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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하

[스크랩] 열왕기하 (18 : 1~37)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8:40
열왕기하 18장

1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ㅇ호세 삼 년에...히스기야가 왕이되니 - 호세하 3년 B.C.730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때는 히스기야가 아하스와 공동 통치를 하던 때이고 정작 그가 왕위에 오른 때는
B.C.728년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장에서 산해립이 유다를 침입한 때 (B.C. 701
년)를 히스기야 14년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13절).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B.C.715
년 경에 즉위한 셈이 된다. 이러한 연대상의 난문제는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바인데
이에 대해 흑자는 B.C.728년과 715년 사이에 약 13년간의 연대기가 빠진 것으로 추
정하기도 한다(Thiele). 이와 관련해서는 15:22-38 강해,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 및 왕상 서론, '열왕기서의 연대기 문제', '열왕기서의 참조 도표등
을 각기 참조하라.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ㅇ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이러한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오직 아
사(왕상15:11)와 요시야(22:2)에게만 주어졌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
한 평가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사7:3-16)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이 스가리야로부터 받은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를 훌
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ㅇ여호와께 연합혀여 떠나지 아니하고 -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신4:4의
말씀에 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향한 정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세속의 삶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요
15:4-6).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 히스기야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ㅇ사마리아...에워쌌더라 - 히스기야의 영도 아래 유다는 다시금 부흥의 기치(旗幟)
를 올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호세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에 그 같은 차란이 임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12절). 따
라서 히스기야와 유다는 이러한 사실에서 더욱더 교훈을 받아 각성하였을 것이다.

10 삼년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ㅇ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 여기서 3년이란 기간은 히스기야 4년에서 6년까지
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만 3년이 아닌 2년 몇 개월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록은
17:5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한편 본문에서 사마리아성을 에워싼 자는 분명히 살만에
셀로 나타나 있다(9절). 그러나 정작 그 성을 함락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것을 B.C.722년 사
르곤 2세의 원년의 일로 본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그 성을 함락시킨 공적은 살만에
셀에게로 돌려지곤 하는데 그 만큼 살만에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17:3 주석 참
조.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ㅇ할라와...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 - 이스라엘인들이 앗수르에 포로되어 잡혀간 곳인
이들 성읍에 대해서는 17:6 주석에 상술(詳述)해 놓았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12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ㅇ본 절은 17:7-23에 기록된 사마리아 성의 함락 원인을 몇 마디 말로 지적해 놓은것
이다. 여기서 요약해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목은 (1)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2)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림, (3)모세의 율법에 대한 거역, 이 세 가지이다. 보다 자세
한 내용은 17장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Pulpit Commentary).

13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ㅇ히스기야 왕 십 사 년에 - 산헤립(Sannacherib)의 선임 왕인 사르곤 2세
(Sargon,II)는 B.C.722년에서 705년까지 약 17년 내지 18년간을 통치했다. 그리고 산
헤립은 그 뒤를 이어 B.C. 705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앗수르의 기록에 의하면 산헤
립은 그의 통치 제 4년에 히스기야에 대한 원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Pawlinson).
따라서 이때(즉 히스기야 14년)는 B.C. 701년 경이 되며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는 B.C. 715년 경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적 혼란에 대해서는 이미 1절
에서 살펴본 바이니 그곳을 참조하라.
ㅇ앗수르 왕 산헤립이 을라와서...취하매 - 산헤립의 1차 원정 목적은 에굽을 징벌하
기 위한 것이었다(Josehpus, Keil, Bahr).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가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조공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가사 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블레
셋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려던 계획에 많은 차질을 주었다(7,8절). 때문에 산헤립은
먼저 유다공략, 장애물을 제거하려한 것이다. 한편 산헤립의 비문(碑文) 기륵에 따르
면 이때 산헤립이 히스기야로부터 탈취한 성은 모두 46개로 욥바, 에그론, 딥나, 라기
스 등 중요한 요새를 전부 탈취하였다고 한다(Grid). 사실 미1:10-16에도 이러한 성들
이 히스기야 시대에 탈취되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또한 대하 32:1과
사10:28-32 등도 각기 참조하라.

