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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역대하

[스크랩] 역대하 (34 : 1~3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9:15
역대하 34장


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며

ㅇ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 33:25의 기록에 의하면 요시야는 국민들에 의하여 추
대된 왕이었다. 즉, 그는 유다 최후의 선왕(善王)으로서 31년 동안(B.C. 640-609) 유
다를 통치해, 패망으로 질주해 가는 유다를 잠시 동안이나마 선(善)으로 이끌었던 것
이다. 한편 본절에는 열왕기에 소개된 왕의 모친 즉, 여디다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왕하 22:1).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ㅇ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 이는 요시야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의해서만 판단
하고 행동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왕(聖王) 다윗과 비교하여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사실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한 유다 왕은 여럿 있었다(14:2
; 27:2 ; 29:2 등). 그러나 그 조상 '다윗과 같이' 행한 왕은 여호사밧(17:3)과 히스
기야(29:2), 그리고 요시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좌우로 치우치
지 않았다'는 평가는 오직 요시야 왕에게만 주어졌다.

3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지 팔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 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ㅇ위에 있은 지 팔 년 - 열왕기에서는 율법책을 발견하기 이전 어릴 때의 요시야의
종교적 행위, 즉 다윗의 하나님을 구한 사실에 대하여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하여 비평주의 학자들은 요시야 18년, 다시 말해서 율법책 발견 이후에 시행된 개혁
기사(왕하 23:4-20)를 역대기 저자가 요약하여 요시야의 어린 시절의 경건을 설명하는
자료로 변경 사용하였다고 한다(Bertheau, Oettli). 그러나 요시야가 개혁을 시작한
것은 그의 재위 12년째, 즉 그가 20세가 되던 해였으며 그때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
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때와 거의 일치하는 시점이다(렘 1:2). 따라서 요시야의
개혁은 이미 율법책을 발견하기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한데, 이에 선지자 예레미
야의 공헌이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Barker). 그리고 8절을 보면 율법책을 발견한 해인
요시야 제 18년이 개혁을 처음 시작한 해가 아니라 단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해임
을 알 수 있다(왕하 22:3, 8 주석 참조).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열왕기에서도 요시야
18년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해로, 즉 율법책을 발견하고(22:8), 유월절을 실시한
해(23:23)로 언급하고 있을 뿐, 정확히 연대기를 따라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였음을 말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Bahr). 따라서 열왕기의 기록과 여기 나타난 사실은 연대기적
으로 결코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한편 카일
(Keil)처럼 요시야가 즉위 18년 이전 즉, 재위 12년에와 그 이후 18년이 되던해에 두
번에 걸쳐 개혁을 단행했다고 가정해서도 안 돨 것이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개혁은
그의 통치 12년에 각종 우상을 파괴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18년에 성전 수리 사역을
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요
시야의 종교 개혁이 멸망으로 치닫는 유다를 잠시 동안이라도 선으로 이끌었다는 사실
이다.
ㅇ그 십 이 년에...비로소 정결케 하여 - 요시야의 이때 나이는 20세이다. 즉 즉위
8년째 되던 해부터 12년째 되던 해까지 개혁의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그의 나이 20세
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상 척결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시야가 개혁을 실시할
수 있었던 요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1) 정치적인면 : 당시 흑해 북방
지역에 살던 유목민인 스구디아인(Scythian)의 침입(B.C. 628-626)으로 근동 지역은
일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애굽인들의 저지로 인해 유다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
지 않았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 개혁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요인은 스구아디아인의 침입으로 지난 반세
기 동안 유다의 멍에였던 앗수르가 크게 쇠퇴하여 유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
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시야는 이러한 호기(好期)를 틈타 다윗이 차지했던 영역 전
체를 장악하여 과거처럼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재확립할 수 있었다. (2) 종교적인 면
: 당시 스구디아인들의 침입으로 고대 근동 전지역은 국제적인 혼란기에 빠지게 되었
다. 그런데 유다에는 예레미야 선지자(B.C. 627-580)와 스바냐 선지자)B.C. 640-621)
가 활동하게 되있는데(렘 1:2, 14 ; 습 1:2), 이것이 요시야의 개혁과 밀접한 연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Payne).

