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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창세기

[스크랩] 창세기 (32 : 1~3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00:10
창세기 32장


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ㅇ그 길을 진행하더니 - 갈르엣(31:47)을 떠난 야곱은 남쪽 곧 요단 강의 북쪽
지류인 얍복강을 향해 출발했다.
ㅇ하나님의 사자들 - 고향을 떠나 올때 벧엘에서도 나타났던(28:12) 하나님의
천사들이 귀향길 여정에서 또다시 야곱에게 출현한 것은 (1)지난 날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던 것을 상기시켜 주며(28:15;31:13)  (2)라반의 온갖 모략에서 
보호하셨듯이(31:42) 장차 에서의 손에서도 무사히 지켜 주실 것이라는(히 1:14)
확신을 주기 위함이고 (3)'내가 너를 그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는 약속(28:15)
을 재보증하기 위해서였다.
ㅇ그를 만난지라 -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1)이전처럼 꿈을 통
해 조우하였거나(28:12; 31:11) (2)엘리사처럼 영안(靈眼)을 통해 대면하였든지
(왕하 6:17) (3)아니면 아브라함이나 롯처럼 가시적(可視的)인 형태로 현현한 
천사를 보았든지(18:2; 19:1) 하였을 것이다.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ㅇ하나님의 군대(마하네 엘로힘) - '구부리다', '진을  치다'란 뜻을 가진 동사
'하나'에서 유래한 '원형의 진(陳)'을 나타내는 '마하네'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로힘'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의 진영'(KJV;the camp of  God)이란 뜻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마하네'에 대한 70인역(LXX)의 번역인 '파레므볼레'는 성도들
의 진인 '교회'를 의미한다(계 20:9). 한편 진영을 형성한 이 천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진을 쳐 구원 얻을 후사들을 수호하는 일인데(시  34:7; 91:11; 행
27:23; 히 1:14). 그리스도께서도 이 천군의 존재를 밝히 인정하셨다(마 26:53).
이제 고향 땅인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야곱 일행에게 이 같은 군대가 출현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벧엘 언약에 근거한(28:13) 가나안의 참된
계승자가 본토로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장차 성도의 천국
입성때 천군 천사가 환영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마 24:31; 눅 16:22). (2)형
에서로부터의 보복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야곱에게 이 군대가 친히 친위대가
되어 지켜 줄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다.
ㅇ마하나임 - '두 진영(陣營)' 혹은 '두 군대'(RSV;two armies)를 뜻하는 고유
명사이다. 야곱이 그곳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1)두 진영, 즉 하나님의 진영과
야곱의 진영이 서로 만난 장소였기 때문이었거나 (2)두 군대로 형성된 많은 천
사들, 즉 만군(萬軍)의 천사가 야곱 일행의 전후 혹은 좌우에서 옹위했기 때문
일 것이다. 한편 이곳은 훗날 갓 지경 레위 지파 성읍으로 할당되었던 곳이자
(수 21:38; 대상 6:8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잠시 수도를 세웠던 곳이며
(삼하 2:8, 12).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했던 곳이기도 하다(삼하
17:24). 그러나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은데 요단 동쪽 갈르엣과 얍복사이에
위치했던 것 같다.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ㅇ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 - 이삭이 이미 예언한  대로이다(27:39). 
그런데 에서가 호리 족속이 살던 험한 산지인 이곳 세일 땅을 굳이 자신의 터로
삼은 이유는 (1)사냥꾼으로서(25:27) 수렵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이곳이 더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거나 (2)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신을 떠나버린 야곱을
그리워하는 모친 리브가와 평소 자신의 아내들을 못마땅히 여긴 부모와의 갈등
으로 인한 가정불화로 염증을 느낀 나머지 부모에게서 멀리 떠나 있기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4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ㅇ부탁하여(차와) - '명령하다'(KJV, he commanded)란 뜻이나 개역 성경은 이
때의 야곱의 정황을 참작하여 그의 안절 부절한 마음 상태를 잘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번역한 것 같다.
ㅇ내 주 에서...주의 종 야곱 - 외교적인 상투어로 자신을 최대한도로 낮추면
서 상대방을 최대로 높이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19:2). 여기서 '내
주'(라아도니)란 말은 에서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야곱의 겸양을
나타낸 말이다. 한편 야곱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세력이 월등한 형 에서와 화목을 이루려는 생각에서(Keil)
(2)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이후 물질관리 축복관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에서에게 양보코저 하는 마음에서(Leupold)등이다.
ㅇ붙여서(구르) - '체류하다'란 뜻으로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나그네로
잠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야곱이 항상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
하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ㅇ있었사오며(아하르) - '체재하다'(KJV;stay), '지연되다'(NIV;delay)란 뜻
으로 잠시 외삼촌 댁에 피신코자 했던 야곱의 체류가 그의 본래 계획과는 달리
오랫동안 지체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라