14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ㅇ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 라기스(Lachish)는 예루살렘과 가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유다 지파에 할당된 성읍중 하나로(수15:39)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
화되었다 (대하11:9). 14:19 주석 참조.
ㅇ내가 범죄하였나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티'는 정치적
인 '과오'를 뜻하는 단어로서 '배반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솨'와 동일
한 용법으로 사용된다(1:1;3:5).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이때의 상황을 히스기야의 연
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표현하고 있다(사8:9-15;10:24-26;14:24,25). 즉 초기에
는 단호한 반 앗수르 정책을 폈던 히스기야도(7절) 그만 마음이 약해져 앗수르의
막강함에 굴복하였고 백성들은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22:13)며 모두 절망하
였던 것이다.
ㅇ앗수르 왕이...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한 앗수르의 기록을 보면 이때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
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참호를 둘렀으며 누구든지 문 밖으로 나오는 자는 처벌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산헤립이 탈취한 성읍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분절의 금 은 외에도 보석, 상아 의자와 상아 침상, 귀한 목재, 그의 딸들, 궁녀들,
남녀 음악사 등을 대가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의 연약함 때문
에 그와 그의 백성들이 당한 고충은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 이처럼 성도들도 불
신앙적 처사로 인해 영육간에 많은 꾀를 당할 경우가 있다. 따라서 항상 주님을 의지
하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수1:9).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ㅇ열왕기에서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성전(聖殿)과 왕궁이 함께 수탈되는 것은 하나
의 공식적인 패턴(pattern)처럼 나타난다(왕상14:25-28).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할 경우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실과 함께 하지 않으며 임재(臨在)의 처소인
성전에도 함께 하시지 않음의 한 증거이다.

16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ㅇ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 - 솔로몬의 경우에서처럼(왕상6:20-22,2830,32) 히스
기야는 성전을 깨끗케 하면서 성전의 문과 기둥에 금을 입혀 장식한 것 같다(대하
29:17-19). 그러나 이제 그가 그러한 금까지도 벗겨서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바쳐야
했던 것은 아하스 때에(16:8) 이미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조공으로 다 바쳤기 때문에
앗수르 왕에게 바칠 삼십 달란트의 금(14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Rawlinson). 한
편 달란트(Talent)를 무게 단위로 계산할 경우 1달란트는 약 34.27kg에 해당하는 중
량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 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ㅇ본절을 앗수르의 2차 침입으로 보느냐 아니면 1차 침입(13-16절)의 연장으로 보느
냐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르다. (1)먼저 이것을 1차 침입의
연장으로 보는 학자가 있다(Keil, Bahr). 이 견해의 대표자가 카일(Keil)인데 카일은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로부터 조공을 받은 뒤에(16절) 히스기야가 저자세로 나오는 것
을 악용하며 자기 나라로 돌아 가지 않고 도리어 예루살롑을 침공했다는 것이다. 카일
은 이 같은 근거로 평행구절인 사36:1,2를든다. 사실 사36장의 1절과 2절은 매우 매끄
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1차 침입의 연장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
다. (2)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을 2차 침입으로 보고 있다(Rawlinson,Hobbs).
그 이유는 첫째, 앗수르의 2차 침입시에는 구스 왕 디르하가와 교전하는 장면이 나오
는데(19:9) 이 디르하가(Tirhakah)는 히스기야의 동맹 요청에 응하여 히스기야를
도우러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다와 구스(에디오피아)간에 동맹을 체결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앗수르의 침입은 2차침입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1차 침입시에 유다는 이미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어서 완전히 쇠진한 상
태에 있었으니 계속해서 앗수르와 맞서 교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앗
수르는 B.C.701년에 1차 침입을 한 후 2년후인 B.C.699년에 2차 침입을 한 것으로 보
아야 한다. 또 위에서 언급한 사36장에서 1절과 2절 사이에는 약 2년간의 간격이 있었
다고 보아야한다(Hobbs). 한편 구스 왕 디르하가에 대해서는 19:9 주석을 참조하라.
ㅇ다르단 - 다르단(Tartan)뿐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랍사리스(Rabsris), 랍사게
(Rabshakeh)는 모두 고유한 인명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것들은 모두 앗
수르의 관직명이다. 이 중 다르단은 앗수르 군대의 직위와 관련된 공식적인 직명인
것으로 추측된다(Lucknbill,Ancient Records). 이와 관련 혹자는 '다르단'이 총사령관
직이었다고도 한다(Rawlinson).
ㅇ랍사리스 -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시장'(內侍長)이다. 그러나 '내시장'이
라는 직함이 군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ㅇ랍스게 - 이와 관계가 있는 히브리어는 '술 맡은 자'라는 뜻에 해당되는 '마쉬케
'(창 40:5)가 있다. 따라서 랍사게는 왕의 비서와 같은 직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된다(Hobbs).
ㅇ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 - 대하32:30에는 '윗못 수도'가 '기혼의 윗 샘물'로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성 밑으로 수도를 건설하여 성 밖에서 흐르는 물
줄기와 기혼(Gihon) 시냇물을 끌어들여 이곳 샘에 저장하였는데(20:30) 이것은 식수나
새탁용, 또는 전시(戰時)의 비상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예루살렘에
서는 적군에 포위당헹을 때 생활 용수(用水) 공급 문제가 언제나 큰 골치거리였으니
히스기야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지하수로를 건설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 윗못 수도
는 이미 아하스 때에도 있었는데(사7:3). 이때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의 서편을 따
라 힌놈 골짜기(Valley of Hinnom)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에 이것을
성내로 끌어들인 것이다(Keil &Delitzsch), 따라서 본절에서 앗수르 군대가 윗못 수도
곁 큰 길에서 유다와 맞섰던 장소는 예루살렘 성밖 서쪽 기혼으로 들어오는 물의 근
원지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1차 칩입후 2차 예루살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앗
수르 군대가 사용할만한 모든 물 근원올 막았었다(대하32:3,4)