4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ㅇ여기에서는 3절에서 언급한 개혁을 그 내용별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ㅇ바알들 - 이에 대해서는 17:3 ; 33:3 주석을 참조하라.
ㅇ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 - 이에 대해서는 레 26:1, 30을 참조하라. 그리고
바알 숭배와 태양신 숭배와의 밀접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5 주석을 참조하
라.
ㅇ가루를 만들어 - 모세가 금송아지를 파괴할 때 이와 같이 기루로 만들었다(출
32:20). 또한 아사 왕도 이와 마찬가지로 모친 마아가가 섬기던 우상을 찍고 빻아 가
루로 만들었다(15:16). 한편,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조각으로 난도질하다', '찧
어 빻다', '티끌로 만들다', '가루로 만들다'란 뜻의 '타카크'에서 유래한
'도크'로서 '부서진 것', 즉 곱고 얇은 천 같은 상태로 된 것을 가리킨다. 그래
서 '발로 부수다', '짓밟다'를 의미하는 '하다크'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15:16).
ㅇ거기 제사하던 자들이 무덤에 뿌리고 - 왕하 23:6에서는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렸다고'고 기록하고 있는데 역대기 저자는 이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우상 숭배자들의
무덤에 뿌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천연 동굴 또는 연한 암석
이나 산허리를 깍아 만든 무덤에다 장사를 지냈다. 그러나 그러한 장소를 준비하지 못
한 하층민들은 그냥 땅을 파서 시체를 매장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묘지가 모인 공동
장소를 대체적으로 부정한 곳으로 여겼다(민 19:16). 그러므로 요시야가 이곳에서 이
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부정한 우상을 부정한 곳에다 완전히 없애 버리려는 의도에
서 였다고 볼 수 있다.

5 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으며

ㅇ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 이에 대한 전후 상황 설명은 왕하 23:20을 참
조하라. 그리고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이 무덤에서 뼈를 파내어 요시야가
불태우고 재를 만들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왕상 13:2에서 예언되었던 사실이다(왕하
23:20 주석 참조). 한편,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해 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죽은 자들
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치욕으로 간주되었다(J. Wolfendale).

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ㅇ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지리적으로 이스
라엘의 중앙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므온은 유다의 남단에
있었고 납달리는 이스라엘의 북단에 위치했었다. 그러므로 이 같은 표현은 유다 전역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까지 개혁의 손길이 미쳤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로 본서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본 표현과 같은 서술을 가끔씩 사용했다
(15:9 ; 30:10, Williamson). 한편, 앞에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설명했듯이(3절
주석 참조) 요시야는 앗수르의 세력이 더 이상 사마리아 땅까지 영향을 미치지못하는
틈을 타 북쪽 이스라엘까지 과감히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왕하
23:15, 19). 그리고 히스기야 때에도 이와 같은 개혁이 있었으나(30:1,5,10,11,18)요
시야 때 만큼 광범위하게 시행되지는 못하였다. 또한 여기에서 유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던 시므온 지파가 북쪽 10지파 가운데 한 지파로 언급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15:9 주석을 참조하라.
ㅇ황폐한 성읍들에게도 그렇게 행하여 - 여기서 '황폐한 성읍'은 이스라엘의 멸망 상
태를 표현한다. 병행 구절인 왕하 23:19을 보면 구체적으로 각 성읍의 산당들을 어떻
게 파괴했나를 알 수 있다.

7 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ㅇ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 - 유다 땅의 태양신은 이미 파괴되었으므로(4
절)여기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북 왕국을 가리키는 것 같다.