ㅇ내게 소와 나귀와...있사오므로 - 야곱이 이 말을 한 것은 자기에게는 이미
재산이 있어 이삭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 주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 었던 것같다.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ㅇ사백 인을 거느리고 - 칼을 믿고 살아왔던 자답게(27:40)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부족의 족장으로 성장한 에서의 이 행동은 분명 화해보다는 적대감을
뜻하는 일종의 자기 과시였다(Ainsworth). 한편 400이란 숫자는 지난 날 그들
의 조부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14:14) 동원했던 병력 수인 318명
을 훨씬 상회하는, 고대 사회에서는 대병력이었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ㅇ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무엇에 짓눌린듯한 고통과 
좌절감으로 피곤해 있는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삿 2:15; 욥 18:7).
ㅇ두 떼로 나누고 - 유목민들을 위험에 직면할 때 가축을 몇 떼로 분산시켜
곧 잘 희생을 최소 한도로 줄이곤 한다.

8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ㅇ피하리라(펠레타) - '탈출하다', '구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팔라트'에서
파생한 단어로 '도피시켜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유목민들의 불의의
습격에 대비한 자구책이다.

9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ㅇ나의 조부...여호와 - 일찍이 나의 조상에게 신실하였던 하나님께서 오늘의
나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야곱의 기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
속과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기도 자세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ㅇ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ㅇ진리(에메트) - '확증하다', '신실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아만'의 파생어로
하나님의 품성의 한 특징인 '성실성'(24:27) 혹은 '진실함'(출 34:6)을 의미한
다. 즉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확인된 진실을 가리킨다. 이는 야
곱이 지난 20년간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몸소 경험한 데서
비롯된 고백이다.
ㅇ나는...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카톤티) - '작은'(삼상 9:21; 15:17).
'약한'(사 60:22)이란 뜻인 '카톤'의 완료형으로 '나는 여태껏  미천하고 보잘
것없었듯이 지금도 부족함 투성이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자신의 간교했던 행
적에 비해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감격에 찬 심정으로 현재의 
곤고함에서도 자신을 넉넉히 구원하실 것을 믿는 감사와 확신에 찬 기도이다.
ㅇ지팡이만 가지고 - 20년전 급히 도피하던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강조한 말로
서 하나님이 내리신 현재의 축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ㅇ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 야곱의 절박한 기도 제목이다. 같은 뜻의
말이 중복된 것은 결코 중언 부언이 아니라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한 두려움에서
거의 애윈조로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특히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즐겨 받으신다(시 34:18; 51:17; 욜 2:12).
ㅇ처자들(엠 알 바님) - '어머니'를 뜻하는 '엠'과 '아이들'을 나타내는 '바님'
에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알'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자녀들 위의 어미'
(mother upon the children)이나 그 뜻은 '자녀들을 거느린(감싸안은) 어미'
(KJV;mother with the children)이다. 이는 위험이 닥칠 때 어린 자식들을 본능
적으로 자기 품에 품고 감싸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히브
리인들의 독특한 관용적 표현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ㅇ네 씨로...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절대 멸절의 위기 앞에서 이제 야곱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22:17; 28:14)을 붙들고 구원을 호소한다. 실로
죄인인 인간은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할 권리가 없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 또 독생자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5:7).

13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ㅇ그 소유 중에서 - 문자적으로는 '그의 손에 온 것으로부터'(KJV;that which
to his hand)란 뜻이다. 밤중이란 상황하에서, 더구나 적의에 불탄 에서가 다
가오고 있었으므로 속히 그에게 환심 살 예물을 필요로 한 나머지 야곱이 자기
손에 잡히는 대로 가축들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소유 중에서
예물에 합당한 것만을 선택했다는 뜻을 함축한 개역 성경의 번역은 적절치
않다.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ㅇ유목민들의 부(富)는 소유한 가축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판단되었으나 야
곱이 550마리가 넘는 가축을 에서를 위한 예물로 준비한 것은 상당한 예우
(禮遇)가 아닐 수 없다.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 하고

ㅇ각 떼로 상거가 뜨게 -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물의 양이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세번의 선물을 줌으로써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에서의
격한 감정을 완화시키려 한 야곱의 지혜였다.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ㅇ너를 만나 묻기를 - 황급한 상황 속에서도 종들에게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
시키는 야곱의 임기 웅변적인 모습에서 그의 타고난 책략가로서의 면모를 엿 볼 
수 있다(19절).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ㅇ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 물질적 보상 뿐만 아니라 몸소 죄에 대한 
용서까지도 빌겠다는 전갈로서 행여 도주할 의도나 딴 속셈을 전혀 품고 있지
않음을 에서에게 확신시켜 안심을 주기 위한 말이다(Kalisch).