18 저희가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저에게 나가니

ㅇ궁내 대신 엘리아김 - 사22:19,20에 따르면 엘리아김은 셉나(9째톄#빼신으로 궈
내 대신 자키에 욜랐음옳 알 수있다. 그런데 당시에 '엘리야김'(또는 옐리아김)은
대단히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예를들면 여호야김(Jehoiakim)이 왕이 되기 이전의
이름도 엘리아김이었다(23:34). 한편 궁내 대신은 나라의 주요 행정적 책임자로서
때로는 왕의 자문(諮問)을 담당하기도 한다(Hobbs).
ㅇ서기관 셉나 - 서기관은 조서 또는 공문서들을 기록하는 관리이다. 사22:15-22에
의하면 셉나는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결과 궁내 대신의 자리에서 밀려났음을 알 수 있
다.
ㅇ사관 요아 - '사관'에 해당하는 '자카르'의 문자적인 뜻은 '기억하는 사
람'이다. 아마도 요아(Joah)는 앗수르와 유다간의 담판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실록(實錄)에 기록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19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ㅇ대왕 앗수르 왕 - '대왕'(the great King)이라는 호칭은 비단 앗수르 왕 뿐만 아
니라 바빌론, 바사의 왕들도 사용했던 호칭이다(겔26:7;단2:37). 즉 그들은 대제국의
통치자로서 그에 걸맞는 칭호를 스스로 누렸던 것이다(Keil &Delitzsch).
ㅇ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 여기서 '너'는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 앗
수르 왕의 대변인인 랍사게는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에 대한 어떠한 존칭도 사용치 않
고 직접 '히스기야'라고만 부르거나(22,29,30,31,32절) '너'라는 경멸스러운 호칭을
하고있다. 즉 여기서 랍사게는 산해립에게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도 히스
기야에게는 '너' 또는 '히스기야'라고 부름으로써 모욕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이다. 또한 여기서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반앗수르적인 태도를 비꼬면서 '네가 무엇을
믿고 이테게 자신만만이냐'(공동 번역)라고 조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록 앗수
르의 랍사게가 사용하긴 했지만 '의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 단어 '바타흐'
는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은 용어로서 왕하 후반부에 자주 등장한다. 이 단어와
관련 우리는1:3에서 옐리야 선지자가 아하시야 왕의 사자들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
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븝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한 말을 상기할 수
있다. 즉 본서 기자는 왕하 전체에서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20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ㅇ이는 입에 붙은 맡 뿐이라 - '입에 붙은 말'이란 마음속으로는 확신이 없으면서도
입술로만 하는 맡을 가리킨다. 사싶 히스기야가 끝까지 전쟁의 모사(謀士)요 능한 자
되시는 여호와(시24:8)를 확신하고 신뢰했다면 앗수르인들의 이런 조롱을 당치 않았을
것이다. 과거 모세는 홍해 바다에 막혀 애굽 군대를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신뢰가 굳건했기 때문에 승리를 맛볼 수 있었지 않았던가(출14:13,14)!

