말라기도 바로 이
시대에 활동했었다.
24 레위 사람의 어른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저희가 그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 반차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ㅇ본절과 다음 절의 레위 사람들의 명단은 개인의 이름이 아닌 가문의 이름임이 분명
하다.
ㅇ하사뱌 - 포로 귀환 후 생긴 레위 사람의 가문일 것이다(8,21절).
ㅇ세레뱌 - '하사뱌'와 마찬가지이다.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 - '아들'(벤 )은 '빈누'의 오류임이 분명
하다(Kidner, 8절).
ㅇ그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 레위 성가대가 교송(交頌) 형식으로 찬양을 드렸음을 의
미한다(9절;스 3:11). 즉, 두 파트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며 찬양하였던 셈이다.
ㅇ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찬양하며 감사하고 - '하나님의 사람'은 다윗이
신정 왕국 이라엘의 예배 체계를 신실하게 확립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용어
인 듯하다(대하 8:14). 다윗이 노래하는 자들의 반차를 정한 것은 대상 25장에서 언급
되고 있다.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반차대로 문
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ㅇ'노래하는 자'(11:17)들이 '문지기기'의 역활도 병행했었다는 추측은 불필요한 듯
하다(Fensham). 따라서 우리는 '오바댜' 까지의 세 사람을 24절의 후미에 붙여야 할
것이다(Kidner). 그렇게 할 경우, '맛다냐'와 '박부갸' 사이에만 유일하게 있는 접속
사 '와우'를 '오바댜'와 '므술람'사이로 옮기면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 사이
의 구별이 뚜렸 해진다. 6절의 '요야립'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면, 이 같은 구별에 대
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ㅇ므술람과 달몬과 악굽 - '므술람'은 대상 9:17절 및 스 2:42 등을 볼
때, '살룸'의 오류임이 분명하다(Schultz).
ㅇ문 안의 곳간 - '문지기'들이 지켰던 '곳간'은 성전에 부속되어 있던 '곳간'들을
가리킨다(Schults, 10:38,39).
26 이상 모든 사람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방백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서기관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ㅇ모든 사람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 - '요사닥'은 바벨론에 붙들려간 '여호사닥' 대
제사장과 동일 인물이며(대상 6:15), '예수아'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대제사장(스
2:2)이다.
ㅇ요야김과...느헤미야와...에스라때 - 이것은 여기의 세 사람이 모두 동시대(同時
代)의 사람들임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의 '요야김'은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B.C.458년 이전에 죽었을 것이다. 즉, 에스라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요야김'의 아
들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의 직책에 올라 있었다(스 10:6).
27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ㅇ여기서 문제가 되는 바는, 본절 이하에서 언급되는 성곽 봉헌식 행사가 언제 실시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1) 성곽 공사가 준공된 직후에 봉헌식이 있었
다는 견해(Rudolph), (2) 예루살렘으로의 인구 재정착 사업을 끝마친 후에 봉헌식이
있었다는 견해(Fensham, Keil, Myers), (3)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온 직후인
B.C.432년에 봉헌식이 있었다는 견해(Rawlinson) 등으로 견해가 엇갈린다. 원래 봉헌
식이라는 것은 집이든 성곽이든 준공 직후에 시행되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보
편적 관습이었으나(스 6:14-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시급한 예루살렘 성의 방
비 문제(7:4)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기쁨으로 봉헌식을 실시하기는 어려웠
으리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 (2)의 견해가 가장 타당할 것이다.
ㅇ예루살렘 성곽이 낙성(落成)되니. - 6:15에서 언급되고 있다.
ㅇ각처에서 레위사람을 찾아 - 이것은 연대기적으로 혹은 내용상 당시에 레위 사람들
이 십일조의 징수 등의 목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의 각 성읍에 거주하고있었다는11:36의
내용과 바로 연결된다. 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에게 배당된 성읍에서 살았지만, 자신
들의 봉사 순서가 돌아오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예루살렘으로 와야만 했다
(대하 23:2).
ㅇ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봉헌식을 행하려 - 이것은 성전 봉헌식 때 솔로몬
이 사용했던 방식의 답습이다(대하 5:12,13). '제금'(메칠타임)은 이 단
어의 복수 형태가 잘 보여주듯이, 마치 솥뚜껑처럼 생긴 한 쌍의 금속을 부딪혀 소리
내는 악기로서 현대의 심벌즈와 유사하다.