19 그 둘째와 세째와 각 떼를 따라 가는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고하고

ㅇ떼를 따라가는 자 - 평소 가축보다 목자가 앞서 가는 것이 관례이나(요 10:4), 
야곱은 목자들로 가축 떼를 뒤따르게 함으로써, 다혈질적이며 물질에 약한 에서
의 품에 예물을 안겨 그의 마음을 회유시키려 의도하였던 것 같다.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ㅇ감정을 푼 후에(아카프라 파나우) - '카파르'(덮다)의 미래형과 '파님'(얼굴)
에 3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로 '내가 그의 얼굴을 덮으리라'란 뜻이다. 여기서
'덮다'는 '용서하다'는 뜻의 상징적 표현이다. 피해를 입은 자에게 선물을 안겨
그 얼굴을 가림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진 해(害)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유화
(宥和)정책이다. 야곱은 불같이 흥분했다가도 금방 수그러드는 형 에서의 호탕
한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여기에 기대를 걸은 듯하다.
ㅇ나를 받으리라 - 여기서 '나를'을 뜻하는 히브리어 '파나'란 '나의 얼굴'(my
face)란 의미이다. 한편 얼굴은 그 사람의 온 인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나를
받으리라'는 '나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모두 인정하고 용납하리라'는 뜻이다.

21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ㅇ예물은...앞서 행하고 -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재물은 물론 자신의 생명
마저 기약할 수 없는 위태로운 지경에서 야곱은 에서에게 바쳐지기 위해 떠
나가는 가축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우두커니 바라보았을 것이다.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ㅇ얍복 - 갈릴리 호수와 사해 중간에 위치한 요단 강의 동쪽 지류로서 우기(雨
期)에만 집중적으로 물이 흐르는 간헐천(間歇川)이다. '싸우다'란 의미를 지닌
'야바크'에서 유래한 '씨름꾼'이란 이 개천의 이름은 이곳에서 겪은 야곱의 신
비한 경험을 기념하여 후대 사람들이 붙인 것 같다. 오늘날에는 '맑고 푸른 강'
이란 뜻인 '와디 젤카'(Wadi ez Zerka)로 불리운다.
ㅇ나를 건널새 - 요단 동편 험준한 산악 지대를 흐르는 얍복강은 물길이 세기
때문에 특별히 잔잔하고 얕은 곳을 골라 가족과 가축을 이동시켰을 것이다. 따
라서 '나루'란 강을 건넌 곳에 대한 일반 명칭으로 봄이 좋다.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ㅇ어떤 사람 - 천사장 미가엘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1)야곱은 그를 하나님
이라 불렀고(30절) (2)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과 천사를 교차하여 사용한 점(호 
12:3,4)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람은 단순한 천사(an angel)가 아니라 여호와의
천사(the Angel of the God)가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로도 표기되는(22:11; 출
3:2; 삿  6:12) 성육신(成肉身)이전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창 16:7
강해, 여호와의 사자>.
ㅇ씨름하다가(네에바크) - 이 말은 (1)'먼지를 일으키다'란 뜻의 '아바크'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다. 즉 땅에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한
것으로 보았다. (2)'단단히 붙잡다', '껴안다'란 뜻의 '하바크'에서 유래된 것
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필사적인 싸움을 암시한다. 여기서는 이 두 견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데, 실제 씨름하듯 영육간의 모든 힘을 쏟아(눅 22:44) 눈
물로 붙들고(호 12:4) 필사적으로 간구하는(마 26:39) 야곱의 기도 모습을 생
생히 묘사해 준다.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음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ㅇ야곱을 이기지 못함 - 성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도, 즉 하나님
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도밖에 없음을(시 91:15; 막 9:29; 눅 11:9)
역설(逆說)적으로 암시해 주는 말이다.
ㅇ환도뼈 - 문자적으로 '엉덩이의 우묵한 구멍', 곧 넓적다리 부분의 움푹패인 
곳을 가리킨다. 원래 환도뼈는 둔부 아래쪽에 있는 좌골(坐骨)로 엉덩이의 골반
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를 뜻한다(24:2).
ㅇ위골되었더라 - 환도뼈는 사람의 몸을 받쳐주는 물리적 힘의 생성(生成)부분
으로 종종 생명과 힘의 근원을 상징한다(35:11; 46:26; 히 7:10). 따라서 하나님
께서 야곱의 이 뼈를 치신 것은 (1)지금까지 육적 수단에 의지해 왔던 야곱을
완전히 꺽음으로써 이후로는 하나님만을 의지케 한 것이었으며 (2)또한 예표적
으로는 장차 그의 허리에서 나올 이스라엘의 운명 역시 인간적 수단에 의지하게
될 때 이처럼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경고와 아울러 오직 그 허리를 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약할 때 강해진다'(고후 12:10)는 역설적 진리를 예표한 사건
이다.
 