8 요시야가 위에 있은지 십 팔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ㅇ십 팔 년에...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 여기서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타헤르'의 해석에 관해 학자들 간에는 여러 이견(異見)들이 대
두 된다. (1) 정결케 한 후(Luther, de Wette, 한글 개역 성경, KJV, Living Bible,
RSV). (2) 정결케 하기 위하여(Bertheau, Kamphausen).(3) 정결케 할 즈음에(Keil,
Netler, O. Zockler). 그런데 이같이 학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이유는 요시야 즉
위 18년이 개혁의 시발점인지, 아니면 한창 개혁이 진행되던 도중인지, 아니면 개혁이
끝난 후인지를 정확하게 규정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요시야 제8년에
시행한 개혁 운동(3절)을 언급하지 아니한 왕하 22:3에서는 요시야 즉위 18년이 마치
개혁의 첫 출발 연도처럼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
서 우리는 어떤 해석이 옳다고 판단 내리기가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개혁이
2차에 걸쳐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1차에 걸친 개혁이 계속 이어진 것인지 불분명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이미 개혁이 수년간 진행 도중에 있었으며(3절), 그
의 18년은 성전을 수리하는 개혁이 새로운 국면을 이룬 해였다고 밝히고 있다. 즉, 본
절에서는 요시야의 8년에 시작한 개혁 운동이 제18년에 와서 대댈적으로 그 절정을 이
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1)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한편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잇다. 즉,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의 삶
전체를 등정적인 측면에서 선왕(善王)으로 자세히 소개하려고 애쓴 반면, 열왕가 기자
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만을 중심으로 기록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ㅇ아살랴의 아들 사반 - 20절을 보면 사반의 직업이 '서기관'으로 나와 있으며 아히
김의 아버지로 언급되어 있고, 렘 29:3을 보면 그가 엘리사(Elasah)의 아버지로 나타
난다. 그리고 왕하 22:3에는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사반의 집안은 대대 손손 유력 인사로 언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한
편 이러한 사실을 반증해 주는 예로서 그의 아들 그마랴는 여호야김 시대에 상당한 귀
족으로 나타나 있고(렘 36:12, 25), 그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인 그다랴는 예루살렘 멸
망후 바벧론의 포로 가운데 중요한 인물로 언급되어 있다(렘 40:5).
ㅇ부윤(府尹)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하아스의 아들 요아 - 이들 두 사람이 왕하 22:3
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미 알려져 있던 마아세야(렘 35:4)와
요아(왕하 18:18)인지는 불분명하다. 한편 '부윤'이란 직함은 예루살렘 성읍을 관장하
던 우두머리로서 왕궁의 고관인 듯하다(Keil).

9 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연보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ㅇ저희가...저에게 붙이니 - 본절은 왕하 22:4과 그 내용 면에서 조금 다르다. 그곳
에서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메시지를 전하여 말하되 '은을 계수하여...수리하되'(4,
5절)라고 했으나, 여기서는 사반과 다른 두 사람이 직접 대제사장에게 돈을 전달한 것
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24:11, 12을 보면 성전에 연보한 돈을 왕의 서기관과 아
전(衙前)이 계수하여 보관하였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 전해준 것을 보게 된다. 이
로 미루어 볼 때 열왕기서와 본서의 두 병행 구절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내용을 보완
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ㅇ힐기야 - 유다 왕 요시야 때의 제사장이다. 그런데 본서에 나오는 현군(賢君)들의
배후에는 항상 이같은 유력한 대제사장들이 있어서 그들의 개혁 운동을 뒷받침해 주었
다. 즉, 아사에게는 아사랴가(15장), 여호사밧에게는 예후가(19장) 있었던 것이다. 이
처럼 유다 왕국의 역사를 왕과 제사장 혹은 선견자와의 연합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은
본서 저자의 사관(史觀)이러고 할 수 있다.
ㅇ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거둔 것이라 - 성전세에 관해서는 24:6 주석을
참조하라.

10 그 돈을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이니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ㅇ역사를 감독하는 자...공장(工匠) - 24:12을 보면 목수와 건축하는 자와 같은 공장
은 모두 감독에 의해서 고용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임금(賃金)도
감독이 직접 그들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11 곧 목수와 건축하는 자에게 붙여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ㅇ목수 - 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하라쉼'은 단순히 나무만을 가지고 일
하는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고, 돌이나 금속을 다루는 사람도 포함한다(Curtis). 왜냐
하면 이 단어는 '쟁기질 하다', '공작하다'를 가리키는 '하라쉬'에서 온 말
로 '공작하는 사람', '숙련공', '장인(匠人)', '석공', '철공' 등을 가리키기 때문이
다.
ㅇ유다 왕들이 헐어 버린 전들 - 여기서 '헐어버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쉬히투
'는 '파괴하다', '더럽히다'라는 뜻의 동사 '솨하트'
의 히필형(Hiphil ; 사역형 능동)으로서, '그들(유다 왕들)이 파괴하게 하였다'란 뜻
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아달랴의 아들들이 전을 깨뜨린 것(24:7)과 같은 적극적인
파괴를 의미하는 자는 분명치 않다. 그래서 카일(Keil)은 '유다 왕들이 태만하여 전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여 여호와의 전이 저절로 파괴 되었다'란 뜻으로 이것을 해석한다.
즉, 그는 여호와 전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한 것도 적극적인 파괴 행위와 동일한 것으
로 간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와 아몬이 우상을 위하여 단을 쌓았을
때 여호와의 전에 딸린 방들이 파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성전은
아달랴(22:12). 아하스(28:21, 24), 히스기야(왕하 18:15, 16), 므낫세(33:1-7), 아
몬(33:22) 당시에 더럽혀지고 훼손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된 헐어버린 전은 므
낫세와 아몬에 의해 훼파된 전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전대(前代) 악
왕(惡王)은 므낫세와 아몬이기 때문이다.