21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ㅇ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 여기서 이미 히스기야가 애굽
과의 동맹을 교섭 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처럼 애굽과 동맹
맺는것을 누구보다도 비난한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였다(사31:3). 사실 당시에 애굽이
어느 정도 이전 세력을 되찾고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앗수르와 맞설 만한
상대는 되지 못하였다(Hobbs). 한편 여기서 랍사게가 애굽을 갈대에 비유한 것은 애굽
을 상징하는 나일 강변에 갈대가 많기 때문이다(Keil).그러기에 셀29:6과 사42:3에도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갈대 지팡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상한 갈대지팡이'와
'여호와에 대한 의뢰'는 완전히 대조적인 것이다. 갈대, 그것도 상한 갈대를 의지하는
자는 그 갈대가 부러찔 때 껍질에 찔려 오히려 피를 흘리게 되지만(사36:6)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영원 무궁 형통하게 될 것이다(시1:1-3), 한편 성경에서 '상한 갈대'라
는 표현을 '꺼져 가는 등불'과 함께 인생의 연약함을 비유할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
(사423;마12:20).

22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ㅇ본절에 기록된 랍사게의 날카로온 비평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 (1)히
스기야가 종교 개혁의 일환(一環)으로 산당과 제단을 파괴한 것(4절)은 지금에 와서는
전혀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히스기야의 그런 종교적 혁신이 지금에 와서
는 그가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나온 행위였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
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러한 랍사게의 비평은 당시 히스기야의 순수한 열정
과 신앙에만 비추어 본다면 맞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변한 지금에 와서 랍사게의
이러한 말은 분명 히스기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예리한 질책이 되었을 것이다. 이
런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는 이와 같은말을 함으로써 히스기야의 기세를 꺽는 데 성공
한 셈이다. 그런데 이에서 더 나아가 랍사게는 자기 자신을 히스기야의 그러한 신앙
상태를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자로까지 표현하고 있다(25절).
이는 분명 오만무뢰한 태도로서 곧 하나님을 망령되게 한 헹위가 아닐 수 없다
(Matthew Henry).

23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그 말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필을 주리라

ㅇ만일...말 이천 필을 주리라 - 22절과 본절의 내용을 볼 때 산헤립 왕은 유다의 정
치적, 종교적 상태 뿐만 아니라 군대 현황에 대해서도 거의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
었던 것으로 추정된다(J.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그래서 그는 유
다 왕 히스기야의 신앙심을 동요시켰을 뿐만 아니라(22절) 유다의 군사력의 약점을 공
격함으로써 계속 히스기야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대하32:1-8을 보면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입에 대비하여 병력을 보강하고 말들을 정돈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절에 기록된 랍사게의 말처럼 그 기병의 수가 말들을 탈수 있
을 만큼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듯하냐

ㅇ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 - 여기서 '장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하트'는
한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장관이라
는 것은 가장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킨다.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ㅇ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여기서 이방인인 랍사게가 '여호와의 뜻'을 운
은 한다고 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
에 패한 것을 그 나라 신의 진노로 해석하는 경우는 흔히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압 왕 메사는 모압이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억압을 받는것(3:4)을 모압 신 그
모스의 진노 때문이라고생각했다. 그리고 고레스 역시 자신이 바벧론을 차지한 것은
말둑(Marduk) 신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J.B. Pritchard). 따라서 랍사게가 '여
호와의 뜻'을 운운한 것은 22-24절에서 전개된 논리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1)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사실과(24절) (2)여호와
의 산당과 제단을 제한 사실(22절)등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보내 유다를 심판
케 하셨다는 것이다. 더욱이 랍사게는 당시에 유대의 예언자들이 앗수르의 침입을 여
호와의 심판이라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사8:7)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Keil,
Rawlinson)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컨대 아람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데 유다 방언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ㅇ본절을 통해서 볼 때 랍사게는 히브리 방언에 아주 능통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가 이렇게 유다 말로 19-25절까지의 내용을 말한 것은 유다의 사기를 꺽기 위한 것이
었음에 분명하다(27절). 그래서 본절에서 유다의 세 사자(使者)는 유다 말로 말하지
말고 아람 말로 말하라고 한 것이다. 한편 아람어는 당시에 주요 외교 언어였으며 바
사(Persis)시대에는 공식적인 바사 제국의 언어가 되었다(Hobbs).
ㅇ유다방언 - 유다 방언은 서부 셈계 방언에 속한다. 그리고 앗수르어 및 아람어와
동족어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구약 서론, '구약의 언어'를 참조
하라.