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ㅇ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 얼마든지 야곱을 뿌리치고 떠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굳이 이렇게 요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네가지 견해가 있다. (1)아침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목격함으로써 헛된 호기심만 자극하기 때문에 (2)결사적인
기도로 얻어진 야곱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는 하나님의 애정어린 표현으로 (3)야
곱에게 새 날이 걸맞는 새 일(에서와 대면하여 사죄하는 일)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 (4)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에 아침이 되기 전에 떠나시기 위함
이다(출 33:20).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ㅇ네 이름이 무엇이냐 - 히브리인에게 이름이란 한 존재의 속성과 전인격을 대
표하는 것이다(25장 강해, 이름짓기). 따라서 하나님의 이러한 질문은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기 직전 교만과 사기 그리고 속임수로 점철된 옛 이름을(27:36)
고백시킴으로써 새 이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이해되
어진다.

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ㅇ야곱이...아니요 이스라엘이라 -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가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특히 그 이름을 명명(命名)하는 자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과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이처럼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은 (1)인간적 실패의 이름이 영적 승리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것을
뜻하며 (2)벧엘 언약(28:10-15)에 근거하여 야곱이 실질적 언약의 후계로서 하나
님에 의해 정식 비준(比準)된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스라엘'이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미하는 '엘'이 결합
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Kalisch)는 뜻도 있으나 대체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란 뜻으로 이해된다.
ㅇ겨루어(사라) - 힘, 능력 등을 총동원하여 대치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인간으로
서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집념을 기울인 상태를 가리킨다.

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ㅇ이름을 고하소서 -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던 이름의 중요성(28절)에 비추어 볼 때
이 제의는 존재와 신분과 성품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 요청이다.
ㅇ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을 물은 마노아에게 주어졌던 
것과 동일한 답변으로(삿 13:17,18)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야곱이 이미
그 사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전제하여 더 이상 무엇을 알기 원하는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2)또한 한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롭고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임을 시사하기
위한 것이다.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ㅇ브니엘 -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으로 뒤이어 나오는 말에서 설명하였듯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교제하고 은혜를 체험한 사실을 기념하는 지명(地名)이다.
ㅇ하나님과 대면하여...생명이 보전 - 아담 타락 이후 죄로 오염된 인간은 그 누
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살 자가 없다(출 34:20, 23; 딤전 6:16). 
그러나 이 말은 제1위(位)되신 성부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여호
와의 사자(16:10)로도 표기되는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 즉 제2위(位)되신 성자
그리스도를 보았지만 하갈이나 야곱 그리고 기드온이나 마노아처럼 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16:13; 삿 6:22; 13:21-23).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ㅇ절었더라(촐레아) - '첼라'(절뚝거리다)의 분사형으로 계속해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가리킨다. 즉 이제 야곱의 몸에도 바울처럼 은혜의 흔적이 새겨진 것이
다(고후 12:7-10; 갈 6:17). 다시 말해서 이는 과거의 인간적인 자신 만만함과
교만을 깨쳐 버리고 베드로처럼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야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화시키는 은혜의 가시인 것이다(요 21:18).

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ㅇ먹지 아니하더라(로요켈루) -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피처럼(9:4) 환도뼈의 큰 힘
줄도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하여 거룩히 바쳐진 것으로 믿기 때문에
먹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이 금하는 바가 아니냐  히브리인 인들은 탈무드
등에 이같은 규례를 두어 엄격히 지키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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