12 그 사람들이 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 그 감독은 레위 사람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주장하고 또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 하였으며

ㅇ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 - 왕하 22:7에서는 '진실함'을 나타내는 원어가 돈과 관련
지어져 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31:12에서와 마찬가지로 '일'과 관련시켜 '진실함
'을 말하고 있다(Willamson). 한편, '진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
는 문자적으로 '확고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안전', '도덕적인 신실성
', '확립된 업무' 등을 나타낼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를 '능숙', '열심'으
로 번역하기도 한다(J. Wolfendale).
ㅇ그 감독은 레위 사람 - 왕하 22:7에는 감독들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이렇
게 여기에 레위인의 족보를 기록한 것은 역대기의 특징이다.
ㅇ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 - 이들은 '음악과 노래로 일꾼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준
사람들'(Bertheau)이 아니라, 1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담부하는 자를 관할하여 범백
(凡百) 공장을 감독하는 사람들이다(Keil).

13 저희가 또 담부하는 자를 관할하며 범백 공장을 동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

ㅇ서기와 관리와 문지기 - 여기서 '서기'는 8절에 나오는 서기관 사반과 요아와는 다
른 서기로서, 성전을 수리하는 일에 직접 개입하여 감독(출 5:10, 패장)과 함께 물자
를 관리, 계수하고 공급하는 일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서기는 레위인들로 구성된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을(KJV, NIV, RSV, Scribes) 지칭할
것이다(J. Wolfendale). 그리고 '문지기'는 계속해서 수납되는 성전세를 대제사장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ㅇ무리가...돈을 꺼낼 때에 - 여기서 '무리'는 문지기일 가능성이 있다(9절). 그런데
병행 구절인 왕하 22:8에서는 이와 같은 문구가 없이 단지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율법책이 연보한 돈이
놓여있는 곳에서 발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역대기 저자는 어떤 식으로
든 이 연보와 발견돤 율법책이 서로 관계가 있음을 말하려고 하는 듯하다(Curtis). 그
런데 다른 학자는 힐기야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본서 저자의 노력이 없었다고 이해한다(P.C. Barker).
ㅇ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 - 이것은 모세가 직접 쓴 율법책을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병행 구절인 왕하 22:8에는 '모세의 전한'이란 문구가 없기 때문
이다. 따라서 이때에 발견된 율법책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
해가 있다. (1) 신명기, (2) 모세 오경과 법령, (3)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4)
출애굽기 등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모세 오경 전부를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
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페르 하토라'는
구약에서 모세 오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신 17:18 ; 수
1:8 ; 8:31 ; 24:26 ; 느 8:1 등).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하 22:8 주석을
참조하라.

15 서기관 사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ㅇ여호와의 전에서...발견하였노라 -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성전 비치용
으로서 대체로 언약궤 곁에 보관되던 것이었다(신 31:25, 26). 따라서 이 율법책은 므
낫세나 아몬과 같은 배교(背敎)적인 왕들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가 잃어버린
듯하다(33:7, Payne).