27 랍사게가 저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로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ㅇ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 이는 곧 계속
적인 악순환만 있을 뿐이며 헤쳐나갈 길이없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즉 앗수르의
군대가 장기간 예루살렘을 포위할 경우에는 성벽위에 앉아서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일반 백성도 왕의 신하들과 함께 먹을 것이 없어서 대변과 소변을 먹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니 지금 항복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말이다. 랍사게의 이런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현혹하며 위협하는 것이다. 즉, 백성들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하루
속히 항복하기를 원하도록 하려는 위협적인 술책이다.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ㅇ저가 너희를...건져 내지 못하리라 - 본절과 같은 랍사게의 말은 당시 이사야 선지
자의 예언과는 정반대된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유다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충고(19:6,7;대하32:6-8)와 함께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사31:4-6). 그런데도 랍사게는 지금까지 히스기야의 사자들에게 말
하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들과 병사들을 향하여 '히
스기야에게 속지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ㅇ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 사실 대하 32:6-8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처음
에는 굳센 신앙 가운데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는 말로써 군대 장군들과 백성들을
위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히스기야의 그러한 행위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랍사게는 이제 히스기
야가 다시금 돌이켜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소리쳐도 그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선동함으
로써 민심(民心)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다(대하32:18,19).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ㅇ본절에서 랍사게는 이제 마지막으로 유다 백성들을 회유하고 있다.
ㅇ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
내게로 나와서 나와 함께 복을 만들자' 이다. 즉 여기 한글 개역 성경에서 '항복하고'
로 번역된 히브리어 '쎄라카'는 '선물',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부
분의 영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우리가 화평하자'로 번역하고 있다(Niv,Rsv).
ㅇ너희는 각각 먹고 마시라 - 이러한 회유(懷柔)의 말은 27절에 나오는 위협의 말과
대조가 된다. 한편 여기서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는다는 표현은 신8:8과 33:28에 나오
는 풍요의 땅 가나안에 대한 묘사와 일맥 상통한다. 그리고 우물의 물을 마신다는 표
현 또한 뭍질적인 풍요를 비유하는말이다. 즉 랍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하고
앗수르에로 나아올 경우 그곳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되리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
한다. 그럴 경우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곤 오직 눈물과 한숨, 고통의 빵밖에 없을 것
이다.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ㅇ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꿀이 있는 지방이라 - 본절에서 랍사게는 앗수르
의 이주 정책을 애써 미화시켜 유다 백성들을 설득하고 있다. 즉 본절에는 앗수르의
군대 장관이 예루살렘 성민들에게 일종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듯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산헤립의 전왕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타지역으로(17:6), 그리고 타지
역의 사람듸은 사마리아로(17:24) 이주시켰는데, 당시의 앗수르 왕들은 정책상 흔히
피정복민들을 집단 이주시키곤 하였다. 따라서 랍사게의 감언 이설 또한 이러한 정
책의 일환에 불과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자기가 하는 일이 인간들의 복
지를 위한것처럼 꾸미려하나 실상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다(마7:15)
ㅇ듣지 말라 - 랍사게는 여호와에 대한 유다 백성의 신앙을 빼앗아 앗수르에게로 그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1)25절에서 그는 여호와를 유다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2)그리고 29,30절에서는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3)또한 31,32절에서는 여호와가 유다 백성에게 주신 축복을 앗수르 왕도
줄 수 있다고 한다.(4)마지막으로 33-35절에서는 다른 이방 신들과 마찬가지로 너희
신 여호와도 너희 유다 백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랍사게의 감언 이설과 회유는 하나님의 손에서 그의 백성들을 빼앗아 가려는 사단의
희유와 같다. 즉 사단은 항상 여호와에 대한 부정적인 신앙을 강요하고 온갖 감언 이
설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 아무도 우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해 할 것이다(요일3:7)