ㅇ비파(네벨) - 요세푸스는 이 악기의 현(絃)이 열 둘임을 중언하고 있다
(Ant.VLL,xii,3).
ㅇ수금(키누르) - 현이 셋밖에 없는 것으로 부터 열 둘 되는것까지 다양
했었다. 특별히 귀족들에 의해서 많이 사용된 고급 악기였던 관계로, 은 혹은 상아,
심지어는 금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앞의 비파 보다는 크기가 작았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동네에서 모여 오고
ㅇ예루살렘 사방 들 - 여기의'들'(키카르)은 때때로 평지를 가리키기도 하
지만 예루살렘 둘레에는 말 그대로의 '들'은 없다는 점에서. 본 문구는 다만 '예루살
렘 일대의주변'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Myers).
ㅇ느도바 사람의 동네 - 베들레헴의 동남쪽 가까이 위치했던 작은 마을인 것 같다
(Fensham,schults).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뚫 들에서 모여 왔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동네를 세웠음이라
ㅇ벧길갈 - 예루살렘 동북쪽 약 26km지점의 '길갈'과 동일 지역인 듯하다.
ㅇ게바 - 11:31 주석을 참조하라.
ㅇ아스마웽 들 -예루살렘 북동쪽 약 8km지점 베냐민 지경(스 2:24)을 말한다.
ㅇ노래하는 자들은...예루살렘 사방에 동네를 세웠음이라 - '노래하는 자들'이 이같
이 한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 봉사에 쉽사리 참여하기 위함이었다(Rawlinson). 아무튼
이 문구는 '노래하는 자들'이 앞절과 본절의 전반부 처럼 쉽사리 예루살렘에 올 수 있
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니라
ㅇ성벽 봉헌식에 앞서 정결례를 행함 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올바른 마음가짐
을 갖추는 내용이다. '정결케 하다'의 뜻인 히브리어 '타헤르'는 구약 성경
에서 94회 나오며 거의 의식적 혹은 윤리적 정결과 관련 하여사용된다. 특히 부정했던
자를 다시 회복시켜 의식 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정결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흔히 사용되었다 (레 22:4-7).
ㅇ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하고 - 금식, 성적 욕구의 절제, 속죄제를
드리는것 등을 가리킨다.
ㅇ백성...정결케 하니라 - 일반 백성들은 옷의 세탁(출 19:10,14), 목욕 및 물을 뿌
림(민 8:7;19:12) 등을 통해 정결케했을 것이다.
ㅇ성문과 성 - 이것들 또한 '정결케'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성벽 재건 도중 성벽
에 부정한 것들이 접촉되었거나 혹은 거기서 부정한 일들이 저질러졌을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Myers, 신 23:14). 그것들을 정결케 하는방법은, 개인의 가옥을 정
결케 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슬초로 새의 피를 거기에 뿌리는 방식이었음이 분명하
다(레 14:49-53).
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성 위로 항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하니
ㅇ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 느헤미야의 이 같은 조처는 서쪽 성곽의
중앙부 곧 골짜기 문(2:13)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Rawlinson). 이같이 볼 수
있는 까닭은,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온 직후 성벽의 파괴 정도를 관
찰하기 위한 경로를 바로이 '골짜기 문'부터 잡았기 때문이다(Schultz).
ㅇ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 - 레위 사람들 중 아삽 자손들을 가리킨다(27-29
절;11:17).
ㅇ성위로 행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 이러한 독특한 의식적(儀式的) 행동은, 그 성벽
이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과 인도에 따라서 재건 되었음을 감사및 고백하는 데(27절)
그 목적이 있었다(Kidner,시 48:12-14). 물론 거기에는 예루살렘의 방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ㅇ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糞門)을 향하여 가게 하니 - 이 대열은 '골짜기 문'(2:13)
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약 450km 떨어져 있던 '분문'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서론
의 '성벽모형도' 참조). 이대열의 인도자는 '학사 에스라'였고(36절). 선두에는 찬송
하는 레위인들이 위치했다.
32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방백의 절반이요
ㅇ호세야와 유다 방백의 절반 - '호세야'가 '유다 방백'의 선두에 섰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Schultz), 한편, 여기의 유다 방백'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방백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지파를 막론한 '이스라렘 백성'들의 방백을 가리킬 것이다.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ㅇ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 - 이들을 방백들의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Schultz), 성벽 봉헌식에 있어 레위인과 제사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본문 전후의 문맥
을 고려해볼 때 레위인 혹은 제사장의 명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Rawlinson).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며
ㅇ유다와 베냐민 - 이것은 평민들의 집단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ㅇ스마야와 예레미야 - 두 제사장 가문의 이름이다(12,18절).