16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

ㅇ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 왕하 22:9에는 단지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라고 기록되어 있어 '책'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
는 본절의 독법(讀法)이 다음과 같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즉, 히브리어 '돌아가서'와
'가지고 나아가서'에 해당하는 단어(위보)가 서로 동일하고 '서기관'과 '
그 책'에 해당하는 단어(하세페르)가 같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혼동이 일어
났다는 것이다(Curtis). 그러나 열왕기의 기록과 이곳의 서술을 종합하면 '사반이 책
을 왕에게 가지고 갔다'는 것은 '사반이 왕에게 갔다'란 말과 조금도 차이가 없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미를 명확히 밝혀준다 하겠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사반이 힐
기야로부터 책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고, 왕하에게는 사반이 자신이 그것을 읽은
후에 왕께 나아갔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Keil). 그러나 열왕기 저자와는 달리
역개기 저자가 여기서 중요하게 여겼던 바는 사반이 그 율법책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왕에게로 가져갔다는 사실일 것이다(Keil).
ㅇ사반은 성전 수리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하러 왕에게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여
기에서 우리는 서기관 사반에게 성전의 재정 관리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왕 사이,
혹은 성전 수리에 관계된 사항을 연락하는 매개자(媒介者)의 임무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7 또 여호와의 전에 있던 돈을 쏟아서 감독자와 공장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ㅇ여호와의 전에 있던 돈을 쏟아서 - '쏟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흘러나가다', '
쏟아 붓다', '떨어지다'란 뜻의 동사 '나타크'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학자의 주장처
럼 돈을 '모아서'라는 뜻을 가리키는 것(J. Wolfendale)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보
다는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성전 수리를 위해 백성들이 현금궤에 바친 모든 돈을 헛되
지 않게 전부 사용하였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18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ㅇ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 여기서 '읽으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와이크라
보'로서 직역하면 '그 속에 있는 것(일부만)을 그가 읽었다'가 된
다. 그러나 왕하 22:10을 보면 '와이크라에후'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가 그것들을 읽었다', 즉 '율법책 전부를 읽었다'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역대기 저자가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때 사반이 읽은 부분은 신 28장, 저주의 내용을 담은 부분이었을 것이라
고 추측한다(Payne).

19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ㅇ왕이...곧 자기 옷을 찢더라 - 이는 사반이 읽어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요시야 왕
이 극한 슬픔과 공포를 느꼈음을 나타낸다(창 37:29 ; 민 14:6 ; 수 7:6 ; 삿 11:35).
왜냐하면 율법의 내용을 듣고 요시야는 자신과 백성들의 형편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는 자가 일반
적으로 취하는 행동 양태, 즉 자신의 옷을 찢었을 것이다.

20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ㅇ아히감 - '내 형제가 일어났다'란 뜻의 이름으로 아히감은 렘 26:24을 보면 예레미
야 선지자를 보호하여 백성들의 손에 죽지 않게 한 장본인으로 나온다. 한편, 그는
예루살렘 멸망 후 유다 성읍을 다스린 그다랴의 부친이다(렘 39:14 ; 40:5).
ㅇ압돈 - 왕하 22:12에는 '악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렘 26:22 ; 36:12을 보면 '악
볼의 아들 엘라단' 이라고 언급되어 있어 여기에 표현된 '압돈'보다는 '악볼'이 바른
독법(讀法)인 것 같다(Keil, Barker, O. Zockler).
ㅇ왕의 시신(侍臣) 아사야 - 이와 같은 이름의 인물은 성경에서 여럿 언급되지만(대
상 4:36 ; 6:30 ; 15:6, 11) 이 사람은 여기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한편 '시신'이란
직책은 주로 왕과 관련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한 곳에서는 귀족으로(창 40:20 ; 삼하
10:2, 4) 언급되어 있어 페인(Payne)은 이를 '특별한 고위직'으로 본다. 그러나 이와
는 달리 다른 한 곳에서는 일반 병사로(삼하 2:12-23)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직책이 분명하게 무엇을 가리킨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21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ㅇ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 이와 병행 구절인 왕하 22:13에는 '나와 백
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로 언급되어 있을 뿐,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그러
므로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북왕국이 멸망한 후 그 남은 자들을
유다 백성과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한편, 여기서 '유
다의 남은 자들'이란 므낫세 치하에서 하나님의 형벌 가운데 살아난 백성들을 뜻한다
(Keil).
ㅇ쏟으신 진노 - 여기에서 '쏟으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테카'는
'물을 쏟는다', '금속이 녹아내리다'란 뜻의 단어로 극심한 진노를 표할 때 쓰인다.
이와 유사하게 병행 구절인 왕하 22:13에는 이것이 '발하신'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니체타'이다. 이는 '노를 발하다'란 뜻의 동사 '야
차르'에서 온 말로 '불을 피우다', '태워 소멸시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들은 앞으로 나타날 여호와의 진노를 각 저자의 관점에서 유사하
게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2 이에 힐기야와 왕의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그에게 이 뜻으로 고하매