33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ㅇ열국의 신들 중에 있느냐 - 이처럼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열국의 이방 신
들과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이것은 열국의 신들에 비해 여호와의 독특함을 강조하고
있는 신4:34의 말씀과 명백한 대조가 된다. 때문에 신명기적 역사관을 지닌 열왕기
기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신학적인 핵심적 관건이 된다. 왕상 서론, '저자' 참
조. 그가 본서 첫장에서 여호와와 이방신들 간의 대조적인 면을 문제삼았고 또 이스라
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러한 면을 강하게 인식하도록 설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
서이다.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ㅇ하맛과...아와의 신들 - 여기에 나열된 이방의 신들에 관해서는 이미 17:30,31
절 주석에 설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그곳을 참조하라. 그러나
아르밧(Arpad)과 헤나(Hena20)에 대해서는 처음 언급되고있다. 이 중 아르밧은 아람의
한 도시인 알렙포(Arpad)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오늘날의 '텔아르피드'(Tell Arfid)
에 해당된다. 그러나 헤나는 유프라테스 강가의 아나(Ana)로 추측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ㅇ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 본절은 주어 '그들'이라는 말 때문에 문
제가 되곤 한다. 따라서 70인역(LXX)과 벌게이트 역(Vulgate)에서는 이 문장 앞에 '사
마리아 땅의 신들은 어디갔느냐?'라는 구절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본절과 같은 성경
원문의 문맥이 어색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함락(B.C722
년) 이전에도 이방 신들을 많이 섬겼으며(17:24). 특히 함락 이후 그곳 잔류민들은 새
이주민들의(17:7-23) 종교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
기들을 구해 주지 못했으니, 이제는 새 종교들에 희망을 걸어 보자고 생각하며, 그 종
묘들을 더욱 열심히 승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신들이 그들을 구해줄 리는 만무
한 것이었다. 한편 17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사마리아의 멸망은 유다에
대해 상당한 위협이되었을 것이다. 본장 서두(9-12절)예서 먼저 사마리아의 멸망을
회고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35 열국의 모든 신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ㅇ그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 랍사게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과 같은 앗수
르왕의 주장은 타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븐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
마리아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지 단순히 앗수르의 침략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구원하고자만 하셨다면 단번에 앗수르의 손에
서 건져 내셨을 것이타(17:7-18). 신4:34에서도 다른 신들은 결코 하지 못한 일을 여
호와만이 행하셨음을 분명히 언급하고있지 않은가!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ㅇ대답하지 말라! - 히스기야 왕이 랍사게와 앗수르의 오만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령을 미리 한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없다. 그러나 이는 랍사게가 더 이상 아
무 말을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아주 효과적인 조치였다. 즉 설전(舌戰)은 오고 가는
말 속에서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질 때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유다 성
읍민을 자극시켜 그들의 불평을 유도, 내란 사태에 빠뜨리려는 랍사게의 계획은 들은
척도 아니한 백성들의 자세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들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유혹은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칠 수
있다는 영적 교훈을 제시해 준다(약4:7;요일5:4;갈5:16)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ㅇ그 옷을 찢고 - 성경에는 여러 형태의 옷을 찢는 행위가 언급되어 있다. 즉, 문둥
병자의 경우에나(레13:45), 상징적 행동으로(왕상11:30), 혹은 회개할 때(22:8-20)
옷올 찢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옷 찢는 행위는 슬픔이나
고통, 분노 등을 나타낼 때였다(창37:34;수7:6;삿11:35;삼하3:31;13:19;행14:14). 본
절에서 히스기야의 신복들이 슬픔과 분노를 표시한 이뿐만 아니라 왕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무시하여 조롱했기 때문이었다.
ㅇ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 이 상황은 1장에서 아하시야의 사자들이 아하시야에게
엘리야의 말을 전하는 장면과 비교된다(1:13-18). 즉, 19절의 '대왕'의 말과1:16의 여
호와의 말씀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본서 기자가 이와같이 본장의
막바지에서 상당히 극적인 묘사를 하고있는 것은 다음 장에서의 히스기야의 태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즉, 히스기야는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한 결과 앗
수르 대왕로부터 참람(僭濫)한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19장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여
호와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행동의 전환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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