35 또 제사장의 자손 몇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손 아삽의 육대손 스가랴와
ㅇ제사장의 자손 몇이 나팔을 잡았으니 - '나팔'은 레위 사람들에 의해서 간혹 사용
되었을 뿐(대상 16:42), 주로 제사장들에 의해서 다뤼지던 악기였다. 이 악기는 특별
한 종교적행사 혹은 사건의 축하를 위하여 사용되었다(삼하 6:15;대하 7:6;29:26-28).
한편, '잡았으니'라는 번역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다음에 나오는 이름들이 '나팔'
을 잡은 사람의 구체적 명단인 양 착각케 한다는 점에서. '잡았고'라고 해야 보다 타
당하다. 물론 개역 성경과 같은 번역은, 원문상 본 문구와 바로 다음에 나오는 단어인
'스가랴' 사이에 '그리고'를 뜻하는 접속사 '와우'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긴 하
다. 하지만 본 문구 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레위 사람들이 분명한 이상,'잡
았고'로 고쳐 번역함이 보다 자연스럽다(Rawlinson, Myers, Williamson).
ㅇ맛다냐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레위 지파의 아삽 자손이었다(11:17).
ㅇ아삽의 육 대 손 스가랴 -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송의 책임을 부여받았
던 레위 사람이었다(대상 16:4-7;대하 5:12). 한편, '스가랴'는 느헤미야 시대의 인물
이었다. 그렇다면 약 50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나므로, 여기의 '육 대 손'이라는 번
역은 적절치 않다. 차라리 '자손'으로 번역함이 무리가 없다.
36 그 형제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ㅇ그 형제 - 다음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앞절의 '스가랴'처럼 아삽 자손들이라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ㅇ아사렐 - '하나님께서 도우심'의 뜻이다.
ㅇ밀랄래 - '말이 많은'의 의미이다.
ㅇ느다넬 -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의 뜻이다.
ㅇ하나니 - '은혜로움'의 뜻이다.
다윗의 악기 - 레위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악기들, 곧 제금, 수금, 비파 등을 가
리킨다(27절;대상 15:16,19-21). 이처럼 '제금'. '수금', '비파'를 '다윗의 악기'라고
한 까닭은, 그 악기의 사용이 다윗에 의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명령된 것이기 때문이었
다(대상 15:16).
ㅇ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 그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에스라'라는 인물이 차지
하던 비중을 잘 보여준다. 비록 그는 느헤미야와 같은 정치적 권세를 갖고 있지는 않
았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각성이 그의 종교적 역량에 힘입은 바가 컸
음을 감안한다면 중요시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8:1-12).
37 샘문으로 말미암아 전진하여 성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ㅇ성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 성벽을 타고 행진하던 에스라 일행이 일단 성벽에
서 내려왔음을 전제로한다. 사실 에스라의 일행은'샘문'이 가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성벽에서 일단내려왔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반대쪽의 성벽 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ㅇ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 이 '다윗 성의 층계'는 샘문을 통하여 성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되었었다. 바로 이계단을 통하여 에스라의 일행은 성의 안쪽으로 들
어갔음이 분명하다(Schultz).
ㅇ다윗의 궁 윗길 - 여기의 '길'(호마)은 잘못된 번역이다. 이 '호마'는 '
성벽'의 뜻이 있을 뿐이다(출 14:22;신 3:5;렘 1:18).
ㅇ동향(東向)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 이것은 에스라의 일행이 샘문 북쪽의 성벽 끝을
출발하여 그 성벽을 따라 계속 진행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본문의 수문이 느헤미야
당시에 재건된 성벽의 바깥에 위치하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이 문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 느헤미야가 포로 이전시대의 수문과는 별도의 수문을
만들었으리라는 견해. 그러나 그러한 언급이 3장에 나오지 않으며 또 3:26의 수문과
본문의 수문이 동일한 지점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받아
들이기 곤란하다. (2) 에스라 일행이 새로 재건된 성벽을 벗어나 그 바깥쪽으로 돌았
으리라는 견해. 하지만 에스라 일행은 특별한 경우만 성벽 안쪽으로 돈 것을 제외하면
줄곧 성벽 위로 돌았음에 분명하다. (3) 본문의 '수문'을 3:26에서처럼 '수문과 마주
대한 곳'으로 해석하는 견해. 여러 측면에서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Will
-iamson).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떼는 저희를 마주 진행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 위로 행하여 풀무 망대 윗 길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ㅇ저희들 마주 진행하는데 - 여기의 '마주'(레모올)는 '반대로'의 의미
이다(NIV). 따라서 이는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는(36절) 한 대열이 성을 따라 우추으로
돈 데 반해, 또 다른 한 대열은 좌측, 즉 북쪽으로 돈 것을 가리킨다.