ㅇ왕의 보낸 사람들 - 왕하 22:14에는 구체적으로 아히감, 악볼과 사반, 아사야로 그
이름들이 명시되어 있다.
ㅇ여선지자 홀다 - 이에 대해서는 본절의 기록 외에 다른 곳에서는 언급이 없다. 한
편, 성경에 명시된 여선지자로는 미리암(출 15:20), 드보라(삿 4:4), 이사야(느 6:14)
등이 있는데, 선지자로서 행한 그녀들의 전(全)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빈약한 듯하
다.
ㅇ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 - 왕하 22:14에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 기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료는 찾기 힘들다.
ㅇ예복을 주관하는 - 이 예복은 왕이나 귀족들이 절기에 왕궁에서 입었던 옷인 듯하
다. 한편 왕하 10:22에는 종교 행사를 위하여 바알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 특별한 예
복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ㅇ살롬 - 렘 32:7을 보면 홀다의 남편 살롬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숙부로 언급되어 있
다.
ㅇ예루살렘 둘째 구역 - 이곳은 왕조 시대에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이 확장될 때 포함
되었던 장소이다. 이에 대해서는 왕하 22:14 주석과 습 1:10을 참조하라.

23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으로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ㅇ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으로 - 훌다가 전한 심탁(神託)의 말씀을 통해 볼
때(24-28절)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요시야 왕이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
던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선지자 훌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왕하 1:6) 권고한 것이다.

24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ㅇ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 이에 대해서는 신 28:15-68을 참조하라. 한편, 이러한 저
주의 언약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은 곳에서도 자주 나타난다(왕상 9:6 이후 ; 14:9,
10 ; 렘 7:20 ; 19:3 ; 32:30).

25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를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ㅇ나의 노를 이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 여기서도 21절에서와 동일하게 '쏟
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나타크'로 쓰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병행
구절인 왕하 22:17에서도 왕하 22:13과 동일하게 '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니
체타'로 쓰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꺼지지 아니하리라'와 잘 어울리는 단어는 '발한'인 듯하다. 그래서 70
인역(LXX)에서는 이 단어로 쓰고 있다(Barker).

26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ㅇ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 이에 해당하는 원어를 직역하면, '네가 들을 말들 때문
에'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여기에 나타난 것과 같은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공동
번역('너는 나의 말을 받아들였다')은 재고되어야 할 부분으로 여겨 진다. 그러나 대
부분의 영역 성경은 히브리 원어의 감각을 그대로 살린 듯하다(KJV, commcerning the
words which thou hast heard ; NIV, concering the words you heard ; RSV,
Regarding the words which you have heard). 한편 이것은 요시야 왕이 들었던 저주에
대한 유보, 또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한 연기를 의미하는 듯하다.

27 내가 이곳과 그 거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ㅇ여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연기된 이유에 대해서 잘 나타나 있다.
ㅇ마음이 연하여 - 마음이 부드럽게되었다(KJV, was tender)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완악한 자신을 버리고 회개하였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RSV, heart was
penitent).
ㅇ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 요시야가 율법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연하여 하나님 앞에
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그의 회개를 들으시고 심판을
연기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다'라는 표현은
왕하 22:19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는 본서 저자가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한 실례로 소개하기 위해 요시야의 행위를 자세히 기술한 것 같다
(Williamson).

28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ㅇ본문은 왕하 22:12-20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대목으로 대제사장 힐기야와 요시야
왕이 여선지자가 훌다에게 율법에서 경고한 심판에 관해 문의하는 장면이다.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 실제로 요시야는 므깃도 전투에서 살해되었다
(35:22, 23). 그래서 여기에서 언급된 '평안히'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
인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이를 근거로 본문이 요시야 사망 이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나(Curtis), 그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따라서 여기서 '평안히'라는 단어는 요시
야가 참혹한 유다의 멸망을 보지 않고 므깃도에서 전사(戰死)하여 왕의 묘실에 장사
(葬事)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ㅇ모든 재앙 - 장차 유다가 바벧론에게 포로로 잡혀갈 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
한다. 그러기에 이 같은 표현은 앞에서 언급된 '평안히'라는 말의 의미를 구체화시켜
준다. 한편, 이러한 재앙이 내리게 되는 원인 중 하나는 백성들의 패역과 더불어 므낫
세의 모든 죄(우상 숭배)로 인한 것이었다(왕하 24:3).

29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ㅇ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 이런 일은 국가의 중대사가 발생했을 때에만 있는 일이
었다. 왜냐하면 왕조 시대 때 장로들은 어느 정도 정치적, 종교적 역량을 갖고 있었
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하 23:1-3 강해, '장로(長老)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참조하라. 여기서 우리는 요시야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바 말
씀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개혁을 결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0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연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ㅇ레위 사람들과 - 병행 구절인 왕하 23:2에는 '레위 사람들' 대신 '선지자들'로 기
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선지자들이 어느 한 계층의 인물로 분류되지 않았는데 레
위인들 중에도 선지자 역할을 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표현한 듯하다. 그런
데 본절에서 이를 '레위인'으로 나타낸 것은 본서 저자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Williamson).
ㅇ무론 노소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큰 자들로부터 작
은 자들까지'이다. 이는 모인 군중들의 구성이 매우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전
체가 다 모였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ㅇ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읽어 들려준 말씀을 율법책
가운데 언약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여기서의 '언약책'은 율법
책 전부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언약책의 일부로 추측할 수 있다.

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ㅇ자기 처소에 서서 - 이는 왕이 '대'위에 섰다는 뜻이다(왕하 23:3). 다시 말해서
이는 요시야가 '기둥처럼 생긴 사열대'(column)에 섰다는 말이다(P.C. Barker). 이
'대'에 관해서는 23:13 ; 왕하 11:14 ; 23:3 주석을 참조하라.
ㅇ언약을 세우되 - 여기서 '세우되'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외이크로트'
는 '자르다', '언약을 맺다', '서로 연맹하다'를 뜻하는 '카라트'에서 파생
된 말로 '그가 잘랐다'(cut), '언약을 맺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희생
제물을 둘로 갈라 그 사이로 지나며 언약을 세운 사실에서(창 15:17 ; 렘 34:18, 19)
유래하였기 때문에 언약 의식의 본질을 짐작케 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같은 형식을 취해서 언약을 세웠다기 보다는 언약책에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맹세하
였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Curtis).

32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로 다 이에 참가하게 하매 예루살렘 거민이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의 언약을 좇으니라

ㅇ다 이에 참가하게 하매 - 여기서 '참가하게 하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야아메
드'는 '서다(stand)라는 뜻의 '아마드 히필형(Hiphil ; 사역형
능동)으로서 '세우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왕하 23:3에는 '아마드'의 칼형
(Qal ; 기본형 능동)인 '와야아모드'가 쓰여져 모든 백성이 자발적인
순종심보다는 요시야 왕의 개혁 의지를 더욱 강조하려고 한 의도에서 였던 것 같다.

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ㅇ이와 같이 ...다 제하여 버리고 -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율법책의 발견과 새로운
언약적 행사를 통하여 개혁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3-7절에서 언급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은 왕하 23:4-20에도 나온
다.
ㅇ모든 땅 - 여기에는 남유다 뿐만 아니라 북왕국까지도 포함된다. 이런 광범위한 개
혁에는 수년의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왕하 23:4-20에 기록된 개혁의 사
건이 요시야 18년 당해에 모두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인 듯하다. 왜냐하면
그 해에는 또 유월절 행사가 치르어 졌는데, 한 해에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불가
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왕하 23:23).
ㅇ이스라엘의 모든 사람 - 예루살렘 지역의 주민, 베냐민과 유다 지파 사람들을 제외
한 열 지파의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을 가리킨다(Keil, O. Zockler).
ㅇ요시야가 사는 날에 -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1) 요시야
가 가졌던 경건의 영향력과, (20 백성들이 소유했던 신앙의 한계인데, 즉 요시야가 죽
은 후 여호야김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은 곧장 타락하여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던 것
이다. 이는 마치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요아스가 하나님을 경외하다가
그가 죽자 곧 타락한 사실과 유사하다.
ㅇ복종 - 앞에서 기술한 사실을 내증이라도 하듯 이것은 백성들이 내적인 순종없이
외적으로만 굴종했음을 보여 준다(Payne, O. Zockler). 그래서 카일(Keil)은 요시야가
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여호야를 경배케 했다고 밝히고 있다.
ㅇ요시야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 두장에 나누어져 기록되어 있는데 왕하 22, 23장의
내용보다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여기에서 역대기와 열왕기에 나타난 기록
상의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열왕기에서는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 보다 상
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역대기에서는 종교 의식적인 면이 더 상세하게 기록되
어 있다는 점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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