ㅇ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 비록 느헤미야가 그 대열의 인도자였
지만, 그 대열의 선두에는 아삽 자손의 노래하는 자들이 위치했었음을 말해준다. 이
같은 순서는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 대열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ㅇ풀무 망대 윗길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 여기의 '풀무 망대 윗길'은 '다윗의 궁
윗길'과 마찬가지로 '풀무 망대에 이르는 성벽'으로 번역되어야 한다(37절 주석 참
조). 한편, 이 '풀무 망대 윗길로'와 다음의 '성 넓은 곳에 이르고'사이에는 '경유하
여'(메알)라는 단어가 삽입되어야 한다. '성 넓은 곳'에 대해서는 3:8주석을
참조하라.
39 에브라임 문 위로 말미암아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그치매
ㅇ에브라임 문 - 북쪽 성벽의 서쪽 부분에 있던 '하나넬 망대'(3:1)와 '함메아 망대'
사이의 '문'이다.
ㅇ옛 문 - 3: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어문 - 3:3 주석을 참조하라.
ㅇ하나넬 망대와함메아 망대...양문 - 3:1 주석을 참조하라.
ㅇ감옥문 - 이것은 수문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어느지점에 위치했을 것이다
(Rawlinson).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와 민장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ㅇ본절은 '감사 찬송하는 두 떼는 하나님의 전에 섰고 나를 포함한 민장(民長)의 반
은 나와 함께 있었다'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성전에서의 봉헌식을 주관하던
성직 계급과 평신도들의 분리되는 모습이 생생히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Fensham).
결국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 무리들과 느헤미야에 의해 인도된 무리들은 각기 반대 방
향으로 나아가서 성전에서 서로 만났다고 볼 수 있다.
ㅇ민장 - 32절에서 언급되는 '방백'과 본질상 동일할 것이다(Rawlinson).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ㅇ본절부터 43절까지에서는 성벽 봉헌식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본절에 언급되는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임이 분명하다(Rawlinson). 만일 이것이 가문의 이름이라면 제사
장 가문 목록에 실려있어야 했을 것이다(12-11절;10:2-8).
ㅇ나팔를 잡았고 - 35절 주석을 참조하라.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ㅇ마아세야...에셀이 함께 있으며 - 원문에는 '함께 있으며'에 해당되는 말이 없다.
아무튼 '마아세야...에셀' 등도 41절의 제사장처럼 나팔을 불던 제사장이었음이 분명
하다(Fensham).
ㅇ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 이는 반드시 노래만 했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
다. 분명히 이 '찬송'하는 무리 속에는 악기를 잡은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
문이다(36절). 따라서 이 봉헌식에는 (1) 느헤미야가 인도하던 대열만이 참여하였고,
(2) 그래서 악기를 사용하는 레위인들은 없고 다만 '노래하는 자들'만이 있었다는 롤
린슨(Rawlinson)의 주장은 결코 타당치 못하다.
ㅇ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 이 '예스라히야'는 '노래하는 자'와 '악기를 잡은 자'모
두에 대한 지휘자였던 것 같다.
ㅇ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 여기서'제사'(제바힘)는 주로 감사의
화목제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출 24:5;29:28;레 3:3;7:20;민 6:17;왕상 8:63
). 그때 백성들은 제물의 일부를 하나님께 불살라서 바친 후(레 3:11). 그 나머지의
부분 중 일부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레 7:29-34),그 잔여분을 가난한 사람
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을것이다(신 12:17,18).
ㅇ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벽을 성공적으로
재건할 수 있도록 해주신 일(6:15,16)로 인하여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음을 가리킨
다.
ㅇ부녀와 어린아이도 줄거워하였으므로 - 성경은 여자들이 슬퍼하며 애통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고 있으나(삿 11:40;렘 31:15;49:3;욜 1:8), 기뻐하는 모습에 대
해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본절의 언급은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이 너무나도
컸음을 더욱 확연히 보여준다(Rawlinson).
ㅇ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 백성들이 기뻐 환호하는 소리가
매우 커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백성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연상할수 있을 정도
였을 것이다. 반면, 성전 지대가 놓여졌을 때도 백성들의 소리가 무척이나 컸었지만,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분별되지 못했었다(스
3:13).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볍에 정한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ㅇ본절부터 47절까지에 언급된 사실은 봉헌식이 성대히 거행된 이후 나타났던 바람직
한 결과였다.
ㅇ그 날에 - 봉헌식이 있었던 직후의 어느 시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ㅇ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 헌물의 수령 및 관리를 담당할 사람을 임명한 것을
가리킨다. 전에 느헤미야는 '곳간'을 담당하는 레위 사람과 입회인 자격의 제사장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10:38).
ㅇ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 '제사장들'은 처음 난 가축이나 과일 그리
고 포도주와 기름 등을 백성들로부터 받았다(10:35-37).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백성
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으며(10:38) 그 십일조의 십분지 일은 제사장에게 다시돌려졌
었다(민 18:26).
ㅇ거제물(擧祭物)과 처음 익은 것 - 10:35-47을 참조하라.
ㅇ유다사람이...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 이것은 백성들이 봉헌
식을 통하여서 성직자들의 사역이 얼마나 귀중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았
던 연고일 것이다. 한편, '유다 사람'은 지파를 막론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곧 평민
들을 가리킨다.
45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을 좇아 행하였으니
ㅇ본절에서는 희생 제사 등과 관련된 봉사를 하는 제사장 및 레위 사람, 그리고 노래
하는 자 및 문지기 모두 그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다. 이는
말할나위없이 백성들이 성직자들을 물질로 뒷받침한 결과였다.
ㅇ하나님을 섬기는 일 - '섬기는 일'(미쉬메레트)은 구약 성경에서 주
로 '직무' 혹은 '직분'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이 성전 봉
사와 관련하여 담당하던 제반사(諸般事)를 가리킨다(민 3:7;대상 23:32;대하 7:6;겔
44:8).
ㅇ결례(潔禮)의 일 - '결례'(타하라)는 성전 봉사와 관련하여 자신들의
부정(不淨)을 정결케 하는 노력을 가리킨다(Myers, 대하 30:19;겔 44:26). 자신 뿐만
아니라 '성물'을 정결케 하는일도 포함될 것이다(대상 23:28).
ㅇ다윗과...솔로몬의 명을 좇아 - 이것은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 뿐만 아니라
앞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문구이다. 즉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봉사도 '다윗'과 '솔로몬'이 정한 규례대로 시행되어졌던 것이다.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ㅇ본절은 '노래하는 자들'이 '다윗'과 '솔로몬'의 규례대로 봉사했다는 45절 후반부
의 언급을 보충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기록된 듯하다. 본절 초두에 있는 '왜냐하면'의
뜻인 접속사 '키'는 본절이 45절 후반부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임을 보여준
다. 여기서 느헤미야는 '노래하는 자들'이 규례에 따라 봉사했다는 사실이 역사적 합
법성에 근거한 것이므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 것이다.
ㅇ노래하는 자의 두목 - '두목'(라쉐이)은 복수이다. 이것은 다윗 당시에
'아삽'을 포함한 세사람의 '두목'이 있었다는 사실과 잘 합치된다(대상 6:33,39,44;15
:17). 그 나머지 둘은 '헤만'과 '에단'이었다.
ㅇ찬송...감사하는 노래 - '찬송'과 '감사'는 신구약을 막론한 모든 성도들의 찬양에
담겨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주제일 것이다.
47 스룹바벧과 [느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것을 주되 그 구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ㅇ본절은 포로 귀환 시대에 성직자들이 특별히 존중되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
고있다.
ㅇ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 - 이것은 곧 포로 귀환 시대 전(全)기간을 가리킨다.
ㅇ날마다 쓸 것...그 구별한 것 -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한
다. 즉, 이들은 '십일조'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일 뿐이다.
ㅇ노래하는자들...문지기들...레위 사람들 -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이들은 모두 레위
지파의 후손, 즉 레위인들이었으며, 그래서 모두 기업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백성들
이 주는 십일조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십일조 제도가 세워진 모세 시대
심지어는 사울 시대까지 레위인들 중 '노래하는자들'과 '문지기들'은 구별되지 않았었
다.
ㅇ레위 사람들은...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로부
터 징수한 십일조 중 십분지 일을 '제사장'에게 준 것을 가리킨다(10:38;민 18:26).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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